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위험한 예배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4-6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위험한 예배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4-6 |

CTS BEST 설교

40m 27s1,893 words~10 min read
Auto-Generated

[0:00]오늘의 십계명 네 번째입니다. 위험한 예배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가?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배, 예배 전쟁이에요. 창세기에서도 인간의 타락 그 출발점에 예배가 있어요. 예배가 삐뚤어진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져요. 예배가 세워지면 모든 게 다 세워집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게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을 보면 너무도 분명해요. 예배에서 모든 게 성산이 결정됩니다. 자, 일계명과 이계명이 중요하다 그랬어요. 근데 일계명과 이계명을 자세히 보면 언뜻 보면 비슷해요. 뭐가 구분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또 2절에서도 이계명에서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 그 일계명은 누구를 섬길 것인가? 후 누구의 누구를 섬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계명은 하우 어떻게 섬길 것인가? 일계명은 섬김의 대상에 대한 것이라면 이계명은 섬김의 방식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일계명은 하나님 대신 거짓된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고 이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되 거짓된 방식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 그 말씀입니다. 섬김의 대상을 우리 마음대로 해서 안 되는 것처럼 섬김의 방식도 우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 섬김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 마음대로 섬기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된다. 잘못된 예배가 많아요. 그 하나님이 신경 쓰시는 곳은 어디냐? 예배예요, 예배. 근데 이 예배가 잘못된 방식으로 가는 이 예배가 뭐냐? 우상 숭배라는 것입니다. 우상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시죠. 우상 숭배는 하나님과 결별을 선언하는 거죠. 그 하나님 편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거예요. 우상을 섬긴다는 얘기는 하나님 당신과는 이제 상관없습니다. 난 당신과 바이바이 그런. 그 하나님이 그 부분을 용납하지 않는 신흥. 동시에 우리에게도 우리 스스로 그 우상에게 속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하나님이 예의주시하는 부분입니다. 자, 인간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늘 만듭니다. 십계명 오늘 4절에 보면 오늘 4절을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러니까 형상화 해서는 안 된다는 거. 우리 우상을 만드는 이 것은 어떤 형태로도 물 아래 땅 밑으로 또 하늘에 땅 위에 어떤 것도. 근데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 항상 어떤 문화든지 우상을 만드는 형상화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죠. 애굽은 송아지. 송아지를 신으로 섬겼어요. 상을 송아지 상을 만듭니다. 특별히 1년 된 상. 블레셋은 다곤 신상을 섬겼는데요. 이 다곤은 머리는 생선이고 몸은 사람입니다. 업과 관련된 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과 연관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태양, 달, 별, 나무, 돌, 짐승, 모든 걸 막나해서 인간은 형상화 했습니다. 형상화. 자, 레위기 26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어떤 것이든 섬김의 목적으로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 로마서 1장 23절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자, 인간이 참 독특해 보이는데요. 이 우상에 들어가면 아주 무지몽매해지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 첨단의 첨단을 걷는 이 비행기 활주로에도 새 비행기를 사면 다 그 고 고사를 지내죠. 차 사가지고도 요즘도 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얼마 전에 보니까 어디 구석에 막 명태 머리하고 막 이렇게 특별히 돼지, 돼지, 돼지를 돈을 다 꼽아 놓고 특별히 웃는 돼지. 웃는 돼지는 부르는 게 갑이에요. 그건 갚으면 깎으면 안 되는 거야. 그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거죠. 하 돌보아 달라고 돌보아 달라고. 이 바울이 아덴이라는 지방에 갔을 때 그곳에 희한한 신이 하나 있어요. 아덴이라는 아테네죠. 그게서 가서 가 보니까 사람들이 절을 하고 섬기는데 보니까 그 앞에 신의 이름이 뭔가 하면 알지 못하는 신이에요. 그 맹목적인 거죠. 아주 맹목적이고 무지한 인간의 모습이 우상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거예요. 공부를 많이 하고 아주 똑똑한 거 같은데 그 구상 우상 앞에 가면 맹목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거대한 신상을 만들거나 아주 작으면 크게 만들거나 신상은 형상을 만들 때 크게 만들거나 아니면 아주 작지만 몇스럽게 만드는 거예요. 인도네시아나 이런 베트남이나 이런 데 가 보면 아주 무서운 작은 데 무섭게 만든 거예요.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6:25]자, 이러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걸 자기가 만든 거거든요. 인간이 만들었는데 그것을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이고. 자, 눈에 보이는 이 우상은 허망한 것인데요. 이사야 선지자가 그 우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설명하면서 이제 그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 대해서 조롱하는 내용이 이사야서 44장 10절로 20절까지 있는데 좀 길지만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 보시면 되겠습니다.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드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여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덮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덮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우상을 만든 그 나무 그걸 기르고 만들어서 그 나무를 가지고 패해 가지고 불을 구워서 고기도 구워 먹고 남은 나무로 또 우상을 만들고 그게 내 신이다, 신이다.

[9:41]기도하고 들어 달라는 거. 이 조립된 신 조각된 손 그 인간의 손으로 조각된 그 신을 섬기는 인간의 그 무지 또 연약성 이것을 이사야가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여러분 그런 게 많았죠. 우리나라도 보면 별걸 다 형상화해서 그게 하나님이라고 믿고 섬긴 거예요.

[10:08]돌에도 있기만 끼면 그 앞에 물을 모셔놓고 떡도 갖다 놓고 나무도 조금만 오래되면 그게 뭐가 있는 것처럼 신령한 거 같아 가지고 그 밑에 그냥 백일 기도를 하는 거예요. 백일 기도. 아들을 주시옵소서. 아들을 주시옵소서. 물을 떠다 놓고 얼마나 기도해요. 그래서 나무가 이렇게 큰 오래된 고목이 속이 비어 있다는 거예요. 줄거나 없는데 계속 비니까 속이 상해서 그만 빌어라. 줄 끊은 놈들 계속 비니까 말이야.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런 거예요.

[10:52]여러분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는 동안에 산 아래에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어요. 출애굽기 32장 1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한 거예요.

[11:32]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거. 그들이 하는 말이 뭡니까?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지금까지 인도해 낸 그 모세의 존재를 부인해 버리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인도를 무시하는 거죠. 그러면서 얼마나 신속하게 우상을 만들었는지 모세가 산에 올라간 지 40일 만에 모세가 자리를 비운 지 40일 만에 일어난 거죠. 그리고 백성들과 금을 모아서 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금 송아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라고 하자 그런 거예요. 그 다른 신을 섬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라고 하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뭘 만들었어요? 금송아지를 가지고 형상한 것입니다. 이 아론이 누굽니까? 모세 형입니다. 모세와 너무도 가까이 함께 지내 오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이끌어 왔던 이 아론이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백성들의 압력에 의해서 하나님보다 백성들에게 소리에 듣기를 기울이고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12:45]자, 여러분 이건 뭡니까? 그들은 보이는 하나님을 믿고 싶은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하나님.

[13:10]그러니까 형상을 만들어서 바라보아야 안심이 되는 거예요. 그게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보는 것에 약하고요, 보는 걸 좋아해요. 예,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은 강력한 영향력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면 그기에 내가 사로잡혀요. 보는 것에 끌려갑니다. 보는 것은 나를 사로잡아요. 그리고 보다 보면 그것이 그 안에 내가 지배를 당하게 돼요. 그러나 여러분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 영이신 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죠. 그리고 하나님을 형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으로도 형상화 될 수가 없어요. 창조주이신 분이 피조물의 어떤 것에 의해서 형상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분을 이 피조 세계의 어떤 것으로도 비유를 둘 수가 없어요. 비유가 되는 순간 이 피조물의 어떤 사물로 사물을 가지고 비유를 하는 순간 그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왜곡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삼일체를 배울 때 굉장히 어렵거든요. 삼일체적이 우리가 우리의 형상의 이 이 세상의 우주 만물의 어떤 피조의 세계로 하나님을 존재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뭐 태양을 가지고 태양 자체는 하나님이요 그 열기는 성령이요 빛은 예수 그리스도 이 다 그렇게 그건 다 거짓말이 되는 거예요. 한 부분만 얘기하는 거. 한 부분만.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형상화 되는 순간 그 신은 묶기 묶이는 거예요. 그 어떤 개념에 묶이는 거예요. 그 비유된 것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상화 되는 순간 그 형상화 된 것을 가지고 뭐예요? 그 형상화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뭐냐면 형상화 된 그 신을 자기가 소유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형상화 한 그 우상을 자기 집 안에 들이죠, 그렇죠? 이 집 안에 들어서 내가 소유하는 거예요, 신을. 내가 조정하는 거예요. 이사 가면 또 데리고 가고. 그 너무 큰 우상을 만들면 이사 갈 때 힘들기 때문에 적당하게 만들어요. 어떤 데는 수레에 싣고 가고 그러다가 툭 넘어지고 그러다 목이 부러지고 그게 무슨 신이냐는 거예요.

[37:06]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난 거. 자, 잠언 4장 23절. 너무 중요한 말씀이죠, 여러분.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37:29]한 번 더 읽. 너무 중요한 말씀 여러분 잘 보셔야 돼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이 전쟁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의 핵심은 뭐냐면 마음이에요, 마음. 마음 안에서 모든 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을 보세요.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와 있는 여러분들의 행위를 보시는 게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고요. 주일날 꼬박꼬박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예배라는 행위는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으면 그 예배가 예배가 아닌 거예요. 안 받으시는 거예요. 카운터가 안 되는 거예요, 카운터가. 이 하나님은 예배의 순서를 받으시는 분도 아니고 예배의 행위를 받으시는 분도 아니고 예배 예배를 드리는 우리 마음을 받으신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이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여러분 우리의 예배라고 하는 것은 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드리는 예배만은 예배가 아니고 우리 일상의 모든 삶이 예배해야 되죠. 그래서 그 일상 속에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향했던 사람들이 오늘 주일이라고 하는 한 지정된 시간에 나와서 함께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 예배인 거죠. 근데 우리의 예배는 뭐예요?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너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그고 첫째 되는 게 이 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나를 입술로는 존경하는데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얘기하는 거잖아.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어떤 제사 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 근데 나중에는 그 마음이 그 재물에 표현되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는 말라기서에 보면 정상적이지 않는 재물을 드리는 데 그 재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재물을 드리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 재물에서 표현이 된 거잖아. 잘못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 거.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이 숨어 있는 것을 뿜어내는 거. 그래서 우리 예배는 사실 위험한 예배예요. 왜냐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여기에서 깨뜨리는 작업들이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를 속이는 우상의 정체를 드러내야 하는 거죠. 거짓된 예배의 정체가 드러나고 참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쏟아 넣는 시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추어내고 회개하는 시간. 그러니까 여러분 예배는 전쟁이에요. 그리고 그 예배에 우리 안에 있는 그 우상을 밝혀내고 드러내고 그것을 깨뜨리고 하는 이 작업은 사실 작은 작업이 아니고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