[0:00]우리 지난 시간에는 오병이어 사건을 살펴보았는데요. 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특별히 복음서 같은 경우에는 이 성경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게 참 중요합니다. 사건의 바깥에서 이렇게 보는 게 아니고 내가 그 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물론 이제 상상을 통해서 필요한데요.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났던 그 현장으로 갔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 5천 명이 남자 그리고 아이들 여자분들 다 포함해 2만 명이 그 조그만한 그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떼는데 계속 제자들이 떼고 떼도 먹고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다. 아주 쇼킹한 일이죠. 센세이션이 일어났을 겁니다. 어마어마한 이제 이제 파장을 일으켰겠죠. 이 사건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오병이어의 사건 직후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자들을 배를 태워서 베세다 강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그다음에 무리들과는 작별을 하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셨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어 45절을 오늘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했다는 거예요.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건너편 베세다로 가게 하시고. 여기 재촉했다는 말은 예수님을 매우 서두르셨다는 겁니다. 강제성을 좀 뛴 거예요. 제자들을 빨리 배 타고 가라. 지금 그냥 사라지라는 거예요, 빨리. 왜 그랬었을까요, 여러분? 무엇인가 심각한 상황을 예수님이 감지하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헤어질 때가 아니죠.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난 이후에 제자들이 갑자기 떠나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지금 분위기를 좀 누리고 싶고. 또 이런 성공적 사 이 사역을 계기로 해서 뭔가 더 예수님의 그 부각을 위해서 뭐 다음 단계가 좀 필요하지 않겠나 이제 이런 때였습니다. 근데 갑자기 예수님이 강제 해산을 한 겁니다. 제자들 빨리 배를 태워서 강 건너가게 하신 거. 자 여러분 이것은 어 분명히 오병이어 사건과 연결이 되는 겁니다. 연관성이 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 실패보다 성공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특히 큰 사건, 큰 성공, 큰 일 다음에 조심해야 되죠. 이때 지금 전부 다 열광하고 흥분하고 있습니다. 또 특별히 예수님이 왕이 혹시 될 수 있지 않겠나 제자들이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죠.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겁니다. 성공에 들떠 있는 제자들의 흥분한 마음을 지금 가라앉히고 계십니다. 자, 무리들과 작별을 하셨는데요. 무리들이 누구입니까? 오병이어를 경험하고 환호하는 사람들, 열광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에게 왕팬이 된 거나 마찬가지죠. 환호하는 겁니다. 자, 어느 정도 분위기인가 하면요. 요한복음 6장 15절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자, 분위기가 짐작이 되죠, 여러분? 이분을 임금으로 삼아야 된다는 거야, 예수님을. 예수님이 무리들과 작별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흥분한 군중은 위험합니다. 군중들이 막 흥분하면요, 위험해요. 그 군중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요. 지금 상황에 예수님의 말이나 행동은 군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군중에게 불을 지를 수 있죠. 잘못된 지도자들은 군중을 이용합니다. 대중을 흥분하게 만들어요. 대중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이 나쁜 지도자들이에요. 그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대중을 흥분시켜서 선동하는 거예요, 선동하는 지도자들. 역사 속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여든 숫자를 자꾸 부풀리는 거죠. 그 수가 힘이 되는 것이죠. 결국 그 숫자가 무상입니다. 자기의 지지도 뭐 이런 게 다 우상이죠. 근데 주님은 대중의 인기를 즐기지 않으셨고 대중의 지지를 기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중의 지지, 그 환호, 거기에 어떤 기대도 가지지 않았어요. 오병이어 사건은 메시아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중들이 생각하는 그런 메시아가 아닙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따로 있었죠. 그래서 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기호에 맞춰 이렇게 행동하다가 내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 주님이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태워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죠. 제자들이 혹시 남아서 예수님은 떠 기도하러 가셨더라도 제자들이 남아 있게 하면 군중들의 열광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떠나보내신 거죠. 요즘 소위 팬덤 현상이라고 그러는데, 팬덤 현상. 팬덤 현상. 이 광신적으로 열광하는 문화 현상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세상이 불안하다는 점 겁니다. 사람들은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찾죠. 메시아 신드롬이라고 얘기합니다. 항상 메시아를 찾아요, 사람들은. 당시 유대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매우 불안했어요. 세례 요한의 출연과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그 유대 상황 막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용돌이쳤어. 구원자가 필요했던 거죠. 그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를 기다렸던 거죠. 근데 그들이 찾는 메시아는 허상이었습니다. 예, 허상은 언제 찾는가요? 여러분 힘들수록 허상이 자꾸 허상을 쫓아요. 신기루죠, 신기루. 있는 거 같지만 사실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메시아 그걸 계속 찾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도 그런 게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자, 근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를 떠나 보내신 다음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46절에 보니까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자, 마가는 이 예수님의 행적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구절이지만 명장면을 목격하고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겁니다.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처럼 흥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어디론가 잠적을 하시는 겁니다. 가끔 여러분 예수님은 잠적을 잘 하세요. 안 보이시는 거예요. 중요한 시점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로 가십니다. 대중들이 환호하면 대개는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막 박수를 쳐 주고 환호하면 여러분 뿅 갑니다. 경험해 보셨습니까, 혹시?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 열린이 막 환호를 하면서 오빠, 오빠 그러면 미칩니다. 여러분 이때 마귀가 떼로 달려듭니다. 마귀가 떼로 달려들어. 40일 금식구 마귀가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시험을 걸죠.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성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 이 말은 뭐냐면 네가 한번 멋지게 너의 모습을 보여라는 거예요. 멋진 한번 쇼를 한번 보여라는 거.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라. 당신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대단한 사람인가를 증명해라. 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문화 안에 이게 있죠. 달콤한 유혹입니다. 달콤한 유혹. 사람들이 유명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씁니까? 인기도, 지지도 다 목을 매는 거예요. 다 목을 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가 뭡니까?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죠. 그냥 스타가 되는 건 아닙니다. 경쟁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영웅이 됩니다. 자, 그러면 그런 사 사회 경쟁 사회 안 들어가면 어떻게 되죠? 사실은 자를 잃어버립니다. 대중의 요구를 따라 막 춤을 춰야 돼요. 계속 그들이 원하는 춤을 춰야 돼요. 그러면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자를 잃어버리겠죠. 스타는 자신에게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나 그 지지와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아요. 어느 순간 다른 우상을 찾기 때문에. 일종의 스타는 결국 어느 순간 소모품이 되고 맙니다. 소비 소비주의자들에 의해서 소모되는 것이죠. 주님은 대중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셨습니다. 대신에 아버지 하나님과 은밀하게 독대 시간을 가지십니다. 노출보다 감춰야 할 때를 주님이 잘 알고 계셨던 겁니다. 주님은 기적을 베풀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당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신 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은 환호한 무리와 거리를 두시고 하나님에게로 다가가셨어요. 주님은 대 대중의 지지를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대중이 지혜롭기보다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주님이 이미 앞을 내다보고 계시죠. 지금은 환호하는 군중이 언젠가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군중으로 바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리스도는 기도의 시간에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에 마음을 고정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환란 날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에게서 기도를 배웠어야 합니다. 평소의 기도 생활이 참 중요합니다. 평소, 평소. 제자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아직 알지 못해요. 여러분 기도 주님의 기도는 초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곤두박질을 치는 이유는 그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상황이 힘을 올리면 중심을 잃어버려요. 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어디론가 쏠리게 되고 치우치게 되고 바닥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기도의 시간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독대하고 있는 사람과 하나님과 독대가 없는 사람은 결국은 큰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이 거대한 사건의 휘용들리 휘용들리 속에서 고한 시간 기도의 시간을 찾고 있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최고의 명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자, 갑자기 제자들이 주님과 떨어져 있게 됐죠. 이때 제자들의 실력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들이 타고 가는 배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48절 보니까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엔진이 있는 배가 아닙니다. 노를 젓는 배예요. 근데 풍랑이 일어나 역풍이 부니까 바람이 거스르므로 그죠? 언제 밤 사경점에 바다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자 여기에서 바람이 거스르므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바람이 거세게 부니까 목적지로 가기보다는 더 밀 더 밀려가는 겁니다. 종종 갈릴리 바다에는 돌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북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입니다.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어가고 있는데 시간은 밤 사경. 장소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10여리쯤 떨어져 있다 그랬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상당히 6시간 이상 소요된 자리로 보여줘요. 갑자기 최악의 상황에 휩싸였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으로 일어났던 흥분이 한순간에 다 사라져 버렸어.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 달콤한 사건이었죠. 그 순간만 그런 순간만 계속된다면 참 예수님이 제자 할 만하죠. 어깨가 으쓱하고 자신감이 넘쳐흘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전혀 다른 상황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아요. 오병이어의 기적의 순간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떡을 나눠주기만 하면 됐어요. 그러나 그런 신나는 일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은 언제나 돌풍과 같은 것들이 밀어 닥친다는 거. 돌풍이 뭡니까? 예고 없는 거, 예고. 그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이 됩니다. 제자들에게 갑자기 바람이 불어닥쳐서 그들은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들이 밀어닥친. 원인 모를 상황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거. 갑작스러운 사건에 힘 알리다 보면 표류하는 배와 같이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 힘들어 할 때가 언제입니까? 앞으로 가야 되는데 앞으로 못 가는 거예요. 뒤로 밀리는 거예요, 인생이. 갑작스런 돌풍이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작년 이맘때쯤부터 시작된 이 불어 닥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마치 인생의 불어 닥친 돌풍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의 모든 일상을 멈추게 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에 전혀 없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재작년 말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몇 몇 사람이 감염되는 얘기만 해도 남의 얘기처럼 들었습니. 그게 우리까지 오늘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고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러분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고통의 한가운데로 내몰렸습니다. 삶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려난 거예요. 힘든 것은 목표한 것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거예요. 세웠던 많은 계획들이 물거품이 돼 버렸어. 우리가 원하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금 표로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의 삶의 모든 게 다 뒤엉켜 버리고 말았던 거죠. 성도 여러분,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필요해요. 문제는 믿음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 평소에 닦아 놓았던 믿음이 중요해요. 주님은 제자들이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들이 반응했습니까? 49절에 보니까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랬어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겁니다. 왜? 유령이라는 거, 유령이. 자, 여러분 여기에서 눈길을 떠는 건 떠는 부분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두오시로 다가오셨는데 그들은 두려워 난리가 났어. 좀 전까지 함께 했던 예수님입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예수님.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그 주님을 유령이라고 합니다.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주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착시 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착시 현상.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눈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당황을 하고 그 당황이 길어지면서 절망에 빠지면 결국은 상황을 파악을 못 해요. 그 이제 문제의 바다에 표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제자들은 오랫동안 바람을 거슬러 노를 저어오던 가운데 이미 지쳐 있어요. 제자들은 위기에 빠져 있고 그들은 한둘이 아니라 12명이 집단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자, 왜 제자들이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들은 예수가 물 위로 걸어오실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게 뭐예요, 여러분? 불신앙입니다. 지금 이 시간 바다 위로 걸어오실 분이 예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반응했어야 되는 거. 그러나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자들이 눈이 닫혔어요. 여러분, 참 제자들 보면 답답해요. 답답해. 그렇게 예수님의 그 기적의 현장에서 말씀을 들으며 주 같은 말씀을 들으며 그렇게 지 오랜 세월 지어 나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눈이 열리지 않고 아직도 그들은 불신앙의 모습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답답한가? 혹시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우리는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오늘 51절에 보니까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 마음에 심히 놀라니 그랬어요. 이게 오병이어의 연장 선상인데요. 그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말자 바람이 그쳐 버렸어요. 여러분 상상성이 있는 표현이에요. 그리스도가 우리 삶에 오시면 모든 풍랑은 잠재워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분과 물 위로 걸어오신 분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언제 자랍니다? 바로 이 주님을 만날 때. 이 주님의 창조 하나님을 주님으로 바라보는 이 눈이 열릴 때 바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공간적으로 떠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어. 그 주님은 산으로 가셨잖아요. 기도하고 계셨잖아요. 근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풍랑으로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아시고 가장 정확하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 찾아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그분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물 위로 걸어오시고 오병이어 사건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기도하시다가 이미 풍랑의 바다 한가운데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제자들을 아시고 계시는 분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이 오면 아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구나. 나의 사정을 모르시는구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님은 알지 못하고 나를 내버려도 죽었구나. 멀리 계시는 건구나.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셔서 팔짱 끼고 계시는구나.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거. 여러분 주님이 오늘 3시와 우리 시간으로 하면 3시와 6시 사이에 산에서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바다 위로 걸어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항해를 시작한 지 6시간, 7시간, 8시간 정도 흘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시간은 완전히 지쳐 있는 시간입니다. 지쳐 있는. 이제 인간으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는 완전히 지쳐 있는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신 거예요. 그 주님은 제자들의 모든 상황을 꿰뚫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세요. 그냥 대충 아시는 게 아니고요. 충분히 아시고요. 완벽히 아세요. 어떤 분은 기도할 때 그래요. 하나님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안 알려주셔도 돼요. 여러분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정보 용량은요. 구글하고 게임이 안 돼요.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뭐 그런 책도 있잖아요. 요즘 구글 요즘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가 어디 가고요. 핸드폰 들고 다니면요. 이게 정보가 다 노출되고 있는 겁니다. 어디에 가고 결제하고 뭐 하고 하면 이미 우리가 들렀던 곳도 다 구글이 다 축적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뭘 했고 다 정보를 갖고 있어요. 참 스마트해요, 스마트해. 여러분 그리스도가 아시는 것은 그 정도의 수준을 능가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았어요. 여러분 구글은 지금도 계속 정보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근데 주님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세요. 이미 충분히 완전하게 알고 계세요. 뭐 더 너에 대해서 좀 오늘 정보를 좀 캐봐야 되겠다. 그런 분 아니세요. 이미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전지. 여러분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속일 수 없다는 점이 참 불편해요, 어떤 때는. 그러나 전지하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더 큽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시선 앞에 있다는 것이 복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한 반쯤 물결에 거슬러 괴로의 노를 젓는 제자들은 주님의 시야 안에 있었습니다. 시야 안에 있다는 말은 돌봄 가운데 있다는 겁니다. 주님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풍랑의 한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미래도 우리가 다 알지 못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나지만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돌보시기 때문이에요. 오늘 50절 보십시오.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여러분 그리스도가 오시며 오신 순간 모든 삶의 다 혼란이 끝이 납니다. 고요함이 찾아오고 혼란이 정리가 되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죠. 우리의 인생의 항로에 주님이 찾아오실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53장, 54절 보십시오.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그들의 노력으로는 아무리 배 노를 저어도 목적지로부터 멀어져 갔어요. 도달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다가갈 수 없었는데 주님이 배에 타시자 풍랑은 멈추고 그들의 배는 목적지에 되어 배에서 내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함께 동행하시면 이 풍랑이 잠잠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을 사는 동안에 위기는 수없이 찾아오죠. 사건에 휩쓸리면 정신을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분별력도 사라져 버립니다. 착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때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에게 주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건과 일들 속에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풍랑이 일 때 우리 곁에 다가와 계시는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매 순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로 오셨는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는 그를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지는 않는가. 날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건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의 눈을 열어 믿음의 눈을 열어 주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셔야 돼요. 주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곁에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 일상에 크고 작은 사건 속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르신 때보다도 위기에 풍랑을 막고 있습니다. 예측 불의의 사건이 매일매일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만날 수 있는 때가 지금인 줄로 믿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눈을 열어 환영하는 몰라 어쩔 줄 몰라 또는 유령이라고 여기며 당황하는 불신앙의 제자들의 모습과 다르게 우리는 믿음으로 눈을 열어 우리에게 다가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을 주님과 함께 이 풍랑 인연하여 더 주께로부터 가까이 나아가고 오히려 풍랑을 잠잠케 하심으로 목적지에 더 빨리 당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은혜가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다시보는 BEST 설교 | 위기의 순간에 보이는 것|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6:45-52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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