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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로교회 새물결 새바람 NEW WAVE 이규현 목사 -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C채널방송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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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에 이 오늘도 중풍 병자를 치유하시는 과정을 우리가 살펴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고 있는데 누군가의 집입니다. 예, 누군가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풍 변자의 친구들이 에 지붕이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아 내리는 장면을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5절에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게 뭐냐면은 중풍 병아 나아라 이렇게 하신 게 아니고 중풍 병자를 향하여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을 하셨어요. 자 바로 앞에 여러분 어떤 병자를 또 예수님이 낫게 하셨습니까? 우리 이 사건 앞에 어떤 병자를 낫게 하셨죠? 잊어버리셔도 괜찮습니다. 예. 나병 환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 나병 환자를 치유하실 때는 그냥 깨끗함을 받으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오늘 이 본문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풍 병자에게는 병에 대한 언급은 없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렇게 선포를 하셨습니다. 자 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마어마하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파장이 일어납니다. 지금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참여한 이들도 많아요. 바로 서기관들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지금 이제 사건이 터지자 이제 시비를 걸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다 우호적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고 영향력이 커져가니까 위협을 느낀 부류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그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죠.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불안한 겁니다. 갑자기 예수의 등장이 많은 사람들을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 지금 이 집 안에도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주님에게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기보다는 흠집을 잡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는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태도로 말씀을 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왜곡이 일어나죠?

[2:47]예수님의 사역에 부상함으로 저항이 지금 일어난 겁니다. 원래 그래요. 여러분 팬이 늘어나는 팬이 늘어나면 안티도 늘어나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대적하는 무리들이 일어났습니다. 서기관들이 시비를 거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죄 사함을 선포한 것을 그런 거죠. 그래서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들의 시위는 뭐죠? 누구의 권위로 당신이 죄의 사함을 지금 선포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이게 권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권위, 권위라는 아주 중요한 주제가 지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무슨 권위로 죄를 사하는 이 선포를 하느냐는 겁니다.

[3:52]여러분 죄를 사하는 일은 그 당시에 누가 원래 행한 것입니까? 그 일은 성전에서 제사장들의 영역이었습니다.

[4:02]백성들이 죄를 사하려고 하면 짐승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선 성전에서 들려야 돼. 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되는 것인데 갑자기 예수님이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당시의 종교 체계를 다 뒤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성 모독도 모독이지만 그들의 자리 그 시대에 기득권으로 있던 종교 지도자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일이었어요.

[4:36]자 사실은 이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당신의 성 당신의 성전 제도가 이제 파기 직전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중에 그러죠. 공생에 동안에 이 성전을 헐어버리겠다. 성전 무용론입니다. 제사 제도는 성전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그림자죠. 근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실체가 오신 것입니다. 근데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는 겁니다. 근데 세례 요한은 우리 앞부분에서 보았던 것과 달랐습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어요. 그는 구원자로 메시아로 그래서 그를 오실 길을 평탄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몰려오고 이목이 집중될 때 그리고 자기의 제자들마저 예수에게로 몰려갈 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와 자신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했기 때문에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놓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도권에 있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예수를 그냥 들을 수가 없었어요. 예수가 돌풍을 일으키자 질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적으로 본 것이죠.

[6:08]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본 것이 아니라 없어야 할 공공의 적으로 봤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사탄의 나라가 맞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사단의 왕국이 위기를 느끼죠. 위축을 느끼고 그세에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를 통해 처면 이 전쟁을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공생의 출발에서부터 사단은 예수에게 테크를 겁니다. 여러분 사단이 무엇을 싫어하는 싫어하는가 하면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을 싫어해요. 교회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거부합니다. 1세기를 보면 교회가 강력하게 일어났을 때 로마의 황제들이 위협을 느낍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유명한 로마의 10대 박해가 있습니다. 참혹하게 그리스도를 죽이는 겁니다. 위협으로 느낀 거죠.

[7:08]주변에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모임이 아니라 이런 거세게 몰아붙이는 이 복음의 능력을 보고 두려움을 느껴서 핍박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3세기에 이르면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를 공인하면 기독교를 공인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핍박이 사라져버려요. 기독교를 공인해 버렸기 때문에 자 여러분 그때부터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고 다수가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손해를 보고 핍박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수혜를 입기 시작하니 여러분 기독교가 약화될 때가 바로 그때부터 약화되는 거예요.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들이 좀 있습니다. 또 교회 나가는 것도 은근히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래요.

[8:08]모이는 것들이 어려움을 겪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좀 힘들고 아직 뭐 핍박 그런 건 없잖아요. 근데 기독교로는 어려움이 올수록 기독교의 신앙은 꽃을 피워요. 아멘. 아멘. 전금같이 비대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올 때 기도가 막 불 타잖아요. 그죠? 아멘. 혹시 요즘 기도하는데 자꾸 졸면 어려움이 없어서 그래요.

[8:47]아멘. 아무튼 복음이 순수히 전해지도록 마귀가 그대로 두지 않아요. 주님의 교회를 흔들어놓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대적자들은 늘 일어납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일을 우리는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자 오늘 일어난 이 충돌 장면 서기관과 예수님의 충돌 장면은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강화될 것입니다. 자 한 장 더 넘어가면 몇 장이죠? 3장 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바로 그다음 장인데요. 벌써 굉장히 압박감이 심해요.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섬칫하죠. 그들은 예수를 죽일 공모를 합니다. 십자가로 가는 도상까지 불꽃 튀는 영적 전쟁이 벌어집니다. 악의 연대가 뚜렷해져요. 그 핍박과 적대적인 일들이 공모를 통해 일어납니다. 여러분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 복음이 왕성하게 일어나면 그때부터 이미 반대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핍박이 있다는 것은 교회가 살아 있기 때문에요. 아멘. 교회는 역사 앞에 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교회도 그렇지만 개인의 신앙도 언제나 도전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아멘. 마귀는 그냥 순순히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요. 예수의 사역과 마귀의 사역은 평행선을 긋듯이 함께 가고 있어요. 대적과 반대를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3절에 보십시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당연하다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랬어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원래부터 있었던 일이 반복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들이 대놓고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은 실체가 분명하고 분별이 쉽기 때문에 근데 교묘하게 파고 들어오는 유혹은 무서운 겁니다. 마귀가 뿔을 달고 나타나면요. 그냥 마귀죠. 그냥 마귀죠. 근데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면 어려워요.

[11:23]적인지 아군인지 정체를 숨기기 때문에 싸우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이런 때입니다. 분별력이 필요한 때죠. 자 서기관들의 공격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다시 7절에 읽어보면 이거예요.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 신성 모독이라는 것은 가장 큰 죄예요. 지금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러면 이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몰랐던 거죠.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그리스도는 이미 마가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가를 복음을 시작하면서 1장 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아멘. 아 멋있죠. 분명하게 마가는 이 마가 복음을 시작하면서 이 얘기를 합니다. 11절에 뭐라고 얘기합니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뭔가 하면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아멘. 아멘. 아멘.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세요. 자 본문에서도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8절에 보니까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자 이 8절을 통하여 이 본문 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알려줘요. 왜요? 서기관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세요. 아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아멘. 우리의 깊은 생각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십니다. 아멘. 오늘도 여러분이 예배드리시는데 예배드리는 이 모습을 보시지만 예배드리고 앉아 계시는 분 생각은 그걸 다 알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도 그리스도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아멘. 공생에 내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냐를 시비를 걸었어요. 주님의 아들 되심 이 정체성을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40일 금식 후에 찾아온 마귀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으려고 했죠. 마귀의 공격은 그거예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을 떡이 되게 하라. 두 번째도 마찬가지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에서 뛰어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뭘 흔들려고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정체성이요. 자 그런데 여러분 중풍 병자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자 그들의 믿음은 장애물과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주님은 당신을 어떻게 그러면 소개하고 있습니까? 오늘 10절에 보니까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자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와요. 그 단어는 뭐냐면 인자라는 단어입니다. 자 인자라는 단어는 마가복음 안에서서도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핵심 구절인 10장 45절이 있는데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 여기 인자라는 단어는 주로 구속을 위해 오셨음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육체를 입고 오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특별히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셨음을 강조할 때 이 인자라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자는 결국은 죄의 문제와 연결이 돼요. 십자가와 연결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아멘. 주님이 오신 목적이에요. 자 마태복음 1장 21절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렇죠?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멘. 여러분 성경의 구절들이 중요한 게 많지만 이런 구절들은 정말 선명한 말씀들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더라. 아멘. 여러분 그리스도는 단순한 설교가나 치료자가 아닙니다. 구원자라는 구원자. 주님의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선포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 사함을 받아야 온전한 치유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주님은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를 더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실제로 그런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죄와 질병은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질병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출발한 겁니다. 주님은 중풍 병자의 질병만 보신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영혼의 치유를 바라보셨어요. 많은 사람들은 병 자체가 낳는 것에 집중을 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 병 낳는 것이라는 것은 사실은 굉장히 일시적이에요. 그러나 죄의 문제는 영원한 문제입니다. 영원한 문제.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보시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다루셨어요. 주님은 질병으로 고통하는 자들을 바라보시면서 고통의 진정한 원인은 죄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목적 그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요. 자 이러면 주님이 중풍분만 낫게 하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치유 사역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주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인간에게 진정한 필요가 뭐냐는 겁니다. 인간이 느끼는 필요와 주님이 느끼시는 필요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네 죄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주님이 가장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중풍 병자의 가장 필요. 주님은 중풍 병자가 몸 이상으로 몸으로 인한 이상한 몸으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죄로부터 오는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주님은 그 죄의 문제를 지금 다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0절의 말씀을 우리가 다시 보면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람들은 병 낫는 것을 기적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물론 기적이죠. 병 낳는 거 기적입니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죄 사함을 받는 일입니다. 아멘. 죄 사함을 받는 일은 병 낫는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작은 일이 아니에요. 거대한 일입니다. 여러분 모든 세상의 종교는 역시 죄를 다룹니다. 불교도 죄를 다뤄요. 다 죄를 다뤄요.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죄를 해결하는 길은 없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어떤 고행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종교 계획자인 마틴 루터는 이 종교 계획을 하기 전에는 그는 끊없는 고민과 갈등과 법민 속에 살았어요. 그 이유가 뭐냐면 죄 문제입니다. 아무리 수행을 해도 선배 사제에게 고해 성사를 매일 털어놓아도 이 죄 문제, 이 죄책감이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일반적으로 가지는 상식적인 관점은 죄를 지었으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근데 무슨 재주로 인간이 스스로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 이게 마틴 루터의 고민이었어요. 그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처절한 시간을 보냅니다. 처절한 시간을 보내요. 근데 해결이 안 돼요. 왜 해결이 안 되죠? 죄는 인간의 편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요. 아멘. 여러분 구약 시대는 한시적으로 제사 제도를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죄 사함을 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레이기 구약 성경 읽기 참 힘든 레이기를 보면 참다 제사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의 중심부에 뭐가 있느냐 하면 성전이 있고 제사 제도가 있어요. 이 제사 제도는 온전히 인간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그래서 죄 지은 자를 대신하여 흠 없는 수소나 양이나 염소를 성전으로 가져와 그 사람을 대신하여 그 짐승이 죽게 함을 통하여 속죄 의식을 가졌습니다. 근데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제사 제도를 통한 이 속죄의 방식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1400년간이나 지속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이 하는 일은 뭘까요? 백성들이 그 짐승을 흠 없는 어린 양을 가져오면 그 짐승을 제사장과 그 바치는 사람이 함께 안수를 해서 제단에 잡아서 피를 뿌리는 겁니다. 여러분 제사장은요. 항상 그 옷이 피, 피, 피로 범벅이 하는 겁니다. 짐승의 피로. 짐승의 피를 흘리는데 그 짐승이 그 피는 결국은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피예요. 근데 이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죄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죄는 계속 짓기 때문에 일평생 짐승의 피가 필요했고 제사를 드려야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1400년간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 안 받기 위해서 바친 짐승의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피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22:00]이렇게 죄 사함을 받는 일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반드시 드려져야 돼요. 여러분 죄는 마치 빚과 같아요. 빚. 일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자의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겠어요. 저는 어릴 때 우리 집안이 빚이 좀 있어 가지고 사업하시면서 부모님 빚을 많이 했어요. 빚만 하면 저는 막 지금 생각해도 막 온몸이 막 매일 그 사진가 아저씨 그분은 매일 우리 집에 찾아와 가지고 똑똑똑 그러면 우리 부모님들이 나보고 나가라. 내가 인물이 받쳐준다 그러는지 모르지만 나가 나가 내가 부모님이 없다 그래요. 부모님이 없다고 그래요. 아 부모님이 안 계시는 거짓말 한 것도 싫고요. 막 빚쟁이 아저씨 그 너무 싫은 거예요.

[22:56]여러분 삶이 무거운 겁니다. 빚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면 자유가 없는 거잖아요. 옛날에도 그랬어요. 이스라엘 역사 속에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는 거예요. 노예. 부모가 노예면 그 자녀들도 다 노예가 되는 거예요. 일평생. 여러분 죄가 그런 거예요. 대가를 지불해야 돼요. 죄는 심판을 불러온다는 거예요. 이게 성경의 거대한 핵심적인 논리예요. 하나님은 죄값으로 죽어야 하는 인간을 대신하여 짐승이 죽게 하셨다. 이게 구약의 제도예요. 근데 이 제사 제도는 매우 한시적이고 제한적이었어요. 완전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드디어 그리스도가 오셨어요. 단번에 단 한 번에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재물이 되신 그리스도가 오셨어요. 아멘. 그래서 그리스도가 이제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세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는 겁니다. 아멘. 죄로 죽은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신 것.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이 안에 뭐가 있어요? 죄 사함이 구원.

[24:06]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때가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이든 경제적인 문제든 우리가 뭘 도와요. 그죠? 아프리카 땅을 돕기도 하고 사람의 박스를 만들어서 뭐 요술을 돕기도 하는데 이 긍휼 사역입니다. 교회가 많은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교회가 해야 될 가장 본질적인 사역은 딱 하나로 압축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이 중풍 병자에게 선포하셨던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사죄 은총 이 복음의 한가운데 있는 거예요. 이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예요. 하나님의 편에서 치르신 가장 값비싼 대가 그 아들을 속죄의 재물로 드리셔서 인류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문제. 아멘.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문제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풀어내는 일이에요. 아멘. 여러분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서 치료제, 백신 개발에 여러 나라가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문가들이 하면 백신 개발만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이번에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나오면 좋죠. 근데 또 다른 바이러스들이 너무 많아요. 또 출연해요. 그래서 생태계 백신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오늘날의 지구촌을 둘러싼 이 생태계의 문제가 또 다른 바이러스를 끊임없이 배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이 돼 있다는 거요. 그러므로 더 빨리 더 강한 바이러스가 오늘 지구를 강타할 가능성을 우리는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태계적 변화를 해야 되는데 이 생태계의 변화도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인간의 탐욕과 연결이 돼 있어요. 다시 말하면 오늘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져 있으면 인간의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인간의 탐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구촌은 파괴되고 세상의 오염을 막을 길이 없어요. 아멘. 인간은 항상 여러분 부분적이고 지역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애를 씁니다. 중풍 병자도 마찬가지죠. 병이 낫는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병이 낫는 일이 눈에 띄는 일이기 때문에 관심도가 높아요. 그리고 죄 사함을 받는다 이것은 음 뭐 그래 드려도 안 해도 되는 정도로 생각해요. 또 그 죄 사함을 받는 그것이 뭐 금방 삶에 눈에 띄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새로운 삶은 반드시 죄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아멘. 아멘. 주님은 몸의 치유와 죄 용서의 문제를 같이 다루셨어요. 온전한 치유는 몸의 치유와 영의 치유가 같이 일어나야 돼. 아멘. 죄로 더럽혀진 몸과 영혼이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다 의미가 없어요. 여러분 전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두고는 전인적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위력이 가공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는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파괴합니다. 정신적인 것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모두 망가뜨려요. 관계를 깨뜨려버려요. 자신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깨뜨려버려요. 여러분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불법이 남무해요. 정의가 사라지면 질서가 무너지고 세상 곳곳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요즘 보십시오. 가족 간에도 전쟁이 벌어져요. 때로는 국가 간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어요. 어디든 평화가 없어요. 지금 수많은 이슈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갈수록 더 복잡해지겠죠. 그래서 여러분 성경의 세 가지 재앙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에요. 대표적인 게. 근데 이거 들여다보면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은 따로따로 떨어진 재앙이 아니고 연결돼 있어요. 그 안에 뭐가 있어요? 여러분 동일한 것은 인간의 죄가 숨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고통하는 코로나 팬데믹도 인류에게 무엇인가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와 무관하지 않다는 거예요.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죄의 역사는 인류를 비참한 상태에 빠뜨렸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그래서 바울이 이런 표현을 하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지금 오늘 우리의 세상을 그대로 바울이 지금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세상에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치유자가 되십니다. 아멘. 예수 백신이 최상의 해결책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 세상의 문제가 많고 인간이 가진 문제들을 우리가 다 풀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다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해결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명한 하나의 이슈는 죄 사함의 문제예요. 아멘. 중풍 병자를 바라보시며 주님이 집중하시는 건 죄 문제입니다. 아멘. 당신이 고통하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주는 불행이 비극이 당신의 죄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병 낫는 것으로부터 주님이 병 낫는 문제가 아니라 죄 사함의 문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병 낫게 하는 것은 뭐 주님이 아니더라도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많아요. 보니까요. 절에도 절에도 치유 사역을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절에 가서 100일 기도해 가지고 아 낫더라고요.

[30:05]무당도요. 자기 아래 귀신을 쫓아내더라고요. 별 일을 다 해요. 여러분 타 종교에도 기적이 다 있어요. 여러분 기독교에만 기적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가 있어요.

[30:27]아멘. 아멘. 그리스도가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아요. 서기관들이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드러내십니다. 당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시는데 당신이 오신 이유가 죄 사함을 선포하기 위하여요. 아멘.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든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거예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야 돼요.

[31:07]그래서 피해자가 진정으로 그를 용서해 줘야 돼요. 근데 성경의 관점에서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도 어떤 죄든지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아야 돼요. 아멘. 아멘. 그때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져요. 아멘. 자 다윗이 바세바 사건에 대한 나단의 지적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31:47]사무엘하 12장 13절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여러분 누구에게 죄를 범했다는 거예요?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는 거예요. 다윗이 바세바라는 한 여인에게 행한 악한 죄였지만 다윗은 지금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 그 죄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걸 고백해요. 아멘. 어떤 죄라도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바세바 사건의 이 간음죄를 간음죄로만 보지 않아요. 1계명부터 10계명까지 다 어겼어요. 하나하나 따져보면 다 지은 거 다 범한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는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것은 이유는 뭐냐?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요.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는 뭘까요? 죄 문제예요. 우리가 항상 초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죄 문제입니다. 곁길로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왜 주님에게로 나오는 것입니까? 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까?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이신 예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멘. 아멘. 여러분 죄 문제를 해결 받으셨습니까?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 문제를 그대로 두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여러분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은 상태 속에서 무슨 대단한 일 난다고 하는 거. 주님은 중풍 병을 보신 게 아니고 죄를 보신 게 이게 정확한 관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지만 주님이 보시는 관점은 죄 문제입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네가 사는 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다른 것들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뭐 일어나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러나 죄 문제는 아니에요.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 밖에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아멘.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여러분 주님 앞에 죄 용서를 받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될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 기쁨이 넘치는 거예요. 아멘. 평강이 넘치는 거예요. 아멘. 행복감이 일어나는 것이죠. 자유가 오는 거예요. 자유가 오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여러분 뭐 다 갖추고 있고 출세하고 뭐 성공했는데 왜 찝찝하고 삶이 깔끔하지가 않고 기쁨이 없고 뭔가 우울하고 삶이 무거운가요? 딴 게 아닙니다. 여러분 죄 문제예요. 죄 용서함을 여러분들 오늘 이 아침에 받기만 하면요. 여러분 날아갈 겁니다. 날아갈 거예요. 몸이 막 붕붕 뜨는 것 같은 자유함이 올 것입니다. 아멘. 아멘. 최근에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 가정에 중학생인데요. 중학생이에요. 중학생이에요. 2학년밖에 안 되는데 철야에 와 가지고 은혜를 폭포수같이 막 진짜 성령이 임하신 거예요. 아멘. 최근에도 철야 마치고 나서 기도하는 시간에 애가 막 막 그냥 떼굴떼굴 구르는 정도 막 막 통곡을 하는 거예요. 통곡을. 그 부모님들이 여가 갑자기 왜 이렇게 그냥 막 통성을 이렇게 막 그냥 통곡을 하니까 너무 이렇게 하니까 나중에 물어봤더니 지은 제가 많아 가지고 14살 정도밖에 안 되는데 뭘 지은 죄가 많은지 모르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뭐 이렇게 지은 죄를 다 좀 아 좀 부끄러운 얘기도 다 털어놓더라고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막 그 회개하면서 그 가정 안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와 가정이 막 부흥이 부흥이 이는 거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 가정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 사함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우리가 주님에 나온 이유가 그겁니다. 아멘. 아멘. 교회 10년 20년 아무리 다녀도 죄 용서함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면 헛 다닌 겁니다. 헛 다닌 거예요. 주님이 오늘 중풍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으라.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교회가 해야 될 일입니다. 교회를 나온 목적이 그겁니다. 오늘 11절, 12절 보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여러분 이 상은 어떤 상입니까? 자기가 중풍 병으로 깔아뭉겨 있고 있던 그 상이에요. 자기 등과 붙어 있는 직립 인간으로 걸어다녀야 할 활동해야 될 사람이 드러누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한 인생. 죄 때문에. 근데 주님이 그가 이제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아멘. 아멘.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 사함을 선포하실 뿐만 아니라 중풍 병자를 완전히 낫게 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37:51]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만날 때 죄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받고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아멘. 이 복음이에요. 이 복음. 중풍 병자처럼 지금까지 드러누었던 누워 있던 인생이라면 이제 자기의 짐승을 들고 일어나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자유인으로 살아.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고 살았던 피해를 입히고 살았던 인생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주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는 이 위대한 역사가 죄 문제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풀려지게 될 때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 오늘 여러분 이 죄 사함의 은혜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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