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자, 오늘은 십계명 스물 세 번째 도둑질하지 말라 두 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즘 십계명을 다루니까 계속 뭐 가늠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그러니 까 부대끼는 분들이 있다고 그럽니다. 사실 십계명 앞에 서면 우리가 다 부끄럽죠.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드러날 때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부정하고 싶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아 그러나 이 십계명은 에 우리가 신약 시대 안에 복음 안에서 이 부분을 잘 또 소화해 낸다면 이것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계명이 아니고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출애굽도 마찬가지죠. 출애굽기를 굽기를 통해서 이 십계명을 주실 때는 종되었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셔서 자유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연약함이 드러나면 그걸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드러난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면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이고 또 이 십계명을 계속 잘 지키기 위해서 힘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속박들이 풀려나고 자유를 경험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이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우리 삶에 많은 부분에 이렇게 만년되진 되어져 있는 죄 중에 하나입니다. 예 드러다 보면 좀 도둑부터 나라 도둑까지 뭐 크고 작은 교모하게 숨어 있는 죄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려울수록 도둑이 더 많아지죠. 그래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 도둑을 막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하죠. 오늘도 여러분들이 차를 주차해 놓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오신 분 없으시죠. 다 몇 번 또 알람 잔치까지 해 놓고 집도 마찬가지고 또 우리 많은 곳곳에 CCTV를 달아 놓고 또 우리 이런 도둑이 부정적인 일들을 막기 위해서 애를 설 쓰고 있습니다. 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또 어렵고 또 우리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그런 운화가 생기게 되고 이 도둑에 관련돼 있어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이 도둑질이 왜 일어나는가? 그 원인. 지난주간에는 도둑이 무엇인지, 도둑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그 도둑질이 왜 일어나는지 그 원인, 그 이유를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자 도둑질은 삶의 태도에서 어 문제가 있을 때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도둑질이라는 행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떤 결핍을 채우는 방식이 정상적인 방법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도둑질이 되죠. 자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의 차이. 그런데 인생은 능력의 차이보다 태도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재능이 얼마나 많은가 보다 얼마나 성실한가에 따라 삶이 더 영향을 받습니다. 굉장히 재능이 많고 실력이 좋으면 어 굉장히 괜찮은 인생을 살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길게 이렇게 보면 또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들 보면 결국 재능이나 능력이나 또 머리가 아니라는 거죠. 그 태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 대하는 태도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그 태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성실과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산다고 좋은 결과를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은 특별히 경제 구조 안에는 모순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일한 대로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기본적인 태도는 성실함과 정직함이어야 하고 또 이 세상의 모든 돌아가는 그 원리를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성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이끌어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우리가 잘 합니다. 어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남기고 맡기고 멀리 타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배를 남겨서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혹독한 판정을 받죠. 그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꺼내 놓았습니다. 주인은 이 사람에게 뭐라고 판정을 합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이 있으리라 그랬습니다. 자 사실 여러분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뭐 크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요. 또 맡겨 놓은 것을 뭐 말아먹거나 마이너스 한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돌려 주었는데도 이 주인의 판정이 아주 혹독하죠.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게으른 것과 악한 것은 함께 다닙니다. 게으르면 악해질 수 있습니다. 게으른 삶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게으름의 뿌리에는 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에 대한 오해, 주인에 대한 반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삶이 무너지고 기울이기 기울어지기 전에 먼저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부지런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땀을 흘리기보다 한 탕이 더 손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을 보면 잠언세를 보면 지혜자는 게으름에 대해서 유난히 많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10장 4절을 보면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18장 9절,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9장 24절에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굉장히 재밌는 구절이죠, 여러분. 숟가락은 넣기는 했는데 입을 올리기가 괴롭다는 거야. 그 정도로 게으르다는 거를 재밌게 표현했어. 26장 14절에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그랬습니다. 잠언 6장 9절로 11절에 보니까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8:15]여러분 게으르면 가난이 찾아오게 되고 가난이 극심해지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는 표현들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에 대한 강경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신약에도 이렇게 표현을 하죠, 바울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자 게으르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거죠. 밥도 먹지 말라. 아주 센 표현을 썼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성실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돈을 좋아한다면 사고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거나 도박이 나쁜 이유는 잘못된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목표는 거대한데 게으른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도 상당히 도박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도박은 한꺼번에 돈을 벌려고 하는 이 도둑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죠. 이 도박이라고 하는 것은 도박 장에 직접 찾아가서 뭐 그런 도박을 하는 것만 도박이 아니고 한꺼번에 돈을 일학 천금을 노리는 그 심리 자체가 도둑이죠. 여러분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 몸으로 땀을 흘리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이 훈련 이 원리를 체득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좋고 재능은 많은데 어 땀을 흘릴 줄 모르면 그 머리로 사기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들도 요즘 많이 어렵다고 그럽니다. 근데 청년 때 너무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부러워해서는 안 되고 작은 돈이라도 땀 흘려 버는 성실을 연습하는 것이 긴 인생의 장례를 보면 훨씬 좋은 것입니다. 힘들지만 노동의 가치를 먼저 배우는 훈련.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보다 수고하고 열매를 거두는 삶의 방식을 먼저 익히게 하는 것입니다. 자 엉터리 부자들도 가끔 있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제대로 된 부자들은 가만히 보면 그들의 특징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성실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공통점은 이 부자들의 특징은 복권을 사거나 도박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돈을 함부로 쓰지도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은 항상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서점에 가서 백만 장자가 되는 열 가지 원리 이런 책을 구입해서 읽습니다. 그 책은 쓴 사람만 돈을 벌고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돈을 잃어버립니다.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땀을 배워야 합니다. 성실함이 기본적인 태도라는 것입니다. 성실함이 기적을 만듭니다. 학교 공부는 본래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없지만 매일 학교에 가고 시간표 따라 공부하는 성실을 익히는 훈련이죠. 놀기 좋아하고 성실히 공부하지 않는 아이가 성적을 내는 길은 큰닝 밖에 없습니다. 수업을 빼먹고도 적당하게 로비를 해서 학점을 취득하려는 것이 바로 도둑질인 것이죠. 창세기의 요셉은 기본적으로 성실했습니다. 다윗 역시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들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이방의 나라에 포로로 붙잡혀 가서도 성실과 책임을 당해 다했습니다. 성실을 이길 수 있는 재능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의 자리에서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에서 다윗은 목동의 신분 그 시대 속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힘을 땀을 흘릴 줄 알았습니다. 요즘도 구직난에 있어서 취직이 힘들다고 야단입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할 곳이 없지만 오너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할 일은 많은데 맡길 사람이 마땅히 없다고 줄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이 사람인데 정작 없는 것도 사람입니다. 일을 시켜 보면 마음에 속 들게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배우는 좋고 일은 적게 하며 할 하는 일도 쉬운 곳을 찾습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줬으니 우리는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 신도 아직 찾지 못한 직장. 여러분 연봉보다 보너스가 더 많고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직장. 그런 직장을 우리는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말합니다. 근데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회사가 망하든지 개인이 망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국가로 이 기독교 국가로 알려진 나라들을 가만히 한번 보세요.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부자로 삽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전부 거의 뭐 전부, 전부는 아니지만 몇 나라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본에나 이거 빼고는 대체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은 비기독교 국가들입니다.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은 삶에 대한 태도가 기본적으로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일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도피적이지 않습니다. 노동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 정신이 들어가면 직업의 귀천이 없습니다. 노동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청교도 신앙은 일을 소명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거죠. 그것이 어떤 일이든 성경은 노동의 가치를 굉장히 높여 놓고 있습니다. 자연히 부요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노동에 대한 태도가 그렇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어떤 노동이든 그것은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그것이 성경이고 그 일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이 긍정적 태도가 삶의 방식을 바꿔 놓게 되고 성실함을 이뤄내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성경적 관점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일 수밖에 없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간적으로 반짝하는 천재 성보다 성실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좀 부족해도 성실한 사람이 길게 가면 결국은 이기게 돼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던 가난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이 세우신 가난 농군 학교에 많은 분들이 가 보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의 자녀들에게 순영되고 있습니다만 그 가난 농군 학교에 가면 참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그 김용기 장로님이 그곳에 있 모든 돌들을 다 세워 놓았어요. 거기 가면 돌들을 다 박혀 있는 돌도 빼 가지고 세워 놓아요. 이유를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돌도 누워 있으면 안 된다는 거 다 서 있으라. 부지런함, 부지런함. 여러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해 보십시오. 그만큼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상사가 시킨 것만 하지 말고 일을 찾아서 창조적으로 해 보십시오. 지각 아니면 정신에 허겁지겁 출근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차분하게 업무에 임해 보십시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내가 스스로 자원하여 즐겁게 하려고 해 보십시오. 지위나 급여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라고 믿고 해 보십시오. 정직하고 성실하면 눈에 금방 뜹니다.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면 주인의 마음을 읽고 일을 해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은 그는 주인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늘 지각이나 하고 근무 시간에는 졸고 시킨 일은 제대로 못 하고 눈은 언제나 초점이 흐려 있다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미룹니다. 책임 의식이 아주 약한 것이죠. 일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놀고 게으르면서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이 곧 도둑이 되는 것이죠. 땀 흘려 성실하게 수익을 얻기보다 한꺼번에 대박을 얻고자 하는 문화가 우리 안에 많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순간에 일학 천금을 벌고자 하는 그 마음, 그 문화, 이 대박이라는 단어가 너무 우리 한국 사회에 많이 만년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이 도둑들이 그래서 늘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너무 허망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이죠. 과대 망상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고 탐욕을 줄이지 않으면 헛된 것에 손을 대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둑질이라는 말은 우리 삶의 기본적인 태도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삶의 태도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성실함을 통해서 금방 어떤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자의 삶의 태도는 언제나 여전히 성실과 정직으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할 것이고 내가 수고하고 땀을 흘린 이 상의 무엇을 바라는 허황된 마음을 줄여 가게 될 때 우리는 도둑질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도둑질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8계명을 우리가 지키려고 하면 자족해야 합니다. 여러분 병 중에 병은 자족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불만족은 병입니다. 지도한 병입니다. 자칫하면 인생을 망치는 병입니다. 이 병은 오래된 병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순간에 찾아온 질병이요.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 이게 치명적인 인간의 불치의 병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돈이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면 거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지금 만족하고 있다면 그는 그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도둑질은 왜 생기는 것입니까?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만족한다면 탐심이 일어나고 탐심은 곧 도둑질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정도 남편이면 저 정도 아내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만족하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것입니다. 저 정도 살면 괜찮은데 만족이 안 못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만족하고 끝내야 하는데 그 끝없는 그 불만 그것이 도둑질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불만족은 외적인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불만족은 내면의 상태입니다. 물질주의 세상에서 우리의 눈이 물질에 고정을 하면 마음은 경랑이 일게 되는 거죠.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을 찾아다니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되고 이루지 못한 그 기대를 메꾸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불법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수입이 두 배 늘어나도 행복감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수입이 두 배 늘면 행복도 두 배로 늘어야 돼. 아니 두 배가 늘지 않더라도 1.5배 정도는 늘어야 하나요. 근데 놀라운 것은 수입이 두 배로 올라가는데 행복감은 더 줄어든다는 거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인간의 모든 사람들은 계속 상향지향적입니다. 계속 오르기만을 원하는 거예요. 계속 더 좋은 것만 찾는 것입니다. 결국 다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다 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항상 더 좋아질 수는 없어요. 계속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는 없어요. 모든 것이 다 잘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수준은 언젠가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 더 많아져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입이 멈추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요즘도 우리는 이 부모의 재산을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제 부의 축적으로 인하여 그 부를 자녀에게 되물림 하는 문화들이 이제 더 많아져 가겠죠.
[23:16]형제들 간에도 처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 더 가지기 위해 쟁탈전이 벌어지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부족을 채우고자 노력하다 보면 여기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불법이 일어나게 되는 비극적 현장이 이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눈을 어디에 고정하고 살 것인가? 지금보다 더 나은 것에 시선을 고정하면 불행해지는 거죠. 불만족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지금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거. 힘들고 어려워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 이게 우리의 신앙의 훈련입니다. 주어진 주어진 상황과 조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거.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물질에 만족하지 못하면 탐욕의 삶을 살게 되고 그러면 당장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로는 하나님의 것까지 도둑질하기도 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자 그 하나님의 소유됨을 인정하는 삶이 바로 십일조라고 하는 제도죠. 말라기스에서는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말라기 3장 8절로 10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25:05]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러분 우리의 수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여 드리는 것이 십일조 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핵심적 문제는 십일조 하지 않는 것 자체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물질에 더 집착하는 삶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십일조라는 제도를 마땅하게 받아들릴 리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결국 십일조를 떼 먹고 말았습니다. 십일조는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의 문제이고 삶의 중대한 태도와 연결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도둑들이라고 책망합니다. 십일조를 떼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것이고 하나님과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버렸다면 물질의 영역에서도 모든 것이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에 일은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 놓은 것인데 그것을 손대면 다른 것은 얼마든지 손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영역 전체에 엄청난 영향 파장을 미치게 하는 것이 십일조라고 하는 제도입니다. 십일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믿음에 따라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지만 우리가 만족하며 살게 하는 핵심적 원리가 이 십일조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이 마음대로 다루려고 할 때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의 폐해와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돈은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돈의 배후에는 엄청난 거대한 세력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갈 주제가 아니에요. 그 돈의 배후에서 어마어마한 어둠의 영이 그를 끌고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돈의 지배에 지배를 받으면 인생이 망치는데까지 가는데 시간이 그래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물질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할 때 헌금을 들 때 우리는 거대한 맘몬의 신을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이죠. 십일조를 낼 때 물질의 주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일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신앙의 고백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만족은 물질의 유무와 상관없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만족은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에게 부족함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마저도 은혜입니다. 부족과 부족한 현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은혜가 있어요. 부족할 때 심령이 가난해지는 선물. 그 심령이 가난함 속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자 요즘은 여러분 풍요로움이 도리어 시험이 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없어서 도둑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으면서도 여전히 각가지 편법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돈을 버는 도둑들이 더 많이 성행하고 있어요. 부족해서 문제였던 것보다 너무 풍요로워 문제를 겪고 있는 시대.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 그것을 가장 잘 알려 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30:18]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여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뭐냐면 바로 앞부분의 얘기예요. 배고픔과 배부름, 풍부와 궁핍 그 모든 환경 속에서도 나는 자족하게 하는. 나를 자족하게 만드는 그 할 수 있게 하는 능력.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게 주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기지 못할 환경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족의 원리를 배우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자족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아는 자만 압니다. 그러나 감춰진 비밀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릴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게 안 안 됩니다, 여러분. 없으면 없는 대로 불만이 생기는 거고 있으면 있는데도 불만을 느끼는 게 세상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물질의 유무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불만이에요. 여러분 아무리 가져도 불만이 있다고 해요.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의 불만. 근데 그리스도는 그게 아니에요. 신자의 삶의 핵심은 뭐냐? 그 가운데 하나는 어떤 환경이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이 만족. 이 만족은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면 만족이 오게 되어 있어요. 할렐루야.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면 만족이 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영원하지가 않아요. 아주 간들간들 하는 겁니다. 아슬아슬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면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홀로 영원히 자족하시고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근데 그분과 우리의 삶이 연결될 때 만족이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이 있다면 세상 속에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뭐냐? 만족하는 삶이에요. 여러분 신자로 주어진 형편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익혀야 합니다. 지금 주어진 형편과 상황이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최상의 상태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표현 아닙니까?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여러분 이것이 신앙의 힘이 주는 특권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특권이에요. 환경에 떠밀려 환경에 그냥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이기는, 초월하는 힘. 이것이 신앙의 맛인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성을 유지하면 얼마든지 주어진 형식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