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다른 신은 없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3-17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다른 신은 없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3-17 |

CTS BEST 설교

41m 15s3,708 words~19 min read
Auto-Generated

[0:00]자 오늘 위기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렇죠.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준이 모호할 때 그렇습니다. 요즘에 선택이 많아졌습니다. 선택이 많아졌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려운 거예요. 옛날에는 샴푸 뭐 이러면 하나만 있었잖아요. 그렇죠? 비누도 하나만 있고. 복잡하지 않았어요. 근데 요즘은 가면 뭘 사야 될지 몰라요. 선택이 많아졌다는 것은 선택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자유가 많아졌어요. 근데 자유가 어려운 겁니다. 자유가 많아졌는데 이 자유가 많아져서 좋은 게 아니고 오히려 우리를 더 구속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우리는 행복을 더 많이 구하지만 행복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기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우리의 삶에 참으로 축복된 그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명한 기준이 되는 거죠. 선명한 기준. 이 말씀대로만 살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축복이 축복을 주시고 우리 삶에 깨어지고 망가진 게 다 회복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이 십계명은 원칙과 기준입니다. 그래서 명령을 하셨고요. 우리 삶의 핵심적인 그런 기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자 오늘 여기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오늘 일 계명을 살펴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마라. 자 이 무실론자들이나 또 타 종교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독선적인 말이죠.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마라. 그러나 여러분 이건 복음이에요, 복음. 예, 1계명이지만 사실 십계명뿐만 아니고 성경 전체가 강조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사실 1계명에 있습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나 여호와 오직 한 분 하나님. 예, 성경은 사실 이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얘기예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책이 성경이라고 봅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책이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그래서 그분을 우리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으로 잘하게 하는 것이 성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계명이 참 중요하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절대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다음의 계명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 부모를 공경하라 뭐 거짓 증가하지 마라 뭐 살인하지 마라 간음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가 분명해야 그 계명을 지킬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1계명이 중요하고 첫째를 첫째 자리로 올려 놓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첫 번째 그런 단추입니다. 자 오늘날 우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죠. 범신론. 범신론과 또 무실론. 이 한쪽은 신이 있다는 거고, 하나는 신이 아예 없다는 것인데요. 이 범신론은 뭡니까? 모든 것에 신이라는 겁니다. 신인, 뭐 나무도 신이 될 수 있고 태양도 신이 될 수 있고 동물도 신이 될 수 있고 그 사람도 신이 될 수 있고 아이도 신이 될 수 있고. 그 여러분 티벳의 종교 달라이 라마도 마찬가지잖아요. 어린 지금 제 2의 또 그 달라이 라마 이후의 사람이 없으니까 지금 못 못 정한다. 후임자를 안 정하기로 했다 뭐 그러잖아요. 사람이 신이에요, 사실은. 신적인 존재로. 그래서 신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신을 누구든지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신이 될 수도 있고 백화점에 물건 고르듯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신을 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죠. 신이 없다. 특히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에 이게 무실론이 굉장히 강세를 띠고 있습니다. 그 중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이 무실론 전도사인 도킨스라고 하는 사람이고 히친스라는 사람이. 이 도킨스라는 사람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지어서 베스트 베스트셀러스가 됐어요. 히친스는 뭐예요? 신은 위대하지 않다. 이런 책을 출반하면서 신앙인들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쏟아붓습니다. 이 옥스포드, 영국의 옥스포드의 그 아주 아주 이 아주 석학이 똑똑한 사람이 이제 신이 없는 것을 증명해 내는 아주 설득력 있는 그런 책을 써서

[4:51]많은 사람들이 이제 젊은이들이 지성인들이 거기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 우리는 신이 없다. 신은 없다. 예수는 신이다. 이런 등등의 이 무실론적 공격이 굉장히 강세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린 아이들 이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면 이 도배를 해 놨어요, 이제 그런 것들. 이제 한쪽은 이 이 다실론적 범신론적인 것이고 하나는 무실론적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오늘 우리는 십계명이 너무도 중요한 것이죠.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이게 나 외에는 이런 말 이 말은 이 번역을 좀 하면 내 앞에서 내 면전에서 그런 뜻입니다. 내 면전에서 내 목전에서 내 눈앞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자, 주님의 눈앞이 어딥니까? 주님의 면전이 어디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안 계신 곳이 없죠. 그러니까 이 세상 어디에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거죠. 자, 우리는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든지 이제 중립 지대가 없다.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여년간 노예 생활을 살았던 그 문화는 다실론의 배경이었습니다. 보면 별별 신들을 다 만들어서 섬겼던 거죠. 그들이 이제 구속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만 섬기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오직 하나님이다. 다른 신은 없다. 오직 한 분이시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농경 문화 안에서 그 시대에 다양한 그 우상에 무릎 꿇지 않고 참 신이신 하나님만 섬기라고 이제 요구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인간은 늘 우상을 만들어요. 잘 만들고 우상을 참 너무 잘 만들어요. 우상 제조국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별 이상한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애굽을 중심한 국가다라도 다양한 신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그렇죠. 인간의 유한성. 그 본성적으로 인간은 이런 우상을 만드는 겁니다. 그 만드는 요인은 뭐죠? 불안하니까. 근원적인 불안함 때문에 우상을 자꾸 만드는 겁니다. 왜 종교가 생겼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이 종교를 만들고 또 다양한 신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다양한 신들이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인간들의 숭배를 받아 온 거죠. 자연적인 그런 것들과 친화적으로 지내던 시대, 또 농경문화, 그럴 때는 그것과 관련된 신들을 만드는 거예요. 자기에게 맞는 자기의 생활과 일상에 아주 가까운 것들. 그래서 여러분 어촌들이나 이런 데 가면 이 물고기들이 또 신이 돼 있어요. 그 공중에 달아 놓은 게 물고기고 또 농경문화의 태양이 중요하면 태양신을 섬기는 거. 이 자기의 생존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이제 신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신은 유형, 무형으로 자주 등장을 합니다. 그 사람 모양도 있고 사람과 짐승이 연결 막 섞여져 있는 그런 것들도 있고 사람이긴 사람인데 팔이 막 여러 개 있고 몸뚱아리가 몇 개 있고 이런 동물들이 형상이 되어서 어 신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벌레도 있습니다. 벌레. 벌레도 신으로 만들어서 섬기는데 참 이 뭐 동남아 국가나 이런 데 가 보면 이제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요. 뱀 같은 것도 얼마나 많이 신으로 주로 등장을 합니까? 자 오늘날은 이런 이제 무 유형보다는 무형으로 많이 신을 만들었어요. 인간의 이성이 신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으로 어 그 신을 판단하고 또 신을 이렇게 히친스나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죠. 이 이성이 신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성으로 규명하고 입증할 수 없는 것이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성이 최고의 위, 그래서 이성이 만들어낸 세계가 과학이고 그 과학이 오늘날 신이고 그래서 오늘 우리의 모든 인간의 문명을 바꾸고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처럼 이제 과학이 지금 가고 있는 거죠. 이 과학이 지금 발달되면서 큰 미래가 멋있고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 같지만 여러분 우리가 경험하지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행복해지는 게 아니죠. 더 불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요즘은 어떤 신이 만들어져 있죠? 돈, 만몬의 신. 뭐 최고의 신이죠. 신은 계속 바뀌는 거예요. 우리 신발 바꾸듯이 계속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의지할 만한 것을 만들어서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자, 처음에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다가 시간이 흐르면 변질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옮겨 놓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얼마 있지 않아서 바알과 아스랄을 섬기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솔로몬 왕 때나 솔로몬이 아주 신앙이 좋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어 이렇게 왕권을 얻었지만 처음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잡단 신들을 섬겨요. 그 이방 여인들이 많죠. 여러분 이 솔로몬이 나중에 보면 여인들을 많이 두죠. 그래서 후궁이 700명이잖아요. 그리고 전체 토탈 천 명을. 그러니까 이 외국에서도 이렇게 무슨 지원을 받고 뭐 여러 가지 공물을 받는 가운데 여자도 받는 거예요. 그 그러면 거기에서 우상이 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에 문화에 있는 우상들이 막 들어오는 거죠. 그러면서 잡단 신들을 섬기는 이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번영, 그죠? 돈이 많아졌어요. 솔로몬은 부자였잖아요. 군사적 파워를 가졌어요. 강력한 힘을 가졌어. 그 주변에 조공을 받을 정도로 그리고 여인을 많이 섬겼어요. 오늘 리차드 포스터가 얘기했던 거 똑같아요. 그 우상이 뭐예요? 이 머니 파워 섹스 이 세 가지 이 전체를 다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리에 그런 물질적인 그리고 군 파워, 그리고 이런 성적인 쾌락 이런 것들이 우상이 되어지면서 마침내 이 나라가 쪼개어지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이 하나님이 언제나 평가 기준은 첫 번째 계명에 대한 순종 여부예요.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섬기는가 아니면 다른 것을 섬길 건가? 여기에 타협점이 없다는 거예요. 양보를 하나님이 하시지 않아요. 첫 번째 계명을 깨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하나님 없이 누렸던 그 부와 명예와 쾌락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에 대해서 솔로몬 전체 이 이 전도서 전체에서 솔로몬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막 누리고 누리는데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특징이에요. 근데 멈추고 싶은데 멈추어지지 않은 거예요. 뭐 에 뭐 계속 더 추구하고 더 얻고 더 쌓았는데 만족이 없어요. 만족이 없으면 그만 둬야 되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또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 그것이 심판이에요, 사실은. 그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심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긴 결과가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창세기에서 인간의 타락의 시발점이 바로 이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지한 그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는 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겁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는 이 솔깃한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어요.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길 때 인간다워지는 거예요. 로마서 1장에 바울이 얘기했던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모를 때, 알지 못하니까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허무한 데 굴복을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인생의 길이 보여요. 하나님을 모르면 우주의 고아가 되는 거예요. 근본이 없는 존재. 죽을 때까지 방황하고 모든 것에 결론은 허무로 끝나게 되는 것이죠. 만물의 으뜸이시고 근본이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인생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1계명은 그래서 예배의 대상을 얘기하는 거예요. 예배의 대상을 분명히 하라.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 우리는 여러분 누군가는 섬기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무실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신을 부정하지만 결국은 누가 신이 되어 있어요? 자기가 신이 돼 있는 거예요. 자기를 믿을 수 있습니까? 결국은 예배자를 결정하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주제는 없는 것입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정하는 순간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소를 섬기는 나라를 문화를 가 보세요. 그 소가 그 사회의 기준이 되어 있어요. 그죠? 동물. 우리는 등심, 안심 해 가지고 골라 먹는 그 소를 그들은 우상으로, 신으로 섬기는 거죠. 그러니까 그 소가 그 사회의 중심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움직여 나가는데 중심에 서 있는 거죠, 소가. 그 소 수준이 이상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그 사회는.

[14:09]여러분 돈을 섬기면 어때요? 그 돈이 삶의 기준이 되잖아요. 그죠? 그 돈에 의해서 모든 결정에 돈이 끼어들잖아요. 뭐 결혼을 하든 사업을 하든 인간을 교제를 사람과 교제를 하든 어디에 가입을 하든 모든 게 돈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 인생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거죠. 그 이 예배를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 누구를 섬길 것인가가 결국은 내 인생을 결정하는 요스라가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상 숭배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요? 무지예요, 무지. 하나님에 대한 무지. 신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동남아, 특별히 동남아 국가나 아프리카나 이런 나라들 가 보면 그 특징이 뭡니까?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이렇게 이 사회를 참혹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는가를 느끼면서 이 복음의 시급성을 느끼게 되죠. 여러분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지식 이해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삶을 그 개인뿐만 아니라 그 사회, 그 국가, 그 역사를 다 망가 놓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인 줄로 믿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인 것이죠.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에서 불러 내실 때에 이스라엘 지도자로 삼으실 때 모세가 이제 그 부름 앞에 먼저 하나님께 묻죠. 하나님, 내가 나를 보내신 분이 누구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나에게 내가 어떻게 답을 당신이 누구라고 답을 해야 되겠습니까? 얘기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그랬어요. 스스로 있는 자다. 사실 이제 영어로 I am who I am. 나는 나야 이제 이런 얘기잖아요. 이 참 함부로 이 이 우리가 이렇게 하면 안 되죠. 근데 하나님만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고 하나님은 이름이 따로 있는 분이 아니시죠. 모세가 모르니까 이제 대답을 하시긴 했는데 사실 우리가 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죠. 이 말은 뭡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잖아. 누구에 의해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의 도움이나 누구의가 만들어낸 어떤 원인자가 있는 게 아니고 나는 스스로 영원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영원히 존재할 영원 자존한 분이시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말은 오늘 우리의 모든 존재가 그로부터 그의 의해서 만들어진 되어진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거죠. 그 안에서부터 모든 게 흘러나오는 원인이시다. 원인이시다. 그래서 인간이 고해 내는 개념이나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겠죠. 근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거죠. 그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지지나 박수가 필요한 분이 아니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홀로 영원히 영광 가운데 자존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1장 36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7:36]그러니까 여러분 인간이 만든 오늘 있는 모든 피조의 세계는 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에게서 나오지 않은 게 없고 그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운행이 되고 움직이고 있고 존재가 그분으로 인하여 이 온 우주가 존재하고 있고 마침내 마지막도 그분에 의해서 결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이 없고 하나님보다 더 강하신 분이 없고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비교를 당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이다. 그래서 종종 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표현이 있잖아요. 질투한다는 이 표현이 뭘까요?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나란히 올려 놓는 것을 거부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컴페어 이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분은 비교를 거부하신다는 의미에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중심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기를 원하시는 절대적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1계명은 어떤 행위, 행위 외적인 행위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예요, 마음에. 무엇을 하자 말자 이런 외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 내면을 살피게 하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좀 어려워요, 사실은. 바리새인들을 보면 여러분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을 잘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잘 섬기고 율법을 행했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단 말이죠. 그 이유가 뭐냐면 너희들이 나를 섬긴다고 하고 나를 존경한다고 하는데 너희들의 마음을 보면 내게서 멀다는 거죠. 하나님이 주님이 보셨던 관점은 외적인 행동이 아니고 그 마음의 상태라는 거죠. 그래서 이 1계명은 우리가 지금 뭐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헌금을 하는 그 자체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금 들여다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고 할 때 이 다른 신은 우상의 문제고 오늘날의 우상은 우리의 마음에 숨겨져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이 바리새인들처럼 책망받지 않으려고 하면 우리의 신앙의 중심부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금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그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라, 마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매일 암송했던 것이 뭡니까? 쉐마예요, 쉐마. 자 그 말씀이 신명기 6장 4절로 이후에 이렇게 쭉 나오는데 4절 5절만 우리가 잠시 보면 여러분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자, 이 매우 중요한 말씀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이 말씀을 외우는 거예요. 암송을 하는 거예요. 하루도 빠짐없이. 자, 그들은 여기에 메시지가 뭐 이스라엘에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라.

[21:14]내 하나님 여호와를 어떻게 하라고요? 사랑하라는 거예요. 오늘날 내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희 마음에 새기라는 거예요. 마음에 새기라. 그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시고 사랑의 관계 안에서 십계명을 주셨어요. 예수님도 동일하게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을 보면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서 들여다 봐야 돼요. 십계명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고 그 사랑이 또 다른 사람과 관계 연결되기를 원하시는 거죠. 근데 여러분 이 사랑이라는 건 뭘까요? 사랑은 굉장히 배타적인 것이고 독점적인 것입니다. 이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만 이 중요해요. 만. 하나님도 사랑하고 다른 것도 사랑하고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너무 멋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해 봅시다. 근데 놀라운 것은 알고 보니 아내에게만 사준 게 아니에요. 어떤 여자에게도 사준 거예요. 두 개를 산 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 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건가요? 남편들이 대답하시죠. 여러분 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그런 면에서 독점적이라는 거죠. 사랑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한 50%만 사랑하고 저쪽에 50% 사랑하면 나눠면 되지 않나? 잘 공평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냐.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예, 아무리 선물을 외적으로 멋진 거를 사줬지만 겉으로는 멋진 다이아를 사줬다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로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남자의 이 내면의 구조는 결코 아내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무마용이고 오히려 오히려 그것은 자기가 어떤 보상하려고 하는 어떤 내적인 심리의 갈등에서 나오는 불안에서 나온 행동일 수도 있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모한 관계로 지낼 수 없습니다. 이 신앙을 갖는다는 건 굉장히 센시티브 한 거예요. 민감한 거라는 거예요. 사랑의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사랑으로 다루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중심을 보신다 이 말씀을 많이 하잖아요. 이 야 다윗을 선택할 때도 내가 외모는 안 본다. 그것을 보지 않는다. 외적인 행동을 보지 않는다. 마음을 본다. 중심을 본다. 그 마음에 안에서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가를 본다는 거예요. 그 십계명 준수는 외적인 행동보다 생각과 마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신앙을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그 개념도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의 관계에서 민감하게 예민하게 우리를 대하시는가를 말씀하는 거예요. 그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도 하나님이 이 자 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행위 자체에 감동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죠. 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단어잖아요. 강력한 단어. 그 계명을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로 풀어가야 되는 겁니다. 사랑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이 계명은 굉장히 무거운 것이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율법은 무거운 게 아니죠. 율법이 무거운 게 아니에요. 그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를 굉장히 어 이렇게 어떤 거리를 그 두지 않고 너무도 친밀하게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이런 계명은 무겁지 않아요. 주일도 즐거운 날이잖아요. 그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일날 올 때는 너무 기쁜 거예요. 이 날보다 더 좋은 날이 없는 거예요. 벚꽃 구경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벚꽃 계절을 약간 교인이 줄어요, 실제적으로. 참고로 얘기하면. 여러분 주일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보면 너무 좋은 거죠,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여러분 성경을 읽어 보세요. 성경이 연서예요, 연서. 연애책이에요, 연애책. 여러분 하나님의 연애책.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 이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없다는 얘기를 구구절절했기 때문에 시편의 시인들의 고백이 뭐예요? 꿀송이보다 더 달다는 거예요.

[26:12]그래서 이 말씀이 너무 읽고 싶어서 그냥 일찍이 일어나서 그 말씀을 대한다는 거예요.

[26:26]이 말씀을 읽는 그 마음에 그 기쁨을 표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 어느 목사님은 성경을 읽는데 이 세상에 어떤 책보다 즐거우니까 어릴 때 그랬대. 너무 성경이 즐거우니까 어떤 때는 잠이 오는데 잠이 오는 눈꺼풀이 내려가니까 이 이쑤시개를 여기 끼워 가지고 눈이 안 안 감기게. 아 그렇게 말씀이 즐겁고 신이 난다는 거. 왜? 사랑하니까. 주님이 사랑하는 주님이 사랑의 언어로 우리에게 미러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 거는 율법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너무 좋은 것이죠. 그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이 말씀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하는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면 그 말씀이 의무나 어떤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읽으면 그게 이제 와닿는 거죠. 그리고 그 계명을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셔야 돼요. 우리 마음에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어디에 마음이 많이 쏠리는가? 끌리는가? 우리의 영혼이 무엇을 쫓고 있는가? 이걸 확인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이 디비라 바닷가에 찾아오셔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이거예요. 어 예수님을 십자가상에서 제자가 된 사람이 부인하고 도망가 버리고 참 이게 이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했잖아요. 근데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자신이 없 디비라 바닷가에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물으신 질문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하실 말씀은 참 많을 것 같아요. 네가 제자가 내게서 도망 와 가지고 인간이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나? 제대로 좀 살아라. 앞으로는 좀 정신 차려라. 앞으로 좀 충성할 거니 뭐 이렇게 물으셔야 되는데 주님은 전혀 그런 걸 묻지 않으셨어요. 딱 하나만 물어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너 진짜 앞으로는 배신 안 하고 충성할 거니 이렇게 물으면 자신 없어 할 수도 모르겠어요. 근데 사랑하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을 때는 베드로가 대답을 했어요. 내가 주님이 아십니다. 물론 뭐 사랑합니다 이런 말은 못 했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이에요, 주님이 아십니다. 근데 여러분 예수님 세 번 물으셨는데 똑같이 질문은 하나예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확인하고 싶은 건 딱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멋지게 사느냐 그게 아니고요. 어떤 위대한 헌신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고요. 진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거죠. 그걸 물으시는 겁니다. 여러분 사랑이 뭐예요?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겁니다. 두 마음을 안 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6장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랑의 관계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기 때문에 50, 50이 안 된다는 거예요. 70 어 뭐 30 이게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만 섬기는 거지 둘 섬길 수 없다는 거예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중립 지대는 없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세상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이것이 뭐예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는 거. 크고 첫째 되는 계명.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종 이 부분에 실패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바알이라고 하는 신을 올려 놓는 거죠.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대체했던 것들이 있다면 깊은 각성과 해결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여러분 개인과 역사와 모든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듯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하나님을 하나님 축 하나님 축복을 오랫동안 받아 왔었습니다. 그들이 미국 대륙 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이 영국의 퓨리턴들이 종 이 신앙의 박해 때문에 메이 프라우를 타고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고 그들이 처음 세운 게 뭔지 아세요? 교회를 먼저 세웠어요. 아무것도 없는 허벌판에 그들이 먼저 세운 것은 교회. 그다음에 뭐예요? 학교를 세운 거예요. 하나님이 첫째였다는 거죠. 하나님이 첫째. 그들의 가치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었던 거죠. 하나님이 있었던 거죠. 그들은 돈을 만들 돈 달러 안에도 뭐예요? 인 갓 위 트러스트.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는 거. 하나님을 믿는다. 돈에까지도 우리가 돈을 따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거예요. 달러에도 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기록할 정도로 그들은 하나님의 우선 주위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뭐 연방 법원에 모든 판결에 그리고 대통령이 취임할 때 모든 건 성경에 손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나라를 통치하는 중요한 가치와 이념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미국이 1963년을 기준으로 해서 케네디 대통령이 모든 공립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기도도 못 하게 하고

[31:44]그 미국 역사의 운명이 바뀐 게 63년입니다. 그때부터 이 미국 안에 어마어마한 이 하나님에 대한 반 기독교적인 문화가 급세게 일어나고 세속화가 되기 시작했어요. 이제 여러분 미국은 미국이 아니에요. 돈으로 모든 것을 움직여 나가려고 했던 그들의 그 우상들이 무너지고 있는 거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 시작한 거죠. 여러분 가정이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세상의 힘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32:14]하나님을 가장 첫 번째로 모시고 섬기는 가정.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 나라, 그 민족, 그 역사까지 영향을 주는 거라는 거예요.

[32:51]오늘 역사의 문명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던 그 민족들. 그 민족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역사하시고 흥황케 하시고 복을 주시는 거예요.

[40:06]근데 그 복을 깔아앉고 깔아뭉개고 그 복에 겨워 하나님을 잊어버리면서 경제적 성장과 함께 하나님이 프라이오리티에 사라져 버리고 그들이 다른 것을 섬기기 시작하고 물질을 섬기기 시작할 때 그 역사 속에 하나님은 더 이상 함께 하실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의 축이 새롭게 옮겨져 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뒷전에 밀리고 하나님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순간 그 개인이나 가정이나 역사나 모든 국가의 운명은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태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최고의 하나님께 최상의 예우를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올려 놓으시고 하나님과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대체했던 것들이 있다면 깊은 각성과 해결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여러분 개인과 역사와 모든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