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할 수 있거든 화목하라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18~21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할 수 있거든 화목하라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로마서 12:18~21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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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여러분 죄로부터 죄로 인해서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불행이 어떤 것입니까? 죄가 가져온 인간의 불행이 참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관계의 단절이죠. 창세기 우리 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관계의 단절이 왔습니다. 죄가 찾아오면 관계가 깨어지는 거죠. 죄로 인해서 불화가 일어납니다. 불통이 일어나는 소통이 단절되고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깨어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죄 문제 때문에, 죄 문제. 이 죄로 인하여 관계가 깨어진 겁니다. 오늘 또 우리가 관계 안에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과 다툼과 분열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을 거슬러 가면 사실은 죄 문제, 죄 문제 입니다. 그러나 이 죄 문제라는 말은 사실 우리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이 키가 되는데 단순이 우리가 이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애를 쓴다고 해서 관계가 회복되는 게 아니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실제적으로 삶 속에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인간 관계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 관계에요. 이 인간 관계가 잘 회복되기를 원하면 죄 문제를 다루어야 되고 죄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좋은 인간 관계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그 관계가 벌어지잖아요. 죄가 찾아온 순간 그 아담과 하와, 이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했던 그 하와와 관계가 뒤틀립니다. 죄가 그렇게 무서운 거죠. 뿐만 아닙니다. 그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과의 관계 속에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죄가 들어가니까 형제 간에도 살인이 일어나는 거죠. 인류의 최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근데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깨어지고 형제의 관계 속에서 그것도 예배의 자리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라고 하는 이 사건은 창세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끝나지 않아요. 이 사건은 오늘도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는 우리의 얘기입니다. 왜? 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 죄가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 우리가 벗어나기 전에는 끊임없이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났던 그리고 가인과 아벨 사이에 일어났던 그 일들이 재연된다는 거에요. 가만히 보시면 오늘도 여러분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같이 많이들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뭐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교우와의 관계, 뭐 직장에서 수없는 관계들이 있지만 우리의 많은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관계들이 다 사실 아슬아슬한 거예요. 뭐 유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쓰고 있지만 그 관계가 언제 어떻게 깨어질지 위태위태한 관계들을 유지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 안을 들어다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혼이라고 해도 그게 뭐 안전합니까? 그냥 뭐 연애하고 막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이제 너밖에 없다고 그러고 너하고만 이제 막 죽어도 같이 죽자 그랬는데 신혼 여행 갔다가 벌써 이상해지는 거예요. 올 때 보면 얼굴이 이상해져 오는 사람 싸운 거예요. 벌써 신혼 여행 때부터 싸운 거예요. 애기를 낳으면 뭐 그게 뭐 그 관계가 아직도 안전한가요? 그렇지 않죠, 여러분. 황혼 이혼 많잖아요, 여러분. 일평생 함께 살아왔는데도 그 관계가 늘 불안한 거예요. 위태위태한 거예요. 긴장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전쟁터에 그런 관점에서 가정에서만 그렇습니까? 국가 간에도 국가 간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 안에 일어난 이 수없는 분열 해결이 안 되잖아요, 해결. 누가 무슨 수로 해결됩니까? 해결됐다 할지라도 그건 미봉책이죠. 땜질한 거지 근본적 해결은 된 게 아니잖아요. 우리 민족에 있는 이 남북의 문제, 동서의 문제, 계층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이거 이 갈등 어떻게 푸나요? 마지막 날까지 가지고 갈 거예요, 아마. 뭐 조금 경중이 있을지면 이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끊임없이 우리는 미워하고 다투고 분열하고 여기에는 핵심적으로 어떤 작용이 일어나죠? 사탄의 이 거대한 전쟁 안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 인류 최초에 아담과 하와 사이에 끼어들었던 하나님과 인간과 끼어들었던 이 사탄은 오늘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 안에 이 사탄이 하는 주 사역이 뭐냐? 깨뜨리는 겁니다. 마귀는 깨뜨리는 일을 하는 거에요. 다른 거 할 것도 없어. 깨어지게 하는 거에요. 분열을 일으키는 거에요. 나눠어지게 하는 거에요. 그게 사탄의 메인 자비에요. 어디를 가나 여러분 보세요. 될 거 아닌 게 이상하게 발전되면서 최악의 상태로 나아가고 어디를 가나 파가 나누어지고 대립각을 세우게 되고 기독교도 보면 뭐 교단이 얼마나 많습니까?

[5:13]우리 뭐 장로교만 해도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어요. 진리 때문에 나누어졌습니까? 아니에요. 기차를 타고 이렇게 가다 보면 작은 말인데도 교회가 두 개가 있어요. 꼭 작은 말에도 여러분 가 보세요. 여러분 고향 교회 가면 꼭 두 개는 있어요. 왜요? 하나의 교회가 나눠진 거에요. 어디를 가도 싸움이 벌어집니다. 친목회 만들어 놓고 친목이 나누고 싸우고. 혜미 뭐 얼마나 내 자유의 회의하다가 회의 들어 가지고 싸우고 그러잖아요. 사랑의 바자회 하면서 증오의 바자회로 끝날 때가 많아요. 인간의 본성은 평화보다 불화가 훨씬 더 쉽습니다. 갈수록 분열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지구촌 곳곳에 지금 분쟁과 이 전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죄 문제 관계는 죄 문제예요. 사회적 심리적 관점이 아닙니다. 심리적 사회적 접근으로 해 가지고 해결이 안 돼. 근원적인 걸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우리 인간 관계는 회복될 수 없다면 이 죄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죄 문제 해결은 복음이죠. 이 바울이 오늘 12장 이후부터 계속 이 인간 관계를 얘기하는 이유는 1장부터 11장까지 복음을 설명하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축복이 바로 관계 회복이라는 거죠. 여러분 신앙은 결국 관계입니다. 인생이 관계이던 것 처럼 신앙도 관계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계명을 잘 율법사에게 설명을 한 적 있죠? 계명이 뭐냐? 굉장히 많은 것을 나누어서 복잡하게 했는데 예수님은 명쾌하게 계명이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이것이다. 아주 명쾌하게 설명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이 말의 뭘까요? 관계입니다. 신앙이란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고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이 전에는 점점 꼬였던, 이 전에는 굉장히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던 관계들이 신앙의 세계 안에 들어오면서 점점 점점 좋아지고 풀려지는 역사. 결국 신앙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느냐? 이 인간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 화해케 하는 사역을 위해서 오셨어요.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니까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들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는 인간 관계의 태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의 지배 아래 살 때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적대적이고 매우 투쟁적이었습니다. 이 전에는 머리에 뿔이 달려 있었습니다. 들이받고 상처를 주고받고 살았습니다. 함께 사는 게 늘 미숙하고 모이기만 하면 항상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 전에는 밀어내는 관계에 있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받아들이는 관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 전에는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 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거예요. 끊임없이 밀어내는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의 세계 안에 들어와서 우리는 이제 받아들이는 그런 관계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왜 갈등이 일어납니까? 갈등이 일어나는 요인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 가정에서도 우리의 관계 속에서 여러분 대립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날 때 그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결국은 자기 관점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결론을 내린단 말이죠. 여러분 이게 죄의 특성이에요, 사실은. 죄의 특성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거예요. 타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의 관점에서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의 상황에서 자기의 환경으로 자기가 해석하니까 갈등이 일어나 모두가 그러니까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마음으로는 정말 평화의 삶을 살고 싶은데 실제 삶으로 들어가 보면 평화의 삶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마음은 평화의 사도 실제에 살면 전쟁의 신으로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오늘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오늘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서 경험했던 대로 복음이에요, 복음. 복음을 깊이 경험하는 거.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끊임 12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하기까지 많은 복음에 대한 얘기를 앞부분에서 해 왔습니다. 그래서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해결은 결국은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복음의 힘이 사람들과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거죠. 근데 여기서 복음은 그냥 복음을 이해하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내 삶으로 온전히 경험하는 복음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왜 우리의 관계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복음을 머리로만 알고 교리적으로만 이해하고 그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이 실제로 내 삶 속에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로마서 5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랬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가 누리자라고 하는 단어. 누리자. 이거는 현재적, 현재적이에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그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이 우리에게 준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거예요. 누리는 거에요. 이것은 누린다라고 하는 이것은 현재의 삶 속에 경험되는 것을 말한 것이죠. 그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복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때 우리의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인간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 뭐냐면 우리 안에 먼저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인간 관계가 아무리 변화되려고 노력을 해도 그 자체로는 되지 않아요. 반드시 인간 관계의 회복이 일어나려고 하면 인간 관계가 회복되기 이전에 내 안에 회복이 일어나야 돼요. 내 안에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에요. 오늘 이게 딜레마죠, 세상에. 근데 이 내 안에 변화가 언제 일어나느냐? 복음을 경험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할 때, 그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그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고 용납하시고 사랑하시고 이해하시고 나를 품어 주신 그 복음 안에 내가 경험되어질 때 비로소 내 안에 내적인 변화, 내적인 혁명이 일어나는데 나도 모르게 평화가 흘러넘치고 나도 모르게 영적인 안정감이 찾아오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뭔가 말로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존재론적인 혁명이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관계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여러분, 복음을 경험하면 뭘까요? 이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죠.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시고 그대로 이해하시고 그대로 용서하신 그 하나님. 죄는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는데 이 원수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게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용납과 받아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가 일어났을 때 내 안에 있는 내적인 갈등이 이상하게 사라지고 내 안에 불편함이 사라지면서 내가 나를 나와 화해하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비로소 내 안에 안정감과 평화가 찾아올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화해의 삶을 사는 거에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내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내가 나에 대해서 불편한 거예요. 근데 복음 안으로 들어가면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화해가 일어나게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전도라고 하는 게 뭐냐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화해를 시키는 일이죠. 그러면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해시키는 사람이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과 화해를 누리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화해시킬 수가 없는 것이죠. 여러분, 화해를 시키는 사람이 화해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화해의 복음을 메시지를 메시지는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복음을 얼마만큼 경험하느냐. 하나님과의 화평을 우리가 누려야 하는 거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용서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그 복음을 통하여 배우면서 그 사랑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실현할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사랑을 알지 못해요.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우리는 배우 본 적이 없어요, 세상 속에서.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하셨던 그 방식을 우리가 배우면서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15:5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안에 인간 관계가 자꾸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꼬이고 있습니까? 복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에요.

[16:28]복음에서 멀어지고 율법으로 가는 거예요. 여러분 율법으로 가면 어떻게 돼요? 율법은 끊임없이 들추어 내고 허물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고 심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 인간 관계 속에 만약에 율법이 무성하게 되면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은 물고 뜯고 피차 멸망하게 되는 것밖에 없어요. 여러분 우리 인간 관계 속에 우리 안에 율법의 죄를 자를 가지고 와서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따지기 시작한다면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은 없어요. 근데 우리는 복음에서 멀어지면 율법으로 가기가 쉬워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복음의 당금질. 오늘 현재적 복음을 누려야 돼요. 복음을 이해하고 머리로 알고 복음을 단순히 믿고 교리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매일의 순간에 날마다 경험하고 그 십자가의 은혜 아래 푹 당금질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때 그 복음의 능력이 나의 심령을 사로잡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능력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했고 그 복음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의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될 때 인간 관계 속에 변화를 우리가 매일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람들과의 화목이라고 하는 것은 화목의 관계는 결코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로 생각하고 그 사람과 씨름을 하고 그 사람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막 실랑이를 하면 전쟁이 끝이 안 나요. 우리는 어떤 관계에 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상대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험을 하는데 성경적 방법이 아니에요. 성경적 방법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일어났으면 일어날수록 우리는 나의 문제로 봐야 돼요. 왜? 그 사람을 받아주지 못하는 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으로 가야 돼요. 그 나의 연약함으로 가다 보면 결국은 어때요? 나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모든 게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다시 깊이 들어가게 되면 내 안에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고 비로소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복음의 관점에 복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거죠. 그때 비로소 관계의 회복이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 안에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어떻게 돼요? 관용의 삶을 살게 돼요. 여러분, 오늘 여기에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라는 말은 최대한 관용의 삶을 살라는 거에요. 오늘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럴 때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읽었냐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이거 이런 거는 싫은 거예요. 이거는 가로치고 싶어요.

[19:53]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여기서 할 수 있거든. 가능하다면.

[32:08]바울은 이 표현 속에서 바울은 화목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바울이 알고 있어요. 화목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그리고 우리의 한계가 얼마나 한계가 있는 존재인지를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은 무조건 화해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지 않아요. 강요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하고 있어요. 우리가 한계가 있지만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정말 끝내고 싶어.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오늘날 듣는 얘기 중에 하나가 뭡니까, 여러분? 그러면 갈랐어. 그냥 끝내. 우리의 주변의 메시지는 끝내. 그냥 빨간 끝내라고. 그러나 여러분, 우리 혹시라도 너무 쉽게 빨리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나요? 어느 날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선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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