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마지막 시대의 영적 비밀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1:1~12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마지막 시대의 영적 비밀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1:1~12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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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참 역사 속에 독특한 나라입니다. 독특한 나라죠. 이 이스라엘의 건국은 사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출발은 창세기 12장에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히브리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이때가 BC 2100년 경입니다. 2100년 경. 이스라엘 역사가 4000년의 역사에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죠. 그래서 어 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인물은 이슬람교나 유대교나 기독교나 사실 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인 중요한 인물인데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고 한 사람을 일으키시고 또 에 요셉이 요셉이 애굽의 형들의 그 핍박을 받아서 애굽에 팔려가는데 노예가 되지만 그 땅에서 총리가 되게 하시고 야곱과 70년을 그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이제 총리가 된 그 아들에게 그 형제들이 다 이주하죠. 이 고센이라는 애굽의 그 기름진 땅을 불화를 받아서 거기서 경작을 하고 잘 살다가 곧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바로 왕이 나타나자 이 커져가는 이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기 시작하죠. 이 그러면서 박해가 시작되면서 히브리 민족이 어 노예 생활을 약 400년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를 모세라는 한 인물을 일으켜 내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시죠. 이 출애굽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시고 기한 역사를 하는 와중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하사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게 우리 구약의 모세 오경 이런 율법을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백성이 받습니다. 그리고 어 사울 왕을 초대 왕으로 세워져서 이스라엘이 정식 국가가 되죠. 이것도 하나님께 때를 써서 어 사사 시대를 지내서 국가가 이제 생성이 되고 1대 사울 왕을 기점으로 해서 3대가 지나가면서 남북이 열조로 나누어지고 북적 이스라엘은 아수르에서, 아시리아죠. 그리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침략을 받고 포로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BC 538년에서 432년에 일단의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죠. 바벨론 유수의 포로의 생활의 끝이 나고 예루살렘을 제건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400년의 기간 동안에 또 이스라엘에 내분에 휩싸이게 되죠. 그리고 AD 70년에는 수도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서 함락이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흔적도 없이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3:44]그리고 1940년대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을 대해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그 비운의 역사를 겪게 되죠. 그러나 1948년에 시온주의 운동으로 UN으로부터 지금의 이스라엘을 인정받고 1967년부터 예루살렘과 본토 주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이제 관할을 하게 됩니다. 1948년 이후에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부터 이제 돌아와서 실제적인 국가가 이제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가 세워진 지 4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없는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이스라엘이라고는 작은 나라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나라에요. 역사 속에 몇 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떤 때는 거의 2000년 동안 사라졌던 나라에요. 완전히 디아스포로로 다 흩어져 버려서 형체도 없이 그것도 오랜 세월 약 2000년의 역사 속에 사라져 버렸던 나라가 다시 생성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유대인들은 지금도 어디에나 어느 나라에 살든지 유대인이라고 하는 아이덴티티. 이 정체성이 뚜렷한 절대로 이게 깨어지지 않는 그런 독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 유랑과 핍박 그리고 학살과 수없는 침략 속에서도 이렇게 살아오고 또 이 민족이 건재한 이 안에 어떤 섭리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죠. 지금도 이스라엘은 인구 600만 정도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해요. 그러나 이스라엘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노벨상 수상자의 30%입니다. 30%가 유대인들이에요. 또 지금 사실상 미국의 돈줄을 쥐고 있고 또 미국의 돈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이 결국은 세계 경제에 굉장히 중요한 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우리에 알려진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혈통에서 나신 것을 제외하고라도 예수로를 제하고라도 이 현대 사회에 현대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이 공산 주의 혁명가인 칼 마르크스 그리고 정신 풍수학자인 프로이드 이 프로이드가 우리 학문에 세계에 영향 인문의 학문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게 크죠, 여러분. 그리고 상대성 이론으로 자연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인슈타인 다 유대인들이에요. 그 외에도 뭐 열거할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이스라엘은 우리가 거리가 먼 나라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또 우리가 늘 마주치고 또 피할 수 없는 민족이 이스라엘이에요. 우리가 별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지나쳐 버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셨고 이 이스라엘을 역사 속에 구원의 도구로 계속 써오셨습니다.

[7:04]그런 면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떡을 많이 본 셈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뿌리에는 유대교가 있는 것이죠. 유대인들이 지금도 믿고 있는 구약 성경을 우리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이 없는 신약은 이 생각할 수 없고 또 신약이 없는 구약은 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에 한 가운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또 그것이 역사의 마지막 지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성경이 여러 가지로 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줄곧 9장에서부터 11장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고 우리의 신앙의 세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바울은 이것을 3장에 걸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자, 11장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의 이스라엘의 역할에 대한 비밀을 다루고 있습니다. 향후 이스라엘의 역사의 변화에 따라 인류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메시지를 어럼풋하게 다 설명하지 않지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바울은 이 질문을 던지면서 이 11장을 시작하는데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이제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우리 앞부분의 9장과 10장에서도 계속 반복된 질문이었어요. 앞에서 정리한 대로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에서는 영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그런 얘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신약의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바울이 지금 얘기를 한다면 어 우리가 그냥 지나가면 돼요. 근데 바울이 오늘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자기 백성이라고 할 때 이것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을 다루고 있다는 거예요.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자체의 구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9:11]어, 바울은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1절의 말씀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라고 하는 그 얘기에 근거를 자기 자신의 얘기를 들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근거로 바울 자신의 예를 들어요. 바울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거에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고 베냐민의 지파에요. 이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12 지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지파입니다. 그런 내가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거예요. 구원을 받고 이방의 사도가 되어서 이렇게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

[10:11]자신이 구원받은 증거를 지금 먼저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예를 또 드는데 누구를 얘기를 드냐면 구약의 엘리야의 예를 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고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는데 나만 홀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났는데 나만 여기 있습니다. 막 이렇게 푸념을 늘어 놓아요. 모두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만 지금 콜로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탄식할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대답을 하죠.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000을 남겨 두었다. 5절을 보면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 바울 이 엘리야가 보기에는 모두가 다 하나님을 떠나 버리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얘기했지만 하나님은 7000을 남겨 두었다는 거죠. 근데 이 7000은 상징적인 숫자예요. 그냥 7000이 아니라 하나님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백성들을 하나님이 남겨 두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오늘 바울이 얘기하는 것은 5절에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오늘도 겉으로는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7000을 남겨 두었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구원받은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여기 남은 자라는 이 말이 성경에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남은 자가 있다는 거에요. 모두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다 돌린 것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시고 당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그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그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자기 자신이에요. 여러분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 혹독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어요. 예수와 거리가 전혀 먼 사람이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고 그냥 그냥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정말 하나님과 등을 돌린 것 같았던 그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구원에 이끌어 내시죠. 바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12 제자를 부르시고 사도행전에 보면 수없는 유대인들을 일으키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 남은 자, 남은 자. 모두가 복음에 반응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구원해 내신다는 거에요. 여러분 지금도 북한 땅이 그래요. 정말 이제 분단된 지가 얼마나 오래 됐습니까? 60년이 되었어요. 이산가족 상봉에 우리 아픔들을 우리가 늘 보고 있어요. 이제 그냥 실체를 타가고 그냥 들끝에 들려가고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요. 황폐한 저 땅. 얼마 전에 저 위에 그 인공위성을 찍었는데 밤에 찍으니까 북한은 깜깜해요. 불이 없어 가지고. 그러니까 이 남한만 이게 불이 있으니까 섬 같았어요. 무리나 말이에요.

[13:19]저 땅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여러분 1907년에 평양의 대부흥. 여러분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다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에요. 그렇게 북한이 기독교가 강했어요. 근데 분단된 지 오래되고 아주 핍박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다 사라졌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그 땅 가운데 남은 자를 두셔서 당신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어 가고 계세요. 여러분 중동 땅에도 마찬가지예요. 선교사들이 가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10년, 20년 사역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요.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선교 전략가를 우리 교회와 선교 셈을 해서 들어보니까 이란 같은 나라에도 우리가 상상할지 못해 200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어요, 여러분. 남은 자들이 있는 거죠. 여러분 중국이 문화 혁명 이후에 기독교를 극렬하게 탄압했습니다. 수없는 사람들이 잡아 감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기독교가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 렘넌트, 남은 자들을 두셨어요. 지금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은 그 핍박 속에서 기독교의 꽃을 피우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중국은 세계 기독교 최대 국가예요. 1억이 넘어요. 여러분 어디에나 하나님은 당신의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며 남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는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 온 세계 가운데. 바울은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예수를 거부하고 있지만 반드시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받아들이고 구원 얻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을 믿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15:30]그래서 자신이 극렬하게 기독교를 반대하고 했지만 하나님이 자기를 만나주 구원해 내신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유대인들 안에도 반드시 구원 얻는 백성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집요한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9장, 10장, 11장 계속해서 바울이 얼마나 자기 동족 골육 친지이 구원받는 일에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야, 이거 좀 배워야겠다.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가까이 있는 여러분들의 가족 친척들 그들을 향하여 여러분들이 어떤 경우에도 안 믿는 그분들을 향하여 포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고 이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끝까지 끝까지. 저는 우리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도 이 기대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반드시 그 부흥을 일으키셨던 그 평양 땅에 그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는 소망을 가지고 한국 남한 땅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된다고 믿어요. 이게 바울이 가졌던 그 동족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고집스러운 불순종을 지적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불순종하게 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8절에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절에 보면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덧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었고 그들의 눈은 흘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곱게 하옵소서. 출애굽기에 보면 바알이 아 바로가 강팍하여져 있는 것을 뭘까 뭐라고 표현합니까? 강팍하게 하셨다 이런 표현을 쓰죠. 그와 똑같아요. 근데 바로와 다른 것은 바로는 그 강팍함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가 강팍한 것을 그냥 내버려 두신 거예요. 그 자체가 심판인 거죠. 근데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갖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또 다른 어떤 계획 속에 그 유대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17:53]그건 뭐냐면 그들이 갈 때까지 감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지점에서 비로소 구원자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은 겉으로는 망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 같지만 그러나 망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이 숨어 있었다는 거에요. 이 11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이 넘어지고 실족함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게 함으로 그 복음을 이방인들이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는 일들을 통하여서 시기심이 일어나도록 그래서 구원의 길로 나오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셨다는 거에요. 그게 12절의 말씀 보십시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로요 그랬습니다.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는 일들을 통하여서 시기심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에요. 하나님이 정하신 이방인의 수가 차면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황 자체가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넘어짐이 이방인들이 풍성하게 구원 얻는 것이고 그런 일은 이방인으로만 끝나지 않고 반드시 다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29절에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부르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뜻보다 종교적인 간섭과 전통과 기대에 그런 것들에 매어서 스스로 속아왔고 그 하나님의 최적의 상황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메시아를 보내셨지만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의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시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완악함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역할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복음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 어떻게 저렇게 유대인들이 그 자기 땅에 온 메시아를 믿지 않느냐? 우리는 믿는데 왜 못 믿느냐? 자기들이 믿어야지 우리 우리보다 훨씬 더 잘 믿어야지 왜 못 믿느냐?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어. 그래서 이 믿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우리가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이런 자만, 이런 교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유대인들을 떠안 이방인인 우리의 책임이 있어요. 왜냐하면 구원받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내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거예요.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시기심이 일어났어.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믿으면 유대인들이 아, 저게 맞구나. 저게 맞구나.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데 기독교가 유대인들에게 선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거예요.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 기독교가 그들이 감동할 만한 유대인들이 정말 감동할 만한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도리어 기독교 사회 안에 유대인들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분위기들이 있었어요. 여러분 이 성경을 해석하는 해석가들도 마찬가지. 유대인들을 굉장히 의도적으로 비난하는 유대인의 그 구원이 이제 완전히 멀어져 버린 것들에 대해서 합리적인 그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예수가 메시아인 것이 틀림없구나 하는 압돌 만한 삶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것이죠. 여러분 우리 어떤 경우에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도 잘 믿어서 그들에게 시기심이 일어나 정말 그들도 믿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한 비유를 들면서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한 가지 가지 중에 얼마가 꺾인 것으로 비유를 합니다. 이 나무가 있는데 감람나무의 예를 들죠. 올리브 주를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그 뿌리에서 진액을 받아 누리는 돌 감람나무는 이 이방인들이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이렇게 그 진액을 받아 있는 그런 나무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뿌리 혹은 열매는 모두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뿌리는 여전히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하는 거죠. 단지 가지가 잘려서 나간 자리에 이방인들이 대신 접붙여져서 자리를 차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라는 나무의 뿌리에 접붙여져서 가지로 붙어 있는 이방인으로서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교만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20절을 보면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우리가 이스라엘보다 낫다는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경고를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를 아끼지 아니하였다면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구원으로부터 제외되고 있다면 이방인들인 너희들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가리워져서 메시아를 볼 수 없었던 누구보다도 잘 믿어야 될 것 같았던 사람이 오히려 복음의 바깥에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모습을 본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자칫하면 믿음의 자리에서 넘어올 수 있음을 인식하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 가지가 부러졌다면 접붙여진 가지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물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바울이 마지막 결론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가능성입니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 살아났다면 참 감람나무가 다시 접붙여지는 것은 훨씬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너무도 동떨어진 곳에 사는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일이 일어났다면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다면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한 거 아니에요, 여러분? 그 이스라엘 나라에 우리가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그 이스라엘 나라에 시작됐던 그 구원의 역사가 그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돼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면 그 구약적인 그 하나님의 배경을 갖고 있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새로운 하나님의 눈이 열려져서 역사가 일어난다면 이건 뿌리가 깊은 거거든요, 여러분. 여러분 우리 보면 이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그런 경우와 있어요. 중간에 믿은 사람보다는 제대로 믿어 왔던 집안에서 믿음을 가져온 사람은 좀 밋밋한 경우가 있어요. 밋밋한 경우. 그래서 뭐 우리 흔히 얘기하잖아요. 모태 모태, 그것도 모태, 이것도 모태, 저것도 모태. 그래서 모태 신앙이라고 그러는데 어 그리고 이제 중간에 믿은 사람 말이죠. 중간에 믿은 사람은 뭔가 체험이 있잖아요. 확끈하게 뭔가 막 뭔가 역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믿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요 오랫동안 모태 신앙에 있었던 입장에서 보면 어 저분은 대단한데 나는 이거 별 별 별 볼 일 없는 모습이에요. 근데 여러분 모태 신앙인데 진짜 구원을 받으면요. 중간에 믿은 사람하고 게임이 안 돼요. 예? 뭐가 맺힌 게 있으시죠, 그죠? 이게 뭐가 있어요, 그게. 그게 확 붙으면 뿌리가 있잖아요. 3대, 4대 뭐 이렇게 왔던 신앙의 배경이 있다고, 들었던 게 있다고 말이에요. 근데 중간에 믿었던 분들은 막 불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여러분 오늘날 보면요. 그게 뿌리가 얕아요. 그래서 시련이 확 오면 옛날에 한 가닥 하는 게 또 나와요. 어떤 때는. 한 잔 해 버려요. 뭐 이런 거에요. 근데 뿌리가 깊은 사람 한 잔 해 볼까 이런 생각이 안 나요. 왜 전부 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살아 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무릎 꿇는 걸 배워 왔기 때문에 그리로 가요. 희한한 거죠. 여러분 이 지금 바울이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면 이스라엘에게서 역사가 일어난다면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거죠. 기대를 그 기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5절에 이 얘기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신비, 신비를 미스터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여러분 여기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더는 우둔하게 된다는 거에요. 이 말은 뭐냐면 이방인 가운데 구원 얻기로 작정한 자들의 수가 찰 때 그 말이에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그 이방인들을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의 수가 다 믿을 때까지 이스라엘이 드러나는 우둔한 강팍한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로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언젠가는 이방 이스라엘의 왕고한 상태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거라는 거예요.

[28:32]그러면서 26절의 표현이 이거예요.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자, 여기 26절에 매우 중요한 단어가 뭐냐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거에요.

[29:00]이 온 이스라엘이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라고 하는 이 얘기는 무슨 얘긴가? 온 이스라엘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논제예요.

[29:16]여기에 따라 또 상당히 많은 해석이 이제 종말론적인 해석이 오게 됩니다. 여기 온 이스라엘은 어떤 사람은 그냥 일반적으로 영적인 이스라엘 오늘 교회를 그냥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건 맞지 않는 게 바울은 오늘 9장과 10장과 11장은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영적인 이스라엘을 얘기하고 있지 않아요, 교회를. 누구를 얘기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민족을 얘기하는 거에요. 혈통적 이스라엘을 얘기하는 거에요. 영적인 의미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온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이라고 할 때 영적인 의미에서 그냥 오늘날의 교회가 돌아올 것이라는 그 해석은 맞지 않아요. 두 번째 해석이 뭐냐면 이 온 이스라엘이 누구냐? 이스라엘의 민족 전체를 얘기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 여러분, 그러면 그것도 바울이 지금까지 로마서에서 얘기해 왔던 거와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요.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로마서에서 맞지 않는 얘기예요.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거예요. 그 세 번째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개인적으로 돌아오는 총수를 온 이스라엘로 보라는 거죠. 그것이 보다 더 맞는 해석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백 투 예루살렘. 여러분들 많이 들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 이 운동을 지금도 계속 하는 사람 실로드를 따라 결국은 복음이 서진했던 것이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가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고 휴고되는 종말론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는 이 얘기를 하는 해석가들은 주로 우리 신학적으로 입장에서는 세대주의자들이에요. 굉장히 합리적인 그런 얘기들이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어 한 견해일 뿐이죠. 그것을 우리가 전적으로 다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요. 풀기 어려운 하나님의 비밀이 비밀의 영역이고 특별히 이것이 종말론적인 영역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입니다. 결론을 유보해야 되죠. 근데 자우지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 나라가 가진 독특한 의미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고 있어요. 영적인 추수기죠. 그래서 유대인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의 얘기하면 지금 유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흩어져 유랑하던 민족이 시련을 당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1948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재건에 성공하는 이 여러 영역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지막 시대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이런 해석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자,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 비밀의 영역이에요. 이방인의 수가 언제까지 다 차게 되는 거죠.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 이루어질지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날 역사적 종말은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관련된 많은 디테일한 것은 성경이 침묵하고 있어요. 그동안 종말론자들이 1992년에 다미 선교회가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죠. 요한계시록과 다니엘과 마태복음과 오늘 이런 로마서 11장과 이런 것들을 짜 맞춰서 다양하게 해석을 놓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망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게 했어. 우리 개혁주의 성경의 해석의 입장은 성경에 가는 데까지만 가고 성경이 멈추면 멈추는 거예요. 오늘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비밀을 알고 싶어 하죠. 비밀은 풀고 싶어요. 그래서 어딘가 비밀이 내가 비밀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풀면 사람들이 굉장히 그게 환호해요. 지금도 여러분 이 전국적으로 가장 맹렬하게 이단으로 극성을 떨고 있는 신천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냥 푸는 거에요. 막 비유를 막 풀어 버리는 거예요. 신학적으로 신학을 종말을 공부했으면 정말 아닌 잘못된 방식으로 이 비밀을 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혹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다 알려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것 안에서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돼요. 그래서 바울은 오늘 이 로마서 11장 마지막을 어떻게 결론 맺고 있습니까? 이 비밀을 얘기하면서 마지막은 33절 이 말씀이에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요.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무슨 얘깁니까, 여러분? 바울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너무도 깊고 풍성해서 나는 다 알 길이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난 모르겠다. 하나님은 너무 깊고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그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34절에 이렇게 얘기해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안다고 떠드느냐? 여러분 나는 비밀을 이제 다 깨달았다. 그 이단이에요.

[35:05]계속 여러분 숫자나 이런 것들을 깨맞추면 아주 혹해요. 혹해. 혹해요. 여러분 오늘 이 바울의 태도를 우리는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다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건 교만이라는 거에요. 바울 자신도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다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다 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없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 알려 주실 의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 알려 주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그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태도는 마지막 태도는 뭘까요? 오늘 11장 마지막 절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랬어요.

[36:06]그래서 로마서 11장 마지막은 예배로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다 알지 못해요.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어떤 오차나 이런 것들을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고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그분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최종적인 결론은 예배예요. 그래서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한 것을 멈추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갈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시작과 과정과 완성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의 목적과 계획을 따라 정확하게 역사의 물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의 출발점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하나님이세요. 그리고 그 구원을 완성하실 분이 하나님이세요. 아멘. 그리고 오늘 내 개인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나라와 이스라엘과 열방의 모든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은 이미 계획을 가지시고 진행하게 하고 계시고 그분은 신실하시고 그래서 당신의 남은 자들을 반드시 일으키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는 이 믿음을 우리가 가질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역사의 마지막까지 그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실 그 하나님의 역사의 손끝을 바라보며 겸허하게 깨어 믿음 생활을 하고 특별히 우리 주변에 남은 자들이 있는 것인가를 우리가 끊임없이 바울 사도적 태도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드리기 위해서 힘쓸 때 주님께서 남은 자 된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 주변에 수 없는 숨겨진 남은 자들을 마지막 세대에 일으키시고 또 우리의 변화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시기심이 일어나 예수를 믿고 돌아와 역사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그런 은혜가 있는 것을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에 행하시는 일들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것이 우리의 의무요 더 이상 우리가 비밀을 캐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진행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완성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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