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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BEST 설교 | 십자가를 통한 삼중은혜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이사야 53:1~6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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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예수님의 그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그 생애를 기록하는데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뭐 어린 시절을 약간 언급한 부분이 누가복음에는 나왔지만 대체적으로는 어 공생애를 다루고 그 공생애 가운데서도 뒷부분 마지막 일주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과정 또 십자가 이후에 부활 사건을 다루면서 상당한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에 관련된 것에 이 초점을 어 복음서 기자들이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기로 보면 좀 독특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기를 기록할 때는 어떤 사람의 위대한 부분들을 부각시키잖아요. 그 아주 그 인생에 가장 성과가 높았던 화려한 어떤 전력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게 일반적인 전기의 특징입니다. 근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 전기를 우리가 본다면 마지막 고난을 당하신 이 장면에 클로즈업 하는 거죠. 그기에 카메라 앵글을 갖다 대는 것입니다. 어 어떤 면에서 무력하게 아주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그 채영장에 끌려가시면서 아주 힘없이 매달리시고 죄인과 같이 멸시와 조롱과 천대와 모든 수욕을 다 감당하시면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어요. 근데 왜 성경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거예요. 기독교의 핵심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복음이죠. 이 복음을 요약하면 뭘까요, 여러분? 십자가 사건이에요. 그 십자가와 부활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얘기해 주려고 하는 부분이 바로 복음의 얘기예요. 그 복음의 핵심 중에 뭐가 있느냐? 십자가 사건이 있다는 거예요. 이 십자가를 어 우리가 이해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고는 신앙의 핵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고난 주간에 여러분 어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껴나 있는 또 그것에 대해서 전혀 경험이 없고 이해가 없는 신앙생활을 백날 첫날 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십자가와 나와의 개인적인 인카운트가 일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2:55]왜? 이 십자가가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고, 본론이고, 몸통이고, 중심이고 어떤 면에서 전부라는 거예요. 이거를 우리가 어 경험 못하고 붙잡지 못하면 신앙은 아주 이렇게 알듯 모를듯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고난 주간에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만나는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주 간절히, 간절히. 예.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그 은혜가 뭔가 하면 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거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건 뭐 십자가를 앞에 두고 피할 수 없는 주제예요. 첫 번째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럼 오늘 여러분 5절을 중심으로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무엇을 때문에? 허물 때문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뭐 때문에요? 죄악 때문에. 왜 죽으셨나? 우리 죄 때문에.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메시지는 뭐냐면 그 십자가를 인정하는 순간,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뭐냐면 우리가 얼마나 치명적인 죄인인가를 말씀하는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말씀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세상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내가 죄인, 그렇게 심각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요. 여러분 사단이 하는 가장 악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수작이 뭐냐면 죄를 축소시키는 겁니다. 죄를 미화하는 것입니다. 죄를 은폐시키는 것입니다.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니마이저 자꾸 죄를 줄이는 거,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오늘도 이 세상의 여러분들 안 안에 문화 속에는 뭐가 있느냐? 그게 뭐가 죄냐? 그까지께 뭐가 죄냐는 거예요. 아 그거 다 하는 건데 그게 꼭 그 죄라고 할 수 있느냐예요. 그게 문화라는 거예요, 문화. 요즘 아이들도 그러잖아요. 죄 의식이 없어요. 아 진짜 심각해요. 죄 의식이 없다고요. 죄를 합리화해요.

[5:49]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들들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좀 생각해 보면 좀 생각할 게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오늘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을 많이 하지만 우리가 이 고백을 자꾸 하다 보니까 우리도 우리 안에 이게 뭔가 이 이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아요. 복음 안에 들어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에 믿고 이제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에 뭐 구원을 경험 뭐 구원을 받아들이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실제적으로 그 죄에 대해서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마나 내가 심각한 죄인인가에 대한 그런 통렬한 이 자각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는 처음에 교회를 들어올 때부터도 이 부분이 정확하게 터치가 안 된 분들이 계시고 또 오래 믿다 보면 이게 희미해질 수가 있어요. 희미해질 때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이 죄에 대해서 희미하고 소홀히 여기고 중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결국은 십자가 사건을 내가 희미하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누가 여러분 십자가를 강력하게 붙잡습니까?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그것 아니면 소망이 없다라고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 이게 잡는 강도가 다른 거예요, 여러분. 나 이 십자가 놓으면 죽는 거거든요. 소망이 없단 말이에요. 여러분 성경을 들여다 보면 우리는 그냥 죄인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로마서나 성경의 전반부 보면요. 우리 같이 부패하고 우리 같이 악한 인간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예요, 여러분. 성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안에 악독이 얼마나 가득하냐는 거예요. 얼마나 가득하냐는 거예요. 여러분 이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 여러분들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이 문제를 여러분 가볍게 취급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죄 문제를 현대인들 생각하기 싫어요. 오늘날 많은 교회들 안에서도 이 죄 문제를 다루지 않아요. 불편한 얘기고 사실 죄 문제를 하면 우리의 심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면 우리 모두가 불편해요. 그러나 여러분 죄 문제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풀어 나가는 방식은 없어요. 정확하게 다뤄야 돼요. 직면해야 돼요. 정면 돌파를 해야 돼요. 그래야 우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재앙 마지막에 장자를 치는 재앙이 있었죠? 그때 하나님의 처방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재앙이 지나가는 은혜를 허락하셨어요. 그게 유월절이에요.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복음의 어떤 길입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거예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겁니다.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십자가 앞에 나가면 되는 거예요. 그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어요. 합리화시킬 필요가 없어요. 다른 생각으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고 그것을 생각하기 싫다고 피하려고 하지 말고 직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어린 양의 피 아니면 안 됩니까? 그러면 돼지 피를 바르면 안 됩니까? 그건 안 되는 거예요. 빨간 잉크를 바르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기 집 문설주에 발라야 돼요. 자기 집 문설주를 안 바르고 내 남의 집에 다니면서 문설 막 피 발라주면 안 되는 거예요. 자기 죽는 거예요, 여러분.

[9:41]여러분 오늘 예수 우리 죄를 해결하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아멘. 여러분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것은 십자가밖에 없어요. 아멘. 십자가를 붙잡고 여러분들의 죄 문제를 언제나 그분의 십자가 안에서 그분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해결할 해결함을 받기를 바라고 여러분들 안에 그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은혜가 십자가 안에서 허락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 죄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는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가 바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시는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언제든지 내 죄를 그 십자가 앞에 시인하기만 하면 저는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시겠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저주를 위하여 죽으셨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라고 하는 이 표현 속에 이 평화. 여러분 죄가 가져온 것은 평화가 깨어진 겁니다. 누구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평화가 깨어지고 하나님과 등진 삶을 살게 되고 에덴에서 추방을 당하고 그것이 저주의 출발이에요. 여러분 저주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겁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말하면 그런 삶에는 형통이라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거예요. 몸부림을 치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주어진 이 고통하는 세상 가운데 모든 인간의 역사는 그 저주로부터 풀림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종교도 만들고 모든 무당 푸닥거리를 하고 온 별짓을 다하지만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인간에 내리든 저주는 인간이 풀 수가 없어요.

[12:17]그래서 여러분 이 주변을 돌아와서요. 얼마나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여러분 이 저주는 하나님의 잠금장치예요. 딱 잠금장치를 해 놨어요. 못 풀어요, 우리가.

[12:38]근데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3:09]복음이에요, 복음.

[13:13]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 나무에 매달려 저주를 받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명백한 저주를 받으셨어요. 그분의 그 십자가에 매달림은 완전한 저주였어요. 오랜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로 저주를 받으셨어요. 죄인이 아닌데 죄인과 같이 되셔서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진노를 맹렬하게 쏟아 부으시고 여러분 저주가 뭔가 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눈곱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홀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어요. 그래서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숨지시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테텔레스테이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이건 상업적 용어예요. 징을 완료해요. 더 이상 징을 대가 남아있지 않는 완전히 페이드 아웃 모든 지불이 끝났다. 모든 저주는 끝이 났다. 아멘. 여러분 우리 삶에 예수를 믿어도 어려운 일이 생기죠, 그렇다면. 그러나 여러분 그건 저주 안에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이상 이제 더 이상 우리 삶의 어떤 어려움과 고통은 그건 저주라고 말하지 않아요. 저주는 뭔지 아세요, 여러분? 비참한 거예요. 저주는 뭐예요? 비극을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스도 안에 오면 이제 더 이상 비극은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릴 더 고상하고 더 아름답고 더 정금같이 빚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의 역사는 있을지 모르지만 저주는 없어요. 아멘. 저주는 끝이 났어요. 만약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가 남아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완전하지 않아요. 퍼펙트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완전이 저주를 받으셨어요. 더 이상 어떤 저주도 우리에게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과 시련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아멘. 우리를 궁극적으로 승리케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저주가 없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수 없는 고난과 시련과 어려움과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더 높은 하나님의 소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 속에도 찬양할 수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세 번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상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어요. 오늘 마지막 부분에 5절 마지막 부분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채찍에 맞아 상처를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나음을 입었도다.

[16:40]사실 여러분 우리 삶은 고통이에요. 고통. 야베스가 이름이 너는 고통이라 나올 때 그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주었었어요. 고통이라. 근데 야베스뿐만 아니라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인생이 고통이에요. 사는 게 고통이잖아요. 사실은 아픔이 산다는 건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과 똑같아요, 여러분. 그죠? 아픔이 없는 사람 여기 있어요, 여러분? 예, 그분은 안 나오셔야 될 뿐이 나오셨어요. 그튼 화장하고 넥타이 매고 이렇게 나오셨는데 톡 치면 눈물이 나올 게 다 있잖아요,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는 갑자기 찾아온 우리의 삶의 시련들이 우리를 고통하게 합니다. 전혀 예측하지 않아. 내가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닥칠 줄 몰랐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아니 이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어떤 것은 잠시 내 가슴을 흔들어 놓다가 떠나버리는 또 고통도 있지만 내 삶에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내 삶을 떠나지 않는 고통의 문제가 내 인생을 사로잡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때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고통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3절을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 주님이 고난을 많이 경험하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에브리싱 모든 종류의 고난을 그분이 체율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아는 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구 바깥에서 멀찍이 초월해 계시는 우리의 고통과 무관하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신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에 한가운데 오셔서 우리 삶을 체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고통을 아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분은 고통을 이해하시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거예요. 우리 고통의 한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 고통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고통의 한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격려하실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함께 참아내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마침내 그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소망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 오늘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죄 문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이 문제. 우리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내 인생은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내 신앙의 변화는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번 고난 주간에 이 죄의 덩어리인 이 실존적 이 죄인이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이 존재를 이 무거운 존재를 들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서 일대일로 맞닥뜨려서

[20:32]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면서 당신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군요.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그 은혜를 내가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여러분들을 묶고 있는 저주가 있다면 완전히 풀려지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축복, 창세기 12장에 그 저주가 끝이 나고 창세기 11장에 그 저주와 모든 실패가 끝이 나고 12장에 1절부터 오면서 아브라함을 한 사람을 부르셔서 축복의 통로, 축복의 문을 활짝 여셔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복의 통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된 우리에게 이제 복이 시작이 되고 저주는 끝이 났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삶 속에서 경험하며 하나님의 축복의 대로가 여러분들에게 열려지는 고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여러분들 안에 있는 모든 고통의 문제가 고통 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추첨함으로 그 모든 문제가 깨끗이 회복되고 치유되고 변화되어져서 오히려 고통받는 수 없는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 세상을 회복시키는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십자가를 붙드시고 십자가를 경험하시고 십자가에서 흘러 넘치는 부요함을 여러분들의 삶 속에 날마다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십자가 안에 있는 비밀이 여러분들에게 더 이상 비밀이 되지 않고 낱낱이 드러나고 그 십자가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껏 인주 이해하심으로 여러분들의 삶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기적이 일어나는 다른 게 기적이 아니요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경험하는 게 기적 중에 기적이요 그 십자가를 깊이 여러분들 심장에 터치 받을 때 다음 주일 날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체험하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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