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나는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 줬는데 내 결혼식에는 안 오고 축의금도 안 보낸 친구. 나만 만나면 자기 힘든 얘기 털어 놓으면서 말 돌리는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친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친구의 조건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진정한 친구야!' 이렇게 정의되는 사람만 친구 범위에 넣어야 할까요?
[0:31]네, 안녕하세요. 책을 쓰는 작가 남인숙입니다. 아 최근에는 남인숙의 '어른 수업'이라는 관계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 하세요? 나는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 줬는데 내 결혼식에는 안 오고 축의금도 안 보낸 친구. 손절해요. 자, 같이 먹고 1N 하는데 항상 자기가 계산하면서 슬쩍 돈을 덜 내는 친구. 손절해요. 그럼 이 경우는 어떠세요? 나만 만나면 자기 힘든 얘기 털어 놓으면서 내가 얘기를 하면 하나도 안 들어주고 말 돌리는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친구. 손절하죠. 자,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를 전부 다 정리하면 어떨까요? 정말 편합니다. 근데 대신에 내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죠. 이건 편하고 독립적인 삶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그리고 고립은 우리 인생에 해롭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무용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고 귀찮다. 그냥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다. 이런 주장과 생각들인데요. 아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많은 오해가 나오고 있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많은 분들이 독립적인 거하고 고립되는 걸 혼동하세요. 사람이 독립적인 건 중요합니다. 제가 25년간 책을 쓰고 또 독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깨달은 게 사람이 행복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하는구나. 이거였어요.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살면서 또 의존적인 사람들은 은은하게 불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순간에 혼자일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꼭 이 사람은 진정한 친구야! 이렇게 정의되는 사람만 친구 범위에 넣어야 할까요? 조금 바꿔 말하면 깊은 관계의 친구만 친구일까요? 여러분 드라마 좋아하시죠?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한테는 꼭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쭉 인연을 이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주인공하고 모든 일상을 다 공유해서 서로 모르는 게 없습니다. 감성적인 속이야기도 다 털어놔요. 그뿐 아니라 뭐 이상한 행동을 해도 다 이해해 줍니다. 술 마시고 주사 부리는 것도 막 욕하면서도 다 받아줘요. 드라마에서 이런 친구가 항상 나오는 이유는요, 간단합니다. 그게 구조를 만드는데 절친한 친구라는 설정이 굉장히 쓸모 있기 때문이거든요. 아 나는 속으로는 저 사람을 사랑하는데 상처받을까봐 자꾸 밀쳐내는 것 같아. 이렇게 주인공이 자기 마음을 혼자 주절주절 말하면 이상하잖아요. 그걸 대사로 받아 줄 상대역이 있어야죠. 그리고 주인공에 대해서 전부 다 아는 인물이 하나쯤은 있어야 사건을 전개할 때 편하죠. 그래야 누가 비밀을 흘리거나 주인공 위한다고 무리하다가 또 사건이 터지죠. 설정상 필요해서 만드는 건데 우리는 착각을 하죠. 저런 친구 하나 있는 건 기본이구나.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드라마로 볼 때마다 재벌 3세 미남 미녀면서 천지까지 한 주인공보다 이 주인공 친구가 더 비현실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외계인이나 도깨비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 속 친구 관계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완벽함은 현실이 없다는 걸 우리가 다 알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이 곁다리로 나오는 친구 관계는 별 의식 없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친구의 조건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민담에서 친구에 대한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부자집 아들이 돈을 쓰면서 막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다녔어요. 그 모습을 보고 그 아버지가 너한테 진정한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시험해 보자. 이렇게 제안을 했어요. 그리고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시체처럼 자루에 넣고 친구들을 찾아다닙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나 좀 숨겨 줄래? 아들 친구들은 전부 기겁하면서 아들을 돌려보냈어요. 근데 아버지가 찾아간 단 하나의 친구는 상황을 보자마자 시체를 지고 온 그 아버지를 집안에 들여줍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친구라고 만나는 사람들 다 소용없구나. 진정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런 몇 가지 교훈을 패키지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요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요. 살인한 친구의 범죄를 은닉하고 시체까지 같이 묻어줘야만 진정한 친구 시험에 합격한다? 아니, 친구 허들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전 못 해요. 제가 만난 수많은 독자들이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고 관계를 찾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하나더라고요. 진정한 친구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다는 거예요. 여러분, 친구가 뭘까요? 대답 잘 안 나오실 거예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내가 시체를 지고 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숨겨 줄 사람일까요? 저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시간은 정말 소중한 거잖아요. 내가 내 인생을 이루고 있는 한 조각을 잘라서 함께 쓰고 싶은 사람. 이런 감정 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관계에서 욕심을 부리게 돼요.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는 자꾸만 토탈 패키지를 요구해요. 자, 여기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저하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러면 이 친구하고 여행도 같이 다녀야 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이 친구하고 봐야 하고 맛집도 이 친구하고 같이 가야 하고 속상한 이야기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요? 만약 여러분이 성인이시고 이런 친구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관계에 참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친구가 여러분을 참아주고 있는 겁니다. 왜냐면 사람이 여러 면에서 그렇게 서로 잘 맞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청소년기에는 이게 가능합니다. 자아가 덜 자라 있고 취향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발달 단계상 친구가 목숨만큼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공유합니다. 근데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도 어른이 되어서도 너무 밀착해서 모든 면에서 함께 하는 관계는 분명히 둘 중에 한 명 아니면 서로가 참아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아야 하는 관계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친구로서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왜냐면 그 사람은 조마가 말씀드린 거.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 이런 사람이 더 이상 아니게 되거든요. 관계에 밀착 정도를 포기하지 못하고 깊은 관계에만 욕심 내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관계 사냥꾼이 됩니다. 관계를 사냥하는 것처럼 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자기 생활에 집중해서 잘 하다가 그 인생길에서 마주친 사람하고 잘 지내게 되는 게 보통 친구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근데 이런 분들은 조건이 맞는 사람을 콕 찍어 놓고 타겟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하고 소울메이트가 되기 위해서 막 노력을 합니다. 사냥할 때 추적하는 과정하고 비슷해요. 자신한테는 노력과 배려지만 상대방한테는 부담이 될 수 있죠. 그렇게 해서 관계가 틀어지면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반대로 뭔가 관계에서 든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하기 쉽습니다. 관계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 A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친구 딱 한 명이 있습니다. B는 1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 10명이 있습니다. 누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까요? B. 어, 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셨어요. 과거의 저는요, A처럼 관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 모든 걸 공유할 친구 한 명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 친구 달라고 막 기도도 했어요. 근데 지금은 B 유형으로 살면서 훨씬 만족스러운 관계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좁은 관계에서 예민해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의 관계에만 의지하게 되면 내가 딱히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어도 그 안에서 자꾸만 섭섭한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막 애써서 이해해 보려고 해도 잘 안 돼요. 깊은 관계건 얕은 관계건 여러 갈래의 관계 다양한 상호 작용을 하면 훨씬 무던한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 사이에 좀 섭섭하겠다. 이렇게 말할 법한 일도 아무 생각 없이 넘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관계가 딱 하나면 그거 하나에만 신경 쓰면 되니까 더 안정되고 편할 것 같죠? 근데 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유일한 관계라는 건 그만큼 그걸 잃을 때 타격이 크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감정의 무게. 이게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요즘은 MBTI로 성격을 분류하는 일이 많으니까 뭐 나는 I라서 여러 관계 싫어. 못 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향적이고 에너지가 적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수렴형 사고를 하는 내향인들이 좁은 관계에서 오는 예민함에 더 치명적일 수도 있어요. 가장 이상적인 건 얕은 관계를 여러 갈래 가지면서 동시에 깊은 관계도 한두 개쯤 있는 T자형 관계예요.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면 얕은 관계만으로도 괜찮습니다. 깊은 관계인 친구가 안 만들어진다고 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굉장한 내향인이고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책 작가가 된 것도 사실 이 이유가 컸어요. 그래서 한동안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히지도 않고 혼자 있으니까 편했어요. 그리고 누워 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와식 생활. 온라인에서 혹시 이런 종류 미션 돌아다니는 거 보신 적 있나요? 1년간 방 안에서 외출 안 하고 1억 받기. 연봉 2억인데 무인도에서 혼자 등대지기로 근무하기. 당신은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이 비슷한 게 지금도 끊임없이 많이 변형돼서 돌아다니죠. 이런 걸 보면 진짜 누가 1억 원 주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죠. 저는 이런 걸 보면 무조건 예스 하고 대답했던 사람이었어요. 한번은 택배 와 있다는 문자를 받고 현관 쪽으로 나가는데 거기 평범하게 그냥 놓여 있는 제 신발을 보는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어 왜 이렇게 낯설지? 생각해 보니까 몇 주간 그 신발을 신은 기억이 없는 거였어요. 그 정도로 움직이지 않고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덜컥 병에 걸리고 맙니다. 병명도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고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팠어요. 자율 신경도 이상을 일으켜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걸 치료하려고 애를 쓰다가 드디어 원인을 알게 됐어요. 그게 뭐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제가 너무 안 움직이고 안 걸어서 탈이 난 거였어요. 저는 책상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누워서 책 보고 하는 게 너무 좋았는데 그 시간들이 저한테는 해로웠던 거죠.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고 걷기 운동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저는 관계가 정신적인 걷기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분들이 걷기 운동은 운동도 아니라고 하죠? 일상적인 걷기 운동 한다고 뭐 특별히 건강해지거나 근육이 생기지 않거든요. 근데 안 하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상적인 움직임이 계속 돼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활동도 유지되고 하는 거죠. 관계도 비슷합니다. 신경 쓰이고 귀찮다고 해서 단절하면요. 관계를 통해 해소될 만한 감정들이 몇 배로 덩치를 키워서 나쁘게 되돌아오게 됩니다. 지금보다 약간만 더 내 경계를 벗어나면서 넓히자. 조금은 얕아도 상관없다. 이렇게 관계의 장벽을 낮추고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를 그렇게 즐기시면요.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플 때 아무 인연 없는 낯선 사람이 이렇게 손만 잡아 줘도 통증 수치가 내려간다고 합니다. 혼자서 카페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그냥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는 외로움을 덜 느끼고 사회성 회로가 작동된다고 해요. 관계를 경계하는 마음, 깊은 관계가 아니면 다 걷어내는 경계심이 타인을 필요로 하는 우리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울타리를 낮추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