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신비로운 몸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3~13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신비로운 몸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3~13 |

CTS BEST 설교

24m 0s2,677 words~14 min read
Auto-Generated

[0:00]오늘 우리 시대에는 아주 극도의 개인주의화 되어 있는 시대라고 이렇게 말하죠. 그래서 옛날에는 뭐 핵가족이라고 얘기했지만 요즘 핵가족보다 핵개인입니다. 핵개인. 그래서 북한이 못 쳐들어오는 이유가 남만이 핵이 많기 때문에 못 쳐들어온다 이런 말을 하는데. 핵개인이 되었어요. 전부 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주의를 사는 그런 시대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정의 해체 위기에 놓여 있는데 많은 가정들이 이렇게 어 위기를 겪는 그 원인도 안으로 가만히 들어가 보면 사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 개인주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옛날에는 뭐 어 가족의 공동체 안에 하나로 이렇게 녹아지는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요즘은 자기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서 가족 살해하는 이런 일들도 신문에서 자주 보는 것은 오늘 시대가 얼마나 어려워져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개인의 가치나 개인의 어떤 인격은 존중되어야 되죠. 그러나 개인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개인화가 강한 이 시대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정신과에서는 정신분열정의 어떤 특징을 무엇이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 이 정신분열증의 하나의 현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많은 사람들이 이 정신분열적인 어떤 어 현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관계를 잘 못 맺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 아이들도 여러 가족들이 함께 모여있고 이모가 있고 삼촌이 있고 고모가 있고 막 이렇게 어떤 관계 안에 살았습니다. 요즘은 뭐 하나 둘 밖에 없고 뭐 사촌 만날 길이 없고 이모 뭐 고모 이런 관계가 아니라 입시 또 고립된 그런 핵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친밀한 관계를 맺는 법을 몰라요. 단절된 문화 속에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철저하게 개인주의의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사랑을 원하고 친밀한 관계를 절박하게 원하지만 또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그 관계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그러면 교회가 어떤 곳인가라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한 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과 엇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의 갈등을 겪거나 어려움을 겪거나 교회 생활에 적응하는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관점에서 교회를 해석하고 자기의 앵글로 교회를 들여다보다 보니까 이게 일치가 안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면서 신앙생활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가 어떤 것인가 그것을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몸이 건강하려고 하면 내 몸 자체를 이해를 잘 해야 되잖아요. 자기의 몸이 어떤 몸인지를 몸을 이해하지 않으면 몸을 망가뜨릴 수가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기와 교회가에 갭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를에 대한 어 이 개념을 바울이 아주 서신서에서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바울은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이렇게 비유를 합니다. 이것은 로마서나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나 이런 곳에서 많이 말씀하고 있는데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울이 교회에 대해서 아주 탁월한 묘사를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몸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더 이상 육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승천하셨지만 지상에 또 다른 몸을 하나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게 뭐냐면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 땅에 남겨 놓으신 이유 중에 하나는 뭘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승천하셨지만 하늘로 지상에 남겨진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볼 수가 없는 거죠. 뭘 통해서 보는 것입니까? 교회를 통하여 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이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동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될 이유를 이제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 뭐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이 세상 가운데 드러내고 또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교회를 가르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자 오늘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할 때 이 몸이라고 하는 개념 안에는 뭐가 있느냐면은 한 개체를 말하지 않고 공동체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5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이 교회를 잘 표현하고 있는 바울의 해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예수를 진짜 믿는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몸 안에 이제 일부가 된 것이죠. 예. 뭐 피부가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그분의 직업과 성과 모든 것들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바디 한 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9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예수를 믿음으로 새로운 국적 네셔널리티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 이 권속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가정이 되었다. 더 가까운 표현은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여기에서 이 이게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신자의 정체성. 그게 뭐냐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이제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이름 안에 한 몸이 되어서 우리는 더 이상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뭐 나라를 옮기거나 이사를 가거나 하면 다른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를 옮긴 것이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벗어난 게 아니에요. 어디든지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십자가의 보혈을 안에 우리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 몸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할 것은 4절인데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랬어요. 자 오늘 우리 몸에는 다양한 신체들이 있습니다. 신체 부위가 다 다르죠, 여러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 얼굴도 마찬가지죠. 얼굴이지만 이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이 모든 기능이 각자의 기능을 갖고 있어요. 어떻게 코만 있다고 그래서 얼굴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모든 기능들이 다. 여러분 손가락도 보면 이 다 달리 다 따로 있는 거 같아. 달리 다 따로 있어. 이게 따로 있어야 돼요, 다. 이건 뭐 약 이 뭐 반지를 낄 때 약속을 할 때 이 다 이런 기능이 있는 거야. 오른손이 할 역할이 있고 왼손이 할 역할 있고 이거 뭡니까? 다양성을 말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이 로마서의 그 뒤 부분에 보면 로마서 11장까지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 이 교리를 얘기하고 12장부터는 마지막까지는 공동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체를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될 것인가 공동체 말을 삶을 얘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 공동체 안에 다양성이 있다. 모든 성도들이 다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은사를 따라 어떻게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갈 것인가. 여러분 오늘도 머리 두뇌가 해야 될 역할이 있고 발이 해야 될 역할이 있고 손이 해야 될 역할이 있고 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내장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를 보면 너무너무 다양해요. 은사가 다양하고 경험이 다양 영적인 은혜를 체험한 게 다양하고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양하고 경험이 뭐 여러 가지 다양해요. 기질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하고 그 다양한 그 다양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몸의 일부가 되어서 움직여 나갈 때 그것이 완바디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나는 필요가 없다. 나는 쓸 데가 없다. 나는 뭐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다 여러분 이제 이제 사역 방람에 또 여러분 신청할 때 여러분 뭐든지 하실 수 있는 게 있어요. 여러분들이 경험하신 그 경험 내가 한 경험은 그건 독특한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은사들은 독특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는 보면 섬기는 사람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뭐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 나중에는 보니까 뭐 성도를 손 대접하는 이런 것들. 어떤 여자분들은 대접하는 걸 너무 잘 하는 분들이 계세요. 뭐 그런 분들은 막 손님이 뭐 남편이 한 20명 교회 식구들 데리고 와도 막 금방 막 해 가지고 막. 어떤 분은 그 은사 없는 분은 하여튼 손님 열 열 명 온다고 그러면 한 달 전부터 알아 눕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어떤 사람은 뭐 20명 30명 막 오는데로 뭐 웰컴 막 이래 가지고 막 다 그냥 냉장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 가지고 가기 전에 설거이 다 끝나고 막 다. 그런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그런 분도 있더라고요, 교회를 보니까. 기질을 따라 여러분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소극적으로 하시는 분이 계세요. 어떤 사람은 조용히 섬기는 분이 있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활달한 사람이 있어요. 기질에 따라 섬기는 게 또 달라요. 여러분 하나님이 기질을 다양하게 주셔서 어떤 사람은 다혈질인 사람들 다혈질인 사람들은 막 굉장히 막 열정적인 사람들이죠. 베드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근데 업앤다운이 굉장히 심해요. 오늘날 보면 또 구중에 가지고 꼼꼼 앓고 있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우울질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철저합니다. 완벽합니다. 모든 하나의 끝을 냅니다. 책임을 줍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막 일을 만들고 막 사건을 만들고 말성을 피우고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근데 그런 분들도 필요해요. 말성을 피운다고 저 사람 자르면 안 돼요. 말성을 피우는 사람들이 하는 굉장히 귀한 쓰임새는 뭐냐? 모든 사람들을 하여금 기도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아 막 겁나 그래서 저 사람 때문에 기도하는 거야. 목사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가까이 돕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 있지만 목사를 힘들게 해가지고 기도하게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우리 교회는 없습니다만은. 역할이 있는 거예요, 역할. 내가 보니까 모르겠어 그 왜 그분이 그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어떤 형태로든 모두가 쓰임 받는다는 거예요. 필요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을 다양하게 불러 주셨고 다양한 영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몸이 건강하게 세워진다는 거예요. 근데 나는 여러분 억울하게 생각하고 오른손이 말이죠.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고 내가 나만 오른손만 밥을 먹어야 되나? 억울하다. 발은 뭐 하냐? 밥 먹을 때 밥 발은 뭐 하고 있냐? 나 오른손 더 이상 나 밥 안 먹겠다.

[13:56]발로 한번 밥 발로 한번 먹어 보라고요, 얼마나 힘든지. 결국은 제가 하는 게 나은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역할들이 자기의 고유의 하나님의 부르신 역할들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서 은사에 제가 다음 주일날 더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떤 그 일들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의미를 찾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다르다 공동체는 너무너무 다양한 다양한데 이 다른 것 때문에 사람들은 긴장감을 느끼고 불안함을 느끼고 불편하게 여기는데 사실은 다른 게 좋은 거예요. 어떻게 다 우울질인 사람들만 모여 있어요 보세요. 그 진짜 손 막힙니다. 다혈질인 사람만 또 모여 봤어요. 그 어떻게 일이 됩니까? 기획에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꼼꼼한 기획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막 행동력이 있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기획력만 있는 사람은요. 기획력만 있는 사람 모이면요 회의만 열심히 하지 일이 안 돼요. 매 회의 하다가 벌려다 보는 거예요. 그냥 베드로처럼 막 그냥 물로 막 뛰어드는 이런 사람도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이 나를 이루어간다는 거. 그래서 오늘 우리의 모든 사역 속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성을 즐기는 것이 교회 공동체에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아 하나님이 참 다르게 지으셨구나. 유별한 사람이 있으면 참 유별나게 하나님이 지으셨구나. 아 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뭔가 일을 하시는구나. 이런 관점을 보면서 다양성을 누리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는 거. 인조의 하라는 거. 다른 것을 인조의 하라는 거. 여러분 같은 데서 태어난 자식도 다르지 않잖아. 쌍둥이도 다르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오늘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이렇게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게 맞는 것이고 다른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좀 더 인내하고 용납하고 기다리고 이해해 주는 이런 훈련을 하는 곳이 교회에요. 그래서 교회는 회기라 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 똑같은 두부같이 두부 자르듯이 똑같은 형태로 만들면 안 돼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제자 훈련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 비판적 시각을 하는 분들은 그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 다양한 어떤 영역이 있는 사람들을 너무 한 틀에 맞춰서 훈련을 시킨 거 아닌가 이런 이제 비판적 시각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어떤 사람은 공부를 아주 잘 하시는 분은 이 성경 공부의 프로그램에 잘 따라오시는 분이 있는데 어떤 분은 바깥에 나가가지고 막 구제하고 섬기고 그냥 막 뛰어다녀야 살아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 막 성경 공부해 성경 암송하라고 성경 예수 배우라고 그러면 돌아 돌아가시는 거거든. 이 다르게 하나님이 지으신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교회는 다양성을 인정해 줘야 되고 다양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굉장히 관용적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 교회를 바라면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런데 성도들이 너무너무 다양한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그 다양성에 관해서 좀 더 너그로운 태도를 갖지 않고 목회자가 자기의 틀을 딱 가지고 이 이런 좁은 틀을 하나 만들어 놓고 이 안에 안 들어오면 교인들을 그냥 쫓아내면 목회가 안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너무너무 달라요. 너무너무 달라요. 이 다름을 인정하는 거. 자기의 틀만 딱 가지고 살면 공동체 안에서 몸을 거부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는 거예요. 너 손이 왜 그 그것만 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너 발이 너 왜 밥 안 먹고 그러냐고. 그 안 되는 얘기라는 거예요. 우리는 각자가 주어진 그 환경과 또 입장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양성 속에서 중요한 것은 생명적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굉장히 그리스도의 몸에 중요한 거거든. 그래서 바울은 이 교회를 설명할 때 오늘도 3절 5절 이하에 보면 무슨 단어를 자주 쓰는가 하면 서로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서로라는 단어를. 오늘 10절에도 서로라는 단어가 한 번 더 나옵니다. 원어나더라고.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원어나더라는 거죠. 서로라고 하는 거. 이건 뭘 말하느냐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 에베소서 2장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영적 성장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서로가 필요하다는 거. 서로가 도와주면서 자라가는 것이지 홀로 자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요. 여러분 홀로는 완전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왜 공동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느냐는 거예요. 예수를 믿으면 혼자 돗 닦듯이 그냥 집에서 그냥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혼자서 하 살면 되는데 왜 교회라고 하는 곳에 모였느냐? 교회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모인다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강조하는데 그 모임 속에 왜 모이게 하신 의도는 홀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인 거야. 불완전하게.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중에 한 분이 누구라도 나는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는 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나 홀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고 스스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고 스스로 나는 나 홀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 갈 때까지 자신 있다.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다. 이런 분이 있으면 손으로 거수 해 주시고. 없을 거예요. 불가능한 거예요, 불가능한 거. 홀로는 우리는 완전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공동체 안으로 우리에게 불러 주시고 서로 서로의 기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이 조화, 이 하모니. 이 이것을 이루어 가라는 겁니다.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에 관심이 많다. 헌신 하는 거예요, 그걸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헌신해 보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노인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끼리 모여서 팀이 되어서 함 섬겨보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어요. 뭐 아이만 보면 어쩔 줄 모르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모여서 그 일에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그 사역을 하는 거예요. 청소년의 문제, 자살의 문제, 중독의 문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팀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꿈을 꾸고 그 일에 동참하고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나에게 뭐가 와요? 기쁨이 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돈을 버는 것만으로 지위가 올라가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가치 있는 일에 의미 있는 일에 내 삶을 들여야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에요. 돈을 아무리 쌓아 놓아도 그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 어사분들 가운데서 우리 교회 어사분들 가운데서도 해마다 캄보디아로 여름 아 여름이 아니야. 추석 그 절기 연휴 때 해마다 캄보디아로 봉사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회적으로 뭐 생활이나 여유가 있는 분들입니다. 근데 휴가를 특별히 그 연휴에 내어어 다 명절 지키는 그때에. 따로 시간이 없으니까 그 시간에 캄보디아로 가서 봉사를 해마다. 왜 그 일을 합니까? 사실 그 일을 통하여 캄보디아 어떤 귀한 사역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수혜자가는 누구냐면 자기 자신이에요. 거기서 의미를 깨닫는 거. 그래서 보람을 깨닫는 거. 복에 서서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그런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어 일어나는 에너지를 통하여 자기에게 또 그 직업에 헌신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냥 교회를 다닌다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그 몸 안에서 서로 기여하는 것이고. 참여하는 것이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이 헌신하는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찾고 있는 것은 뭐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여러분 세상의 모든 조직은 어떤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는 거예요. 개인적 목적이 있단 말이에요. 세상의 원리가 돌아간단 말이죠. 주고받기 식이란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교회는 다른 거예요. 철저하게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나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나의 기쁨만을 위해서 아니라 형제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는 그런 공동체라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이 거기에 목말라 있어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가 어디 있느냐? 오늘 여기 있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 가는 일에 기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런 공동체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고 믿음 안에서 우리 각자가 이 부르심 앞에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에게 주신 한 가지 한 가지 그분을 기중하게 여기고 갈고 닦아서 주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들이 앞으로 벌어질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