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종교적인 주술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거죠. 왜 기도를 해야 되는가?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가? 현대인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중에 하나는 정체성의 혼란입니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어떤 면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때 오늘 우리의 사람들이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가 또 직함이 자기의 정체성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죠. 내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와 또 때로는 직업과 직장에서의 어떤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게 항구적이고 내 생에 끝까지 갈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직장에서의 내 위치가 내 삶의 정체성인 줄 알았던 사람이 직장에서 퇴출을 당하면 아니면 그 지위에서 물러나게 되면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가 일어나는 것이죠. 후 엠 아이 내가 누구냐 라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되면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기도할 때 처음에 아버지여라고 하는 이 부르는 순간 기도의 첫 번째 우리 주님이 우리 아버지여라고 이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순간에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정체성.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특별히 제가 앞부분에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여기서 아버지라는 것은 아빠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 아버지를 향하여 아빠라고 부를 때 그 아빠를 부를 때 그 아이의 정체성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존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인생과 신앙은 수동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참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사실 여러분 의사가 수술을 하지만 나을 건가 안 나을 건가 모르는 일이에요. 수술은 의사가 하는 거지만 수술을 한 그 이후에 모든 것은 의사의 손을 떠난 거예요, 사실. 어떤 사람은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 도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낫기도 하고.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그것을 나게 하고 자라게 할 수 있는 것 사실 농부의 손을 떠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의 손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다 보면 결국은 우리 언어가 바뀌게 되는데 그 언어가 뭐냐면 모든 이야기의 주어가 내가 아니고 하나님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주어가 나였어요. 내가 나는 그러나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는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어요. 다윗이 시편 23편에 처음 언어가 나의 목자는 여호와시니 그러지 않았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첫 단어가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 비가 오는 게 아니죠?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는 거예요. 아이를 내가 낳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많은 영역은 내 손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그러므로 기도한다는 것은 인생은 수동태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내 노력한 대로 다 된다면 기도할 필요 없습니다. 젊고 힘이 있을 때는 큰 소리를 치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배우는 레슨은 우리는 절대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과정에서 애굽의 군대가 추적해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혼란에 빠지고 모세를 향하여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의외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게 줄을 꺼야 되는 대목이 어디입니까? 가만히 서서. 14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그 다음에 뭡니까? 가만히 있을지어다. 여러분 모세의 주문이 의외이지 않습니까? 지금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의 그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있는 이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거예요. 죽고 사느냐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가만히 있으라. 이 제정신입니까? 결코 좋은 제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만히 백성들을 향하여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는 이 부분에 있어서 모세는 싸움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 말은 이스라엘은 지금 군인으로 있는 게 아니고 군인이라면 싸워야 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모세가 싸우지 말고 너희 너희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이 전쟁의 싸움의 실체는 애굽과 하나님과의 싸움입니다. 군인이 이스라엘이면 싸워야 돼요. 근데 오늘 모세의 말은 뭡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구경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0절에서도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여러분 철저히 수동태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그냥 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배우려고 하면 수동 수동태의 삶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후회할 만한 그런 삶을 돌아보면 후회했던 영역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했을 때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께 맡겼다면 너무도 멋지게 되었을 때 내 내가 괜히 그러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경외심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아버지 역할을 좀 생각하면서 우리가 거기에 반응할 때 기도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공급을 책임지십니다. 아버지의 가장 우선적인 역할이 뭘까요?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에 보니까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비유를 합니다. 이 비유는 사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비유이지만 이 비유 속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동일한 것은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목자가 없이는 양의 생명은 불가능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메마른 땅에서 목초지를 찾아내는 목자가 없이는 양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철저히 의존된 존재라는 의미에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과 같이 신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자녀들과의 관계도 동일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공급원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겁니다. 모든 필요는 아버지로부터 채워진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필요가 생겼을 때 우리 안에 소원이 일어납니다. 그때 기도가 시작이 되죠.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공급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는 완전한 공급자가 되신다는 겁니다. 시편 23편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주 완벽한 공급자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특정함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우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은 충분하지만 어떤 것은 부족할 때가 많아요.
[9:54]모든 것이 완벽하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오늘 시편의 시인의 고백은 뭡니까?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면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할 때 이 부족함이 없다라는 말은 완벽한 이것은 어떤 것이 채워짐으로 인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상태 자체가 어떤 것을이 더 필요하지 않는 그런 부요함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는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신자가 세상을 살아갈 때 두 가지 명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위험에 우리의 삶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위기와 어려움들과 문제들이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말 위험한 세상 가운데 연약한 채로 살아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편 17편 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주의 날개 아래 그늘 아래 감춰진다는. 시편 121편 4절 6절에 보니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내 오른쪽에서 내 그늘이 되시나니 낮에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씀의 표현이 뭡니까? 하나님은 밤낮으로 하는 주된 메인 잡이 있는데 그게 뭐냐? 우리를 지키시는 일이라는 거예요. 한 순간도 졸지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수없는 위험 속에 있습니다. 날마다 사건 사고가 끝도 없습니다. 예기치 않는 시련들이 밀려옵니다. 우리의 영혼은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생각보다 허약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악의 비난을 악플을 받아도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밤잠을 설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를 노리는 사단은 우리의 실패 우리가 실패의 삶을 살도록 싸움을 걸어옵니다. 파멸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덤벼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적인 분위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16절에 주님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라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영혼을 멸망하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때 발악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로 29절에 보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7장 12절에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영혼을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드시 보전하고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뭔가?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의 시인의 고백이 뭡니까?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하세요. 피하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이 뭐냐? 기도가 뭐냐? 피하는 거예요. 누구에게? 여호와께. 주의 그늘 아래 들어가는 일이 뭐냐? 기도해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 피하지 않으면요, 상처 투성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위험한 순간이 오고 인생의 위기가 오면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팔에 나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버지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누구 나 살아오는 동안 길을 잃은 적이 있을 거예요. 요즘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지만 그래도 길을 잃어요. 저는 지난번에 한번 내비게이션을 믿고 어디 갔다가 더 걸렸어. 한 시간에 갈 거리를 다시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 와서 톡톡하게 신 고식을 했어요. 여러분 인생의 길은 늘 초행길입니다. 우리는 30대의 삶을 살았던 분들은 40대는 초행이에요. 살아 봤던 삶을 살아갔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길을 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미로가 많아요. 우리의 경험이나 판단력을 믿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잘 아는 가이드를 만나서 그의 인도를 받으면 너무도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뭔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완벽한 지도를 가지고 계세요. 내 인생을 디자인하신 분이에요. 내 인생의 로드맵을 갖고 계시는 분이에요. 내 인생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러므로 기도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 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보니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 양은 목자가 이끄는 길을 가야 살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로마서 8장 1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세요. 인도하기를 원하시는데 강압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시고 아주 섬세하게 우리의 삶을 디테일하게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인도를 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러분? 아버지 인도를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내비게이션이에요. 기가 막힌 내비게이션이에요. 여러분 일반 내비게이션들은 업데이트를 해 줘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진리예요.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요. 아무리 역사가 흘러가도 완벽한 내비게이션이 돼요. 할렐루야. 여러분 그러므로 기도를 하면 기도 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겁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가이던스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기도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면 나는 막 말하고 하나님은 한 말씀도 못 하시고 들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막 열변을 토하는데 막 강력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꾸로 앉아서 말씀을 들어야 되는 분 같으세요. 여러분 반대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되고 우리는 들어야 돼요. 오늘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말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는 굉장히 익숙해 있어요. 특별히 통성기도. 이거는 정말 한국이 이 메이드 인 코리아예요, 이게 이 통성기도. 우리 또 주여 삼창. 주여! 주여! 우리 교회 얼마나 뜨겁게 합니까? 너무너무 좋아요. 이건 수출해야 될 거예요. 너무 좋은 거예요. 외국인들은 이거 뭐 이런 통성기도를 몰라요. 조용히 기도해요. 그래서 미국에 풀러 신학원에서는 한국에 이 기도 삼창이 너무 뜨겁고 해서 자기들도 해보려고 로드 로드 영어로 로드. 그런데 안 살아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말로 해 보자 그래요. 주여! 그래서 지금 주여 주여 미국 사람이 한다는 거 아니에요. 이거 배워야 됩니다. 외국 교회는 이걸 배워야 돼요. 뜨겁게 막 간절하게 부르짖는 이 기도는 잘해요. 근데 우리가 외국 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될 부흥 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될 기도가 뭐냐면 듣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왜 여러분 하나님 왜 기도를 교회 안에서도 열심히 하는데 오랫동안 기도 생활을 너무 많이 하는 분인데 왠지 안 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교회 말고. 안 변해요. 기도를 그렇게 오래 기도 생활을 했는데 왜 사람이 안 변해? 왜 독해져? 제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냥 평생을 새벽기도로 다니신 할머니, 새벽기도 마치고 가면서 남의 밭에 들어가서 콩잎도 따고 고추도 따고 뭐 따고. 그게 기도한 것과 삶이 전 다하는 거예요. 기도는 기도고 콩잎은 콩잎인 거예요. 왜 여러분 기도가 비인격적인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빠진 일방적 요구에 익숙한 기도는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께 잘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물어야죠. 묻는 사람이 답을 얻습니다. 안 물었는데 어떻게 답을 얻어요? 지혜자란 누구냐? 묻는 사람입니다. 내가 늘 하던 일이지만 하나님께 묻는 거예요. 이 일에 아주 익숙하지만 하나님께 묻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늘 해 왔던 일이지만 또 다시 오늘 새로운 일을 맞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해도 됩니까? 여러분 일어난 자는 질문이 없어요. 실패했다면 묻지 않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완벽하게 퍼펙트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이세요. 너무 멋진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심지어 우리 주님마저도 하나님 아버지께 끊임없이 기도하는데 가만히 보면 우리 주님이 아버지께 묻는 기도해요. 특별히 12 제자를 선별하는 그 과정에 전날은 밤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어요. 주님이 그냥 뽑으셔도 되는데 그 12명을 선정하는 마지막 작업에서는 끊임없이 묻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길을 걸어갈 때 낯선 길을 걸어가도 걱정할 것 없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내비게이션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묻는 일에 익숙하시기를 바랍니다. 묻지 않는 것은 자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내 생각을 관찰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묻고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도를 한 걸음 한 걸음 받아 가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최상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버지의 인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좀 더 기다리는 게 좋아요. 오늘 이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 가운데도 뭔가를 결정하려고 하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직전에 있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반드시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작업이 선행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 보세요.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때로는 설교를 통하여 때로는 사랑방 모임을 통하여 때로는 독서를 통하여 어떤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아버지를 구 아버지를 인도 인도를 구하기만 하면요. 한 번이 아니고요. 두 번 세 번 어떤 때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인도를 받고 시작하는 일이 가장 빠른 길인 줄로 믿습니다. 내 생각으로 성급하게 서두르다가 괜히 뺑뺑 도는 인생을 살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여러분들의 삶을 걷는 기도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수동태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필요한 의존적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은 것이고 결정적인 일은 아버지가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분을 전적으로 의존함으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완벽한 공급하심 그리고 보호하심, 인도하심을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