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본질을 붙들면 살아난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요한계시록 2:1~7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본질을 붙들면 살아난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요한계시록 2:1~7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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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어 특별히 오늘은 이런 이 종교 개혁을 한 지 49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종교 교육을 한 지 495년이 되고 10월 31일 10월 마지막 주일 우리 종교 교육 주일로 이렇게 지킵니다. 종교 개혁의 정신이 무엇인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좀 잘 확인하는 것들이 필요한데요.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가 다니는 교회를 우리는 개혁 교회라 그렇게 부릅니다. 어떤 분은 우리 교회가 어디에 속하죠? 뭐 어느 교단이죠? 이렇게 물으면 수영로 교인 줄은 아는데 어디에 속하는지 이게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 계시죠. 우리 교회가 어느 교단이죠? 수영록에요? 장로교입니다. 장로교. 이 장로교는 개혁 신학을 표방합니다. 개혁 신학. 여러분 한번 들어 두셔야 돼요. 우리는 개혁 신학, 개혁. 그래서 이것은 로마 캐톨릭으로부터 이렇게 도전장을 내고 개혁한 교단이라는 거죠. 리폼드라고 얘기도 하고 때로는 프로테스탄트 저항하다. 로마의 그대한 그 체제에 캐톨릭에 도전한 어 그런 개혁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 교회를 우리는 리폼드 처치라고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개혁 신학을 한 목사예요. 이 개혁 신학 신학과 신앙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가 있는 것은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종 칼빈이나 이런 종교 교육의 그 토 위에 오늘 우리 계신 교회가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종교 교육을 주일을 지키고 의미를 대세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혁 교회를 우리는 리폼드라고 할 때 리폼드라고 하는 말은 본래 자료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어떤 것을 뜯어 고치고 뭐 새롭게 하자 이게 아니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게 없고 언제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특별히 오늘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도 첫 사랑을 회복하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5절에도 무슨 말씀을 하느냐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께서 매우 엄중한 말씀을 하시는데 교회 존폐를 다루세요. 내 촛대를 옮기리라 이 말은 교회를 없애겠다 이 얘기겠죠.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살피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 아주 리폼드 개혁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곁길로 잘 빠져요. 여러분 내가 딱 정확하게 나는 간다고 가는데 한참 가다 보면 뭔가 옆으로 빠진 인간의 한계죠. 인간의 한계. 처음에는 누구나 다 좋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다 순수하고 건강하고 바른 원리로 시작합니다. 전부터 대놓고 뭐 문제가 있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은 없죠. 근데 가다 보니까 본래의 정신은 사라지고 왜곡되고 치우치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런 우리의 신앙에서도 우리 일반 삶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에서도 언제나 본질에서 벗어나기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는 경제 성장과 함께 한국 교회가 자라왔어요. 한국 교회 이 경제의 급속한 치솟는 이 변화의 한 와중에도 한국 교회가 갖춰 있었고 한국 교회 이렇게 성장해 왔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 경제적 성장과 함께 한국 교회가 일어나면서 한국 교회는 무엇이 들어왔느냐면 세속화의 물결이 들어왔어요. 한국 교회 안에 밀려온 이 세속화의 분위기. 이게 세상에 있는 게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되나요? 세상과 교회가 구분점이 없어져 버린 것을 우리는 세속화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추구하고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것을 세상의 사람들도 동일하게 세상의 사람들이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추구하고 붙잡고 있는 것을 우리도 동일하게 관심 갖고 사랑하고 추구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전혀 없는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세상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우리가 확인을 해봐야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우리도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롯 롯의 종교 교육의 핵심을 우리가 몇 가지 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그가 내가 걸었던 기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오직 성경입니다.

[5:39]솔라 스크립트라라고 하는 오직 성경. 그다음에 오직 믿음, 솔라 피데. 오직 은혜, 솔라 그라치아라고 그랬어요. 그다음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솔리데오 글로리아 그랬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내걸었습니다. 우리가 간단하게만 좀 살펴보면 오직 믿음이라고 합니다. 오직 믿음. 왜 오직 믿음을 강조했느냐? 그 당시에 로마 캐톨릭 안에 이 면제부 사건이나 이런 여러 등등의 뭘 강조하겠느냐면 행위를 강조합니다. 로마서 17 1장 17절을 보면서 하나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지난번에도 한번 제가 설교했던 때 얘기했습니다마는 이 말씀에 꽂히면서 로마 캐톨릭이 지금 잘못된 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 속에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 아주 중심된 이 교리가 훼손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구원론에 관련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교리가 너무도 중요한 핵심적 교리인데 이게 훼손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행위가 강조되고 그 행위는 주로 종교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이 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에베소서 2장 8-9절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뭐예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라는 겁니다. 근데 뭔가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 부족한 것처럼 여기게 만들고 믿음 플러스 행위를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기독교에서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이 교리를 가지고 있어요. 다 모든 종교는 뭘 강조합니까? 행위를 강조합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 근데 오늘 우리 한국 안에도 어느 순간인가 우리는 이 부분에 혼란이 와서 믿음 플러스로 뭔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율법주의가 한국 안에도 들어와 있어요. 사실 행위에 근거한 구원론은 인간의 이성에 굉장히 와닿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인과 응보적인 그런 법칙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뭔가를 얻는 것에 굉장히 어 이해가 잘 돼요. 그러나 믿음으로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 이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행위가 아무리 겉으로는 선하게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면 선한 것이 전혀 없어요. 성경을 들여다 보면 성경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습은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이 성경 로마스가 그토록 때로는 갈라디아서가 그토록 얘기하는 게 뭐냐?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라고 하는 이 사실에 루터는 다시 한번 눈을 뜨고 로마 캐톨릭에 잘못된 이 진리의 왜곡에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오직 성경을 강조했습니다. 종교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라고 그랬어요. 그 기본이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무지 할 때 부패가 온 것입니다. 성경에 무지할 때 여러분 중세기에는 일반 신자들이 성경을 전혀 읽지를 못했습니다. 읽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읽을 수도 없었어요. 왜?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라틴어는 학문적 언어예요. 그 당시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일반 대중은 성경을 전혀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불경이 인도로 되어 있으면 읽겠습니까? 일반 대중은 한국 사람은 못 읽어요. 여러분 로마 캐톨릭의 교회가 마음 놓고 부패를 하게 된 요인이 뭐냐? 대중이 말씀을 모르는 겁니다. 성경을 모르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잖아요. 믿고 판단력이 없잖아요. 판단력이 없잖아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나침판이고 앞을 비추는 비치고 또 우리의 모든 것들을 바른과 판단하는 자가 되고

[10:39]여러분 성경의 눈이 어두우면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거죠. 이단인지 삼단인지 팔단인지 알 길이 없어요. 그냥 가는 겁니다. 여러분 루터가 개혁을 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 있었는가 하면 평소에 성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수도사들이나 사제들이라고 다 성경을 읽었던 게 아니에요. 라틴어로 읽을 수 있지만 성경이 무시되고 소홀히 여겨졌던 시대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를 않아요. 그래서 사료에 의하면 수도원에서도 성경을 읽었던 유일한 사람이 마틴 루터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지를 않는 거예요. 특히 성경의 권위 위에 로마의 전통이 올라가고 또 로마의 교황 무스리라고 하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서 교황의 말은 오히려 성경에 위에 있는 것처럼 오류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오늘 여러분 성경을 루터가 읽는 가운데 오늘날의 교회가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마틴 루터가 이 종교 교육에 큰 공헌을 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거예요. 이게 굉장한 것입니다. 이게 개혁이에요. 이게 개혁. 루터가 했던 큰 공헌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가 손에 성경을 지고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에요. 그리고 여러분 이 성경은 오늘 우리의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더 위에 더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찾아가고 성경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해 가고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우리의 신앙을 늘 점검하고 성경의 기준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는 그런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지 않고는 신앙이 자랄 수가 없어요. 성장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되는 성도가. 근데 의외로 오늘날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잘 안 읽는다라고 하는 통계가 나와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어떤 분은 요즘은 지퍼가 돼 있기 때문에 어떤 분은 주일날 예배 마치고 이렇게 탁 이제 닫고 가시고 언제 여느냐? 이게 언제 열리느냐? 열면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거예요. 언제 열리느냐? 주일날 와 가지고 이제 본문 열 때. 본문을 볼 때 이제 하면 열리고 그다음에 닫으면 다들 열 자가 없는 거예요. 어떤 데는 이 재본이 잘못되가 붙어 있는 게 있는데 이게 안 뜯어진 데가 굉장히 많아요. 성경을 안 읽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안 읽으면 설교자가 어떤 말을 하든지 여러분들은 판단력이 없는 거예요. 그럼 부패가 일어나는 거예요. 설교자가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진리를 가르치시는 않을까 호시탐탐 여러분들이 살펴야 교회가 건강해지는 거예요. 로마 캐톨릭의 부패는 모든 성도들이 성경에 깜깜해요. 까막눈이었어요. 근데 이것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모든 회중들에게 성경이 더 지어지게 됐다는 거예요. 이게 종교 교육이요. 그 당시에 인쇄술에 개발과 함께 그냥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신앙에 절대적 기준은 성경이에요. 성경 외에 우리의 삶의 기준은 있어서는 안 돼요. 뭐 어떤 분은 뭐 옛날에 어느 교회에서 경험 뭐 어느 목사님에게 들었던 얘기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 소신. 좋아요.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올라가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신앙의 경륜으로 하면 뭐 그런 것 다 소용 없는 거예요. 성경이야 돼요. 성경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붙잡고 성경을 강조하고 성경에 기초한 신앙 이게 개혁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경험으로 애매모한 자기의 주수 문 사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보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붙잡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오직 은혜예요. 솔라 그라치아예요.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예요. 내가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받았다고 해서 내가 믿었다라고 하는 것이 너무 강조되면 그것도 믿음이 행위예요. 중요한 것은 뭐냐면 내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거예요. 그게 아까 에베소서 2장 8절의 말씀이에요.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어디로 왔느냐면 그 은혜에 의하여 왔다는 거예요. 출처가. 그래서 내가 믿었다라고 하는 자기 의지가 너무 강조되면 어느 날 무너질 수가 있어요. 자기 의지에서 나온 거니까. 그러나 나의 믿음이 내 의지가 아니라 내가 믿었다가 아니라 그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의해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졌다라고 하면 여러분 그 구원은 안전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바울의 신학에 뭐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은혜 사상에 사로잡혔어요. 은혜, 은혜, 은혜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 말은 뭡니까? 인간의 행위로서는 소망이 없는 부패한 본성을 가진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고 소망이 없고 구원을 얻을 만한 건덕지가 없는. 그러므로 여러분 이 오직 은혜를 강조하는 이 개혁 교회의 핵심의 신앙은 뭐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강조하지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펠라기우스라든가 이런 이단들과 그 그 시대의 가르침과 아주 처한 대입을 갖추는 이 개혁자들의 신학의 노선이었어요. 여러분 사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나의 노력이나 실력이 아니고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되게 돼 있어요. 안 되게 돼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마지막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은혜만을 붙잡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간의 행위가 강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놓쳐버리면 교회가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또 하나는 뭐냐면 솔리데오 글로리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 영광. 여러분 일인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죠. 우리가 왜 존재하느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이 성경의 주된 사상이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사역을 할 때도 뭐 좀 빛이 나야 된다. 이런 이런 것은 이런 건 좀 성경적이지 않아요. 내가 열심히 하지만 내 이름이 나야 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내 이름이 나고 내 사진이 붙고 막 저는 한국에 오니까 이 교계 신문에 내는 데도 사진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회장도 무슨 회장이 그렇게 많은지. 명예회장, 전의회장, 직전회장, 상임회장. 어가 그렇게 많아요. 왜? 이름을 안 세워주면 일을 안 하니까. 여러분 이것은 종교 계획의 신앙이 아니에요. 종교 계획의 신앙이 아니에요. 내가 광이 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광이 나야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돌려져야 되는. 여러분 이 개혁신앙은 절대로 솔리데오 글로리아예요. 글로리아예요. 하나님께만 영광. 그 설교자도 마찬가지예요. 설교자가 너무 자기를 드러내면 안 돼요. 하나님이 드러나는 설교. 마틴 로이드 존스 같은 목사님은 아주 이런 부분에 굉장히 철저한 분이에요. 설교자가 기억이 나면 안 되고 설교의 내용,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 우리가 우리는 교회를 섬겨도 내가 무엇을 해야 돼. 내가.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에 나는 그저 보조자예요, 보조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없어야 될 것입니다. 아멘. 나의 기념비를 세우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우리의 존재의 목적은 오직 하나. 솔리 데오 글로리아예요.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방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의 정문에 붙임으로써 종교 계획이 불이 붙었는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가 제국 회의를 소집하고 루터를 소환합니다. 소환하는 이유는 죽이겠다는 거죠. 루터의 친구들이 가지 않도록 피신하도록 만류합니다. 그때 웰메스의 재판장으로 들어서면 당당하게 마틴 루터가 얘기하는 거죠. 웰메스의 지붕을 덮은 수만장의 기와장이 악마로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주장을 꺾어라 말하지 않는 이상 성경이 내 주장이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나는 당당히 내 목숨과 함께 이 재판장에 들어서리라. 대단한 용기를 가졌습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바로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진리에 목숨을 건 신앙. 여러분 부럽지 않습니까? 인생의 승패는 진리에 대해서 어떻게 내가 반응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위해서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확신과 용기가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2:05]이미 승리한 인생이라고 믿습니다. 날마다 내 신앙을 점검하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이 몸부림을 죽는 날까지 계속 치면서 처음에 뜨거웠던 그 신앙의 순수함과 그 뜨거움과 그 열정과 그 순수함이 계속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셔서 이 시대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와 이 지역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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