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1~5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1~5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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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자 오늘부터 이제 저는 마가복음을 여러분들하고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마가복음은 이 사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가장 최초로 기록된 사복음서에서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어 이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는 가장 짧은 책이죠. 몇 장인지 아십니까? 예, 짧습니다. 16장으로 되어 있어요. 16장으로 짧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마가복음을 읽어 보면 이제 곧 시라는 단어, 마침 요런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음 스피드가 있다는 얘기예요. 아주 액션 영화처럼 이 마태복음은 프랑스 영화처럼 약간 느릿하면서 아주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이 삽입되는 반면에 이 마가복음은 액션 영화 같습니다. 굉장히 스피디하게 진행이 되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6 16장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는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좀 밋밋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고 훨씬 더 폭발력이 있는 이 박진감이 있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 마태복음은 대체적으로 어 이 현재 시제로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기자가 어 현장 중 현장을 생중계하는 듯한 느낌이 이 마가복음에 있습니다. 그게 이제 마가복음의 특성이고요. 자, 마가는 특별히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종으로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개념을 가지고 쭉 16장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종,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 종의 개념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핵심 구절을 10장 45절로 봐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 왔다. 이 종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게 마가복음이 종의 복음이다. 이렇게 얘기도 하죠. 자, 우리는 이 복음서를 대할 때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의 생애를 아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이야기죠, 기록이죠. 우리가 어떤 흥미로운 유명한 분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분을 최근에 만나고 온 분이 있으면 그분의 얘기를 듣고자 하죠. 어땠느냐고 묻죠. 이 그분에 대한 이 복음서에 주는 매력은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보았던 사람들의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지 순례를 가 보지 않아도 사실 성지 순례를 가면 이스라엘은 많이 훼손돼 있고요. 또 그게 진짜 그 자리인지도 알 길이 없고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이 이렇게 상업적으로 변질돼 있기 때문에 뭐 한번 가 볼 만은 하지만 안 가 보셔도 이 복음서를 우리가 충분히 보면서 상상력을 키운다면 성지 순례보다 훨씬 더 큰 유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 이 마가복음의 기록자는 우리가 오늘 첫날이니까 우리 기억 잘 아닙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은 누가 하셨을까요? 네. 마가인데 마가는 이름보다 더 풀 네임은 요한 마가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에 이 마가가 여러분 등장하고요. 바나바의 생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사도행전의 120문도가 기록 기도했던 곳이 어디죠?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합니다. 이 마가의 집이라고 알려져 있죠. 자, 마가복음의 시작은 아주 명확합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이 됩니다. 탄생이나 족보나 어린 시절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관련된 것들이 아무것도 없어요. 처음부터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1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자, 마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분명하죠. 그게 이제 마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것이 이 마가를 마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이에요. 그래서 이 목적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것은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목적이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딱 한 분에게 집중합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예요. 마가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이 첫 문장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했습니다. 이게 헤드라인이죠. 타이틀을 딱 달고 이제 마가복음을 달려가는데 제가 이 마가복음을 얼마 동안 설교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좀 또 이 설교를 통하여 우리가 깊이 좀 더 들어가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이 자신이 쓴 글의 목적을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마가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첫 번째 이 타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마가는 지금 얘기하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예언해 왔던 메시아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오랫동안 예언되어졌던 예언되어졌던 그분이 오셨다고 얘기하죠. 여러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죠.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이십니까? 그리스도시죠. 그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사람이시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이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유일하신 분이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으로 오신 그분. 그분은 그리스도예요. 오늘 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할 때 이 크리스천은 그리스도 이 영어로는 크라이스트인데 헬라어로 그리스도에서 왔습니다. 그리스도. 이 말에 히브리어. 우리 구약이 기록된 히브리어로 하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그것이 구약적 표현이죠. 메시아. 자, 당시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어요. 근데 메시아가 오실 때에 그 예수님마저도 이스라엘을 정치적 어떤 메시아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잘못된 메시아 가 아니죠. 이 로마의 지배하로부터 구출해 줄 메시아인가. 이런 오해를 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자, 그리스도는 메시아다. 메시아. 이것은 예언자들에 의해서 오래전에 이미 예언되신 그분. 그 불쑥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는 거죠. 이단들이나 이 사비 교주들 보면 난데없이 자기가 예수라 그러고 보혜사라고 그러요. 그러요. 한국에도 예수가 한 열몇 명 있고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몇 명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뭐 성령도 많아요. 굉장히 많고 그랬습니다. 어느 정신과에는 그랬다 그러잖아. 한사님 막 정신병원에서 돌아다녔는데 나는 예수다. 나는 예수다. 그러니까 그 옆에서 한 명 있다가 내가 언제 너 보냈냐. 또 그러시더라고요. 그분은 또 하나님이시죠. 그렇죠? 마가는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사람을 한 사람을 소개해요. 옛날에는 왕이 출연을 하면 왕이 출연하기 이전에 왕이 막바로 등장하는 게 아니요. 왕을 출연을 알리는 헤랄드가 있습니다. 먼저 왕이 오신다. 그리고 그 길을 평탄하게 하는 자가 있었다는 거죠. 이제 그 그것을 어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도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그 준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2절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내 길을 준비하리라. 자,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인데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입니다. 700년 전에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면서 그리스도보다 앞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자가 있을 것이다. 그 그 이름이 오늘 지금 마가복음에서 얘기하는데 누구입니까? 세례 요한을 얘기하는 겁니다. 자, 세례 요한은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노니 그리스도 앞에 그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입니다. 자, 이 요한의 역할은 분명하죠.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자,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이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는 가장 어두웠던 시대예요. 가장 어두웠던.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 여러분 왜 역사의 어두웠던 시대인가 하면 예언자가 다 끊겨 버린 겁니다. 예언자. 예언자는 뭡니까? 하늘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선지자가 있어야 되는데 하늘과 땅에 이 하늘의 메시지를 땅에 증거할 사람이 없으면 하늘과 땅이 끊겨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의 말락이 선지자 이후에 모든 이 음성이 다. 하나님의 음성이 예언이 사라져 버렸어요. 여러분 이것은 이 이스라엘의 가장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큰 침묵. 하나님의 침묵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예요. 여러분 하늘의 음성이 들리면 그 시대에 소망이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그 시대는 이미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니까 등대의 불마저 꺼져 버리면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결국 난파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사실 하나님은 예언자를 끊임없이 역사 속에 보냈는데 그 예언자를 다 죽여 버렸어요. 그러니까 바른 말하면 다 죽여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을 주실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는 거죠. 그게 말라기 선지자고 말라기 선지자에서 이제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몇 년이요? 400년의 역사. 400년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침묵기였습니다. 이 침묵을 깨고 이제 그리스도가 오시는데 이 그대한 전환점에 그 그리스도를 이제 예비하는 자로 이 세례 요한이 부름을 받았어요. 아마 이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이 세례 요한을 불러주신 거겠죠. 오늘 3절에 보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자, 여기에서 세례 요한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것이요.

[11:13]소리는 뭡니까? 여러분? 보이스입니다. 보이스. 더 보이스. 그 형체가 없는 거 이건 소리입니다. 소리. 지금도 소리가 흘러 나가고 있죠? 지금 이 소리 소리가 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 나가고 있는데 이 소리는 그냥 소리일 뿐이에요. 소리를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 세례 요한의 역할이 바로 그라는 거죠.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정명하려고 부름을 받은 존재가 아니고 오직 존재의 목적은 목적은 그리스도를 오시는 것을 알리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여러분, 사람 우리 크리스천이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뒤부터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정명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자신을 정명하려고 하면 실패를 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리스도를 드러낼 때 가장 최상의 상태가 됩니다. 여러분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알았어요. 정말 자기는 광야에 묻혀 40년 미디안에 살다 보니까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근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광야에 가시떨기 가운데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시죠. 처음에는 어 거절했지만 하나님 당신이 누구이십니까? 할 때 하나님이 자기를 소개하고 하나님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서 모세는 용기를 가지고 그 당시에 애굽의 바로에게 나아가 이 애굽의 바로에게 나아갔던 그 힘이 어디에 있느냐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갔던 목적은 유일해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 모세가 바로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이 모세의 존재감 자체가 아니라 그가 알리고자 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세가 발견하니까 그의 삶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마가복음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아는 것. 아마 여러분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예요. 그분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저절로 내가 그리스도를 알면 제대로 알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내 존재, 내 위치, 내 역할, 내 삶의 방향 이게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아멘. 마가복음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의 시선이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춰야 될 이유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인생에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뭡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하는 철학적 질문을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잖아요. 모든 답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복음서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모든 것이 방향을 찾게 되고 질서를 찾게 되고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도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자, 여러분, 오늘 또 보면 우리가 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오늘 이 본당 안에도 여러분들이 보이는 모든 것 어느 하나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게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이게 의자를 여러분들이 앉고 있지만 앉아 있는 의자가 나를 위해서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이잖아. 그러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그 예 앉아 있는 그 행위 자체가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예배자로 있기 위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고 그 의자도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리고 여기 있는 뭐 마이크든지 스피커든지 모든 것들이 오늘 또 뭐 이 조명이 저를 비추고 있지만 이 비추어지는 것은 저를 비추어 주기 위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추어 줄 뿐이지 이게 저를 저를 비추어 주는 게 절대 아닌 거거든. 이 너무 빨라서 저는 좀 불 불다 부담스럽긴 한데 이 빛이나 모든 여기에 정구 다 하나 모든 것들이 다 마가 왜 나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예.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는 거요. 여러분, 오늘 오늘 우리 인생이 이 소모품으로 끝나면은 안 되거든요. 목적이나 역할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소모품이 돼요.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방황하게 된다는 거요. 우리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가?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유능한가에 관심을 갖는데요. 그것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질문은 내가 왜 존재하는가라고 하는 거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분수를 잘 넘어갑니까?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실수를 하게 되는 거고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일평생 살면 그는 실수가 아니고 실패가 되는 거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죠. 오늘 이 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요. 그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 내가 어디에서 있어야 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일평생 사람들이 누구인가 인정을 받으려고 막 일평생 노력하고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늘 주변의 삶에 그 어떤 눈과 평가와 의식을 하며 살아가는 거요. 어떤 사람은 부모의 설득과 강요에 의해서 자기의 인생이 그냥 늘 그렇게 가는 거예요. 제가 어떤 사람을 상담하는데요. 자기는 지금 남이 보기에는 굉장히 거뜻한 직업을 갖고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앉아 있는데요. 너무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난 그만두고 싶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자기가 원하는 길로 온 게 아니에요. 부모가 원해서 그냥 밀어 넣어 가지고 자기가 원치 않는 정공하고 자기가 원치 않는 직업을 갖고 자기가 원치 않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 돈은 벌고 결혼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 삶에 진정한 만족이 없는 거예요. 왜 내가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인생은 따로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어때요? 자기 인질의 본질적인 부분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겁니다. 그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자기는 그 자리 그만둘 거라는 거죠. 세례 요한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은 소리로 존재한다. 소리는 여러분 형체가 없어요. 얼굴도 없어요. 소리로 존재하는 사람이 무슨 명함을 갖고 다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중요한 것은 누가 전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가 전하는 소리가 중요한 거거든요. 이 세례 요한은 하늘이 전하고자 하는 그 소리의 역할을 하겠다는 거요. 이런 관점에서 강단에 설교자도 소리예요. 소리. 이 존재가 뭐 대단한가? 뭘 갖추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강단에서 설교자는 소리로 존재한다. 하늘의 소리를 받아서 하늘의 소리를 전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요. 아멘. 강단에 설교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자격을 부여받지 않았어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소리로 서 있어야 된다. 설교자는 주어진 본문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말씀만을 전하는 소리여야 한다라는 거요. 목사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소리를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전하는 신성한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멘. 설교자는 말씀의 종이라고 그러잖아요. 종은 자기의 주장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끌어다 오는 것을 설교라고 말하지 않아요. 시대마다 선지자 중 거짓 선지자들의 증언이 많았어요.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사람들이었어요. 대중의 요구는 시대마다 늘 변하고 변합니다. 강단에 오염은 시대에 탈을 가져왔습니다. 설교자는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선포해야 하고 그 진리의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여야 한다라는 거요. 아멘. 자,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근데 광야라는 거예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거요. 우리가 생각하는 광야보다는 도시에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선포해야 더 좋을 텐데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거예요. 세례 요한이 광야로 간 목적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전파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될 것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영성은 광야의 영성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예루살렘의 정치적인 종교 지도자들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야인입니다. 앞으로 조금 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살펴볼 때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례 요한은 그 시대의 어떤 메인 그룹에 들지 않는 분이에요. 당시 유대 종교는 이미 유 유 기간이 끝나 버린 이 성전은 그냥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는 예식만 오고 갔었지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광야에 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거요. 여러분, 누가복음 3장 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의미 심장한 구절이에요. 보십시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아, 그것은 그 시대의 유대 종교의 그대한 종교 체제가 있었다는 거예요.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그건 명목적이에요. 명목적.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타이틀이 아니라 직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 임하느냐는 거요.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예루살렘이 아니고 빈들에서. 빈들이 어떤 곳입니까? 하늘이 열리는 곳.

[21:42]인적이 드문 곳.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러분 도시는 요란한 곳입니다. 오늘날은 하늘의 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도시는 소음이 가득해요. 인간의 소리에는 죄의 때가 묻어 있습니다. 인간의 소리로 도배된 곳에는 그 안에 거짓과 인간적 사욕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멋있는 말을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속셈이 들어 있어요. 무엇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워요. 도시는 각자의 주관과 소신과 이론들로 시끄러운 곳입니다. 많은 소리들이 있지만 그 안에 참 진리를 찾기가 어려워요. 진리를 가장한 거짓의 세계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당시 유대 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이것이 진리라고 이야기한다고 진리가 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인간의 합의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해야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요. 진리를 듣고 싶으면 성경책을 들고 요즈음은 하늘이 하늘의 음성이 따로 나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 계시의 말씀 이 성경이 우리에게 완벽하게 주어졌어. 이 말씀을 들고 이 성경을 들고 조용한 곳으로 나아가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돼요. 빈들을 찾아야 돼요. 나를 스스로 세상과 격리시켜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에만 길을 기울이는 광야를 선택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들려야 우리 영혼이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우리 세상이 사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의 음성이에요, 여러분. 오늘 세상의 소리를 들을수록 목이 말라요. 사람들의 소리에는 답도 없어요. 진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들은 하늘의 소리에 목이 마른 것이죠. 세례 요한은 광야로 갔고 그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오늘 5절을 보십시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24:10]광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왜 몰려들었을까요? 하늘의 음성이 그곳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곳에 대가를 지불하고 그곳에 간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굶주려 왔던 것은 뭘까요? 먹는 것보다도 그들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목말랐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 자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누가 기다립니까?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 오늘도 영적 기갈이 가장 우리 삶에 심각한 기갈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날 세상은 발달되고 지식은 폭주되는데 인류의 질문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언제 가장 힘듭니까? 질문은 많은데 답이 없을 때.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우울증은 더 늘어나고 행복 지수는 더 멀리 도망가고 있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인생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정보의 문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목이 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요. 사람들은 절망하는 이유는 다른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요, 구원의 문제요, 영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성전에는 광야로 갔습니다. 이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죠. 하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그 하늘의 음성에 귀 목이 말라 있었던 것이죠. 오늘 세례 요한이 외친 광야의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소리와 너무나도 달랐어요. 일급수 물과도 같은 거 깊은 산 속에 흘러나오는 물과 같은 거요. 그 시대의 혼탁한 물을 들이키며 살았던 피곤하고 힘들었던 백성들이 탁류에 지쳐 있던 백성들이 영적 혼돈과 그대한 무지 속에 살았던 백성들이 이제 하늘의 원음을 듣고 그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의 음성. 아멘. 혼탁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 들려지게 될 때. 그것이 우리 삶의 소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 1절을 우리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부분이 너무너무 중요해요. 여러분 우리가 마가복음이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될 것은 마가의 복음이 아니에요, 사실은.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마가에 의해서 전해진 예수의 복음이요. 아멘. 마가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복음입니다. 무슨 복음이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외쳐야 되는 것은 딱 하나예요. 복음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닙니다. 알면 도움이 되고 몰라도 되는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아멘. 마가가 시작한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인 이 구절은 의미 심장해요.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오직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는. 아멘. 오늘도 복음이 우리의 삶 속에 약화되어 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교회마저도 복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담 있습니다. 위장된 복음 불 물탄 복음, 대체된 복음 세상에 물든 복음이 너무 많아요. 하늘에 들려지는 원음 대신 땅의 소리로 변질되어 있다는 거요. 복음 대신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교회 안에서도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외에 다른 것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생각이 우리 안에 들어온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약화시키고 다른 것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큰 오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와 있어요. 아멘.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고도 남습니다. 문제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 거예요. 잘 모르기 때문에 잘 믿을 수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의 복음은 모든 것이 되고도 남습니다. 예수만이 답입니다. 복음이 모든 걸 바꿔 놓습니다. 복음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복음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아멘. 복음이 역사하면 망가진 인생이라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요. 바울은 이 율법에 사로잡혀 살다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고 그 복음에 미쳐 생명을 겁니다. 그가 외친 것은 세례 요한과 똑같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복음. 아멘. 고린도전서 15장 1절에 이렇게 해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로마서 1장 16절에는 뭐라고 말하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그 로마의 그 심장 불을 향하여 당당히 얘기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당시 1세에 지극히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유대 청년 33세 형장에 이슬로 사라져 버린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다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소수에 따르는 사람들만 존재했던 그 시대 속에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두남이 능력이라고 됩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그 복음을 자신이 경험했고 그 복음으로 인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할 때 바울 한 사람을 통하여 한 도시를 바꿀 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명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아놀드 토인비는 바울 사도를 태워 가던 그 배는 유럽의 문명을 싣고 가는 배였다고 그랬어요. 유럽의 복음을 증거했던 그 바울의 복음이 유럽의 문명을 일찍이 바꿔 놓는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바꿔 놓고도 말아요. 개인과 가정과 문화와 시대와 역사를 다 바꿔 놓는 역사가 일어나요. 여러분,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로 로마 시대의 초기에 복음을 전한 이 전성들을 들어보면 예수를 노예가 예수를 믿으니까 노예의 삶이 바뀌게 되고. 게으름만 피우고 주위 눈치 보면서 살살 요령을 피웠던 그 노예가 오늘날 예수를 믿으니까 삶이 변하니까. 옛날에는 모든 쓰레기를 침대 밑에 주인 침대 밑에 다 집어넣었는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 침대까지 밑에까지 다 그냥 먼지까지 다 닦아 내고 청소를 하고 삶이 변한 걸 보고 주인이 보고 놀래 가지고 도대체 저 사람을 변화시킨 게 뭐냐는 거예요.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노예를 통하여 주인이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를 믿은 주인이 노예를 풀어 주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노예 해방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제도와 조직이 노예 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복음이 들어가니깐 복음이 상층부로 들어가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귀족들과 결혼하면서 이 상층부의 문화를 바꾸고 복음이 들어가니까 이 리더십들에게 영향을 주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32:22]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만이 소망해요. 아멘. 복음만이 답이요. 사람 바꾼다고 역사가 바뀌지 않아요, 여러분. 시스템을 바꾼다고 역사가 바뀌지 않아요. 우리의 기대는 복음밖에 없어요. 아멘. 복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먼저 시작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 교회 안에 시작이 되어야 돼요. 우리 안에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복음을 잘 모르는 거예요. 복음을 모르니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 신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종교인들이 늘어나는 거예요. 무슨 일 일어납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요. 그러면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그러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건 교회가 아닐 수도 있어요.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가 아닌 단순히 기독교적인 활동에 참여한 그 사람들을 늘어나면 그런 교회는 무너지기로 준비된 교회와 같아요, 여러분. 복음이 약하면 불신자들이 교회 안에 늘어나게 돼요. 참된 세례가 시행되지 않아요. 저는 우리 교회에서 매해 이 세례 교인들의 관심이 굉장히 많아. 왜냐 오늘 현대 교회 이 세례 참된 세례가 시행되지 않는 거요. 제가 다음 주 일날 회개의 세례 회개의 세례를 제가 살펴볼 텐데요. 복음을 경험하고 십자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지 않으면 죄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을 수 없고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참된 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종교인으로 남아 있다는 거요. 그러면 그 신앙이나 그 신앙이라는 건 믿을 수 없는 것이고요. 소셜 클럽에 소셜 라이즈 되는 사회 활동이 일환이 되는 것이고 그냥 인간적인 육신적인 사람들이 모여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 교회인데 사실은 교회가 아닌 교회들이 많아 문제가 생기면 그 잡을 수 없이 교회가 흔들려 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 교회 중심에는 누가 있어야 돼요? 그리스도가 있어야 되는데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이 생각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나 복음의 능력과 그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 오늘 우리 안에 가장 심각한 일이에요. 세상과 다른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비슷한 교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역사 속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 거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많이 들었지만 마가복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복음을 언제나 새롭게 이해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 마가복음을 들을 때 이 우리 8년 만에 이제 9년 만에 제가 이제 부임하고 9년 만에 복음서를 처음 다루거든요. 근데 사실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튼 아지 않았는데 이제 새로 이 복음서를 대하고 마가복음을 시작하니까 막 가슴이 뛰어 뛰어. 아 여러분들하고 이 이 마가복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가슴 뛰는데 여러분들 안 뛰시죠? 저는 막 막 뛰는데 제 이 이 언어의 이 한계 또 제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어떻게 이글을 잘 마가복음을 여러분들에게 잘 좀 드러내게 이 성경의 원 저자가 드러내려고 했던 것을 어떻게 좀 드러내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또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급적이면 아 정말 이 예 없이 모두가 이 복음 안으로 마가복음 만 안으로 좀 여러분들을 좀 인도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성령의 은혜를 주셔야 되고 예 또 저도 준비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야 되고 이제 그 그런 그런 은혜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36:17]여러분, 예수의 이 복음 안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아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신비로운 분이에요. 10년, 20년 성경 공부했다고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복음은 광희로 와요. 아멘. 그리고 복음은 광대해요. 어메이징 어마어마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측량할 수가 없어. 그 은혜를 발견하면 우리 삶의 폭발이 일어나는 폭발이요. 예. 모든 삶의 변화가 일어나. 일평생 다가도 알 수 없는 그 비밀을 마가복음을 통하여 깨달아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로 이 세상 속에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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