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이 지도는 18세기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장 당빌이 만든 동아시아 지도입니다. 여기 빨간 부분에 적힌 게 바로 한국을 가리키는 이름인데요. 한국은 언제부터 코리아라고 불렸을까요?
[0:39]안녕하세요. 지난 시간 한국사의 흐름을 이어서 이번 시간 첫 번째 내용으로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말기에는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왕의 힘이 약했던 반면 지방에서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강한 세력 즉 호족의 힘이 커졌습니다. 이 호족 중에서 특히 힘이 강했던 견원은 후백제를 또 궁에는 후 고구려를 세웠는데요. 그리고 이로써 나라가 다시 세계로 나눠졌는데 이를 후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한편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은 다른 신하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나라이름을 고려로 바꿨습니다. 이건 고구려를 이어받는다는 의미를 띠는데요. 이후 고려는 후백제와 치열한 전쟁을 버렸고 결국 935년에 신라의 항복을 받은 뒤 이듬해인 936년에 후백제를 멸망시켜서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다음은 고려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고려 태조 왕건은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세금의 비율을 10%로 정해놓고 그 이상 거두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불교를 권장하여 그동안 전쟁으로 지쳐 있던 백성의 마음을 모으고자 했습니다. 또한 원래 문신 중심의 귀족 사회였던 고려는 무신들의 반란 이후 한동안 지배층이 무신으로 바뀌었는데요. 무신들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땅과 노비를 더 많이 차지했고 백성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봉기 즉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려는 한반도 북쪽에 있는 나라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리고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받아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가면서까지 약 40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습니다. 고려 말기에는 중국의 도적대인 홍건적과 일본 해적인 왜구가 고려를 침략했는데요. 이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이성계 등 새로운 군인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이성계는 당시 혼란스럽던 사회를 바꾸기를 원했던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플러스 팁 어떤 팁인지 살펴보죠. 왕건 청동상이 가진 비밀을 알아볼까요? 1992년 북한의 개성에 있는 왕건의 묘 근처에서 청동상이 발견됐습니다. 이를 역사학자들이 조사해 봤더니 황제들이 사용한 관을 쓰고 앉아있는 이 청동상은 고려를 세운 왕건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고려실의 사람들은 나라를 세운 왕건을 신처럼 모셨죠. 그래서 이 청동으로 동상을 만들어서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왕건의 청동상은 왜 벌거벗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원래는 청동상에 얇게 금을 입히고 그 위에 비단 옷을 입혀 놨습니다. 하지만 고려가 멸망하고 나서 조선 시대가 되자 왕건의 동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교 예절에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을 해서 청동상을 땅 속에 묻어뒀는데요. 이후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 벗겨지고 옷도 썩어버린 겁니다.
[4:16]자 그럼 고려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는 옛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다양한 문화를 통합하면서도 세계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의 문화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띤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고려의 벽란도는 중국인 일본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상인까지 와서 물건을 사고 파는 등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널리 알려졌는데요. 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고려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후에 한반도에 다른 나라가 세워져도 외국에서는 고려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정도였습니다. 이번엔 고려의 사회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의 귀족 문화는 화려함과 섬세함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상감청자라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도자기를 만들었고 정확하고 치밀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를 만들어서 문화를 보급하기도 했는데요. 고려 시대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 도교, 무속 신앙 등 여러 종교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불교는 귀족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로 고려의 건축과 예술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절이나 불상과 같은 불교 유적도 많이 남겼습니다. 또한 나라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을 비는 팔관회 연등회 등과 같은 불교 행사도 많이 열렸는데요. 이 기간에는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한마음 한뜻이 됐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은 상인이나 관리들이 고려를 방문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남편 한 명과 부인 한 명이 결합하는 일부일처가 일반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가족 내에서 남녀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권리를 누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보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알아두면 좋은 플러스 팁 어떤 팁인지 살펴볼까요? 현재 존재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로 찍은 책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직지심체요절입니다. 1955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박병선은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박병선은 도서관 서고에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는데요. 연구를 계속한 그녀는 이 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이후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 전시회에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서적과 함께 직지심체요절을 처음으로 소개했는데요. 그 결과 현재 존재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이건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 활자로 찍은 책보다 78년이나 앞선 겁니다.
[7:32]그럼 지금부터 조선의 건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나라의 모습과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오늘의 서울인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또한 경복궁과 종묘를 비롯해 숭례문, 동대문 등 4대문과 성곽도 세웠습니다. 조선은 유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이에 따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친밀한 관계, 왕과 신하 사이의 의리, 남편과 아내 사이에 서로 다른 역할을 존중하는 구별,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어른을 먼저 대우하는 순서 그리고 친구 사이의 믿음 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한국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의 발전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성계의 아들 태종은 왕의 권력을 크게 강화시켜서 조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는데요. 또한 16살 이상의 남자는 모두 호패라는 신분증을 차고 다니도록 하는 법을 실시해서 백성의 출생, 이동 등과 같은 생활을 정확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리고 태종의 아들 세종은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데요. 그 이유는 이 시기에 문화와 과학 기술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우수한 학자와 관리들과 함께 역사, 지리, 예절 등과 관련한 많은 책을 펴냈습니다. 또한 농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등을 만들었고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백성이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즉 오늘의 한글인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성종 때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했습니다. 이 경국대전에는 왕과 관리가 해야 할 일, 세금, 물건 거래, 예절, 군사 형벌 등 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요. 이 법은 조선이 왕의 말이 아닌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법치국가임을 보여줍니다. 알아두면 좋은 플러스 팁 어떤 팁인지 살펴볼까요? 이번에는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을 통해 백성의 삶을 알아보죠. 경국대전은 오랫동안 조선 통치의 기본이 됐습니다. 그 중에서 백성의 일상 생활과 관련됐던 일부 내용을 살펴볼까요? 땅과 집을 사면 100일 안에 국가 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부모가 많이 아프거나 부모의 나이가 70세 이상이면 그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노비인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출산 휴가 기간은 90일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남편도 출산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이렇게 경국대전의 내용 일부만 봐도 경국대전이 백성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0:45]한국사 흐름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내용은 여러 차례 일어난 다양한 전쟁들이죠. 그럼 계속해서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극복한 조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사건을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이순신 등 조선의 수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백성들은 의병을 만들어 일본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일본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는데요. 1636년에는 중국의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전쟁이 끝납니다. 이렇게 두 차례 큰 전쟁으로 농토는 망가졌고 백성들의 삶도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이었던 영조와 정조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요. 이는 세금을 줄여줘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켰고 농업뿐 아니라 상업과 공업 등 백성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로부터 조선에 필요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과 함께 학문 발전에도 기여했는데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의 하나로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 수원 화성이 건축된 것도 정조 때입니다. 다음으로 조선 후기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조선의 신분은 크게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양반은 지배층으로 과거 합격을 위해 글공부에 힘썼고 중인은 통역관이나 의사 등과 같은 기술을 관리했습니다. 상민은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을 가리키고 천민은 노비나 백정 등으로 천하고 낮은 일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신문제가 흔들리면서 양반이 많아지고 상민과 천민의 수가 줄어들었는데요. 이러한 사회 변화는 신분을 없애고 점차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양반 문화 중심이었던 조선 전기와 달리 조선 후기에는 한글 소설 또 판소리, 탈놀이, 민화 등 서민 문화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이 판소리는 소리꾼이 북장단에 맞춰서 들려주는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고 탈놀이는 머리에 탈을 쓰고 노는 놀이를 말합니다. 그리고 민화는 백성의 생활 모습을 주로 일반 사람들이 그린 평범한 그림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플러스 팁 어떤 팁인지 살펴볼까요? 수원 화성의 공사 기간이 대폭 줄어든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정조가 세운 수원 화성은 원래 예상 공사 기간이 1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공사 시간은 3년도 안 걸렸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원래 조선은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고 백성에게 일을 시켰는데 화성을 세울 때는 일꾼을 모집해서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또한 날이 무더울 때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몸을 보호하는 약을 줬고 치료를 받느라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도 임금을 줬죠. 또한 일의 성과에 따라 임금 이외에 따로 주는 돈을 지급했고 가끔 잔치를 열어서 격려도 해줬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이 더욱 열심히 화성 건축에 참여를 했던 거죠.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한 거중기를 사용했는데 이 같은 과학 기술도 공사 기간 단축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15:15]고려 시대에는 개방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면서 거란, 여진, 몽골 등 한반도 북쪽의 외국인이 고려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고려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고려의 주민 구성과 문화가 다양해졌는데요. 특히 고려 후기에는 몽골과 교류하면서 지배층 사이에서 옷의 아랫도리 부분에 주름을 잡아 활동하기 편하게 만든 철릭과 같은 몽골식 옷이 유행했습니다. 또한 몽골인이 즐겨 먹던 만두, 순대, 설렁탕, 소주와 같은 증류 방식 즉 액체에 열을 가해서 증기로 만든 다음 차갑게 해서 다시 액체로 만드는 방식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이 이 몽골을 통해 전파돼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벼슬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벼슬아치나 장사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장사치처럼 말끝에 직업을 나타내는 치도 몽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여러분은 고향 나라의 풍속이나 옷, 음식 등에서 다른 나라에 의해 전래된 것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16:32]판소리는 소리꾼이 북치는 사람인 고수의 장단에 맞춰서 창과 말 그리고 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엮어가는 음악입니다. 또한 판소리에 판이란 씨름판, 장사판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가리키는데요. 이처럼 판소리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열리는 노래 공연을 뜻합니다. 그리고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꾼의 창과 말의 장단을 맞추는 고수의 추임새에 따라 청중들도 얼씨고 좋지 등을 하며 흥을 더합니다. 여러분은 고향 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공연은 뭐가 있으신가요? 한국의 판소리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또 어떤 점이 다른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Thumbnail for [SUB]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한국사회이해(기본) 28. 고려 시대/조선의 건국과 발전 by 이민통합과KIIP](/_next/image?url=https%3A%2F%2Fimg.youtube.com%2Fvi%2F6SFDiJsQF8w%2Fhqdefault.jpg&w=3840&q=75)


![Thumbnail for [Truyện Đời] - Series Đứa Con Tội Lỗi I Tập 3 : Bóng Ma Cờ Bạc #0hradio #tamsu #podcast by 0h Radio](/_next/image?url=https%3A%2F%2Fimg.youtube.com%2Fvi%2FGImhbe2i6tM%2Fhqdefault.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