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음 자 오늘 우리는 이 마가복음 말씀 우리 살펴보겠습니다. 이 마가는 예수님의 시험을 이 장면을 아주 짧게 요약을 했습니다. 오늘 12절에 보면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신 이 사건인데요.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담.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대조죠. 첫째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승리하셨습니다. 아담은 최상의 환경이었지만 에덴 동산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최악의 환경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실패했죠. 그러나 그리스도는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마귀라는 존재에 주목하게 되는데요. 현대 사회에서 마귀라는 존재는 부담스러운 존재입니다. 주제입니다. 얼마 전 시진핑 주석이 주석이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리켜서 악마라는 표현을 썼어요. 악마의 하나님이다. 이 특이한 표현입니다. 이 공산주의자들은 신의 존재를 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이 악마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어떻게 악마라는 표현을 썼어요? 무슨 의미로 알고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은. 아마 이 공산 이론에서는 맞지 않는 이 악마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어떤 인정과 같은 말이죠. 또 최근에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의 지는 지혜 갈 때 이단 교주가 자신들의 조직을 방해하려는 마귀의 짓으로 규정한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 이 자칫하면 이 마귀의 존재가 모호하게 사용되어서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CS 루이스의 표현을 빌면 너무 과도하게 마귀의 존재를 부각시켜 모든 것을 마귀의 소행으로 보는 것. 그건 극단이라는 거죠. 또 아예 또 마귀의 존재를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태도도 또 한 쪽에 극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이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마귀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요.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마귀는 온 천하를 꾀는 자다 그랬습니다.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거짓을 따르게 하는 일을 하는 존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역시 마귀의 속성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 거짓의 명수 그랬어요. 이 진리를 왜곡시키는 일에 명수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마귀는 상극이요. 예수님을 시험하는 이 장면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요. 예수님의 첫 사역이 이 마귀와의 1대1에 격투가 벌어집니다. 요한 1서 3장 8절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아주 중요한 목적이 마귀를 몰아내는 거다 그랬습니다. 자 이 마귀의 유혹은 이 성경에 나타난 데에 의하면 세 가지로 주로 요약되죠.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적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나무가 그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자 요한 1서 2장 16절에서는 이것을 세 가지로 얘기하죠. 하나는 육신의 정욕 그리고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자 예수님에게 시험한 것도 세 가지입니다.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천하 만국과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세 가지입니다. 이 마귀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흔들려고 했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성전 꼭대에서 뛰어내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얼마든지 돌이 떡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오병여 사건을 통해서도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왜 주님은 지금 돌이 떡이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지상에 오신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46]오병이 기적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오병이열을 통해 사람들의 배를 불리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떡이신 그리스도를 알려 주시기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자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 비결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기셨다는 거. 마태복음 4장 4절의 말씀이 너무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 한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랬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서 이 이 이스는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요. 기록되었으대 라는 거 기록되었으대 이 세 번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대. 마귀는 거짓으로 유혹합니다. 근데 예수는 진리로 맞서 이기십니다. 마귀와의 전쟁은 진리 전쟁입니다. 마귀를 이기려고 하면 우리는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속임수를 분별해 내려고 하면 진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죠.
[7:07]거짓이 진리처럼 행사할 때가 많습니다. 마귀는 미혹하는 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마귀는 하와에게 거짓으로 다가가 유혹했습니다. 거짓말을 진짜처럼 하는 거죠. 오늘날부터 보면 어이없이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빠질 수 있을까? 참 어에요. 어떻게 저렇게 무모하게 빠져 들어가는가. 이 보면 가짜데 진짜처럼 가르친다는 거예요. 가 보면 아주 막 그냥 그냥 너무도 설득력 있게. 옛날에 우리 그런 이 가짜 약들을 파는 약장수들이 있잖아요. 이 약장사들을 보면 그 시장터에서 약을 파는데.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을 때 저 가짜라고 생각하고 절대 안 살 거라고 주먹을 지고 있는 거예요.
[8:16]그런데 계속 얘기를 듣다 보면 빠져들어가는 거예요. 아 저도 옛날에 그런 기억이 나요. 너무도 말 잘하는 거. 그 나중에 보면 안 사겠다고 굳게 결단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돌아갈 때는 다 한 봉지씩 사 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가서는 야 가짜다. 한 점 보면 가짜.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그랬어요. 이 거짓에 무릎을 꿇은 것이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속삭임에 무너졌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거짓은 더욱 더 정교화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노골적으로 공격합니다. 자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님은 40일간 금식하셨습니다.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라 40일이면 이건 뭐 상상할 수 없는 배고픔이에요. 우리 한 끼 하루만 굶어도 어마어마하게 배가 고픈데 이 40일 금식하셨다. 육신을 갖고 계신 그리스도의 이 먹는 문제보다 절박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경험해 보셨죠? 한 며칠 한 3일 굶고 나면요. 뭐 정말 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먹을 것만 보여 먹을 것만. 여러분 이 40일 금식하신 육체를 갖고 계신 그리스도의 이 먹는 문제보다 더 절박한 게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 당연히 떡이 필요합니다. 배가 고프면 떡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은 떡을 부정하지 않아요. 일상에서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늘 이 말씀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떡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죠. 과연 떡보다 말씀이 더 중요한가? 육신적 필요와 영적인 필요 다 필요해요.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뭘 붙들 것인가? 여러분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요. 이것은 무슨 문제냐면 순간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떡은 육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먹어도 언젠가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죽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영원한 죽음,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영벌. 여러분 현실적 필요만 쫓으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궁극적 목적을 잃어버린다는 거죠. 마귀가 공격하는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도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금식하신 예수께는 떡이 절실합니다. 육체를 가지신 분에게 커다란 시험이죠.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이것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게 아니라는 거.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거. 굶주림 속에 육신의 고통 속에서 굶주려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모르신 것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또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죄로 인하여 찾아온 사망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 마귀의 유혹은 자명합니다. 눈앞에 그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 지금 당장의 만족에 쫓겨 참으로 중요한 걸 놓치게 하는 겁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하는 실체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그 바이러스로 인해 찾아올 죽음이죠. 죽음의 공포예요. 죽음의 공포는 어쩌면 나에게도 그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내 생명을 아아갈 수도 있다라는 이 죽음의 공포. 이게 온 세상을 지금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럼 평소에는 우리가 죽음과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이 태연하게 살아가지만 실제로 우리를 짓누르는 가장 인류의 거대한 권세 가장 강력한 힘은 이 죽음의 파워.
[12:20]사람들이 그런데 여러분 진짜 우리가 두려워할 게 뭘까요? 그것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바로 죄라는 바이러스. 아담의 범죄 위 인류의 역사의 죄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 죽은 숫자는 이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죄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슈퍼 전파자입니다. 에덴 동산 이후 인류는 맹독성을 가진 죄라는 바이러스에 전염의 속수 무책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빌라도가 불법적 재판을 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재형에 내어주고 난 다음에 손을 씻는 장면이 나옵니다. 막 손을 씻어요. 아무리 손을 씻는다고 죄의 바이러스는 없어지지 않죠.
[13:14]여러분 놀라운 것은 이런 신종 바이러스에 이 백신이 없다는 거죠. 그리 두려워하는 거잖아요.
[13:24]근데 여러분 이 죄의 바이러스를 해결할 백신이 있죠. 메이드 인 헤븐. 바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예수의 보혈은 모든 죄를 씻고도 남는 능력이 있다.
[13:54]이거야말로 복음이죠. 근뉴스죠. 근뉴스죠.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그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많다는 거. 그 백신을 갖고 있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백신을 갖고 있어요.
[14:12]죽어도 살겠고. 이 복음 이 백신이 있단 말이죠. 그 백신을 맞고 오늘 우리는 구원을 얻었어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데 백신은 100%.
[14:30]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근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이 세상 안에는 아직도 이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늘 여러분 우리가 그걸 안타까워해야 돼.
[14:47]이 굿뉴스를 전해야 되는 거. 우리는 백신을 막 쌓아 놓은 거예요. 우리로 치면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고 우리가 복음 안에 살아가고 있는 이 백신을 막 쌓아 놓고 있는 거예요. 근데 한 번도 그 백신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 제가 최근에 이 데이비 플랫이 복음의 율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저도 가슴에 많이 아팠어요. 정말 그 고산 지대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정말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당장은 먹을 것을 주는 것도 필요했고 절실하게 빵이었지만 빵보다 더 절실한 것은 복음이라는 것을 그 데이 플랫이 얘기를 해요. 아니 이 땅에서 이렇게 고생하고 죽는 죽는 것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까 이 땅에서 고생하는 것도 족한데 그걸로 끝난다는 게 더 아픈 거예요. 더 아픈 거예요.
[15:58]아무리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해도 영생의 복음을 가진다면. 이 데이비 플랫도 그들의 현실의 빵의 문제는 두려다 보니까 당장 죽고 싶죠. 근데 그것이 그들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요. 여러분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일시적으로 연장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몰핀이에요. 몰핀. 그건 복음이 아니에요. 육신적 빈곤보다 영적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16:39]빵의 문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진리의 문제라는 거. 오늘 인류가 정말 불행한 것은 빵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육신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문제다. 진리의 문제라는 거.
[16:55]돈이 없으면 일시적으로 힘들게 살 수는 있어요. 그건 현실적인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처럼 그 모든 것이 뒤바뀌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절박한 육체적 필요가 채워져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영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육체적 필요는 지극히 일시적인 해결뿐입니다. 먹는 문제는 먹는 문제가 아닙니다. 온갖 유혹이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우리가 배부름으로 끝나는 인생이라면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다는 거. 근데 마귀는 오늘 어떻게 해요? 빵을 해결하라는 거예요. 일시적 만족에 급급하며 살아가라는 거. 그러다가 끝내라는 거. 끝내라는 거. 근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위해서 오시진 것이 아니에요.
[17:50]육신의 필요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 이 광야라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미드바르라고 하는 거요. 미드바르. 이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다바르라고 하는 거요. 다바르. 이게 말씀입니다. 다바르가 말씀이에요.
[18:14]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살기 위해서 들어야 하는 것은 다바르. 하나님의 말씀. 미드바르에서 필요한 것은 다바르요. 아무리 광야라도 다바르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산다. 미드바르에서 다바르요.
[18:38]오늘 우리는 현실의 문제 때문에 영혼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현실. today 오늘 지금 이것에 모든 걸 걸도록 만들어요.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영원의 세계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에 40일의 금식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자 그다음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마귀가 유혹하는 이 세 가지 물질, 명예, 권력, 뭐 이런 달콤한 것들. 리사드 포스트의 하면 돈, 권력, 섹스. 오늘 현실에서 이런 유혹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파고 들어와요. 강력한 유혹들이죠. 이 세 가지 주제는 하나도 간단한 주제는 아닙니다. 오늘 인류가 끊임없이 무너지고 무너졌던 주제들이죠. 하나님 없는 인생은 여기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자신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가르쳐 주는 방식이 솔깃해지는 것이죠. 문제는 마귀의 유혹들이 현실에서 유용해 보인다는 거. 거짓은 진리같이 보이고 진리가 거짓처럼 여겨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마귀는 거짓을 진리처럼 보이게 하는데 명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현실에서 분리할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지 성경 공부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일상의 쾌쾌묵은 일상에는 전혀 적용이 불가능한 그 수천년 전의 팔레스타인의 얘기 그만하라는 거죠. 성경의 가르침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망한다는 거죠. 자기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그 것이 바로 죄의 형태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거나 내가 하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죄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이후 인간의 삶에 찾아온 결핍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현실의 결핍이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걸까요? 아니에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의 물질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핍. 예수 결핍. 삶이 힘든 것은 물질의 문제 이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의 힘을 믿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인생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이 언제 파산 상태가 되는 겁니까? 돈이 떨어져 파산입니까? 아니에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게 파산이에요. 마귀는 계속 너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거죠. 너가 하나님이 되라고 하는 거. 여러분 믿음으로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방식을 찾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현실적 필요를 채우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하나님에게 의존하며 풀어가는 방식. 내가 스스로 해결하러 하는 방식에 몸이 익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거요. 아주 작은 문제도 아주 작은 필요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필요를 채우려고 하는 방식이 몸에 익어야 된다는 거요.
[25:48]여러분 우리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능력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고 입혀 주셨어. 나만 바라보라고. 하늘 문을 여시고 매일 만나와 매추라를 내려주셨던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길은 겸손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그 교만. 그 교만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죠. 야고보 4장 6절로 7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다음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었던 시험이 어떤 것입니까? 신명기 8장 2절로 3절에 이렇게 얘기해요.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내게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내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를 너도 알지 못하며 내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내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그 이유는 너를 낮추시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시 기 위해서. 왜 인간은 마귀의 유혹에 취약합니까?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는 욕망. 인간은 인간임을 거부하려고 하는 것 처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인간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냥 인간은 인간이에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인간에게 주워진 능력마저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죠.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잘난 척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대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육체의 힘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세상적인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거요. 근데 마귀는 속삭이죠. 십자가 없이 성공하라고.
[28:25]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며 살도록 만들어졌어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돼. 하나님에게 그냥 엎드리고 경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본래 의도는 딱 하나요.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그러므로 여러분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철저히 하나님에게 의존하는입니다. 빵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제껴두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하나님이 허락해 놓으신 방식으로 빵의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그 자체가가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문제를 자기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이미 그가 하나님이 되어 있어요. 사사 끊 끊.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그 해결의 방식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줄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몸에 익어 있어요. 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까?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짓이 일상이 되고 악을 선으로 포장하는.
[30:03]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한 자라면 우리의 삶의 문제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게 하신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를 살고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인간적 재주를 피워봤자 손해만 보고 망신만 당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만이 답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광야의 시험은 이겨야 합니다. 광야는 잔인합니다. 잔인합니다. 마귀에게 당하면 형편없이 추락하고 망가집니다. 마귀는 인정 사정 보지 않아요.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욥을 한번 보십시오. 치명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지금도 계속 활동 중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오늘 이 본문에 보면 들짐승들과 함께 하셨다 이렇게 말씀해요. 광야는 외로운 곳이죠. 사람이 없어요. 들짐승들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외로운 곳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곳이라는 거요. 자 그런데 들짐승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이게 오늘 본문에 보면 천사들이 함께 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구절이죠. 마지막 구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태복음을 보면 마귀는 떠나가고 떠나고 이 표현이 있는 데 마가복음에는 없어요. 마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영적 전쟁의 승리 이후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죠. 여러분 여기에 천사들이 수송들더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광야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성경은 마귀의 존재와 함께 천사의 존재를 언급합니다. 마귀가 울그리지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어주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영적 전쟁에 승리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거요.
[32:21]여러분 오늘 지금 우리는 유리없이 세상이 복잡하고 요란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고통합니다. 이 전념병까지 돌아서 흉용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곳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를 이길 수 없어요. 오늘 우리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신 사건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예수는 왕 중 왕이십니다. 그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에덴에서 실패한 인간 인류는 죄의 유혹에 취약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완벽하게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시험에서의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의 승리로 인해 우리도 마귀에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 육신을 입으신 주님이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어요.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로 이미 마귀는 전세가 밀렸습니다.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결정적으로 승리가 우리의 편으로 넘어왔어요.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가 생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세 분이십니다. 마귀 아담은 마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으면 마귀는 우리와 게임이 안 돼요.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맞추고 살면 반드시 이기고도 남을 줄로 믿습니다. 전염병들이 창궐하고 세상의 다양한 이슈들이 계속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이 코로나 사태가 얼마 지나면 또 끝이 나겠죠. 빨리 조속히 잘 끝이 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코로나 사태가 지나면 또 다른 이슈가 떠오를 거요.
[35:10]우리는 이 코로나보다 이런 때에 더 묵상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생명되신 그리스도에게 고정하십시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위생을 철저히 하고 또 잘 너무 사람들이 많은 곳을 모이지 않고 그런 조심도 하셔야 되지만 늘 코로나 뉴스나 보고 늘 코로나 코로나하다 보면 안 걸렸는데 걸린 것 같아. 막 코로나 막 균이 막 막 날아다니는 것 같아. 두려움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는 거요. 우리의 시선을 오직 그리스도에게 고정하시고 불가피하게 우리의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가 모이지 않고 그 모임을 포기한 이유가 이 땅에 전정한 복음이 우리에 대해 이웃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런 선택을 했어요. 우리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지라도 온 가족들이 더욱더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우리의 믿음의 연단을 하는 은혜의 시간들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 우리가 진짜 바라보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도 아니고 인기도 아니고 세상의 영화도 아니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 우리가 복복하지만 복은 우리의 제재로 긁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두어버리면 우리는 끝입니다. 우리는 위험한 광야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마귀는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문제 투성이 세상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지켜 주셨듯이 오늘 여러분들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천사가 수종들더라. 그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고 광야에서도 말씀의 길을 기울이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광야 같은 세상을 삽니다. 마귀가 들끓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가 아닌 곳으로 돌려놓으려고 발악을 합니다.
[38:15]진리가 아닌 거짓으로 우리를 속삭입니다. 수 없는 유혹 앞에 무릎 꿇을 때가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시옵시고 진리를 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르신 그 목적과 삶의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마귀는 떠나가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 속에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