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살인하지 말라 2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3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살인하지 말라 2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3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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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자, 오늘은 십계명 어 16 번째 6계명 두 번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자로 살지만 여전히 어 연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죄성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 믿음 생활을 하고 또 성숙에 이르러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 안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그 죄의 성이 있어요. 죄의 잔성 이랬어요. 그 죄의 작용이 우리 안에 일어나면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그런 얘기했죠. 내가 원하는 바 서는 행하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선인데 오 그 선으로 안 가고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한다는 거죠. 그 악의 악의 힘이 내가 원하는 그 마음보다 더 지배를 해서 내가 실패를 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자, 우리는 언제든지 악을 행할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어, 우리는 종종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격한 감정에 빠지면 험한 말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데 사실 그게 내 안에 있는 거예요. 운전을 하다가도 탁 누가 끼어들면 탁 튀어나오는 말이 그게 내 안에 있는 거예요. 죽으려고. 오래전입니다. 신방을 함께 가는 여전도사님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저는 그때 운전 면허증이 없어 옆에 탔는데 운전하다가 앞에 딱 끼어드니까 저자석 이러더라고요. 아. 그 뒤로부터 그 여전도사님에게 제가 조용하게 오, 그게 확 나오는데 어, 한가닥 할 옛날에 했는가 봐요. 어 작은 감정 싸움에서 시작해서 사람이 죽는 지경까지 가는 거죠. 우리 주변에 요즘 흔히 일어난 일입니다. 자, 오늘은 살인에 대해서 두 가지 유형의 감정을 다루려고 그럽니다. 첫 번째는 분노입니다. 분노는 살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느끼는 감정이죠. 격한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히면 내가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고 그 분노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고 지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난 분노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 분노라는 감정이 내 나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죠. 이 감정이 주인이 되어 나를 이끌면 그 감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거예요. 사실은. 조절되지 않는 감정을 그대로 두면 그것이 곧 살인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주님은 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지 해석을 오늘 해 주셨습니다. 적극적인 순종을 요구하시는데요. 자, 오늘 읽었던 것처럼 55장 21절, 22절을 다시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건 구약의 우리가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무슨 얘기죠? 형제를 대하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기 라가라 하는 자, 이 라가는 아라모입니다. 바보 으르렁이 멍청이 뭐 이런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 의미의 단어를 말하죠. 형제 욕을 하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이 분노는 그 멸시를 의미하죠. 멸시의 태도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 안에 사랑의 마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근데 주님은 이 분 분노를 아주 엄격하게 다스리는 거.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 와 이걸 얼마나 엄격하게 말씀합니까? 이 말씀은 어,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나 함부로 욕하는 그 태도를 살인의 죄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살인에 적용되는 심판을 노하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던 것이에요. 살인에 대한 즉각적인 적용이죠. 분노하는 것도 살인으로 주님이 취급을 하신 것입니다. 자, 인류의 최초의 살인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친족 살해요. 인류의 최초의 살해는 살인은 친족 살해요.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살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살인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의 총기 사고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난다는 거. 미국 폭력 범죄의 55%는 가정 폭력이고 피살자의 90% 이상은 아는 사람에게 죽고 그중 45%는 친척에게 피살된다는 거. 살인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자, 가인의 살인은 분노에 의한 충독적 충동적 사건입니다. 창세기 4장 5절로 6절 보십시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자, 가인은 분노로 가득했고 마침내 살인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살인은 분노로 시작해요. 그러니까 살인의 최초 행위는 분노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격해질 때 그 사람을 보면 사리를 느끼게 되죠. 여러분. 어떤 사람이든 분노를 하고 있을 때 그 딱 보면 살리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처음부터 살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그에게 가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얻었다. 등남했다. 부모의 기쁨이 그 이름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를 잘못 처리함으로 비극적 인물이 되고 맙니다. 자, 분노의 원인을 한번 알아봐야 되죠. 열등감이 있을 때 분노합니다. 여러분 분노를 많이 하는 사람은 열등감이 깊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보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 대해서 상대적 열등감을 느낀 것이죠. 이 열등감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 분노를 자주 하게 됩니다. 누가 건드리면 터지는 거죠. 그 사실은 자신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있는 거죠. 그걸 건드리니까 탁 터지는 거. 피해 의식이 분노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것. 근데 그 이유가 아벨 때문이라는 피해 의식. 가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아벨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자, 분노하는 사람들은 피해 의식이 강합니다. 피해 망상증 이 갑자기 폭력적인 그런 행동을 하게 되죠. 시기심을 가질 때 분노합니다. 아벨은 틀림 가인은 틀림없이 아벨에 대해서 시기하고 있는 거죠. 아벨의 재수만 받아들여 주셨다는 거에 대한 시기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시기심이 일어나고 그 시기심이 분노요 그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9:03]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을 때 분노하게 됩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이지 아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그 원망은 다시 아벨에게로 쏟아붓게 되는 것입니다.

[10:14]자, 가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문제 자신의 약점을 알려고 하지 않은 거예요. 자기의 재물을 왜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당하게 바빴습니다. 자기의 제물이 아벨보다 결코 못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10:44]그런데 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거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 분노는 사실 하나님에 대한 분노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을 때 분노하게 됩니다. 가인에게 내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냐라고 가인에게 물었을 때 그런 대답하지 않습니다.

[11:15]왜 무 응답이었을까요? 이미 그는 분노로 가득 차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미 그는 분노라는 감정의 화염에 휩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게 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 결국 이 반 가인의 분노를 보면 모든 것이 자기의 생각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에덴동산의 유일한 기준이었던 하나님의 방식 로의 제사가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의 제사를 고집하면서. 두렵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를 용납하지 않고 그것을 따지고 하나님에게 대드는 모습이죠. 자기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기 집착,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이 너무 강하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견딜지 못하고 왜 폭력을 휘두릅니까?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게 지배의 욕구입니다. 삐뚤어진 지배욕구. 그러나 여러분 세상이 어떻게 내 생각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마찬가지죠. 성경을 읽어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고집대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게 돼 있어요. 우리도 고집을 피우긴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고집을. 주장하시는 분이죠. 그 고집 앞에 우리가 꺾여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근데 가인은 자기의 고집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왜? 왜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내 재물은 받지 않으십니까? 왜 저런 인간의 재물을 받고 나는 받지 않습니까? 내 생각대로 모든 게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여러분, 어릴 때부터 가정의 경험이 참 중요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세상에 나가서 적응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사회에서 출세를 하고 힘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우리 흔히 일명 갑질을 한다. 그 갑질을 통하여 지탄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자기의 생각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으로 고정된 사고 방식이 고착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디 가나 자기의 감정이 발산하고 마는 거죠.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자기의 일방적 행위를 통하여 지탄을 받고 맙니다. 내가 욕망하는 것과 다르게 돌아가더라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흔히 거룩한 분노, 의분을 낼 때가 있습니다. 의분 거룩한 분노 필요합니다. 정의를 위해서. 옳은 일을 위해서 분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노로 할지라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 안에 악이 언제라도 작동할 위험성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내가 죽였다. 그 십자가를 질 때의 마음은 참으로 거룩한 마음이었어. 근데 하는 동안에 어느 순간인가 죄성이 파고들면서. 잘못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거죠. 거룩한 분노로 시작하였지만 악한 분노로 마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요 순간적입니다. 한 순간 악한 쪽으로 기울어져 나도 모르게 죄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나는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는 이분법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 도치된 의협심에 불타올라 분노하다 자기 의에 사로잡힙니다.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공명심에 빠져요. 그리고 분노하며 과격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악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분노는 끝까지 의로움으로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근데 문제는 우리는 의롭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의롭다고 해도 계속 의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를 주장하는 가운데서도 모순을 안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젊은 날에 그토록 내가 외쳤던 주장했던 원리들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원리를 내가 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대립각을 잘 세웁니다. 충동적이고 편가르기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전후 이념의 갈등으로 우리 역사 속에 수 없는 피비릿내는 싸움들을 치룬 적 있습니다. 한 동네에서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념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감정 싸움으로 변하는 거예요. 이념은 사라지고 감정으로 싸우고 내 편이 아니면 나쁜 놈으로 취급해 버리고 마는 그 분노의 한 가운데서 수 없는 사람들을 죽고 죽이는 일들이 우리 역사 속에 있었습니다. 자, 우리가 교회 일을 열심히 할 때도 마찬가지요. 대대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들. 헌신적이에요. 소극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헌신한 건 분명합니다. 그건 장점이에요. 그러면 동시에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어요. 그의 열정은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약점도 가지고 있었어. 열정이 너무 넘쳐 감정적 통제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게세만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늘어올 때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예수를 잡으러 온 것을 알았어. 그때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베드로가 칼을 내빼고 말고의 귀를 잘라요. 아마 목을 치려고 했다가 실수해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귀가 잘려요. 주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어. 주님을 도우려고 했지만 주님을 난처하게 만드는 거.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한국 사람의 기준은 상당히 감정적입니다. 이게 순화되면 좋은데 순화되지 않고 그대로 표출되면 그 거친 분노는 매우 불행한 역사를 만들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정신과적으로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질환자들이 많아져가고 있습니다. 분노가 저절이 안 되는 거. 감정이 심하게 고장이 난 상태예요. 분노가 저절되지 않으면 그 분노의 주인이 누구인가. 요즘 뉴스를 보면 분노 장애자들로 인한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분노가 조절되지 않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줍니다. 자, 여러분 분노의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그러나 분노를 다루지 않으면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그 분노는 아주 빠르게 악한 일과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금류에 휩싸여 버리면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쓸어내려 버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파괴적인들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하여 칼부림으로 끝나는 일들이 많습니까? 운전 중에도 끼어들기를 시작하여 대로변에서 싸우며 눈깜짝 할 수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정상적으로 살았던 사람들. 분노의 상태는 정상적인 사고의 작용을 하지 못하게 만들니다. 균형 감각을 잃어버려요. 여러분 살인 사건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많은 교회는 그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예,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로 끝나지 않고 보복을 가하게 될 때 그런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분노하게 되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은 분노를 참 많이 안고 있어요. 안에 엄청난 양의 분노의 감정을 막 쌓아서 부글부글부글부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던 분노라는 감정을 그대로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재물을 찾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분노를 쏟을 대상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마치 휘발유통을 큰 걸 들고 다니다가 불만 만나면 터질 것 같던 그런 상태의 사람들. 여러분 분노의 감정을 훈련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6계명을 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분노가 쌓이도록 내버려두수는 안 된다는 거. 분노가 일어날 때 그 분노를 빠르게 처리해야 된다는 거.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의 말씀이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자, 여러분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것은 분을 내면 그 분이 죄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죄까지 가지 말게 하라는 거예요. 분을 내어도 죄로 짓는 단계까지 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거예요. 품지 말라.

[21:06]그 분노를 가지고 있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가지고 있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되고 그 마귀가 죄로 짓게 만든다. 감정을 내가 그대로 분노의 감정을 내가 처리하지 않은 채 두면 그것이 이제 다른 데로 넘어가야겠죠. 이 주인이 다른 데로 넘어가는 거. 마귀가 틈을 타서 내 감정을 조절하게 된다는 거. 아까 거룩한 의분에 대해서도 제가 마찬가지 거룩한 의분이지만 어느 살짝 틈이 들어가면 마귀가 역사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든지. 분노를 품고 있으면 마귀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는 거예요. 마귀는 우리의 분노를 기가 막히게 이용할 줄 압니다. 빠른 해결을 하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를 그 감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리하는 시간을 끌면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어떤 분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이해해 가지고 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분이 계세요. 기다리면 안 돼요, 여러분. 이 말은 빨리 해결하라는 말이에요. 빨리 신속하게 해결하라는 거. 자,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자, 이 말씀은 종교적 행위 이전에 화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빨리 해결하라는 얘기예요. 빨리 해결하라는 거. 요점은 그것입니다. 갈등이 있다면 그것을 빨리 화해하라는 거.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두면 예기치 않는 상태로 확장되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그 문제를 처리하라는 거. 야고보서 1장 19절로 20절에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화를 내면. 실패한다는 거예요. 어떤 경우든 화를 내면 실패한다는 거. 화를 내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거. 화를 분노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 그러므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디 더디 성을 더디내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참 기가 막힌 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어요. 항상 듣는 것을 속히 할 줄 아는 빨리 알아듣는 거. 말하기는 좀 더디 하는 거. 성내기도 더디 하는 거. 여러분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을 때 지혜롭게 처리하는 법을 익힐 줄 아는 거죠. 감정이 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들끓는 감정을 의지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분노를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됩니다. 작은 분노라도 그 작은 분노를 소홀히 여기면 더 커진다는 거예요. 커지면 어떻게 해요? 또 다른 분노를 낳게 되는 것이죠. 그 분노가 분노로 끝나지 않아요.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커지기 전에 빨리 처리하라. 또 잦은 분노를 조심해라 하는 거. 분노가 자꾸 잦아지고 있다. 내 안에 살인 본능이 지금 막 일어나는 거. 그러므로 누구에게든지 불리한 분노를 쏟고 있다면 또 자주 그 분노를 쏟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삶의 태도가 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져 있고 이웃과의 관계도 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통제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정법을 행할 수 있는 살인죄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이 감정까지도 하나님의 그 은혜 속에 구속을 받아야 됩니다. 이 감정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안에서 다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때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매우 중요한 오늘 시대 우리가 붙잡아야 될 열매가 오래 참음의 열매예요. 오래 참음. 정말 오늘 우리 시대 이것처럼 또 조급증이 심한 오늘 우리의 시대 속에 이 오래 참음의 열매가 얼마나 필요하고 절실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예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오래 참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내가 이기려고 해서는 안 돼요,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우시도록 그때 우리의 의지가 감정을 이기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 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점점 점점 그 분노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분노가 컨트롤되기 시작하고 분노와 전혀 다른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 온유한 성품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에 감정이 폭발하고 때로는 굉장히 격정적이고 충동적이고 그래서 우리의 분노로 인하여 많은 안타까운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대 속에 오늘 우리에게 주께서 오래 참음의 열매를 주사 우리의 감정이 아름답게 통제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에 힘쓰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 감정은 미움이에요. 요한일서 3장 15절의 말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아. 충격적이잖아요, 여러분.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이게 신약적 관점이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미워하는 게 살인이라고 얘기하는데도 여러분들이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는데.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 여기에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 참 희한하게 시시 때때로 하나님은 미워하는 인간을 보내서. 막 힘들게 하잖아요. 여러분 사람을 미워하는 거 간단하게 생각해서 넘어서면 안 됩니다. 성경은 살인과 미움을 같이 본다는 거예요. 우리가 7계명 이제 간음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하겠지만 음욕을 품는 것과 간음을 같이 보는 이 신약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거거든요. 여러분 오늘 우리 중에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움이 정말 우리 일평생 살아가면서 끊을 내야 끊을 수 없이 지비하게 찾아오는 이 애증 관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29:14]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겨져 있다고 그런 것이죠. 그래서 영생의 삶이 없다는 겁니다.

[33:19]기쁨이 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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