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자, 오늘부터 우리는 십계명을 강해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한 30주 정도 계획을 하기 때문에 긴 이제 장정을 시작을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시대의 위기가 오늘 우리의 시대 위기를 얘기할 때 그 위기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혹시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우리 온통 위기라고 얘기를 참 많이 들어 요즘. 경제 위기도 특별히 많이 얘기하죠. 경제 위기다, 한국은 지금. 요즘 국회를 봐도 정치적 위기도 맞는 거 같아요. 정치적으로도 위기, 남북 관계도 위기. 핵 위기가 있잖아요. 가정의 위기 뭐 너무 우리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 뭐 환경, 이 지구의 오염, 이런 생태계의 문제 이것도 위기. 이고 국제 관계나 모든 것들이 다 위기라고 말합니다. 자, 오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의 그 한가운데 무엇이 위기인가? 그 가운데 하나는 기준이 없어진 겁니다. 기준이 희미하거나 없어진 거예요. 오늘 우리 시대를 우리는 상대주의 라고 얘기합니다. 이 상대주의는 절대주의의 반대말이죠. 상대주의라는 말은 절대주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면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믿죠. 그러나 오늘 시대는 절대라는 단어를 싫어해요. 그리고 절대라는 그 것은 없다는 거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문화는 너를 믿으라. 너를 믿으라. 너 자신을 믿고 네가 옳다고 하면 네가 옳은 거야. 너의 감정에 충실해. 믿을 것은 너밖에 없어. 너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예. 네가 맞으면 맞는 거라는 거죠. 이 개성이 강조되는 세상이라는 거예요. 개성.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개성이 중요한 거요. 뭐 겨울에 뭐 아 봄에 겨울 옷을 뒤집어 쓰고 오던 가을 옷을 입고 오던 속옷을 겉에 입던
[2:43]위아래 옷을 바꿔 입던 마누라를 남자로 하던 취향이에요. 여기 동성연애도 그러잖아요. 동성애도 취향이라는 거. 성적 기호, 그 개인의 기호라는 거죠. 너 자신이 기준이 되라는 거예요. 이런 시대를 우리는 방종의 시대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사세기 사사 성경에 나오는 사사기가 그랬어요. 여러분 사사기를 보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게 사사기의 키 구절이죠. 자, 여러분 인간이 스스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죄란 무엇입니까? 관역을 벗어난 거예요. 기준에서 비켜난 거죠. 오늘 우리 세상은 이 기준을 무시하고 기준에서 벗어나고 자기가 옳다고 믿고 살아가는 삶은 결국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자기 마음에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혼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무너졌습니다. 세속 사회는 방향을 잃었어요.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졌습니다. 선과 무엇이 선견이고 무엇이 악이냐? 그것을 판단할 기준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4:40]우리 영어로는 노멀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잖아요. 노멀, 정상적이다. 근데 오늘은 아브노멀 비정상이 정상이고 정상인 비정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로마서의 바울이 얘기했던 것처럼 술을 거부하고 영리를 쓰는 거죠. 사랑이 왜곡되고 결혼이 왜곡되고 가정이 흔들린 지 오래됐어. 왜 기준이 없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그러지 않아요.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자유가 오는 게 아니고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의 이 주기를 맞았어요. 왜 멀쩡한 배가 바다에서 갑자기 침몰을 하고 말았습니까? 설계 도면을 무시한 거죠. 원래 그것을 디자인한 그 설계 도면에 있는데 그거를 무시해 버리고 변형을 시켜 버린 거 자기 마음대로. 그 자기 마음대로는 뭐예요? 인간의 탐욕이란 탐욕.
[5:59]여러분 자기 욕심이 기준이 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요. 다른 사람도 죽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기분이 내 기호가 내 생각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본래의 설계 도면을 무시하면 안 되는 거죠. 우리의 탐욕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스코치다가 또 바다 쪽으로 향하다가 이 반복하는 훈련들을 하는 걸 보죠 우리가 한 번씩. 근데 가끔 이 전투기 조종사들이 헷갈릴 때가 온대요. 이게 하늘인가 바다인가. 그래서 잘못하면 바다로 내리 꽂는 거죠. 그 헷갈릴 때는 자기의 기분 느낌 자기의 눈을 믿으면 안 돼요. 기기판을 믿어야 되는 거죠. 자, 오늘 가정이 흔들리는 이유가 뭘까요? 성적 성적인 방종과 타락이 거세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삶의 삶들이 깨어지고 망가지는 이유는 우리를 지켜 주는 절대적 기준을 다 차버렸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를 지켜 줄 울타리가 불편한 거죠. 그래서 다 그냥 그게 너덜너덜해져 버린 거예요. 버리거나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기준이 없는 거예요. 기준은 나예요. 나의 기분. 내 감정, 내 욕구, 내 욕망. 내 내 기호. 최소한의 규칙이나 룰이 없어져 버렸어요. 각자 자기만의 룰이 있을 뿐인 거죠. 오늘 우리의 삶이 이렇게 훼손된 이유가 있다는 거죠. 자, 왜 우리가 십계명을 이 시점에 다뤄야 하는가? 우리의 삶이 왜 힘든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기준이 바로 11 십계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혼란의 시대에 방향 표지 등 거 같아요.
[8:03]우리는 신앙과 삶의 기준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단순한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 메시지가 이 십계명 안에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 그랬어요. 이 그만큼 이 십계명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성경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어떤 모르게 십계명이 어디에 있느냐 물으니까 성경 앞에 있습니다. 간단하죠.
[8:51]출애굽기 20장 오늘 본문과 신명기 5장에 있습니다. 신명기 5장에서는 모세가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한 들어가기 바로 그 목전에 이 십계명을 소개합니다. 광야를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 노예 생활을 끝낸 백성들이 이제 가나안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여러분들의 삶이 복될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기준, 규칙, 원칙을 가르쳐 주신 거죠. 십계명 자체는 아주 간결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의 핵심이 당겨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두 돌판에 새겨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한 것이죠.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역사를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핵심적 계명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에서 십계명은 열 마디라는 뜻이 있습니다. 열 마디. 그래서 데칼로그스라는 그런 영어를 쓰죠. 데칼로그스. 열 가지 말씀.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십계명은 어떤 제한이 아니고 권고가 아니고 명령이다는 거요. 이런 명령은 엄중한 겁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명령. 이것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말씀을 지키면 축복이 되지만 지키지 않을 때에는 그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될 것은 바로 불순종한 당사자가 쳐야 되는 것입니다.
[10:47]자, 어떤 사람은 십계명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집니다. 사실 이 십계명이 기록된 것은 BC 1300년경이죠. 아주 오래된 고대 사회에 주신 어떤 히브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을 법전을 오늘 시대에 어울릴까? 적용해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진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입니다. 여러분 진리는 세월이 바뀌면 또 다른 진리로 변형되는 거는 진리가 될 수가 없어요. 진리는 언제나 진리예요.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세요.
[11:44]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언제나 영원합니다. 그리고 인간도 딱 똑같은 인간이에요. 죄짓는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형태만 다를 뿐이지 똑같아요. 문화가 바뀌면서 인간이 뭐 여러분 요즘도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있지만 고대 사회도 보면요, 잔인하기 일 데 없는 것들이 많아요. 인간은 똑같아요.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거요.
[12:14]그러므로 십계명은 시대가 변했다고 수정해야 할 내용이 아니고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거요. 그리고 이 십계명은 열 가지 제한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자, 그러면 십계명은 누가 주셨는가? 주신 분이 누구이신가가 중요하죠. 누가 주셨는가를 바라봐야 내가 순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2:48]십계명은 하늘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말씀을 통하여 기준을 제시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준이시고 하나님은 법칙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이 원리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모든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죠. 그 창세기 1장 1절이 매우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걸 믿어야 돼요. 이걸 안 믿으면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세상이 돌아가고 운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질서 아래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은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라는 거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사용 설명서를 잘 봐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모든 규범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에 이 십계명이 기가 막히게 만들어져서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해야 참된 행복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주 핵심 요약 정리를 다 십계명이 하신 거예요. 제가 30주 정도 얘기를 했지만요. 30주도 게임이 안 되죠. 이 성경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
[14:18]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삶이고 우리의 삶의 권원, 원칙, 법칙 모든 것들이 원리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면 망가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야 된다. 하나님의 사용 설명서가 있다는 거예요. 매뉴얼이 있다, 매뉴얼이. 제가 우리 큰 애가 좀 클 때 어릴 때 장난감을 제가 미국에 안식년 있을 때 장난감을 좀 귀한 게 감 나가는 거를 사 가지고 온대요.
[14:51]근데 그게 샀더니 뭐 복잡하더라고요. 1번 뭐를 끼우고 막 하는데 만들어야 되는데 경고해 놨더라고요. 순서를 바꾸면 망가진다.
[15:04]근데 저는 기계치기 때문에 아 뭐를 하나 순서를 딱 잘못 끼웠는데 안 되기 시작하는 거. 끝난 거요. 그래서 땅을 치며 통곡할 뻔했어요. 자, 여러분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을 따라 들어가면 출발지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 겁니다. 창세기 3장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진단을 하지 않고 미복층을 자꾸 하는 거죠. 여러분 우울증에 걸리면 우울증 약을 처방하면 해결되나요? 무슨 되죠. 의학적 처방은 마땅히 해야 됩니다만은 의학적 치료만으로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왜? 그 우울증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양만 먹고 우수는 해결되지만 또 오거든요, 여러분. 왜 인생이 허망한지, 왜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지, 왜 무 의미를 느끼는지, 왜 내 삶에 기쁨이 없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근원적인 요인을 찾아내야 된다.
[16:09]돈을 못 벌어서가 그런 게 아니거든요.
[16:14]내가 뭘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거든요. 더 근원적인 게 있단 말이에요. 여러분 불안하고 삶이 막 힘들고 지치고 하면 뭐 어디 휴가 갔다 오면 좀 해결될 줄로 생각해요. 근데 휴가 갔다 오면 일시적으로 긴장은 좀 완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휴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왜 내 삶이 이렇게 계속 반복되면서 어려움을 주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없는 거죠. 요즘 가정의 문제가 심각 심각해요, 여러분. 보통 심각한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답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 그 디자인하신 그 본래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 모든 것은 미봉책이 되고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십계명을 보면서 우리의 창조의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던 그 원형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17:20]자, 십계명은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십계명 안에는 인류의 보편적인 지침들이 있습니다. 뭐 부모를 공경하라거나 살인하지 말라거나 거짓말하지 않나. 이 보편적인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 십계명을 주신 게 아니에요.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오늘 이 재료의 말씀을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를 먼저 허락하시고 자유함을 얻은 백성들이 그 자유 안에서 계명을 지키는 거죠. 불러냄을 받은 백성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이 교도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백성이 되었지만 이전에 애굽에 살 때의 삶의 기준과 방식을 버리지 않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십계명은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거죠. 왜 내가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그 애매 모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예요? Who am I? 내가 누구인지 자기 아이덴티티가 분명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한, 구별된, 오늘 교회가 뭐예요? 에클레시아라는 거요. 이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불러 내셔서, 우리를 이끌어 내셔서, 구별된 백성으로 우리를 모아 주신 거죠. 다르다는 거예요, 다르다는 거요. 우리가 이 세상을 닮은 자로 살아가기를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전혀 다른 백성들. 그래서 십계명은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다른 자들로 살아야 할 것을 요청하시는 부름입니다. 근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신자들 마저도 기준이 모호해진 시대입니다. 십계명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잘 다루지도 않고요, 십계명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거죠. 그래서 결국 우리의 삶이 어때요? 세상과 별반 다름 바 없는,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사는 거요. 이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오늘 우리가 직장 속에서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 구별된 백성인가? 여러분 이것에 대한 우리가 확신이 없다면 세상 속에서 기준을 지키고 십계명을 붙잡고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이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행복을 위해서요.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 안에서 순종하고 질서를 지켜 갈 때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유지하고 통치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은 사랑에 많으시고 자비가 많으시고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실 때 그 율법이 쓸데 없는 것을 주신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행복, 행복을 위해서. 여러분 집에서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서 막 놀이태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뭐를 달라고 그러면서 딸기를 딱 주려고 하는데 손이 시커면 무조건 손 씻고 와 그러잖아요. 명령이죠. 근데 막 따지면 안 되죠. 손 씻고 오면 되는 거예요. 왜? 이미 그 부모가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명령이에요. 손 씻고 와. 근데 아이가 뭐 위생학적으로 왜 손 씻어야 될지 뭐 증명하라고 그러고 그러면 복잡해지잖아요.
[21:32]여러분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져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셨으므로 이제 구약의 율법은 의미가 없다. 소위 율법 폐기론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아니에요. 신약의 시대는 오히려 구약 때보다 율법을 더욱더 명확하게 알게 되고 율법의 역할이 달라졌어요. 율법의 효용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율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신약 시대는 더 구약 시대보다 적극적이어야 돼요. 여러분 구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행했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율법, 하나님의 말씀들을 귀중해진 거예요. 그 억지로 우리가 이제 행하는 게 아니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 믿음 생활 잘하고 은혜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은혜받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내가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나는 거요. 그게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에요. 왜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 명령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는 거요.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러잖아요. 부모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가 한 말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 이제 철이 들을 때 하는 얘기잖아요.
[22:57]십계명은 우리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꾸는 원리가 있습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확신은 주님이 주실 풍성한 약속을 기대하는 거죠.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할 근거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세상을 보십시오. 망가질 때로 망가져 있습니다.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자인 우리도 세상의 영향을 받아 기준이 모호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참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그 어떤 원리들, 기준들을 내가 무시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그런 거죠. 저는 십계명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과 철학과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십계명을 들을 때는 여러분 불편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도 있음을 사전에 알려 드립니다. 노약자들은 조심하시고. 여러분 기분 나쁠 수 있어요. 십계명을 다루면. 왜? 이게 여러분 만만치 않은 거예요. 만만치 않은 거예요. 저도 걱정했어요. 이 십계명을 30도 동안 어떤 어느 어디까지 들어가야 될지. 더 들어가면 교인이 좀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제가 고민이 많아요. 지난번 로마스도 야고보스도 다 사실 이 주일 강단에 이 메가 첫째 설교하기에 적합한 본문이 아니에요. 교회가 줄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하면서 했는데 감사하게도 줄지는 않은 것 같고 감사해요. 우리 기준이 너무 흐려져 있기 때문에 너무 후퇴져 있기 때문에 너무 세속화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준을 너무 느슨하게 붙잡고 있었던 거죠, 그리스도인이지마는. 그러니까 이게 원리가 정확하게 기준이 꽉 오면요. 우리의 삶에 상당한 부분에 아주 굉장한 어떤 흔들림이 오는 거죠. 할까요 말까요?
[25:12]이 애매한 박스는 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말씀과 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생각과 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고 기분 나쁠 수도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여러분. 그때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기분이나 우리의 주장이 중요한 게 아니죠. 하나님의 이론과 하나님의 주장과 하나님의 원리가 중요한 겁니다. 내가 나를 바꾸는 게 낫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 수양 문제를 풀 때 참 중요한 거 그래요. 수학 문제를 풀다가 공식 안 풀리니까 이 공식이 문제가 있구나. 이 그래서 공식을 내가 내가 만들어 가지고 안 풀려고 해요. 그러면 완전히 꼬이는 거요. 안 풀리면 공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문제가 있는 거요.
[26:10]오늘 십계명은 하나님의 기준이거든요. 우리의 기준과 규칙을 깨뜨려야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거요. 오늘 다원주의 시대에서 십계명과 같은 말씀은 결코 달가운 말씀이 아니에요. 강단에서 다루어지기 어려운 거요. 대중성이 없는 설교죠. 이미 세상에 많이 물들어 있는 분들을수록 이 십계명은 매우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십계명을 앞으로 다루면서 오늘 첫 날이니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에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를 준비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순종하면 여기에 길을 기울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하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어거지고 꼬였던 문제를 하나님 풀어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그 확신이 있어요. 이것을 우리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고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신 것이고 그 백성들을 축복하는 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우리의 삶의 총체적인 회복을 주시기 위해서.
[27:29]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언제든지 긋 길로 빠질 수 있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믿던 사람도요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게 변질돼요. 잘 믿는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은 이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은 그 욕망이 우리에게 있는 거거든요. 끊임없이 우리는 하나님보다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싶 하는 내 삶의 기준을 내가 세우고 누구에 의해서 간섭받고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인간의 이 죄의 본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 우리의 감정, 우리의 기호, 우리의 기분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성향을 조금이라도 용납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서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가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마음대로 살아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믿으면 안 돼요, 여러분. 사람들을 보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잖아요. 근데 행복해요?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 보세요. 미국. 자유의 나라. 자유의 여신상이 있고 뉴욕에 자유가 법람하는 시대에 진짜 자유가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미국은 지금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요. 사실은 얼마나 망가졌는지 모른다.
[28:50]아버지도 모르고 자라 태어난 아이들이요,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여러분. 낙태는 이를 말할 수도 없고 가정이 정상이 아니에요.
[29:07]여러분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행복하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도리어 자유를 속박당합니다. 보라 보십시오. 요즘 좋지 않은 중독에 빠진 환자들이 많습니다. 중독이란 뭡니까? 자기가 자기를 다룰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기의 통제 바깥의 일이라는 거죠. 내가 어 못 안 하겠다고 하는데 안 해질 수 없는 거요. 상 빠져버린 거죠. 중독이에요. 자유를 잃어버린 자유인들이에요. 갈수록 더 매이고 더 구속되고 더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기 위해서. 이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이나 거부감을 가지 마시고 불러내신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자유케 하시려고. 십계명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 십계명은 로드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들이 짐이었지만 이런 게 거추장스러운 것 같지만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는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이 계명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서 3장 5장 3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이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그 멍에 우리 멍에를 져 주시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주신 계명도 사랑하게 되고 기쁨으로 따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십계명을 살펴보는 가운데 여러분들 부담스럽게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때 그 앞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우리 삶에 놀라운 회복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 십계명의 핵심은 뭐예요? 관계예요, 관계. 관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둘 중에 하나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십계명하는 관계 안에 매우 십계명 안에는 관계라는 주제가 아주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일계명부터 사계명까지는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과의 관계 수평적인 것이죠. 그 수직과 수평의 균형.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십계명 속에서 앞에 세 계명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 세 계명을 단단하게 붙들어 놓지 않으면 뒤에 나오는 계명은 지킬 수도 없어요. 그래서 앞부분의 시간을 많이 들어야 돼요.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단하게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인생은 관계입니다. 관계를 누구와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반드시 우리는 영향을 받게 돼 있습니다. 십계명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총체적 회복을 말씀하죠. 그래서 오늘 1절과 2절을 다시 한번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니라.
[32:28]자 여기에서 여러분 보세요. 나는 너를 나는 너를. 그리고 뭐예요?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내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거죠.
[32:46]하나님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친밀하고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하시는지, 우리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하나님의 어떤 규정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폭군이 아니에요. 친밀하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시고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고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해야 됩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의 백성이다.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며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을 경험한다는 거죠. 그래서 십계명 안으로 들어가면 가 보면 막힌 관계를 회복하게 해 줍니다. 결국 여러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게 하시는 이 십계명. 그래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회복되면 반드시 이웃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나 나와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와 이웃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와 이 피조물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그때 그것을 우리는 축복이라고 말하는 거요. 지금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이 되지 않으면 나와 나와의 관계도 회복이 안 되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이 안 되는 거요. 여러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요 집에서 가족하고도 회복이 잘 안 돼요, 관계가. 근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면요 내가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니까 나와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니까 나와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이 되는 거요.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면 그 집에 화초도 회복이 되는 거요. 회복이. 나 나 나 내가 내가 이웃 아내와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수평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수평적인 관계로 흘러가면요 피조물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거예요. 그 집에 개들하고도 잘 지내는 거요. 내가 회복이 안 되면 아내하고도 연결이 안 돼요. 해결이 안 되니까 삶맛도 없고 그러니까 막 그냥 화초도 죽던 말던 막 물도 잘 안 주고 줬다 안 줬다 막 이런 거요. 그리고 지나가는 강아지 차기도 하고 막 밥 한끼 굶기기도 하고 막 이런 거죠. 그 뭐예요? 총체적으로 거기에 내 삶에 꼬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거죠. 모든 것은 여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절망과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기차가 레일이 없는 곳을 달리는 거와 똑같아요. 자동차 엔진이 없는 거, 나무의 뿌리가 없는 거, 아이가 부모가 없는 거와 똑같은 거죠. 여러분 십계명 속에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따라 살면 개인은 물론 나를 둘러싼 주변과 공동체 온 세상을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너무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십계명을 통하여 회복됨으로 육체적, 정신적, 영적, 도덕적, 사회적, 관계적 모든 영역에 여러분들의 삶에 회복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꼬이면요 모든 게 꼬이는 거예요. 그래서 십계명은 단순한 윤리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관계를 바로 잡아 줌으로 총체적인 회복을 가져오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요소가 이 십계명 안에 당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36:00]이제 한 주일이라도 안 빠지시고 나가는 게 좋아요. 하나의 하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꼬여 있는 걸 풀어내는 키들이 이 말씀 안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내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러분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내 하나님. 여기서 애굽은 무엇을 오늘 우리에게 의미할까요? 우리가 속한 세상이 뭡니까? 어둠의 세력들, 사단의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 삶에는 수많은 족세들이 매어져 있어요.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족세들은 우리 삶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 족세는 우리가 스스로 풀기에는 버거운 거죠. 때로는 그런 족세를 아마 한 평생 당연한 것처럼 내 인생을 끌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지만 속수 무책으로 그냥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땅파를 당한 세상과 같은 이 오늘날 이 시대. 삶이 치명적으로 손상을 입고 있는 이 시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너무도 많은 삶이 무너져 있는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통하여 우리의 무너진 기준을 새롭게 세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이 너무도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살펴보는 가운데 느슨해진 기준을 새롭게 하고 무너진 기초를 다시 경고하게 세우는 결단이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에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던 부분들에 그 무너진 기초를 다시 십계명을 통하여 온전하게 세워 나갈 때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꼬였던, 어려웠던, 막혔던, 힘들었던 문제들이 저절로 저절로 풀어지는 은혜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관계하는 모든 아니 환경들까지 다 바꿔 놓는 하나님의 이런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그 디자인 안으로 들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계명의 계명을 받아들일 때 마음을 활짝 열고 순종하고자 하는 그런 결단의 마음을 가지시고 이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결단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안 돼요. 그러나 성령이 도우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 계명을 지킨다는 건 쉬운 건 아니요.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고자 하는 그런 결단을 가지고 성경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이 충분히 우리가 감당하도록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이 십계명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기준 기준한 기준이 되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매주 매주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오늘 여러분 우리 삶에 다시 한번 인생에 우리의 가정에 개인의 삶에 하나님의 기준을 분명히 붙잡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