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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목사] 부의 복음이 위험한 이유 | 막 10:23-31 | CGNTV 말씀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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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자,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네 계속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이게 마가가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부자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떠나는 장면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오늘도 연장 선상인데요.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과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23절에 예수께서 돌려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심히 어렵다.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자 어떻게 어려운가? 비유를 드셨습니다. 25절에 낙타가 바늘 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그 당시에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동물은 낙타였습니다. 낙타를 이해를 든 거죠. 제일 큰 동물이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의 상징은 바늘귀였습니다. 바늘귀. 그러니까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차라리 쉽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 가는 것보다.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 주로 불가능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비유였죠. 예수님이 좀 해학적으로 하신 겁니다. 어 이 이야기를 당시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확 웃었다는 거예요. 가끔 보면 젊은이들이 유머를 쓰는데 어른들은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죠. 그렇죠? 무슨 말인지 이게 센스가 안 오는 거죠. 근데 지금 이게 역사 2천 년의 역사와 팔레스타인의 문화 속에서는 이 얘기를 하면 폭소를 지었다는 거예요. 이 해학적인 겁니다. 유머를 예수님이 쓰신 겁니다. 어 자 바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는가? 모르겠어요. 혹독한 낙타를 다이어트를 시키면 들어갈 수 있는지. 근데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안 되겠죠, 낙타는.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 바늘귀는 작다는 작다는 그의 상징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이라는 거예요. 특별히 재물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좁아진다.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26절을 보면 하나님의 예수님의 말씀에 이 제자들이 이 얘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그랬습니다. 이 쇼크를 받은 거죠. 왜 쇼크를 받은 겁니까?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달랐기 때문에요. 그러면 기본적인 상식 그 시대의 상식이 뭐냐? 부자는 복을 받았다라고 하는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 랍비들의 일반적인 가르침이 뭐였느냐? 부자는 복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은 저주다라는 등식입니다. 실제로 구약 성경은 이 물질적 부를 축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제자들은 아직도 그 유대 사회가 일반적으로 하는 커먼 센스 일반적인 상식적 수준에 부는 축복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거다라고 하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전혀 다르니까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어 오늘 이 물질적 부의 문제입니다. 이 한국 교회 안에 이제 이 기독교가 돌아왔을 때 이 샤머니즘 무당 종교죠. 이 그 기복주의와 이렇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소위 이것을 우리는 번영의 신앙 신학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번영 신학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로 로버트 슐러 목사님입니다. 수정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교회는 지금 부도가 나서 없어져 버렸어요. 주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르치고 하면 된다. 큰 꿈을 가져라. 당신을 믿어라. 자기 확신을 하라. 이제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근데 이 수정 교회가 탄생했던 이유는 시대적 배경이 한 몫을 했습니다. 2차 대전이 지나고 심각한 경제 공황을 지나면서 백성들이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이 로버트 슐로 목사의 설교 이 적극적인 사고 방식. 이건 이제 굉장히 호소력 있게 설득력 있게 들려진 것입니다. 자 현재는 미국 휴스턴에 있는 레이크우드 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입니다. 이분이 지은 책이 긍정의 힘이라고 한국에 번역되어서 베스트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자 이 번영 신학은 기복주의 신앙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자 물질적 복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세보다 내세보다 현세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세에 집중하다 보면 모든 중심이 결국은 자기에게로 기울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이 되는 거죠. 그래서 복을 구하다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이 번영의 복음에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요.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도구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영의 신학의 약점은 하나님은 주변으로 밀려가고 인간이 중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언제나 자아 중심적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번영의 신학은 하나님보다 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해요? 물질이 우상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리에 부가 물질이 자리잡게 되는 거예요.

[9:22]여러분 이 부에 대한 논란은 어디에서나 뜨거운 이슈입니다. 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에서도 청부론과 청빈론이 팽팽한 논쟁을 일으킵니다. 부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진 것이 청부론이라고 얘기하고요. 부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관점을 가진 어을 관점을 우리는 청빈론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굉장히 뜨거운 이슈입니다. 대체적으로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청빈론보다 청부론이 더 설득력을 얻는데요. 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부와 천국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때 어떤 부자를 말하는가? 또 어느 정도를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고 얘기하는가? 또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일까?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다룰 때 우리가 먼저 조금 이제 언급해야 될 것은 어떤 분은 나는 부자가 아니야. 나하고는 해당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부의 문제는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돈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필요 이상도 얻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좀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면 돈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요즘 문화적으로 자극이 강해지고 많아졌어요. 그래서 마케팅이 굉장히 첨단화돼 있습니다. 광고가 강력하죠. 그래서 TV에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앞뒤로는 광고주들이 줄을 섭니다. 돈을 많이 내고 비싼 광고비를 내고 거기에 자신들의 상품을 광고합니다. 또 그런 광고에는 그 당시에 최고의 스타들을 발탁해서 그 광고에 올리는 거죠. 그래서 그 광고를 보는 순간 내가 늘 쓰던 멀쩡한 청소기가 꼴도 보기 싫어지고 그걸 사야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왜 사는 것입니까, 여러분?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것이죠. 요즘은 특히 주식 투자와 비트코인 열풍이 젊은이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돈이 주는 유혹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아파트를 팔았는데 시세 차익을 엄청나게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마음이 어떻습니까? 가까운 사람이 배가 살살 아픕니까? 물질의 문제는 우리의 신앙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돈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보십시오. 윤리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적인 문제와 직결됩니다. 돈은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돈은 강력한 권력입니다. 사람을 사고팔 수도 있습니다. 돈에 의해서 영혼이 팔려 다닙니다. 돈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죠. 결국은 가로 유다는 자신의 영혼이 돈에 매수되어 스승을 팔아넘긴 겁니다. 재물에 관련된 문제를 그대로 두고 신앙생활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26절을 보니까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제자들이 충격 속에서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편에서 하시는 거거든요. 부자가 스스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십니다. 겉으로는 구원 먹히게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그를 바꿔 놓으시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자 그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냐?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사케오라는 사람이 나와요. 그는 세리장으로 로마의 앞잡이 노릇하며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착취로 불을 끌어 모은 사람이요. 근데 그 영혼의 갈증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동네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 나가죠, 동네로. 그리고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아니 그리스도께서 그 사케오를 만나 주셨어요. 그리고 형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의 모습이 사케오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데 19장 8절에 보니까 사케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여러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한 게 있다면 네 배를 갚겠다. 여러분 불을 모으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기가 쉬워요. 세리의 부는 일반 유대 백성들의 등을 친 거잖아요. 희생으로 주어진 거예요. 정상적이지 않은 불법과 편법이 일어난 거예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돈을 벌으려고 하면 정말 미세한 영적인 민감성이 없으면 힘들어져요. 찰세의 문제도 늘 세금의 문제도 늘 실험을 해야 되고 또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문제도 있어야 되고 또 정당한 원가 대비 가격을 받아 폭리를 취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또 사업을 하다 보면 이 환경과의 관계 뭐 모든 것들이 다양한 것들이 연결되어 위험에 노출돼 있는 거예요. 근데 돈이 목적이 되면 모든 걸 수단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거예요. 부자 사케오의 회심은 놀라운 일입니다. 회개는 지갑에서 드러난다 그러죠. 주님은 그에게 놀라운 선포를 하십니다. 19장 9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여러분 사케오는 앞에서 언급된 부자 청년과는 확실히 달라요. 사케오의 변화는 예수님의 공생의 입성 직전에 절정을 이룬 사건입니다. 전혀 변화될 것 같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변했습니다. 구원과 전혀 상관없이 보였던 사람의 변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어요. 예수님이 사케오에게 재산을 내어 놓으라고 강요한 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내어 놓았어요. 예수를 만나자 일어난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오늘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우리 주변에 돈만 알고 살던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가자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물질과의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삶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변화를 받으면 길이 열립니다. 물질의 탐욕에 찌들려 살던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그 안에 역사하자 모든 욕망을 해체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면 돈의 힘은 현저히 사라지게 되는 거예요. 희한한 일이 일어나요. 희한한 일이 일어나요. 돈 맛에 취해 살던 사람이 깨어나는 겁니다. 돈 중독에서 예수 중독으로 바뀌는. 더 이상 돈의 위력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취해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요? 그리스도를 만난 회심의 분명한 증거는 자기의 것을 내어놓는 소유에서 탈출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서히 나누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물질의 힘을 이겨낸 모습이 뭔지 아십니까? 나누는 거예요.

[22:50]돈이 유혹이라는 말은 여러분 돈이 유혹이에요. 유혹이라는 말은 돈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죄를 짓는 쪽으로 가기가 쉽다는 겁니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나누는 길입니다. 쌓아 올리기보다 흘려보내는 거예요. 그래야 나도 살고 남도 산다는 거예요. 돈을 더 가져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에요. 나눌 때 자유가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와 연약한 이웃을 위해 드리는 삶이 핵심이라는 겁니다. 그러 모으기만 하는 부자가 있어요. 절대 쓰지 않는 사람. 돈 자체를 좋아하는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 이런 사람들은 우리는 구두쇠라 그러죠. 구두쇠란 그냥 돈을 아끼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돈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에요.

[24:19]돈의 주지에 돈에 자기가 주체 돈을 주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돈에 의해서 자기가 객체가 돼 있는 상태예요.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죠.

[24:41]여러분 철강한 가내기가 한 말입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초대교회 교부 크리스토스텀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개의 주머니를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는 자기를 위하여 하나는 이웃을 위하여.

[25:23]요즘 저는 이제 듣기로 우리 사회가 기부 문화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그래요. 많은 분들이 기부 문화에 동참을 하고 있다고 그래요. 좋은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것에서부터 한번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로비에 있는 러브박스도 여러분 가져가셔서 하면 일상화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그 박스 안에 넣어서 흘려보내는 거예요. 이것은 한 번 두 번 구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삶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할 때 물질에 대한 탐욕이 서서히 서서히 힘을 잃어가요. 나누면 누군가를 돕는 일이지만 가장 큰 수혜는 자기 자신입니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 교회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실천한 분들이 있어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나눔은 자유를 제공합니다.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부유는 물질만이 아니라 영혼의 부유함. 그것이 바로 나눔을 통하여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심각하게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생계형 자살들이 빈번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 교회에 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해야 될 역할.

[27:52]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눌 때 기쁨이 있습니다. 자꾸 나누고 싶어져야 돼요.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너무 자기 자신에게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가?

[28:34]피부 관리, 다이어트, 애완 동물, 지방 제거 수술. 다 좋아요. 다 좋아요. 그러나 나도 모르게 우리의 영혼이 길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영혼이 아니라 현재의 만족에 모든 걸 걸고 있지는 않은가? 여러분 영혼을 놓치면 삶은 지극히 현세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기울고 맙니다. 물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29:35]오늘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의 마지막 하신 말씀이 우리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 29절부터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32:06]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엄청난 얘기예요. 어떤 분들은 귀가 찔리는 내용처럼 들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십시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밭에 부활을 발견한 사람은 할 수 있어요. 부활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파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그리스도를 온전히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구체적으로 산수를 제시하세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재산을 버린 자들에 대한 약속. 무엇입니까? 현세에 백 배에 보장을 한다는 거예요. 백배란 뭘까요? 확실성입니다. 반드시.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바친 잃어버린 사람들이 현세에 누릴 축복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알 길이 없어요, 사실은. 그러나 혹자의 해석하기는 새로운 가족.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 가족을 잃었다면 하나님이 새로운 가족. 새로운 공동체.

[33:51]새로운 관계들. 분명한 것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을 받은 경험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의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박해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내세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

[34:47]영혼을 얻을 것인가? 잠시 지상의 삶을 누림으로 끝날 것인가? 주님은 애매모한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구체적이어요. 영 안이 열려져야 합니다. 잠깐의 부에 도치되어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질에 대한 가르침을 산상수훈에서 아주 뚜렷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로 21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나니라.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내 보물 있는 그곳에는 내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물질 문명의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매일 돈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돈으로부터 초연해지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희미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 안에 많이 오염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논리에 설득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37:13]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을 탈취해 가는 믿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돈이 우리를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속삭이죠.

[37:40]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7:55]우리의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돈에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짧습니다. 가난하게 살든 부하게 살든 우리의 삶은 금방 끝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고. 물질의 부요보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아가실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세상에 팔려 가지 않게 될 것이고 이 어려운 시기라도 바울 사도가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렇게 선포했던 바울 사도적 삶을 여러분들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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