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이 기도 두 번째입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누군가를 용서해 주는 부분에 대한 어 기도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 주겠습니다. 그래서 어 하나님 나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이런 청원이 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자기의 결단이 있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는 이 대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 특별히 죄 용서의 문제는 아 우리의 신앙의 아주 핵심 부분에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신자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라고 하는 이 양식의 문제, 일용할 양식에 관한 문제를 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와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가 같은 선상에 있어요. 이어져 있어요. 끊어져 있는 게 아니고 같은 맥락이라는 거. 양식을 구할 때마다 죄를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기도문에서 이 죄 용서는 처음 구원을 얻을 때 회개하는 회개를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회심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처음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에 어 돌이키는 그 회개입니다. 그런 오늘 얘기해서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 달라라고 하는 이 기도는 그냥 그런 회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이후에 신자가 일상 속에서 죄를 짓게 될 때 고백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씻어 주시려고 하실 때 어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발만 씻어 주지 말고 목욕해 달라고 그랬어요. 징그럽게.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미 목욕했다는 목욕 이미 목욕한 자는 이미 목욕했다는 말은 뭐냐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이상 목욕할 필요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 이거예요. 이 발 씻는다는 이게 뭡니까? 일상 속에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용서를 얻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짓죠.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회개의 삶은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영적으로 깊어지지가 않아요. 영적으로 거리를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과 거리가 있는 겁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죄를 지으면 무슨 실수를 해 가지고 뭐 값비싼 걸 깨뜨렸잖아요? 스스로 아버지와 거리를 두죠. 자기의 죄로 인하여서 그래서 그게 들킬까 봐 불안한 겁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4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근데 어떻게 가까이 한다고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성결, 깨끗함이라는 거. 이게 뭡니까? 회개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가까이 가고 싶다고 가해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 날 와서 예배 찬양을 하고 뭐 예배하고 이제 이런 것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해요. 그게 왜 그런가 하면 내 안에 이미 불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뭔가 하면 우리가 우리의 자신이 솔직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이 상한 심령이 뭐냐면 회개하는 마음이에요.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하나님께서는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지만 아무에게나 넘치지 않아요. 우리의 죄와 허물에 대한 정직한 고백을 하나 심령 위에 그 깨끗한 그릇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전성기가 언제인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내 죄에 대해서 민감하여서 아주 작은 문제까지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얻는 이 사제 기쁨을 누릴 때가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고 신앙의 전성기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정직한 고백을 하지 않으면 먼저 하나님과의 교재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어서 이웃과 사랑과의 관계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죄 용서의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일 요소가 될 수도 있고 또 사람과의 관계 문제 를 만들어내는 그런 요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회개의 삶을 일상 속에서 부지런히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인간 관계도 문제가 생겨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내가 죄인임을 잊지 않아야 돼요.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이 기도를 통하여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수없이 죄를 짓고 있잖아요. 행동으로 뭐 뭐 몸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뭐 입으로 코로 뭐 뭐 숨 쉬는 모든 게 죄잖아요, 여러분. 고의로 어떤 때는 뭐 죄인 줄도 모르고 노골적으로 어떤 때는 죄의 습성에 그 아주 악습에 꼬여서 날마다 반복하는 이런 죄들. 중요한 것은 뭐냐? 그런 연약함과 실수를 하는 우리 있지만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정직한 태도를 가지고 드러내고 고백하고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면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충분히 덮고도 남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고백하고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지속적으로 그러므로 죄를 다루는 민감성이 신앙 생활에 굉장히 킵니다. 죄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그런 민감성. 여러분 다윗의 영성의 탁월함을 우리가 꼽는다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윗의 영성의 탁월함 중에 하나는 죄에 대한 그의 태도입니다. 다윗의 스토리에 있어서 가장 영웅적인 장면을 흔히 사람들은 조그마한 꼬마였던 소년이 거인 골리앗을 이 돌멩이로 쓰러뜨렸던 그 장면을 가장 영웅적인 장면으로 꼽아요. 그러나 여러분 그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에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이에요. 이게 어떤 면에서 다윗의 인생에 가장 위대한 장면이에요. 여러분 이때가 언젠가 하면 다윗의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 무릎을 꿇고 어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이때가 언제였나 하면 이스라엘이 태평 성대를 누릴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다윗에게 주어진 힘이 철철 흘러넘칠 때예요. 그의 권세와 그의 이 파워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이스라엘이 태평 천하를 이루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다윗이 뭐 여자를 불러오면 불러오는 거고 사람을 보내어서 그냥 소식을 전하면 전장에 있는 신하도 불러오는 거고 전선에 내보여서 죽이기도 하고 이게 뭡니까? 이 권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왕이 전쟁에 나가야 되는데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대국을 누리고 있는 때거든요. 여러분 이런 힘이 철철 흘러 넘치는 이때에 나단 선지자 한 명 정도는 단칼에 날려 버릴 수 있어요. 여러분 다윗의 칼은 피가 마른 적이 없어요. 어마어마한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할 때 피를 흘린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지적하실 정도로 다윗의 칼은 그냥 서슬이 퍼랬다고요. 근데 한갓 나단 선지자가 와서 자신의 죄를 지적할 때 여러분 얼마든지 태도를 돌변하고 대역제로 몰고 죽이고 사건을 은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드러낸다는 것 아무리 보아도 여러분 쉽지 않은 일이에요.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달려 나갈 때의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지금 필요한 순간이에요. 특별히 자신의 모습이 가장 영웅적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져 있을 그때 자신의 죄를 그 치졸하고 추악한 죄를 인정한다는 거 이건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단 선지자의 설교는 처음 설교에 나단 선지자의 설교는 다윗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아주 악한 그 이야기의 한 주인공이 부상되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이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정오심에 불타오릅니다. 마침내는 그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다윗은 화를 벌컥 내면서 그 악한 인간이 누구이냐고 심판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표현했을 때 다윗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라는 나단은 마침내 비수를 꺼내들고 다윗을 겨냥합니다. 그가 바로 당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 같은 것인데 알고 보면 바로 나의 이야기. 이것은 다윗의 스토리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스토리예요. 우리의 주변에 넘어진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비난하기를 즐기야 하지만 사실은 그 비난을 받는 그 사람과 나는 다르지 않다는 거. 오늘 신문 지상에 오르는 수 없는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 삶의 추락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설교를 듣는 동안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1년 전에 그 끔찍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자가 하는 일은 뭐냐?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고 시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죄가 드러난다는 것은 고통이에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 듣는 회중이 죄를 인식하고 드러난 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 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끊임없이 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들추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추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시인하게 만드는 그리고 죄를 하나님 앞에 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바로 설교의 기능인 것입니다. 또 다윗에게 배우는 것은 죄의 문제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에서 왕의 지위는 얼마든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은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죄도 예외 없이 하나님과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을 알았어. 여러분 이것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창세기 39장에 요셉은 자신이 종으로 있던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총무가 되어 있는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받습니다. 그때 그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죠. 창세기 39장을 보면 요셉은 이런 표현을 씁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 요셉은 보디발 아내와의 하룻밤의 정사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의 큰 죄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우리의 어떤 죄도 그것은 하나님과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는 죄를 지을 수가 없어. 죄를 짓는다는 그 사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의 외적인 훌륭한 모습이나 사회적 지위 혹은 성공의 유무에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하나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뿐만 아니라 그 죄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깊이 다루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죄로 인한 비극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든 비극과 불행의 원인 제공은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그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죄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죄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안다면 우리는 쉽게 죄를 지을 수가 없어. 여러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맹렬함, 맹렬한 심판과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에요. 그 십자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까지 매달실 정도로 죄를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죄에 대한 맹렬한 심판을 부으시고야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죄를 하나님이 얼마나 무섭게 다루시는가를 보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죄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고 얼마나 우리를 비극적으로 몰고 가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와 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가장 안타까운 일은 죄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힘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영적 기운이 사라져 버려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적 기운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신자로서의 기쁨이 사라져 버려요.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정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감과 의욕을 잃어 버리게 만들고 자존감을 빼앗아 가 버리고 맙니다. 마침내 비참한 마음에 빠져들게 하고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고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당연히 하나님의 임재는 느낄 수 없고 점점 어둠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6:14]여러분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죄를 지은 이후에 찾아오는 영적 어둠의 상태가 아주 위험해요. 그 상태는 또 다른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죄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연결될 때 내 삶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 자신의 상태를 고백합니다. 12절에 보니까 주의 구원의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밧세바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인생 가운데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어.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환이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구원의 황홀함 하나님 안에서 누렸던 그가 죄를 지은 이후에 사라져 버렸어. 주의 성신이 떠나버리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어두운 영혼의 밤을 지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시켜 달라고 그는 답답한 심정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를 그대로 묻어 둔 상태의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17:31]신앙은 물론이고 삶이 무거워집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식물 인간과 똑같아요. 아무런 아무것도 영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아요. 영적으로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이름은 가졌으나 신자답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요. 그다음 맹해지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불러도 예배를 드려도 무엇을 해도 기도를 해도 내 영혼을 뭔가를 꽉 막고 있는 기쁨이 회복이 되잖아.
[18:07]여러분 신앙의 묘미는 뭐냐면 우리의 죄가 우리는 끊임없이 넘어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내 죄가 용서함을 받을 때 찾아오는 기쁨을 맛보는 거예요. 그때 영적인 활 영적인 활력을 얻고 구원의 즐거움이 살아나고 신앙의 탄력이 붙기 시작하고 영적 기운이 용서 솟음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죄를 지었을지라도 눈물의 회개를 하면 시온의 대로가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의 수로가 열려서 내 심령에 본물처럼 터져 나올 때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이것은 마치 큰 빚을 청산했을 때 기쁨과 똑같은 거예요.
[18:57]빚을 안 져본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19:07]여러분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빼놓지 않아야 합니다. 죄 용서가 없는 치유와 회복은 없습니다. 죄에 대한 참된 고백이 없는 변화된 삶은 불가능합니다. 내 죄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는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어지고 영의 세계가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낫게 하실 때 병을 치유하기 이전에 소자야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병자를 낫게 할 때 병이 나 나라고 선포하기 전에 예수님 먼저 무슨 응답을 하지 않았냐면 내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런 표현을 많이 하셨어. 여러분 이것은 뭐냐면 병이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뭐냐면 죄 사함을 받는 일이라는 거. 어쩌면 몸이 낳는 낫지 않는다 할지라도 죄 사함을 받는다면 이미 그는 구원을 얻은 거예요. 몸이 나았다 할지라도 죄의 사함을 얻지 못한다면 그 몸 나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 그냥 죄악의 육체의 덜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는 거예요. 너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죄를 사함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내 삶의 어떤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해결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때 우리 안에 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우리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모든 그 요인의 한가운데는 죄의 문제가 있고 그 죄를 무시하고 우리의 삶에 회복은 불가능한 거. 예수님은 병자에게 내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이 말의 표현 속에는 병의 문제는 사실 죄의 문제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고통하는 원인의 근본적인 원인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였다는 거. 저는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이 죄의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지은 죄들에 대해서 조금도 은폐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주의 보좌 앞에 우리의 죄를 토설하고 고백할 때 여러분들의 영혼에 새로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복음이 무엇입니까? 어떤 죄라도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는 이 굿 뉴스. 세상은 죄를 고백하면 죄인이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고백하면 의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세상은 숨겨야 산다고 하지만 우리는 드러내야 사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솔직하게 눈물로 정직하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주님 앞에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될 때 우리 날마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또 죄를 짓지만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드린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죄에 짓눌리지 않고 죄의 권세를 꺾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능력 있게 사는 은혜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상 속에 죄 용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밥을 먹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죄의 용서가 필요한 자들이요. 그 죄 용서가 해결되어야 우리의 삶에 새로운 회복의 역사 영성이 되살아나고 신앙은 활력을 찾게 되고 삶의 의욕이 생길 것이고 잃어버렸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살아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의 영적인 기운이 다시 되살아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이 회개의 영성 이것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을 안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 안에 우리의 민족의 교회 안에 이 회개의 영성이 살아난다면 우리 한국 민족 교회가 다시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1907년에 일어났던 평양의 대부흥의 운동은 회개 운동이었어. 회개 없는 부흥은 없습니다. 회개 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회개 없는 변화는 없습니다. 회개 없이 예배는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 끊임없이 나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고 어떤 죄도 심각하게 다루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혈의 은총으로 덮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 우리 삶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이 시온의 대로를 통하여 흘러넘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