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오늘은 마가복음 강의 26번째 가족 그 이상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은 후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안 믿는 가족들로부터 너 미쳤나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어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아마 틀림없이 몇 번은 그런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너 미친 거 같아. 가끔 그런 얘기 하죠. 너 예수는 믿기 믿고 교회는 다녀도 빠지지는 마라. 이런 얘기 하죠. 빠지지 말라는 거예요. 이 멀쩡한 정신으로 다니지 잘못하면 빠진다. 클난다. 이렇게 이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 하면 빠져야 됩니다. 그리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좀 들어봐야 돼. 예 저도 처음 예수 믿을 때 참 그때 생각하면 진짜 미쳤어요. 완전히 막 홀딱 한 거예요. 예수님에게. 예 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막 그게 이제 빨려들어가는. 예배드리는게 그렇게 좋고 세상에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게 없었어요. 예. 여러분 이 미쳤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듣고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음 신앙이 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신앙이에요. 여러분 우리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쳤다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와 창한 날 그렇죠. 허창한 날 성경책 들고 교회 가는 모습을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 쟤 미쳤구나. 여러분 여름에 선교지에 휴가 반납하고 자기 돈 써가면서 고생하고 오는 거 그거 미쳤다고 안 믿는 사람이 보기를 미친 겁니다. 멀쩡한 사람이 왜 그러냐는 거죠.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세상 사람들과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돈 쓰는 것도 달라요. 그렇죠 돈의 계산법도 다르고. 예수님도 어 친족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거죠. 사실은. 공세기가 시작되면서 주로 가버나움 지 지 방에서 예수님이 활동을 하십니다. 자라났던 나사렛과 거리가 있습니다. 한 25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근데 예 예수님에 관련된 소식이 가버나움에서 활동하는 예수님의 소식이 나사렛 동네까지 계속 들려오는 거죠. 근데 주로 부정적인 소문이 많이 들려왔습니다. 그 당시에 이 소문을 퍼뜨리는 이 많은 그 소문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중앙에 바리새인들도 있지만 지방에서 또 활동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주로 좋지 않은 소문을 예수님에 대해서 퍼뜨린 거죠. 그들이 좋은 소문을 퍼뜨렸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지난주도 살펴봤지만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앞부분 2장에도 보면 신성 모독을 모독죄를 범한다고 그랬고. 그러니까 이 좋지 않은 소문들을 이들이 자꾸 퍼뜨리니까 그 소식을 들었던 친족들도 아 예수가 미쳤구나. 이렇게 들었을 수 있습니다. 오늘 21절을 보면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힘든 것 중에 여러분 가장 힘든 게 뭐냐면 가까운 사람이 오해하는 겁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오해하는 거는 뭐 지나가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오해하면. 우리 교회도 불신 가정에서 홀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요. 안 믿는 사람들이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게 많거든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고 너 예수 믿는 거 보니까 약간 정신이 좀 약하구나 심약하구나. 11조 할 돈 있으면 나에게 좀 더 잘해라. 예 새벽기도 나갈 시간에 잠이나 더 자라. 요즘은 코로나 시대에 교회에 대한 오해가 늘어났어요. 왜 너희들 그렇게 예배에 목을 매냐. 어떤 사람들은 그러대요. 교회 헌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꼭 모여야 된대.
[4:36]우리 같이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야 너희 교회 부자더라. 부자가 뭔지 그렇죠. 이게 세상 사람들이 관점이에요. 철저히 그 어떤 물질관. 우리의 관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해를 받는 건 당연한 겁니다. 오늘 여기에 본문에서도 앞부분 지난주 살펴봤던 본문과 읽어 보면 두 그룹이 존재하죠. 한 그룹은 친족이고 가족들이고 또 다른 한 그룹은 서기관들입니다.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예수를 미쳤다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여러분 어떤 일부만 한게 아니고 친족들까지 예수님이 미쳤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기관들은 뭐예요. 저 귀신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귀신 들렸다는 얘기예요. 이런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져갔습니다.
[5:35]여러분 사실 친족들이 보아왔던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어릴 때부터 나사렛에서 그 성장의 과정을 다 지켜본 사람들. 또 목수의 일을 하고 마리아의 그 집안 일을 돕고 어릴 시절에 성장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봤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생의 사역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오늘날 갑자기 내가 메시아다. 그러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의 가족들이 결국은 이 소문들을 듣다가 이제 가족들이 드디어 예수님이 계신 곳은 이 가버나움으로 찾아왔습니다. 곧바로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보면 그때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그랬어요. 여기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그랬어요. 밖에 서서. 사실 이게 여러분 이상하잖아요. 가족들이 안에 있어야 되고 다른 사람이 밖에 있어야 되는데 지금 바뀌었어요. 이게 뭔가 상징하는 모습이 있는 거죠. 또 32절도 보면 우리가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그 여러분 여기에 단어가 그겁니다. 바깥이라는 말은 아웃사이드잖아요. 아웃사이드 밖에 서서. 32절에 바깥에서 찾나이다. 이 바깥 밭 밭 이 아웃사이드 있음을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냐의 문제예요 여러분. 이 주님의 기준입니다. 주님의 기준으로. 주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인사이드라고 한다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아웃사이드. 자 여러분 우리 이제 젊은이들이 뭐 아싸 뭐 인싸 그래요. 핵인싸 그래요. 그런 표현 인싸이드에 있는 인싸이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싸이드. 이 지금 예수님이 이제 그것을 지금 말씀하려고 하는 거죠. 육신의 가족이라도 예수님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아웃사이드들이에요. 여러분 같은 가정에서 같이 교회를 다녀도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아웃사이드가 있고 어떤 사람은 인싸이드가 있을 수 있어요. 같은 교회를 다녀도 그래요. 그건 거리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문제입니다. 크게 보면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인사이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사대째 기독교 집안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아웃사이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지금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아웃사이드예요. 그러나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됩니다. 뒤늦게 인싸이드가 되죠. 여러분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인사이드가 되느냐 아웃사이드가 되느냐. 여러분 세상에 어디를 가든 모두가 아 내부 인사이드에 들어가기를 원해요. 핵심 멤버가 되기를 원하는 거잖아요. 그게 들지 않으면 불행하게 여기는 이 세상. 진짜 우리 인사이드는 어디냐?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받아 주시면 인사이드. 멀어지면 아웃사이드. 오늘 바깥에서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찾는다고 하시자 주님의 반응이 뭡니까? 33절에.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9:20]바깥에서 가족들이 들으면 상당히 섭섭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누가 지금 바깥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다고 그러면 이미 이제 공생의 시작하는 동안에 가버나움으로 옮기셨기 때문에 나사렛에서 떠나온 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가족들이 왔다고 그러면 반가워서 맞이하고 달려나가야 되는데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에요. 가족들을 바깥에 세워 둔 채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오 이건 여러분 완전히 지금 파격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10:21]바깥에 있는 가족들은 어쩌면 내치고 지금 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가르켜서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그래요. 마태복음 12장 49절에는 조금 더 다르게 얘기해요.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10:47]자 여러분 제자들을 가르쳐서 나의 어머니 나의 동생. 그러니까 새로운 나의 가족이라는 거죠. 이 예수의 육신적인 가족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입니다. 여러분 유대인의 이 가족은 유대인들에게서 가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죠. 우리 한국도 동양 이런 가족 개념도 굉장히 강하지만 유대인들의 가족 개념은 엄청난 결속력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런 인륜을 끊어 버리고자 하는 듯한 발언이에요. 그 사람들이 웅성웅성했을 겁니다. 야 예수가 진짜 미친 거 맞는구나. 가족도 못 알아본다.
[11:31]주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죠? 주님의 태도에 오해를 이제 할 수가 있는데요. 예수님은 인간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 그리고 형제간의 오해를 부정하고 무시한 게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요한에게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장면을 우리는 어 십자가 상에서 보게 됩니다. 성경 안에서 사실 십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거.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죠.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신 분인데요. 육신의 가족을 소홀히 다루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적 관계 인간적인 연결 고리들은 소중합니다. 이 가족에 너무 소중하죠. 근데 주님이 여기서 강조하신 것은 가족 관계 이 이 육신의 가족 관계가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지금 말씀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꿈꾸셨던 새로운 가족 뉴패밀리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죠. 공동체. 오늘 이 본문은 그냥 가볍게 지나갈 그런 것이 아니에요. 매우 중대한 주제가 있어요. 이 안에 매우 중대한 주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라는 겁니다.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로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 출석이나 뭐 단순히 교회 뭐 조직에 가입한다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여러분 사용하는 단어를 보십시오. 어머니 어머니 형제 자매라는 효정을 쓰고 있습니다. 이 가족이라는 얘기예요. 새로운 가족. 근데 여러분 일반적인 가족이 혈연이라면 새로운 이 가족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주님은 영적인 가족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혈연 관계가 매우 중요하지만 한시적이고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은 혈연 이상이라는 겁니다. 혈연 가족은 관계는 아주 강력하죠 여러분. 사실 부모 한 부모에서 태어난 이 형제들 피를 이 피로 나눠진 형제들. 그 어린 아이들도 학교에 가면 아 동생이 맞으면 형이 막 달라들고 야단이라. 그렇죠 피는 강한 거예요. 여러분 이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강력한 연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 이상을 말씀하죠. 주님은 새로운 공동체 결속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12 제자를 데리고 다니신 것도 뉴패밀리 새로운 공동체를 보여주신 거죠.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인사이드가 되는 거죠. 세상에 살면서 맺은 모든 관계는 여러분 언젠가 다 끊어지는 날에 와요. 뭐 이런 관계 학연 지연 혈연 무슨 연이 다 있지만 그 다 그 여러분 끝이 끊어지는 날이 와요. 아무리 친밀해도 분리되는 순간이 옵니다. 육신의 관계는 지상에서 끝나요. 죽음으로 모든 것은 종결됩니다. 예. 부부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한 가정을 이루고 알콩달콩 살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요. 아무리 좋고 모든 걸 다 너 한계가 있고 지상의 삶에서 마지막 끝이 난다는 거. 여러분 우리 육신적인 가정을 우리가 잘 귀중히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근데 동시에 영적인 가족 공동체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는데 이 영 이 가족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거. 자 그런데 신앙생활 하다 보면 혈육으로서의 가족과 영적인 가족과의 미묘한 관계가 긴장 관계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말씀이죠.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랬어요. 여러분 이 구절을 자세히 보세요. 가족을 미워하라는 말씀인가요?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한다고 육신의 가족을 무시하라는 말인가요? 아니에요. 육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합니다. 근데 오늘 여기에서 강조하는 이 구절의 말씀은 우선순위에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리면 가족 사랑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육신적인 가족 관계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이 충돌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지금까지 나사렛에서 가족들과 잘 살아왔어요. 그리고 정말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고 그 뭐 가장 역할을 감당하고 뭐 모든 것들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제 때가 왔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거려할 순간이 온 거죠. 공생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근데 이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친족들은 예수를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새로운 신분으로 이제 메시아의 그 역할을 감당하는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새로운 질서를 위하여 새로운 헌신을 해야 될 그런 순간을 맞으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가족들은 오해를 했습니다. 예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전히 육신적인 면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예수의 적대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앞장서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를 죽이려고 단합을 하고 달려들었어요. 문제는 친족들, 가족들까지 예수를 미쳤다고 하는 이 바로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 영의 일과 육의 일은 엄격히 구분됩니다. 영과 육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에요. 여러분 한 가정에서도 같이 살아도 영의 눈을 뜬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화를 해 보십시오. 대화가 되는가 대화가 안 됩니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과 영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부부라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어지는 거죠. 자 이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35절이 핵심적인 구절이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면 누구든지 형제요 자매가 될 수 있다. 이게 하나님의 뜻. 다시 말하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19:00]하나님의 나라가 목적이 되는. 그 자들이 다 형제와 자매가 된다는 거.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
[19:22]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서로 눈을 뜨죠. 육으로 난 자가 아니고 영으로 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0:30]그래서 영으로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새로운 본능이 일어나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내면에 일어나는 욕구가 다르고 육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가는 이 세상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눈 뜬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여러분 요한복음 4장 3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도 다 영적인 것이죠.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 여러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순종의 절정이죠. 여러분.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시는 모습.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어요. 다른 많은 차이들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하죠.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뭐라고 합니까? 앞부분에 매우 중요한 기도가 있어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이게 주기도문을 우리가 외울 때마다 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하는 커플이 다른 것들이 다 맞아도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같아야 돼요. 한 사람은 세상적인 그런 육체를 쫓고 세상의 욕망을 따라 살고 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영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면 함께 하기 어려워요. 늘 한 사람은 돈돈돈돈 하고 한 사람은 예수 예수 얘기를 하면 이게 이게 되겠느냐는. 한 사람은 돈 버는 것에 몰두하고 한 사람은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실 불신 결혼을 하지 않아야 돼요. 같은 뜻을 쫓아. 같은 뜻이 맞아야 돼요. 뜻이 맞아야 돼요. 뜻이 나눠지면 같이 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일들로 갈등을 할 수 있지만 일치된 목적과 방향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 오늘날 가정이 많이 깨어지고 힘들어 합니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영적인 결속감이 없이 인간적인 정으로만 산다는 거 어려워지는 거예요. 우리는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로 귀결되어야 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형제와 다 자매들이에요. 지상에서의 삶뿐만 아니고 영혼과 연결된 가족들입니다. 영원한 가족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적인 가족들이 이 땅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좋은 경험을 많이 쌓습니다. 가족이 얼마나 좋아요 여러분. 예 이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여 참 알콩달콩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거 이 친밀함이 이건 어디에서도 없는 거죠. 근데 여러분 이 명절이 되면요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안 만나는 가족들이 만나면 거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고요. 막 이렇게 묻혀져 있던 것들이 막 폭발되기도 하고요. 형제들끼리 막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갈등들이 있고. 여러분 가족이 참 좋지만 그 가족들 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만 나누는 게 아니에요. 상처도 주고받고요. 어떤 형제는 뭐 그냥 10년 20년 동안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부모와 그냥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분 사랑하고 좋은 것들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가정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통과 절망을 맛보며 한 맺힌 가족들도 많아요. 지금 여러분 우리 사회가 굉장히 급변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보다 사회가 초스피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핵가족은 오래된 얘기잖아요. 핵가족은 벌써 오래됐고 핵 개인화됐어요. 가정이 해체되고요. 육신적인 가족만으로 버텨내기 어려운 면들이 많아졌어요. 가족들이 있어도 다 외롭고 울증은 늘어나고. 여러분 가족이 있는데 왜 울증이 더 퍼져요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기능 자체가 역기능적으로 지금 변했다는 거요. 홀로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혈연의 관계도 지금 해체의 위기에 있어요. 주님은 그리스도는 이 혈연 이상의 가족 공동체를 꿈꾸셨어요. 비록 육신적 가족이 힘들고 어려워도 영적인 가족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면 이건 강력한 힘이 있어요. 비록 혈육의 가족이 연약해도 건강한 가족 영적인 가족을 둔 신자라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에너지가 거기에 있어요. 건강한 영적인 뉴패밀리는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그곳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합니다. 물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죠.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위해 깊은 헌신을 해야 되고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지질 가리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근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가족 공동체를 이룰 때 그 안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거.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할 교회는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라는 겁니다. 교회는 혈연을 뛰어넘는 사랑을 경험하는 곳이 돼야 됩니다. 혈연도 강력한 것이지만 그 이상의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곳을 그리스도께서 디자인하셨다는 거. 여러분 교회가 커져 가면요. 본래 주님이 의도하셨던 공동체를 추구하기가 어려워져 가요.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흩어진다면 가족 공동체의 맛을 볼 수가 없어. 요즘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이 더 아쉬움이 많아요. 여러분 교회는요 특성상 이 공동체라는 가족이라는 패밀리라는 공동체. 주님의 교회를 꿈꾸셨던 교회는 이 패밀리. 또 나중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는 거잖아요. 굉장한 결속력을 말하는 겁니다. 교회는 특성상 만나야 돼요. 여러분 가족이 뭐 아무리 해도 가족은 만나는 거잖아요. 근데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새로운 가족이라면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깊이 만나는 거고 뒤섞이는 것이고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공유하는 것이 주님의 의도하셨던 공동체가 그런 겁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요 자매로 만나야 되는 거예요.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더 중요해졌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주님이 꿈꾸셨던 2천년 전에 말씀하셨던 이 방식대로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이 새로운 가족의 공동체를 우리가 이루었다면 코로나는 아니라 코로나 할아버지가 와도 상관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사역이나 활동들도 중요하지만 먼저 가족 영적 가족으로서의 깊은 교감을 경험해야 됩니다. 그냥 가족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고 에너지를 그렇게 쏟아 넣는 것이죠. 그래서 영적 가족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세상과 다른 점이에요. 십자가를 중심에 둔 영적 가족은 자기 중심적이지 않죠. 여러분 육신적 가족이라도 형제라도 이기심이 끼어들면요 박살 나 버려요. 욕심 때문에 한 배에서 난 형제들도 원수가 됩니다.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면 갈등이 일어나죠. 그러나 그리스도가 십자가가 중심에 놓여 있는 관계는 그럴 수가 없어요. 기꺼이 서로가 종의 태도를 가지고 섬깁니다.
[28:43]오늘날 가정의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우상 숭배요. 우상 숭배. 다른 우상이 아닙니다. 자를 숭배하는 내 우상이 되어 있는. 그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어야 돼요. 예배가 뭘까요?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올려놓는 일이죠.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뭐 쉬운 건가요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영적인 가족과 육신적인 가족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녀만을 애지중지하고 거기에 모든 걸 쏟아 놓으면 될 것 같지만 안 되는 거죠. 이 우선순위가 무너진 사랑은 역기능적인 거. 그런 사랑은 주면 줄수록 독이 됩니다. 건강한 사랑을 주고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 영적 공동체를 가지고 있습니까? 잘 질문해봐야 합니다. 뭐 우리는 모두가 가족에 속해 있습니다만 그것은 혈연 중심의 가족만이 아니라 영적인 공동체 영적인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거. 이것은 여러분 이 신자가 누릴 세상의 축복입니다. 단순히 교회 생활하는 거 말고 영적인 가족 공동체로서의 생활. 그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형식적으로 가끔 만나서 영양가 없는 말들을 주고받다 헤어지는 그런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의도하신 공동체와 관련이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가족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육신적인 가족 관계 이상의 공동체를 맛보는 거. 여러분 이런 새로운 가족이 없이 혈연에만 매여 있다면 아직 신앙생활의 참 맛을 본 것이 아니에요. 육신적 가족만은 사랑하고 챙기는 수준을 훨씬 더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신앙생활이 매우 중요하죠. 교회 안에서 영적인 가족 공동체를 형성해야 되는 겁니다. 오늘날 제도적 교회 안에서는 뭐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 여러분 이 자치 담임에게 급이 될 위험성이 많아요. 무엇인가를 구분 짓는 것이 강하면 가족 공동체의 분위기를 깰 수 있습니다. 형제님 자매님의 개념이 와 닿아야 돼요. 물론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개념이 우리 안에 더 많이 와 있어야 돼요. 어떤 사역을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삶의 전체를 삶을 나누는 가족. 일을 위해 형식적으로 마주하고 그 일이 아니면 그냥 아무 상관없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정말 일과 사역을 넘어서서 형제와 자매의 애정을 나누는. 때로는 갈등 관계 놓이기도 하고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함께할 형제요 자매들이 있는 겁니다. 나는 그런 자매가 있는 거. 그런 형제가 있는 거. 그런 가족을 영적인 가족 관계 안에 내가 있는가. 여러분 그 가족 관계를 세우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에요.
[31:58]여러분 이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죠. 영적 새로운 가족 공동체 안에 속한다는 거 야말로 큰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고적이 된다는 것 안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요. 제자들은 얼마 있지 않아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단계로 나아가죠. 그러니까 이 가족 관계는 그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관계기 때문에 그들은 그 관계를 위하여 그 공동체를 위하여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2천년 전 이 가족은 비록 작은 공동체였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적 결속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은 성별과 국적과 신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녹여내는 공동체를 꿈꾸셨습니다. 2천년 전 주님이 꿈꾸셨던 가족은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어느 집단 어느 공동체보다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가족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런 주님의 뜻과 많이 멀어져 있어요. 요즘 교 그 안에서도 훈련이 많죠. 분열을 일으키는 시도들이 많아요. 다양한 생각들과 주장과 하고 싶은 일들이를 주장 할 때 교회는 분열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영적 가족 공동체인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고 때로는 뭐 여러 가지 뭐 입장과 뭐 때로는 정치적 색깔이 달라도 예수라는 이름 안에 하나가 돼야 돼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녹여낼 수 있어야 돼요. 모든 입장의 차이에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가 형제와 자매들이에요.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결정하는 겁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교회 안에서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한 성령 안에서 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한 가족. 어떤 중요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능가하는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신념이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영원하지도 않아요. 자신이 속한 어디에나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보다 능가하는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양한 생각과 추구하는 것 관심 분야 기호 성향 많은 차이들이 있지만 추종적으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안에서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이에요. 교회는 현실의 세계를 무시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영원한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만약 우리끼리 다른 차이로 인하여 싸운다면 그것은 마귀의 밥이 되는 거예요. 마귀의 전술에 넘어가는 거. 예수는 모든 차이를 뛰어넘게 만듭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사마리아에 대한 적대감 이방인에 대한 혐오 이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어도 그를 뛰어넘지를 못해요. 그때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겁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건 지명을 얘기한 게 아니에요. 사마리아라고 하는 그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는. 땅 끝까지라는 뭘까요? 이방도 이방의 사람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라고 하는 우리의 가족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이 엄청난 얘기. 이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성령 공동체는 사마리아와 이방에 있는 높은 이방에 대한 높은 물타리를 뛰어넘고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 공동체 성령 공동체였습니다. 이것이 새롭게 영적으로 결속된 관계요 아무것도 이것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얘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외로울 때가 많아요. 지금 세속 사회가 강화될수록 세상 속에서 신자로 살아간다는 게 점점 점점 더 어려워져 갑니다. 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로 여겨지는 그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세상에서 때로는 오해를 받고 미움을 받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아웃사이드의 취급을 받고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까운 육신의 가족마저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우리가 이겨내고 마지막까지 결승전까지 믿음의 완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 뉴패밀리 새로운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며 삶을 나눌 때 이 위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서로 지지해 주고 함께 중보해 주는 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비난한다 할지라도 서로 따뜻하게 끌어안아주고 우리는 형제와 한 자매로서 마지막까지 이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가고 지켜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 요즘 여러분 힘들죠 여러분. 모든 게 흔들려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뭐 이건 뭐 정말 어디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온 세상에 흔들리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공동체 이 새로운 가족은 더 강력하게 결속되어져야 될 돼야 되는 것이죠.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더 필요한 것은 이 영적인 이 가족입니다. 여러분 가입한 것도 많고 소속된 모임도 많고 어디든지 어떤 일정한 헌신을 요구하죠.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고 소속되고 헌신을 한다 할지라도 예수의 가족 공동체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인사이드 예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내부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적으로 분열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문화가 강화되고 있어요.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는 예수의 이름 안에 한 몸을 지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붙들고 지켜야 할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영적인 공동체 새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나 가나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호주에 처음 갔을 때 정말 낯선 곳에 처음 나갔던 그 교회에 저를 처음 맞아 준 어떤 한 커플이 아무것도 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지극정성으로 저를 돌봐주고 저를 섬겨주고.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어. 예수를 믿기 때문에. 피부는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모든 문화가 달라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고 한 형제가 되고 한 자매가 됐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깊은 결속감을 느꼈어요.
[39:16]여러분 이 예수의 이 가족 인사이드 새로운 공동체 이런이 되는 것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이런한 것이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이 하나님의 가족 새로운 가족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함께 믿음 생활하고 함께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그리고 영원한 세계까지 이르게 되는 이 관계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또 이 관계 안에 깊이 들어가시고 이 관계가 더욱 더 아름답게 세워져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여러분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랑방에 들어가시고요. 그리고 그것이 점점 커지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 곳곳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형제와 자매고 이 어두운 세상 이 정말 그리스도에 대해서 적대하는 이 환경 속에서도 외롭게 믿음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일에 이 새로운 패밀리 뉴패밀리 이 하나님의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족 안에 일원이 되시고 또 일원이 되실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열심히 함께 그 공동체를 세워가는 힘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