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자, 오늘은 어 신명기 16번째입니다. 16번째 6계명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자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참 이 계명이 참 필요한 시대입니다.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어떤 시대보다 필요한 메시지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너무 인명 경시가 심해졌습니다. 너무 다양한 형태의 예전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살인 사건들이 연일 신문만 펴면 언론에서도 계속 우리가 확인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문화적으로 폭력적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이 할리우드 풍의 영화들, 이 미디어들이 많이 영향을 준 것도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폭력적이고 이제 한국 영화도 만만치 않아요. 어떻게 하는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연구를 하는 거죠. 끔찍한. 그래서 너무 심하니까 그런 영화를 보고 온 학생들은 막 구토가 나는 거예요. 감당이 안 되는 걸 보니까 역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모방하는 살인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 이 살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사실 많이 있죠. 낙태도 해당될 수 있고 자살도 해당될 수 있고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거니까. 안락사 문제, 사형에 관련된 거, 전쟁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고의적 살인이 있고 과실치사도 있고 직접적 살인도 있고 감접적 살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1:56]히브리어에서는 죽이는 것에 대한 단어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충 8가지로 크게 나누는데요. 오늘 6계명에서 언급한 살인이라는 이 히브리어 단어는 라차라고 하는 단어인데 불법적으로 살인을 사람을 죽이는 걸 말합니다. 짐승을 말하지 않고 다른 것을 아니고 불법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법적인 살인 행위를 금지하는 단어가 라차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자, 우리는 일반적 6 6계명을 대할 때 어떤 어 일반적으로 탁 대하는 느낌은 나와 상관없는 계명처럼 여길 수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거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특수한 어떤 사람이나 중 어떤 악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다. 이 6계명을 넘겨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대하는 태도는 외적인 어떤 직접적 살인 행위도 있지만 율법의 근본적 정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정신.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본래 의도하신 게 뭔가 이걸 찾아내야 되죠. 자, 이 구약의 율법을 신약 시대에 해석하면 완전히 또 달라집니다. 결국 예수님이 이 율법을 어떻게 재해석하셨는가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계속 그걸 확인할 수 있어요. 재해석을 하셨어요.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계명이 되는 거죠. 6계명부터 보면 7계명 8계명 9계명 다 보면 10계명을 보면 간단하게 써 놨습니다. 우리가 외우기 좋도록 선명하고 간결해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게 복잡하지 않죠? 히브리어로는 두 단어로 딱 됐어요. 두 단어에요. 사실 영어로도 don't kill 간다나잖아요.
[4:05]자, 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한 것은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기한 생명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 생명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려는 뜻이 이 6계명에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는 거예요. 신성하다는 거예요. 아이든 어른이든 남자든 여자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인간의 모든 인간이라면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소중하지 않는 존재가 없어요. 얼마 전에도 제가 좀 시간이 흘렀습니다마는 군대 간 아들을 잃어버린 그 부모의 그 마음을 편지로 쓴 걸 보니까 너무 아프더라. 아주 그 고참에 의해서 아주 아주 악하게 고문을 하고 수치를 당하게 하고 그래서 그냥 견디다 견디다 못해 마침내 죽어가는 그게 묻을 뻔 했는데 다른 목격자가 진실 고백함으로 세상 속에 드러나서 우리 다 보았어요. 그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는 거죠. 누군가 함부로 됐던 그 사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귀한 자식이라는 거예요. 한 생명은 귀중하다는 거. 귀중하지 않는 생명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태도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왜 신성합니까? 그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이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명의 존엄함 그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생명은 스스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라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그건 기적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에 많은 분들이 아이를 낳고 싶은데 임신이 안 되는 거예요. 요즘 참 많아요. 저의 기도 제목 가운데 늘 들어가 있어요. 하나님 생명을 잉태케 해 주십시오. 너무 너무 너무 갈망하는데 그 생명이 잉태가 안 되는 거예요. 낳고 기르는 사람은 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아는데 아니라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생명은 신비롭고 오묘한 역사를 통하여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명의 경외심을 느낍니다. 그게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이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안에 우주보다 더 크고 엄청난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인간에 대한 가치는 얼마나 큰지 몰라요. 우리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이게 성경의 관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이유는 잘못된 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독일의 히틀러 같은 사람이 유대인들을 수백만 죽였던 그 이유는 그렇게 그냥 잔인하게 살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예요? 반유대주의적 감정이 어린 시절에 만들어져 있었던 거죠. 유대인만 보면 막 증오심이. 칼 막스의 공산주의 이론의 핵심이 뭡니까? 유물론입니다.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의 물건에 불과한 거예요. 생산의 수단에 도구란 말이에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세상 속에 깊이 드리워져 있는 이 진화론 그 역시 인간은 우연히 태어난 존재에요. 원숭이과에 인간이 진화된 존재라는 거죠. 여러분 우연히 태어난 존재에게서 가치를 찾아낼 수가 있을까요? 인간은 동물이나 기계 생산의 도구로 취급하는 세계관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합니다. 인도 같은 곳에는 남편의 시신을 화장하는 장작 위에 아내를 같이 올려놓고 태워 죽이는 문화가 있어요. 이것도 종교의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8:44]세계관이 참 중요합니다.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자 생존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죠. 많이 죽일수록 자신의 파해가 커져가기 때문에. 다 경쟁자로 보는 것이죠.
[9:05]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인간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세계관이 생겨졌느냐 그 세계관에 따라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 관점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사람의 생명을 따지고 돈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도 모두가 돈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교주감 중국 같은 데는 장기도 그냥 산 사람 장기도 그냥 팔고 사고 한다는 거죠.
[9:48]인간의 존재를 비하하고 무가치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무선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라고 해서 얼굴이 다르게 생긴 게 아니라는 거예요. 머리에 뿔이 나 달려거나 혹은 눈이 특별히 뭐 막 무섭게 생기거나 저런 무기수들이 갇혀 있는 교도소에 여러 번 정기적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똑같아요. 사람을 여러 명 죽였는데 보니까 똑같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눈이 좀 무섭긴 해요.
[10:30]천히 그렇겠죠. 근데 그들을 그들이 죽일 수 있던 건 뭐예요? 여러분 사람을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그 안에 세계관이 어떤 형편 어떤 환경 속에서 잘못 잡혀져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세계관이 문제입니다. 세계관이 어디에서 형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거죠.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죠.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재를 이해해야 된답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욕하는 것까지도 살인의 계명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다음에 또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마는 형제에게 나갈하고 욕하는 것까지도 살인 살인. 여러분 욕하는 게 그냥 욕이 아니라는 말이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태도는 실제로 살인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예요.
[11:33]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생명을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든 남의 생명이든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그것은 귀중하고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대할 때 우리는 사람의 자지하지 자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내 자녀라고 내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생명을 다룬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고 저항이고 불순종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우리는 어떤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존귀한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순히 이것은 인권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인권 존중을 훨씬 더 넘어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어요. 여러분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 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우리 반려견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요즘 참 하도 반려견 반려 반려견이라고 그래요. 요즘은 난 전에는 그냥 다른 말을 쓴 것 같은데. 예 천국 갈 수 있나요? 뭐 그러면서 안수기도 해 달라고 그러고. 가족이죠. 가족. 가족.
[13:51]아플 때 목사님들이 안수기도부터 하는 게 제일 하여튼 특세도 데리고 오시고 하여튼 뭐 하시면 좋을 것 같아. 여러분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어요. 인간이 생각하고 우리 안에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이 형상이 죄로 인하여 깨어져 버렸어. 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마음껏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드러나도록 하신 것이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이 인간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근데 이 형상이 죄로 인하여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지만 상당히 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 안에는 힘이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뭘까요? 그 깨어진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런 관점에서 인간은 매우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이유는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15:13]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한 살인의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얘기가 나와요. 사무엘하 12장 9절로 12절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도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다윗은 밧세바와의 동침을 숨기기 위해 그의 남편이고 자신의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며 죽이는 살인 교사 행위를 했어요. 결국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가 나를 업신 여긴 거고 그리고 사람을 죽인 그 대가로 네 집에 칼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침내 그 위에 이 예언이 이루어지면서 다윗과의 피비린내는 나는 역사들이 일어났죠. 여러분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했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물으시는 거죠. 심판을 내리신 이유는 생명을 사랑하시고 그 생명을 보호하시고 세상을 지켜가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뚜렷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17:09]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생명을 이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그 말씀의 적극적인 의미를 살펴보아야 됩니다. 그것은 십계명 전체에게 주신 우리 메시지인 것처럼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죽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곳에 살인이 어찌 자리를 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시대를 사랑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너무 식어져 버렸다고 그래요. 여러분 오늘 살인이 일어나는 이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는 그 내면에 깊은 곳에는 뭐예요? 사랑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예요. 사랑이 식은 곳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죽이는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사랑이 자리를 비긴 그 자리에 뭐가 와요? 살육극이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미움과 증오와 분노들이 들끓으며 죽이고 죽이는 역사가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살인하지 말라는 이 메시지 속에는 뭐예요?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증오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는 사랑하라고 하는 메시지예요.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이야기 속에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솔로몬 왕은 그 아이를 가져오게 하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막 팽팽한 그 주장 속에 있을 때 칼을 가져오게 하고 그 아이를 반을 나누어서 하나씩 가져라고 판정을 내립니다. 그때 진짜 엄마가 어떻게 행동하죠? 아니라고 그 아이 내 아이 아니라고 죽이지 말라고.
[18:54]근데 한 여인은 나누라고. 야 너 가지고 너도 가지고 솔로몬이 금방 알아냈어.
[19:05]누가 진짜 엄마인지. 사랑하는 사람은 죽일 수 없는 거예요. 사랑해요. 여러분 누가 생명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선행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사람들은 그 안에 이미 인간됨에 그 신성함이 사라지고 깨어진 상태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사람은 자기 건강한 자기가 있어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는 게 내 몸을 사랑하는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는 거예요. 여기서 내 몸을 사랑한다면 그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에 매우 선행되는 것은 내 몸을 사랑해야 된다는 거. 건강한 자기애라는 표현을 써요. 이것을 우리는 자존감이라는 말로 쓰고 영어로는 셀프이스팀이라는 단어를 써요. 자기를 존중히 여길 줄 아는 것 건강한 자기애 자기가 있는 사람은 남을 존중히 여길 수가 있습니다. 남을 증오하는 사람을 남을 증오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증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음 안에서 이걸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뭡니까?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시므로 죄인 된 나를 받아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옛날에는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었던 나를 하나님이 나를 복음 안에서 받아 주셨음을 깨달을 때 이제 나도 하나님이 받아들여 주신 나를 나도 내가 나를 받아주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히 여길 줄 아는 것. 그래서 여러분 예수를 제대로 믿고 복음을 만나면 건강한 자기애가 생깁니다. 참 귀중한 나. 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나를 사랑해 주신다. 여러분 그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또 이웃을 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만 그렇게 귀중히 여긴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 지체도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귀중히 여기시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참 귀중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다른 사람도 참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것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22:27]여러분 가족 안에서도 가족 모두가 귀중히 여김을 받는 문화가 너무도 중요합니다. 대부분 많은 가정 안에서 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사실은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습니까?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한 사람의 한 사람의 가족의 이론을 존중하게 여겨 주는 문화가 없을 때. 자기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자기가 귀중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한 번도 대우받지 못하며 살았던 가정 속에서 살았던 그런 아이들은 성장하여서 세상 속에서 자기가 함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처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접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3:13]여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어도 실수를 크게 해도 큰 죄를 지었어도 그 인격을 손상시켜서는 안 되는 거예요. 함부로 욕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막 대하면 안 되는 거예요. 거칠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집에는 보니까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존대 말을 쓰는 걸 봐요.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좋은 거예요. 여러분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신 분들이 재범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라고 얘기를 이제 뭐 많이 통계적으로도 나오잖아요. 근데 그 안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뭐냐면 들어갈 때 이미 인격적 손상을 너무 많이 입었다는 거예요. 미국 같은 데도 한국 우리나 미국 같은 데는 완전히 옷을 벗겼어요. 모든 걸 들어가기 전에 모든 수색을 다 해야 돼요. 인격이 완전히 그냥 모두을 당하는 거예요. 굴욕을 느끼는 거예요. 존재감이 완전히 벗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존 인격이 전 존재 인격이 손상을 심각하게 입어 입어 버리는 거예요. 그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름도 없어져 버려요. 난바가 와 있게 되고 그 존재라는 것은 그 공동체는 철저하게 제한을 받으면서 그 존재의 자유로움이라는 게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인격이 손상돼 버리는 거죠. 침해를 받아 굴욕을 받으니까 이제 거칠어지는 거예요. 막 살게 되는 거예요. 자칫하면 그러면서 스스로 존중받지 못한 그 감정들이 다양하게 술술하고도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자존감이 훼손되면 과격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인격을 존중히 여겨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런 가정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게 얼마나 필요한가요? 오늘 여러분 6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바로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인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뭐냐면 지나친 자기 사랑은 다른 사람을 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이기적 자애라고 합니다. 앞부분에서는 건강한 자애라면 이기적 자애가 문제 되는 거죠. 이것은 병적인 자애라고 말합니다. 자기에게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병.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병. 여러분 요즘 소시오패스 이런 얘기도 하죠? 아주 역겨적인 도무지 그러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살인을 행하는 사람들도 나오잖아요. 자기 중심성이 너무 강한 사람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거죠. 자기에게 너무 집중하고 있고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과하게 자기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충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끔 교회 안에서도 충돌이 잦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자기 중심성이 너무 강한 것이죠. 원웨이 자기의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인을 할 때도 빠져요.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세상은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요즘 가족 간의 살인도 종종 일어나는 게 뭘까요? 여러분 핵가족 핵개인화가 되어져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내 나 외에는 옛날에는 가족 정도는 돌보고 우리라고 하는 개념이 있으면 이제는 핵가족 옛날에 핵개인화가 아니라. 남편도 아내도 따로따로 있는 거예요.
[27:10]핵 개인이에요. 북한의 핵은 몇 개밖에 안 되는데 나만은 핵이 많아요.
[27:20]여러분 분노라고 하는 것도 뭐예요? 분노라는 감정을 그냥 생각하면 안 돼요. 분노라는 감정이 잦은 분노를 자주 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성이 강한 것입니다.
[27:43]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거예요. 아기 엄마도 게임에 빠져가지고 그 도에 열 여름 차 안에 있는 걸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우발적 사과를 일으킵니다.
[28:57]그래서 아이들 보세요. 게임할 때 부모들이 건드리면 막 욕을 해 버려요. 화를 내고 그 빠져 있는 거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중독과 살인은 굉장히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어떤 일에 중독되어 있을 때 그 중독 사이에는 관계를 깨뜨려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 홀로 있는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관계가 끊긴 삶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일본도 이미 우리 앞에 거쳤습니다. 자녀들이 장성했는데도 집 안에서 나오지를 않는 거죠. 굉장히 위험한 노출 위험한 삶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이런 상상할 결국은 모두가 함께 죽는 길로 가는 거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폭력적으로 지금 변하고 있어요. 각박하고 거칠어집니다. 충동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사용하는 어느도 거칠고 과격해졌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 버들 가다 보니 모두가 경쟁자가 되어 어제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예사롭게 여기는 이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간의 살인이 너무 많아지고가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곧 공동체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귀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도 귀중하다는 생각을 할 때 세상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남을 보호하는 것이 곧 나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지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것을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확대되어져야 된다는 거요. 누구를 안 죽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몰린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사람과 관습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이 6계명 안에 들어 있는 계명이에요.
[31:37]자, 여러분 오늘 그들이 제사장과 레인이 보였던 그 무관심한 태도는 그냥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는 거죠.
[32:17]그냥 묻지 않고 지나갈 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 거예요. 무관심 어쩌면 중립적 태도로 말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그런 일들이 있었죠. 여러분 언론에 나왔는데 뭐 그 기사가 택시 기사가 갑자기 돌발적으로 죽는 일이 생겼는데 그 타고 있던 승객들은 트렁크에서 그 죽는 사람은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트렁크에서 뭐 골프백인가 뭐 들고 여행 중으로 갔다는 거예요. 죄를 물을 수는 없죠. 세상은 그럴 수 있습니다.
[32:59]그러나 히브리적 관점은 달라요. 무관심은 죄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죽어 가던 사람을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돕고자 하지 않고 지나갔다. 의도적으로 피했다. 성경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사마리아인이 돕지 않았다면 강도 만난 자는 죽었을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인은 이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에요. 우리는 죄라고 인식도 하지 못하는 죄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오늘 이 사건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강도 만난 이웃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으로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 죽든 말든 고통을 겪든 말든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그게 간접적 살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계명에서 말씀하는 이 살인은 집접 살인은 물론이고 간접 살인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문답에서는 갈라디아서 6장에 육체의 열매를 간접 살인으로 말해요. 실제로 중상모략과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손상함으로 인격 살인의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거죠. 인터넷에 악플을 달아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킴으로 심각한 인신 공격을 통하여 생명을 끊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역시 살인이 될 수 있다. 직접 그에게 상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인격의 치명상을 주어 삶을 파괴하는 행위는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이 갈라디아서 6장에서 말씀하는 육체의 열매들을 표현한 거죠. 저주 남을 저주하거나 험담하거나 비방하거나 수근거림을 중대한 죄로 취급을 합니다. 여러분 수근수근수근거림이 작은 죄가 아니에요. 비방하는 거 남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거 작은 죄가 아니에요. 여러분 요즘은 특별히 말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말로 야고보서 3장 8절의 말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는 거예요. 이 혀가 이 혀로 말을 하면 그게 독이 되어 사람을 죽인다는 거. 인신 공격. 6계명을 얻인 거예요. 우리도 모르게 살인죄를 범할 수도 있다.
[36:09]성도 여러분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웃 사랑에 대한 명령입니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앞으로 두 주도 살펴보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실제의 삶으로 돌아가면 적용해야 할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금방 답을 얻기 어려운 주제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까지도 살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이게 신약의 해석이잖아요. 미워하는 것 사람을 미워하는 게 살인이라는 거. 음용만 품어도 나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말씀에 대한 미세한 순종들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계명을 대할 때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생각이 뭐냐면 우리의 힘으로 도무지 지킬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 계명을 우리가 온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 주시도록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나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에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37:58]얼마나 절실한 기도인 줄 모릅니다. 사랑은 커녕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악을 이길 힘이 없어 이 말씀 앞에 불순종할 때가 있단 말이죠. 그때 우리 최종적 기도는 하나님 악에서 악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십시오. 아마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우리의 실제의 삶에서 필요한 기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폭력과 분노, 미움 이 가득한 세상의 한가운데서 나도 알 수 없는 수 없는 사건과 일들 속에 얽매여 내가 나도 컨트롤할 수 없어 죄를 지킬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행위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39:00]죽인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로 나도 모르게 간접적 살인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마땅히 그를 돌보고 보호해 주어야 할 그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한 것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 수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적극적 사랑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 가운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사랑한 능력을 나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에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39:57]여러분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입으로 마음으로 행위로 수 없는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임을 기억하고 오늘 이 6계명 앞에서 너무도 생명 하나님이 주신 그 귀중한 생명을 경시하는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그 하나님 앞에 존귀함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동일하게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 주시도록 간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