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도둑질하지 말라(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15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도둑질하지 말라(3)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출애굽기 20:1-15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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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도둑질은 우리 삶에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도둑질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이 사회는 소유 중심의 사회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하는 소유에 집착하게 하는 또 소유가 존재로 여겨지는 이 시대 속에서는 도둑이 될 가능성, 위험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일상의 성실함, 땀 흘린 대가 이상을 구해서는 안 된다. 빨리 무엇을 얻고자 하면 도둑질이 될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불을 모으려고 하는 태도 위험한 것이죠. 또 쉽게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 그 도둑의 행위에 가깝습니다. 자, 우리는 탐욕의 마음을 잠재우지 않으면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그 우리는 무엇이든지 어떤 문제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고자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면 도둑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요즘은 좀 도둑보다 큰 도둑들이 들불어서 문제입니다. 그러나 작은 도둑이든 큰 도둑이든 범하지 않도록 우리는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도둑질은 작은 죄가 아닙니다.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에 이어서 매우 중대한 죄들입니다. 자, 8계명은 주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특별히 공동체를 지켜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계명입니다. 자,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 순종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소극적 순종 또 두 번째는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이 소극적인 순종은 순종을 한다 할지라도 불완전한 순종이고 반쪽 순종이고 어쩌면 불순종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순종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미워하지 않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그를 사랑해야 그것이 진정한 순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 적극적인 순종의 개념으로 바뀝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누가 오리를 가자거든 심리까지 가라. 또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그 옷까지 주라. 오른밤을 때리면 왼밤을 돌려대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자 이것은 마지못한 소극적 순종이 아니라 적극적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 이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히 도둑질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어, 제법 꽤 오래됐는데 대도로 알려진 조세형 씨. 감옥에서 풀려나고 또 들어가고 나가고 하다가 어느 날 예수를 믿고 회심을 했다. 그래서 교회도 다니고 또 심지어는 간증 집회까지 다녔습니다. 근데 나중에 또 도둑질을 하므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아마 본인도 도둑질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겠죠. 그러나 그것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도둑질이라는 행위에 그침이 아닌 근원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적극적 순종이죠.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을 하지 않으면 죄성의 힘이 나를 끌어당겨 이전의 상태로 금방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면 힘의 작용을 더 무게 중심을 적극적 선을 행하는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도둑질하지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을 선한 일을 하라.

[4:30]이겁니다.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이 도둑질을 끝낸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돌이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이제 남을 도와주는 단계로 가서 선한 일을 행해야 비로소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는 것 나의 필요를 채우는 정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필요까지 채워주는 단계로 가야 비로소 도둑질 행위가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이타적입니다. 이타적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목표가 단순히 자신의 가족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정만으로 목표를 삼는다면 함량 부족입니다. 신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자기의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는 것만으로 자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의 진정한 돌이키면 무엇인가? 진정한 회개는 행동의 변화를 동반해야 하고 이전에 욕심 때문에 남에게 피를 입혔다면 이후로는 나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다가가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인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는 삶에 이 자아 중심적 결핍성이 사라져야 도둑질이 멈추게 됩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사기를 치는 사람은 치거든요. 아무리 많은 가져도 횡령을 하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남의 것을 탐내는 삶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 거지 근성, 이 허기진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은 도둑 행위를 하게 됩니다. 자 어떤 사람은 돈이 많지는 않는데 뭔가 여유롭고 평안하고 자유함이 있어요. 그게 진짜 부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진 자의 삶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와 부유한 자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채워진 상태가 되면 비로소 그때부터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 채워짐 속에서 나누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삶에 표징이 있다면 그것은 나눔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나누는 단계까지 가야 팔 계명을 온전히 순종했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한 삶은 개인의 만족을 넘어서 나눔의 단계로 발전이 되어져야 합니다. 자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성공해야죠.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성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개인의 야망의 성취가 아닌 사명과 연결이 되어져야 합니다. 성공을 하고 돈을 버는 이유가 뭐냐? 나누어 주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엄밀히 따져보면 나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내 힘만으로 볼 수는 없는 거죠.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교부 유명한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톰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우리의 물건을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서 도둑질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그들의 소유다. 여러분 자기 필요만 채우는 것에 급급하면 도둑질 쪽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중심이 이동을 나에게서 이웃 세계로 그리고 움켜지려고 하는 삶에서 나누는 삶으로 옮겨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첫 번째는 네 내 것이 내 것이다. 이것은 그냥 이렇게 표현하면 좀 안 되고 이 경상도 말로 해야 확 와닿습니다. 믿기 내 거다. 이게 도둑입니다.

[8:57]두 번째는 내 것은 내 것이다. 뭐 맞는 얘기 같지만 도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도둑에 가까운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누겠다는 거죠.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내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 이유도 말이죠. 내 것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면 넉넉하게 주셨다면 그 넉넉하게 주신 의도는 나누라고 주신 것이다.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것을 오용한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의식 우리의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맡겨졌다고 하는 이 청지기 의식 스튜어십이라고 하는 것이죠. 청지기랑 내가 가진 것은 내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거요. 오늘 우리는 집단적 사회를 이루면 구조적으로 기득권이 지배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힘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상대적인 약자들은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되는 거죠.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는 자본주의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중요해요. 자본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돈이 돈을 보는 겁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기 훨씬 유리하게 이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를 얻는다는 거 어려워요. 그래서 오늘 또 보면 가난이 대물림됩니다. 이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그 사람 개인의 어떤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이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가진 사람들은 나누어야 하고 그래야 사회가 건강한 순환을 하게 된다는 거요. 만약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으면 사회적 동맥 경화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강도들이 늘어나고 거지들이 생기고 사기가 빈번해지고 이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작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도둑을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불안해서 경비 업체에 많은 돈을 내어야 하고 보험을 들어야 되고 CCTV를 달고 담을 높이 세우고 알람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 잠을 잘 수 있는 불안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아프리카의 남아공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제 어디를 방문했는데 어느 동네를 방문했는데 그 뭐 다 빈민촌인데 웃 그 동네 한 가운데 큰 저택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자 그런데 그분은 아마 유명한 누구의 이제 집이라고 알려져 있더라고요. 근데 그 집이 그 빈민 간에 그 부자집이 저택이 하나 있는데 높은 담을 세워 놓은 거예요. 그리고 철조망을 삥삥 돌려놨어. 그리고 CCTV가 곳곳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분이 결코 행복할 것 같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행복일 수 있겠습니까? 꽤 여러 해 전에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을 때 연설을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중도에 중퇴를 했었죠.

[13:10]그는 그 요지는 이래요. 그가 다니던 대학을 이제 나와서 세상을 바라보니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거예요. 맹혹한 불공평이 존재하는 세상을 목격했다. 이 불공평한 현실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를 이 빌 게이츠가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는 이 졸업생들에게 여러분들이 이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어떤 특권을 위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불평등한 세상에 이 불평등의 갭을 메꾸는 일에 여러분들이 지성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13:56]개인의 개인의 특권을 향유하는 일을 위해 여러분들이 지성을 사용하지 말고 여러분의 그 탁월한 지성을 가지고 이 불평등한 세상의 이 갭을 메꾸는 일에 여러분들이 지성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14:26]여러분 미국과 같은 나라가 아직 건재한 것은 바로 이런 부를 가진 사람들의 바른 정신들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서 최상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그가 자신의 불을 내려놓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나누며 자신의 삶을 헌신하겠다고 하는 대단한 메시지고 실제로 그는 빌앤 멜린다라고 하는 재단을 만들어서 엄청난 불을 이동시켜 아프리카와 제3세계권의 빈곤을 위해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미국 사회 안에서 상속법에 대해서 기준을 완화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어쩌면 자신이 수혜자일 수 있는데 반대한 거예요.

[15:22]가진 자들이 상속에 있어서 특혜를 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므로 기득권의 한가운데 있는 그가 그런 주장을 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주었어요. 돈이 많은 부자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부유함을 가질 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속성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이 욕망. 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아요.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을 해체하는 강력한 치료법이 하나 있는데 나누는 일밖에 없어요. 미국의 부의 상징이었던 강철왕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자는 아니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다. 여러분 거지는 누구입니까? 가지고 싶은 것은 많은데 주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 그게 거지예요. 여러분 우리가 부자를 너무 공격하거나 혹은 부를 무조건 터부시하는 경향은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된 목표를 가진 부를 쌓는 것이 문제이지 부를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해 흘려보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결코 정죄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의 선순환을 하는 자로 살지 않으면 돈의 유혹 앞에서 무너지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주는 욕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다 합니다. 한 번 휘말려 들면 빠져나오기 힘들 힘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돈의 욕입니다. 성경은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자에게 가난하게 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진 것을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 그것이 많은 것을 가지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준한 명령인 것입니다.

[17:35]자 여러분 우리가 부유한 삶을 사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이 나눔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이런 말씀을 하죠.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18:03]여러분 오늘 여기에 무슨 말씀합니까? 받는 것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일평생 받기보다 주는 자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는 게 복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공짜를 좋아하고 받는 걸 좋아하는데 사실 주는 게 복이 있어요. 왜 주는 자가 복이 있을까요? 여러분 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심리 구조를 보면 받고자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불만족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만족이 없어요. 채워지지 않아요. 이 받으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 이게 채워지지가 않고 언제나 원망과 불평이 생기고 늘 받다가 안 안 주면 불평합니다. 받으면서도 불행해지는 거예요.

[18:50]받는 사람은 늘 받아요. 그리고 받는 구제에 익숙해질 때 정신적 건강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받으면 감사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안 돼요. 늘 받고자 하는 그 태도는 거지 근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는 사람은 나누면서 기쁨이 있습니다.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에 줄 수 있습니다. 나눌 때 비로소 탐욕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나눌 때 비로소 부자가 됩니다. 나누는 삶 그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로 19절에 보면 내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할 일은 뭡니까? 그러면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라. 그것이 장래를 위해 좋은 투자를 하는 거라는 거예요. 미래를 위한 진짜 투자는 뭐냐? 나눔의 삶을 사는 거요.

[20:19]여러분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막 움켜지고 쌓으면 미래가 올 줄로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여러분. 지금보다 미래가 더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면 성경적 원리는 뭐냐? 선한 사업을 많이 하라는 거예요. 부지런히 나누라는 것이요. 제가 하는 어느 목사님이 그러더라. 미국에 유학하기 어려운 때 미국에 유학을 갔었어요. 한국에서 귀한 목회를 많이 했는데 그 순전히 다른 분이 도와서 유학을 간 거예요. 자기는 돈 하나도 없는데 여기저기서 도와줘서 유학을 간 거예요.

[21:01]유학하기 힘든 시절에 그는 다시 해 보니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가만히 감사를 하고 찾아보니까 그분들이 다 누구의 도움을 받았느냐 하면 자기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씨를 뿌렸어요. 선한 사업의 부관자가 된 거예요. 그게 사라져 버린 것 같은데 사라지지 않은 거예요. 그대로 그것을 한 대가 넘어서 손자가 소록이 득을 본 거예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반대 정신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틀을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은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라. 나누지 못하고 가지려고만 하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요즘 우리의 자녀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이 참 늘어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나이가 꽤 들었는데도 부모로부터 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해서 늘 의존되어 있는 소위 말하는 캔거루 족들이 많아요. 이 부모가 돈이 있으니까 재산이 있으니까 그 부모에게 의존하고 자기가 독립적인 어떤 태도를 가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자꾸 늘어나요, 여러분. 자식도 보니까 기댈 데 기대한다고 부모가 돈 있는 걸 아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있어도 없는 척 하십시오. 부모가 자식을 진짜 사랑한다면 가난한 돕지 않아야 돼요. 성인이 되면 대학 정도 마치면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자녀들의 삶이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위험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불상사가 막 일어나잖아요. 뭐 있는데 안 준다고 그냥 때를 쓰고 그냥 뭐 폭력도 가고 욕도 하고 그냥 강도들이요, 강도들. 강도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 은밀하게 자식의 삶을 파괴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녀를 돕는 게 아니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기대하지 않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나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 분은 괜찮습니다. 안전하신 분이에요. 있으신 분은 빨리 지혜롭게 정리를 하셔야 돼요.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출세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정직한 세금을 물고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이 나누는 삶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돈을 벌고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나누었느냐로 그 사람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생각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굶어 죽을 리가 없습니다. 도둑질할 리가 없습니다. 남을 도우려고 생각하고 삽을 하는 사람이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생활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뭐 식당을 하나 열더라고요. 그는 이을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여러 청년들의 실업을 해결하는 조그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어떤 분은 세금 떼고 뭐 떼고 다 하니까 직원들 월급 주고 나니까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그냥 흑거다 흑거다. 흑거 아니에요, 여러분. 직원들 먹게 살렸잖아요, 여러분.

[24:28]여러분 우리가 가장 잘 사는 비결은 뭐냐면 8시간 일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10시간을 일하는 정신을 가지는 거예요. 나눌 것이 있기 위해서 보는 거예요. 바로 두 시간을 더한 그 시간, 남을 위한 더 시간 더 잔업을 하는 그 시간이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것이라는 거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잔업을 하고 그것으로 남을 돕는다면 그것이 인생의 수준이고 품격이고 멋이고 그게 풍요롭게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현대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의 재성을 그대로 두면 눈부신 이 화려한 세상에서 탐욕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끌어 모으는 것에만 몰두하다가 어느 날 핏땀 흘린 돈의 주인이 내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불행해지는 겁니다. 가만히 보세요, 여러분. 돈이 많아질수록 외로워집니다. 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자세히 보세요, 여러분. 돈이 많아질수록 외로워져요. 평안을 누리지 못해요. 관계가 깨져요. 불안해요.

[25:41]만족도가 없어요. 오히려 가난할 때 없을 때가 훨씬 더 조금씩 조금씩 올라갈 때가 만족도가 있죠. 여러분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탐욕의 노예가 되면 인간은 실제로 돈의 희생물이 됩니다. 그 지독한 지배욕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되는데 그 탐욕에 노예가 되는 것을 막는 명약은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과 이 나눔의 삶. 그밖에 없어요. 여러분 사도행전으로 돌아가 보면 초대 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시대의 이 팔레스타인에는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있다면 부자와 극빈층 둘로 딱 나누어졌어요. 부자가 나눔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시대는 극빈층은 가난에 허덕해야 하고 죽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과와 아부를 돌보라 이 말씀이 성경에 굉장히 많은 이유는 그 시대 속에 누군가 가진 사람이 나누지 않으면 뭐 복지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죽는 것입니다.

[26:44]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존을 위해서는 부자의 나눔의 방식이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눔을 매우 적극적으로 강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리적으로 한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이 돌보시겠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여러분 세속사의 상징인 당시 거대한 로마를 허부는 강력한 힘의 원천도 나눔의 원리였습니다. 나눔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일종의 혁명적 삶의 형태입니다. 나눔은 만몬의 거대한 위세를 굴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때 이 만몬의 위력은 초라해집니다. 그래서 이 나눔의 삶은 전복적이고 그리고 혁명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안에서 나타난 성령 운동 우리는 일반적으로 오순절 계통이 이 신비주의 쪽으로 많이 강조한 바 있지만 사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의 사건은 사회 개혁 운동에 더 가까웠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주머니가 열리는 사실이 초대 교회에 입증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이 임하시니까 그들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나눠 주니까 유무상통하여 그들 가운데 핍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자기의 주머니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팔 수가 있었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성령 충만함을 통하여. 여러분 성령 충만하면 주머니가 열려요. 나눠 줄 수 있습니다.

[28:18]다른 말로 바꾸면 뭡니까? 우리의 본 정신으로는 못 나눈다는 얘기예요. 우리의 소유욕이 결코 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유 중심의 문화 속에서 다름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나눔입니다. 나눔. 신자들은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이 줄어들고 소유욕이 끊이 끊어지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후하게 나눌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어 정말 이 나눔의 원리를 실천하며 사는 분들이 참 너무 많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 우리 어 외국인 우리 형제가 너무너무 힘든데 아주 수술하기도 힘든 그 질병을 가지고 있는데 수천만 원이 드는 거예요. 근데 곳곳에서 막 모금을 하는 거예요. 모금 조금 부족한 거는 교회가 보태긴 했지만 많은 분들이 시시 일만으로 모는 거요. 우리 선교사님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우리 성도들 보면 늘 얼마나 적극적으로 모은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 교회 저는 저의 목회 철학 가운데도 하나도 나눔입니다. 나눔. 함께 잘 사는 세상. 이 소유 중심의 문화를 끊어내고 나눔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거요. 저는 해마다 러브 산을 할 때마다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 교회가 많이 해요. 많이 해요. 정말 엄청난 액수죠. 러브 산 할 때 한 5만 정도의 박스를 만개 이상 만들고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래서 저는 늘 해마다 하면서 더 해야 돼, 더 해야 돼.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이.

[30:16]여러분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바라볼 때 뭐라고 와 저기 부자 교회다. 뭐라고 뭘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죠. 어떤 분은 명 얼마나 모이느냐는 막 물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숫자를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가 자꾸 막 얘기 안 하면 너무 많이 얘기하면 교통을 막는 그래서 교통을 막힌다고 이렇게 얘기할까 봐 안 하는 걸로 그렇게 얘기 생각을 오해를 하더라고요. 또 한번이요. 여러분 이 주변에 우리 우리를 바라보는 게 뭐냐? 주변에 교회든지 주변의 시민이든지 수영로 교회를 바라보는 게 뭐냐? 사람이 많이 모여서 교통만 막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 저 교회 많이 모이는 이유 있다. 저렇게 많이 모이는 이유가 있다.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 이 민족에 감동을 주는 이 도시를 진동하게 만드는 그들은 다르다. 그들은 다르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집단적 이기주의. 그들끼리만의 잔치 당신의 천국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만족만으로 끝나 버리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돼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만 움켜지고 살면 불행해지는 거예요. 저는 교회도 우리의 주변의 교회와 함께 해야 된다. 여러 가지 지금 프로젝트를 이제 열어가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아직 제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나누고 싶을 때 나눌 수 있는 것. 그 진정한 부자의 삶일 것입니다. 여러분 나눔은 물질만 생각하면 안 돼요. 없는 것을 나누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영적인 영역들에 있어서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남다른 은혜를 받으신 분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 배고픈 자에게 빵이 필요하지만 빵만으로는 일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요즘 노숙자들에게 이 인문학 강의를 세미나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 노숙자들에게 땅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문제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많은 곳에서 인문학 강의를 합니다. 여러분 인문학만으로는 되지 않죠. 그들에게 참된 진리의 말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이 말씀을 나눠 주는 거 우리 연약한 사람들. 오늘 또 우리가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게 있다면 우리 주변에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거. 페이스북이나 여러 것을 통하여 이 은혜를 공유하고 유통시키는 것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에게라고 얘기해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줬던 이 주기도문은 결코 나에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말은 뭡니까? 나에게 능함이 주어졌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나눔의 실천을 반복할 때 그것이 나눔의 일상이 되고 또 나눔의 영성이 형성될 것입니다. 나누는 것이 익숙한 삶은 남의 것을 훔칠 생각을 할 리가 없습니다. 나눔을 계속 실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탐욕 자체가 어느 날 점점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당장 탐욕의 줄이 나의 목을 조르게 됩니다. 나누지 않고 쌓기만 하면 그곳에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나눔은 소유욕으로부터 병든 심령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눌 때 소유 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요. 나누는 삶을 살 때 그 나누는 과정 속에서 힐링이 일어나요. 나에게도 일어나고 상대에게도 일어납니다. 나누는 그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눠 보십시오. 그 마음에 따뜻함이 생깁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나를 더 복되게 하는 삶의 원리가 나눔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나눌 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그런 사회가 밝아지고 따뜻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나눔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이 일들을 앞으로 더 실천적으로 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의 유통이에요. 나만의 복은 복이 아닙니다. 나만의 배부름은 동물적 배부름이에요.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거요. 나도 배부르고 남도 배부르게 하는 일이 진짜입니다. 신자는 항상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좀 배가 약간 고파도 약한 자를 돕는 것을 통하여 정신적 배부름이 더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함께 배가 불러야 그게 선입니다. 행복은 나만의 배부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만족할 때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것을 지키려고 안간 힘을 쓰다가 내 것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지킬 때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이 지키는 것입니까? 나누는 것이 진정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나누면 내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예요. 나누는 것이 내 것을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이고 나눌 때 더 부요해지는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들이 나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기 전에 내 것을 먼저 나눠 주는 것. 이게 얼마나 지혜로운 것입니까? 천국의 원리죠. 나눌 때 풍성해지고 나눌 때 하나님이 더 우리에게 풍성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잘 아세요. 이 물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 때 그게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하나님이 그 유통을 보세요. 정확하게 하나님의 방식과 원리대로 그 말씀을 제대로 흘려보낼 때 더 낮은 곳으로 흘려보낼 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더 흘려 보낼 것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공동의 선에 기억하지 않고 개인의 이기만 몰두한다면 하나님이 더 이상 주실 수가 없어요. 왜? 그것은 탐욕이고 죄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라는 것입니다. 나만은 생각하지 말라는 거요. 내가 더 가지려고 하다 보면 도둑이 되는 거잖아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겁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가진 사람은 더 나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요. 없다고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피를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적게 가지고 있어도 나의 수준에서 더 적게 가진 사람을 돕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는데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서로 깊이 연결되어져 있고 나만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나눠주고자 하는 것이 도둑질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았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37:57]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욥의 고백이에요, 여러분. 그냥 알몸으로 왔다는 거죠. 알몸으로 돌아갈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에 있지 않아요. 세 세 세상의 것들이 좀 많고 적음이 우리 삶을 요동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잠깐이라는 거예요. 영원히 소유할 것은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우리가 얻은 구원만이 영원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소유는 우리가 얻은 구원이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 진리만 영원하고 우리가 지고 있는 이것은 다 잠깐이에요. 그러므로 눈똑들이지 말고 이 없어져 버릴 잠깐의 것에 눈똑들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실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상의 소유 문제 때문에 액을 복건하거나 당황하지 말라는 거죠. 부가 부에 많고 적음이 화와 복의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신자에게 가난이 복이 될 때가 많아요. 혹독한 가난이라는 시련을 통과하는 가운데 하나님 만나고 교만하지 않게 되고 영원한 것에 가치를 알 수 있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얻었다면 그건 복인 것이죠.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게 것으로 초조해야 하지 말고 무리한 욕심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매일 성실하게 일하는 땀을 귀중해 여기고 허망한 꿈을 꾸지 말고 적으면 적은 대로 살고 주시면 주시는 대로 사는 이 법을 익혀 갈 때 8계명을 실천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거 쉬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의 삶이 항상 십자가로 당금지를 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채움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우리 안에 그들을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헛된 것에 자랑을 삼지 않는 그래서 오직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만 주목하는 삶을 살아 그분 안에서 만족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만족을 얻고 그 영적 부요함 속에서 언제나 나눠 주기로 힘쓰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이 물질이 충만한 이 화려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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