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네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 십계명 강해 20 서른 두 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 십계명을 총 정리하는 총 정리 과정입니다. 지난번에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얘기를 했고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이웃 사랑에 관련된 이웃 사랑을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어 우리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수평적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거. 크로스죠, 크로스 십자가, 십자가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우리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게 보면 크로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 이 균형이 잘 맞추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사랑해야 되는 거죠.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 사랑에 빠져 버린 이웃 사랑은 없는 것이고 또 이웃 사랑을 에 이웃 사랑에 빠져 버린 하나님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다 균형이 맞춰 줘야 되죠. 우리가 이 전부대에 전부대에 이 수시계를 딱 하면 크로스라기보다는 좀 뭐 십자가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죠. 너무 균형이 안 맞는 거잖아요. 비슷한 굵기.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예배한다면 이웃도 그만큼 사랑해야 그게 균형이 있는 신앙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일반적으로 이 수직적인 신앙에는 뭐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잘 모이고요. 예배 열심히 드리고 정말 대단한 우리 열심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는 어느 나라에 미치지 뭐 뒤지지 않습니다. 어 특히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고 뭐 이런 대단한 나라는 이런 열심이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예 그런데 이제 한국 교회의 약점이 이 수평적 관계가 좀 약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그래서 열심히 모이고 예배하고 열심히 또 싸우고 이제 이런 현상을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이 봅니다. 열심히 예배드렸다면 열심히 사랑해야죠. 그게 균형이 맞춰져야 온전한 신앙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 로마서 13장 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율법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근데 바울 사도는 한마디로 요약을 하죠. 이웃을 사랑한다면 율법을 이룬 거야. 너무 신앙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아주 명료하게 바울이나 우리 예수님이 정리를 해 주었습니다. 다른 거 다 못 해도 돼요. 근데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면 율법을 이룬 것이라. 율법의 완성이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면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오늘 말씀처럼 내 이웃을 내 자신과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도 사랑하라는 얘기거든요. 자 그러려고 하면 전제는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해야. 나를 사랑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도 사랑할 거라는 거죠. 그러므로 이웃 사랑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4:00]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자기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 첫 번째 자기 사랑은 병적 자기애라고 얘기합니다. 병든 자기 사랑이에요. 어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10 아 3장 1절로 2절을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쭉 나오는데 이 말세에 어떤 특징이 있는데 그 특징을 쭉 열거하는 가장 첫 번째에 뭐가 나옵니까? 자기를 사랑하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 자 여러분 여기에서 자기 사랑하는 것이 왜 말세의 징조입니까? 여기 자기 사랑을 우리는 병적인 자기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50]자 이 사랑은 딴 게 아닙니다. 이기적인 사랑이에요.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에요. 이 이 이 이게 굉장히 심해지면 일종의 자기 숭배가 되는 거죠.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게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자기 몰두 자기 집착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울정도 다 그 요인은 아닙니다만은. 이 안에 범주에 속해요. 자기 몰두 자신의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자기 애는 어디로 흐를 수 있느냐면 자기 학대, 자기 자기 증오, 자기 경멸 자기 비관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어 뭐 많은 나르시시즘이라는 이런 것들도 많이 있지만 이 우리가 많이 만나는 완벽주의자들 흔히 완벽주의자들도 이런 불에 속해요. 자신의 연약함과 실수의 대해서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실수를 하면 막 재책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를 못하는 거예요. 수치심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거죠. 막 자기를 미워하는 거. 그런 현상이 심화되면 이 완벽주의자들이 그것이 심화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자살도 합니다. 자기를 미워한다는 거죠. 자기를 버리는 거죠. 자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내동댕이 쳐 버리는 거. 자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병적 자기애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드는 거. 결국은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를 막 미워하고 증오하면 어때요? 그 주변에 가족들이 어떻게 해요? 함께 불행해지는 거죠. 이 병적 자기애에 빠진 사람은 건강한 이웃과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존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자 건강한 자기 애가 있죠. 이 건강한 자기 애, 자기 사랑은 자기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겁니다. 못 나면 못 난 대로 막 코가 크면 큰 대로 눈이 찢어지면 찢어지는 대로 귀가 작으면 작은 대로 자기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의 삶을 있는 있는 지금 내 모습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거. 근데 이게 세상 사람들은 안 돼요. 복음을 경험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 돼요. 내가 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때는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 거예요.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게 아니고 전혀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과 환경과 기준에 못 미쳐도 하나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신 것이 복음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죠. 그러니까 십자가를 경험하면 우리 안에 더 이상 나의 어떤 실수나 연약함 때문에 정죄감, 죄책감에 빠지지 않아요. 로마서 8장 1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런즉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때의 헌장입니다. 자유 대헌장.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우리를 막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는 거. 원인 무효가 생겨 버렸다. 그래서 내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할 때는 이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자신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회복된 나 자신 그 나를 사랑했던 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거.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자아가 새롭게 회복되지 않으면 이런 이웃 사랑은 사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 복음을 경험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우리가 복음을 경험할 때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첫 번째는 관용이에요. 이해 사랑이라는 표현을 좀 다르게 표현하면 관용하는 거예요. 빌립보 4장 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해야 될 매우 중요한 것은 복음의 정신이고 그 복음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형태가 뭐냐? 관용이다는. 자 여러분 우리는 이제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었다는.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아담과 하와가 일어났던 행태가 뭐예요? 선악을 알게 하는 그 어떤 분별력이 잘못된 형태로 흘렀던 것이죠. 그래서 비판하는 거예요. 정죄하는 거죠. 탓하는 거죠.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정죄하지을 함을 받지 않고 우리가 자유함을 얻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도 죄 아래에서 용서를 받았던 것처럼 누구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어요. 우리는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셔서 무조건 우리를 받아 주셨다는. 무조건 우리를 용납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대하셨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방탕하던 그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냥 받아 주었어. 모든 재산을 다 말아먹어 버리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돌아온 그 아들 이유를 따지지 않아. 그냥 받아 준 것이죠. 이게 복음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수준은 다른 것입니다. 자기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수준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웃에 대한 태도가 그래야 합니다. 따지지 말고 그냥 용서하고 용납하는 거. 어떤 사람은 그래요. 지가 용서를 빌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네가 용서를 구하면 내가 용서해 주겠어. 그렇지 않았어요.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셨어요. 여러분 복음은 품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품는 능력이에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점점 복음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마음이 점점 점점 넓어져야 돼요. 여러분 작은 시내에는 비가 오면 금방 물이 흐려져 버리죠. 아주 작은 호수는 조그만 돌만 던져도 전체의 파문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바다는 아니에요. 바다는 웬만큼 해도 표가 안 나. 여러분 해운대 여름 해수욕장에 애들이 수백명 들어가서 오줌을 눠도 전혀 바다는 변함이 없어. 집 안에서 그 아이들이 열 명만 뭐 소변을 봤어도 찌린내가 나오. 근데 해운대 바다는 돌맹이를 아무리 던져도 표도 안 나. 멍도 안 들어. 여러분 십자가를 경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억울함과 원망이 없는 것이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여러분 복음 안에서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하면 마음이 점점 점점 넓어져야 정상이요. 근데 잘못 신앙생활하면 속이 좁아져요.
[13:22]좁아지는 이유가 뭘까요? 복음에 접근한 게 아니고 율법주의적 신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여러분들의 가슴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좁아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복음 위에 서야 돼요. 복음 위에. 날마다 복음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용서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다면 내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우리는 사랑의 폭이 넓어져야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랑하면 안 돼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너무도 다양해요. 너무도 나와 달라요. 특이한 분들도 계세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때로는 생래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 그래서 여러분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요하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그 다음 뭐가요? 사마리아와 여러분 사마리아는 사실 뭐 유대의 아주 그냥 남북 이어진 중간에 그 동네예요. 근데 사마리아를 왜 끼어 넣느냐는 거죠. 근데 편견과 그들 안에 오래 떤 역사 속에 숨어 있는 그 미움의 감정들이 유대인들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와 사마리아를 거치라는 거예요. 사마리아를 품으라는 거예요. 우리나라를 치면 일본과 같은 나라를 품으라는 거예요. 복음은 품는 능력이 있다는 거. 복음은 용서하는 능력 있고 이해하는 능력 있고 용납하는 능력 있고 품는 능력이 있다는 거.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막 오래 꼬여 있어도 한 잔 하면서 끝내자. 이 술을 먹고 난 다음에 다 끝내더라고요. 한 잔하고 끝내더라고. 근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끝 못 내더라고요. 끝이 있더라고요. 복음이 소주 한 잔보다 능력이 없을까요? 복음은 훨씬 더 능력 있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를 뛰어넘어, 편견을 뛰어넘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두를 품는, 용납하는, 받아들이는,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이기심이에요. 우리가 이웃 사랑을 할 때 가장 한계가 뭐냐? 최대 장애물이 뭐냐? 이기심이에요. 인간의 뿌리 깊은 병이 이기심. 죄가 뭐냐라고 묻는다면 이기심이에요. 이 죄성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다면 이기심이야. 에고이즘. 에고센트릭이라고 자 중심적. 본성적으로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라는 거. 이 본성적으로 살면 이웃 사랑을 할 수가 없어요. 이 본성, 이 이기심을 극복하는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웃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이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십자가에 있다는 거.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으면 능히 이길 수가 있다는 겁니다. 병적 자기애를 뛰어넘게 하는 치유제가 십자가예요. 우리의 본성을 지배하는 지독한 이 죄가 주는 이기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십자가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는 그 자체가 병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자의 함몰되어 있는 자기의 세계에 빠져 있는 자기만 알고 있는 거 그 병입니다. 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묵상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지 몰라요, 여러분. 여러분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우리의 삶은 옮겨야 되는. 여러분 신앙이 뭘까요? 복음을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이기심에서 점점 점점 이타심으로 옮겨가는 거. 그래서 나중에는 이기심이라는 게 완전히 해체되고 이타적 삶을 살아가는 곳으로 나아가면 그 삶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격조 높은 인생이 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뭘까요? 자기 자신의 몸을 이 땅에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철저한 이타적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뭔가를 희생하며 점점 옮겨 나가는 이웃을 섬기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 우리 삶을 드리고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삶으로 옮겨질 때 우리의 삶은 건강해지는 겁니다.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던 그 시선에서 이웃에게로 우리의 시선을 옮길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행복을 얻을 수가 있어요.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이 뭡니까?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래서 불행해진 오늘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이타적으로 옮기지 않고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상담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치료가 되지 않아요. 아무리 기가 막힌 카운슬러를 만나서 내 삶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쳐도 그 자체로는 해결이 안 돼요. 우리의 자신에게 관심 갖고 있던 그 시선을 이웃에게로 옮길 때 비로소 치료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중보 기도하는 분들 보면 아 이 중보 기도가 놀라운 것입니다. 중보 기도가 뭡니까, 여러분? 남을 위한 기도거든요. 근데 이 세상에 여러분 자기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문제에만 생각해도 할 기도가 많은데 남까지 기도한다는 게 어려운 거거든요. 내 코가 석자라고 얘기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5분 10분만 하면 기도할 거리가 없어져 버려요. 왜요? 자기를 위한 기도만 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 기도만 하는데 무슨 기도가 그렇게 오래 할 게 있겠어요,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 중보 기도를 하면요. 두 시간, 세 시간도 모자랍니다. 이웃을 위하여. 오늘 저녁에 오늘 오후에 오시는 김하중 대사님이 그런 분이에요. 수백 수천 명을 위해서 매일 끊임없이 수 없는 사람의 이름과 형편을 따라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멋진 전 중국 대사예요.
[20:31]여러분 내 문제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 자연히 내 문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해요. 아니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에 내 삶의 문제는 더 이상 나의 문제가 되지 않는 이 독특한 은혜를 맛보는 겁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만 머물러 있으면요. 신앙도 자라지도 않아요. 안 자라요.
[21:01]십자가를 통해서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성공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자기 추구, 자기 만족, 자기 집착에 빠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웃을 사랑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지금 병적 자기 애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나만을 바라보던 삶을 살며 살던 인생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 이기심의 해체 이것은 십자가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이기심을 넘어뜨리고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아 이웃을 향하여 우리의 시선을 옮기며 그들을에게 다가갈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놀라운 회복과 사랑과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21:54]자 그러면 사랑은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여러분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죠? 사랑은 가장 지금 나의 삶의 반경에 가까운 사람들부터 사랑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를 사랑한다네요. 근데 마누라는 사랑하지를 않아요. 그건 사랑이 아니야. 인류를 얘기해요. 거창한 박애주의를 얘기해요. 그런데 자기의 가까운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막 민족 운운 하는데 자기 운전 기사는 막 두들겨 패고.
[22:33]우리는 기분 좋을 때만 사랑할 때만 막 야단을 쳐요. 그건 아무나 하는 거예요.
[22:47]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일을 악물고 사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은 연습이에요. 축복 속 부를 때도 적극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내 경상도 남자가 화끈하고 이렇게 이런 거 유치한 거 못하지만.
[23:09]아내 보니까 못 하는 거예요. 아내 보니까 못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거 연습하는 거예요. 자꾸 하다 보니까 자연스러워지는 거. 여러분 부부끼리도 마찬가지 사랑의 언어를 자꾸 쓰다 보면 아주 자연스러워져요. 근데 안 쓰면요, 일평생 못 해요. 내 보니까 연세 드신 분들 사랑했느냐고 아내에게 하면 얘기했느냐. 일평생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대요.
[23:51]와 그래도 사는 게 기적이잖아요.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24:50]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작은 언어의 습관을 바꾸는 겁니다. 긍정의 언어. 사랑의 언어. 고마워요. 미안해요. 존경해요. 사랑해요. 예쁘다. 멋있다. 어 잘했어. 수고했어. 이런 작은 사랑의 언어를 자꾸 쓰는 거예요. 입사동기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나보다 좋은 학교 나오고 나보다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이야. 근데 회사에 들어와서는 그 선배가 나보다 못 해. 내가 더 뛰어나. 내가 먼저 진급해. 그런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존경할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건 대단한 일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 본성을 뛰어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말로는 다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하지만 존경하지 않으면서 존경한다고 얘기하는 건 죄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기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존경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미워하며 사는 걸 원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미움이라는 건요, 눈이 멀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 앞길을 잘 알 수가 없어요. 왜? 미움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 사랑이 없는 교회가 얼마나 교만할 수 있겠어요? 사랑이 없는 교회가 얼마나 자랑할 수 있겠어요? 사랑이 없는 교회가 얼마나 남을 비방하고 남을 교만할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수직적인 신앙 관계는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수평적인 관계가 약하다는 게 우리 한국 교회의 아픔이에요. 열심히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그래서 우리는 늘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있어요. 내가 세계 최고야. 세계 어느 나라 교회가 우리처럼 새벽기도 드리는 나라가 있어? 세계 어느 나라 교회가 우리처럼 철야기도 드리는 교회가 있어? 세계 어느 나라 교회가 이렇게 뜨겁게 찬양하는 나라가 있어? 우리는 늘 영적 우월감에 빠져 있어요. 근데 그 영적 우월감이 뭐냐면 교만에 빠지는 거죠. 우월감에 빠지는 거죠. 자랑에 빠지는 거죠. 남을 비방하게 되는 거죠. 남을 교만하게 되는 거죠. 남을 거역하게 되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얼마나 사랑을 담아 드리는가 하는 겁니다. 내가 얼마나 봉사를 많이 했는가? 그 봉사 속에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야. 내가 구제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 구제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희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이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모든 것을 사랑의 실천으로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