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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BEST 설교 | 치유자 예수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장 29절 ~ 34절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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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자 오늘 이 본문을 이렇게 보면은 우리가 특별히 예수님의 이 복음서를 이제 읽으면 예수님의 행적을 이제 이제 더듬어 가게 되는데요. 이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의 그 사건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게 참 도움이 됩니다. 이것도 우리 상상력이 좀 필요하죠. 예수님이 가분암이라고 하는 동네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어 베드로의 장모를 만나고 또 열병에 들어있어. 그를 치료해 주는 장면. 어 예수님은 이미 이제 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우리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가 일어나고 이미 가르치시는 것들에 대한 그 권위가 나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어 예수의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그 권능이 어떠한가를 알았기 때문에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에게로 찾아오고 있어요. 예,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들도 예수님에게 이제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32절과 33절에 보면 저물어 해질 때에 이미 이제 어두워지고 있는 때인데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이제 어둠을 뚫고 여기저기에서 어딘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귀신 들린 사람들도 있고 이게 한두 명이 아니에요. 34절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병자들 또 귀신 들린 자들이 많았던 거죠. 우리가 이게 상상을 좀 해 보면 그 깜깜한데 그 당시에 뭐 뭐 가로수가 가로등이 있었겠습니까? 그런 곳에 병자들이 어두운 집에 몰려드는 거죠. 여기에는 경증 환자도 있을 것이고 중증 환자도 있을 것이고 환자들 가운데 이 병자들 가운데는 어린 아이들도 있고 나이 든 사람들도 있고. 또 병자들만 많이 지금 우글거리고 있는 게 아니고 귀신 들린 사람들도 있어요. 병자들이 누워있는 곳곳에 불편한 야전군 병원과 같은 이런 곳에 뭐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막 뛰어다니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곳곳에서는 병자들이 신음 소리를 내고 끙끙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 여러분 이제 이게 지금 무슨 모습을 지금 보여줍니까? 우리 성경에서 주님이 지금 접하고 있는 이 세상. 이 온전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는 겁니다. 깨어진 죄로 인하여 깨어진 세상. 어 정말 그 어둠과 비극이 이렇게 뒤섞여 있는 그런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틀림없이 이 본문의 이 장면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참 불행한 비극적인 그런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가부남이라는 동네는 큰 동네가 아닙니다. 예 작은 도시예요. 그런데도 많은 병자들이 뭐 멀리서 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동네에서 그 병자들이 그렇게 많았고 귀신 들린 자들이 몰려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 그것은 가분아옴이라는 한 동네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런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의 모습은 죄로 인하여 고통하는 인류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이 피조의 눈에 새기는 모든 만물의 모든 들 짐승들까지 식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안다. 사실 보면 이 세상의 전체가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고통하고 있는 지금 이 병자들 귀신 들린 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이 세상의 모습이. 겉으로는 이 세상이 뭐 멋져 보이고 뭐 어떤 때는 휘황찬란하고 뭐 번쩍번쩍하고 운명이 고도로 발전해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세상은 만성적인 고통과 어 비극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여러분 아픈 사람들 우리가 보죠? 뭐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도 아픈 분들이 있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병원 입원해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크고 작은 병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항상 환자들이 북적거려요. 불치병도 많고 난치병도 많고 뭐 아이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기도 하고. 또 사건 사고로 인하여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한국은 보면 사건 사고로 죽는 사람이 참 많아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통계를 내는데 그런 얘기를 해요. 하루에 세계 전체 오늘 이 지구촌 전체 하루에 사람이 죽는 사람의 숫자가 웬만한 작은 소도시만큼 숫자가 그렇게 죽는다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 죽고 있는 거죠. 코로나 팬데믹의 현상이 금방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뭐 계속 뭐 지금 세계도 온 세계가 지금 뭐 앓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코로나로 인해서 몇 달 불과 이제 몇 달 동안에 이 코로나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 몇 명에나 되나요, 여러분? 퀴즈입니다. 어제 통계로 보니까 한 45만 명이 넘었더라고요. 45만 명. 그러니까 죽음을 통계 사람의 죽은 숫자를 통계로 내니까 뭐 통계로 보니까 우리가 별로 뭐 별로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 우리가 가까운 사람 중에 한 분이 죽었다 한 사람이 죽었다 할 때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여러분? 그렇죠? 통계로 보니까 45만 명이 50만인지 100만인지 우리하고 별로 느낌이 없지만 그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코로나로 인하여 죽은 사람의 가까운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강도는 슬픔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 외에도 이 코로나 외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사고로 지금도 고통당하고 또 죽어 가고 있어요. 공사 현장에도 일어나고 뭐 의료 사고로도 일어나고 뭐 환경 오염으로 인해서 일어나고 각종 암으로도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요즘은 정신적인 이런 질병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경증적인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보면 육체보다 더 악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정신적인 질병이에요. 여러분 전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질병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도 죽는 경우도 많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6.25 70주년 말씀 70년 전에 이 대한민국에 끔찍한 세계사에 유례 없는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초토화됐죠. 이런 사실을 보아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쟁 이전에 그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트라우마가 있어, 트라우마. 왜냐하면 뭐 지나가면서 뭐 저희 아버지 세대를 그랬어요. 예 지나가면서 그냥 폭격이 내려지고 뭐 죽고 다리가 날아가고 그냥 뭐 가족이 헤어지고 생이별을 하고 죽는 일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거예요. 여러분 이 6.25는 우리 앞에 수많은 젊은이이 죽은 거죠.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우리 한국에 와서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목회할 때도 그 가까운 이 콘코드 호스피탈이 있었는데요. 거기 이제 제일 위층에 보면 한국 전에 참여했던 호주 이제 그때는 젊은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노인이 되신 분들. 부상을 당했는데 일평생 그분들은 이제 부상자로 이제 그 병원에서 이제 생애를 마감하는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이제 그분들을 저희들이 가서 이제 위로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요. 전쟁에 이제 상처들이죠, 상처. 그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인데 온 세계 젊은이들 안에 여전히 그게 이제 겪 겪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지금도 세상은 분쟁과 소요 또 전염병 난치병 이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여러분 전쟁도 그렇습니다. 쉬지 않고 일어났어요. 사실 불과 여러분 2차 세계대전, 1차, 2차 세계대전, 2차 대세계대전이 1945년에 종전을 하는 겁니다. 뭐 불과 오래되지 않았죠, 사실은. 유대인들을 죽이는 홀로코스트 또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같은 데서 일어난 인공청소. 내전들이 일어나면서 막 그 민족 간의 갈등에 의해서 수탄 사람들을 그냥 그냥 죽여 버리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 외에도 여러분 기근으로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아서 죽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지구촌에 있습니다. 아시아권도 아프리카도 마찬가지. 아프리카 같은 데는 에이즈로 죽는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어요. 어 오죽하면 빌 게이츠가 이 에이즈 퇴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의 펀드를 어마어마하게 기부하는 것도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죽음으로 이 질병으로 전염병을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자 오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통이 이 인류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뭘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망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이런 문제를 경감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고 그것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가? 없다는 거예요. 통증 완화를 위한 치료 진동 진통제는 개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고통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오늘 이 세상은 신음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이 처음 이 목격한 공생애의 목격하고 있는 이 장면은 신음하고 있는 세상. 예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 그래서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 마주한 세상을 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먼저 발견하는 것은 주님은 고통하는 이 백성들에게로 세상에게 다가오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인생들이 겪는 삶의 복잡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시다. 여기 동정이라는 이 단어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공감한다 이런 정도가 아니고 주님이 몸소 그 고통을 경험하신 것과 똑같은 느낌으로 주님이 그 고통을 느끼시므로 경험하시므로 우리와 똑같은 느낌으로 우리를 어 동정하신다는 얘기입니다. 누군가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나와 같은 아픔을 느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나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여러분 세상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르여 주게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요. 마음을 같이 해 주고 싶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고통을 위로해 주려고 하지만 곧 자신의 현실로 돌아가 버려요. 아무로 고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군가 찾아와 아 주는 것만 해도 참 그렇게 고맙더라는 거예요. 그러나 늘 곁에 함께 있어 줄 사람은 없어요. 가족 관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은 여러분 연세 드신 어른들도 부모님들도 이 이 요양원에 다 보내야 돼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 이 요단 요양원에 갔어요. 몸이 약해지고 병들어 누워있으면 사람들은 상처를 입기가 쉽습니다. 그 누구도 나의 고통에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망가지고 깨어져 힘들어 있는 어떤 어려운 뭐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서 깊이 대화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요 몸이 막 짓눌려요. 왜냐하면 감정 이입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고통이 나에게는 몰려오는 느낌이 왔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되면서 힘이 들어, 힘이 들어. 그래서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면 온 가족이 다 힘들어져요. 그리고 그 병이 지속되면 모두가 다 지쳐 버려요. 그래서 병자를 돌보아주고자 하지만 늘 함께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병자는 홀로 남게 되는 거예요. 홀로 남아요. 나중에는 결국은 그때 밀려오는 외로움은 큰 것입니다. 그래서 병에 걸리는 순간 사람들은 뭘 느끼느냐면 소외를 느낍니다. 소외. 누구도 나의 고통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찾아오는 소외예요. 우리가 잘하는 이여령 교수님이 그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에 자기가 열병으로 알아서 온몸이 불타고 있는데 어머니는 바깥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 그 어머니가 자기의 뺨을 만지는데 그 바깥의 겨울 바람을 마시고 돌아온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차더라는 거예요. 자기 열덩어리. 근데 아들이 열병이 나서 그 뜨거워서 고통하는 걸 보면서 그 어머니가 손을 딱 만져 주는데 그 어머니의 손과 자기의 뺨 사이에 그 아주 얕은 막 다을 수 없는 거리를 느꼈다는 거. 어머니와 자기가 느끼는 그 어머니가 나의 이 고통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그 얇은 막이지만 그게 어마어마한 간격이라는 걸 자기가 느꼈다고 얘기한다. 여러분 요즘 세상이 갈수록 냉혹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데는 부모가 자녀를 또는 자녀가 부모를 방치하기도 하는 이 비정한 일들이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고 있는데 주님은 오늘 가장 약한 자들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다가오시고 그 고통하는 자에게 마음을 기울여 주시는 분이시다. 32절을 보면 여러분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그리고 35절을 보면 무슨 말씀이 나오느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러니까 예수님의 지금 동선이 지금 보이죠? 빈틈없는 스케줄이에요. 아침부터 저녁 밤 늦은 시간까지 경물을 시달리고 병자를 돌보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분 귀신 쫓아내는 게 이게 보통 이게 작은 작업이 아닙니다. 병자를 고치는 일들도 이게 그냥 일이 아니에요. 그 병자에 갖고 있는 모든 애환과 절망과 고통을 내가 다 끌어 안는 거죠. 그죠? 여러분 이 치유 사역을 할 때 그냥 병자들을 기도할 때 그냥 그냥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진액을 쏟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밤새 그 일을 하시고 새벽에 또 일어나셔서 또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7:23]이 짧은 본문이지만 이 병들고 귀신 들린 자 가부남에 이 신음과 고통으로 가득한 이 동네에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셨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세워 주셨다는 사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 주님이 찾아오셔서 답이 없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답이 되시고 고통과 저주를 뛰어넘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일어나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고 이 승리의 주님을 이 고통에 시달려 답이 없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부활의 예수를 소개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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