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성경 안에 그대한 글자로 굵게 새겨진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라고 하는 단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마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구원이라는 단어처럼 우리에게 절실한 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구원. 구원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게 물었더니 10원에서 1은 모지라는 거다.
[0:42]우리가 끊임없이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만 이 구원은 참 광범위하고 깊고 풍성하고 아마 우리가 어떤 것으로도 다 필수를 다 할 수 없는 것이 구원인데 우리는 예수 믿고 천국 간다라고 하는 너무 단편적이고 빈약한 구원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경은 인간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 이 두 개가 겹쳐져 있어요.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실패하고 죄를 짓고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그것보다 더 큰 열심으로 구해 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구원의 이야기. 왜 그러면 우리는 구원이 그렇게 중요한가? 구원의 구원을 생각하려고 하면 반드시 구원의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반대편이 뭐냐?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하여 저주 아래에 있기 때문에 구원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있어요. 그분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어떤 죄도 간과하지 않으신다. 어떤 죄도 처벌하신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죄에 대해서 눈을 감지 아니하시는 그런 공의로우신 죄에 대해서 맹렬히 진노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 성경을 들여다 보면 그게 나와요. 복음을 만나기 전에는요 성경을 읽다 보면 두려워요. 와, 두렵구나. 이 죄 내가 지은 죄가 많은데 죄를 용납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죄를 처단하시는 하나님. 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아니하시느라. 여러분 그것이 어디에까지 나타난지 아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알게 되는 거예요. 당신의 아들을 매달아 죽이면서까지도 죄의 문제를 처리하고야 마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의 짧은 내용 안에 구원이라는 단어와 영생이라는 단어, 그다음에 또 다른 대칭되는 대조되는 단어가 뭐냐면 심판과 멸망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이 중간의 사이를 두고 영생과 구원이라는 단어와 심판과 멸망이라는 단어가 딱 나눠져 있어요. 그래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면 알수록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더 절실해지는 거죠. 여러분 인류 최초에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죄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저주가 이 땅에 들어왔죠. 실락원.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총체적이었습니다.
[4:20]어떤 한 부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은 전 영역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한 가운데 바로 그런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한 저주들입니다.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현상이 뭘까요? 내가 내 자신과 관계가 깨어졌어. 여러분 왜 갈등해요? 내가 나와 불화해요. 또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 깨어짐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깨어지면 나와 나 자신의 관계 안에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내가 나를 불편하게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불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좋은 관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안에는 미움과 질투와 시기와 그리고 살인의 마음들이 생겨요. 인류 최초의 살인극이 형제 간에서 일어났잖아요. 지금도 전쟁과 테러와 수 없는 분쟁으로 죽고 죽이는 살육국이 인류의 하루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의 파괴가 일어났어. 땅이 저주를 받았어. 오늘 지구촌 곳곳에 가뭄과 기근 그리고 홍수와 지진들 쓰나미들 환경의 깨어짐으로 인하여 당하는 인류의 고통입니다. 여자는 해산의 수고,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것, 그리고 남자를 사모함에 대한 것들도 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남자는 죽도록 고생하고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서 먹고 살도록 했어. 지급 중에 하나도 괜찮은 지급이 없어요. 다 힘들어요.
[6:29]늙어가는 것.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가장 분명한 하나님 죄에 대한 진노예요. 저주예요. 요즘 수명이 많이 연장되어서 120세까지도 가능해지는 시대가 곧 온답니다. 기대하시라. 그러나 여러분 죽는다는 사실이에요.
[6:53]인간에 다친 모든 고통과 불행의 근원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인류 인류의 역사는 고통의 이야기예요. 우리의 삶에 그 누구도 이 고통으로부터 면제부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고통의 문제야말로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힘든 저주 아래에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첨단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의 고통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육체가 조금 편안해졌을 뿐이지 훨씬 더 차라리 몸이 불편한 것보다요. 정신적 고통은 이거 몸이 고통스러운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것.
[7:55]이전은 없거나 있어도 아주 희귀했던 정신 질환자들이 기약 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우울증이란 것은 그야말로 감기 증세처럼 얼마나 보편화되고 수없는 사람들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까? 인간의 탐욕으로 스스로 자초한 고통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어병이라든가 이런 에이즈의 문제는 온 인류의 가장 심각한 재앙과도 같은 것입니다. 또 나의 잘못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중국 중국산 음식물에 섞여 있는 중금속들 유해 물질들 많이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식당에 가서 먹는데 뭐 국산 했는지 국산을 했지만 그게 사실은 다 분석하고 먹을 수는 없잖아요. 소고기 안에 들어있는 다이옥신을 내가 어떻게 분별해서 먹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그냥 먹는 거죠. 그래서 각종 이 대기 오염들 이 환경 공해들 이 음식물에 있는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불가피하게 질병에 걸리고 희성 질병들이 얼마나 많고 난치와 불치병들이 얼마나 많아요.
[9:05]제가 오조에 데는 아동병이 어마어마하게 큰 아동병이 있어요. 칠드런 호스피탈 있는데 그기 가면요 별별 병들이 다 있어. 아이들도 암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어떤 애는 뭐 제가 보니까 간암에 걸려가지고 애가 두 살짜리 아이인데 배가 퉁퉁 부었다.
[9:25]외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내면적인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들은 더욱더 우리를 고통하게 합니다. 그 정도면 채워졌고 만족할 것 같은데 끝도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개인이 일평생 당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책이 몇 권이 돼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만한 고통에 대한 것들이라면 우리가 또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술 담배 먹고 몸 망가진 것 내가 한 거죠.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의문의 고통들. 도무지 해석되지 않고 이해될 수 없는 고통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습니까? 욥기가 그런 얘기예요. 고통의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거죠.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이유라도 알고 싶어. 그러나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앞에 절망해야 하는 욥이 우리는 지금 누구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고통의 문제에 연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용광로 같은 세상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비록 그런 것들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정말 고통의 바다와 같습니다. 성경은 이 고통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타락과 범죄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해결의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죄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에서만 유일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1:02]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를 받으신 거예요. 이사야 53장 4절로 5절 말씀 아주 은혜로운 말씀이. 한번 같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런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주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게 최고에 심판이 뭐냐면 저주는 내버려두심이에요. 그걸 유기라고 말합니다. 유기. 로마서 1장에 그 말씀이 자주 나오는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에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느니라.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었다예요. 내버려 두었다는 이게 저주입니다 여러분.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 여러분 부부 간에도 때로는 부모와 자녀 간에도 뭐 다투고 뭐 욕하고 그냥 예 어냥 싸우고 하는 것은요 괜찮은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그 당시에는. 오늘도 뭐 한 판 하고 오신 분 괜찮은 단계예요, 그거는. 그래도 뭔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고 미련이 있고 뭔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예요. 최악이 뭐예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집에 오든 말든 밥을 먹든 말든 뭐 잠옷을 입고 밖에 나가든 말든 맨발을 싣고 맨발로 가든 말든 그 상관 없다는 말은 뭐예요? 내버려 두었다는 거. 끝났다는 거. 끝났다는 거. 끝났다는 거. 여러분 구원의 삶은 뭐냐? 어떤 분은 나는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삶에 어려움들이 생기고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을 보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데도 별탈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볼 때 회의가 드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 나는 뭡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까? 음 자기 마음대로 막 그냥 예 수도 안 믿고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거 이건 웬 일입니까? 이런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구약에 하박국 선지자. 선지자도 이런 고민을 했으니 여러분들 오지가 않겠습니까? 왜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악인들은 저렇게 형통합니까? 나는 예수를 믿고 열심히 주를 섬기려고 애를 쓰는데 건강이 따라주지 않고 늘 이 이렇게 헤롱헤롱 하는데 이 조폭들은 감기도 안 걸리고 건강이 부둥부둥하고 그냥 막 날마다 건강한 거 같고 말이죠. 아프지도 않아.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미 심판 가운데 있다는 거. 오늘 18절 하반절에 보세요. 하나님의 독생자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만약 내가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데 내 마음대로 죄를 짓고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그것은 저주예요. 아무리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해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에요. 심판의 한 가운데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을 간섭하십니다. 어떤 때는 한 순간도 그냥 두지 않으실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신자로 산다는 것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불편해질 수 있어요.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면 당장 사인이 와요, 사인. 당장 사인이 와요. 여러분 이전에 그러나 내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가난과 혹은 질병들을 허락하실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저주가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는 거예요. 고통을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킬 때가 있어. 내 삶의 아픔들을 통하여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어. 여러분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순간순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구원의 이 세계 안에 우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 내가 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돈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건 복이에요. 그건 구원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산떠미처럼 쌓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구원의 복을 누리지 못했다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무엇이 그것이 축복이겠습니까? 때로는 내 건강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붙잡게 되었다면 그 건강을 잃어버린 것 자체도 축복이에요. 성경에 그랬잖아요. 눈을 하나 잃어버리고 천국에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잠시의 불편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삶에는 저주는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을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수 없는 고통 때로는 알 수 없는 의문의 고통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여기 선이라는 말은 뭘까요?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여기 선을 이룬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18:06:06]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결단코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 약속이에요.
[18:14:14]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저주스러운 삶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
[18:27:12]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더욱더 구원의 풍성함 세계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신다는 겁니다.
[18:41:11]여러분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이유를 묻지 마세요. 성경 안에는요 사실 이 고통의 문제는 정말 까다로운 문제예요. 너무너무 복잡해요.
[18:53:21]그래서 욥기서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욥의 친구들이 섣부르게 그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다 엉터리잖아요. 그래서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더욱더 고통 안으로 몰아넣는 친구들. 사실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가까이 있는 다 도망가 버리는데 남아 있는 친구가 그래도 괜찮은 친구들이었는데 하는지 지 그러잖아요.
[19:15:14]고통의 문제는 어려워요. 고통의 이유를 몰라도 해답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한 가지 가르쳐 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19:29:16]아니 그분이 직접 고통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저주로부터 근전 내기 위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처방 고통의 한 가운데 들어가신 그리스도.
[19:45:17]성도 여러분 고통의 문제로 불행에 빠지지 않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고통의 한 가운데 나와 함께 하신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를 더 무궁하고 영원한 세계로 이끌어 들이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0:08]그리스도 안에서 고통은 축복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오히려 무고통이 더 끔찍한 고통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20:09:10]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더 깊이 사모하고 붙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0:19:14]우리는 이제 어떤 환경과 사건 혹은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의 구원의 풍성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때로는 답답한 일을 만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20:34:31]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삶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어떤 저주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겁니다. 어떤 저주도 완전히 저주로부터 끝이 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닥쳐오는 의문의 수 없는 고통마저도 우리를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시고 더 풍성한 영생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21:06:24]여러분 로마서 8장 후반부를 보면 바울이요 얼마나 당당하게 정말 어 이 바울은 흥분의 도가니에서 확신의 차서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감동이 넘쳐서 나에게 주셨던 이 구원은 이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빼앗길 수 없다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격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21:30:19]여러분 집에 가셔서 무릎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세요. 얼마나 흥분되는지 몰라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는가? 환난, 공고, 박해, 기근, 위험, 칼
[21:50:16]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능 능히 이긴다 그래요. 겨우 이긴다는 게 아니에요. 능 능히 이기느니라.
[22:09:14]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저주는 끝이 났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22:24:16]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 저주를 바꾸사 축복으로 옮기셨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구원의 삶을 적극적으로 누리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승리의 창가를 부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2:40:14]불행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것을 저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인류가 죄로 인하여 받았던 그 죄의 어두운 상처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단코 불가능한 것입니다.
[22:54:29]이제 그 모든 것을 피로 말미암아 떠나 보내시고 어둠의 그림자, 저주의 그림자, 불행의 그림자를 다 걷어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붙잡고 영생을 굳게 붙잡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죽음의 저주마저도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 천국의 소망으로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을 덮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