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탐내지 말라 1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17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탐내지 말라 1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17

CTS BEST 설교

32m 13s2,941 words~15 min read
Auto-Generated

[0:00]자 십계명 29번째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계명. 아 탐내지 말라. 첫 번째가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의 삶이 참 힘들죠. 어 많이 힘듭니다. 사는 게 쉽지 않죠. 그 이유 중에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삶이 힘든 이유는 사실 우리 안에 있는 탐심 때문입니다. 탐심. 이 탐심이 우리를 힘들게요 사실은. 어 탐심, 탐욕, 정욕, 욕심 뭐 비슷한 말들입니다. 탐심이 우리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쉴 수가 없어요. 안식이 없습니다. 우리를 계속 힘들게 몰아가게 하는 그것은 누가 아니고 환경이 아니고 어떤 이 시대도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이 욕망, 이 정욕 때문인 것이죠. 오늘 열 번째 계명은 탐내지 말라. 이 주제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면서 사실 우리의 인생의 큰 영향을 주는 대단히 큰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이 탐욕은, 탐심은 우리 안에 숨어 있어요. 1계명부터 우리가 9계명까지는 뭐 거짓말을 한다, 살인한다, 간음한다 뭐 뭐 공격하는 문제 안식일을 지킬 다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지만 이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숨어 있는 거예요. 탐심. 탐내지 말라. 숨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우리 안에 이 엄밀히 숨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알 수가 없어요. 오늘 여러분들 옆에 있는 분 살짝 보세요. 이 탐심이 있는지 없는지 보기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몰라요. 얼굴 봐 가지고는 숨어 있는 것입니다. 행위로 드러난 건 아니에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인데 이 엄밀하게 숨어 있는 이 탐심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다 통제하고 움직여 나가고는 컨트롤 하는 이게 사실 우리 내면에 있는 이 탐심이죠. 욕망. 디자이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이 욕망의 문제를 다룹니다. 인간의 이 문제만 크게 우리 인생을 영향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이 욕망의 문제를 다룹니다. 특별히 불교는 이 욕망 끝없는 이 욕망 이 탐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소멸시키기 위해서 끝없는 수행의 정진을 이제 하는 거죠. 자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고 또 모든 불행 또 모든 분쟁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딱 이게 있는 거예요. 탐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 열 번째 이 이웃을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는 이 계명은 앞에 있는 모든 계명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 탐심이 있어서 그런 거죠. 우상을 만드는 것 탐심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왜 쉬지 못합니까? 탐심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살인하는 것 왜 살인을 하죠? 탐심 때문입니다. 간음하는 것 당연한 것 거짓말하는 것 모두 인간의 내면에 있는 탐심의 문제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탐심은 모든 계명을 깨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이 문제 그 마지막 열 번째 이 탐심이 있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실 때 이 마지막 결론적이면서 앞부분의 모든 계명과 연결을 시키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4:12]골로새서 3장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자 여러분 오늘 여기 탐심은 우상 숭배다. 그동안 우리가 우상 숭배가 눈에 겉으로 드러났던 어떤 형상화 된 것이 아니고 우상 숭배는 어떤 면에서 우리의 안에 있는 탐심 그 자체라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상 숭배는 일종의 종교적 행위입니다. 탐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종교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가장 강력하게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빼앗긴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우상은 지배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우상을 섬기면 그 우상에게 지배를 당하죠. 그 우상이 모든 거를 컨트롤 합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 우상이 시키는 대로 다 행하는 거죠. 바로 이 탐심이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이 탐심이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유가 없어요. 그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자기의 배는 곧 신이다. 신. 자기의 배를 채우는 그 탐심, 탐욕 그게 곧 신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가능한 삶.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우상 숭배요 그것이 곧 신이 된다. 내 배가 신이다.

[6:16]자 오늘 어떤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내 이웃의 소유. 이웃의 모든 것을 포함한 존재물을 모두를 포함하는 것. 내 이웃의 집, 내 이웃의 아내 그의 남종, 여종, 모든 가축까지 탐내지 말라. 탐낸다는 것은 자신의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죠. 결혼을 했다면 자신의 배우자로 만족해야 돼. 결혼 안 했으면 모르는데 결혼을 했으면 자기의 배우자로 만족해야 돼. 내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내 이웃의 남자를 탐내지 말라. 요거는 없어요. 지금 없어요. 그렇다고 여자분들에게 그러면 이게 뭐 탐내라는 얘긴가 그건 아니에요. 다 포함된 거예요. 근데 주로 주로

[7:16]여기에서 내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여러분 특별히 남자들은 이 결혼하기 전에는 이 남성들의 구조적인 면인데요. 심리적인 면에서 결혼하기 전에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딱 나타나면 거기에 꽂혀버려요. 남자들은. 온 세상의 여자가 그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꽂혀버려요. 남성의 심리적 구조예요. 여자분들은 달라요. 결혼하기 직전까지 온 남자를 다 점검을 해 봐요. 이 남자, 저 남자가, 이 남자, 저 남자가. 근데 남자는 심리적 구조가 그러잖아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오면 확 꽂혀버려요. 올인해요. 미치는 거예요. 근데 남자들의 심리 구조는 재밌는 것은 결혼을 딱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눈이 확 열리면서 내 아내보다 훨씬 더 나은 여자가 많다는 데 놀라는 거예요. 이게 심리적 구조예요.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결혼하고 나서도 늘 둘레 둘레.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저 나은 여자가 이래 많은데 내가 왜 저 여자에게 꽂혔나. 그러나 여러분 결혼한 남자라면 한 사람으로 일단 만족해야 돼요. 탐내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 여기 보니까 내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다양한 영역에서 탐심이 일어납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탐내죠. 그래서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아버지로부터 축복 기도를 받습니다. 남의 권리를 탐낸 것입니다. 장자 이 권리를 탐낸 것이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분은 바나바라고 하는 그 시대 공동체에 예루살렘 공동체에 탁월한 그 리더였던 바나바의 존경심 그 명예가 탐이 났던 거예요. 성경 본문을 보면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가 탐이 나니까 자기들은 이 물 헌금을 하긴 하는데 이 헌신이 좀 거짓된 헌신이에요. 그렇게 했어라도 성령을 속이고 그 명예를 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 아주 유명한 사건이 되고 맙니다. 아이성에서의 아간의 탐욕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 패전을 가져옵니다. 한 사람이 탐욕으로 전리품을 숨긴 것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패전을 해요. 가롯 유다 역시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스승인 예수를 은 삼식에 팔아버립니다. 여러분 이 탐심은 이렇게 눈을 가려버립니다. 탐심에 빠지면 죽는지 사는지 몰라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노예적 삶을 삽니다. 자 이 탐심의 특징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탐심은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면서 점점점점 커져가는 것입니다. 이 탐심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점점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작은 탐심으로부터 출발해요. 누구든지 처음부터 막 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탐심을 가지는데 그게 점점점점 커지면서 나중에는 파국으로 몰고 가는 죽음으로까지 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의 말씀이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이게 출발입니다. 욕심이 잉태를 한 거예요. 작은 게 잉태됐는데 죄를 낳는데 이 죄가 어디까지 가요? 죄가 장성해서 사망까지 가는 거예요. 사망. 무서운 거잖아요. 작은 욕심으로 출발했는데 나중에는 치명적 파멸을 이룬다. 탐심이 무서운 게 이런 거죠. 욕심은 마치 유정난과 같습니다. 무정난이 아니에요. 유정난과 같아요. 점점점점 커져갑니다. 그래서 초기에 다루지 않으면 비극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 탐심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탐욕은 줄어들지가 않아요.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할 수 하려고 하고 하려고 할수록 그 소유에 빠져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결국 소유하고 다스려야 할 인간이 그 소유물의 일부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노예적 삶이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탐심은 갈수록 우리의 삶을 속박하고 마는 것입니다. 큰 금덩어리를 하나 발견한 이 형제가 이 금덩어리를 들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이 형이 이 금덩어리를 그냥 강에 집어 던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생이 막 화를 내면서 형이 미쳤느냐고 왜 그러냐고. 그 저 건너가서 이 반으로 나누고 가져야 되는데 이 형이 집어 던져버린 거예요. 중간에. 형이 이실직고를 하는 거예요. 내가 이 강을 건너는데 내 안에 자꾸 이상한 욕심이 들어서 이 황금 덩어리를 내가 혼자 가지고 싶픈 마음이 자꾸 생겨나더라. 그래서 너를 물에 밀어뜨리고 싶은 강한 그 마음이 유혹이 찾아와서 순간 아찔했다. 그래서 내가 집어 던져버렸다. 이 금 덩어리를 포기하고 너를 살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 얘게 동생 나도 비슷한 생각 있다. 형 밀어버리고 이 금 덩어리를 내가 가질 마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탐심이 찾아들면 피를 나는 형제도 죽일 수 있어요. 무서운 겁니다. 아주 무서운 겁니다. 피를 나는 형제가 아니라 부부도 누구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게 이 탐심이에요. 탐심은 삶을 망가뜨리는 원흉입니다. 원흉.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거예요. 그래서 초기에 초기에 잡는 게 중요해요. 크지면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크지도록 놓아두면 아무도 감당할 수 없어요. 탐심 때문에 건강도 잃고요. 탐심 때문에 형제도 잃고요. 관계도 깨어지고요. 탐심 때문에 다 불행해지는 거예요. 탐심이 들면 신앙 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탐심이 들면 영혼을 다 잃어버립니다. 결국은 자신 불행해지는 게 아닙니다. 이 탐심은 자기를 파멸에 몰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파멸에 몰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탐심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류 최초의 에덴 동산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퍼펙트 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까지 모든 것들을 다 만드시고 난 다음에 마지막 가장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거든요. 그 말은 뭡니까?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만드셔서 그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파라다이스를 누리게 하신 거예요. 그 완벽한 환경을 누리고 누릴 권한이 있고 자유가 있는 거예요. 자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딱 한 가지 하나님이 제한해 놓으신 그것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누리고 있는 수많은 것에 대한 만족이 아니고 한 가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는 거. 이게 사탄이에요. 사탄. 오늘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것들에 대한 감사가 없고 가지지 않는 그곳에 돋보기를 갖다 대고 불만을 가지게 하는 거. 그게 사탄이 하는 거예요. 에덴 동산에서. 여러분 이게 탐욕입니다. 탐욕. 탐욕의 특징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터진 웅덩이입니다. 물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그냥 다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좋은 환경이면 죄를 안 지을 것 같은데 인류의 최초의 아담과 하와의 예를 들면 그게 아니에요. 최상의 환경에서 탐욕을 가지고 선악과를 넘보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의 문제다. 오늘도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우리의 주변의 환경이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문제라.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려 보았던 솔로몬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도서 5장 10절에 보니까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여러분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이 얼마나 연봉이 얼마가 되는지 그걸로 만족이 안 된다는 거예요. 솔로몬의 이야기. 경험해 본 이야기. 채움에 만족이 되는 게 아니고 반대라는 겁니다. 채우려고 할수록 갈증은 더 깊어진다. 자 여러분 인간이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의 실체는 식을 줄 모르는 탐욕이다. 이겁니다. 자 여러분 현대인들의 극도의 스트레스에 휘말리는 요인은 탐심 때문이에요. 그래서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17:49]쇼핑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요. 요즘 중독 환자들이 많은데 쇼핑 예를 들면 쇼핑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일단 눈에 들어오면 눈에 들어온 것은 소유하고 소유하고야 마는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유하려고 하는 거예요. 뭐 빚을 내든 뭐든.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손에 쥐어야 잠이 오는 거예요. 가지지 못하면 막 손이 떨리는 거예요. 손이 떨리는 거예요.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여러분 소비주의 세상에서 늘 듣는 메시지는 뭡니까? 소유하라 소유하라 소유하라. 가져라 가져라 가져라 가져라. 찬송가 1장도 가져라 2장도 가져라 3장도 소유하라. 후렴은 소유하라 소유하라 더 더 더 더.

[18:41]요즘 마케팅 업계 유행어가 뭡니까? 트레이딩 업이라는 거예요. 트레이딩 업.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넘치는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경향에 관련된 것입니다. 멈출 줄 모르는 욕구.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보다 불평과 불만족은 더 많죠. 기업들은 오늘날 끝도 없이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쏟아냅니다.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아이들도 보면 불평으로 가득 차 있어요. 아이들만 그럴까요? 어른들도 똑같아요. 성도들은 어때요? 성도들은 어떨까요? 성도들도 가장 많이 하는 기도는 단연코 주시옵소서.

[19:45]가진 것은 많은데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그런대로 괜찮은데 행복 지수가 형편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이 탐욕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엇이 부족해서 선악과를 탐낸 게 아닙니다. 마귀가 우리의 눈에 없는 것에 돋보기를 갖다 대는 거예요. 희한한 것에 갖다 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는 순간 속이 뒤집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너무도 경쟁적입니다. 비교 문화가 대단하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이 안 돼요.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니까 갑자기 불행해지는 거예요. 결국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탐심의 문제고 이 탐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식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탐심은 주로 바라보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마귀가 한 것은요 복잡한 게 아니에요.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보면 참세기에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었는데 가장 첫 번째 자기 뭐냐? 보는 거예요. 보라는 거예요. 아마 처음부터 보고 딱 따먹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 번 딱 보고 본 거 아니에요. 계속 보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보암직하다에요. 보암직하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자꾸 보면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지금 계속 보고 있는 거 조심해야 돼요. 마귀는 예수님에게 똑같이 에덴 동산에서 유혹했던 그 마귀는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시험을 해요.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세 번째 죠.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 천하 만국의 그 화려한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자 여러분 보는 거 조심해야 합니다. 결혼한 남자가 자기 아내보다 더 멋있는 여자를 보면 됩니까 안 됩니까?

[22:11]보이는데 봐야죠.

[22:16]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실은. 자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안 볼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보는 거죠. 건강한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자를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다 안 아름답다 이게 전혀 구분이 안 되면 병원에 가 보셔야 되고요. 문제는 뭡니까? 부러움을 넘어서서 탐을 내는 단계로 가면은 안 된다는 거. 그 아름다운 여인을 잠시 바라보는 것 정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 필요는 없어요. 그 어떤 어떤 아내는 그렇다고 해요. 길을 가다가도 어떤 남편이 자꾸 다른 아내를 여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기다려 준대요. 계속 기다려 준대요. 안 쳐다봐. 다 봤어? 가자고 이제 그런다고 그래. 문제는 뭐예요? 그 정도를 넘어서서 탐을 내는 단계로 가는 거예요. 바라보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녀를 계속 따라가고 사진을 찍고 묵상을 하고 그러면 탐심이 일어난 거예요. 탐심이 일어난 거예요. 계속 보는 것은 탐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목욕하는 밧세바를 바라보는 사건이 결국은 역사의 치명적인 실수를 만든 거예요. 여러분 바라보는 것 탐심을 일으키는 출발지입니다. 출발지는 눈이에요. 문화적으로 화려하고 매력적인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이나 학생들이 보면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이 시대 옛날에는 밋밋하고 잽빛이고 아름답고 화려한 게 매력적인 게 전혀 없었던 밋밋한 문화가 아니라 오늘은 너무도 관능적인 문화예요. 화려한 미디어와 이 매력적인 것이 흘러넘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이 보이는 것들의 문화 인터넷만 켜면 엄청난 것들이 그냥 파도를 치는 이 시대 바라보기만 한다는 말이죠. 바라보게 만든다는 거예요. 미디어들을 통한 광고들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메카닉이 쏟아부어져서 그 안에 그냥 온 영혼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보는 순간 시름시름 앓게 돼 있어요. 아이들도 신발을 하나 사려고 해도 엄청나게 비싸잖아. 이게 나이키부터 시작해 나이키. 잦 수도 누이 이래 가지고 갑자기 이게 막 신발값이 뛰어버렸어요. 가면 수없는 단계가 있는 거예요. 수없는 단계. 10만 원 정도짜리를 사러 갔다가 그것만 사가면 되 옆에 다른 걸 보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이 20만 원짜리를 보는 순간 10만 원짜리는 신발이 아니에요. 이건 신발이 아니야. 이건 아니야.

[25:24]여러분 광고지나 광고를 보기 전에 제가 늘 그러죠. 깊이 기도를 하셔야 됩니다. 백화점 옆을 지나갈 때도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이 백화점이 가까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영성이 깊어야 돼요.

[25:48]주 기도를 항상 외우셔야 돼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여러분 바라보는 걸 조심해야 됩니다. 바라보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으면서 나를 사로잡아 버려요. 그러므로 여러분 특히 우리 안에 교모에 침투해 있는 이 오늘 우리 시대의 형통의 신앙 신자마저도 우리는 신 형통의 신학과 이 번영의 신학에 우리가 다 오염이 많이 돼 있어요. 조엘 오스틴의 그 잘되는 나 뭐 이런 것 이런 유죠 여러분. 형통의 신학은 뭘까요? 왜 문제가 됩니까? 현실을 열심히 바라보게 하는 거예요. 거기 내세가 없어 내세. 영원의 세계가 없어요. 기독교는 여러분 오늘 이 현실의 세계의 모든 걸 끝내는 종교가 아니에요. 현실은 망하고 때로는 고난을 받아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는 게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거든요.

[26:57]나를 기쁘게 해주는 현실적 만족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탐욕을 잠재울 수 없어요. 신자로서 오늘 우리 시대를 살아갈 때 무방비로 무방비 상태로 지금 노출이 되어서 당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현대 사회의 이 소비주의 사회 안에서 우리 자신을 무방비한 대로 그냥 내버려 놓으면 우리의 영혼은 이 탐심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고 세속의 사회 속에서 휘말려 들어가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우리는 방어를 해야 돼요.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지금 무엇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가를 선택해야 돼요. 선택해야 돼요.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따라가고 하면 우리는 정신없이 당하고 맙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물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이 탐심을 이기는 길은 무엇일까? 탐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독교는 욕망을 소멸시키기 위해 욕망과 싸움을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욕망 그 자체와 씨름을 하기보다는 궁극적이고 영원한 것에 관심을 돌리는 것입니다. 탐욕의 실체가 왜 왔느냐?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 빈 공허함에 이 탐욕이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세상의 것을 주워 담아 그 하나님이 떠난 그 빈 자를 채우려고 하는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하는 그 안에 탐심이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모든 그 탐심의 그 주원인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일어났던 그 빈 공허함에서 왔던 것이라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길이 없어요. 하나님을 떠나므로 생긴 이 병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게 한 거예요. 그것을 치유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29:10]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도 충분하고도 깊은 만족을 주고도 남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가나 이런 것들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고 하는 이런 고백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고요. 그것은 우리에게 진리와 같은 것입니다.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많고 불만족에 허덕이고 있다면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는 더 많이 가져야 만족하나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바라보는 이 초점을 바꿔야 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탐욕이 잠재워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깊은 세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만족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함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그리스도로 충만할수록 탐심은 줄어들게 되는 거예요. 요한일서 2장 15-17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가슴에 그 세계가 될 말씀이죠 여러분. 다 지나가요. 다 지나가요. 그 세상의 탐심을 가지고 붙들고 거기에 생명을 걸고 죽는지 모르고 달려갔던 그거. 그건 잠시 다 지나가는 거예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우리의 눈에 보이는 그 보이는 대로 욕망하는 다 가지고자 하는 그 모든 것 다 지나가는 것들이에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게 아니에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아멘. 여러분 세상에서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찾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만족이고 기쁨이 되십니다.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 한 삶을 맛보고 누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함을 경험하고 모든 탐심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진정한 믿음의 길에서 승리하는 모든 우리 지체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