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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BEST 설교 | 나를 따라오라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장 16절 ~20절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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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오늘부터 마가복음 강해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마가복음 매력적인 사복음서 가운데 최초의 기록된 복음이고요. 가장 짧은 복음서입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그리고 음 굉장히 매력적인 스피드가 있는 아주 간략하게 기록된 사복음서 어떤 책보다도 굉장히 함축미가 있는 그런 책입니다. 자 이 어 우리가 앞부분에서 살펴봤습니다마는 주님은 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왔다. 예수님의 첫 번째 일성 설교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 창세기 인간의 범죄로 출 어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아무리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발전이 되어도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그리고 저주가 작동이 되고 있는 세상은 들어가 보면 신음 소리가 나고 고통하는 소리 또 실패, 좌절, 두려움, 무질서, 부조리, 모순 이런 것들을 겪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좋은 사회라 하더라도 들여다보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고 또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특별히 요즘 코로나를 겪으면서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이 바이러스 하나 이 뭐 어마어마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딱 지금 인류를 강타를 해도 우리가 정신을 잃을 정도입니다. 이제 이런 것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하고 두려워하고 이게 뭐예요? 이 세상이 완전하지 않고 이 세상이 끝이 아니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된다는 거 요즘 미국 같은 나라가 세계 최강국이잖아요? 오늘날 뭐 미국을 견줄 수 있는 나라는 없어요. 중국이 뭐 상당한 발전을 했지만 뭐 여러 면에 여러 면에서 중국이 뭐 아무리 그래도 미국의 상대가 안 되죠. 최고의 번영한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금 코로나로 뭐 휘청거리고 있어요. 1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통제가 잘 안 돼요. 미국에 있는 분들 요즘 얘기 들어보니까 미국 뭐 전쟁 날 것 같아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하다는 거. 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니까 나 코로나 걸리든 말든 간섭하지 말라는 거예요. 미국의 문화 자체가 그러잖아요? 이 독립 정신 인디비주얼이라 개인주의 개인이 강조되는 사회가 워낙 강하다 보니까 국가가 막 뭐를 이렇게 좀 제한을 해도 말을 안 듣는 거예요. 그럼 막 데모하는 거예요. 우리도 하더라고요. 우리 지금 한국은 너무 이 나라가 백성들이 아주 착해요, 우리는. 그렇죠? 마스크를 쓰라 하니까 다 쓰잖아요? 미국은 그게 안 돼요. 그러니까 일파만파로 퍼지고 지금은 10만 명 이상이 죽고 그러는데 통제가 지금 안 되고 어디까지 확정될지 지금 미국에 사는 뭐 여러분들 가족들이나 누가 있으면 지금 미국은 좀 불안해서 못 살아요. 그리고 막 데모도 하고 그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거죠.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문명국하고 부자 나라고 모든 힘을 다 갖고 있는 나란데 이 바이러스 하나에 꼼짝 못 하는 거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더 많이 희생자가 날지 모릅니다. 자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얘기할 때는 이 세상에 이 부조리, 모순, 혼란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도래했다, 임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셨어요. 성경의 전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구약 시대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얘기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돼요. 이제 이미 시작이 됐다. 얼레디 시작됐다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 예수님이 이제 사도행전 1장에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성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함께 40일 동안 뭘 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가르쳐 주셨다는 거, 제자들에게.

[4:34]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프라이오리티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장 우선순위 될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다. 이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 우리는 이 세상을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되죠.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또 이 지상에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나라들이 건재하는 동안에는 우리 나라에 속해 있고 또 이 나라를 세상의 나라를 무시해서는 안 되죠.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라고 생각하고 이 세상을 너무 꽉 붙잡고 있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마감이 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완전한 회복되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완전한 통치가 임하고 모든 부조리와 모순과 고통과 저주가 끝이 나는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게 이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가복음 읽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이해하고 성경을 들여다 보아야 되고 물론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전체를 우리가 들여다 볼 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들여다 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발전되고 진행되고 완성될 것인가? 이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져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하여서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나라를 어떻게 성취해 가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들이 이 복음서에 담겨 있습니다. 자 우리 예수님이 첫 번째 이 하신 일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제자를 부르셨 이 일은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입니다. 공생의 첫 번째 사역이 예수님이 당개 한 게 아니라 사람을 제자를 부르셨고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천 직전에도 하신 일이 뭐냐면 이 제자를 삼으라 디사이플 메이킹을 하라고 하는 이 명령을 하시고 하늘에 오르셨다. 여러분 우리가 잘하는 것처럼 마태복음 28장 19절로 20절의 말씀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제 붙잡아야 될 대 사명이에요. 대 사명. 위임 명령이기도 하고요. 자 이 이 구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7:34]자 하나님의 나를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 예수님이 하신 방식은 뭐냐면 제자를 선발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9:25]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했던 여러분 성경이 다 중요하지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 사복음서를 잘 보아야 될 이유는 예수님의 행적이 들어 있기 때문에. 네 명의 기자가 다양한 앵글로 이 이 예수님의 행적을 지켜보고 기록한 거거든요. 그 그 복음서마다 특징이 있는데 어찌 됐든 이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의 행적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당신의 목적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 어떻게 성취해 가시는가? 이것을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데도 필요한 원리와 방식들이겠지만 그 원리를 우리가 잘 우리가 이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배우면 우리의 일상의 모든 일들 속에서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아주 예수님이 지혜로우신 분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들은 그냥 우발적으로 돌발적으로 그냥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시와 비밀 아래에서 행한 것이기 때문에 그 원리, 그 방식을 하나만 배워도 우리의 삶에 큰 축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주목할 때 첫 번째 사람을 제자를 세우셨다는 거에요. 시몬과 오늘 보니까 그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셨다. 여러분 이것은 세상의 방식과 좀 달라요. 주님은 사람을 먼저 세우셨다는 거예요. 이게 핵심 원리입니다. 우리는요, 뭘 하면요, 조직을 먼저 해요. 조직을 하고 조직을 하면 어떻게 하죠? 우리는 모이면 조직하고 어떻게 해야 돼요? 제일 먼저 하는 게 뭐냐면 회장 뽑자 그래요. 총무 뽑자 그래요. 이게 우리는 이렇게 무슨 회장을 뽑고 협회장을 뽑고 대표를 뽑고 조직을 하고 사무실을 내고 간판을 달고 광고를 하고 명함을 돌리고 그렇게 시작해요. 근데 주님은 전혀 그러지 않아. 사람을 찾으셨어요. 전적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셨어요. 주님은 건물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셨어요. 우리 교회 요즘 뭐 하면 개척하면 막 건물 찾아다니더라고요, 목사님들이.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건물은 안중에도 없고요. 제단도 만들지도 않고요. 사람을 찾으셨어요, 사람을. 전적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셨어요. 아무리 조직이 좋아도 여러분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사람이 준비돼야 됩니다. 자 왜 주님은 제자를 부르셨는가? 하나님의 나라의 지상 과제를 제자들과 함께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이건 동력의 원리에요. 혼자 독불 장군으로 지상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고 제자들과 함께 그 일을 이루고자 하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 죽으실 때 테텔레스 타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어요. 다 이루었다라고 얘기하셨어요. 근데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보면 주님의 사역이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믿고 주님은 지상에서 제자들에게 모든 걸 쏟아 부으신 거죠. 그래서 홀로 사역을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도 함께 사역을 잘 하는 사람들이 좋은 사역자입니다. 혼자 다 그래 가지고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역자는 좋은 사역자가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굉장히 일을 잘 해요. 근데 주변에 사상자가 너무 많아. 전후의 시체를 밟고 밟고 밟고 막 주변에 사람들은 다 상처를 입고 자기 혼자 열심히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이 아니에요. 팀 미니스트리는 이미 예수님이 하셨어요. 자,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계승이죠. 대가 끊기면 모든 게 끝나버립니다. 당대에 아무리 잘해도 바톤 터치에 실패하면 끝입니다. 바톤을 누가 받아야 되죠. 이 사 이 사역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되어야 한다면 내가 열심히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일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거. 그래서 예수님의 방식은 제자가 제자를 낳는 그래서 예수님 제자를 부르시고 그 제자가 또 제자를 낳게 하시고 그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시고 위임하시고 파송하시네. 이 일을 하신 겁니다. 또 하나 우리가 볼 것은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되 소수를 부르셨어요. 주님은 12제자를 세우셨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는 대량 생산으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수의 학생을 콩나물 시루처럼 막 해가지고 물 주면 되는 게 아니고 주입식 공부 방식으로 주님은 하시지 않았어요. 주님이 학교를 하셨다면 큰 학교를 운영하셨겠죠. 주님은 능력이 많으시고요. 인류의 역사에 예수 그리스도만큼 탁월한 스승은 없어요. 탁월한 교사세요. 근데 예수님이 뭐가 좀 모자라서 그러신 게 아니고 예수님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 분이에요. 그래서 12명, 12명 여러분 세상의 조직체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불 불리려고 하죠. 회원 가입도 많을 많게 하려고 하고 이 수가 많아야 돈이 되고 힘이 되고 그렇죠. 그래서 군중을 동원하죠. 예. 근데 예수님은 그 군중 안에 허수가 있음을 보셨어요. 소수에 집중하셨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대중을 무시한 건 아닙니다.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도 하고 다가오는 사람들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치료하시고 다 하셨어요. 그러나 주님은 핵심적인 사역은 소수에게 집중하셨다는 거. 철저히 도제식이었어요. 소수 정예요. 그 주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어요, 일을 서두르지 않으셨어요. 제자를 12명, 3년 동안. 여러분 보면요, 사람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도 여러분들 두신 분들 직원이 많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진짜 일을 하는 사람 한 사람이 열몫도 해요. 예. 그러니까 주님은 제자와 무리를 엄격하게 구분하신 거죠. 가르치실 때도 구분하셨습니다. 말씀을 무리들에게도 하셨는데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조금 전에 무리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설명해 주셨어요. 예수님의 초점은 언제나 무리들보다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 제자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부으셨습니다. 주님은 12제자를 뽑으시고 공생에 내내 12명 가지고는 안 되겠다. 한 10명 더 붙이자. 그러지 않으셨어요.

[16:53]3년 동안 내내 12명에게만 어떤 사람은 구약의 12 사도의 그 개념에서 12제자를 뽑으시고 12제자를 고셨다는 데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 12명을 집중하신 것은 소수의 원리, 도제식 방식을 유지하신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많다고 결코 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굉장히 중요한 원리에요. 소수 집중을 고수하셨어요. 여러분 혁명을 하려고 하면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그렇죠. 그러나 주님은 혁명을 일으키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에요. 주님은 개인의 변화를 통하여 사회를 변하고 세상을 변하시는 방식이에요. 전혀 다른 방식이죠. 사람이 많다고 무슨 역사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변화된 한 소수가 세상을 변화시킬 거다. 이 원리입니다. 자. 그리고 주님은 누구를 부르셨는가? 어부들을 부르셨는데 주님의 제자들은 대부분은 어부 출신이에요. 가르 유다가 좀 똑똑한 도시 출신이고요, 다 갈릴리에 있는 어부들이었어요. 그 주님은 이 평범한 사람을 부르셨다는 겁니다. 자 이것도 여러분 세상의 방식과 달라요. 여러분 우리가 이제 예수님을 계속 공생에를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와 이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셨는가를 이해해야 돼요. 우리가 자꾸 이제 세상의 방식이 자꾸 우리 안에 익숙해져서 우리 굉장히 생산적이고 효율적이고 그러면서 그냥 우리가 좀 세상의 어떤 메커니즘을 가져오려고 할 때가 많아요. 근데 주님의 방식이 옳다는 걸 우리 느끼게 됩니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주님의 이 기독교는 그 예수님의 이 방식에 대해서 지금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인류 역사의 거대한 구원 사역을 이루시려고 하면 탁월한 사람들을 뽑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근데 전혀 그러지 않으셨어요. 주님이 뽑아진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오늘날 어디 내놔도 채용되기 어려운 사람들. 세상적으로는 갖춘 게 하나도 없어요. 이 이분들은 우리 교회 부목사님으로 지원하면 다 떨어질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의 선택 기준은 달라요. 자 고린도전서 1장 27절의 말씀이 답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여러분 갈릴리의 허술을 낀 이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팔며 살았던 평범한 이 촌부들입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는 일이 매우 익숙했고 그것이 삶의 수단이었어요. 매일 몇 마리를 잡을 것인가,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떤 어종을 잡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이 경기가 좋아질까? 때로는 시간이 나면 유대 정치적 상황을 논하며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스토리 안으로 이들을 불러들이신 거죠. 주님의 제자들은 유능하거나 똑똑하지도 않아야 됩니다. 오히려 반대요. 똑똑할수록 주님을 따르는 데 방해될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소리를 내고 자기의 주장이 강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어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무 잘 나면요, 신앙생활이 어려워요. 자기가 똑똑하면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합니다. 주님은 세상적으로 매우 연약한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연약할지라도 그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자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그 제자의 부르심은 단순해요. 오늘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참 멋있는 말씀 오늘 계수는 이 구절을 가지고 다음 주 한번 또 하려고 그러는데요. 자 여기서 부르심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으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렇죠? 구원으로의 부르심. 두 번째는 소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받아야 소명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구원은 안 받았는데 소명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받고 두 번째 소명으로의 부르심을 받아야 돼요. 어떤 사람은 구원과 소명이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와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얻는 예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소명을 받아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소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이 시몬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을 다 알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이제 오늘 이 부르심을 받고 있는데요. 오늘 이 소명이라고 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이 아주 중요한 주제가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 주님이 부르셨다 하는 거. 자 이 소명은 정체성과 연결이 됩니다. 소명을 받아야 내가 살아야 될 목적이 분명해지는 거.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요즘도 코로나가 그런 거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 삶을 막 다 흔들어 놓았어요. 흔드니까 이게 막 가게도 흔들리고 뭐 비즈니스 하는 게 다 흔들리고 건강도 흔들리고 뭐 아이들의 미래도 막 흔들리고 막 환경이 변하면 어때요? 우리는 요동을 치는 거죠. 근데 여러분 환경은 변해도 소명이 흔들려서는 안 돼. 제자들이 예수를 따랐다는 것은 이 극적인 선택입니다. 직업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전환점이에요.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거는 일입니다. 특별한 부르심이에요. 하나님이 지목하시고 내를 내가 너를 쓰겠다라고 하는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시는 특별한 특권이고 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소명은 매우 중요한 주제요. 여러분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보면 힘들잖아요? 그러면 자포자기를 해 버려요. 자포자기를 한다. 이 자포자기를 왜 해요? 제 스스로를 자 자기를 삶을 포기하는 거예요. 요즘 코로나 의해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코로나도 코로난데 우울증이 막 막 들끓고 있어요. 지금 막 자꾸 막자가 나오는데 막 늘어나는 거예요. 막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막 생기고

[24:00]여러분 왜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절망하는 거거든요. 자기 포기를 자폭 자포자기를 한다는 말은 자기에게 자기 스스로에서 의미를 찾아내지를 못해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발견한 것으로는 살아가기에는 부실하다는 거죠. 부실하다는 거.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고 깨어질 수 있습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거. 이 중요한 질문인데 그것을 던질 여유 없이 현실에 뛰어든 거죠.

[25:13]사실은 중고등부 때 수련회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이 중고등부 때 아이들이 내가 누군가라고는 자기 정체성이 확립이 안 된 상태기 때문에 힘든 거거든요. 그 부모가 막 공부하라고 그러니까 억지로 공부하고 이 사회적 시스템이 그렇게 몰아가니까 공부를 하는데 사업에는 파가 나고 부모와 갈등을 하고 그 뭐냐면 내 스스로 공부해야 할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게 확보되지 않는 상태 속에서 하려고 하니까 미치는 거예요. 근데 성소 연계의 그런 수련회 때 확 하면 예수를 만나가지고 내 인생의 빛을 보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고 나면 얘 가 막 신이 나는 거예요. 공부할 의욕도 생기고 아 엄마가 잔소리하기 전에 자기가 하고 막 이렇게 되는 거란 말이야. 그 그걸 못 만들어. 그 자 정체성을 중고등부의 확립을 안 되고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 마치고 그냥 생전에 뛰어들고 막 그냥 결혼하고 먹여 살리고 하다 보면 막 정신없이 뭐 50대, 뭐 보내고 그러잖아요. 그 이제 은퇴하고 이제 살면 어때요? 60에 은퇴를 했다도 한 40년, 요즘 100세까지니까 한 40년 동안 어떻게 노우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 그 먹고 살 그냥 먹고 사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그 너무 힘든 거예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여 연로하신 분들도 지금 얼마나 많이 삶이 힘들어 있습니까? 자 여러분 오늘 이 모든 원인이 직업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26:53]궁극적인 문제라는 거 소명의 문제라는 거. 자 오늘 여러분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오늘 18절에 보니까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에는 상세한 기록이 없어요. 요한복음 1장 35절 이후를 보면 베드로는 이미 예수를 만났고 그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 무턱대고 따른 게 아닙니다. 무턱대고 지금 그물을 버린 게 아닙니다. 그 이미 그리스도를 따를 만한 분임을 알고 있었던 거죠. 누가 함부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할 수가 있습니까?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생존의 도구를 던진 거거든요. 여러분 직업을 포기하고 따는다는 중대한 결단입니다. 어떤 것을 포기할 때는 그냥 포기한 게 아니에요. 분명한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자도의 핵심 중에 하나는 포기입니다. 포기.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안드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를 만한 가치를 발견한 겁니다. 여러분 따를 때 중요한 것은 뭐냐면 주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면 기꺼이 우리가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할 수가 있어요. 핵심은 뭔가하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무조건 헌신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먼저 발견하는 거예요. 저는 교회에서도 목회할 때 초심자가 너무 많이 봉사하는 걸 그렇게 원치 않아요.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열심히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그 열심히 자기의 흥에 의해서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인정 욕구에 끌려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선천적으로 열심히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할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근데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헌신이 아니면 언젠가는 그게 힘들어지게 돼 있어요. 시험에 들게 돼 있고요. 여러분 주님을 따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길이 좁아져요.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거. 근데 주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결코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그런 얘기해요. 누가 어떤 사람이 잘 나가던 직장과 연봉을 다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걸 보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막 감탄을 해요. 와 저분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결단을 할 수 있느냐? 여러분 사실은 그분이 대단한 게 아니고요, 그렇게 기꺼이 헌신하도록 만드신 주님이 대단하신 거예요. 주님을 만나면 그러니까 주님을 따르는 일 이전에 주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선택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떤 가치를 그냥 한꺼번에 부르는 게 아니라 내가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할 때 가능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 우리가 일방적으로 우리가 선택하면 그 후회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다면 후회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데 중요한 것은 나의 상태와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나를 부르신 분이 누구인가? 나를 부른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잖아요, 여러분. 그분을 신뢰할 만한 거 내 인생을 맡길 만한 것인가? 여러분 주님을 억지로 따를 필요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소명을 부 부 막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부흥에 잘 안 오는 이유가 그 그 날 가 가지고 막 그 말씀 듣다가 주님하고 눈 맞아 떨어지면 그냥 아프리카로 보낼 것 같으니까. 근데 그렇게 억지로 보내실 분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배에서 어떤 사람은 여러 우석의 얘기 했잖아요. 배에 갑판에 뛰어 내려 가지고 그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려 오면서 찍찍 거리는 거예요. 누가 나 밀었냐는 나 자기가 내리려고 뛰 내리려고 뛴 게 아니고 누가 떠민 거 그 할 수 없이 빠진 김에 이제 빠진 사람 건져 올리고 올라오면서 화가 나 있는 거예요. 자기가 스스로 한 게 아니라 억지로 한 거예요. 근데 주님은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헌신하고 억지로 선교하고 그렇게 하나님 우리를 막 내 모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느 날 막 하나님이 막 작정하시고 어느 집회에 오늘 10명은 아프리카로 보낸다. 이래 가지고 막 막 몰아 가지고 막 억지로 그냥 막 입이 이만큼 나오게 해 가지고 보내시는 하나님이 즐거히 기꺼히 주님 위해서 들 수 있는 그래서 여러분 나 부르면 어떡하냐? 걱정하지 마세요. 안 부르세요. 준비도 안 됐는데 뭘 부르시겠어요. 충분히 영적으로 준비돼 있으면 주님이 부르세요. 예.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알면 즐거히 헌신이 나오는 거거든. 주님을 만나면 소명이 또렷 또렷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해지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미혹하게 되고

[32:28]그러면 거기에 에너지가 막 나오는 거예요. 에너지 기쁨이 생기고요. 살맛이 나고요.

[32:38]소명은 은퇴가 없습니다. 소명은 살아게 하는 힘입니다. 그 안에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부르심을 분명히 발견했어요. 그 전 존재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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