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요 집회를 끝나고 난 다음에 첫 번째 주일은 마지한 첫 번째 주일은 첫째
[0:13]자리를 첫 계명을 첫 첫 자리 나도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요. 하여튼 하나님을 섬기는 걸 첫 자리에 일계명을 첫 자리에 놓자. 예, 이제 그것을 첫 자리에 첫 자리에 올려 놓지 않으면 거기는 우상숭배다. 뭐 그런 얘기를 했어. 두 번째 주간에는 십자가에 대한 설교, 십자가로 돌아가자. 오늘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이 주제가 되겠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오요에 관련된 구속 설교로 이번 주까지만 하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어, 제가 시드니에 살 때에 어 그 시드니 온 분들이 주로 꼭 들르는 들르는 곳이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죠. 많은 분들이 오페라 하우스에 오는데 세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가시는 거예요. 인증 샷입니다. 다른 데서 아무리 찍어도 어 표가 안 나지만 거기서 딱 찍고 가면 호주 왔다 갔다 하는 게 확실하게 증명이 되기 때문에 예, 거기에서 많이 찍고 들어갑니다. 두 번째 부류는 어 가이드를 통해서 인사이드 내부를 구경하는 투어가 있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도 굉장히 아름답지만 사실은 오페라 하우스는 안이 중요하죠. 안이. 내부에 들어가 보면 오페라 홀이 있고 콘서트 홀이 있고 또 어린아이들의 공연장도 있고 다른 어떤 드라마 홀도 있고 굉장히 그 안에 들어가면 많은 홀들이 특별하게 그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그 안에 있는 그 오페라의 그 콘서트 홀들의 위용을 그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은 또 다른 맛이 납니다. 그걸 보는 분들이 계세요. 투어를 해서. 아 근데 세 번째 부류가 있는데 이게 진짜입니다. 티켓을 사서 저녁에 공연에 공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무대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오페라와 콘서트 홀이 두 곳에서 큰 메인 홀에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이 일어나는 데 세계적인 작품들이 올라가죠. 어떤 분들은 그것을 이제 아주 비싼 티켓을 사서 그 공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공연에 참여하면 어 굉장한 이제 감동이 있죠. 이 음악 코의 그 기가 막힌 설계 공험이 잘 되는 그 곳에서 세계적인 무대가 세워 올려지고 또 그곳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은 환상적인 것입니다. 또 인터미션 중간 휴식 시간에 그 밤에 나와서 테라스로 나와서 보는 이 또 다른 이 정경, 도시의 정경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어 똑같이 오페라 하우스를 갔다 왔지만 감상평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건물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인사이드에 대해서 얘기하어요.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올려지는 아름다운 음악과 그런 환상적인 그 오페라에 관한 감동을 얘기합니다. 오페라 하우스 외향이 멋있지만 그것만 보고 온다는 것은 마치 레스토랑에 가서 다른 사람이 먹는 거 구경만 하다고 오는 거와 똑같습니다. 연애를 실제로 해 본 사람과 연애에 관련된 책을 한 100권 정도 읽은 사람. 누가 진짜 연애를 할까요? 연애를 해 보신 분들 반응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4:13]바닷가에서 이 해운대 비치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과 빛을 연구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서 토론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과 신앙을 경험하는 것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4:38]우리는 지금 지식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는 게 참 많이 이제 늘어났습니다. 고도의 지식 사회, 정보 사회입니다. 어떤 영역이든 우리가 만나 보면 상당한 식견들을 모두가 필요하죠. 또 요즘 예를 들면 건강에 대한 얘기들. 건강 얘기를 하는데 보면 아우 대단해요, 요즘 모두가. 저도 건강에 대한 지식이 꽤 아는 거 같은데 최근에 어떤 분이 얘기하는데 아주 한 수 죽었습니다. 근데 건강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과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느냐? 전혀 다른 얘기죠. 오늘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이 지식의 폭주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피상적인 앎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진리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머리 머리로 진리를 아는 것은 마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인정 샷을 하고 내가 오페라 하우스에 왔다 갔다 하는 얘기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는 것이 많지만 아는 것으로 끝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지식이 오히려 사람을 번뇌케 한다는 말씀을 잠언서에서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그 진리에 내 삶을 걸 수 있느냐. 그 진리에 내 삶을 걸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진리를 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지식을 아는 것,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그 지식에, 그 진리에, 그 사실에 내 인생 전체를 걸 수 있을 때
[7:37]그것을 우리는 진정 성경이 말하는 앎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머리로 아는 지식만으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8:05]13절에 이어서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고 말합니다.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알지 못한다는 얘기예요. 여러분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 세계를 보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다고 여러분 사람들이 믿을까요? 성경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이 수없이 일어나도 믿음이 열리지 않을 수 있어요. 눈 앞에 벌어진 기적이라도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출애굽할 때 바로 왕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수 없는 기적을 보지만 그의 마음은 더욱더 강팍해져 갔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여러분 성경을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게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야 성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에 하신 말씀이죠. 어떻게 예수님이 지금 승천하시면 하늘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할 수가 있습니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무엇을 약속하신 것입니까? 이것은 바로 성령을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비록 당신은 육체로 이제 승천하시지만 영으로 제자들과 함께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영으로 오심으로 이제 우리와 항상 24시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자 이게 새로운 단계예요. 영적 세계에 새로운 거대한 새로운 단계.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영으로 임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소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매우 귀중한 요소입니다. 신자가 신자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나 홀로 살아가는 삶과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나 혼자 열심히 하는 신앙은 금방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10:41]신앙생활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성령과 동행함 이게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성령과의 생활은 매우 실제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분이 아닙니다. 모호한 철학과 어떤 이념적인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시는 거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영을 받았다는 거죠.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약속하신 내용이죠.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러분 제자들에게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죠. 함께 하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시에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 이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라. 근데 여러분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의 지상의 삶을 마치고 마지막 하신 말씀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더 이상 이제 우리가 고아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영으로 찾아오신 성령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고아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고아와 아버지가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삶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지 않으면 늘 불안합니다. 안식이 없어요. 눈치 보기에 바쁩니다. 세상과 교회를 오고 가지만 평안이 없습니다. 고아와 같은 삶을 살면 늘 배고프죠.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자는 고아가 아니라는 거죠. 이제는 고아와 같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데 고아와 같이 살아가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와도 여전히 고아와 같이 불안해하고 쫓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뭘 하나라도 얻어 가려고 막 떼를 쓰는 것 같은 그래서 마치 안 줄 것 같은 그 두려움에 빠져 있는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아와 같이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면 고아의 영이 떠나가요. 더 이상 피곤하거나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 주일 성수나 혹은 십일조 봉사 생활 이런 것을 신앙이라고 신앙 이런 것들이 신앙생활이라고 규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우 힘든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사진 찍고 다니는 거와 똑같아요. 주일날 교회를 갔다 온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페라를 보려고 하면 진짜 보려고 하면 그날에 일어날 그 작품에 대해서 미리 연구도 좀 하고 가야 합니다. 그냥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가면 오페라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 라보엠이 있다면 라보엠에 관련된 어 다양한 기사들을 읽어야 되죠. 또 그날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해서 이력도 좀 꼼꼼히 살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그날에 있을 여러 가지 다양한 어 부차적인 여러 가지 부분들을 잘 섭렵하고 가면 훨씬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 세계적인 명장들의 그 환상적인 연주와 그런 연출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굉장한 감동인 것입니다. 오페라 하우스 바깥에서 보여지는 건물은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진짜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신앙의 세계는 그 이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활동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주일날 예배에 참여하는 것들. 봉사하는 것들, 십일조를 내는 것들은 아주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은 그게 마치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바깥의 건물에서 사진을 찍고 가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영의 활동입니다. 영의 세계의 일이에요. 신앙은 광활한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15:29]표면과 이면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이죠. 성령과 함께 살아갈 때 우리 안에 영과 육체의 일이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깥의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것과 그 안에 벌어지는 엄청난 그런 무대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영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과 육체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의 차이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16절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오늘 바울은 육체와 성령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이런 것에 대한 구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근데 성령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자 육체와 성령의 처매한 구분을 지금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눈이 떼어지면 거대한 힘들의 대결이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니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 안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까?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충돌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뚜렷한 정상이 뭐냐면 갈등입니다. 깊은 갈등입니다. 우리 안에서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싸움은 연중 무효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에 이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나이와 상관이 없고요. 신앙의 연조와도 상관이 없고요. 훈련의 유무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우리는 초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죽을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늘 깨어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나이 정도 나 정도 예수 믿었으면 이제 뭐 얼마든지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큰 코 다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죄의 속성이 드러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죄의 힘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하나님께 반역하게 만드는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에너지에요. 우리 안에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스리고자 하는 이 욕구, 에너지가 늘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힘을 얕보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영적 생활의 방심은 건물입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의외로 낙오자들이 참 많습니다. 누구나 영적인 삶을 살기로 원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시작을 했지만 어느 날 보면 영적으로 지지 부진하고 기본도 유지하지 못하고 나중에 아주 엉뚱한 곳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봅니까?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권면이 무엇입니까? 오늘 16절의 말씀처럼 내가 이르노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19:45]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 외에 육신을 육신의 욕심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근데 여기 여기 여기서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일시적인 어떤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임해서 죄를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성령을 의지하는 영적인 습관을 길러야 죄의 육체의 육심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자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면 성화입니다. 회개를 우리가 강조할 때 회개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회개를 통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 성화의 삶이 목표인 것입니다. 회개는 일평생 해야 되지만 회개의 질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의 결과는 성화입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 안에 성결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죠. 거룩한 삶을 살고 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 있다면 내 안에 누가 계시는 정 겁니까?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신자라면 죄를 멀리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그게 정상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마음이 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의 영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하느냐? 얼마나 다양한 활동에 열심을 내느냐?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면 위험합니다. 마치 우리는 굉장히 어떤 외적인 과합을 이루어야 하나님을 위 위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거룩한 삶은 강조되지 않고 외적인 활동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장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무슨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 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신앙의 핵심에 거룩이라는 단어, 성결이라는 단어, 경건이라는 단어, 성화라고 하는 이런 단어, 이런 단어들이 사라져 버렸어요. 여러분 우리 개혁주의 신앙에 우리 청교도의 신앙들을 살펴보면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의 모든 중심의 핵심이 뭐냐면 이런 것들이에요. 거룩이에요. 성화, 성결. 이런 것들이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근데 이런 단어들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이 틈 사이로 세속주의가 밀고 들어왔어요. 기독교 안에 관용주의가 들어오고 세상과 타협하며 죄의 오염으로부터 우리의 자신을 지키는 일에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한국 교회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거룩을 놓치지 않고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이물하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결과 거룩의 이 단어는 우리의 신앙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굉장히 많은 큰 일 어떤 외적인 일을 수행하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이 거룩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단어를 놓쳐 버렸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랬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서이지 세상을 닮아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의 몸이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성결은 소극적으로는 죄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해야 될 굉장히 중요한 목표는 뭐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거. 이게 뭡니까? 성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돼야 되고 이것이 우리 우리 우리의 삶에 가장 신앙의 중심부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끌고 가는 대로 끌고 갈릴 끌려갔습니다. 이전에는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욕구에 우리가 시달렸어요.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성령이 계시고 그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영이시고 우리를 실패했다 할지라도 다시 일으켜 주시는 영이시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5장 26절 25절, 26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겁니다. 사도행전 이후에 성령은 더욱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나시고 당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누르던 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죄의 힘에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을 성령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확신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손으로 만질 수 없으나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역사하십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영으로 계신 성령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신앙은 성령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알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죠.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죄의 본성을 따라 무방비로 살아가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더 이상 죄의 방탕함에 우리의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없도록 성령이 우리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신앙생활은 성령과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세요. 우리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뭐하거나 막연한 게 결코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세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고 계세요. 우리의 감동을 주시고 때로는 잘못을 꼬집어 주시고 우리의 생각을 바꿔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시고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대를 살고 있어요. 성령의 임재를 부인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육 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성령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지금 여기 계세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성령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우리의 진리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감사가 일어나게 하거나 우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거나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거나 어떤 죄에 대한 책망을 하게 하거나 어떤 낙심으로부터 위로를 얻거나 이 모든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아멘. 여러분 십자가를 우리가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뭘까요? 여러분 지식으로 십자가를 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대해서 성령이 조명해 주시면 그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이 드러나게 하시고 그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심장을 만나게 하면서 무너지고 깨어지고 녹아지는 역사가 일어나죠. 이 모든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그 진리의 빛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얻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의 기자들이 무슨 표현을 씁니까? 주의 말씀이 꿀송이보다도 더 단다 다는 표현을 써요. 여러분 어떻게 이것은 성경을 읽었다는 얘기가 아니죠. 성경을 그냥 읽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성령을 맛을 봤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누가 하시는 일이에요?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과의 동행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 출석이 그냥 인정 샷 정도로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면 재미없는 겁니다. 여러분 오페라 하우스에 건물을 보는 것은 그냥 그냥 껍데기 보는 것은 한 두 번, 뭐 서너 번. 글쎄요. 몇 번 더 갈 수도 있겠죠. 근데 나중에 가면 그게 재미없는 거예요. 겉 모양만 경험하는 것은 오래 못 간다. 지루해진다든가. 인정 샷 한번은 좋겠죠. 그러나 여러분 공연은 다른 것입니다. 매일 달라요. 애니얼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시드니 사람 사람들은 1년치 프로그램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수없는 공연들을 자기가 카탈로그를 보면서 선택을 하고 그 나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거기 가서 인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호주의 깊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감동적인 무대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가 열려집니다. 그는 갈 때마다 감격이 있습니다. 껍데기 보는 것은 몇 번이면 만족 끝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1년 12달 아무리 가도 돈이 없어서 못 가지 감동이 넘칩니다. 여러분 오늘 바깥에서 기념 사진 찍는 거. 그것은 그냥 해프닝이에요. 그냥 몇 번이면 끝난다는 거죠. 제가 미국에 백악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오바마를 만난 게 아니고. 바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왔습니다.
[31:16]여러분, 오바마를 만나서 사진 한번 찍는 것도 괜찮겠죠. 그래서 기념차 거실에 걸어 놓을 수도 있겠죠, 여러분. 그 그냥 한 번에 좋은 경험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뭡니까, 여러분? 오바마의 얼마나 친분의 관계 있었느냐.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이건 새로운 세계죠. 오늘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표피적인 겉 모양의 단순한 교회 출석의 이상의 의미가 없는 신앙생활은 곧 지루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은 1년 12달 한 번도 지루할 수 없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날마다 경이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들려주시는 음성은 달라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것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수없이 읽었던 성경에도 어느 날 성령이 내 눈을 열어주실 때 이 진리는 다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또 수 없는 사람들이 동일한 본문을 듣고 동일한 설교를 들어도 동일한 은혜가 아니에요. 성령이 각자에게 그 환경과 상황에 따라 그 분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말씀하시고 그를 진리로 이끄시는 그 분. 여러분 신 성령과 함께하는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가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것입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그 분 임마누엘을 약속하셨던 그 분이 오늘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혹시 여러분 신앙이 지루하세요? 건물만 보고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 하나만 해도 그래요, 여러분. 십자가 하나만 해도 그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은 우리가 다 캐낼 수가 없어요. 그냥 십자가를 형상으로 본다면 목에 걸고만 다닌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몇 번만 하면 그 주술적으로 그냥 그냥 붙들고 있다면 그냥 얼마 못 가서 그게 시큰둥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그 십자가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시면 그 십자가라고 하는 프리즘을 통해서 나오는 수 없는 빛이 1천갈래 만갈래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진리로 다가오게 하세요.
[33:53]이 십자가는 오늘 우리의 삶의 모든 우리가 당하고 있는 오늘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애완과 고통을 넘는 하나님의 위로일 수도 있고 소망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의 삶에 수 없는 죄들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 십자가 안에 있는 우리 우리의 삶에 온전케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 그것이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성령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