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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BEST 설교 | 탐내지 말라 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1- 17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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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십계명 서른 번째 오늘 하고 십계명이 이제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한 3주 정도 또 마무리하고 끝내겠습니다. 십계명 정리하는 정리편을 조금 더 해야 되기 때문에 한 3주도 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마지막 계명인 이 탐내지 말라가 참 열 번째 계명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계명입니다. 계속 우리를 부딪치게 하는 매우 우리에게 필요한 계명이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계명이다. 저도 말씀을 계속 3주간 이 마지막 계명을 살펴보면서 저 개인적으로도 적지 않게 많은 부딪침을 가지고 이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한국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절실하고 또 중대한 계명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이미 탐욕이 가득 찬 현대 문명 사회의 거대한 싸움터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탐욕거리들이 거세게 우리의 영혼을 파고 들어와 웬만한 믿음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매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우리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실종되는 것이고 우리의 영혼은 세상에 팔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우리 안에 탐심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한 순간도 만족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그랬습니다. 언제나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맛있는 걸 좀 먹고 나도 그걸로 끝내는 게 아니야. 좀 더 맛있는 집 없냐?

[2:16]재미있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서도 그 정도면 만족할 것 같은데 더 재미있는 것 없냐? 더 좋은 것 없냐? 인간의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짐승들은 배가 부르면 만족하지만 인간은 유일하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 우리 안에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 욕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문제는 이 욕망이 잘못된 것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 자신만을 위해서 지나치게 치우쳐질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욕망을 가르쳐 우리는 탐욕 혹은 욕심 탐심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욕망은 그것이 이루어져도 불행하게 되고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몸부를 치다가 불행해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탐심을 가지면 그것이 나쁜 것인 줄 알지만 쉽게 멈추지 못합니다. 결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불법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탐심을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그 우상 숭배라는 말에서 우리는 매우 몸칫하게 되죠. 왜? 하나님이 구약 성경을 들여다보면 가장 맹렬하게 노를 바라신 죄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만큼은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는 왜 하나님이 우상 숭배에 대해서 그렇게 집요하게 대하시는가? 우상 숭배야말로 모든 죄의 온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제가 그 우상 숭배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4:25]여러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그때부터 인간은 속수무책이에요. 막 나가는 거예요.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따돌리는 행위입니다. 모든 불행과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이게 탐심이고 곧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탐심은 자신의 힘으로 만족을 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행복하기 원합니다. 또 행복해야 합니다. 문제는 행복을 구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기준 안에서 행복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경계선 안에서 행복을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탐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행복 지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행복 지상주의자들은 누구입니까? 자신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 주변에 어떤 상황과 상관없이 또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든 상관없이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목적도 자신의 행복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려고 신앙생활하고 교회를 다니는 이유도 기도하는 이유도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모두가 최고 목표는 자기의 행복이에요. 모든 것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웃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나님까지 도구로 삼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자신의 행복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거죠. 결국 누가 신입니까? 자기가 신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탐심이라고 하는 이 주제 앞에 우리는 이 우리 자신에게 정직한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내 영혼 깊숙한 곳에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갈망하고 있는 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갈망하고 있는 그것은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날마다 생각합니다. 날마다 꿈꿉니다. 날마다 그것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거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분노합니다.

[7:27]그것 때문에 울고불고하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결국은 내 영혼에 갈망하고 있는 그것을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그곳을 향하여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갈망하고 있는 것을 우리 임의로 부인하거나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갈망은 아무리 눌러 놓아도 어느 순간인가 터져 오르는 용수철과 같습니다. 갈망은 어떤 형태로든 채워야 합니다. 해결되기 이전에는 멈추지 않는 것이 갈망의 속성입니다. 즉 우리의 영혼은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어요. 그리고 언제까지요? 그것이 채워질 때까지. 자,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기대와 갈망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CS 루이스는 우리의 갈망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니라 너무 약한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거죠. 우리의 갈망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니고 너무 약한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더 깊은 갈망을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너무 쉽게 대체물로 빨리 만족해 버리고 만다는 거예요. 대개는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을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손쉬운 대체물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의 원인일 것입니다. 자동차에게는 맞는 연료가 있습니다. 그 맞는 연료를 넣어야 움직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엉뚱한 연료를 넣으면 고장이 나게 돼 있습니다. 인간은 만족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계속 다른 것으로 자기를 채우려고 합니다. 정상적인 부부 관계 안에서 만족을 해야 하는데 다른 것에서 만족을 구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이나 사업에서 정상적인 수입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대박을 찾다가 사고를 만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넣어 놓으신 갈망은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시기 위한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그 갈망을 깊이 들여다보고 더 깊은 갈망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은 그 깊은 곳에서 찾는 것은 그 영혼이 갈망하는 찾는 것은 하나님이다. 어떤 갈망하던 것을 손에 쥐어도 만족이 안 되는 것은 최종적인 목적지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어떤 갈망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결국은 하나님께로만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이고 은혜가 되는 것이죠. 헛된 것을 추구하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이게 아니구나. 이걸 빨리 깨닫는 그 깨달음이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신자가 누리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을 때 우리가 우리 인생의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전도서가 참 좋은 책입니다. 전 전도서를 참 좋아해요. 전도서가 너무 좋은 책입니다. 이 연초에 전도서를 꼭 읽으시길 바라고 저는 이 전도서가 솔로몬의 노년에 지은 책이지만 이 전도서를 누가 읽어야 되냐면 청년 때 읽어야 돼. 다 살고 나서 후회하고 있을 때 읽으면 그것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청년 때 이 전도서를 읽어야 돼요. 쓸데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쓸데없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잡으려고 애를 쓰는 거죠. 헛 그래서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25절이 그 결론이죠 사실은.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여러분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다음 주일 날 여러분들 오시면 이 튤립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2:26]이렇게 아름답지만 너무도 빨리 시든다는 거. 모든 것은 풀과 같다. 풀은 여러분 사실 뿌리가 없어요. 있지만 아주 얕아요. 그러니까 금방 마르고 사라지는 거죠. 여러분 세상에 주는 만족, 세상에 주는 행복, 세상에 주는 기쁨이 그렇다는 거예요. 뿌리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쾌락이라고 하는 거예요. 금방 사라진다는 거.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갈망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풀고 이 사라지고 마는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시편의 시인은 이런 갈망을 합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여러분 이 문구를 보면요. 굉장히 절박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한번 볼까요? 이게 아니에요. 내가 가능하다면 하나님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나는 하나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얘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을 갈망함이 너무 깊어서 내가 고통을 겪는 거예요. 갈급하다는 이 상태는 그 물을 목이 타는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절정에 지금 도달해 있는 것을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렬한 갈망.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5절에 보니까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네 낙심하는 이유가 딴 게 아닙니다. 지금 돈이 없어서 낙심하는 게 아니고 다른 세상의 것이 없어서 낙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래서 2절에 이런 표현을 하죠.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뵐까? 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인생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갈망을 채울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갈망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향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약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데 있는 거예요. 탐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 탐심이 문제가 되죠?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갈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함이 식어진 그 자리에 다른 대체물이 끼어드는 거죠.

[15:47]하나님 대신 만족시켜 줄 것들이 라오디기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미지근함. 미지근함. 그 원인이 어디에 있어요?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배부름이에요. 그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배부름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 세상에 대한 갈망이 더 깊어지면서 그들은 영적으로 해의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시편 42편을 조금 전에 이 보았던 이 42편을 보면 계속 무엇이 나오느냐면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내 영혼아. 시는 영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가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혼의 상태입니다. 영혼에 대한 정직한 직시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 관심이 있습니다. 십계명의 핵심이 뭡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묻는 것이죠. 그러면서 너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그냥 말하지 않고 어떻게 얘기하죠? 너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기서 마음을 다하고라고 하는 이 표현이 뭘까요 여러분?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세상의 쾌락이 우리의 영혼에 밀고 들어온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이에 치고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죠. 우리의 영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것들로 널려져 있 마귀는 우리의 영혼에 세상의 것들에 목마르도록 막 부추기는 유혹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거대한 신앙의 주제가 뭡니까? 그 하나님을 갈망해야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미국 침례교 소속인 존 파이퍼 목사의 메시지 주의 핵심 중에 하나는 뭐냐면 그는 하나님을 갈망함이 그의 메시지 전 주류를 이루어요. 디자이어링 가시라는 표현을 써요. 그의 설교의 초점이 항상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삶에 어떤 주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주제가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 날마다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거. 그 안에 모든 게 있다는 거예요. 지금 목말라 하는 게 뭐냐는 거예요. 배고픔의 문제가 뭐냐는 거예요. 당신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가 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에 굶주려 있습니까? 무엇에 목말라 있습니까?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저는 목사님 저에게도 질문을 합니다. 네가 뭘 갈망하느냐? 더 많은 교인, 더 멋있는 건물, 더 유명해지는 목사.

[19:00]여러분 일본 식민지 시대 그 참으로 힘든 시대를 살았어요. 전쟁의 유교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도 여기 계세요. 한 세대 안에 그 기가 막힌 역사의 질곡 전쟁의 초토화 속에 대한민국이란 존재는 재더미에 서 있던 그 민족. 치독하게 가난했던 나라. 아프리카의 빈국보다도 더 가난했던 나라.

[19:32]저는 어제도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면서 갑자기 설교를 준비하면서 요즘 여기 가면 되있어요. 잘 생각하는데요.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하 놀랍다.

[19:48]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던 얼음을 깨고 그 거친 옷들을 빨래하는 어머니 생각도 나기 때문에 수돗물이 들어왔던 적이 수돗물이 안 들어왔던 적도 있었거든요. 저 어릴 때만 해도.

[20:17]따뜻한 쌀밥 한 그릇 못 먹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20:25]오늘 전쟁과 일제의 시대에 그 경험을 가졌던 그 세대들이 살아있는 이 시대의 동시대에 이 대한민국이 이렇게 기적적인 번영을 이룬다는 것은 세계가 놀라는 거죠. 어찌 우리나라가 미국에 애플과 같은 세계적 기업을 세계적 기업을 위협하는 이런 기업들을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죠 사실은. 국민 소득은 늘어났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풍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21:05]그런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경제적 도약으로 인해 가난의 때가 벗겨지다 보니 폐해도 참 많이 생겼습니다. 급속한 발전에 우리가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21:25]물질을 다룰 영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물질에 비해 정신이 너무 빈곤한 게 문제예요. 너무 갑작스러운 물질의 부요에 우리의 정신적 준비가 안 돼 있는 거예요. 찾아온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주기보다 불행을 만들고 만 경우가 너무 많아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우울증이 왜 이렇게 많이 늘어났는지. 가정은 왜 이렇게 많이 깨어졌는지. 지독한 개인주의는 너무도 심화되어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좋아했던 정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때를 우리가 맞고 있어요. 찾아온 경제적 변화에 우리 안에 있던 탐심이 그 가난에 찌들렸던 우리의 영혼이 웅크리고 있던 그 탐심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거예요.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사과가 팽배해져 가고 있습니다. 남에 되는 남에 대한 배려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섬김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탐욕은 끝이 없고 갈수록 더 살벌해지고 더 무정하고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세상. 우리에게 진정한 이웃이 지금 있는가?

[22:56]십계명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를 시선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23:05]성도 여러분 탐욕은 엄청난 에너지예요. 그 탐욕하는 것을 향하여 죽어도 가는 거잖아요. 죽는지 모르고도 그 탐욕의 그 냄새가 나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잖아요. 탐욕은 엄청난 에너지예요. 그것의 방향을 틀어 주지 않으면 나도 죽고 남도 죽는 거예요. 욕망은 거대한 힘입니다. 그것을 섬김으로 전하지 않으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가 없어요. 탐욕은 웅켜지고 있는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말하는 거죠. 내려 놓으라고 이웃을 위하여. 내가 스스로 내려놓으면 그것은 선이 되는 것이면 타위에서 억지로 내려놓으면 그것은 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허무한 것입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는 그것으로 살다 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24:21]여러분 우리는 채워져야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나누어야 만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디자인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나만 결코 만족 내 배가 불러 행복하도록 인간을 그렇게 설계해 놓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내가 배가 불러도. 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과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25:08]우리 영혼은 이 세상에서 끝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영혼은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영원을 위하여 설계되어져 있습니다. 이 땅에 초점을 맞추고 살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탐심에 잘못된 것은 뭘까요 여러분?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하는 거예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알다가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에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원 영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전도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날들 동안에 악인의 번성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어요. 지상에 천국을 우리는 꿈꾸지 않아요. 다가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순간적인 만족을 유보하고 영원한 생명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 어떤 불족함을 겪고 있다면 그 부족함 때문에 그것을 더 채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더 영원을 사모할 수 있다면 그 부족함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을 당하기 매우 쉬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출연 블랙 시트의 출연 오늘 중국, 일본, 동남아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 문화는 경제 패권주의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경제가 최고의 가치라는 시대를 삽니다. 사람들은 돈이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점점 더 물질적 유혹이 강해져가는 이 시대에 그에 반해 영혼은 한이 없이 파리해져가는 시대.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이야말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내 탐심을 채우며 살아갈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추구하며 오늘 현실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영혼에게 질문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그것을 쫓아 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모두가 하나님 그분만을 갈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의 탐심을 잠재우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고 내 안에 탐심이 제거될 수만 있다면 탐심이 영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지만 서서히 소멸되어져갈 때 우리에게 그때 비로소 자유가 올 것입니다. 기쁨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부요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탐심을 잠재우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거지로 살 것입니다. 오늘 참된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교회 다니는 것으로는 이 거대한 우리를 유혹하는 끌어당기는 이 문명 사회의 거대한 이 물질주의가 우리를 지우 흔들 거예요. 단순한 종교생활로 교회 출석으로는 이 막강한 이 물질의 힘을 결코 이길 수가 없어요. 소유하라고 외치는 그 소리를 잠재울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 그분만을 갈망할 때 그분 안에서 주시는 참된 만족이 유일하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시고 날마다 영혼이 깨어 이 세상의 것들 때문에 영혼을 영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고 영혼을 추구하며 승리의 길로 나아가는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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