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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알려줄 결심'

CJ ENM Movie

28m 17s2,389 words~1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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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만수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냐 라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러니까 과연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중산층의 범위는 넓죠. 집이 좋은 집, 큰 집 그런 거 가졌다고는 하지만 지방 도시에 그 산 밑에 50년도 넘은 주택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의 가치로 봐서 그렇게 그다지 높은 가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주택은요, 집 자체의 가격은 그냥 제로예요. 25년 그렇게 근무하고 이제 관리직 올라서서 인정받는 그런 중견 사원으로서 그 정도의 경제력은 갖출 수 있다라고 봤고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제 실직이 되었을 때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 이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냐라는 질문이죠. 물론 그렇지 않아요.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에요 그 마음이 만수에게도 있어요. 본인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범모에게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아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라고 말하죠. 그게 바로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만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만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범모에게 소리 지를 때 드러나죠.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아!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 난 기술자야! 전문가! 이 영화는 만수에게 공감하고 그를 동의시해서 관객이 정확히 만수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그런 영화가 아니고, 그런 줄 알았는데 볼수록 만수를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되면서 과연 이럴 수밖에 없는지 자꾸 질문하게 만드는 거기에 바로 핵심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완전히 건조하고 냉정하게 만수를 지켜보기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정말 진자 운동처럼 영화 속에서 리원이가 아빠한테 그네 타고 왔다 갔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하는 것처럼 관객이 만수에 대해서 그렇게 밀착했다가, 떨어졌다가, 공감했다가, 또 비판적으로 관찰했다가 하는 일을 반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이 이제 지속되면서 관객은 저럴 수밖에 없나? 하는 질문을 하다가 저러지 말아야 할 텐데 결국에는 그 공감과 거리 두기가 이제 하나로 결합되어서 공감하면서도 연민을 가지면서도 아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자기가 하는 일에 문제를 깨닫고 멈췄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단계까지 가기를 바랐습니다. 이 영화에서 만수 또는 다른 남성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이 갖고 있는 남성성, 자기가 실직을 했다는 것이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빼앗긴 그런 기분을 느끼고, 그리고 나서 가족에게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좀 구실을 못하는 거 같은 실제로 아내나 자식들은 꼭 그렇게 보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아라가 말하는 것처럼 실직 자체가 아니라 거기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라는 게 바로 그 얘긴데, 괜히 자괴감에 빠져서 자기가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다고 느끼면서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다시 취직하는 것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점점 삐뚤어지면서 그것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개가 만수가 아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사건을 저질렀을 때,

[4:56]잠깐만요! 고개 들어. 아빠 봐. 아빠가 널 절대로 외롭게 두지 않을 거야. 이게 지금 살인을 두 번 한 사람으로서 점점 얻게 된 그 자신감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주저하고 하기가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는데 얼떨결에 하다 보니 뭔가 자기가 다시 남자가 된 것 같고, 그래서 아버지로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데, 결국 하는 일이라는 것은 아들한테 거짓말을 종용하고 심지어 강요하죠. 근데 이제 여기서 아이러니는 그런 결과로 아이가 금방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되면서 처자식으로부터 또 신뢰를 실제로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이것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요. 해서는 안 되는 범죄 행동을 스스로 하는 일, 그리고 자기 아이에게 부도덕한 가르침을 주는 일, 그런데 그것이 가족 내에서 입지를 더 회복하는 일, 이 모든 게 다 맞물려서 진행되면서 정말 갈 때까지 가게 되는 거죠 만수는 남자는, 아빠는, 남편은 이래야 한다라는 식의 사고 방식이 그를 비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로 그 어리석음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6:38]예, 만수는 알코올 의존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9년 전에 끊어서 지금까지 술을 입에도 안 됐다는 건 사실이지만,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다라고 볼 수 있는 게 이미 맨 첫 신에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다 이뤘다라고 말할 만큼 완벽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만수는 아내 몰래 와인 냄새를 맡고, 눈치를 보고 그렇게 하죠. 그리고 술 마시던 시절에 취해가지고 아이를 때린 적도 있고, 그런 좀 위험한 성향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런 폭력적인 어떤 경향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저 깊은 곳에 누구든지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이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아주 너무 깊이 숨겨져 있어서 평생 그게 발현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만수가 특별히 부도덕한 사람, 특별히 폭력 성향을 막 타고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취약한 점이 있는 거죠. 그런 사람이 어떤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서 실직과 집을 잃게 된 상황 또 갑자기 떠오르는 어떤 아이디어 이런 것들이 다 합쳐져 가지고 이런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한 건 한 건 해결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고,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안 하면 몰라도 할 거면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본래 자기 직장에서 일을 잘했던 사람답게 계획 세우고 너무 하기 싫고, 두렵고 막 그런데도

[8:51]꾸역꾸역 해나가는 거죠. 좋아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닌 것이 선출의 살해 장면에서조차도 예를 들면, 매니저 한 명 더 구해야 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반색을 하면서 그래 우리 같이, 나를 추천해 봐. 나하고 같이 일해보자 우리 잘 맞을 것 같다, 1팀, 2팀 그럴 때 이 클로즈업에서의 그 간절한 눈빛이 있잖아요. 그때 그 눈물을 흘릴 만큼 만수가 반기는 이유는, 살인하지 않아도 되니까인 거고, 또 대놓고 선출에게 이게 다 진심이거든요. 정말 나 이거 이거 하기 싫은데 그렇게 안 하면 앞에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이다. 그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다라고 그렇게 자꾸 이제 합리화를 합니다. 그래서 죽이는 과정이 사실 굉장히 척척 잘 처리한다라고 보일지 모르겠는데 정작 살인 그 단계에서는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수가 그렇게 완전히 인간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었다라고까지 보기보다는, 평범했던 사람이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나쁜 일을 해가는 이 만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도덕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관객들도 질문이 굉장히 독하고 강해야 관객 스스로 돌이켜보고 생각하는 자극을 크게 받잖아요. 그러려는 의도였습니다.

[10:50]여러 가지 층위로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우선은 뭐 그냥 만수의 성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집스럽고 고지식하고, 좀 미련한 면 나는 지금 돈 못 버는데 치과 치료는 돈 많이 들고 그러니까 취직을 금방 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참자. 그런 것은 좀 마조히스트적인 면도 좀 있죠. 막 아픈 데서 쾌감을 느끼는 그래서 빨리 구직의 노력을 막 더 치열하게 이게 아프니까 이걸 빨리 멈추게 하기 위해서 더 치열하게 노력해서 빨리 임무를 완성하고 이걸 시원하게 뽑겠다. 그때 아주 후련하게 그런 생각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남구라는 후배가 그런 말도 하잖아요. 아유 저 똥고집 이러면서 형 치과 안 가요? 좀 가요 좀. 취직되면 또 바빠서 못 가잖아. 아니야 괜찮아. 또 또 그 이상한 똥고집 근데 이제 만수의 그런 미련한 면이 이 전체의 행동을 또 설명해 주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하죠. 그런 사람이 빨리 관객도 이제 그걸 따라가다 보면 만수가 찡그릴 때마다 제발 좀 빨리 좀 취업을 하면 좋겠다라고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데 그가 하는 행동들은 또 응원할 수 없는 행동이니까 이게 전체가 다 딜레마라고 봤을 때 관객도 마찬가지로 그런 딜레마를 느끼게 되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뭐 우리의 존경하는 유현목 감독님의 오발탄이라는 걸작에서의 인용도 있는 것이고요. 또 만수가 갖고 있는 그 알코올에 대한 끌림 있잖아요.

[13:04]그 폭탄주를 막 벌컥벌컥 한 번에 다 들이키고 만수는 막 공포에 위 혼란 뭐 여러 가지 있겠지만 또 그토록 마음 속 깊이 원했던 그 알코올을 완전히 그냥 엄청난 양으로 섭취해 버렸을 때 꾹꾹 눌러두었던 뚜껑이 뻥 터지면서 압력이 이제 지나쳐서 뚜껑이 막 터지면서 분출되는 해방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때 아주 무식스럽게 폭력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를 뽑아버리고 피가 막 터져나오고 또 음악도 바로크 음악이 막 빵하고 터져나오고 그래서 도덕적인 만수의 이 억압 있잖아요.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 여기서 이제 벗어나야 되는데 하는 이 억압이 해제되고 정말 봉인 풀리고 악마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그럴 때의 역설적인 해방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14:20]리원이는 그 그림 악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니까 관객은 스케치북에 이렇게 알록달록 색깔로 점을 찍는 행동이 뭔지 모르잖아요. 그냥 아이의 무의미한 그림 장난이라고 생각하죠. 놀이라고 생각하죠. 근데 그것이 너무나 심오한 어떤 음악의 악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래서 이런 천재의 머릿속은 어떤 것인지 어떤 형태인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잠깐 일면을 힐끔 본 것 같은 들여다본 것 같은 순간을 맞죠. 그런 좀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어떤 맥락에서 자기가 들은 말을 반복하는지 방금 들은 말을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니고, 한참 되었는데 왜 하필이면 그 말을 이 상황에서 하는지 좀 알쏭달쏭한데 어떻게 보면 좀 알 것도 같고 예를 들면 그네를 타고 있으면서 벌레가 끓어서 그 잘생긴 배나무가 다 죽어간다 마음이 아팠다는 아빠의 말에 대해서 우리 처지에 이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라는 말을 왜 하는지 이게 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벌레가 끓는다는 것도 다 식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벌레가 끓어서 다 죽어간다라고 하니 아빠의 영혼이 지금 만수의 영혼이 갈가 먹히고 있고 그래서 양상하게 가지지만 뼈만 남은 채로 영혼이 다 사라지고 있다 붕괴되고 있다는 이 현실을 그래도 합리화 해주는 말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마지막에는 또 아빠한테서 들었던 벌레가 끓어서 다 죽어간다는 그 말이 지금 만수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성공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첫 출근하는 마당에 그런 말을 돌려주는 어떤 리원이가 만수에 대한 심리 분석을 한 사람 같기도 하고 예언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뉘앙스를 주고 싶었습니다.

[16:39]일단 출발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강아지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환영 콘서트를 열어준다라는 생각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아마 그동안 엄마 아빠에게 들려주지 않았지만 그 온전한 연주를 이 강아지들 앞에서는 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처음으로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환영 콘서트의 의미인데 그래도 엄마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연주고 그래서 엄마가 문 열고 들여다볼 때 그래도 뭐 나가라든가 문 닫으라든가 그런 얘기는 안 하고 싫은 내색은 하지 않죠. 그렇다고 해서 뭐 어서 오세요 엄마도 아니고 그냥 허락해 준다는 정도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알쏭달쏭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만수는 들을 수 없는 상태이죠. 그것이 좀 슬픈 인상을 나한테는 줘요. 만수는 여기서도 역시 배제되는구나. 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자기는 생각했는데 이 기회도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는구나 하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또 오빠는 그러면 뭐냐? 오빠는 앞부분만 듣고 떠나죠. 자기의 세계를 향해서 결국 이 식구들은 지금 이 사건을 거치면서 각각 자기의 세계로 오빠는 오빠대로 이제 어른이 되어 가면서 많은 일을 겪었잖아요. 사실 트라우마도 겪고 여러 가지 일을 제일 드라마틱하게 겪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나이에 비해서 그렇게 이제 독립의 시기로 접어든 것 같고 미리도 이제 돈 벌겠다라고 말하면서 독립을 준비하는 느낌을 주고 있고요. 리원이는 그동안 우리가 우습게 봤지만 그런 애가 아니었다. 너무나 깊이 있는 성숙한 연주를 할 줄 아는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엄마가 들어다봐도 그냥 내버려 둘 정도로 성숙한 아이였다 그런 것들 다 드러나면서 엄마는 엄마대로 이 아이의 연주를 드디어 들을 때 그런 감동도 있고 이렇게 잘 할 줄이야 하는 그런 안도의 마음도 있고 그런데 이 아이를 데리고 이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독립해서 감당할 수 있나? 뭐 이런 많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있을 것 같아요.

[19:25]문제지 공장부터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은데 만수는 이제 그렇게 원했던 일자리를 얻었고 그래서 만족해서 출근을 했는데 배웅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무언가 미심쩍고 그래서 이 만족감과 어딘가 모르게 불길하고 불안한 마음이 다 혼재된 상태에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생각해요. 들어와서 막 환호를 할 때 만수가 마음이 있고 그러고 나서 금방 또 되게 가라앉은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오고요. 자기가 불을 켜고 기계 셔터를 올리면서 자기가 이 공장을 통제한다. 그런 직업적인 자부심 굴림하는 사람 같은 느낌을 갖지만 이내 아주 생소한 기계 장치들과 마주치면서 우왕좌왕하죠 이렇게 갔다 저렇게 갔다 하면서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여기가 원래 20 몇 년 해오던 대로 몽둥이로 종이롤을 두드리면서 이게 잘 감겼는지 그 감각을 느끼고, 그것으로 승인을 하거나 아니면 뭐 재작업을 하거나 이런 명령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이 불필요한 시대고 실제로는 만수보다 머리 훨씬 위에서 로봇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고 그런데도 인간이 그래도 뭔가를 해야 돼라고 하는 안간힘, 어떤 행동이죠. 마지막 퇴장 때는 걸어오면서도 이제 뭘 해야 되나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나를 몰라서 두리번두리번 합니다. 뒤에서는 불이 하나씩 꺼지죠. 소등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면 AI가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해서 불을 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만수라는 사람 이제 불필요하다. 이제 나가라, 꺼져라. 사실 불을 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물리적인 어떤 행위가 에너지가 아닌데 우리가 이 맥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그냥 텅 빈 공간을 어둠이 하나씩 차지하면서 그 어둠이 이 사람을 정말 물리적인 에너지로 등을 떠미는 것 같은 느낌을 일으키죠. 그리고 이어지는 벌목 장면은 순수한 폭력의 이미지로서 이 영화가 여태까지 말해온 것 그리고 만수가 자기 입으로 모가지를 댕강, 이렇게 댕강 자른다라고 할 때의 그것을 이미지 그대로 표현한 이것이 무슨 생태 뭐 물론 생태 환경의 이슈를 보여주기도 합니다마는 동시에 순수한 폭력의 이미지다. 인간에 대한, 또 인간성에 대한 그것을 아주 난도질한 그런 이미지로서 사용했습니다.

[22:36]원작에서는 미리가 남편이 한 일을 모르죠. 저는 이제 이 스토리가 진정으로 도덕적인 하나의 우화가 되기 위해서는 만수가 처한 거대한 역설 이것을 잘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한 일인데, 그 일 때문에 가족이 파괴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노력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거대한 헛수고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리는 모든 것을 알지만 당장 그것을 드러내고 항의하거나 따져 묻거나 뭐 그러진 않죠.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더 궁금해지는데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관객이 자기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자기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심지어 자기의 경제력이라든가 이런 이 모든 것을 다 뭉뚱그려져서 선택을 또는 상상을 하게 될 텐데 나라면, 또는 뭐 내가 아니더라도 미리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를 각자 그려볼 것 같아요. 그런 눈으로 보면 또 다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미리가 끌어안고 만수하고 대화할 때 눈물을 흘리면서 보여준 태도가 따뜻하다. 또 첫 출근 때 배웅하면서 집을 팔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거나 이 모든 게 또 그 미소조차도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게 그렇게 느껴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용서해 준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뭐 독립을 하겠다, 돈 벌겠다는 식으로 그리고 그 미소라는 것도 조금은 가식적일까요? 억지로 짓는 미소 같기도 하고요. 집을 안 팔겠다는 이유는 사과나무를 심었기 때문인데 사과나무 밑을 새 주인이 파 보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 때문에 못 파는 거다라고 볼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관객들이 각자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가 정말 궁금하고요.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결론도 있죠. 용서를 하려고 하고 하지만 잘 되지 않아서 죽을 때까지 긴 투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장 갈라서진 않아도 살긴 사는데 잘 안 된다. 잘 됐다, 잘 안 됐다, 왔다 갔다 한다. 그런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상상일 수도 있습니다.

[25:20]배롱나무는 애초에 각본에 적어 놓았을 정도로 첫 번째 선택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배롱나무의 그 몸통 굵은 가지를 그 나무 껍질이 없이 이렇게 단단한 그리고 약간 울퉁불퉁한 좀 오래된 배롱나무의 경우에 그것이 좀 인간의 남성들의 근육질 몸 같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만수를 떠올리게 했고요 저한테는 첫 신에는 아주 아름다운 분홍색 꽃이 달려서 날리죠. 그래서 그것도 그런 근육질 몸통하고는 또 대비되는 이미지이고 두 가지가 같이 있는 상태에서 첫 신을 열고 싶었고 뭐가 됐든 만수에 온 힘을 다해서 가꾼 이 정원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주 눈길을 끄는 나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26:22]첫 이미지가 아주 강한 햇빛이죠. 카메라가 이렇게 태양으로부터 이렇게 하강하면서 구름에 해가 다 가리고 또 나오고, 이런 것이 또 인서트되고 전체 DI를 통해서도 그것을 세심하게 만졌어요. 그래서 해가 들어왔다 나왔다 하는 것을 관객이 확실히 인지할 수 있게 그렇게 하려고 했고 미리가 은행에서 온 채납 경고장을 열어보는 장면이죠. 그때도 카메라 이동을 통해서 해가 렌즈로 바로 들어오는 효과를 만들면서 이제 파피루스의 만수로 넘어가게 되죠. 다 이 가혹한 운명이라고 할까요? 사정없이 그냥 폭력적으로 눈을 막 찌를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통해서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또 가면 시원이가 아빠를 위해서 이렇게 해를 가려주는 그런 장면이 나오죠. 그때의 그 태양빛의 활용은 이 부자지간에 아주 행복한 한 때죠. 이렇게 가려주고, 고마워하고 그런 배려, 이런 순간을 이제 햇빛을 이미 우리가 가혹한 운명의 힘의 비유로써 사용했던 그 햇빛을 이번에는 다르게 반대되게 활용을 했는데 바로 이제 그 다음 순간 이제 최악의 비극이 시작되죠. 담배를 아이한테 돌려주는 행동이 결국은 아이가 지붕에 올라가게 하고 또 아빠의 행동을 구경하게 만들고 이 모든 최악의 비극의 시작이고 그 시작 직전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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