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자, 오늘 이 본문의 내용 다 읽는 않았지만 유명한 요한복음 4장에 이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얘기입니다.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기로 온 한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 주시는 사건이죠. 어 사실 유대인 남자와 어 이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 만나지 않죠. 상종하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는 의도적으로 이 야곱의 우물가를 찾으시고 한 여인을 만나 주신 것 같아요.
[0:48]대화의 소재가 이 대화가 끝나갈 지점에는 여인이 주님에게 물을 구하게 됩니다. 그런 스토리죠.
[1:09]대화의 소재가 물인데요. 사실 핵심적인 주제는 물이 아니고 갈증 목마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여인이 남편을 다섯 바꾸었고 지금은 지금도 다른 남자가 살고 있습니다. 남편을 다섯 바꾸었다는 얘기에서 우리는 모를 넣길 수 있습니까? 목마름을 넣길 수 있죠. 가정. 해결될 수 없는 가정. 남자를 계속 바꿔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추구하는 것이 결단고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인간의 만족을 추구한 것은 굉장히 일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세상에 모든 게 그런 거 같아요. 기대하고 동경하고 그럴 때는 좋죠. 근데 그 갈망하던 게 손을 손에 지고 나면 갑자기 허무해지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 허전해지고 만족할 줄 알았는데 그것을 지고 난 순간에 만족이 오지 않고 또 갈증이 나는. 목이 마른 것이. 이 사마리아 여인이 경험했던 남편들이 다양한 형태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돈일 수도 있고 첫 번째 남편이 돈 많은 남편을 얘기할 수 있죠. 명예든 명예든 권력이든 또 세상의 어떤 사람들이 불어하는 그런 것들을 경험해 봤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목마한 여인을 만나 주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요한복음을 출발하는 3장에서 니고대에 대한 얘기에서 그 한 지성인이 가지고 있는 갈증 그래서 밤 중에라도 사회적 신문을 불구하고도 예수님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한 남성에 대한 얘기였다면 사장은 모명의 한 어떤 면에서 사회적으로 별로 지급을 받지 못했던 한 여인의 갈증을 다루고 있습니다.
[3:22]이 메시지를 통해서 사실은 사마의 여인을 선택하시면서 이 여인의 를 통해서 오늘 목마음으로 고통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에 대한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주제는 목마음이에요. 목마음이라 다르게 표현 오늘의 은으로 표현하면 사실 결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수출 애굽 이 에덴 동산에 벗어난 모든 인간에게는 결핍이 찾아왔죠.
[4:05]오늘 우리가 풍요를 이 시대도 여전히 결핍을 우리가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때보다도 우리는 더 많은 결핍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소유하지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이 결핍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핍의 원인은 무엇이냐면 소유 중심이에요. 소유 중심. 여러분 이 소유는 우리를 만족하게 해 주시를 못합니다. 소유하면 할수록 어떻습니까?
[19:50]더 . . . 그냥 왔다 갔기 때문에 거절한 거예요. 채움이 없는 거죠. 또 목마른 것입니다. 여전히 예배를 드렸지만 내 영의 만족이 있지 않기 때문에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순간 허전해요.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른 남편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내 허전한 가슴에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어떤 방식은 세상에 어떤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소유 중심의 삶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예배는 너무나 중요해요. 기계적인 예배를 드렸으면 안 되면 우리가 익숙하게 되면요. 참 위험한 게 뭔가 하면 이런 하나의 그런 메뉴지 이 관습적인 그런 신앙생활 타성의 전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러분 예배는 우리의 우리의 신앙의 예배는 우리 신앙의 중심에요. 모든 신앙의 타락은 예배에서 옵니다. 또 예배의 타락이 하루 아침에 오는 것도 아니에요. 타락을 가져주는 예배라면 어떤 것입니까? 종교적인 거치로의 예배예요. 형식은 했는데 내용이 없는 거. 이방의 신전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은 요란하지만 생명이 없잖아요. 그거와 똑같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시 그들이 예배하는 것 가운데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예배 제단이 허물어지고 그게 이방의 신상이 되신 자리를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의 예배가 어떻게 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알고 계셨어요. 예신 당시에 성전에 들어지는 예배가 예배답게 들어지지 않았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기쁨과 그 은혜를 그들이 더 이상 막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여러분 영으로 들어지는 예배는 성령의 두심이 필요합니다. 영으로 들어질 때 생명할 수 없는 독특한 감동이 우리 안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들어질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고백이 뭐냐면 하나님 이보다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