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은혜, 그 역전극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룻기 2:8~13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은혜, 그 역전극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룻기 2:8~13 |

CTS BEST 설교

23m 59s2,175 words~11 min read
Auto-Generated

[0:06]우리 인생에 나는 걸어가는 길들을 보면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이렇게 인생이 질서 정연하게 탁탁탁 두무 두부를 이렇게 자르듯이 이렇게 진행이 되지를 않는 것 같아요. 전혀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예측 부르의 사건들이 불규칙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 저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 같은 일들이 또 나에게도 다가오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히비 곡선이 오고 가는 그래서 우리 인생은 어떤 면에서 이 날실과 올실의 그 겹쳐지는 수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어 우리의 계획과 다르게 변형되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 우리 모두 다 살아가면서 이 삶의 수한 사연들 이전에는 전혀 꿈꾸지 않았던 계획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오늘 내가 존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 인생이 힘든가 또 힘들지 않는가라고 하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지금 하나님 안에서 움직여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바깥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돌아가고 움직이고 있는가 이게 중요해요. 영어 우리 히스토리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히스토리 우리의 삶의 이야기들 그러나 그것이 내 나 혼자 하나님과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은 그냥 히스토리예요. 그 흘러가는 그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이 되고 하나님의 이야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것을 우리는 히즈 스토리라 그래요. 그분의 이야기 단순한 내 삶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런 것들을 참 잘 표현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룻기입니다. 이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서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암흑기입니다. 왕이 없던 사사들이 7일을 하던 때 그 시대의 특징은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말로 표현하면 지 마음대로 살았다는 거지. 얼마나 소란스럽고 어 어두운 아무랬던 이스라엘의 과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이 그런 사사의 혼란한 시대에서 왕조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이 사사기와 사무엘서의 이 사이에 한 개인의 스토리를 담은 이 룻기스를 삽입해 놓은 거예요. 그것도 이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모압 여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람이 아니고 그리고 한 평범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드라마에 주연으로 우뚝 세우시는 기가 막힌 명 스토리가 이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한 국가적 이야기가 아니라 모압이라는 한 평범한 여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놀랍게 바꾸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룻기서의 앞부분 1장은 참 어둡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로 쭉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루기 1장을 읽어보면 아무리 눈을 닦고 보아도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한 점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처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오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향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서 이 예루살렘이라는 말의 뜻은 떡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었어요.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들어 남편과 함께 고향을 떠나서 모압이라고 하는 땅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갔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땅에 갔는데 그 땅에 또 흉년이 든 거예요. 문제를 피해 왔는데 또 다른 큰 문제를 만난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켜 우리는 인생이 꼬인다

[5:03]안타까운 것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 엄청난 일이 밀려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줄지에 죽습니다. 낯은 이방의 땅에서 소위 객사한 것입니다. 왜 죽었는지 언급은 성경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먹고 살기 위해 이방의 땅으로 넘어온 것에서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은 있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인생을 살았는가를 단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과부가 된다는 것은 오늘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바닥난 인생의 하나의 표징이에요. 어지할 것 없고 생존이 불가능한 여성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고대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과부는 완전히 인생의 밑바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둡고 가는한 시대에 남편까지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고 나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두 아들과 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이 연달아 죽는 비유를 맞이합니다. 줄지에 이방의 땅에서 세 남자를 몽땅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화불 단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쁜 일은 몰려온다는 뜻입니다.

[6:53]희망의 불빛이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이 정도의 일을 만난 사람에게는 해 줄 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크고 작은 희망의 끈들이 다 잘려져 버렸습니다. 한 집 안에 세 명의 여인이 줄지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 인생의 끝 지점에서 해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나는 답이 없어. 난 끝이야. 희망이 보이지 않아. 절망의 끝자락에 계신 분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길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젊은 두 며느리의 인생을 위해서 각기 자기의 길을 가도록 권면합니다. 남편들이 다 죽은 상황 속에서 세 여인이 함께 모여 있다고 형편이 나아질 것도 없고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며느리들의 인생을 위해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새 출발을 하라고. 그때 큰 며느리 오르바는 어머니 그러지 마시 지요 그러더니 가 버렸습니다.

[8:15]둘째 며느리 룻은 첫째 며느리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 1장 16절과 17절에 명언을 날립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8:36]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기가 막힌 말을 했어요. 여러분 삶이 척박하면 사람도 강팍해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내가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자구책 그리고 이기심이 발동합니다. 첫째 며느리는 누가 보아도 이런 상황 속에서 상식적인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더 이상 머물거릴 갈등할 이유가 없어. 아무도 큰 며느리 오르바를 욕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롯의 선택이에요. 롯의 고백입니다. 그는 이 고백 속에 아주 단호하고 굳은 결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나오미에게서 감춰진 집문서나 돈이 있다면 룻은 좀 의심을 살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룻의 선택은 의외였던 것이죠. 어떤 경우에도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결련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의 결단은 결코 순간의 동정에서 나온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룻이 나오미를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이었습니까? 홀로 된 시어머니가 불쌍해서 아니면 달리 갈 곳이 없어서 그러나 그의 고백에서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의 선택은 신앙적 동기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선택하고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큰 며느리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났다는 이 말은 그가 믿는 신에게로 돌아갔다는 얘기를 의미합니다. 평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서 여호와의 신앙을 보았고 그의 신앙적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 시어머니에게서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녀가 시어머니를 선택한 것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룻은 지금 시어머니의 나오미와의 결별은 곧 하나님을 떠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룻이 붙들었던 고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게 생명의 고리요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오는 결정적인 룻의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 선택이 중요합니다. 바로 은혜가 있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치어같이 얻은 인생의 이 순간에 빛줄기가 있는 곳을 향하는 영적 탐지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다 주는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룻기를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인생의 전환은 위대한 선택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인생의 역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아멘. 역전극은 하나님의 전공입니다. 성경에 수 없는 얘기들 오늘 이 시간에 짧아서 얘기할 수 없지만 여러분 성경을 들여다 보면 수 없는 이야기를 속에 인생의 역전의 이 대 드라마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성경에 수 없는 사건들 속에 만나게 됩니다. 오늘 3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룻이 가서 배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여기 우연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우연히 이 표현은 뭔가 하면 룻이 목적을 하고 그곳에 간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룻이 자기 의도적으로 간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그게 갔다는 거예요. 근데 이 우연이라고 하는 이 표현 속에 뭐가 있느냐면 무언가 제 3자가 어떤 다른 힘이 룻이 하고 여금 이 밭에 가게 만들었다라고 하는 뜻이 이 우연이라고 하는 이 단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면 또 재밌는 단어가 하나 나와요. 마침

[13:40]냄새가 나죠?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마침 그때 여기 우연이라는 이 단어와 마침이라고 하는 이 흥미로운 단어가 조합이 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엇인가 오면 일들이 신기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룻이 10을 떠나기 전에 한 말이 누굽니까? 한 말이 뭡니까? 내가 밭으로 가서 내게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죽겠습니다. 은혜는 무엇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우연을 섭리로 바꿔 놓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란 무엇인가? 뜻밖의 장소에서 얘기치 않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의 크로노스라고 하는 단어와 카이로스라고 하는 단어가 있어요. 여러분 많이 들으셨을 거예요.

[14:45]역대기 크로니칼 역대기 룻을 크로 크로니칼이라고 하는 그냥 연대기적인 크로노스라고 하는 이 헬라의 단어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그냥 일상의 평범한 시간 그냥 평범하게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근데 어느 시점에 오면 카이로스의 시간이 오는 거예요. 이거는 뭐냐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의 한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거예요. 전혀 아무 일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았던 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굉장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며 마침내 그 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카이로스예요. 오늘 지금 이 순간입니다. 마침 우연히 그 방 그 밭에 들어가서 내 마침 보아스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어부 베드로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 고기를 잡지 못하고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그물을 씻고 있는 그 순간 일상에 크로노스의 시간에 카이로스의 주님이 찾아오셨어요. 이것을 가르쳐 우리는 운명적 만남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섭리적 만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으로 정처없이 떠내려가고 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딸이 어떻게 해요? 마침 그때에 목욕하러 온 거예요. 크로노스의 시간에 카이로스가 임한 거요. 그냥 온 게 아니에요. 그냥 떠내려 가 그 순간에 간 것이 아닙니다.

[16:21]상자가 떠내려가는데 바로의 공주의 딸을 바로 보내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래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섭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 은혜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운조음 럭키다라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어떤 평범한 여자가 여 아이가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서 얼마 안 되어서 졸지에 할리우드 스타가 되어서 아주 레드카펫을 밟았다. 뭐 대박 이것을 우리는 대박이라고 얘기했죠. 요즘 아이들도 대박을 참 좋아해요. 그러나 이것은 은혜라는 단어와는 다른 것입니다. 가끔 세상에 대박이 일어나요. 롯 뭐 로또로 뭐 그냥 돈을 벌기도 하고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은혜가 아니죠. 하나님과 연관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대박 이후에 인생을 그 대박이 그의 인생을 축복으로 바뀌어 줄지 아무도 보증할 수가 없어. 그 운조음이 또 다른 운조체 아음을 만나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요. 대박을 만난 사람이 쪽박을 찬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잖아요. 로또 담첨된 사람을 다 조사해 봤더니 다 망했다고 그러잖아요.

[17:46]단순히 운 좋은과 운 안 좋음에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은 도박이죠. 은혜의 이야기는 다른 것입니다. 그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그 안에 일어나는 것은 해프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철저한 의도가 숨겨진 정확하고 완벽한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룻을 통하여 읽어보면 그의 순간의 삶의 스토에 일상의 어느 작은 한 행동과 결정을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속에 계획된 의도된 하나님의 철저한 배려와 역사 속에 모든 것이 움직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루에게서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라는 이 보호는 누굴까요? 바로 보아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축복된 만남으로 찾아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런 놀라운 만남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준 도전이 뭡니까, 여러분? 룻의 선택이에요. 오늘 16절 1장 16절로 17절에 있는 말씀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고 거기 묻힐 것이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 여러분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의 고백입니까?

[20:34]헌신을 해도 이 정도 헌신을 해야죠. 예수를 믿으면 이 정도 믿어야 되죠. 이 단호한 선택과 결단 하나님의 은혜의 고리를 어떤 경우에도 내 삶에 어떤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그 은혜를 놓치지 않겠다라고 하는 이 분명한 태도가 바닥의 인생에서 정상으로 지속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은혜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난과 절망의 밑바닥에서 풍요의 한가운으로 그리고 비천한 신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 안으로 들어오는 이 이 상승 이것은 롯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아요. 롯의 스토리 롯의 스토리는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연관을 맺기만 하면 예측할 수 없는 대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 일상 속에 나의 결단과 선택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믿음의 선택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결단고 녹록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고 돌아가지 마 돌아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밀려오는 마주치는 쉽지 않은 어려운 우리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빼앗아 가고자 하는 수 없는 위기와 유혹들이 있겠지만 조금도 우리는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를 향하여서 내 얼굴을 향하고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다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끝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룻기서를 보면 정말 끝입니다. 바닥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망의 뿌리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우리의 인생의 어떤 것도 끝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삶의 끝은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아멘. 그것은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처음을 시작하게 하셨던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 오메가의 전도 하나님이 찍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인생을 쉽게 결론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의 여백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믿고 우리 믿음의 변절을 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선택을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언제든지 반전시키시고 역전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은혜보다 더 강력하고 완벽한 삶의 개런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 역전극의 위대한 스토리 그것은 오늘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고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놀란 스토리 속에 얼마든지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삶에 수 없는 우여곡절들 우리가 알 수 없는 수 없는 의문의 일들이 수 없이 닥쳐오지만 전하 위복의 하나님 꼬인 것을 푸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그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작은 믿음의 선택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