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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BEST 설교 | 살인하지 말라 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3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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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자 오늘은 십계명 18번째 6계명 세 번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자 짧지만 굉장히 분명하고 또 확실한 명령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자 6계명이 오늘 우리 시대에 참 중요한 메시지 명령인 게 사실입니다. 요즘 생명 경시 풍조를 우리가 늘 대하고 있죠. 사람을 너무 이렇게 수월이 대하고 생명을 아무렇게나 그냥 대하는 죽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엽기적인 사건도 너무 많고 이런 살인 사건이 참 너무 빈번하고 또 이런 세계적으로도 전쟁 테러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 여러 해 전에 미국 심리학회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약 8천 번의 살인 사건 살인 장면 그리고 만 번 이상의 폭력 장면을 이런 미디어 영상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는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그 살인을 목격하는 거죠. 영상을 통하여 요즘 아이들의 청소년들의 이 인터넷 온라인 게임들을 보면은 아주 부모님들이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이죠. 막 피가 선열이 막 낭자한 아주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게임들이 있기 때문에 워 게임, 전쟁 게임들이죠. 참 무시무시해요. 예. 그런 게임을 한참 신나게 하고 있는데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예. 위험하죠, 위험해요. 막 욕을 하고 그래요. 굉장히 폭력적인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한 개념이 많이 왜곡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또 요즘 낙태 문제, 유아 사례, 안락사 살인 방조, 자살 이런 세계적인 이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6계명을 주신 의도는 분명하죠. 생명이 인간의 생명이 너무도 귀중하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 피조물 중에 어떤 것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사도 우리보다 못한 이유는 천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게 아니에요. 인간만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로서 인간을 지으신 겁니다. 인간의 생명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는 거예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위급한 상태에 노 노인 한 사람을 살려내려고 애를 쓰는 그 모습을 보면 참 생명이 귀하구나, 귀하구나. 불치의 병에 걸린 자녀를 살려내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다 쏟는 것을 보면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잖아요. 돈이 다 들어도 내 목숨과 바꿀 만큼 그 생명을 지키려고 하는 거죠. 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 않으려고 노력합니까? 삶이 너무도 귀중하기 때문에. 생명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입니까? 삶은 귀회고 선물이고 하나님의 축복이죠. 자 이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죽이고 살리고 하는 권세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자 6계명을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재 해석하고 적용을 해야 합니다. 근데 까다로운 주제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전쟁의 문제도 여러 가지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완전히 반대하는 톨스토이 같은 사람은 전쟁 반대를 어떤 전쟁이든지 반대한다. 뭐 이런 어 논리도 있고 또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또 전쟁을 해야 되고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안락사의 문제, 사형 제도의 문제, 자살, 낙태에 대한 주제들이 다 민감한 주제들입니다. 아마 안락사와 같은 문제도 앞으로 계속 이슈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죽음 갑작스런 죽음보다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술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서서히 죽음을 맞습니다. 어느 지정까지 생명을 허용해야 될 것인가. 어려운 문제죠. 고통이 계속 길어지고 또 의료비 부담이 많아지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뭐 암말기함으로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면 차라리 돌아가시는 게 낫지 않겠나. 이런 안락사를 지지하는 문화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외로움 속에서 가족의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 속에서 요양원에서 노인들이 빨리 죽기를 원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매우 대두된 또 의학적으로도 그렇고 윤리적으로도 우리가 다루고 있는 매우 민감한 주제들입니다. 자 오늘 설교는 좀 까다롭고 민감하고 좀 다루기 어려운 그런 주제를 뭐 이 6계명을 다루면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자 오늘 좀 다루고 싶은 주제 중에 하나는 자살의 문제입니다. 자살의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 매우 심각한 증상으로 이미 떠올라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8회 9회째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도 1입니다. 이제 자살은 먼 얘기가 아니죠. 가족, 친척, 친구들 가운데 우리 이웃 가운데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이나 유명한 분들 가운데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던 사람들마저도 자살을 심심찮게 하면서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언급하지 않아도 대충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엄청난 지난 10년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원치 않고 공론화하지 않는 안으르고 그냥 덮고 지나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많고 교회도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상당히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자살은 그 자체로는 스스로를 죽이는 살인 행위죠. 요즘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또 많아지면서 이것을 병사로 다루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실제로 여러 자살자들이 나옵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에 동참했던 아히도벨이 반란에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유다의 시므리라는 악한 왕도 불을 질러서 자실을 죽이죠. 신약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롯 유다가 스스로 예수님을 판 것에 대한 가책을 느끼고 목을 매어 죽습니다. 자살을 하신 자살자들을 보면 목숨을 끊는 데는 그만한 사정들이 모두가 있는 게 사실일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어떻게 다루는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신자는 자살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영혼이 지옥 가는가? 교리적으로 본다면 자살한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원의 문제는 믿음으로 결정되는 일이기 때문에 외적인 행위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를 믿고 천국을 가기 때문에 자살해도 된다는 결론을 쉽게 내렸어도 안 되는 거죠. 자살은 남을 죽이는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이 주신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입니다. 무엇보다 자살은 당사자의 문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도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기게 됩니다. 어쩌면 죽은 사람보다도 더 큰 긴 고통을 가까운 사람들이 겪어야 되죠. 자 여러분 우리가 진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면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죠. 내 몸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근데 우리의 몸이 아닙니다. 생명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생명이 나온 게 아니에요. 우리는 어떤 생명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실 때는 그 생명을 주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신자라면 사는 이유, 삶의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얻은 가장 큰 축복은 뭐냐면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존재론적인 질문에 답을 얻은 것. 이게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얻은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여러분 이 질문, 존재는 왜 사느냐라고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이 답을 얻지 못하면 어느 한 순간에 휙 돌아버리는 거예요. 방황하는 것입니다. 절망하고 허무에 깊이 사로잡히면 사실 못 삽니다. 내가 왜 사는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인생이 갑자기 무너져요. 여러분 성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살던 사람이 성공이 좌절되고 나면 죽으려고 하죠.

[10:47]돈은 돈이 목적이 되었던 사람들이 그 돈의 문제가 생기고 돈을 잃어버리면 죽으려고 그럽니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 그 명예가 사라지면 죽으려고 하는 거죠. 자존심 하나를 붙들고 살았는데 누가 짓밟으면 죽으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존재의 목적이 성공도, 돈도, 자존심도, 명예도 아닙니다.

[11:12]그리스도인은 존재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생명을 주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분에 의해서 우리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고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 문제 하나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에 의해서 내 인생이 결정이 되는 게 아니죠.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나의 존재, 나의 자존감의 근거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누가 욕하고 비난하면서 자존심이 살짝 상할 수는 있지만 복음을 붙들고 있으면 그를 통과할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보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그게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산다면 사업이 좀 기울고 돈을 잃어버려도 그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사랑하던 사람이 등을 돌린다고 죽음을 선택하는

[12:35]마찬가지죠. 인생은 너무도 짧게 보는 것입니다.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리는 게 문제예요. 부분을 전체로 보면 답이 없습니다. 인생은 1막으로 끝나는 단막극이 아닙니다. 수많은 마귀가 오르고 내리는 희극과 비극이 오고 가는 가운데 인생이 날실과 올실을 만들어 가면서 하나의 인생으로 나아가는 거죠. 다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야. 이 제가 헌금 기도할 때 주로 쓰는 용어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가 결론 내지 말게 하옵시고, 뭐 이런 것들 중요한 것이죠. 우리가 끝이라고 하는 지점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 누군가 쓴 책의 제목이에요. 많이 안 읽으신 것 같아요. 자기가 인생의 결론을 너무 빨리 내려버리는 거예요. 요기 베라. 얼마 전에 죽었던 요기 베라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죠.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죽을 것 같은 위기를 수없이 당했습니다. 그는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적도 있어요. 그러나 죽음과 삶의 문제 사이에서 사는 이유를 그가 찾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왜 죽으려고 하죠? 살 이유를 찾아낼 수 없을 때.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우리가 살 이유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의미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인생을 어떻게 보면 참으로 허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바깥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가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았을 때, 이 인생을 바라보면 허무에 빠져요. 돈을 많이 번들, 성공을 많이 한들, 유명해진들, 인기가 높한들 그것이 내 삶의 존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요소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그렇게 성공하고 그렇게 돈을 벌고도 떨어집니까? 왜 죽습니까? 그 돈을 쥐고 보니 내가 찾았던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성공의 자리에 가 보았더니 내가 찾았던 게 없었기 때문에 떨어지는 거예요. 왜 사느냐고 묻고 또 물으면 답이 없어요. 그래서 젊을 때는 묻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묻지도 않아요. 물어보았자 답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저런 재미를 느끼며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충격적인 사건을 당하거나 어려움이 쌓이고 쌓이면 더 이상 견뎌낼 힘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15:30]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죽는 날이 옵니다. 한 번 주어진 생명을 멋지게 끝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무시한 얘기가 아니에요.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은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16:20]라고 했던 이 선교사의 고백. 여러분 우리의 삶은 단순히 사는 것 자체 있지 않습니다. 순교가 무엇입니까? 목숨이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일이 있으면 바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숨을 의미 없이 바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 삶의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누구냐 힘들면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죽고 싶다라고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삶의 깊은 회의가 찾아오고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해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사랑한다는 삶의 짐이 너무 무거워 힘들어 죽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비참하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살아 계시고 그분이 내 삶을 이끄신다는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에게 해결책이 아무것도 없을 그때가 어쩌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저로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 땅에서 붙잡고 있던 모든 내가 의지하던 줄이 다 끊어져 버렸을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예요.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곁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에 빛을 보여주시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기의 순간 죽음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에 빛을 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에요. 어쩌면 그런 위기의 순간 바닥을 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인생은 여전히 불행 가운데 살아갔을 것입니다.

[18:24]성도 여러분,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라면 하나님이 내 생명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복음을 듣고 참 진리를 알게 된다면 죽고 싶어 하던 사람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태양처럼 만나면 살아야 할 이유를 만나게 됩니다.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저는 목 목회를 하는 가장 큰 보람이 그거예요.

[18:59]정말 소망이 없던 백성들이 진리를 듣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살 소망을 가지고 내가 노래할 이유가 있고 흔들 깃발이 있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전에 삶과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 예수가 태양처럼 내 인생에 찾아오니까 내 삶이 달라져 버리고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쁨이고 축복이고 하나님의 은혜인지.

[19:31]여러분 돈이 없고 사회에 실패해서 자살하는 게 아니에요. 엄격히 말하면 삶이 힘들어 죽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만나지 못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를 다녀도 그냥 다니면 안 돼요. 참 진리와 부딪혀야 돼요.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면 사탄의 그 시험 속에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한 상태입니다. 죽음 직전이에요. 40일을 굶었어요. 육체는 완전히 죽음의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탄이 와서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주님은 돌이 떡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에요. 그리고 배는 굶주려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여러분 이게 뭘까요? 인생의 절박한 문제가 턱까지 밀어 밀어도 하나님은 진리로, 주님은 진리로 사람은 산다는 거예요. 그 진리가 생명의 떡이라는 거죠. 그 진리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거예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살 힘을 주신단 말이에요. 그 말씀이 로고스, 생명이 되시고 그 진리가 우리를 일어나게 하고 내 영이 살게 만들고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보게 하시고 살아가야 할 존재론적 이유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게 하시는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이죠. 여러분 성경은 우리 인생의 모든 질문에 충분히 답을 주고도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가족 혹은 친구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 복음 증거 이게 너무나도 중요해요. 무관심은 일종의 살인 방조제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자살자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주변에 알린다고 그래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어떤 징후를 나타낸단 말이죠. 자꾸 말을 해요.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사인을 해요. 자신에게 뭐 귀중한 물건이 있으면 또 다른 사람에 주기를 하거나 주변에 신변을 정리하고 하는 모습들이 자기 입에서도 죽겠다는 말들을 계속 한단 말이에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거죠. 사랑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또 우리의 옆에 그런 위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말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이 말이 뭘까요? 우리의 인생의 결론을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실 거라는 거죠.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론을 내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가 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결론을 내실 것입니다. 삶이 주어져 있는 것, 내가 살아있다는 것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 너무도 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알려주신다.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죽음의 위기에서 반전의 역사를 써 가는 은혜를 누리도록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두 번째는 낙태의 문제가 있어요. 이 상당히 예민한 주제입니다.

[23:36]오래 전 일이에요. 어느 직분자인데 자녀가 해외 유학을 갔다가 아들인데 한 자매를 만나 교제를 하다가 덜컥 임신이 되고 말았어. 이 청년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부모에게로 돌아와서 둘의 임신 사실을 알리고 결혼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그 결혼을 반대했어. 우리 집안에 이 이 가문에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는 거. 결혼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 배 안에 있는 아이를 지우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아들의 마음이 강경하게 돌변하면서 부모에게 부모와 연을 끊고 자기들이 떠나서 함께 살겠다고 저항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신분이나 명예를 생각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한 일들을 부끄럽게 여겼어. 교회 직분자로서.

[24:38]자 여러분 여기서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긴 했지만 또 직분자이지만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은 것에 대해서 저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귀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오늘 우리 현주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행히 좋은 결론을 내리게 되어 아찔한 상황을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안에서도 낙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이 사실입니다. 태아를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합니다. 태아를 사람으로 볼 때 어느 시점부터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25:31]여러분 수정된 인간의 난자는 세포가 단 네 개만 되어도 아주 초기에서부터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는 생명체가 된다는 거. 임신 18일이면 심장이 박동됩니다. 6주가 되면 주요 기간이 형성되어 완전한 생명체가 됩니다. 요즘은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태아의 발달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심장에 그 거세게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태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 태아가 아니라 그냥 배 안에 자라고 있는 아이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낙태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여기에는 성적 방종의 문제가 끼어있고 생명 경시 풍조가 맞물려져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낙태에서부터 남녀 구별에 따른 선택적 낙태는 무수히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낙태 수술의 과정을 많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처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잔혹하고 폭력적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불법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자명한 6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에 의한 대량 학살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낙태를 통하여 지금도 생명들이 대량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게 합니다.

[27:40]물론 여기에는 난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모에게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이 될 때 임신 상태를 중단시켜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윤리학적 문제, 성폭행이나 혹은 근친상간들을 통해 임신이 되었을 때의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쩔 수 없는 난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자 이런 문제는 남의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가족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난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이 강단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내리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우리는 6계명을 대하면서 생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때로는 난처하고 힘든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선을 다하여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 그것이 6계명 앞에선 우리에게 태도인 것입니다. 참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생명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태아도 한 생명체로 보는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고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과 그리고 때로는 대가 지불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도우실 것이고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일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29:20]아멘. 그 외에도 우리는 살인에 있어 직접 살인은 아니지만 간접 살인의 문제를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돌보할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 오늘 이기적인 삶 자체가 살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기적 세상에서 무관심이 낳는 살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 성경이 관심을 갖고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이 적극적 사랑을 베풀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칫하면 그 무관심이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갖게 되고 그 무관심이 살인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거나 환경을 오염시켜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게 하는 일도 살인 행위와 같습니다. 기업의 오너가 돈만 벌려고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다가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살인이 되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임으로 그 역시 고립된 삶이 됩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 아벨을 죽인 순간부터 그는 두려움에 빠져 살죠. 살인을 한 사람들은 살인을 당할 두려움 속에 빠져 불행하게 되는 동생을 죽이면 자신의 삶도 깨어진 것입니다. 형제를 죽여 피로 물든 땅은 더 이상 살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요. 그래서 그는 도망자로 살게 됩니다. 형제를 지켜야 할 사람이 형제를 죽인 것에 대한 독특한 대가를 그는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하시는 특단의 은혜를 베풀죠. 그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 요즘 가족 간의 살인이 많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 벌어진 것이든 그것은 불행으로 가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 벌어진 일이 자식들에게까지 고통이 이어집니다. 여러분 가족이 무엇입니까? 가족이 된 순간부터 어떤 경우에도 행 불행이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쪽이 당하는 고통이면 상대도 동일하게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뿐만 그 가족만 그렇겠습니까? 오늘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상대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면 결국 나를 죽이는 행위와 같아요. 6계명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의 모두가 지켜야 할 보편적 원리요 법칙인 것입니다. 살인은 공동체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요즘 북한의 핵 문제가 아주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들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픈 얘기입니까? 핵을 사용하는 순간 모두는 불행해짐. 폭력으로 폭력이 해결되지 않아요. 나만 살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기심이 무서운 것은 나를 너무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을 제거해 버리고 결국은 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움이 왜 나쁜 것입니까? 관계를 깨면 결국 나는 혼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말은 그 속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축복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옵니다. 가까운 사람을 죽이면 복의 통로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복과 투쟁의 방식이 아니라 화해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분노가 일어날 때라도 하나님에게 그 처분을 맡겨야지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를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33:42]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이 판결하십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만이 공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당신의 그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눈 감고 계신 분이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으로라도 죄를 범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되는 거예요.

[34:16]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이미 이 6계명의 말씀들을 듣는 가운데 3주 동안 듣는 가운데 우리 안에 어떤 죄들이 생각난다면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죄를 낱낱이 고백하여 용서를 얻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6계명을 통하여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회복되는 은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살해하는 일이 하나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사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기업의 총수든, 공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든 모든 생명은 동일하게 귀중하다는 거. 여러분 우리의 태도를 분명해야 되고 우리의 마음의 태도를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신약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는 6계명은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어요. 탐심이 곧 우상 숭배요. 음욕을 품는 것이 곧 간음이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에요. 결국 사랑의 문제입니다. 이 계명은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죠. 사랑을 놓치면 그곳에서 각종 사건이 터져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우리 안에 악이 기승을 부리게 되고 죄의 본능이 우리를 덮으면 누구라도 악마의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탐심 하나, 음욕 하나, 미움의 감정 하나도 다스리라는 거예요. 작은 분노나 욕하는 행위 자체도 살인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 감정 자체라도 죄에 노출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다스리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이 고통하고 있습니다.

[36:28]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금식하고 기도하는 개인적 영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공경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는 일 역시 6계명에 대한 순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서 멀어져 가면 그때 무관심하게 되고 무관심하다 보면 본이 아니게 살인을 방조하는 간접적 살인을 범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죽음의 영이 역사하고 사랑이 식어질 때 자살이 늘어나고 사랑이 식어질 때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사랑이 있어야 숨을 쉴 수가 있어요. 고기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이 있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살벌해지고 난폭해지고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이들은 서로가 등을 돌리고 무관심으로 소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은 사랑하지 않은 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죄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계명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6계명을 마감하면서 오늘 우리는 보다 더 사랑하라는 이 말씀. 그냥 사랑이 아니라 더 뜨겁게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랑하기로 결단할 때 이 6계명을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주 작은 어린아이 앞에서서도 생명의 경외심을 느끼며 그를 대하고 함부로 사람들의 인격을 대하고 욕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분노의 감정을 품지 않고 우리의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을 더 뜨겁게 다가가 관심을 베풀고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끌어안는 그것이 바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명령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특히 오늘 자살과 낙태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깊이 들어와 있는 아니 오늘 어쩌면 우리 삶 속에도 부딪히고 있는 일상의 죄일 수 있습니다. 다소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이 시간에 우리가 다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회복의 은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이런 위기와 어려움 속에 다 있는 지체들을 사랑과 섬김과 배려로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서게 하는 일에 힘을 쓴다면 우리 사회가 세상이 공동체가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라. 함께 그리고 더 뜨겁게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계명 앞에 모두 순종하여 우리 모두가 아름답고 축복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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