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이 충돌이라고 하는 것은 옛것과 새것의 충돌이에요. 그 당시 유대 종 유대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과의 이제 충돌이 일어납니다. 지난주에 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새 포도주는 새 부대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죠. 그 대한 파고를 예상하는 그런 메시지였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다 뒤집어 엎어요. 새롭게 하고 낡고 구습과 모든 이전의 것을 이제 바꿔 놓는 새로운 역사가 이제 일어나게 되죠. 예수님의 사역이 드러나면서 이제 거기에 또 선명해지고 저항은 더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인데요. 안식일에 일어났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3절에 기록이 있죠.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세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그랬습니다. 이삭을 자르니
[1:11]제자들이 배가 많이 고팠던 거가 봐요. 오죽하면 그 밭으로 들어갔는데 그 이상을 자르고 아마 이게 비벼서 먹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바리새인들의 안테나에 딱 걸렸습니다. 저 뭐 하는 짓이냐 이거 안식일을 범한 것이죠. 특별히 예수님에게 이제 관심이 있으니까 예수님 왜 당신이 저 제자들이 일을 하는데 일하도록 가만히 두고 있습니까? 안식일에 일하도록 왜 방치하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가 고파도 안식일을 어기면 안 되잖아요. 자 엄 예수님에게 무엇인가 흠집을 찾아내려고 이 파파라치들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딱 들어가자말자 시비를 거는 거 보면 계속 따라다니면서 곁눈질을 하고 있었던 거죠. 앞부분에도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공격했죠. 오늘 여기에서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을 가지고 이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자 여러분 이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중범입니다. 작은 죄가 아니고 큰 죄입니다. 뭐 뭐 살인 정도까지는 아닌데 아주 중범으로 다루었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규례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뿌리가 깊죠. 그래서 이 안식일을 행하는 것은 이방인과 자신들을 구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어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이제 선민 의식을 더 확고하게 하죠. 선민. 우리는 선민이다. 우리는 다르다. 하나님의 택한 받는 백성으로 특권의식을 느끼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 이 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제가 호주에 있을 때도 보면 그 멜번에 유대인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데요. 유대인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뭐냐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철저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유가 차를 타고 이렇게 다니고 교회를 가지 않아. 그것도 일로 다 볼 수 있으니까. 그로서 회당에 갈 수 있는 거리에 다 삽니다. 그러니까 어 철저하게 이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사회의 핵심이에요. 핵심. 바리새인들이 난시기를 지키는 일에 갱시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새측들까지 만들어서 이제 안식일을 지키게 했는데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걸려든 거예요. 그리고 사실 핫 이슈를 건드린 겁니다.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것을 훼손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죠. 그 주님이 그 일을 모르실 일은 없었는데 제자들의 그 행위를 그냥 묵인하신 것을 보면 의도성이 있어 보여요. 이것을 가지고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끌어 올 것을 예상하고 어쩌면 논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 바리새인들이 시위에 주님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구약을 인용하여 25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자 주님이 바리새인들의 그 시비에 반응하시는 모습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직접 그 그들의 논쟁에 말시에 말려들지 않았어요. 주님이 하신 것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알려 주신 겁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감정적으로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죠.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논쟁 이 디베이트를 잘 못 한다고 그래요. 국제 사회에 가서도 그렇고 우리 왜냐면 굉장히 감정적이에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흥분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뭐 이런 거죠. 이 그러면 이제 논리가 안 맞고 이제 논쟁에 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님은 이게 말씀하신 뭐 누가 큰 소리를 치느냐 뭐 어떤 쪽이 수가 많으냐 어떤 유명한 사람이 말했느냐 그게 중요하지 않고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이 태도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시고요. 모세 오경도 인용하시고 시편도 여러 번 인용하십니다. 주님은 구약을 꿰뚫고 계세요. 여러분 우리가 이 신약과 구약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 기도원 협회에서 이게 신약과 구약을 분리시킨 성경을 만들어서 신약만 이렇게 호텔에도 많이 두고 이랬습니다. 요즘은 이제 그 없어졌습니다. 이 오해하는 거 신약이 굉장히 중요한 것인 줄 알아요. 신약과 구약이 다 동일하게 한 권의 책이요. 한 권의 성경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잘 알수록 신약이 선명해지고요. 구약과 신약은 모순이 일어 일어납 없습니다. 구약의 의문을 신약이 풀어주고 신약에 애매한 것을 구약이 구약이 풀어줍니다. 주님은 성경에 능통하셨습니다. 그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와 논리가 아니고 구약에서부터 이미 말씀한 게 무엇인지를 이제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태도가 뭐냐면 자신의 생각과 입장과 논리를 지지해 줄 말씀을 찾으면 그 큰일 납니다. 설교자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에 아멘 하면 안 돼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주는 거를 좋아하면 위험해져요. 이제 큐티를 할 때도 나를 지지해 줄 성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본래 말씀하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멘. 주님은 이들에게 이렇게 너희들이 성경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구약에 있다. 이 바리새인들의 무지에 대한 질책입니다. 주님은 항상 문제를 푸는 방식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모든 질문의 답을 다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중대한 질문에는 답을 합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요즘은 다른 걸 찾으면 안 돼. 유튜브나 네이버 찾으면 안 되고 구글 찾으면 안 되고 성령을 들여다봐요. 성경. 성경 안에 굉장히 중요한 우리 질문의 답이 이미 다 있어요. 자 시제는 성경으로 말하고 답을 해야 되는데 오늘 예수님이 구약을 가져 왔어요. 그 26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이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7:48]이 내용이 사무엘상 21장에 나와요. 자 이때는 아직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 피에 다닐 때입니다. 너무도 다급한 상황에서 다윗을 다윗의 일행이 쫓기는 가운데 너무도 다급한데 굶주려 있었어요. 사실은 먹어서는 안 되는 금지된 것이지만 자칫하면 그 사울에게 잡혀서 죽을 수도 있는 그 위기의 때 끊임없이 쫓겨다니다 보면 이제 먹을 게 지금 없고 지금 매우 굶주려 있는 상태에서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먹었던 것에 대해서 특수한 상황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큰 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주님이 하고 계시는 거예요. 여기에 초점이 뭐냐면 강조점은 무엇을 어떤 규칙을 지켰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8:50]그리스도 역시 아직 메시아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수의 권위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다분이 의도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임하였기 때문에 안식일에 관련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관점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을 구약 성경을 가지고 와서 이제 이게 죄가 아니고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논지는 뭐냐면 낡은 종교적 관습과 의식에 차에만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안식일에 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것을 지금 이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는 겁니다. 자 예수님이 안식일에 대한 분명한 해석을 이제 그 다음 구절에서 이제 내리고 계시는데요 27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신 겁니다. 왜 안식일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왜 안식일을 만드셨는가?
[10:08]바리새인들의 강조는 안식일은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예요. 그리고 do, don't 해요. 하라 하지 말라. 근데 그 규칙을 보면 하지 말라 쪽이 훨씬 더 많아요. 종류가 많았어. 하지 말라가 더 많아요. 초점이 하지 말라 했어. 이런 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이거도 하지 마라. 저거도 하지 마라. 그러니까 근데 주님은 전혀 다른 관점을 지금 강조하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하여 세분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하나, 둘,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할 때 그 일은 도대체 어떤 정도의 수준이 일을 말하는가. 이 일에 대한 규정들을 자꾸 나르는 거야. 짐을 나른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짐을 나르면 안 된다. 그럼 짐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짐이라고 해야 되느냐. 그죠? 그러면 이제 그를 규정하기 시작하는 거죠. 더 잘 지키기 위해서는 더 조금이라도 처음에는 이 정도 무게를 얘기했다가 나중에는 아 이것도 이 정도보다도 더 중 더 작은 것도 이제 나르는 거. 이 정도 들어도 죄 죄가 된다 이 정도. 그러면 아이를 업는 거는 일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런 것도 따져야 되는 거죠. 애가 몇 키로냐.
[11:29]어떤 여인이 그 바느질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바늘을 꽂고 갔단 말이야. 꽂고 여기 꽂았어. 그 그랬는데 짐을 들고 갔다는 거예요. 이제 그 정도까지 가는 거예요. 이제 세칙을 만들다 보니까 더 잘 지키려고 하니까. 여행을 금지합니다. 그럼 여행은 어디까지 가야 여행이냐. 대구까지 가면 여행이냐? 울산은 여행인가? 그러면서 세칙을 만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은 여러분 이렇게 자꾸 나누다 보면 무슨 결론이 나느냐면 아무것도 안 해야 되는 거예요. 꼼짝 안 하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은 좋으나 본래 정신은 사라지고 문자적인 것에 매여 결국은 무엇에 빠지느냐면 형식주의에 빠지는 거예요. 형식주의로만 끝나는 게 아니에요. 외식주의로 끝나요. 위선을 하는 거죠. 큰 것은 놓치고 작은 것은 지키는 거예요. 속내는 감추고 겉으로는 잘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여러분 종교적 수행을 잘 한다고 신앙이 좋은 거 전혀 아닐 수 있습니다. 겉으로 잘 지키는 사람이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데 전문가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근데 나중에는 포장 기술이 점점 늘어나는 거죠. 거룩한 종교의 오단에 거짓된 것을 많이 감추었던 거예요. 뿐만 아니라 율법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 기준과 가촉 세칙들은 백성들을 힘들게 한 거예요. 짓누르는 거예요. 그 율법을 다 지켜낼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 세칙을 다 지켜낼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뭐예요? 주눅이 드는 거죠. 기쁨이 없어지고 율법에 자꾸 짓눌리고 지금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약화되면 율법만 강조되고 사람들은 피곤해지는 거죠. 자 주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이 만들어졌냐? 사람을 괴롭게 하려고 만들어졌느냐? 하나님이 마치 막 그냥 이게 그 가학적 환자처럼 막 그냥 율법을 못 감당 못하고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막 기뻐하느냐. 그러기 위해서 만들었느냐? 각종 세칙들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정죄감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주님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의식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바리새인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쳐 버렸어요. 그래서 주님은 율법을 정리를 잘 해 주신 거. 이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세칙을 만들고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나중에는 정작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 율법이 도대체 뭐 율법이 말씀하려고 하는 게 뭡니까? 질문을 한번 잘 했어요. 그때 예수님이 이런 답을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에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그게 그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아멘.
[14:42]주님은 율법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셨어요. 율법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라는 거. 아멘. 십계명을 여러분 십계명이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인데 십계명이 강조하려는 것은 뭘까요? 하라 하지 말라가 아니에요. 그 안에 핵심적인 하나님의 하트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거예요. 이 사랑이 빠지면 율법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거죠. 의미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퍼즐을 맞추는 아이들이 퍼즐을 하는데 좀 복잡한 퍼즐들이 있잖아요. 큰 그림을 먼저 보고 나면 퍼즐 조각이 작 작은 걸 막 흩어져 있어도 아 요거 코끼리의 뭐 어떤 부분에 있겠구나 감을 잡으면서 이 퍼즐을 막 완성해 갈 수가 없어요. 근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큰 그림이. 그 퍼즐이 막 흩어져 있는데 자각한 것들이 많으니까 뭐를 만들지 알기를 못 하는 거예요. 노력은 하는데 완성이 안 돼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핵심을 놓쳐 버린 겁니다. 본질을 놓쳐 버린 겁니다. 사랑이라는 걸 놓쳐 버렸어요. 그래서 이들은 안식일이라고 하는 이 기준을 가지고 규칙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거예요. 자꾸. 그리고 자기가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안 지키는 사람 시비를 걸고 그 율법의 정신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율법은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지키는가보다 사랑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 지금 배가 고파서 밀밭에 들어가 겨우 조금 그것을 이삭을 비벼먹고 있으면 자기 집에 있는 그 뭐를 밥이라도 갖고 와 가지고 더 더 먹여야 되는 게 이게 율법의 정신이에요. 근데 자 저 인간들 지금 율법을 지금 안식일을 어기고 있구나.
[16:24]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강조하면서 자비가 없어요. 사랑이 없어요. 정오심만 가득해. 이게 영적인 무지죠. 편협됨. 이 편견에 사로잡혀 넓게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이라는 그 날에 꽂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무엇인가 하긴 하는데 사람에 대해서 매우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 왜 안식일을 제정하셨을까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돼요. 여러분. 뭐든지 그래요. 어떤 사람은 자기하고 있는 일 너무도 중요하다고 여러분 올리는데 알고 보면 순전히 자기 생각이에요. 처음에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몰라. 근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정신은 사라지고 전통과 규칙들을 기계적으로만 수행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본래의 목적과 의도를 놓치고 규례들과 저항에 갇혀 율법의 종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니까 정말 한심한 거예요. 여러분 율법을 위해 율법이 존재하는 게 아니야. 사람을 위해 율법을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인간을 힘들게 하고 죽이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게 아닙니다.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그 삶의 질이 더 풍요로워져야 돼요. 자신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못하면요 이전보다 더 힘 갈수록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신앙생활 오래 했는데 더 사랑이 버려. 버려. 나빠져.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보다 열심히 하고 11조도 열심히 하고 구제도 잘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사람이 잘 안 변하는 거예요. 막 투쟁적이에요. 날카로워요. 싸움을 잘해요. 시비를 잘 걸어요. 여러분 처음에는 열심히 누구나 다 잘하는데 나중에 그게 세월이 흐르면 이제 자기 의가 되어. 자기 의. 그리고 자기 의가 생기면 쌓여지면 드러내고 싶어져요. 그러니까 사랑을 실천을 처음에는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는 하다가 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이 사나워지는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막 헐켜 보는 거예요. 너희들 사랑 안 해?
[18:37]그럼 자기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죠, 여러분.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너 그래 가지고 지옥 간다? 천국 가겠냐? 자기가 하고 있는 의가 무기가 되는 거죠. 여러분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병이 될 때도 있어요. 성경을 조금 아는 것으로 무기를 삼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로 변하면 나의 의로움을 키워가는 것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 주님을 알아갈수록 나의 연약함들이 더 드러나게 되고 주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살 소망이 없는 자임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거예요. 형식 혹은 어떤 의식을 얼마나 지키는가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요.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닫고 그 깨달은 사랑을 실천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가를 알아가는 게 핵심이지 내가 열심히 한 그 열심히 자기 의가 되고 그 의가 무기가 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날카로워지는 것은 나빠진 거죠. 사람을 버린 거죠. 못 쓸 병이에요, 그게. 그게 바리새인들이 겪었던 그들의 형편들이었습니다. 자 여기에 주님이 마지막 결론을 28절에 이렇게 합니다. 이러므로 이러므로 결론이죠.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 말의 뜻은 뭐냐면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돼야 될 때가 왔다라는 거예요.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지 말고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라. 안식일은 주의 날이다. 주님이 주인이시다. 아멘. 안식일의 주인이 주인이시라면 주인의 의도를 따라가라 하는 거죠. 인간들이 만든 관습과 전통에 갇혀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으로도 벗어나라. 안식일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고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초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아멘. 여러분 안식일을 잘 지키는 법은 딴 게 아니요.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아멘. 그리스도를 알아야 그리스도의 의도를 알죠.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안식일에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면 아는 겁니다. 언제나 주님이 하시는 일은 옳습니다. 아멘. 옳고 그름의 기준은 그리스도만 하실 수가 있어요. 아멘. 주인이 주님이 하시면 그게 옳은 일이에요. 주님이 가시면 길이에요. 아멘.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기 열심에 자기들이 도치되어 있다는 거예요. 도치되어 있다는 거예요.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얼마나 오만이고 착각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이들을 거부한 거예요. 그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깜깜이에요. 깜깜이. 성경을 읽기는 읽는데 신기하게도 꼭 읽 읽어야 되는 부분은 건너뛰어요. 참 신기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성경 말씀을 할 때 아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까? 원래 있었거든요. 성경이 오래됐거든요. 새롭게 기록한 성경이 없는데 자기는 어떤 읽고 싶은 것만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부분이 내가 원하지 않는 부분 있으면 건너뛰어 버려요.
[22:13]여러분 오늘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영적 사각지대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만이 왜 무섭습니까? 교만하면 블라인드 사이드가 생겨요. 그 블라인드 사이드는 뭐예요? 사각지대는 어디죠? 자기 자신의 모습이에요. 나를 못 봐요. 내가 누구인지를 몰라요. 그러면 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정의를 가장 많이 외치는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다 보면 착각해요. 내가 정의를 외치는 것과 정의롭게 사는 건 달라요. 근데 정의로운 소리를 하면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착각이에요. 사실은 집에 가면서 막 교통 위반도 하고 집에 가서는 막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23:12]여러분 교만의 병은 자기의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해요. 남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습니다. 몇몇 성경 구절에 엄호를 받으면서 자기의 길을 걸어갑니다. 무서운 것은 자기 기만이라는 거죠. 자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로움을 정명하려다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스스럼없이 행해요. 자 어디까지 갑니까? 다음 주일 날 우리가 살펴볼 구절인데 살짝 한번 한 구절 가져와야 돼요, 오늘. 마가복음 3장 6절이죠.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그랬어요.
[23:53]자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사람을 죽이려고 의논하는 거예요. 이게 종교의 무서움이에요. 잘못된 길로 빠지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안식일이란 그야말로 안식하는 날이에요. 안식일 날 끝까지 규정으로 사람들을 어렵게 하려고 만든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안식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배고픈 제자들이 이삭을 조금 든 것 때문에 하나님이 결코 정죄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런 쫀쫀한 하나님이 아니세요. 하나님은 복잡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조금이라도 경계선을 넘어가면 깐깐하게 법조항을 들이대시면서 혼을 내시는 하나님이 아니세요. 큐티 하루 안 했다고 하나님이 율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세요.
[24:59]어떤 분은요 큐티 열심히 하다가 어느 날 하루 빠지면 하 주님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어. 뭐 바쁘면 못 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너그러우신 분이시죠. 새벽기도 하루 빠졌다고 그냥 그날 이루어질 성사될 사업을 하나님이 망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어떤 분은 새벽기도 하다가 발에 맞추고 나가셨다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려고 하시다가 아유 하나님이 나를 걸어 걸어 발을 거시네 뭐 이러면서.
[25:32]어떤 분은 그래요. 주일 날 교회 오지 않고 골프를 치러 갔는데 하루 종일 어디에선가 골프공이 날아와서 눈을 칠 것 같아. 한 번도 골프를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골프공이 막 하나님 골프공으로 자기 머리를 때릴 것 같아요. 주일을 잘 지키셔야죠.
[25:52]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작은 실수 하나라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다루셨다면 여기 앉아 있을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하나님의 울타리와 품은 넓어요. 아멘. 하나님의 자비는 무궁하세요. 아멘. 아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게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이 끝없이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고 이해하시고 받아 주시고 인내하셔서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아멘. 몇 가지 종교적 수칙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도 아니세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인내는 우리가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높고 풍성하십니다. 아멘.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7절로 8절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27:06]그게 인자의 의도라는 겁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신앙의 본질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이상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요 멀리 2천 년 전에 유대 사회에만 있었던 한 부류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바로 바리새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어요. 잘못 신앙생활 하면요 사람 버려요. 교회는 오랫동안 다녔는데 갈수록 망가질 수 있습니다.
[27:55]이상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근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전혀 아니에요. 저건 아니야. 저게 신앙이라면 난 예수 믿고 싶지 않아. 여러분 옳은 말을 하고 있다고 다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본질이 아닌 것과 싸우고 정작 본질적인 부분에는 무심하게 행동하는 사람. 기준과 관점이 잘못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 방식으로는 안 되죠. 새로운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규정들을 매여 불필요한 논쟁을 하며 세월을 보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본질로 돌아가는 거예요. 안식일의 규정에 묶여서 무엇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멘. 그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과 연결돼 있죠. 주님 왜 오셨습니까?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0장 10절의 말씀처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죽이려 오신 게 아니라 살리려 오셨어요. 아멘. 근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한 그것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누구까지 죽이려고 합니까? 예수까지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안식일은 무엇을 안 하는 날이 아니라 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 살아가는 날. 율법에 매여 움츠려 드는 날이 아니라 율법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망끽하는 날이라는 거예요. 무거운 짐을 지우러 주님이 오신 게 아니라 율법을 주신 게 아니라 짐을 벗기려 주 벗기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11장 28절 30절에 유명하죠. 28절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30:08]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아멘.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멘. 아 이게 복음이에요, 복음. 아멘.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자유로움이 옵니까,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러 오셨어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하게 하리라. 아멘.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구원을 얻는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뭔가 열심히 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했지만 우리의 열심으로 구원을 얻을 길이 없어요. 오직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구원할 수 있어요. 아멘. 우리는 구원 얻기 위해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 얻은 것이 너무 기뻐서 선을 행하는 거죠. 아멘.
[31:00]율법의 규정이 말할 때는 무엇을 하다가 하다가도 걸리면 죄가 되기 때문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서 8장 1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이 대 헌장 자유의 헌장. 아멘. 두려움 없이 이제 주께로 나아가는 거예요. 어떤 때는 실수가 넘어지면 그날 다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멘.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이제 더 이상 잘 보이려고 애를 쓸 것도 없고 내 어떤 행위로 내가 의가 될 수도 없고 오직 우리의 의는 십자가밖에 없음을 믿기 때문에 넘어지고 깨어지면 다시 그 십자가 붙들면 살고. 아멘. 내 더러운 옷과 같은 이 의를 붙잡고 자랑하면 한 방에 날아가는 거예요.
[31:48]성도 여러분 이제 은혜 아래에서의 안식일은 달라진 거예요. 율법을 지키면서 눈이 자꾸 옆으로 찢어지고 찢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런 삶이 아니라 점점 하나님 은혜 앞으로 깊이 들어가고 죄인인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워서 그 은혜에 빠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은혜 아래에 살아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은혜를 베푸는 자로.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자꾸 미워지는 사람이 많아집니까? 주일 날 교회하면 왠지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많아 많이 보입니까? 못 못 마땅한 것이 눈에 걸리는 것이 많습니까? 그 신앙이 지금 잘못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미워지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왠지 사랑스럽고 좀 실수를 해도 귀여워 보이고 내 커져 내가 컸다는 얘기예요. 믿음이 컸다는 얘기예요. 저는 다 걸려 가지고 막 다 나 외에는 문제 많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나보다 다 나아 보이고 나 같은 죄인도 주의 은혜가 크고 놀라서 나를 구원하신 것에 그 은혜 아래 살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마음이 내 안에 없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 날 뭘 안 해야 하나? 어떻게 지켜야 하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적인 힘을 적극적으로 공급받으면 돼요. 구원을 누리고 안식을 경험하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다 보면 목 목 귓털미가 뻐근할 정도로 스트레스 받고 몇 사람 때문에 밥맛을 잃어버렸다면 6일 동안 살 때 얼마나 힘들고 그 안식 없는 삶을 삽니까? 나를 괴롭히는 상사 나를 괴롭히는 어떤 가족들. 그러나 주일을 지나고 월요일 날 직장에 나아갈 때는 그 원수 같은 사람을 바라볼 때도 굿모닝 밝은 얼굴로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 주일 날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고 영적으로 리차지를 하고 지금 주님은 분명히 피판했는데 월요일 날 아침에 왜 이렇게 얼굴이 밝게 나에게 인사하고 그 커피를 건네는 거예요? 주일 날 무슨 일이 당신에게 있었냐는 거야.
[34:14]그때 여러분 우리에게는 비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아멘. 세상은 그냥 막 흘러가는 거잖아요. 근데 오늘 우리는 안식일이 안식일. 신약의 의미는 주일 부활의 날 축제를 벌리고 기쁨을 누리고 회복이 일어나고. 아멘. 주일 날에는 도무지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는데 주일을 보내고 나니 우리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힘이 나에게 주어져서 당신에게 지금 굿모닝 하고 있는 거야. 갓 블레스 유를 하는 거예요. 아멘. 억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이 더 까다로워지고요. 거칠어지고요. 날카로워지면 그건 율법이에요. 복음은 우리의 영을 자유롭게 해요. 아멘. 우리를 회복시켜요. 아멘. 우리를 온전케 한다는 거죠. 아멘. 여러분 안식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바이오리듬이에요. 생명력이 충천하는 시간입니다. 일시적으로 일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깊이 연결될 때 우리가 주일을 주일답게 보낼 때 우리 안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35:41]주말에는 도무지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는데 주를 보내고 나니 우리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힘이 나에게 주어져서 당신에게 지금 굿모닝 하고 있는 거. 갓 블레스 유를 하는 거예요. 아멘. 억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이 더 까다로워지고요. 거칠어지고요. 날카로워지면 그건 율법이에요. 복음은 우리의 영을 자유롭게 해요. 아멘. 우리를 회복시켜. 아멘. 우리를 온전케 한다는 거죠. 아멘.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남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고 주일 날 한 잔이나 하고 집에 있는데 여러분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서 그 남편에게 어떻게 대하시느냐가 여러분 여기에서 갈림길이 있는 거예요. 이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고 너와 나는 달라. 종자가 뭐 그러고 지옥에나 가시오 그러고 그건 종교예요.
[36:28]막 교회 갈 때 가기 전에는 정말 갈등이 많았지만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예수의 사랑, 예수의 향기 먹고
[37:01]사랑으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품어내고 기다려 주고.
[37:10]여러분 우리는 종교적 열심이 다른 사람과 우월주의에 빠지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또 다른 사람을 더 많은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을 위하여 우리의 신앙을 쌓아가는 게 아니에요.
[37:33]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돼.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게 무기가 되어서는 안 돼. 다른 사람을 높여 주고 세워 주고 인정하고 살리고 품어 주고 기다려 주고 축복하고 아멘. 끝없이 용서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내는. 오늘 주일도 마찬가지예요. 주일을 지켰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주일을 주신 주님의 그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고 회복의 역사가 나로부터 시작되고 회복된 나를 통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온전케 되는.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종교화되어져 가는 신자가 아니라 복음화되어져 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