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자, 지난 시간에는 해당장 야이로의 이야기 21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혈류적 여인으로 이야기가 끊겨버렸죠, 중간에. 야이로가 예수님에게 자기의 딸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러 왔고 예수님이 가는 그 집에 가는 과정에 혈류적 여인의 치유 사건이 일어나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딜레이 지체되었습니다.
[0:26]어 야이로는 굉장히 마음이 급했을 텐데 예수님은 방가 이 혈류적 여인에게 이 집중을 하시고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상당히 긴장도가 높아져 가고 팽팽한 긴장감이 이야기 속에 사실 있습니다. 예수님과 여인과의 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야이로의 집에서 누가 와서 소식을 전합니다. 35절이죠.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해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해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딸이 죽었다는 거예요. 이 분위기가 급 반전되는 겁니다.
[1:13]두 사건이 교차되는데요. 하나는 혈류적 여인이 살아났습니다. 내 야이 야이로의 딸은 죽었어요. 한 사람에게는 기쁨이 한 사람에게는 절망이 희비 곡선이라고 그러죠? 교차되고 있는 장면이에요. 혈류적 여인은 12년 동안 혈류증을 앓아왔다. 병을 앓았다. 이 아이로의 딸은 12살이에요. 10이라는 숫자. 의미가 있죠. 12지파, 12 제자.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해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이 더 이상 예수님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상황 끝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들죠. 혈류적 여인만 끼어들지 않았다면 또 예수님이 시간을 그렇게 끌지 않았다면 딸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자, 우리 삶에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을 때 내가 예측한 대로 모든 게 돌아가지 않을 때 그때 우리가 기도하죠. 하나님, 다급해서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 보면 굉장히 다급할 때 기도합니다. 다급하지 않을 때는 기도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졸고 있을 때가 많아요. 자, 야이로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행보로 매우 느렸습니다. 혈류적 여인으로 인해 계속 지체가 되는 것으로 야이로가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겠습니까? 자기 딸이 지금 죽어 가고 있는데 이 중환자를 태워는 앰블런스가 막 가다가 막히면 가족들 같은 경우는 가슴이 타죠. 자, 그런데 이미 너무 늦었고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 야이로에게 최대의 위기가 왔죠.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상황입니다. 야이로가 처음 예수를 찾았을 때만 해도 소망을 가졌어요.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근데 이 믿음이 지금 기로에 선 거예요. 죽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주변에서 뭐라고 그러는 그만 두라는 거예요. 돌아가자. 아마 이때 야이로가 굉장히 많이 흔들렸을 거예요. 바로 그때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36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38]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은 참 놀라운 말씀이죠, 사실은.
[3:59]두려움과 믿음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두려워할 것인가 믿을 것인가. 공존할 수는 없어요. 두려움의 세계와 믿음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만약에 두려 믿음의 대상을, 믿음을 분명히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두려움은 떠나갈 것이고 두려움에 집중하면 거기는 믿음이 존재할 수가 없어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혈류적 여인으로 인해서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예수님과 함께 오는 과정 가운데 이 혈류적 여인이 옷을 예수님의 옷을 대고 나았던 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은 야이로입니다. 야이로는 기적의 현장을 본 것이죠. 어쩌면 예수님은 이 야이로에게 이 기적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너의 상황이 네가 기대하는 것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간다 할지라도 이 기적을 일으키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거죠. 믿음은 일어난 상황보다 그리스도를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흥미로운데요. 야이로의 이야기 안에 혈류적 여인의 이야기를 삽입해 놓았다고 그랬어요. 샌드위치라고 그랬습니다. 혈류적 여인 사건으로 본래 이야기가 시작된 그 그 이야기가 이제 야이로의 딸의 사정이 그 혈류증 여인의 사건으로 인하여 굉장히 악화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 순서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를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죠.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더 악화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야이로에게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야기하기 힘든 진행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하고 똑같아요. 영화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최악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특히 007 영화가 그렇습니다. 주인공이 거의 죽을 것 같아요. 그러면 거의 끝나갈 지점입니다. 더무지 길이 안 보이고 그래서 유능한 감독일수록 최악의 상황을 잘 연출하게 함으로 그 보는 관계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바로 지금 그 상황이죠. 주님이 매우 느린 행보 그리고 마침내 터지지 말아야 할 일이 터져 버렸어요. 살려달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가 죽어 버렸다는 거 다급하게 찾아갔는데 그렇게 느린 복 그림을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드디어 예수님의 이행이 야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통곡의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12년 동안 길론 딸이 죽었어요. 한 가정의 자녀의 존재라는 것은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12살의 딸입니다. 그 아이가 탄생했을 때부터 12년 동안 길러왔던 그 부모의 애정은 말로도 할 수가 없죠. 근데 그 아이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건 최악의 인생에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이고 최고의 고통입니다. 그 순간 주님은 먼저 소수만 따르도록 하셨어요. 37절에 보니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기적은 쇼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장면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됩니다. 주님은 아이의 죽음 앞으로 다가가지요. 그리고 첫 번째 일성이 뭔가 하면 39절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생소한 말이죠. 죽으면 죽은 것이지 자는 게 뭡니까? 코마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씀을 하신 거죠. 죽으면 끝이잖아요. 근데 주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40절에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와 부모와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비웃는 소리들. 당연하죠. 죽은 자는 죽은 자인데 잔다고 그랬으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 세계 안에서만 받아들이고 경험의 세계 바깥의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비웃는 소리를 들으셨지만 묵묵히 당신이 하실 일을 하셨어요. 비웃는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어쩌면 조금 있으면 그 비웃는 자들이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사람들이 비웃는다 할지라도 너무 연연해 하지 마세요. 그냥 가는 길을 가시면 돼요. 자, 드디어 방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41절에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이 달리다음, 달리다음, 다다음은 이 아람어예요. 소녀야 일어나라. 다르게 표현하면 일어나라 어린 양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말씀이 선포하자 42절에 보니까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12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비웃던 사람들도 크게 놀랐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는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병이 낳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죠. 이것은 무슨 일입니까? 우리는 그동안 마가복음을 다루면서 예수님 바로 앞부분에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어요.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연의 통치자, 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질병을 통치하시는 그 모든 질병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는 것. 또 귀신을 내쫓셨습니다. 악한 영들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 이제는 뭐예요?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것은 사망의 권세까지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 여러분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핵심. 클라이맥스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의 문제까지 다루고 계신다는 거. 여러분, 아담과 범죄 이후 사망의 권세가 가장 강력한 권세죠. 죽음의 권세 앞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가 그 앞에는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뭐 성공하고 잘나고 힘 있고 권세 있고 그러면 떵떵하고 폼 잡잖아요. 얼마 못 가요. 죽음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해요. 조악해져요. 여러분,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온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살아난 사건은 지나간 지나가는 어떤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성이 있고 예언적 성격을 띄고 있고 재창조의 사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장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과 같습니다. 죽음으로 인한 절망과 애곡이 가득한 세상을 생명의 기쁨으로 노래할 날이 이제 올 것이라고는 희망을 보여주는 전주고과 같은 사건입니다. 바로 오늘 이 사건이에요. 이것은 이미 이사야의 예언되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 예언과 같아요. 사도 요한은 21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서는 눈물도 없고 더 이상 애통함도 없고 고통도 없고 더 이상 죽음이 없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죠. 혈류적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고 지체되는 순간에 절망이 깊어졌고 아이가 결국 죽음으로 모든 최악의 상황까지 갑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주님의 의도가 있었어요. 죽음을 통하여 보여주실 놀라운 영광스러운 세계가 준비되어 있었던 거죠. 사망의 권세로 뒤덮힌 세상에 부활의 서광이 비춰지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상의 공포 속에 있습니다. 공포의 실체는 뭡니까? 죽음 때문이죠. 죽음의 공포가 멀리 있지 않고 매우 가까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는 죽음에 대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냥 죽음이에요. 그냥 사망이라고요. 그게 심판이고 끝이에요. 지옥이에요, 그냥.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시작된 확실한 변화는 죽음에 대한 답이 죽어졌어요. 사복음서 안에는 이 사건 외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또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사건.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그냥 칭칭 감고 있던 세마포를 풀고 나오는 역사. 지금 코로나로 인하여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줄 최고의 희소식은 백신 개발이죠. 이미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나라에서는. 그러나 여러분 백신은 코로나라고 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일 뿐이에요.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 자체를 몰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해 줄 유일한 백신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아멘. 여러분, 지금처럼 복음이 절실한 때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야이로의 딸이 죽은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 당시는 비극이었어요. 어쩌면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은 너무도 야속한 일이었어요. 한 가정이 불어닥친 죽음의 사건은 뛰어넘기 힘든 거대한 절망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그 일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보여주시고 하지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절망의 자리에서 환의의 자리로 축제의 장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혈류적 여인의 이야기는 불필요하게 끼어든 사건이 아닙니다. 이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놀라운 메시지가 숨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일에 오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정확하신 분입니다. 일을 하실 때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멘. 괜히 꿍을 꿍을 하셔서 어린 딸을 죽게 하신 그런 무능한 과실 치사를 하신 분이 아니에요. 주님은 의미 없이 행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늦으면 늦으시는 이유가 있어요. 주님의 사역을 드듬어 가면 항상 극적 반전이 있어요. 아멘. 오늘 이 사건은 어떤 면에서 예수님이 늦어지고 또 급기야 죽는 이 사건은 긴장감의 이 스토리에서 그대하게 최고조로 오르는 그런 순간이죠.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준비하고 계세요. 지금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빨리 지나가기를 하나님이 빨리 손을 써 주시기를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계획 안에서 움직여 가고 있음을 우리는 신뢰해야 합니다. 아멘. 상황이 악화될수록 기적은 더 빛이 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전혀 다른 레벨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래 죽음은 끝입니다. 죽기 전에는 별 일을 다 해 볼 수도 있고 기대가 남아 있습니다. 암이 말기 중에 말기라 해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다릅니다. 죽고 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죽음 다음은 장례식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죽음까지 내보셨습니다. 끔찍한 경험이죠. 그러나 절망의 최고 지점에서 최고의 영광의 자리로 바꾸어 내시는 하나님. 병든 상태에서 낫게 하시는 것보다 죽은 다음에 일으키시는 일이 훨씬 더 극적이죠. 죽음이 부활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십자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근데 그 최악의 상태인 십자가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거예요. 막발로 부활로 가는 길은 없어요. 십자가는 가장 절망적인 상태예요. 그러나 부활은 이 세상에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십자가 부활의 사이에 간격이 있어요. 예수님은 죽으시고 사흘 동안 무덤 속에 들어가셨어요. 그것은 가장 절망적인 상태를 알리는 것이죠. 무덤 속에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런 상황에 빠지면 되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요. 혼돈, 절망, 깊은 좌절을 맛봅니다. 이때 중요해요. 이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때 실패해 버리고 말았어요. 다 도망치고 말았어. 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끝났다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그런 말 함부로 해서는 안 돼요, 그리스도인들은. 카이로스 하나님의 때가 오기 직전이 가장 힘들 때예요. 부활의 아침이 오기 전 무덤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절망을 맛볼 때가 있지만 그 것이 끝이 아니에요. 절망과 소망 사이의 간격을 무엇으로 메꾸어야 합니까? 기다림이에요. 기다리는 게 믿음입니다.
[18:16]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바로 앞에 닥친 상황을 상황 넘어보지를 못합니다.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들고 고통하고 절망해요. 그럼에도 우리는 빨리 결론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때가 차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에. 빠른 해결이 전부가 아닙니다. 빠르다고 좋은 거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메시지는 뭘까요? 빠를수록 좋았죠. 그러나 아니에요. 빠른 것이 좋다는 것을 믿고 살면 고혈압, 스트레스, 공황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빠른 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조금만 일찍 왔다면 우리 딸이 죽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그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그러나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아멘. 전도서 3장 1절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그랬어요. 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적당한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 미쳐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조종할 수 없어요. 시간을 통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우리는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러나 막연한 기다림은 아니에요.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돌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요즘 더욱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죠. 세상의 나라가 얼마나 허약하고 쉽게 흔들리는가. 우리가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예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지연되고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것 다르게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죽기로 돌아오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애를 썼는데 오히려 더 악화되고 더 이상한 모습으로 흘러갈 때가 있어요. 자녀들에 대한 바람이 있는데 그와 상관없 더 나쁜 이상한 형태로 나아갈 때 힘들어지죠.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져 갈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현실이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가 시간을 조종할 수가 없어요. 남편을 당장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어요. 사춘기 아이가 빗나갈 때 어느 한 순간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낼 재간이 우리에게는 없어요. 코로나 상황도 우리가 어떻게 조절이 안 돼요.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가장 완전하신 분이시고 아멘. 카이로스 결정적인 시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십자가가 보일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하나님은 부활을 준비하고 계셨던 거죠. 아멘.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은 뭘까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간의 수능해야 합니다. 느리고 빠르고는 우리가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붙잡고 있는 주님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라 힘들면 힘들어져요. 흔들려요. 그러나 그 고비를 넘어가야 합니다. 출산의 순간이 가장 힘들 때예요.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완성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 힘들어져요. 그러나 그때 믿음으로 걸어가요. 카이로스의 수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에.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린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멘.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를 더 깊어지게 하세요. 기다리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그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 우리를 단단하게 하시고 어떤 일들을 통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경고한 믿음의 경지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지체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에요. 아멘. 혈류증 여인으로 인하여 늦어지고 미루어지고 지체되는 것. 그래서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고 어떻게 보면 미칠 것 같은 그 상황.
[23:08]그래서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아니에요.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의 부활을 준비해 놓고 계셨던 것처럼. 기다림은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지체되는 것은 응답이 지체되는 것은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가 오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상태로 바꾸어 놓으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시는 그래서 반드시 승리의 그 날 영광의 그 날 부활의 소망을 경험하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또 기다리고 기다려 가장 영광스러운 반전의 역사를 결국은 경험해 내는 주의 신실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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