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성경 말씀 중에 귀중하지 않는 말씀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뭐 한두 개 꼽아라 그러면 뭘 선택할까 고민할 수 있는데요. 저는 두 개 딱 꼽아라 하면 두 개 꼽겠습니다. 불에 다 성경이 타도 이 두 구절만 있으면 우리에게 참 큰 어 그래도 구원의 실마리가 되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어 창세기 1장 1절이 참 중요하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런 말씀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우리의 삶의 모든 기원, 내 존재의 이유 또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미아가 되잖아요. 공중에 붕 떠져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의 인간이 종과 종사의 우연히 우연히 이렇게 발전되어서 이렇게 뭐 만들어졌다 뭐 이렇게 얘기하는데 너무 황당하죠. 창세기 1장 1절에 내가 줄을 설 건가 다윈의 진화론에 줄을 설 건가 둘 중에 인류의 역사는 다르게 가는 것입니다. 동물적 그런 그런 관점에서 보는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의 그런 존재로 보지 않고 그런 다윈의 진화론 즉 그런 발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 같은 사람들이 인간을 무자비하게 학살할 수 있는 논리가 그런 진화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 또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창조론의 부분에 있어서 귀중한 구절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라고 하는 것을 믿으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것을 믿는다면 동정녀 마리아 탄생 못 믿을 거 없고 홍해 갈라진 거 못 믿을 거 없고 성경에 나오는 죽은 자 살린 거 못 믿을 거 없어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1장 1절이 키가 돼요. 그기에 줄을 서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아멘. 두 번째는 요한복음 3장 16절. 구원론이죠. 창세기 1장 1절이 창조론이라면 이 요한복음 3장 16절은 구원론의 아주 중요한 구절이 되겠습니다. 아이들도 어린 아 주일학교부터 암송하는 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 까지 여기까지. 여러분들 주일학교 주일학교를 잘 나오셨다는 게 인정이 됐어. 얼마나 이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는 부족들에게 선교를 하는 이 언어 번역 선교사들은 어디든 가면 그 땅의 언어를 익히고 그다음에 그들의 문자를 만들어 주는 작업을 해요. 그 문자를 만들어 주고 난 다음에 첫 번째 번역하는 글이 어떤 글일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일 것입니다.
[4:02]그래서 이 3장 16절은 우리가 알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막 부르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사실 여러분 3장 16절을 한번 곰곰히 바라보세요. 대작이에요, 대작. 이 한 구절이지만 이 한 구절을 우리 집에다 탁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으면 대작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묘사한 성경 전체를 압축 슬림 형으로 그냥 요약 정리한 구절이 3장 16절이거든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의도를 3장 16절만 읽어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한 구절 보세요. 한 단어 다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도 놓칠 구절이 없어요. 그냥 안심 스테이크처럼 아주 그냥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기가 막힌 구절로 하나님을 가장 잘 묘사하고 타락한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함축성 있게 이 구절 안에 쏟아 부으셨습니다. 자 우리는 이 구절 속에 그러면 하나님의 의도를 찾는다 할 때 이 구절 속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에서도 요한은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요. 하나님에 대해서 한 마디 하라고 하면 사랑의 하나님이다. 근데 이 사랑의 하나님이다라고만 말로 끝나 버렸다면 그것이 언어로만 남아 있고 문자로만 남아 있고 사랑의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으로 그 뒤에 더 이상의 무슨 설명이 붙어 있지 않다면
[6:16]그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모한 것이고 철학적인 개념으로만 남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오늘 여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래요. 이 3장 16절에 두 동사가 나오는데 첫 번째 동사가 사랑하사예요. 두 번째는 주셨으니 사랑은 주는 거라는 거죠. 사랑은 하나의 추상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는 겁니다. 주셨으니 구체화 됐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뭔가 애매모하게 그냥 알 듯 모를 듯 달 듯 말 듯 한 그런 개념으로 주신 게 아니에요. 사랑은 너무도 구체화됐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은 뭘까요, 여러분? 그 사랑은 만질 수 있는 것이고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볼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정말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신앙으로 진입할 때 진입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느냐 하면 교리적인 납득으로 신앙의 세계로 우리의 머리로 들어가는 작업이 되면 안 되고 이 사랑은 느끼고 만지고 보고 맛을 보는 그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이 진입돼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없으면 굉장히 교리적으로는 이해하고 지식적으로는 납득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는 다 이렇게 정리가 되어져 있는데 뭔가 신앙이 맴도는 거예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신앙의 주변부에서 빙빙 교회를 다니는데 빙빙 돌고 뭔가 팍 터지는 게 없어서 그냥 일 그냥 교회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냥 교회 생활. 어떤 분은 나 집안에 평화를 위하여 뭐 나오고 그냥 나오는 거예요. 그냥 나오는 거예요. 오랫동안 오랫동안. 왜? 그 사랑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 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하는 너무도 구체화된 사랑을 피하고 신앙생활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럼 불가능한 거예요. 여러분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뭐 소금 뭐 염분이 얼마고 또 뭐 그게 뭐 물 이게 얼마고 그걸 분석해서 눈물을 이해한 게 아니잖아. 엄마의 사랑을 분석하고 평가해서 돈으로 계산해 가지고 아무리 되돌려 준들 그게 엄마의 사랑을 이해한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평가하고 계산하고 그것을 논리로 정리해서 엄마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거잖아.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랑을 모르는 거잖아요.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랬어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다는 거예요. 이 확증은 좀 쉽게 얘기하면 그냥 가슴에 팍 꼽아 주셨대요. 부인할 수 없도록.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도 원수 되었을 때 아직도 연약할 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이 여기에서 일어나는 거. 하나님의 사랑, 구체화된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사건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자식들도 보니까 언제 꼬꾸라지는가 보니까 부모의 사랑의 정면으로 팍 부딪히는 날이 오더라고요. 깨닫는 거죠. 아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사랑했었구나 할 때 확 오면서 눈물이 쫙 쏟고 그 이전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그 수 없는 잔소리같이 여겼고 지겹게 여겨졌던 그래서 이해도 안 가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반항을 했던 아이가 어느 날 순해지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뭐라고 그러죠? 철들었다 그래요. 철들었다. 왜 그렇습니까? 전에 사랑이 있었어요. 사랑은 계속 부어졌지만 그게 내 안에 가슴에 부딪히지 않은 거예요.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던 거예요. 뭐 약간은 다 느꼈지만 정면으로 관통하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반항이 일어나고 이해가 안 되고 상처고 뭐 엄마가 해준 게 뭐 있냐 그러고 막 헛소리하잖아요. 정면으로 관통을 하고 나면 그냥 다 무너지는 거잖아. 완전 막 울컥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잖아. 근데 그게 너무 늦은 사람들이 있죠. 너무 늦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뭐.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의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신앙의 주변부에서 빙빙빙 돌아야. 재미없어, 신앙 생활이. 저는 이 사랑 안에 여러분들 심장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 심장이 심장으로 관통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바 됨이니 그런 말씀하잖아 로마서 5장에. 그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음바 됨이니 똑똑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샤워를 하듯이 피할 수 없도록 나야가로 폭포 밑으로 들어가면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수 없는 포말이 아무리 부어도 쓰며 내 옷을 적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피할 수 없도록 우리의 영혼을 뚫고 지나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때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는 거야. 여러분 사랑 성경은 두껍지만 한마디예요. Love예요, Love.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이 성경책은 연설입니다. 연설. 사랑의 언어로 가득해요. 난 널 사랑해. I love you.
[12:37]여러분 소선지서를 읽으면 예리한 칼날 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서도 어떤 소선지서 뒤에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얘기예요. 그 심판을 예고하는 그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뜨거운 가슴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사랑을 소개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그리고 흔히 맛보았던 세상의 사랑과 다른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오늘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러분 이 사랑에서 하나님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하고 완전하고 충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랑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그 사랑은 완전하고 그 사랑은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알려진 이열용 씨가 세례를 받아 개신교인이 된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열용 씨가 한때 TV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이열용 씨를 너무너무 사랑했어요. 특별한 사랑을 받았어. 사실 여러분 인간으로부터 받은 사랑 중에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이 어릴 때 심하게 아픈 적이 어느 날 있었는데 하필 그때 어머니가 외출 중이어서 혼자 끈끈 찐땀을 흘리며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참 있는데 드디어 어머니가 바깥에 외출에다 돌아오셨어요. 아마도 겨울이었는지 놀라서 다가온 어머니의 옷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그 찬손으로 아들의 뜨거운 이마에 갖다 됐습니다. 이열용 씨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어떻게 밀착되는 순간이 이렇게 밀착되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를 느꼈다고 말한 거죠.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과 인간의 이렇게 뜨겁게 밀착되는 순간은 없었다는 거예요. 최고의 사랑인 어머니의 그 손과 지금 그 사랑의 목마른 아들의 뜨거운 이마와의 만남. 정말 이것처럼 하나가 되는 순간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열용 씨는 바로 이 대목에서 기억에 남는 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나의 뜨거운 이마와 차가운 어머니의 손 사이에 얇은 막이 있는 것을 느꼈다. 아 섬세한 이열용 씨의 통찰이 나오죠. 아무리 놀라운 사랑으로 내게 다가오더라도 아픈 나의 상황 속으로는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느낀 막의 이 얇은 막의 존재. 그 어머니의 찬송과 내 이마에 다음 그러나 아주 얇은 막이라는 뭘까요? 도무지 그 이 내 고통의 한 가운데로는 도무지 들어올 수 없는 그 막 실존적 절대 고독을 느끼게 만든 그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 확인되었던 그 외로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해결되지 않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미치고 그것 때문에 울고 그것 때문에 쥐고 있어도 여전히 허전한 삶을 사는 이유가 그 막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것입니다. 막이 아니에요. 우리의 심장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우리의 깊은 내면의 실존적 고독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의 인간의 깊은 고통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시는 아니 나와 함께 하나가 되시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내 삶이 뒤섞일 때 미치는 거예요. 미치는 거예요. 그 사랑이 한 번 내 심장에 담금질을 당하면 지금 이 순간 라이 나우 이 순간 아프리카 저 끝에 가라고 해도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솟게 만드는 이 복음의 능력. 기가 막힌 것이죠.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십자가에 주님을 만나고 또 목사가 된 이후에도 전역 명시자는 어느 날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담금질 당한 날이 있었어요. 그날 제 경험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저의 입술에서 나온 탄성은 하나님 충분합니다. 영어로 enough. 난 충분합니다. 그 사랑으로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완벽한 그리고 충분한 내 영혼을 감싸고 흔들어 놓는 그 사랑에 그 십자가의 은혜에 하나님의 그 사랑에 물밀듯 밀려오는 그 은혜에 제 영혼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아멘. 술 담배 끊으라고 할 필요도 없어요. 뭐 뭐를 하라고 말라 뭐 할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 그냥 내 심장을 뒤집어 놓으신 그 하나님께서 나를 움직이시는 대로 내 삶을 맡길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이처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 사랑의 열병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터치가 일어나는 것이죠. 독생자를 주신 사랑,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의 사랑, 그 사랑은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필요한 것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 속에 언제나 매일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더 더 나은 삶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누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아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우 우울함과 욕구불만과 원망과 인정 욕구에 매달림과 외로움과 끝없는 돈에 대한 탐심과 집착 잘해 보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뒤엉켜 버린 듯한 삶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시원한 해답을 갖고 계십니까? 이 모든 것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에덴 동산을 떠난 인간의 이 가슴을 이 큰 한물 웅덩이는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독생자를 죽이면서 하늘에 공중이 매달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가시 멸류관을 쓰시고 창에 허리 찔리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며 아버지 마저도 등을 외면하시고 쳐다보지 아니하고 마침 온 인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했던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신 독생자의 그 사랑.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고 이보다 더 위대한 축복은 없고 이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해 주신 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음바 되어진 이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가는 넉넉하고 풍성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 사랑에 감염되면 우리의 모든 상처가 씻겨질 것입니다. 아멘. 그 사랑이 우리에게 밀려오면 우리의 모든 아픔은 지워질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 안에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을 피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을 우회하고 우리의 신앙의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이 사랑 안으로 빠져 들어가는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십자가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 앞에 앉아 있어 보십시오. 10분 20분 앉아 있어 보십시오. 오늘도 2천년 전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흘러 넘쳤던 보혈의 능력이 사랑의 은혜가 갈보리 언덕으로부터 우리의 심령 가운데 물밀듯 파도처럼 밀려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미치는 거예요. 내 삶을 주를 위하여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기가 막힌 하나님의 사람들로 일어서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밋밋한 신앙생활은 청산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며 기뻐 떼며 아버지와 함께 축제의 삶을 살아가고 예배마다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신앙의 일상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이전에 불만족과 욕구 불만과 상처에 휘둘려 살았던 우리의 삶이 청산되고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서 멋진 믿음의 삶에 일상이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머리로 이해하지 마시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시고 그 사랑을 여러분들이 온 몸으로 경험하시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