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사도행전을 가르쳐서 우리는 성령 행전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사도행전 성령 행전, 뭐 사랑 행전 여러 가지 있는데 사도행전이라는 그 이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래서 사도행전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성령 행전이라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을 움직이게 했던 힘은 성령이시기 때문. 그 사도행전을 보면 겉으로는 사람들이 사도들이 뭐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사람이 아니에요. 성령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주도하시고 움직여 나가시는 교회가 바로 사도행전의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납니다. 사실 뭐 성경이 창세기에 창조의 사역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우리 삼이 그 성령 하나님께서도 창조의 사역에 출발을 하셨고요. 예수님의 생애도 보면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자연적 방식으로 임신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되셨던 독특한 방식.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이렇게 요단강에 나오실 때도 하늘의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 같이 임하셨어요. 또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들이 나오고요.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계속 성령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어 요한복음에 보면 마가 어 그 다락방 강화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마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 그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에게 기도하는데 그 기도의 제목은 뭐냐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그 보혜사가 너희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겠다. 또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또 16장 7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겠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지상에서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왜냐하면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고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겠다. 이게 보혜사라는 이름은 어 이름의 뜻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돕는 위로자고 또 상담자고 교사고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 그런 교사, 가이드 역할을 하시는. 이 보혜사다라는 그 이름인데 사실 예수님이 보혜사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보혜사예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조언을 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 보혜사인데 이제 그분은 육체에 공간의 한계를 갖고 계셨는데 그분이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 그 말은 예수님과 같은 분을 보여 주시는데 그분은 육체로 오신 분이 아니고 영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 영으로 오신 그분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케 하시는 그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죠. 자 그런데 이 보혜사를 주님의 공생애 동안에도 제자들에게 얘기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걸 잘 인식을 못 합니다. 그러나 왕창 다 깨어지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 승천 직전에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이 뭐냐면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늘에서 능력이 부일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머물러 있어라. 성령을 기다리라. 약속하신 아버지가 약속하신 그 성령 보혜사가 임할 것이다. 그때까지 꼼짝하지 말고 그대로 그냥 기도의 힘쓰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근데 이제 전에는 성령에 대한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다가 많이 실패하고 깨어지고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의 힘쓰고 있었습니다. 정말 말씀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온전히 그 위에서 그 보혜사가 임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2장 1절에 이제 드디어 오순절 날이 임하고 그 약속하신 날이 이제 이르러서 성령이 임하신 거예요. 오늘 2절 3절에 보니까 홀연히 홀연히 하늘로부터 극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집에 가득하며 불이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약 교회가 출발하는 장면입니다. 새로운 공동체가 역사 속에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유대 종교와는 전혀 차별화를 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공동체가 생긴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낡고 무기력했던 종교로 있었던 그 유대 종교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었던 그런 낡은 제도화 되어져 있는 그 종교를 등을 돌리시고 하나님이 새로운 형태의 생명의 공동체를 잉태하시고 이제 출발하게 하신 거예요. 이게 오늘 신약의 오늘 우리가 모이고 있는 교회의 태동이 언제? 사도행전 오늘 2장에 출발의 점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다른 유사 종교 비슷한 어떤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생명의 공동체예요. 기존의 제도적인 어떤 털이나 어떤 그런 문화나 조직이나 건물이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았어요. 오직 유대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파괴적이고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이제 기독교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신약의 교회들은 끊임없이 사도행전을 바라보면서 2000여년 전에 일어났던 독특한 새로운 형태의 어 뉴 소사이어티 새로운 사회,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어떤 이 모임을 만드셨던 이 원형을 자꾸 바라보고 이 원형이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그 역사들이 오늘도 계속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어야 교회의 생명이 있고 교회의 뭔가 우리가 기대할 것이 있고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그런 혁명적인 역사들이 일어나는 그 생명력의 역사들을 경험하는 그런 일들이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사도행전 2장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그 교회들 안에 특성들이 굉장히 많지만 오늘 우리가 몇 가지만 좀 추려서 좀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데 첫 번째는 사도행전의 성령이 이끄시는 성령의 공동체 성령이 주도하시고 성령께서 그 모든 것을 일으키시고 했던 그 교회의 특징이 어떤 거냐? 첫 번째는 뭐냐면 이 역동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다이나믹함입니다. 다이나믹. 사도행전의 교회의 특징이 뭐냐면 역동성이에요. 사도행전이라고 그러잖아요. 행전이라는 그 말에는 뭐가 있느냐면 이 움직인다는 거예요. 액트라고 그러잖아요. 이 사도행전을 영어로 액트라고 그러는데 행동하는 겁니다. 그냥 움 움츠려 있고 그냥 머물러 있는 가만히 있는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행전이래요. 액트라는 액트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어떻게 사도행전에 임하셨습니까? 바람과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셨다 그러는 거예요. 불과 바람은 자연 현상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이미지죠? 여러분 바람이 뭐 초속 뭐 이 태풍 같은 걸 불 때 보면 뭐 집도 날려 버리잖아요. 뭐 자동차도 그냥 날려 버릴 수도 있는데 이 강력한 이미지가 불이에요. 아 바람입니다. 또 불도 강력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 같은 것은 이 호주 같은 데 산불이 한 번 나면은 걷잡을 수 없어요. 그러면 헬기가 막 물을 붓고 막 소방수가 하는데 못 꺼요. 이 걷잡을 수 없이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것을 제어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상태. 여러분 역사 속에서 성령이 역사했던 이 초대 교회는 역동적입니다. 의식화되고 형식화되어 있던 유대 종교 안에서 볼 수 없는 일이에요. 백성들이 강요나 억압에 의해서 하는 것들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래서 베드로가 설교를 한 번 할 때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000명. 여러분 그 다음에 5000명. 나중에 숫자를 세지 않습니다. 허다한 무리들이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이 무슨 말을 하느냐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설교를 하는데 그 당시에 기존의 유대 종교라고 하는 틀이 강력하게 있는데 소수의 형장이 이슬로 사라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이 뭐 외친다고 이런 역사가 일어났겠습니까? 3000명, 5000명 허다한 무리들이.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통제가 불가능한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거죠. 여러분 약속했던 성령이 임하시고 위로부터 능력이 임피울 때 성령의 공동체 안에는 무슨 일이 나면 구원의 역사가 파도를 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이 사도행전의 가장 키가 되는 핵심 구절인데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말씀의 표현이 뭡니까? 복음의 역사가 사도행전의 교회에 일어나니까 이게 뭐 소수의 어떤 부족 종교가 아니고 이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소수의 어떤 한 민족에게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막 치고 나가는 강력한 그런 복음의 역사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복음이 마치 폭발하듯이 번져 나간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시는 공동체 이런 일어나는 일어난 것입니다. 잠잠하지 않아요.
[10:17]요란하고 오늘도 이게 말씀에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이 성령이 전부 다 신약 성도들의 입을 다 열어 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시면 잠잠하지 않아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요. 막 입이 열려요. 아마 여러분 입은 구정 구정에 모여서도 이 가족들에게 입이 열려지지 않았었어요, 여러분? 떡을 먹을 때만 열립니까? 아닙니까?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마치 핵폭탄 같아요. 뭐 지금 생각은 상상을 초월하는 쓰나미 같은 강력한 이 본물처럼 밀고 들어가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게 역동성이에요. 성령이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이 뭐냐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공동체 전체가 움직여 나가고 이런 역동성이 무브먼트가 파장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내가 하려고 해 보세요, 여러분. 얼마나 힘든지. 10분도 하기 힘들어요, 여러분. 근데 성령이 불을 붙여 버리면 성령이 기도하게 하시는. 방언을 세워요, 여러분. 피곤한 줄 몰라요.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하면요. 막 깽깽대다가 열 받고 올 때가 많아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그냥 그냥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도 일어날 거예요. 별말 안 했는데 꼬꾸라져요. 예수 믿을 사람이 준비된 영혼들을 주변에 그냥 붙여 놓으세요. 가는 데마다 몇 마디 하는데 그냥 다 넘어지는 다 예수를 믿겠다는 거예요. 난 어떤 사람에게 전도했는데 옆에 듣고 있던 사람이 예수를 믿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전도할 말을 주세요, 여러분. 내가 뭐 고민할 것도 없어요. 뭘 전해야 될까? 고민할 것도 없어요. 성령이 내 입을 주장을 하셔서 가장 적절한 말을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주셔서 그 영혼이 뒤집어지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 사도행전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요. 공식이 따로 없어요. 그냥 뭐 어떤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에요. 모든 120명의 사람들이 성령의 불을 받으니까 그게 퍼져 나가니까 홀씨처럼 연병처럼 폭탄이 터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뭐 그냥 뭐 그냥 가는 데마다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별일이 없는 그런 교회가 아니에요. 여러분 정확한 공식이 하나 있는데요. 우리가 반드시 기억돼야 될 거 뭐냐면 하나님이 이런 인간의 힘으로 할 수가 없어요. 두 번째는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죠. 성령이 이끄시는 공동체의 특징은 자유로움이에요. 사람이 움직이려고 하는 곳에는 자꾸 사람이 뭔가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그 제도화시키고 조직화시키고 행정력을 동원하고 거기 자꾸 인간의 힘이 들어가요. 여러분 모든 종교들은 인간이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종교라고 하는 말은 그 종교의 특성은 인간이 만들었어요. 여러분 그래서 종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인간 냄새가 나요. 인간이 만들었다는 게 표가 나요. 그러나 여러분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그분이 성령이 교회를 일으키신 거예요. 몇 사람의 모임이 그 예수를 죽고 난 다음에 몇 사람의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으쌰으쌰해 가지고 뜻을 같이하자 이래 가지고 교회 결사대를 만들고 교회가 만든 게 아니에요, 여러분. 성령이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 유대 종교는 그 당시에 제도적인 틀로 확고하게 잡혀져 있어서 그 틀 그 낡은 틀로 백성들을 이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어요. 종교는 결국은 뭐냐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영, 두려움을 주어서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게 있어요. 여러분 이 종교 안에는 뭐가 있냐면 두려움이 있어요. 두려움. 그래서 여러분 종교의 영을 받으면 안 돼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영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아멘. 교회 안에 우리의 그런 자유의 아들의 영이 오면 뭐예요? 자유의 영이 오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데 여러분 억지로 나오는 분이 계세요, 여러분? 억지로 뭘 하는 분이 계세요? 여러분 초대 교회가 무슨 직분으로 교회가 움직여졌습니까? 직분은 없어요. 초대 교회 뭐 고작 한 게 일곱 집사 세운 거 밖에 없어요. 여러분 초대 교회는요. 메가처치입니다. 3000명, 5000명, 허다한 무리 최소한도 2만 명 이상 모이는 메가처치예요. 근데 무슨 조직이 있어요? 회의를 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건물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그들 안에 무슨 직분으로 세워 가지고 직분으로 움직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나는 직분이 있어서 봉사한다. 그건 사도행전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거예요.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전통이 쌓이면 조직의 힘이 생기고 조직을 강화하고 그래서 그 조직의 힘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얼 매고 부담을 갖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초대 교회는 그게 없어요, 여러분. 각자 각자 그냥 즐거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 알아서 하는 거예요. 문제는 뭐예요? 그 안에 주의 영이 임하신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현대 교회는 이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교회가 딱 스탑이 돼요. 그게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근데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도 교회가 움직이는 것은 왜일까요?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회는 언젠가는 죽게 돼 있습니다. 성령이 그 교회를 움직이시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꼼짝도 안 하려고 하는 그런 교회가 될 때 성령이 주도하시는 교회가 되면 그 교회는 성령이 책임을 지실 거예요. 직분이나 뭐 이런 제도나 이런 거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중요한 것은 초점 딱 하나예요. 성령을 받았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남종과 여종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니 말씀합니다. 여러분 여기 남종이라는 표현, 여종이라는 표현 속에는 뭘 볼 수가 있습니까? 이미 계급과 제도와 조직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은 다 없어져 버렸다는 거예요. 그냥 남자면 되고 여자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위에 성령이 임하시면 된다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오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은 것이 세월이 짧다고 좀 아는 게 부족하다고 성경 지식이 얕다고 여러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성령을 구하시고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들의 삶은 달라질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가 내 안에 깊은 확신으로 다가오고 이 세상이 흔들 수 없는 그 진리에 대한 그 경고함이 내 안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잡히게 되면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7:08]그래서 여러분 오늘 여기 중요한 것은 뭐냐면 조직이나 세상의 힘과 인간적이고 인위적으로 뭔가를 움직이려고 하는 요소가 초대 교회는 없고 오직 성령이 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스스로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교회를 섬기겠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성령이 이끄시는 공동체의 특징이 밝아요. 밝아. 사도행전 2장 46절에 보니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뭘 때마다 같이 먹는다. 아주 중요해요. 잔치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을 같이하고 그들이 하나가 되고 떡을 떼고 모이기를 힘쓰고 지금 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도행전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마치 천국과 같은 곳이에요. 4장을 보면 마음을 물건을 통용하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의 것을 자기 거를 여기지 않는 이 완벽한 가족 공동체. 2000년 전에 이런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누가 이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성령이. 성도들 관계 안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야말로 완벽한 공동체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활달하고 얼마나 밝고 얼마나 천국과 같은 그런 분위기인 줄 몰라요. 이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제도권에 있는 제도적인 교회였던 유대 종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유대 종교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가 보여준 것 것처럼 무겁고 칙칙하고 아주 경직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율법의 그 율법 아래서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수 없는 율법 조항과 장로들의 유전들을 가지고 서로를 판단하는 분명한 경계선을 가지고 얼마나 따지고 살벌한 분위기예요. 살벌한 분위기예요. 안식일에 대한 규정만은 얼마나 많은 세척을 만들어서 그냥 숨도 못 시게 백성들을 얼거 매었던 그 시대의 그 상황 속에서 얼마나 어 어둡고 칙칙한 것입니까? 그러나 사도행전의 교회는 기쁨이 흘러넘치고 축제의 장이고 뭐 날마다 모이기를 힘써요.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는 게 그냥 뭐 좋아서 모이기를 힘쓰지 좋지도 않은데 모이기를 힘쓰겠습니까? 뭐 좋지도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또 뭐 밥을 먹겠습니까? 그들은 날마다 모여서 뭐예요? 음식을 나눴다는 거예요. 모이기를 힘썼고 음식을 나눈다. 이게 되는 데는입니다. 되는 데는. 여러분 사랑방도 막 먹는 게 풍성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먹을 때마다 막 모일 때마다 먹 잘 먹는 그 사랑방 잘 되는 거예요. 괜히 뭐 우리 팀은 간단하게 하지 이런 이런 데는 다 그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안 되고 있는 거예요. 밥 먹기도 해도 막 남고 말이죠. 막 옆에까지 옆집까지 갖다 주고 막 이런 데가 되는 데는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얼마나 여러분들이 안에 기쁨과 밝은 그런 이미지가 있습니까, 여러분? 활달하고 생기가 넘치고 축제화되고. 그러면 여러분 이 사도행적적 교회는 어떤 교회예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행복함이 있는 거예요. 행복함이 있는 거예요. 그런 전도를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자동 발생적으로 내 안에 그 행복함이 넘쳐나니까 전도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어떤 사람은 뭐 전도 뭐 세미나를 해야 뭐 하고 그런다는데 그런 다 다른 얘기인데. 내 은사를 못 받았다고 그런 거 다 그 변명입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이 있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좋아하면 입이 열리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와 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너무 좋으니까 와 보라고. 와 보라고. 안 되는 교회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누가 오려고 그러면 오지 마라고. 나도 지금 힘든거든. 네까지 이 이 알보저 운명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나도 어쩌다 보니까 이 조직에 걸려 가지고 말이야. 빼도박도 못 하고 있다. 너 오지 마라고.
[21:10]불만이 많고 행복하지 않아요.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날마다 싸웁니다. 경직되어 있습니다. 뭘 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날마다 안 하려고 하고 다 빼는 거예요. 다 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특징을 보면 잘 모입니다. 모이는 게 좋은 거거든요. 여러분 어디에 사람이 모입니까? 밝고 행복한 곳 아니겠습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곳은 어둡지 않습니다. 활기차고 즐거움이 넘쳐납니다. 성령의 열매가 뭡니까? 희락입니다. 희락. 즐거운 거예요. 성령 충만이 뭘까요?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하지 못하는 거 하나가 있는데 웃는 거 잘 못 해요. 마귀 웃는 거 봤습니까, 여러분? 좀 다 다 인상을 쓰고 경직되고. 웃는 얼굴 본 적 있습니까? 즐거움을 몰라요, 마귀는. 여러분 예수를 믿는데도 얼굴이 어두우면 이상한 거예요. 어떤 사람 얼굴을 머리를 반쯤 가리고 말이죠. 어색하게 긴장하고 날마다 그냥 굉장히 심각한 사람들 마귀 사촌이에요, 여러분, 사실은. 어떻게 여러분 예수 믿고 성령이 충만한데 내 안에 어둠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 영혼에 햇볕이 치니 밝아지게 돼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 주일 날에 와서 주의 영이 임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분들 안에 들어오려고 했던 우울증도 도망가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밝아야 돼요. 그래서 정말 춤추는 공동체. 주일 날에 와서도 얼굴이 굳어 있는 분들 보면 제가 기도 제목이 돼요. 저분 무슨 험난한 인생을 살았기에 주일 날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얼굴이 안 펴지나. 성령이 임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성령이 임하실 때 축제가 되는 거예요. 저는 신약의 공동체는 축제예요. 잔치예요. 우리 예배가 밝고 참 좋잖아요. 여러분들 웃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도 이렇게 막 웃는 사람들은 건강한 분이에요. 근데 한 번도 지금 몇 번 웃었는데도 안 웃고 있는 분은 지금 병에 걸리기 직전이든지 하여튼 막 위장 장애든지 하여튼 심각한 정신적 쇼크를 받았든지 치료가 필요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 또 다음 주부터 우리가 예배 시간도 조정하고 조금 여유를 가지기 때문에 또 예배 순서도 좀 바꾸고 역동성을 좀 살려내고 우리가 관전하는 예배가 아니라 좀 이렇게 보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가 다 같이 참여하는 그런 예배로 바꾸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예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신바람 나고 춤을 추고 싶은 그런 영적인 무브먼트가 예배 안에 일어나게 되고 또 자유함이 있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