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세상 권세,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3:1~7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세상 권세,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3:1~7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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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바울이 빌립보서에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죠. 동시에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나라 이 세속의 도시에서 나라를 또 섬기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이런 세속 도시의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그 국가의 권세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될 것인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이 위에 있는 권세, 국가의 권세에 복종하라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상당히 친정부적 성격, 여당적 발언 같은 느낌이 들죠.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좀 어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어요.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의 제국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단 말이죠. 이렇게 친 로마적인 발언을 했을까? 네로 황제가 다스리던 1세기의 이 편지를 기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상당히 의아스러워요. 또 로마 제국 하에서 살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법적으로는 굉장히 소외자하고 수수 약자들이잖아요. 그에 비해서 그대한 로마의 그 권력 정부 앞에 복종하라. 또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로마의 법에 의해서 얼마 전에 정치범으로 사양을 당하였던 그런 이후에 이런 메시지에요.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이런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이 권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을 명령하셨을까요? 본문의 내용을 보면 그 권세라고 하는 것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세라 할지라 그 권세가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일절 자세히 보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하지 않음이 없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이 한 구절을 풀어내려고 해도 굉장히 많은 의미가 있지만 이거를 이 시간에 다 얘기할 수가 없지만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 떠요. 오늘 가정에 여러분 남편의 권위도 그게 남편이 잘났어가 아니라 하나님 주신 권이에요. 아내들이요 아멘 하십시오. 직장에서도 어디에 있었든지 어떤 보스들이 있잖아요. 권위를 세운 사장이 있고 회장이 있고 모두가 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2:50]어 그대로 보면 정치적 논리 혹은 민주 사회에서 투표를 통해서 대정적 인기와 여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보이지만 역사에 뒤에서 하나님이 주권을 다시고 작동하셨다는 거죠. 다니엘서 2장 21절에 다니엘은 왕들을 피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모엘 상에서도 한나가 노래를 부를 때 무슨 얘기를 합니까? 모든 사람 높은 자들을 높이시고 폐하게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얘기합니다. 사실 성령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왕조를 왕조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의 왕들 세우시고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일대 왕이 사울을 세우시고 피하신 분이시죠. 또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철저히 개입하시는 걸 보게 되죠. 사무엘 신자자가 기름 붙는 그 사건 왕으로 기름을 붙게 될 때 첫째 아들부터 엘리야부터 계속 뽑 때 아니다. 그 구속진 곳에서 양을 치고 있는 들판에 있는 그 마지막 그 아들 말째 아들 사무엘에게 앞에 앉혀 놓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름을 붓게 하시잖아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왕들을 지도자들을 권세자들을 세우시는 일이 얼마나 깊이 관여하시는 걸 보여준 대목입니다. 자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권세를 가진 사람들 역시도 항상 겸손해야 되죠. 내가 잘라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세 안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권세를 잡았다고 마음대로 교만하게 휘두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거죠. 우리가 북한의 김일성 3대 세섭 정권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하나님이 왜 저런 정권을 저렇게 오랫동안 허락하셨는가? 의문이 가기도 하죠. 하나님이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오래 두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화란의 유명한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프가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국가와 교회가 있다. 국가도 교회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래서 국가와 교회는 각 영역 안에서 주권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유의 주권을 갖고 있고 서로가 가진 고유한 주권을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이 뭘까요? 국가가 가진 기능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부가 가진 힘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공의를 행하고 선악을 징벌하는 일을 국가가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 정부가 못 마땅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있을 수도 있지만 권력이 가진 한계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정부가 가진 기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 보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부의 이 기능 그 통치의 어떤 기능이 이 국가 안에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돌아갈까요? 아마 힘센 사람들이 아마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무법 천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국가의 힘이 작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조폭들이 곳곳에 날뛰고 있잖아요. 그게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국민 모두가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각자가 알아서 지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아마 밤에 잠을 못 잘 거예요. 운전을 하는데 모두가 각자 알아서 표지판도 없고 안내판도 없고 각자가 알아서 그냥 알아 알아서 운전하라고 그러면 이게 여러분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나겠어.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면 도대체 그걸 누가 중재하고 재판할 수 있죠?

[7:33]나는 그래서 이 참 예국과를 부를 때 우리의 감동이 있어요. 나라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힘이 없을 때 국가 적 기능을 온전히 하지 못할 때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치매를 받을 때 우리의 개인의 자유와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아요.

[8:21]바울은 오늘 국가의 군세들에게 복종하라. 그래서 정부의 기능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자체할 것이라고 관경하게 표현하고 국가는 공연이 칼을 가지지 아니었다. 국가가 법칙을 통해서 개인의 행동에 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권세의 국가의 권세 복종해야 하는가? 권론적인 것은 그 권세를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물리 정부가 어떤 신자를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리도록 하는 일이 아닌 그의 복종하고 법을 지켜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 이 당시 국가의 권위를 인정한 대목이죠. 특별히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고 불의한 과정 속에 그 재판을 계속 받는 과정에 보면 불법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무죄하심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형을 언도 받으셨을 때 그 법 집행을 그대로 보다드리셨습니다. 잘못된 정보와 권력에 대해서의 심판은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몫이고 백성들의 관점 속에서는 그 권력 앞에 순복하라는 거죠. 그것이 국가의 기능 자체가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권세에 대한 복종이고 국가의 질서를 잘 따라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바울은 신자는 기본적으로 질서를 잘 지키는 자들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국가의 최고의 역할인 그런 공공 질서를 위해서.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정부 정부에 기본적으로 협조하고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단들 가운데 여호와 정인들이라 이 사람들은 어 국가와 이 정부의 기능을 부정하죠. 그래서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것도 아 검지하고 뭐 문제가 많죠. 군인 징집을 어 거부하고 뭐 수열 검지라든가 많은 것들을 통해서 사실 반사회적인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 정부의 그 기능을 부정하는 거죠. 또 어떤 사람은 정부의 기능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정부의 기능을 국가의 권력의 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그런 관점에서 바울은 기본적으로 권세에 복종하는 태도가 무엇으로 나타나야 되느냐?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된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지키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되고 세상 속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아요. 권세자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문제는 일단 복종하라는 거죠. 오히려 신자가 세상 속에서 모범적 신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오히려 복음 전거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바울은 권세의 복종하는 것을 가장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다루는데 그것이 뭐냐면 오늘 6절과 7절에 세금 문제를 다룹니다. 세금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서 그 시도도 가끔 폭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세금 문제 굉장히 예민하죠, 모두가. 어 세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할렐루야 이런 분은 한 분도 없을 거예요. 이게 또 왔구만, 올 게 왔구만. 세금을 적극적으로 내기보다 소극적인 것이죠. 그런데 오늘 여기 5절에 보면 어 세금을 내는 것을 약 어떤 진노 때문에 어떤 처벌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하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여러분 사실 국가가 국가의 기능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뭐냐면 돈이죠, 국가를 운영해야 되니까. 그 국가를 운영하는 그 모든 돈은 국가가 스스로 사업을 해서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 국민의 세금이에요. 우리들의 세금이에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오늘 우리가 도로 운전하고 있지만 이 도로 모든 다리 모든 것들이 우리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여러분 우리가 이 오늘날 복지를 하고 앞으로 이제 상당히 많은 복지의 문제가 한국의 최대 하던데 도대체 이게 어디에서 나오는 거죠? 시민들의 세금이에요, 우리의 세금이에요. 우리가 직접 구제는 하지 않지만 사실 우리가 내는 세금 자체가 일단 우리의 부의 분배를 이루는 거죠. 많이 번 사람이 많이 세금을 내고 적게 본 사람이 적게 내고 낼 것이 없는 사람은 안 내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부의 분배와 소통이 유통이 일어나는 거죠. 이런 세금이 결국은 국가를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금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죠. 복종하는 권세의 복종하는 가장 당연한 태도에요.

[14:01]어 제가 살던 이 호주는 거의 반사회주의 국가와 같아요. 세금이 엄청나게 많아요. 한 10만 불 정도 그러니까 연봉 1억 정도만 넘어가면 거의 반 정도를 깎아 버려요. 40% 정도를 세금이 내야 돼요. 그게 얼마 안 되는 거예요. 어마어마하게 세금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게 결국은 어디로 오느냐 하면 복지로 와요. 그러니까 호주 같은 데는 어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전혀 부담이 안 돼요. 교육 제도가 너무 잘 돼 있는 거죠, 복지에서. 돈이 안 들어요. 돈이 안 들어요. 대학까지도 돈이 안 들어요. 대학 가서도 시민권자들은 거의 안 들고 나중에 좀 갚으면 되는 거고. 거의 돈의 자녀를 교육시키는데 돈의 구회가 없어요. 심지어 소득이 적은 집안은 아이 숫자에 따라 학비 보조금이 나와요. 용돈까지도 나와요. 아이 많은 지은 일 안 해도 아이 많은 데서 나온 것만 받아도 먹고 살아요. 어류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됐는지 복지가 병원에 가면 기가 막혀요. 그래서 어 제 안에도 한번 이제 그 아이를 낳는 그 일 때문에 이번 한 적이 있는데 보호자가 가면 보호자에 관련된 식사도 나와요. 그리고 베지테리언이면 그런 걸로 뭘 드시겠습니까? 그리고 병원에서 나올 때는 땡전 한 푼 안 주고 나와요. 그리고 모든 것들이 국가에서 돌아가니까 간호사들이나 모든 분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요. 그리고 태원할 때 돈을 한 푼도 안 내고 너무 친절하게 하니까 미안해 가지고 나올 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호주에 사는 그 이민자들의 하는 얘기 중에 하나가 뭐냐면 병원에 이분해 보면 이민을 잘았다는 생각이 던데 보통된 잘 모르는데. 공원 같은 데 가면 옛날에는 옛날에는 제가 처음 갔을 때는 장자들이 잘 차곡차곡했어요. 어느 공원이든지 그 바베큐를 하라고. 요즘은 이제 그게 황경 문제 때문에 가스 이제 시스템으로 돼 있어요. 틀면 가스가 나와요. 어느 공원이든지 고기를 마음껏 구워 먹으라고 공짜로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게 어디에서 나왔느냐 보니까 세금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세금을 낸만큼 백성들 전체가 그것을 누리는 거죠. 그래서 이런 시스템 안에서 세금을 안 되는 사람은 중죄인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강력한 중 물어도 다루어요. 세금의 탈세의 문제 하면 그분이 탁 체킹 리스트에 오르면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면 그분은 그 사이에서 자기를 힘들어요. 크레딧이 완전히 제로가 돼 버려요. 카드도 낼 수가 없어. 그러니까 탈세라고 하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돼 있어요. 왜? 그게 그 국가를 원형에 가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기 때문에. 자 여러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오늘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이 세금의 문제는 굉장히 센티브한 문제. 제가 조금 더 더 깊이 얘기하면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는 내용들도 있어요. 그러나 오늘 이 말씀 앞에 우리가 다시 한번 도전하고 하나님 많이 불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많이 내게 해 주세요. 어떻게 아멘이 없으십니까? 예. 많이 내면 좋잖아요, 여러분. 근데 아무것도 없는데 많이 내면 이중 장부의 문제, 돈을 세탁하는 문제, 여러가지 비자금의 자본에 분식 회계라든가.

[18:33]난 이분식 집에서 회계를 하나 그랬어요, 저는. 돈 세탁은 왜 돈을 왜 세탁해 놓나 그랬는데 이게 이런 일들이 이제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정직한 어 세금. 또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이 어 온화가 크리스천인데 참 진실하다. 정말 정직하다. 경령이 클리어하다. 이럴 때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도전을 주고 복음의 기회가 전거의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권세에 복종한다면 법들을 지켜야 되는데 모든 법이에요. 작은 법도 지켜야 합니다. 교통 법규도 잘 지켜야 합니다. 잘 지켜야 돼요. 안전벨트를 매고 속도를 지키고 뉴턴을 해야 할 때 뉴턴을 하. 노란 불이 켜졌을 때는 서라는 신호지 빨리 지나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오늘 또 오시면서 여러분들 교통을 듣기를 잘 지키셨는지 모르겠어. 어떤 분들은 그래요. 주일날 오다가 스피드를 했다가 카메라에 찍혔어요. 하나님 내가 교회 오는데 이렇게 찍으시기에요.

[19:54]아니에요. 교회 오기 때문에 법을 지키셔야 돼요. 교회 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스피드 카메라를 까막 눈으로 만들지 않으신다는 거. 오히려 다른 날보다 더 철저히 법을 지키는 준법 정신이 필요한 거죠. 여러분 교통 순경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교통 순경이 잡으면 여러분 거기 왜 우리가 복종해야 되죠? 면허증을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고 또 뭐 하라면 해야죠. 또 나이 몇 살이야?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나이와 상관없이 그 교통 순경은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서 있는 거죠. 근데 교통 순경을 차에 매달아 놓고 20m씩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은 그 교통 순경의 문제 아니라고 국가를 국가의 권세를 거스르는 거죠. 오늘 우리 한국의 공권력이 너무 약하잖아요, 그렇죠? 경찰을 두들겨 패는 국가. 거의 대한민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얘기. 폴리스에게 때린다. 폴리스를 때린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일. 국가의 경계선, 국가의 권위를 안고 있는. 국가의 권위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소방 시설을 우리가 기업을 하는 사업장에 소방 시설을 기준에 따라 해야 되죠. 안전 시스템을 기준에 따라 해야 돼요. 근데 이걸 다 하는 대로 하려고 하니까 돈이 많이 드니까 그냥 공무원에게 봉투하면 주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아직도 우리는 돈이 돈이 통한다는 사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이 사고가 우리의 사회 속에 있어. 이게 우리 한국이 OECD 국가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여전히 부패 공화국이라는 이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어. 여러분 돈이 들어도 하라는 대로 해야 되죠. 그런 과거에 요즘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이 공무원이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 더 쓸데없이 더 또 놓으라고 하는 거요. 제가 하는 어느 기업주는 분명히 이 정도면 되는데 돈을 요구하고 더 놓으라고 하니까 그래도 끝까지 놓으라는 데까지 놓았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돈을 줄 것 같은데 계속 놓으니까.

[22:20]여러분 오늘 세우로와 사건 같은 세우로 사건과 같은 것을 우리가 목격하면서 우리의 사회의 부패 부정과 부패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 관피아 무슨 피아 미아. 이걸 적결하겠다고 법을 법안을 지금 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이건 깜깜 무수 있고. 구조적인 교람을 갖고 구조적인 악을 갖고 있어. 이 공무원도 문제지만 돈 받는 공무원도 문제지만 돈을 주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죠. 결국 이런 시스템을 우리가 그대로 둔다면 제2, 제3의 세우로 사건은 계속 예견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는 사회법보다 넘어선 양심의 법. 양심의 법을 넘어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도덕성이 세상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높아야 되죠. 세상의 법이 법 법을 저촉하지는 않는다. 내 양심에 끌기이 있으면 거부해야 되잖아요.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의 양심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우리의 삶에 행함이 있어야 돼요. 오늘 전세 파동이 일어나는 예를 들면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요. 전세금을 계속 올리고 올리다 보니까 세입자들이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되고 이것이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올린다 할지라도 내가 집을 가진 자로서 또 하나의 집에 전세를 준 사람들의 소수 약자라면 그들을 배려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진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모든 사회적 기준과 분위기에 따라서 우리가 함께 편성하기보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공의를 시련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우리의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특별히 국가의 일권을 뽑을 때 인물을 잘 선택해야 되죠. 교회가 직접 나서서 정치 참여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자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국가의 리더십들을 뽑을 때 단순히 개인의 실익이나 자기 중심적 때로는 정치적 이념적 논리에만 휩쓸리지 말고 좀 더 객관성을 가지고 성경적 안목으로 인물을 우리가 뽑아야 되죠.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투표가 있을 때는 국가의 인물을 보 볼 때 투표가 있을 때는 어디 가시더라도 반드시 투표를 하시고 가셔야 돼요. 그리스도인들이 그 투표를 통하여 인물을 뽑는 이런 매우 중요한 우리의 시민으로 해야 될 역할이. 특별히 돈을 뿌리는 후보자들이나 비윤리적인 어떤 사건을 일으켰던 또 그들의 정치적 상황들을 잘 모니터링을 하고 잘못된 법안을 만들어 법제하려고 하는 의원들이 있다면 그들에 대해서도 표로 심판을 해야 하는 거죠.

[25:23]오늘날 동성애법도 굉장히 한국의 이래는 화두입니다. 이것이 뭐 성소수자의 문제, 성적 기호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의 논란의 문제가 있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의 전통적 가정을 깨는 비율칙 성격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 드라마나 또 그런 것들이 공격하게 법제화 되게 될 경우에 얼마 서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어려움들 우리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만은 이런 것들이 법제화 되는 과정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투표로 관열을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요.

[26:10]역사를 보면 악한 정부들이 있었고 잘못된 권력자들이 백성들을 억압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권력을 영원히 두지 않으셨어요. 반드시 부흥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죠.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북한에 일어나는 이 권력의 문제도 3대째 내려가는 이 상황 속에 북한의 백성들이 압제를 받고 인권이 말살 되지만 하나님이 영원히 그대로 두시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어떤 한 때에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길게 봐야 되죠. 뭐 짧으면 12 심정 가지고 우리는 역사라고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역사라고 하면 굉장히 긴 세월 동안에 만들어진 그 히스토리를 계속 돌아보면 짧게 보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길게 보면 얼마나 섬세하게 하나님이 역사 속에 관야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셨는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불과 얼마지 않아요. 그렇죠. 중국을 어떻게 더나둘 수가 있었어요? 러시아를 어떻게 우리가 더나둘 수가 있었어요? 우리는 이 공산주의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온 세계가 젊은이들이 피가 끌었어요. 이 막스주의의 심취한 수 없는 젊은이들이 막 일어나면서 온 세계가 공산화 될 것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어때요?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 중국 마지드 완전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그 다스리심 심판을 믿고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뭘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속에 권세들 앞에 우리가 순복하는 것입니다.

[28:05]국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약한 권력자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 어떤 특별 특이한 상황 속에 까다로운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 보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 속에 긴장 속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선짓을 읽어 보면 선지자들이 그 역사 속에 오류를 범하는 권력자들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날카로운 예 메시지를 통하여 경고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 바울은 오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 본문에서 전혀 다루지 않아요. 오늘은 국가의 기능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부 권세자들이 개인적으로 거부하거나 반역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에 주는 기본적인 태도를 바울은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온건 기록적인 시위와 힘을 통한 집단적 가격한 행동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자세하는 것이. 우리가 가질 잘 살펴보는 이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선한 방법과 과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거죠.

[29:41]국가가 잘못되고 평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인도의 간디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비폭력주의. 그 비폭력주의는 결국 산상 수은의 정신에서 나왔어요. 마틴 루트킹 목사의 그 모든 운동 속에도 비폭력주의 성경의 산상수원이에요.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산상수원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가르침이 무엇이었습니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밤을 치거든 왼밤을 돌려대라.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곧 옷까지 주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상대가 아무리 거칠게 악하게 나와도 우리는 끝까지 선한 모습을 지켜가야 한다는 거죠.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난 뒤에 그가 처음 한 일이 뭐냐? 악한 왕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힘든 거죠.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기름을 부어줬어. 근데 오랜 세월 동안 왕이 되기보다는 그 악한 왕을 섬기는 일을 한 거죠. 그래서 유진 피르슨 같은 목사님은 그가 왕이기보다는 종의 일을 오랫동안 했어요. 한 20년 동안. 그래서 왕의 일과 왕이 되는 일과 종이 되는 일은 구분되지 않고 같은 일이라는. 주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그랬어요. 폭력적인 방법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는 것이요. 신자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신 예 피는 혁명가의 피예요. 그러나 신자가 꿈꾸는 혁명은 무력이나 투쟁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여주셨던 십자가의 방식.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 의해서 억울한 재판 과정을 그대로 받으시고 희생 당하셨어요. 그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은 모습으로 아무 힘도 없는 무기력한 자 같이 끌려가셨어요. 그리고 재판의 모든 과정 속에 그는 진리신 그분이 침묵하시죠. 여러분 언덕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끝으로 보면 세상의 권세자들이에서 모든 것이 주도되는 것 같고 정인은 살아지고 불의가 승리하는 것 같아 보이죠.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은 정의의 편에서 계시면 우리가 짧게 보면 마음이 급해져서 뭔가 우리의 힘으로 해 보려고 막 하다 보 아한 자들 안에 뒤억혀져서 나도 악한 자가 되고 말아요. 그러나 여러분 역사의 물레방화는 하나님이 돌리고 계세요. 우리가 마음이 겹할 때는 이 물레방화가 너무 천천히 도는 거 같아. 답답해 죽을 것 같아.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물레방화는 아주 정확하게 돌리시고 아주 잘게 곱게 빠으셔요. 역사를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악은 심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칼은 결코 심판의 칼은 무디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에 판단에 맞게 하라. 저는 북한도 하나님의 공의에 올려 놓아요. 하나님의 공의. 여러분 대통령이나 국회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닙니다. 역사의 배우에 하나님이 통치하셔요.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그때도 하나님은 역사에 바깥에 계신 게 아니고 하나님은 그 모든 일들이 그 십자가에 죽으시는 처형당하시는 그 순간에마저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그 일이 있었어요.

[33:53]그게 부활로 나타났어요. 하나님의 권한 바뀌어 일어난 일은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잘 못 보고 인간이 움직이는 건 봅니다. 그러나 역사의 무대 커턴 뒤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컨트롤하시는 컨트롤 타워가 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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