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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막 1:10-11) | 이규현목사 | 주일3부 | 20.02.16

수영로교회 Sooyoungro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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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우리는 마가복음을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데요.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우리가 살펴보면 특별히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은 우리의 초점, 우리의 관심, 우리의 신앙에 가장 그 포커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인가? 이제 그 부분을 우리가 이 마가복음을 살피면서 계속 이 본문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점이죠. 지난 시간에 가장 첫 번째는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고요. 오늘은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물에서 올라오신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자, 오늘 이 아주 상징적인 사건인데요. 이 본문을 가르켜서 때로는 왕의 대관식이다. 예,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의 사역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으시는 그런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굉장히 주목할 만한 것은 삼위 하나님의 출연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라고 하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근데 오늘 이 본문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만나게 되죠. 물에서 올라오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거기에서 말씀으로 임하신 성부 하나님 그리고 비둘기 같이 내려오신 성령.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세 하나님이 함께 만나는 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자,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는 하늘이 갈라졌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경험하신 것이죠. 하늘이 갈라졌다. 자, 이게 하늘이 갈라지다라는 말은 은유인데요. 어, 이 갈라졌다는 동사가 이 마가복음에 한 번 더 나옵니다. 마가복음 15장 38절에 같은 동사로 이렇게 나와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여기 찢어져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단어예요. 갈라졌다는 단어와 찢어졌다는 단어가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버렸습니다. 그 휘장은 노엔트리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성소. 죄인이 들어가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곧바로 만날 수 없는 성전 제도의 상황을 얘기하는데요.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지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버렸습니다. 그 말은 이제 성전이 더 이상 효용이 없는 유효하지 않는 그런 상실이 됐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 자, 찢어졌다는 이 말은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을 말씀합니다. 자, 이게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작은 사건은 아니죠, 여러분. 하늘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하늘은 하나님이 거쳐 하시는 혹은 활동하시는 영역을 하늘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자, 그 말은 하나님은 하늘에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래서 인간에 의해 조종을 당하거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권세를 상징하는 게 바로 하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고 창조된 모든 것은 그분의 발 아래에 있다. 그렇게 말씀하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얘기할 때는 하늘의 하나님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의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 보좌에 앉아 계시는 통치하시는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영역이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 땅의 세계만 보았고 하늘의 세계를 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땅의 것들이 중심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늘이 모든 것의 중심이죠. 땅의 문제는 땅이 스스로 풀지를 못해요. 땅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의 권세. 오늘 세상에 온갖 문제들이 다 일어나지만 풀지 못하는 문제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땅은 혼란 속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우리 주기도문이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결정권은 하늘이 쥐고 있다. 하나님이 쥐고 있다. 뭐 동일한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 문을 여는 키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이 열고 닫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래서 휘장이 찢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죠.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말은 누가 사람이 찢을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자, 하늘과 땅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습니다. 자, 이 갈라지는 갈라지는. 그래서 하늘과 이 땅을 연결시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 하늘이 갈라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두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는 하나는 본 것이고 하나는 들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보고 듣는 것이죠. 자, 첫째에 보신 게 뭡니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그랬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물 세례를 받아서 물이 올라오시는데 성령이 비둘기 같이 비둘기가 아니고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내려오셨다고 그랬어요. 자, 주님은 홀로 사역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성령과 함께 사역을 하셨습니다. 저 본문은 1장 창세기 1장 2절과 매우 연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에요. 1장 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의 이 상황입니다. 모든 세상이 만들어기 이전에 혼돈과 공허 속에 있어 흑암의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심으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6:50]자, 성령이 예수에게로 오신 이 일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사망의 권세와 이 흑암이 가득한 이 세상 한 가운데 성령이 오셔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을 이 약속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 우리는 성령을 주로 뭐라고 하느냐면 생명의 영이시다. 살리시는 영이다. 창조의 영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령이 그 그리스도 위에 임하심으로 이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펼쳐질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 구약 가운데서도 성령이 임하심이 자주 강조되는데요. 이사야 61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35]우리 함께 다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시작.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8:10]아멘. 자, 주 여호와의 영,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것이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여기 보니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 자, 근데 이 성령이 왜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다고 하셨는가. 힘을 상징한다면 능력을 상징한다면 독수리 같이 임하셨다고 하면 더 올릴 텐데. 당시 로마와 대항하려고 하면 독수리 같이 강력한 메시아가 필요합니다. 비둘기는 근데 아주 강한 이미지가 아니죠. 비둘기는 주로 평화 또 온유 순결 이런 것들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비둘기 같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을 알려줍니다. 결국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내신다. 자, 우리는 성령과 예수를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출발부터가 성령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독자적인 영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영이에요.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시고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역할을 하는 게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역할을 맡으심.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모든 일들을 누가 하시는가? 바로 성령이 하시는. 아멘. 그리스도는 홀로 사역하시지 않고 성령과 함께 하심. 성령은 홀로 사역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그리스도에게 성령이 임하셨듯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임하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 그리스도 성령과 함께 하는. 바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의 출발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생애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생애를 마칠 때까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오늘 그 성령이 오늘 초대교회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과 동일하게 오늘 우리 교회 가운데, 여러분들의 개인 가운데, 가정 가운데, 사랑방 가운데 우리의 모든 사역들 가운데 임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자, 근데 오늘 그 다음에 일어난 것은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11절에 보니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아멘. 여러분 이게 두 가지예요. 살펴보면 첫 번째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자, 여기에는 마가복음 9장 7절에서도 변화산 사건에서도 한 번 나와요.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역시 아버지가 하늘에서 아들에게 하신 말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자, 여러분, 이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자, 이 말씀은 이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들에 대한 어떤 선포인데요. 이것은 하나님과 아들과의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특별한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들 예수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구원을 이루게 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아들 됨의 정체성을 부여해 주시는 겁니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공적으로 선포해 주시는 거예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로서 공적인 이 구원 사역을 시작하라고 하는 인준입니다. 자, 이것을 가르켜 우리는 아들을 됨의 정체성을 부여받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친 이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내시기 위해서 공생애를 살아가야 할 아들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하는 이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13:21]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일을 감당해야 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알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다고 어려운 게 아니에요. 진짜 힘든 것은 이유를 모르고 어려움을 겪을 때요.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아주 어려움을 겪을 때 말이야. 요즘도 중동 같은 나라에서는 생명의 위협이 있어요. 어려운 그 환경에서 어떻게 사는 겁니까? 그 살아야 될 이유. 그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거기 뭐 돈 벌려고 간 것도 아니고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선교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주변에 감시가 있고 체포되어 때로는 여러 가지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어려움을 겪어내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왜 존재하는가라고 하는 자기의 정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삶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힘들고 어려울수록 중요한 게 뭐냐면 정체성입니다. 아이덴티티. 그래야 죽어도 나는 이 길을 갈 거야라고 하는 확신을 주는 게 뭐냐? 바로 이 정체성입니다. 아들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속죄의 어린 양. 여러분,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복음서를 보면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고향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합니다. 어릴 때부터 보았던 그 나사렛 예수가 구원자라고 안 믿는 거예요. 심지어 형제들 그 육신의 그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을 배척했어요. 여러분, 가장 힘든 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오해예요. 네가 무슨 메시아냐는 거죠.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거죠. 마귀가 이것을 공격합니다. 이건 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볼 거예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이 돌들을 떡이 되게 하라라고 하는 이 시험의 본질은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이덴티티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15:58]종교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에게 공생애 동안에 시비를 걸었던 게 이 대목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정체성을 얘기할 때 다 죽여버리려고 그랬죠. 참람하도다. 참람하도다. 오늘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음성에 들려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아멘. 아멘.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의 공생애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오늘 이 변화산 사건에서도 한 번 더 나오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16:41]가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뒤늦게 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될 때. 가끔 그런 일들이 있더라고요. 내가 이 집에 부모의 자녀인 줄 알았는데 아, 아닌 거야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까. 혼란에 빠지는 거야. 혼란에. 왜 혼란에 빠지는 겁니까? 내가 누구지? 내가 어디에 속한 자이지? 내 존재에 대한 혼란이 오는 겁니다. 그 뿌리를 건드리는 거죠. 사춘기 아이들이 힘든 힘들어 하는 게 뭘까요? 정체성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거예요. 자의 발견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이 그 잡을 수가 없어.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정체성입니다. 아멘.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이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정체성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가정에서 아내로 엄마로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또는 아내로써. 때로는 남편으로 아빠로 직장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다양한 신분들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가져요.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있는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아멘. 다른 것이 다 무너져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으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이를 양육하고 직장에서 일을 합니다. 내가 회사에서 과장이든 부장이든 변하지 않는 고유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직장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 나가면 그 심 그 심분과 그 역할과 그 위치가 사라져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정체성만 붙잡고 살면 나중에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에 속한 자로서 주시는 에너지가 있단 말이죠. 아멘. 우리의 삶의 행동의 근거가 정체성인데 그 정체성의 근거에 가장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의 삶을 받쳐 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다.

[19:10]아멘. 우리가 주의를 할 주일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셔서 하는 것.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일을 하라고 하셨는가? 내가 선교사로 가고 싶어 가는 게 아니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셔야 가야 돼. 근데 하나님이 가라고 안 하셨는데도 간 분들도 있어요. 선교지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에 가야죠. 근데 많은 선교사들이 미국의 LA에 모여 있어요. 처음에는 다른 데 갔는데 나중에 LA로 갔더라고. 내가 스스로 얻어낸 것은 언제나 흔들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워준 것은 흔들리는 거예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나 미국에 있으면요. 간혹 태평양 신학교 출신 목사님들도 계세요. 안 들어보셨죠?

[20:13]태평양 신학교. 호주로 건너올 때 미국으로 건너올 때 비행기 안에서 자기 머리에 자기가 안수해 가지고 목사된 분들을 태평양 신학교 주시라고 그래요. 어디에서 목회를 어 신학을 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여러분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마다 항상 내가 시작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셨는가 물어봐야 돼요.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시작한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죠.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이나 신분에 따라 흔들립니다. 자신의 직장에 직급이 자신의 정체성인 줄 알았던 사람은 퇴직하는 순간 모든 게 다 무너져 버리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가 나를 따르고 박수를 쳐주고 결제를 하는 일들을 할 때는 다 좋아요. 그러나 그 역할이 끝나면 갑자기 정신적 공황을 겪어 버리는 거예요. 세상적인 타이틀이 뭐 계속되는 게 있나요? 언젠가는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죽을 때까지 붙들려야 할 정체성이 있는 것인가? 여러분 누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어야 되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 하나님에게 속한 인생, 내 인생에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것. 아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 이건 최고의 인정과 존중과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격려하는 겁니다. 아들 예수에게 그것은 큰 힘이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어가는 걸어가는 길의 에너지였을 거예요. 아들의 자존감입니다. 내가 너를 기뻐해. 여러분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에서는 그런 거죠.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해. 공부 못해도. 근데 왜 우리는 화를 내고 모욕하고 모멸감을 주고.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니? 네 낳고 내가 미역국을 먹었다니 후회가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아이들에게 그 어떤 행위로 인하여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에게 말을 하면요. 그 아이들이 존재감이 약해요.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고 상처 속에 살아가고 그 상처는 그대로 부모에게 돌아가요. 남자 친구에게 차여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자매가 있는가 하면 약 먹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남자가 그 사람밖에 없나? 계약직으로 있어도 행복하게 다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위치에 성공했다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늘 불안해하고 낮은 자존감으로 사람들을 눈치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요.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여요. 외도를 한 남자들 가운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일탈이에요. 일탈. 가족들이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거예요. 한국 사회 외도가 많은 원인 중 하나가 어쩌면 남성들의 낮은 자존감 때문일 수도 몰라. 여러분, 우리는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내가 너를 기뻐해 너의 존재로. 평가하고 어떤 외적인 결과로 그 아이들의 가치와 점수를 매기는 이 잔인한 문화. 그래서 끊임없이 루저를 만들어내는 문화하고 위그력하고 못난 자로 만들어 버리는. 근데 죽게 만드는 거죠. 살게 만드는 힘을 주지를 않아요. 오늘 아들을 향하여 난 늘 기뻐해 이 말은 그 힘들고 어려운 그 길을 걸어가는.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시는 최고의 힘이죠. 힘든 세상이지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그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를 늘 공급받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치는 물이 아니십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가 어떤 경우에도 나는 널 거절하지 못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근근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기 때문에. 아멘. 성도 여러분,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비밀이 이 세상에 드러나는 우리 장면을 오늘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 하늘의 문이 열리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일은 늘 거기서 거기예요. 오늘도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안간 힘을 써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딱 기도는 딱 하나예요. 하늘 문을 여소서. 아멘. 하나님이 일하십시오. 아멘. 저는 우리 이 땅의 모든 일들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요. 답이 없어요. 인간에게는 답이 없어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 역사를 또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던 것처럼 성령이 임하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낙심하고 절망하기 쉬운 세상에서 날마다 기죽고 날마다 그냥 포기하고 절망하고 낙심하고 허무에 빠져 있는 오늘 이 세상 가운데서. 잔인하게 평가하고 잔인하게 점수를 매기는 이 세상의 문화 속에서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이 사랑스러운 주의 음성을 들으시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뭔가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 삶을 내려 놓으시고요.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이 기가 막힌 사랑의 음성을 들으심으로 내 정체성의 근거는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딸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멘. 흔들리지 마시고요.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거침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달려가는 온골찬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늘 문 여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며 그 주님의 잔잔한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놀라운 주의 음성을 듣고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의 백성들로 변질되지 않고 굳굳히 살아갈 수 있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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