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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BEST 설교 | 자녀됨의 역할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20:12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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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오늘은 십계명 14번째 오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두 번째입니다.

[0:10]두 번째 돌판에 첫 번째 놓인 부모 공경 아마 하나님이 의도를 두고 이 순서를 정하시고 특별한 위치에 놓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 하는 게 중요 하다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또 부모 공경이 어렵다 이런 면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십계명 열 개명 밖에 안 되는데 계명을 뭐 스무 개 100개 이렇게 만들지 않고 열 계명으로 축약했을 때 한 계명 한 계명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거기에 부모 공경 특히 이웃 사랑의 첫 번째 두 돌판의 첫 번째 계명으로 부모 공경 놓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러면서 부모 공경이 생각보다 지키기 어렵다 하는 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도 이제 십계명 매 계명마다 세 번씩 나누어서 하는데 이 부모 공경이라는 주제가 그렇게 오늘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에요. 비 인기 주제일 수 있습니다. 이걸 3주 동안 해야 된다는 거 쉽지가 않아요. 오히려 부모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미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굉장히 심각한 갈등의 위기죠. 전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거기서 겪는 수 없는 상처와 아픔들이 내재화된 상태 속에서 일평생 살아가는 가운데 현실에 만만치 않은 많은 구조 속에 부모를 공경해 가는 것이 쉽지 않고 인간의 재성이 반역과 저항이 우리 심리 속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를 거역하는 문화, 대듬의 문화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의 특징을 열거하면서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1장에서도 이방인들이 악한 죄 이방인들이 악한 죄들을 몇 가지 열거하면서 거기도 역시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나와요.

[2:50]하나님은 이 부모를 공경하는 이 문제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이웃을 섬기는 법을 배워 가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는 부모의 공경과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문제와 연결되어져 있다 하는 것입니다. 어그스틴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 부모 공경을 하지 않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에게도 불순종과 함께 이웃과의 관계에도 뒤틀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부모와의 관계로만 보면 안 되는 것이죠. 삶의 모든 관계를 엮어 가는 일에 가장 기본적인 그런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런 부모 공경에 관련된 권위와의 관계를 다루었고 오늘은 부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 이 공경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 공경에는 이 복종의 원리 그리고 존중해야 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존중해야 되는 것이고 그다음에 복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또 하나 우리는 이 공경에 우리가 붙들어야 될 것은 부양을 해야 되는 봉양을 해야 된다. 봉양. 부모를 봉양해야 된다. 부양을 해야 된다.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성한 자녀라면 나이든 부모의 생활에 관련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 이전의 시대는 나이든 분들이 가정을 벗어나면 생활의 보장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부모가 아니라 할지라도 고아와 가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궁핍한 가운데 있는 부모를 모시지 않음으로 굶어 죽게 되었다면 살인죄와 같다는 거죠. 쉬운 일은 아니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질로 부모를 돕는 것은 자녀의 의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년에는 수입 원이 없어지죠. 자녀들의 돕는 것이 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자녀들이 부모를 섬기는 부분에 있어서 종교적 이유로 부모의 효도를 교모하게 피했던 척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르반이라고 하는 고르반 내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부모에게 할 도리를 안 해도 된다고 이렇게 합리화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 하더라도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인하여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를 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라도 이유를 되어서 부모 공경을 피하려고 했던 인간의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자, 여러분 노후의 경제적 문제는 참 오늘 우리 시대에 이슈죠. 이슈. 근데 우리는 다른 것도 좋지만 부모 공경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물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순종이나 존경의 태도도 좋지만 물질적 봉양을 빼고는 공경을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따로 사는 부모에게 용돈을 얼마나 드리는가 이런 질문을 했는데 어 뭐 얼마를 하는 사람이 몇 % 이제 얼마 이상을 하는 사람이 몇 % 이제 쭉 통계가 나왔어요. 근데 한 푼도 주지 않는다는 이 통계도 나왔어요. 몇 %인가 하면 30.8%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사실은 한국 노인들이 직면한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가정사에 관련된 것은 복잡하기 때문에 다는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형편에서 물질적 부양 봉양은 자녀의 몫임을 이 공경의 의미에서 우리가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늘 원하는 것은 사실은 그런 거 같아요. 이것도 하고 뭐 선물도 드리고 여러 가지도 하고 막 자녀들이 한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부모님들은 그걸 원하시더라고요 돈을 다오. 아마 이 명제에도 최고의 이슈는 아마 그런 부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에 대한 도움을 드리는 거. 두 번째 이 공경에는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들. 잠언 10장 1절에 보니까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언 15장 20절에도 보니까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한다. 부모를 즐겁게 한다.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시는가? 그것을 아는 게 참 중요하죠.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고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겠죠. 요즘 부모의 노년에 자녀들로 인해 고통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은 부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모를 이용하려고 하는 자녀들이 늘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의 은퇴 자금이 자녀들의 이사와 사업 등으로 빠져나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노 노년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기사들 우리가 참 많이 보고 있습니다. 소위 캥거루족들이 늘어나면서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 의존한 자녀들이 많아요. 저는 호주에서 왔기 때문에 캥거루가 뭔가를 잘 알아요. 다 그 주머니에 다 있는 그 새끼들을 보면 근데 이게 나이가 들어도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근심을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안타까움들이 있다는 겁니다. 최근에 뉴스에 보면 중산층이 노후에 실버 파산의 상태로 몰려 벼랑 끝에 서는 상황에 내몰리는 이유를 네 가지 이야기했어요. 첫 번째는 사업 투자의 실패, 둘째는 중병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셋째는 자녀 뒷바라지 부담, 넷째는 황혼 이혼과 같은 가족의 해체로 인하여 실버 파산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네 가지 중에 자녀 뒷바라지가 있어요. 황혼의 인생의 말년에 자녀 뒷바라지를 인생의 말년에까지 하면서 결국은 실버 파산에 이르게 된다. 근데 문제는 이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는 나이가 점점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20대가 아니라 30대가 아니라 40대로. 부모가 재산을 많이 가질수록 자녀들이 의지하는 경향이 더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한국은 자녀의 부모 의존도가 너무 높은 나라입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자녀에 대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거죠. 어쩌면 부모들이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 한 면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돈이 끼어들어 얼마나 불편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까? 자녀들의 유산을 둘러싼 분쟁들은 우리가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이나 둘째 아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 스토리 속에 두 아들의 공통점 집을 나간 탕자나 집 안에 있는 큰 아들이나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안 중에 없는 그런 거 보면 자식들은 참 이기적이다. 부모는 늘 자식을 생각하지만 자식은 부모의를 생각하지 않죠. 여러분 부모를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 많은 교우는 세월이 흐른 후에 자신의 나이가 된 만큼만 부모를 이해한다고 그러죠. 결국은 후회하는 부모의 최고의 기쁨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이겠죠. 자녀가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효도일 것입니다.

[12:43]자녀들이 아프거나 삶의 실패 혹은 불행을 겪을 때 부모의 고통은 너무도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이든 부모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는 일을 피하는 것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 그것이 다양하게 지행될 수 있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거 공경한다는 것은 그 부모의 연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의 허물을 떠들어 동네 방네 알리는 것이 아니라 덮는 거라는 거죠. 홍수 이후에 노아의 실수가 있죠. 술에 취해서 대낮에 그냥 옷을 벗고 추태를 드러냈습니다. 그때 노아의 새 자녀 중 둘째인 함이 아버지의 허물을 동네방네 떠들고 돌아다녔어요. 허물을 덮어 주기보다 드러내요. 결국 그는 저주를 받습니다. 참 성경은 굉장히 무섭게 다르죠. 그 아버지의 부모의 그 허물을 덮지 않고 들추어 내는 것이 얼마나 성경은 무섭게 다루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부모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허물이 있을 수 있어요. 상처를 입고 그 부모로부터 가진 감정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감춰 주는 들었던, 덮어 주는. 특히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허물이나 약점을 가지고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명절 전후에서 가장 불화가 많이 일어나요. 네 부모들은 왜 그러냐 그러고 상대의 부모에 대한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어 내면 이게 전쟁이 커지는 거죠. 나의 부모를 존중하는 것과 같이 배우자의 부모를 동일하게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약점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 덮어 줄 정도가 아니라 대신 칭찬하는 것이 공경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도 공경입니다. 잠언서를 보면 계속 내 아들아 내 말을 들어라.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효도는 잘 부모의 말을 들어 드리는 거에요. 나이가 드시면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하시죠. 조금 전에 했잖아 엄마 했냐? 그러고 또 조금 있다 또 하죠. 기억이 잘 안 나는 거죠. 늘 했던 말을 새로운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노인들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좀 공부를 했다고 그 그을 듣기 싫어하고 때로는 부모를 가르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중하려고 한다는 것은 바로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효도 중에 효도는 잘 들어 드리는 거에요. 100번째 얘기해도 아 그렇구나. 늘 새롭게 드는 것처럼 장단을 맞춰 주는 것 그 효도예요.

[16:13]여러분, 무엇보다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그 말 가운데 내가 꼭 들어야 할 것이 없는지 사려 깊은 태도를 가지는 거죠. 사실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평생 사시면서 터득한 지혜는 젊은이들에게 양약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지혜로운 자식과 미련한 자식을 구분 짓는 게 뭔지 아세요? 딱 하나예요. 듣는 거예요. 잘 들으면 듣는 자식은 지혜롭고 잘 듣지 않는 자식이 미련한 자라고 말합니다. 사실 삶을 돌아보면 부모의 말만 잘 들었더라면 인생이 얼마나 복될 수가 있을까요? 잘 들어드리는 것 그게 효도이고 공경입니다. 자, 이런 효도는 언제 해야 될까요? 기회가 있을 때예요. 부모 공경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나이든 어른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잖아요, 여러분. 건강하게 보여도 알 수가 없어요. 감기 끝에 때로는 여행 끝에 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자녀들은 조금만 기반을 잡고 난 다음에 부모를 모시려고 계획하지만 그 부모는 우리가 준비된다고 기다려 주는 분들이 아닙니다. 생각날 때마다 미루지 않고 효도하는 게 가장 좋은 거예요.

[17:42]지금하라는 거죠. 돌아가신 다음에 소를 잡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병아리 한 마리가 차리나 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예수한 믿는 사람이 제사를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제사를 지나지 않아요.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해야 된다는 거. 근데 문제는 살아계신 부모님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 이 부모에 대한 공경과 함께 부모된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될 것들이 좀 있어요. 자녀들의 효도를 우리가 노년에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축복된 일이에요. 그렇지만 자녀들이 효도를 하든 안 하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기대와는 달리 자녀들의 환경 자체도 어려워지고 세태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이런 시대 속에서 노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아주 급박한 시대적 환경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의 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가? 첫째는 영적 성숙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신 레슨은 그 자녀의 양육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연단되고 훈련되어져 가는 과정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사춘기 아이들을 통하여 그 중년의 너무도 힘들게 살았는데 사실은 그 사춘기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를 통하여 부모들을 훈련시키는 의도들이 많아요.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더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아이들이 아니면 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어요. 자녀를 주신 목적은 나의 기쁨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키우는 목적이 나의 미래의 보장이 되어서는 안 돼요. 이전에는 적금 든다고 그랬어요. 자녀들을 양육하는 게. 그래서 어떻게 서라도 모든 걸 다 쏟아 부어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다 몰아넣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제는 그런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어요. 우리의 기쁨은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성숙해 가야 의존적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거. 마치 구약의 족장들처럼 부모는 영적 풍성함을 흘러 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려고 하면 자신의 영혼을 부지런히 돌봐야 돼요.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고린도 후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나이가 들어가고 육체가 쇠잔해질 때 낙심해요. 내 젊은 날을 부러워하고 그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탄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요.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그 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우리의 영혼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여러분 나이 들면 쇠퇴가 아니라 성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 앞에 육체는 어찌할 수 없어요. 그러나 영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깊어져 가야 한다. 젊은 날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 풍성함 속에서 삶의 질은 더 좋아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 날에는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육체를 욕망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삶의 관조가 깊어집니다.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전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녀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노욕으로 자신을 다루지 못하는 추한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노후가 초라해지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 지나온 노년은 달라요. 얼굴부터 쓰놓았어요. 영적 아비와 어미로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쓰 있는 것입니다. 넉넉한 가슴으로 관용으로 이해력으로 여유로움으로 젊은이들이 쉽게 해낼 수 없는 멋이 있는 것이죠. 나이가 들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년은 단순히 은퇴 자금이 많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노년이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성숙함, 정신적, 영적 풍성함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우하든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존재가 풍성함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몫인 것이죠. 삶의 여정 가운데 따까운 성숙함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서 아,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동을 자아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아름다움처럼 그 장관을 노년의 삶에서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고 하면 점점 점점 우리의 영적 성숙함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터득해야 합니다. 의존적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자녀에게 의존적일수록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아요. 자녀에게 자녀가 모든 것입니다. 자녀에 의해서 울고 웃고 너무 자녀 의존적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장성한 자녀인데도 부모가 놓아 주지 않고 집착할 때 자녀의 삶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가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적 결혼이란 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근데 부모가 떠나 보내 주어야 된다는 거죠. 때가 되면 떠나 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날개를 달고 훨훨 자기의 세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된 삶을 사는 캥거루족도 문제고 자녀에게 너무 의존적 삶을 사는 부모도 건강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아주 많아 자녀가 돌볼 수밖에 없는 연약한 부모들인 경우에는 예외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기에는 어려운 삶의 구조로 오늘 우리가 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장성했는데도 자녀들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어릴 때는 유학 보내 놓고 부모가 부부가 떨어져서 기러기처 가족처럼 살다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결혼을 시켜서 이제 좀 살만 한가 했더니 또 애나 가지고 길러 달라고 또 데리고 오고. 얼마 남지 않은 노후의 자금도 이렇게 저렇게 다 자식에 쏟아 붓다 보면 나중에 힘들게 살아가는 일들이 불보듯 뻔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자녀들의 입장에서도 효도를 충분히 하기 어려운 현실이 다가와요. 지금 중년 40대 혹은 50대 때로는 60대 초중반까지도 아마 그런 낀 세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효도를 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 여기에 끼어 있는 낀 세대입니다. 저는 두 아들에게 기대를 안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위로와 격려만 기대하고 산다면 초라해질 수가 있어요.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야 하는 거죠. 축복된 노후가 되려고 하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해 가는. 특히 자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예요. 부부의 삶을 지켜가는 것을 포기하고 자녀에게만 모든 것에 올인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 가정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의미 있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일평생 나와 내 가정만을 위해 살기도 빠듯해요. 그러나 노년에는 나만의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 성공이 아니라 가치로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자, 이전에는 황감 잔치를 하면 황감 이유는 남은 여생이라고 그랬어요. 황감 징갑 이런 것들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거죠. 안 남았다는 거 요즘 아무도 안 하잖아요. 옛날에는 황감만 해도 황감 잔치를 하고 남은 여생 복되게 사십시오. 여생이라는 말이 뭐냐면 짜투리라는 의미예요. 얼마 안 남았다는 거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100세 시대가 됐어요. 여러분 황감이면 40년이 남았습니다. 자투리가 결코 아닙니다. 어찌 40년이 자투리겠습니까? 혹자는 지금 더 발달로 120세까지 간다고 얘기합니다. 조금만 여러분들 버티면 120세까지 갑니다. 그러면 황갑이면 반밖에 안 살았습니다. 요즘 70세라도 어디 명함을 못 내밉니다. 이제는 양로원이나 경로 경로당 상석을 차지 할 나이인데도 이제는 쓰레기통 치우고 있습니다.

[28:19]직업적 은퇴는 이제는 끝이 아니에요. 직업적 은퇴는 끝이 아니라 은퇴가 따로 없는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이모작을 얘기합니다. 이제는 공부하고 돈 벌고 나이가 들면 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걸 또 한 번 더 한다는 거예요. 한 번 더 사이클이 더 돌아오고 어떤 사람은 세모작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해야 되고 또 다른 준비 또 다른 도전을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가능한 가치 있는 일을 찾아야 돼요. 나이가 들어서는 더 이상 욕망을 쫓을 이유가 없습니다. 노년에 욕심을 내다가 사기를 당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의미를 찾아야 하고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도 보아야 합니다. 성공이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보람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러분들 할 일이 많아요. 우리 교회는 여러 사역들이 많고 방대하기 때문에 내가 골라 잡을 수가 있어요. 교회 안에서도 찾아보면 참 의미 있는 섬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단순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위치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역할. 여러분 나이가 80인데도 여전히 보람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을 많이 봐요. 그런 예를 들려고 하면 너무 많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이 피터 드러커 경영학의 구루라고 하는 사람도 그런 9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술 활동을 하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책이 어떤 것인지 당신이 지은 책이 어떤 것인지 물으니까 지금까지 지은 책 중에 한 권을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요 넥스트 부기예요. 내가 또 다시 낼 책이다. 그 책이 내 인생의 가장 최고의 책이 될 것이다. 끊없는 그 비전을 가지고 역사 속에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여러분 나이가 많다고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놓아 버리면 안 됩니다. 녹 스어 없어지기보다 달아 없어지고자 한다. 라고 했던 조지 히필드의 얘기처럼 쉬면 녹습니다. 짐이 되는 노년이기보다 의미 있는 삶으로 무엇인가 기여하는 삶을 찾아내야 하는 거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일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길 때 우리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자식들이 효도를 해 주면 너무도 감사해요. 그러나 자식들이 효도만 기대하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는 거. 우리가 믿는 것은 모아둔 돈이나 자식도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의 은퇴 이후 노년의 준비를 얘기 많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삶을 사는 거요. 언젠가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을 붙잡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위하여 궁극적 가치를 위해서 나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을 돕는 자로 살아가는 것.

[31:39]그것이 축복된 노년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이 다음 자라나는 자녀들의 세대에게 아름다운 기감이고 모델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부모 역시 가정의 축복입니다. 아마 지금도 이런 설교를 듣는 가운데 이 지상에 그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안타까운 분들이 계실 거예요. 부모님이 지금 살아만 계신다면 내가 이런 것들을 해 드리고 싶은데 그런 아쉬움의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오늘 여기에 부모님이 살아 계신 분들이 있다면 참으로 놀라운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시면서 부모와의 바른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경모하고 또 영적으로 세워져 감으로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오 계명은 단순히 혈연 관계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주변에 돌봄이 필요한 이웃의 어른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노년 사역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사역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요즘도 사역자들과 함께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령화 시대 속에 어떤 혈연적 부모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 속에 소외된 또 우리 돌아보아야 할 많은 이 노년 세대들을 우리가 교회가 어떻게 함께 섬겨야 할 것인가? 이것도 하나님이 이 오계명에 주신 명령이라고 믿습니다.

[34:00]부모 공경하시고 축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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