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어 오늘 우리 시대를 이렇게 지식 사회라고 얘기하죠. 지식 사회. 또 지성 사회. 어 지식의 팽창의 시대다. 또 정보화의 시대다. 또 어떤 시대보다도 고학력 시대가 되고 또 전문화 시대가 됐죠. 그래서 어떤 영역이든지 전문화가 아니면 이제 살아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전문화도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세분화되어서 이제 전공을 해도 굉장히 한 협소적인 부분의 전공을 해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를 이제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제 인터넷이 열려 있기 때문에 어떤 뭐 안전 책상에서 클릭만 하면은 미국의 유수 대학도 들어갈 수 있는 이제 그런 일들이 되어서 정보가 완전히 오픈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식이든 누구든지 취할 수 있죠. 요즘 어사분들 얘기 들어보니까 환자들이 말이죠. 그냥 오는 게 아니고 이 인터넷이나 이런 정보들 지식을 통해서 완전히 자기 병에 대해서 꿰뚫고 오신대요. 그래 가지고 의사를 가르치려고 해 가지고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뭐 이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 고도의 지식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보가 흘러넘치고 또 우리가 전부 다 뭐 이제 그런 고도의 그런 첨단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과학의 발전이나 또 여러 가지 이 문명의 진보를 통해서 우리 생활이 굉장히 편리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어 그러나 이런 지식과 또 이런 지혜, 지성들이 이렇게 높아져 가지만 과연 우리의 삶의 에 문제가 해결되었느냐. 또 우리 이런 지식과 이런 이런 이론들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많이 푸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 문제가 복잡해지고 또 새로운 문제들이 다 일어나고 또 이전보다 불안하고 또 정신적 질병들은 훨씬 더 이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은 뭐냐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머리가 얼마나 한계를 갖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생존의 수단으로써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과 지성은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고린도전서는 어 이 고린도 지역을 배경으로 하죠.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향해서 이 편지를 썼는데 이 고린도 진영은 그 당시에 문 문명이 발달했던 도시 국가입니다. 메트로폴리탄입니다. 특별히 헬레니즘이라고 하는 이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이 헬레니즘의 그런 꽃을 피우고 있는 문화적 그런 도시였습니다. 그런 도시 안에 있는 교회도 그 시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진행하는 것이죠. 그곳에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 이 십자가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고 십자가 외에는 다른 이 세상의 길이 없다 이제 이런 이제 십자가의 도를 선포할 때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반응이요. 유대인들은 오늘 본문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이 십자가의 바울의 복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어. 오히려 십자가를 거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는 것으로 받아. 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 기적을 믿고자 했던 그들에게 힘없이 죽어버린 예수는 복음이 될 수가 없어요. 그걸 뭘 그걸 믿느냐는 거죠. 30세, 30대에 젊은 유대 한 청년의 죽음에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 복음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또 헬라인으로 대표되는 이방인들도 그런 반응이에요. 심오한 철학과 지식이 지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 지식을 중요시하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는 굉장히 천박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예수가 십자가에 로마의 형태에 붙잡혀 죽었던 그 예수에게서 무슨 복음이 있느냐. 그 무식한 소리 그만해라. 학문적인 가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천박하게 취급해 버렸던 헬라인들에게 바울이 전했던 십자가는 전혀 어필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로마라고 하는 강력한 힘의 숭배를 하고 있는 그 시대 속에서 정말 십자가에 매달려서 무기력하게 비틀진 채로 매달려 있는 형태를 알아보는 예수에게서 복음을 찾아낸다 기쁜 소식을 찾아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18절에 표현하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이까 십자가를 대할 때에 멸망하는 자들은 어떻게 대하느냐면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음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에게서도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십자가에 무슨 소망이 있고 십자가 무슨 희망이 있고 십자가 무슨 구원이냐. 십자가에 뭐 선한 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형틀에 죽어버린 한 유대의 청년에 그 이야기에서 인류의 소망을 찾아내고 오늘 이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 속에 그 무식한 소리다. 이렇게 들려지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흥미롭지 않은 주제였습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헬라의 문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추구한 사람들이요. 이 지혜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철학을 의미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고린도 안에는 다양한 학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웅변술을 웅변술과 토론의 문화가 굉장히 발달했습니다. 길거리에서도 이런 변사들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논하고 또 논쟁하고 그런 것들을 즐거워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쌓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어느 스승에게 무엇을 배웠는가에 따라 그들이 그들의 자랑이 되었어요. 관심거리였습니다. 자 이런 문화 때문에 고린도 교회 안에도 아볼로파, 바울파 이런 분파가 만들어져서 복잡하게 되었던 것도 바로 헬라의 문명의 영향을 문하의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치란 뭐냐면 얼마나 아느냐에 달려 있어요. 얼마나 많이 아느냐. 많이 아는 것을 가치로 여겼던 사람. 고린도 교인들이 역시 그 영향으로 새로운 지식을 찾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더 고상하고 수준 높은 지식을 찾고자 했던 것이죠.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주지주의적 그런 현상일 수도 있는데요. 다른 사람보다 수준 높은 내용을 많이 듣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내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마다 영적인 성장들이 일어나고 정말 내 인생이 더 깊어지고 풍성해지고 복음 안에서 내 인생이 정말 본질적으로 변화되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냥 좀 더 많이 아는 것을 관심을 가지는. 좀 더 더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그런 몸부림을 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최근에 우리 한국 교회는 굉장히 학원과 같은 분위기가 많이 있죠. 교회 안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경 공부를 하고 여러 형태의 그런 클래스들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배우는 것에 굉장히 열심을 가지. 배우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교육을 받고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신앙의 훈련을 받는 것은 굉장히 유익한 것이죠.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는 더 아는 것 알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는 더 알고 또 알고 더 다른 어떤 훈련들을 받아감으로 인해서 내가 어떤 자격증을 따고 어떤 수료증을 따고 어떤 과정을 마쳤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자랑이 되고 그것이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8:34]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미국의 유수의 대학들 아이비리그 대학이라고 하는 이 하버드나 때로는 프린스턴이나 이런 대학들도 처음에는 여러분 그렇게 오늘날 종합적인 대학이 아니고 신학교였습니다 신학교. 신학교로 출발했어요. 순수한 신학교였는데 학문화되어 가면서 그 대학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철저히 인본주의의 본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세속적 학교로 전락하고 만 것이죠. 하나님이 빠진 지성 은혜가 없는 이론적 성경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선악과를 따먹는 그 사건으로부터 인간은 이 지성이 그 지혜가 사람을 분별하고 모든 것을 판 분별하는 그 지성이 하나님을 떠난 지성이 되고 말 때에 결국은 그것을 자기를 더욱 더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만들고 말았어요. 오늘 우리 시대를 영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만 영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도 영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영성에 관심을 갖느냐 모든 종교가 또 이 서양에서도 동양의 여러 가지 선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달라이라마나 탕리난이나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서구사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뭐냐면 물질적 풍요로 인해서 채울 수 없는 내면적 공허함을 뭔 가로 채우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 오늘 같이 지성 사회 속에 기독교가 어떤 면에서 지성인들에게는 강한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둔탁하고 어떻게 보면은 정말 무지의 보이는 미련한 것 같은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하는 이 소리에 지성인들은 반감을 갖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시대도 마찬가지예요. 고린도 이전에 바울의 사역지가 어디였느냐면 아덴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아테네죠. 이 아덴이라고 하는 도시에 가서 철학적인 자기의 실력을 동원해서 정말 그 철학이 숭배되는, 지식이 숭배되는 그 도시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바울이 굉장히 철학적인 설교를 했었어요. 근데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철학의 도시에서 철학과 함께 감히 된 복음을 선포했을 때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어요. 그것을 깨달았던 이 바울은 고린도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철학과 지식과 인간의 어떤 가지고 있는 그런 이론들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더 목마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예요. 바울이 왜 이렇게 십자가의 복음을 그득히 붙들고 있는가.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소개되는데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의 농축된 진리의 진술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니면 기독교는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성립이 안 되는. 기독교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십자가 놓여 있다는. 우리는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안에서 수 없는 교훈과 원리들을 발견하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연구하면 성경 안에 우리의 생활에 상당한 부분에 유익된 게 많아요. 장사하고 싶으신 잘하고 돈 벌고 싶으신 분 성경 자세히 보세요 돈 버는 법도 있어요. 리더십에 관련된 기가 막힌 책이 성경에 있습니다. 이 사회의 모든 제도의 계획 원리들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뭐 희년의 제도라든가 이런 거 오늘날 부동산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기가 막힌 원리들이 희년 제도 같은 것들이에요. 뭐 가정의 문제 우리의 인간의 내면의 문제, 뭐 심리적 문제,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부분이 없어요 이 안에. 인간 관계의 문제를 해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어디 있어요 성경 들어다보면 다 있어요. 그러나 오늘 바울이 말하는 것은 뭐냐면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발견할 수도 있지만 깨닫고 유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다 한들, 한들 십자가의 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아무것도.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거예요 부수적인 것들. 핵심은 뭐냐 십자가의 도는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다른 게 아무것도 없고 십자가의 도만 내가 전하고 싶다. 이 말은 뭡니까? 교회가 무슨 새로운 무슨 신비로운 것을 개발해 가지고 뭐 이게 이게 새로운 내가 최근에 득도한 겁니다 그러고 얘기할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뭔가 성도들에게 나누어줘야 될 것이 있는 게 아니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는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것을 전하고 싶지 않다.
[13:40]다른 것을 전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든 행위는 십자가로부터 출발이 돼야 돼요.
[14:14]이 교회를 여러분 오셨을 때도 십자가가 없는 헌신, 활동은 그건 신앙적 행위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교회 안에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신앙의 행위가 그 활동이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그것이 신앙적 행위가 되는 거예요. 그냥 열심히 한다면 십자가와 상관없이 그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사회 봉사예요. 봉사해요 그냥 사회봉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뭐 오늘 러브 산하고 뭐를 막 세상을 감동시키는 일을 하는 일을 한 달 세 세상 사람들이 박수를 막 쳐 줘도 거기에 십자가가 없다면 그건 사회의 단체의 하나의 불과한 거 교회가. 그래서 우리가 복지 분야나 이런 것들도 오늘 교회가 굉장히 신경을 쓰고 가야 되는 일이지만 우리가 세상에 주어야 될 것은 돈도 아니고 어떤 다른 것도 아니고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에 줘야 된다는 거예요.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교회가 뭘 줄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을 통하여 세상을 감동시킬 수가 있겠어요? 세상을 건져내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기독교 2000년의 역사 속에 순교자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가 여기에 예배를 드리게 만든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 한국 교회도 수 없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순교의 피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어요. 자 그러면 이 순교의 피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어떻게 자기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가. 그 순교를 만들어 냈던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성경의 지식일까요 여러분? 어떤 다른 것이 아니에요. 세상의 어떤 지성의 힘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할까요 아니면 돈이 권력이 명예가 그 그렇게 자기의 생명을 바치게 만들 수 있었겠어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것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더 알아야 내가 무슨 인생이 변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세요? 그 주지주의예요 주지주의. 여러분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알고 있는 철학과 사상과 내 소신과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내 인생을 변화시킬 것 같습니까? 노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철학과 사상에 내 인생을 걸 수 있습니까? 못 겁니다. 지식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비겁해져요. 지성인의 비겁함이 있어요. 여러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거 아니에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지식의 세계를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믿고 믿는 그것을 위하여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 멋진 인생이에요. 근데 대부분의 사람은 1단계예요. 알고만 있는 거예요. 근데 그 아는 것을 내가 믿지는 않아요. 그건 뭐예요 그건 나리지요 나리지 인포메이션으로 내 머리에 구조 속에서만 여기만 있는 거예요. 그게 내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 어떤 사람은 그런 얘기하잖아요.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이게 한 평생 걸리는 분이 있다고요. 머리에 있는데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 지식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머리에 들어있는 인포메이션이에요. nothing happen 아무 일도 일어하잖아. 십 년, 20년 다녀도 똑같아요. 머리에 지식으로만 남아 있고 그 정보가 내 삶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 거예요. 그냥 알고 있는 거예요. 예수 응 알아. 창세기 알아 로마서 알아. nothing happen. 여기 내려와야 되는 거. 이런 교수는 그러더라. 여기까지만 내려 가슴으로 내려오면 끝나는 게 아니고 발로 옮겨줘야 된대. 삶으로 옮겨져야 된대. 삶으로 옮겨지지 않는 지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알고 있는 것으로 자 지적 교만과 자랑만 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믿고 믿는 그 사실에 내 생명을 걸 수 있느냐. 거기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믿고 정말 그 믿는 그 사실이 너무나 분명해서 나는 이것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바칠 수 있겠다라고 하는 확신이 오면 그 인생은 다른 클래스예요 여러분. 전혀 다른 인생이에요 여러분. 바울이 그랬어요 여러분. 바울은 지식쟁이가 아니었어요. 그런 말쟁이가 아닙니다. 자기도 믿지 않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막 설명하면서 예 그런 예 그런 걸로 떠드는 걸로 먹고 사는 밥 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냥 돌아다니면서 강연이나 하고 책이나 팔아먹는 지식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거기에 내가 믿고 있는 것에 생명을 바칠 만한 거고 거기에 내 생명을 바쳤고 다른 사람도 이 일에 생명을 바쳐도 조금도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내 생명을 들고 싶다. 그래서 여러분 그것이 사도행전 20장 24절에 표현되고 있는 거예요. 나의 달려갈 길과. 멋있잖아요 여러분. 내가 그냥 늘어놓을 길과 이게 아니잖아요. 내가 달려갈 길. 그냥 후회함 없이 원웨이로 한 방향을 향해서 달려갈 길. 그 달려갈 길이 뭐예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는 거. 그것도 뭐예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그 일이라는 거. 그 일을 다 마치려 하면은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랬어요. 멋있잖아요 여러분. 멋있죠? 너무 멋있어요 너무 멋있어요. 인생에 빛을 본 겁니다. 길을 안 겁니다. 내가 어디로 달려 가야 될고 내 생명을 어디에 바쳐야 될 것인가. 여러분 바울 목이 몇 개 있는 사람 아니었어요. 우리와 똑같이 생명이 하나예요. 귀중한 이 생명을 아무 데서나 바치면 안 되잖아요. 바울이 깨달았던 이 진리는 내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하는. 그래서 나는 그 그을 위해서 그 가치라면 이 생명을 열 번 백 번 만 번도 바칠 수 있겠다. 여러분 나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발견하고 내 생명을 거기에 바치고자 하는 결단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게 여러분 다른 인생인 것이죠. 여러분들 모두가 그런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은 짧아요. 이래도 저래도 예 어느 날 인생의 끝은 황급히 우리에게 모두에게 다가오게 돼 있어요.
[21:40]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떨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살까. 그 죽음이 두려운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미 예수를 위해 생명을 걸고 산 사람은 죽음을 이미 끝났어요. 죽음의 문제는 이미 지나갔어요.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언제 어떻게 죽으나 이미 내 생명을 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에 모든 것을 내어 바친 사람은 생명의 문제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 얼마나 멋있어요 여러분. 얼마나 멋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진지하게 십자가 앞에 서 본 적이 있습니까?
[22:31]진지하게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내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직도 여전히 거립니까? 이 십자가가 아직도 나에게 부끄러워집니까? 이 십자가가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아무리 많은 상사가 있고 아무리 많은 부하 직원이 있다 할지라도 그 십자가가 나에게 부끄러운 것으로 남아 있고 자랑스럽게 담대하게 외치는 복음이 아니라면 내 신앙은 문제가 있는 거예요.
[23:21]어디에서든지 당당하게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는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이 십자가 안에 우리 인생의 그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경험하고 이것을 온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