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거짓 증거하지 말라 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16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거짓 증거하지 말라 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16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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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자 구계명은 말에 대한 계명입니다. 우리의 신앙, 말과 연관이 있습니다. 말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말이죠. 말. 말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말을 들어 보면 인생의 격조가 느껴지고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이 고운 사람 그 인생도 곱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속이 보이죠. 그 마음에 들어인 것이 말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래요. 나는 말은 이래도 사람은 괜찮다고. 그러지 않아요. 말이 그 사람이에요. 말이 건강하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말을 들어보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말로 인생이 세워지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정직하지 않으면 그 정직하지 않는 삶이 건강도 해칩니다. 예. 그리고 정직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진실함과 행복이 연결되는 것이지 거짓이 행복을 결코 보장해 줄 수가 없어.

[1:11]여러분 정직하지 않으면 이룬 성공도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거짓 위에 올려진 삶은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요즘 여러분 우리가 늘 뉴스를 보는 얘기가 그 얘기입니다 사실은. 거짓은 거짓이 위에 세워질 인생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거짓이 간에 들어가 있으면 그건 부실한 겁니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결국 거짓말은 계속 거짓말을 하면 삶을 어디로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무너지게 추락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성공 자체에 목을 매면 진실은 뒤로 밀리게 돼 있습니다. 성공이 중요한 시대, 진실을 뒷전으로 몰아버리면 결국은 그 인생은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진실함으로 세워진 인생이 가장 안전하고 경고합니다. 성경은 이 정직함, 이 진실함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공의에 관심이 많죠. 구계명은 거짓으로 공의를 깨뜨린다는 면에서 엄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사람이 죽고 사는 모든 문제들이 우리의 입을 통해서 일어나고 또 증인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사용하라는 겁니다. 거짓말로 인해 이웃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엄격한 죄라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3장 1절로 3절에 보면 너는 거짓된 풍수를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진실한 증언 이 거짓된 것은 말은 증의를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왕으로서는 국가 공력을 탁월하게 했습니다. 그의 재임시 이스라엘은 전성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존경받는 영웅이죠. 성공한 왕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때에 밧세바와의 불륜 사건이 터집니다. 그리고 밧세바의 아내의 남편했던 자신의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범합니다. 다윗의 범죄 과정을 보면 거짓말이 계속 늘어납니다. 범죄를 가리기 위해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드리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아를 위하는 척하면서 그를 죽이고자는 계획관데 거짓말을 늘어뜨리는 거죠.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했던 당사자였던 그가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접하는 과정에서 거짓된 모습을 보입니다. 왕의 명령을 따라 실행에 옮겼던 요압 장군 역시 이 왕의 거짓말 이 정랄한 거짓말을 목격합니다. 다윗은 철저히 거짓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려 하면 어떤 죄든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이 필요해집니다. 다윗은 죄를 지을 때 거짓말을 했고 지은 죄를 가리기 위해서 또 거짓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거짓으로 덮혀진 삶은 결코 안전하지도 않고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다윗의 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못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단 선지자가 왕궁을 방문합니다. 나단이 찾아온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죠. 왜? 다윗의 죄를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의 거짓을 드러내기로 하시고 나단 선지자를 다윗의 궁으로 들려 보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기가 막힌 설교 3인칭으로 시작해서 2인칭에서 나중에 1인칭으로 좁혀지면서 다윗의 심장을 기어 놓습니다. 그 하나님의 그 발가 벗기고자 하는 그 정말하는 그 지적 앞에 다윗은 엄청난 죄의 무게를 더 이상 이기지 못하여 솔직하게 인정하고 맙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습니다. 여러분 거짓의 형태는 주로 은폐를 하고 조작을 하고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고 책임 회피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독특성을 봅니다. 성경은 세상의 영웅과 달라요. 성경은 어떤 영웅이라도 변호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비감을 남겨 놓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 그대로 솔직하게 정나라하게 묘사해 버립니다. 거짓을 결코 미워하지 않아요. 인간의 힘으로 가리려고 했던 모든 옷을 벗겨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영웅,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 통일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업적을 이룬 전사, 그리고 현재도 절대 권력자로 서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정점, 거칠 것이 없고 겁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매우 위험한 짓을 했죠.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역할을 다했어요. 나단은 인간이 인간의 자료로 돌아가게 하는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시편 51편 참의 시를 통하여 다윗은 거짓의 사람에서 진실한 모습으로 진실한 사람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고 싶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리고 있던 드른 드른 옷을 벗어 버립니다. 그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함으로 그의 모든 명성은 다 파묻혀 버릴 뻔했습니다. 적당한 회개가 아니라 그는 깊은 회개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완전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정직해져 가는 것입니다. 성자들이 참회록을 쓴다고 말합니다. 죄 속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 안에서 다윗의 위치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62장에 걸쳐서 다윗의 이야기가 펼쳐지고요. 신약에서도 50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 인물이. 신구약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 독특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다윗을 향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 어디에서도 표현할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칭호, 내 마음에 합한 자. 자 그러면 어디에서 이렇게 다윗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다윗의 무엇 때문에? 그가 이룬 업적들 때문일까요? 물론 업적도 있긴 하지만 다윗의 인간적 약점도 많았습니다. 죄질이 높은 불륜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죽인 살인 교사죄. 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 수많은 첩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암론과 압살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버지로서도 그는 실패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요. 어떤 위대한 일을 한 것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함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위대함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 해석자들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나단 선지자 앞에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한 이 사실을 꼽습니다. 가장 아름다움. 가장 다윗다운. 가장 멋진 장면은 다윗이 위대한 어떤 업적을 이룬 어떤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산산 조각난 깨어진 다윗의 정직한 모습. 정직해진 이 순간이 가장 멋진 아름다운 인간다운 모습이었다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장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이컬을 받을 수 있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뭐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모습. 진실된 모습으로 회개하는 다윗. 여러분 성경에서 다윗을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 놓으신 것은 한마디로 다윗의 정직성이라, 정직성. 그는 눈물로 침상을 적십니다. 51편을 보면 가볍게 회개한 게 아니에요. 시편 6편을 보면 다윗은 그 회개의 과정에 뼈가 떨린다고 말합니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눈물로 적십니다. 그렇게 고백을 해요. 그냥 지나치는 고백 정도가 아니라 회개의 눈물 그 진실어린 그 눈물이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다는 겁니다. 성공을 달리던 왕, 백성들 앞에서 위험으로 가득찼던 왕이 침상을 적시고 딩굴고 있는 모습. 주의 참혹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다윗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 주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새롭게 태어납니다. 솔직해지는 순간 죽는 경험을 하죠. 그러나 그 정직은 다시 그를 태어나게 만듭니다. 우리가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의 자신을 발가 벗길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인가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내려고 애를 쓰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네가 누구인가를 물으신다는 거예요. 이를 이루어내는 가운데 여러분 일은 위험한 거예요. 일을 하다가 일을 이루어내고 그 일이 커져가고 잘 되면 그 일 속에서 내가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업적을 이루어 가면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위험한 시도를 할 때가 많아요. 다윗도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고 전성이 이루니까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은 성전을 지어 드리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래요. 노 노 땡큐.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집을 지어주는 것 노. 오히려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 주겠다. 영원한 왕국을 세워 주겠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우리가 필요한 하나님에게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의 연약함과 거짓된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내 달라고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잘 사는 길은 진실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최고의 삶을 사는 비결이 뭡니까? 진실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던져질 때 복음이 우리에게 가까이 올 때 십자가 앞에 가까이 갈 때 우리 자신이 정직해지는 거요. 우리가 얼마나 죄악된 사람인가 얼마나 거짓된 사람인가. 자세히 보면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거짓된 사람인지 몰라요. 헬라어 히포크리테스라고 하는 이 이 위선자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본래 가만히 쓴 연극 배우를 말합니다. 거짓의 사람이 되는 것. 진짜 같이 행동하는데 전부 다 진짜가 아니에요. 가짜란 말이죠. 인생은 연극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허구를 벗겨내야 합니다. 점점 점점 더 진실해져 가야 된다는 거요. 그때 그 진실해져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어. 여러분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진실함이에요. 거짓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복음을 경험할 수가 없어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허구 속에 내 인생이 만들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역사가 언제 일어납니까? 진실할 때 일어나는 겁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 나는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나는 죄악 덩어리입니다. 여러분 이 실존적 깨달음은 이 깨달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어요. 자신의 어려운 것처럼 가면을 쓰고 다닌다면 은혜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가장 변화하기 힘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자신의 도덕성을 믿고 자랑하는 사람들이에요. 세상적으로 보면 반듯할 지므로지만 하나님 앞에 서오면 가장 악한 모습이에요.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만큼 악한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 앞에서 죄를 자백함으로 그의 인생이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요. 다시 살아납니다.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려고 하지 않고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으려고 하고 벗어 던져 버린 거 정직함. 그것이 다윗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었어. 사랑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직해야 살 수가 있습니다. 복음은 정직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내가 정말 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진실되게 고백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를 붙들어 주는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가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만나 주십니다. 가연을 벗어 던진 자를 만나 주십니다. 죄인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자를 만나 주신다는 거예요. 포장지를 다 벗겨야 돼요. 여러분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관계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말을 얼마나 잘하는 거 아니라 진정성이 있느냐? 진정성이 있느냐? 아무리 의사 소통의 기술을 습득해도 진정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성이 없으면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데 그 대화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대화를 해 보면 참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요, 여러분. 참 좋죠. 믿음이 가는 거죠. 신뢰가 가는 거예요. 아 대화가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근데 진정성이 없으면 하고 싶지가 않아요, 얘기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방 모임에서 우리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자기의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정말 정직하게 드러내고 다른 사람도 진실하게 대할 줄 알 때 그 사랑방 안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만약 이 진정성이 없이 그냥 껍데기만 만나서 그냥 적당한 포커페이스를 하면서 왔다 갔다 만나고 적당한 얘기도 하며 하다가 만나면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0년 20년 만나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진실할 때 우리의 관계는 깊어지는 것입니다. 진실할 때 그 안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을 다루십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놓치는 것은 내면 세계,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의 문제.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우리 내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합니다. 겉으로 어떻게 보이느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신앙의 경력, 직분, 뭐, 업적, 학력, 싸워 놓은 스펙 아무리 화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타이틀보다 그가 정직한가를 보시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을 위 위장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정직해지지 않는다는 것. 신앙생활을 많이 하면 갈수록 진실해지기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목사라는 이 직분이 위험해요. 이 목사라는 직분 때문에 참 정직해지기가 어려운 거예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좀 표현하지 못하는 거죠. 괜찮은 목사로 보여지려고 하는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에 이중적인 이중적인. 이 연약함이 드러나면 교인들이 시험을 들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다 보면 진실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게 목사예요.

[18:20]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박수를 받으려고 하다 보면 정직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초신자일 때는 그냥 순수하잖아요. 폼 잡을 게 없잖아요. 죄인의 모습으로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만 직분을 가지고 중직자가 되고 오랫동안 다른 사람이 막 이게 칭찬해주고 박수를 쳐 주면 나도 모르게 그냥 자신을 잃어버리는 진실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그냥 포장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말과 행동이 박자가 맞지 않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해요. 존경받는 위치에 있을수록 위험해요.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현실의 개업을 메꾸지 못하면 거짓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봐 주는 것과 나라고 하는 존재가 다를 수 있단 말이죠. 그때 정직할 수 있어야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정직했습니다. 거짓된 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그 고백이 뭡니까?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이 바울의 모습은 뭘까요? 그는 자신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언제나 십자가 뒤에 숨었습니다. 자신의 육체적 자랑이 얼마나 거짓됨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에게는 소망이 없다라고 하는 진실된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키워야 합니다. 신앙은 진실 훈련입니다. 갈수록 정직해져 가야 정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대조를 이럽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기가 막힙니다. 거창합니다. 화려합니다. 멋집니다. 정말 잘났습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하나님 앞에서 열거하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도 다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의계시상 오기 위해서. 그러나 그게 비해서 세리 세리의 기도는 너무 간단해요.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러분 누구의 기도를 받으실 것 같습니까? 너무도 멋진, 너무도 화려한, 너무나 아름다운, 멋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 바리새인의 기도 들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기도 받지 않았어요. 얼마나 포장이 두꺼운지. 그냥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자신에게 솔직한 상태의 그 고백. 여러분 누구의 기도를 받으십니까? 정직한 자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깨어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솔직해지는 것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깨어진 자를 완벽하게 덮어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다윗의 진실한 고백에 대한 나단의 반응이 뭡니까? 사무엘아 12장 13절을 보면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여러분 진실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진실하면 살려 주십니다. 회복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여러분 사랑방이나 요론 인간 관계 속에 자기의 진실한 고백, 자기 연약함 약점을 드러내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누가 나의 약점을 내가 공개했는데 막 그게 막 그게 다른 사람에게 막 좀 흘러 나가 가지고 자기 약점 사랑방에서 공개했는데 그게 막 흘러 나가서 화를 내시는 분들이 계세요. 흘러 나가도 괜찮아요. 이미 내가 고백하고 내 연약함을 내어 놓을 때는 그 연약함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 아래서 회복되었음을 믿고 이미 그 문제를 통과한 사람들이라야 그 복음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오픈한 거잖아요, 여러분. 내 상처와 아픔들이 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지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이 내 죄를 덮어 주시고 나를 사해 주셨다면 다른 사람 누가 뭐라고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구계명 네 이웃을 위해 거짓증가 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져지는 마음이 뭡니까? 우리 이 나라의 오늘 모습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미래의 소망은 뭐냐? 우리 민족의 소망은 뭐냐? 한국 교회 미래의 소망이 어디 되느냐? 정직성 회복 이 구계명의 회복이에요. 위정죄, 무고죄, 사기죄. 제가 한번 얘기했습니다만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이렇게 가장 많이 많은 나라에요. 우리는 오랫동안 부정 부패의 이 늪에서 우리나라가 일어서지를 못해요. 너무 어두운 구석이 많아요. 앞에서 뭐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뒤에서 해결되는 게 너무 많아요. 어두워요. 부패가 많아요. 부정이 많아요. 거짓이 많아요. 여러분 우리 안에 가득한 허세와 교만이 우리를 거짓게 만들었어. 지나친 성공주의가 우리를 거짓되게 만들었습니다. 부정과 부패로 울룩진 나라가 새로워지는 것은 정직 사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거짓 사회라고 하는 오명을 이 부끄러운 민낯을 벗어 던져야 우리 미래, 우리 나라의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결과주의, 성공주의, 결국 질보다 양을, 내용보다 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 거짓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을 써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세상이 믿을 수 있는 그런 회복이 일어나야 우리가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말의 허세를 버려야 합니다. 과장을 없애야 합니다.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세상이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 속에 거룩한 영향력을 드러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웃에 대해서 비방과 중상 모략과 음해성 폭로와 험담과 과장과 축소의 말들을 버려야 합니다. 폭력적인 언어를 버려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도 언어가 폭력적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말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멈춰야 한다는 거.

[25:40]말로 사람을 깎아내리고 공격하고 죽이지 말라는 거.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는 거. 말로 사람을 세워 주고 살리고 치유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혀가 사용되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입으로 선한 일을 도모하고 세상을 화평하는 일에 우리가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신 분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짓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진리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정직함은 신자의 생명입니다. 진실함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저절로 되지 않아요. 거짓말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만 진실은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거짓의 세계. 그 거짓의 세계는 마귀가 주장하는 세계예요. 우리는 세상에서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거짓을 버려야 해요.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혀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죠. 근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될 매우 중요한 부분이 우리의 혀입니다. 혀. 하나님이 내 혀를 통치해 주십시오. 내 입술이 거짓을 말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짓말 대신에 진실한 삶을 말을 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거짓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말만 멋있게 하는 것으로 되는 시대가 아니에요. 진실한 말의 힘이 있습니다. 진실이 파워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에게 소원 한 가지 있어요. 그리스도를 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담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그 일을 위하여 우리의 삶의 진실을 정직함을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만약에 여러분 우리 삶에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회복한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관계 안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 민족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거짓과 허구로 덮혀져 있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핵심이 우리의 혀에 있다는 사실을 이 구계명 진실을 말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입술에 거짓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서로 신뢰하고 정말 신뢰할 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지난주가 육부에도 이 설교를 했습니다만은 청년들이여 여러분들이 진실하게만 한다면 정직하지만 한다면 여러분 세상의 한 가운데서 기가 막히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회가 올 것입니다. 오나들이 여러분들에게 주목할 것입니다. 일자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가 막힌 포지션 정직한 자의 몫입니다. 정직한 한 사람을 찾기가 너무도 힘듭니다. 여러분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은 청년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대한 절교요 소원이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 오늘 우리로 하여금 이 민족이 진실함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캠퍼스의 정직함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직장과 모든 공적 일들 속에서도 정직함으로 우리가 행동하고 말한다면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멋지게 사용하시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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