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우리가 한 사람의 생애를 살펴본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한 사람 안에 많은 메시지가 있죠. 그 스토리 안에 한 사람의 그 스토리 안에는 수 없는 사건과 또 그 사람을 연결하는 수 없는 얽혀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많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몇 달 동안 야곱의 생애를 좀 살펴 고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기원전 한 2000년 전이니까 오늘의 시점으로 보면 한 4000년 전에 인물이죠. 그리고 우리와 상과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 고대 근동의 족장으로서 그 야곱 굉장히 우리가 공간과 시간에 큰 개이 있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야곱을 살펴보면 야곱의 이야기는 흡사하게 오늘 우리를 살아가는 우리와 너무 닮아 있다. 예 생애를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이야기나 나의 이야기로 아마 중첩되는 그런 경험을 아마 앞으로 하실 것입니다. 어 근데 이제 야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 야곱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이야기야 하나님의 이야기. 한 사람 야곱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하나님 당신이 인가를 알려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인물 연구지만 야곱 연구지만 사실 하나님 연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도 마찬가지고 이삭의 생애도 마찬가지고 야곱의 생애도 마찬가지고 요셉의 생애도 마찬가지고 성경의 인물을 우리가 들여다 보면 그 인물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은 그 인물의 배경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가고 계시는가? 이제 그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어 어떤 인생이든지 하나님이 개입을 하시고 하나님이 그 인생의 당신의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다루기 시작하면 그 인생에 일어나는 수 없는 그 사건들과 경험들을 그 하나님이 다 모아서 하나님의 그 사람들을 변화시켜 가시고 그 조각들이 다 연결되어서 안심으로 이르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길로 나가도록 이 끄시는 그 손길을 이제 보게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기업이 없다면 그냥 사건은 팔편처럼 늘려져 있고 그것이 뭐 비극 뭐 불행스러운 수 없는 사건들이 그냥 팔편처럼 늘려져서 그것이 인생이 지나가다 보면 조각난 인생이 되죠. 아무것도 없는 불행한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그러니 이 기업을 만들어내는 야곱의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야곱의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거. 우리가 영하를 만들 때도 그렇죠? 그 감독의 의도를 가지고 그 영화를 끌고 가잖아요. 그 앞에 뭐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 감독이 의유를 가지고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거죠. 그 이야기를 끌고 고 가는 핵심이 누가 있느냐?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거.
[4:01]아멘. 그래서 이제 야곱의 얘기는 하나님의 얘기예요. 그래서 야곱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제 눈입니다. 이거 우리가 성경 전체 어떤 것이든 우리가 보면서 사람의 얘기가 아니고 이 성경은 사람의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책이고 하나님의 이야기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 메시지를 이제 드러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30]하나님을 이제 발견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거 뭐냐? 야곱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나중에는 결국은 그 인생이 이제 바뀌게 되죠. 그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야곱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경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은혜가 올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그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 그 하나님을 발견할 때 그 안에서 내 아인지 아인지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새로운 칭호를 그 이름을 주죠. 새로운 이름 이제 야곱 옛날에는 협잡꾼처럼 사기꾼처럼 살았던 너가 이제는 그런 인생을 끊내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된다라고는 새로운 이혼을 주신 거죠. 이거 뭐예요? 존재의 변화가 일어난 거. 그 존재의 변화. 그럴 때 하나님 안에 자기의 존재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이제 비로소 야곱의 인생에 하나님의 축복이 그런 이제 관통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방황인 것이죠. 오늘도 내가 왜 내가 누구인가? 그걸 알아야 내가 왜 여기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지? 가에서 뭐 아이들 그저 뭐 이렇게 뭐 팔면서 매일매일 그래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그 삶을 산다 할지라도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내 존재의 이유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그게 무슨 일이든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하나님 안에서 주시는 자유함이 있고 내가 이 세상에 그 연연하지 않는 그런 당당함이 이제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인물을 살피다 보면 이제 많은 이제 그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이 풀 스토리 앞으로 한 몇 달 동안 이 대장을 연속 극처럼 제가 여러분들하고 얘기를 할 텐데 그 연속 보다가 한 번 빠지 그래서 주의 그 아브라함도 인물 편에서 우리가 얘기하기가 참 좋은 인물 중에 하나인데 사실 아브라함은 우리가 좋은 목표긴 한데 사실은 아브라함의 생일을 자꾸 드듬다 보면 좀 기가 죽는 부분이 있어요. 본 그 자기의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그 용기 그리고 백세에 난 아들을 모리아에 산에 바치는 그 믿음 건접하기 어려워요. 너무 그런 분을 이렇게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기가 이삭은 좀 그 두 번째 족장입니다만은 이삭은 좀 밑한 인생이에요. 아버지에 좀 가려서 그런지 성격이 소격적이고 조용하고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한 번도 한 개 없고 수동적으로 늘 이렇게 아버지의 그 믿음에 더 밀려서 생활한 거 같고 장가도 40에 아버지가 겨우 시키니까 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뭐 특별한 걸 내세울 게 없어요. 좀 재미가 없는 고 그다음에 야곱의 아들 요셉이 있는데 요셉이 참 재밌죠. 언제가 또 요셉도 한번 다루고 볼 만한데. 그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어 그 어린 나이에 이국에 팔려가고 노예 생활을 했는데도 정말 성실하게 살고 뭐 유혹 요와도 이겨내고 이러면서 나중에는 이국에서 이방의 나라에서 총리까지 되잖아요. 그 우리가 어떻게 담겠어요? 그런 인물 하다가는 매주 또 집에 가면서 나는 안 돼 그러고 갈 거 아니야. 그래서 이제는 야곱을 선택했는데 야곱을 딱 보면은 아 좀 만만해요. 이게 이 정도는 나도 살겠다. 그 좀 용기를 줘요. 용기. 그 야곱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거죠. 굉장히 친숙하고 인간 미가 나고. 너무 잘난 사람, 너무 어 뭐 탁월한 사람은 인간 냄새가 좀 안 나잖아요. 근데 야곱은 인간 냄새가 확 나면서 뭐 나 피소다고 나보다 좀 약간 떨어지는 거 같고 그렇게 대 그래서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아주 그 사기 사기 야곱도 께 사기 사기꾼이지만 그 라반도 거의 사기가 거의 9단 정도 같이 막상막하 되는 그 집에서 재산을 모아가지고 나갈 정도니까 요도 뭐 있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이 야곱의 그 스토리 안에는 참 재밌는 것들이 연결되어져 있고 그 연약함과 실수와 또 그의 문제들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그게 많이 부각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이 부각될 수 있는 부각되는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설교의 내용에 소재감이 굉장히 풍성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1년 동안 야곱 스토리를 오늘 25장부터 30 한 23장까지 한 1년 동안 해도 모자를 정도로 굉장히 이 설교의 소재가 많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물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출생에서부터 이 야곱이 시작됩니다. 성경에 보면 출생부터 다루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아주 인물이 많이 나오지만 그 출생의 그 비밀까지 다 알려내는 성경이 제시하는 인물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출생 때부터 이 야곱은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 야곱의 족보의 족보 또 가정의 배경이 19절부터 20절까지 잘 잠시 언급돼 있죠. 이삭과 리브가의 사이에서 상동의 에스와 야곱이 태어나는 자 이 여러분 참 야곱의 그 아버지 이삭 그리고 리브가와의 만남 두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통해 자식을 낳는다 신비로운 것이죠. 외모도 그렇죠. 여러분도 이 결혼을 하고 자녀가 날 때 그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게 흡사한 그런 뭐 키, 눈, 얼굴에 모나 뭐 인체의 모든 구조까지 닮은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참 신기하죠. 우리가 DNA를 얘기하잖아요. 근데 이 출생을 할 때 출생하는 당사자가 이 출생에 관련된 어떤 것들을 스로 조절하거나 관여할 수 없죠. 그것은 일망주로 다른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요소. 그러니까 그 부모의 요소 부모들의 가지고 있는 DNA. 그 부모의 부모들이 가지고 이번에 이번에 작용 속에서 나온 것이요. 가끔 우리는 부모들이 애들이 말이 안 들어면서 안 나려고 하다가 나왔는데 저렇다 이러고 이제 그러는데 나는 계획이 없던 애를 나왔어. 뭐 이런 거 그런 사람들이 종족이 있는데 우리는 인간의 편에서 얘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정확하게 한 어떤 사람도 우연히 출생한 존재는 없어요. 예 뭐 어떤 경우에는 좀 불행한 사건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아이들도 있죠. 그런데 하나님의 편에서 는 오미한 섭리와 또 계이 다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인간이 스스로 이 생명을 낳겠다. 그래서 나아지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내가 이런 아이를 낳아야지 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천적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부부의 문제도 아니고 그 위에 그 위에 밑으로 올라가면 이제 아담까지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그 수 없는 만남의 그 작용 속에서 한 인간이 이제 탄생하는 이 사건은 그렇고 우연이라고 말을 .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의 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외부적인 요소들이 하나님의 관여하지 않으면 생명은 불가능하다. 오늘 그것을 잘 알려 주는 것이 21절의 말씀이죠. 21절 보면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간구함에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다. 이 부부의 결합을 통하여 생명이 잉태되는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이 이 간섭하시야 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사람이 만들 수 없어요. 유전학적으로 보아도 그 인태 인태 과정은 신비의 그 자체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 없음이 이루어질 수 없는 한 한 영혼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이 난자와 정자의 기가 막힌 젊은은 여러분 유전학적으로 보면 신비로운 일이잖아요, 여러분. 그런 만남을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난 거예요. 한 사람이라고 하는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 한 사람은 사실 기적의 현장에 있는 기적 자체를 말하는 거죠. 어떻게 부모를 닮은 아이가 그렇게 나올 수 있는지 아빠의 곱슬 머리를 그대로 그 곱슬 그 사이즈나 그 형태가 다로 나오는 거예요. 속는 엄마의 속눈썹까지 이 닮은 아이를 보는 순간 부모들이 경의로에 빠지는데 사실 그것은 외적인 요소만 있는 게 아니죠. 사실 외적인 요소 그래서 야곱의 아버함의 영향력이 그 야곱의 영향력이 의 품으로부터 하던 영향이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야곱이 흙날 1번째 아들인 요셉. 그 요셉을 편해하잖아요. 근데 이 편해 내력을 더듬어가면 아버지 이삭도 편해했잖아요. 아버지 이삭은 예수를 편해하고 그다음에 또 리브가는 야곱을 편해하는 이 편해가 가정 사이에 내려가면서 또 야곱은 요셉을 편해 편해함으로 그 가정의 형제들이 깨어지는 그런 불행을 만드는 요셉을 만들어 준 거죠. 자 이런 것들을 또 그 수로 가면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예요. 이삭 그 이스마엘 하갈로 통해서 났던 이스마엘은 내 팽겨치고 그 이삭을 나중에 애지 중지하죠. 그래서 하나님 그 바을 할 정도로 굉장히 애착을 가졌던 거 같아요. 이 편의 일종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어떤 행동과 습관과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열정이 누구보다 내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그냥 나온 게 아니고 열정이 뭔가 우리 을 갖고 있다는 거. 어떤 사람은 소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열질이다. 우리 뭐 기질도 얘기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수 없는 양가의 그 배경과 그 혈통 속에서 어 또 그 가정의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그리고 그 안에 수 없는 사건들과 연결이 돼서 믹스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특별히 이제 우리가 출생의 비밀을 이제 알려고 하면 그 가정사 그리고 양 여러분들 자, 우리는 앞으로 이제 야곱의 그 생애 속에서 그 문제를 풀어 대목이 있는데 그렇지 오늘 22절이죠. 서로 싸우는지라 그랬습니다. 여기 싸운다라고는 이 표현을 히브리 원문에 사용된 이 싸운다 이 단어는 아주 강한 단어예요. 그냥 뭐 말로 이렇게 톡톡 싸우는 게 아니고 경렬하게 스트롱한 워드예요. 경렬하게 싸운다는 것을 말합니다. 임신한 리브가가 매우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배 안에서 막 야단이 난 거예요. 경렬하게 싸운 거지. 여러분, 여기 싸운다는 것은 야곱의 인생을 전망하게 조망하게 해 주는 단어에 중요하나입니다. 사실 뱃속에서 싸웠던 이 야곱은 일평생 싸우듯이 살았습니다. 그 인생에 어떤 것도 쉬운 게 없었죠. 형의 장자권을 파축 한 거릇으로 형정하여 빼앗는 과정. 또 나중에 아내를 얻는 과정에서도 왜 삼촌과 전쟁을 치르죠. 또 그가 재산을 모는 과정도 전투고 또 형과의 제외 과정에서 이쪽 측발의 그 과정 또 딸티나로 인해서 야곱의 자녀 아들들이 보인 한 부족을 피로 물들인 사건들. 그리고 마지막 야곱 나로에서 하나님과의 싫은을 하는 장면에 이렇게 그 삶은 한마디로 혈투였습니다. 이 인생이 참 허막했어요 야곱이 나중에 자기도 고백하죠. 술회를 하기를 내 인생이 나그네 끼리 있는데 너무 혹 했다. 야곱이 인생이 이렇게 잔혹하고 또 투쟁적이고 굉장히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야곱이 투쟁 생활 살았을까? 출생의 비밀에서 드러나죠. 태속에 싸웠던 이 야곱은 출생하는 과정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움켜지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어요. 이거 나오면서도 형의 발꿈치를 딱 잡고 나온 거예요. 내가 먼저 나갈 거야. 그런데 사실은 동생이 된 거죠. 둘째가 되고 싶지 않은 장자의 자리를 원했던 겁니다. 이 자녀들도 보면 첫째로 아들 뭐 첫째 둘째째 셋째째 때라서 거기에 나오는 멘탈리티가 있어. 신드롬이 있어. 그래서 이 장남이 아니고 차남들을 가르쳐서 때로는 이 제이콥 야곱 신드롬이라는 그런 표현도 있어요. 그게 이 둘째가 가지는 독특한 심리적 성향이 있는 거죠. 그게 이제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이제 표현을 하는데 야곱은 남에게 나도 좀 지는 거죠. 지고는 못 사는 사람. 그런 항상 앞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 이름이 속이는 자 또 찬탈자 그런 그런 모습이죠. 처음부터 꼬여서 시작한 거예요. 살다 보니까 문제가 생긴 게 아니고 시작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했습니다. 자 그런 이제 이런 경쟁하고 투쟁하고 이런 것들이 야곱에게만 있는 게 아니죠. 사실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경쟁심 그죠? 야곱이 이 둘째가 되게 싫은 그 형의 그 발목을 잡고 막 쟁취하려고 하는 그 경쟁적 태도는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쟁사잖아요. 지금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전쟁이 뭐 가득합니까? 입시 전쟁도부터 시작해서 취업 전쟁, 징업 전쟁 뭐 모든 생존 전쟁을 우리가 치르면 살아갑니다. 우리는 남에게 지는 것이라고 이과자는 마음 그 인간의 심리 안에 다 있는 거죠. 니체의 그 철학의 핵심 주제가 권력 의지 그래서 바세바의 사건에서 무너졌던 자신에 대한 참여를 기록하는 인간은 이 성경적 관점은 뭐 살다가 사건과 환경 때문에 나쁜 지 다른 게 아니고 본래 나쁜. 그러니까 이 이 뿌리가 아예 죄인이죠. 그래서 그 자연스럽게 그 악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야곱의 경정심 남달라서 지나칠 정도로 투쟁적이고 강한 집착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이렇게 과하죠.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고 어 여러분이 욕망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욕망이 너무 강한 게 문제예요. 머리가 나쁜 것도 문제지만 안 너무 좋은 것도 문제예요. 사기를 치는 사람들 다 머리가 좋잖아요. 머리가 안 좋으면 어떻게 사기를 치겠습니까? 보여주면 보이스 피싱이나 인터넷 핵이 사기 핵학을 부르는 사람 머리가 비상해요. 이거를 잘못 쓴 겁니다. 야곱이 그런 삶을 살아온 거예요. 머리가 너무 똑똑하고 비상하기 때문에 한 바퀴만 돌아야 되는데 몇 바퀴가 돌아 버렸어. 그러니까 이게 늘 사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서두르지 않았다면 충분히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해 놓았어. 사람은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될 사람인데 그런 추억을 좋아하는 거예요. 항상 마음이 급해요. 그래서 하나님보다 더 압슨 것이죠. 주관이 두렵다고 너무 주도적인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 발꿈치를 잡았다. 이게 뭐예요? 주도적이라는 거예요. 추진적이 있고 수동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목표를 한번 정하면 물 나쁜 것 하나님은 이 이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자 했는데 이 야곱도 이 복에 대한 강한 짐을 갖고 있었어요. 그 태에서 싸웠던 것이나 형의 발꿈치를 잡은 것이나 형으로부터 장작권을 사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뭐와 연관되어 있습니까? 복에 대한 짐이에요. 그 그런 일평생 복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복을 좋아하죠. 복을 여러분들도 복 좋아하시죠? 복도 좋아하시고 복구도 좋아하시고 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안 가 . . . 그 복이 흘러가니까.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들이 있으면 여러분 한 사람만 복을 받아도요. 주변이 다 복 받아요. 그러니까 뭐 뭐 여러분 남편이 막 이러지 말고 그냥 아내가 복 받아 버렸어요. 그래서 그 아내 복이 너무 흘러가면 남편이라 갈 거 아니에요, 여러분. 또 아내 때문에 내 이 여자 만나가 내 고생한 거지 그러지 말고 복을 확 남편이 받아 버리시. 그러면 그 복이 흘러가면 되는 거. 괜히 복도 없으면서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다. 내가 복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이 복을 받아야 돼요, 복을. 성경에는 굉장히 복을 강조하고 있는 거죠. 사실 창세기부터 끝까지 복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 복 받는 인생. 성경이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 복의 건이세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에 그를 부르시고 약속하신 게 뭐예요? 네가 복의 건이 될지라는 거예요. 너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일을 달부터 복을 확 받았어요. 막 받아 가지고 이 복이 흘러가야 돼요. 흘러가요. 그래서 여러분 복 받을 목적이 분명해야 되죠. 왜 복을 받아야 돼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하나님 그런 복을 안 주세요. 함께 다른 사람과 나누는 그 복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거예요. 물론 이 복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게 복이냐? 이거는 앞으로 또 따로 규정을 좀 해야 되겠죠? 어떤 게 복이냐? 우리가 잘못 알면 이 또 오해할 수가 있어요. 그 보면서 또 이렇게 복의 개념이 또 바뀌는 거란 말이죠. 근데 이 복은 뭐 구약에서는 상당히 물질적인 부분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 형통 이런 단어를 썼잖아요. 영어 단어에서 여러분 10편 1편에 같은 데는 형통하리로다. 이거는 영어 성경 보면 스스라인 말이야. 성공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거 성공이 뭐예요? 어 돈을 벌고 뭐 사업이 잘 되고 건창하고 이것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물론 발음 방법으로 보려야 되겠죠. 근데 이런 복들을 받는 건 사연스러운 것이고 또 야곱이 복을 구한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씨가 어떤 사람입니까? 이씨는 복에 되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에요. 복의 개념이 없어요. 그런 철저히 눈앞에 당면한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 배고프다. 배고프면 뭐 파죽 한 거로서 장자권 너 사든지 말든지 뭐 그게 중요하냐 뭐 사 그러고 뭐 파죽 한 거만 줘 뭐 이러면서 먹고 그냥 하고 그냥 뭐 땡큐 그러고 이런 게 인간적으로 보면요. 다음 줄 날 우리가 에스와 야곱을 좀 비교하겠습니다만은 에스는 굉장히 나이스하고 뭐 남성적이고 매력이 있고 성격도 화끈하고 인간적으로 보면 괜찮은 사람이야. 야곱은 약간 반맛이라는 그런 표현이 맞는 현대적 영어로 보면 그런 사람이에요. 근데 이 인생이 전혀 다른 길로 걸어가는 거죠. 사실 같은 사람은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매력적인 그러나 예수를 그렇게 . . . 나누이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였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게 예언의 말씀이죠. 예언의 말씀이 예언의 말씀인지 이 말씀의 초점은 뭐냐면 이 작은 자가 큰 자가 작은 자를 심글 것이다. 이 야곱에 대한 얘기죠. 야곱이 지금 차자로 이렇게 나왔지만 작은 자지만 얘가 큰 자다. 장남이 차남을 섬길 거다. 이 두 민족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이 지금 23절에 메시지는 뭐냐 하느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시기로 디자인되어 있다는 거야. 디자인. 디자인이 다 돼 있다는 거. 문제는 이 야곱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의 그 복을 얻고자 하는 것보다 자기 힘으로서 힘을 이 복을 쟁취하고자 한 거. 여러분 이게 이제 세상적 방적이죠. 그래서 우리가 야곱을 계속 우리가 두 번 보면 신자이나 어 비신자처럼 살아가는 아주 세속적인 신자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거죠. 여러분 세상에 인기 있는 책들을 보면 성공하는 법 가르쳐 줘요. 돈 버는 법도 가르쳐 주고 사람을 어떻게 관심을 끄는 법도 알아주고 경쟁에서 이기는 법도 가르쳐 주고 뭐 뭐 성공학도 있고요. 그죠? 성공학 이런 거 있잖아요. 또 성공으로 이끄는 일들을 위해서 멘토를 해 주고 프로그램들도 있고 이 말은 전부 다 이 세상에서 들려주는 메시지를 잘 들어오면 너도 뭐 하나님에게 갈 필요도 없고 네가 복을 만들 수 있어. 네가 복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이런 일종의 메시지예요. 하나님께 갈 필요도 없고 이 돈을 벌고 성공하고 번성하는 이것은 기술에 속한 것이고 네가 잘 선택만 하면 가능하다. 이게 이 복이 마치 인간의 힘에 의해서 그래 될 수 있는 것 말씀 이걸 위해서라면 돈이 된다면 자기의 유리한 일이라면 독을 품고 쟁취하려고 했던 사람.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유행이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가슴 속에는 날카로운 입발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여차하면 결코 지지 않으려고 하는 공격성이 튀어나오. 무엇을 말해 줍니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을 빼앗아 내려고 하는 집착. 근데 이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복은 점점 더 멀리 도망간다는 사실. 예를 야곱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붙들어야 될 원리 중에 하나는 뭐냐면 복이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로부터 수여해 주시는 거라는 거죠. 위로부터 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가 축복이라는 단어를 요즘은 그냥 혼용해서 서는데 축복을 주시옵소서. 뭐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러는데 사실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축복이라는 단어는 복을 구하는 거. 보고 왜 이렇게 아니고 우리가 복이 복은 인간이 스스로 생생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복의 그런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찬송과 중에서도 복의 그는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하나님 복의 하나님 하나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 그래서 우리는 이 야곱의 스토리 속에서 또 하나 우리가 분명하게 발견하는 것은 이 야곱의 복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한 강한 사람이에요. 근데 야곱이 복에 대한 강한 집착을 고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짐이 더 강하세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요. 우리가 복을 구하지고 강 영광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우리에게 복을 더 주시기를 간절히 갈망하시는 분이시죠. 성경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 앞으로 우리가 야곱의 성을 통해서 만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이 스스로 복을 찾아가죠. 그럴수록 점점 하나님과 반대편으로 도망치잖아요. 하나님은 또 그를 추적해 가시고 성경은 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 끊임없이 추적하시고 그리고 마침내 야곱을 그 랭 위에 올려 놓죠. 여러분 사실 야곱이 그 야복나루 사건이 있기까지는 재산도 많이 모으고 가족도 그러면서 우리가 싸운 것들, 우리가 포기라고 믿었던 것은요, 한 방에 날아갈 수 있어요. 그 위기의 순간이 야곱에게 온 것이죠. 그래서 적으로 망했던 그 순간 그 밤 외로운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 완전히 사자가 기울어 싸워 이겼다고 하는 표현은 뭐냐면 야곱이 이긴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이제 응치를 딱 한 데 쳐 주고 젤루그리게 하면서 그의 항복을 받아내신 거예요. 그리고 이제 네가 이제 너의 인생을 이제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하겠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그 선언을 그가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야곱같이 말 안 듣고 자기 고 아멘. 그렇죠? 그 야 야권 나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마침내 그 야곱을 코너로 모셔서 복을 받게야 하고요 마시는 하나님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야곱의 생을 통해서 우리가 앞에 오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우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사연이 좀 더 복잡해지고 더 꼬이고 더 어려워지거나 아니면 좀 더 . . . 말씀 그 가나안을 40년이 돌았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게 아니죠. 그들의 고집에 완악함 목이 고은 백성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그 고집스러운 그 폐역한 그것들. 여러분 바로가 애굽의 바로도 마찬가지잖아요. 애굽에 바로도 열 번까지 제한 가지 않아서도 됐잖아요. 열 번까지 안 가도 되는데 고지울 표니까 완악하니까 어떻게요? 결국은 그 애굽의 장자들이 다 치어지는 엄청난 재앙이 임하게 되죠. 여러분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다 예정되어 있고 이미 복을 주시고 또 더 큰 복을 주시길 원하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길을 또 우리 스스로 우리가 복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쟁취하고 세상 속에서 안 믿는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이 해 주실리 없는 거죠. 결국은 우리 스스로가 폰으로 몰려서 나중에는 엉치배가 부러지고 그 야곱이 야고로만 있으면 절대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로 바뀌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 이스라엘은 뭐예요?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한 삶이에요. 이스라엘이 되기까지는 복을 줄 수가 없어. 복을 줘도 그 복이 복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복이 안 돼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 그리스도 이 그리스에 어 하나님이 그리스이 온전하면 복을 주시면 이 복이 위로부터 흘러요. 위로 이 위로부터 흙이 온전한 그릇은 복을 넘치게 주시면 이 복이 흘러가면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이 그 흘러가는 복의 혜택을 받게 되죠. 근데 이 복이 깨어져 있으면 이 그릇이 깨어 있는 사람은 부어지면 넘치는 게 아니고 세 나가는 거예요. 이 복이 낭비죠. 낭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기를 원하어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랬잖아요. 그 복이 흘러 어 넘치기를 원하요. 근데 그리스 온전해야 돼요. 그 온전하지 않으면 이 복이 밑으로 세 나가 버리잖아요. 그 하나님의 복이 낭비되는 걸 원치 않아요. 복이 흘러가게. 한 사람이 그 가정에 복을 받아면 그 가족 전체가 복을 받아요. 그렇죠? 여러분들 주변에 그룹 안에 한 사람만 복을 받아도 그 복이 영향력이 대단한 거잖아요. 그 요셉이 그러잖아요. 무승한 가지 담을 넘었도다. 그 요셉 야곱과 70인이 다 복을 받아버리고 애굽이 복을 받고 애굽 주변의 나라가 복을 받잖아요. 그 요셉이 가지가 무성한 가지가 되고 탐을 넘어버리는 이런 은혜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뭐냐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렇습니다. 이 야곱이 야고로만 있으면 절대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로 바뀌어져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복 받는 것보다 더 우승 중에 것은 복을 받을 사람으로 준비되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생애 속에서 계속해서 그의 변화를 이제 다듬어가시죠. 그래서 우리가 야곱 생회를 통해서 그가 어떻게 변화되어져 가고 있는가. 또 인간의 얼마나 변화가 힘든가 이런 것들을 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그를 변화로 이끌어내시고야 마시고 이끌어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 이것을 우리가 야곱스도리에서 이제 마주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야곱을 다루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삶을 구체적 이끌어 주시고 따뜻함을 주시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삶에 이렇게 터치할 때마다 너무 거부하지 말고 그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런 태도. 그래서 저는 이 인물편을 살펴보면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밀착하셔서 우리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우리의 인생을 비져 가시는 그런 신실하시고 섬세하시고 그렇게 오묘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고 이 인간 사이에 크고 작은 수 없는 사건 속에 밀고 돌아서 관녀하시고 개입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당신의 그 뜻대로 비져 나가시는. 근데 이게 우리의 고집이 꺾이고 고집이 내려갈수록 하나님은 굉장히 기가 막히게 우리를 다 비으시는데 이게 시간이 오래 안 걸리는데 이 고집을 피우면 이게 굉장히 롱 스토리가 되면서 수 없는 우여곡절을 만들어내서 이 야곱이 안 해도 될 고생을 수 없이 많이 해 가지고 나중에는 막 그냥 막 그냥 반창고 붙이 막 이렇게 된 거죠. 여러분들 그런 분들이 한 분을 없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길 앞에 기끄이 순종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고 야곱이 변하 이스라엘에 대한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축복 축복을 내가 쟁취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수여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사실. 이미 예정된 그 복을 내가 너무 성읍하게 내 방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고자 할 때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굴곡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