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의 기도에서 첫 번째 생각할 것은 기도란 뭐냐? 기도란 우리가 뭐 기도하면 떠오르는 많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기도하면 우리가 떠올려야 할 잊어버려야 할 단어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관계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관계라고 하는 단어예요. 이제 기도의 시작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의 첫 출발에서 내가 기도를 하고 있는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과 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확인하는 겁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기도를 하느냐? 또 내가 기도했을 때 그분은 무슨 어 이유로 나에게 기도를 응답해 주셔야 하는가? 여기에서는 관계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버지라고 불었을 때는 아무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아무나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야. 여러분 우리는 일상적으로 아버지 기도할 때 많이 편안하게 부르지만 어떤 사람에게 불러 보라 세요, 안 불러요. 하나님 불러 어떤 분들은 부인 따라 열심히 교회에만 그냥 부인 따라만 다니고 자기는 기도도 행전 안 하고 이런 분들 계세요. 그러니까 자녀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안 쓰죠. 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불러야 되긴 하는데 아버지 하기에는 너무 멀어. 그다음에 내 마누라의 하나님이여 한다리 걸쳐오고 지나가는 거예요. 친근함이 나와는 없는 거예요. 아버지라고 하는 표현은 독특한 표현이에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고 아버지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 것이고 내 안에 믿을 때 성령이 찾아오셔서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시게 하느니라. 로마서 8장에 말씀하고 있는.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내가 임의로 부르는 게 아니라 예수를 믿을 때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나를 향한 양자의 영이 우리 안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란 누가 하느냐? 자녀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에요. 자녀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거예요. 마치 호흡 기도가 호흡과 같다 그러는데 호흡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거예요. 자녀가 아버지께 나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거예요. 기도는 어떤 요식적인, 형식적인, 절차적인, 종교적인, 관례적인 어떤 수행의 어떤 도를 닦는 행위가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얼마나 자연스럽습니까? 특별히 그냥 자녀도 아니고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어린아이가 너무도 순진하고 너무도 편안한 가운데 아버지께 달려나가는 이 모습 이게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를 시작할 때 기도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기도는 매우 자연스러운 아버지와의 대화예요. 아버지에게 대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배운다는 것은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내가 아버지의 자녀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기도예요. 우리 인생의 모든 행불행은 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버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도는 아버지에게 그 품 안으로 그 포옹 안으로 나를 맡기고 나를 안기는 작업인 것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좋은 선택은 딴 거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 무슨 복잡한 게 있습니까?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무슨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뭐 면의 신청을 받아서 허락을 받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마음과 내 심정을 통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아버지에게 나아갈 때 무슨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고 뭐 너무 거창하게 뭐 기도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만유의 주제가 되시며 전지 전능하시고 무수에 부조하시며 하나님이 들으시다가 야, 멀다 멀어 그래요.
[4:32]여러분 아침에 아들이 아이가 일어나가지고 뭐 아빠 이러 와 가지고 막이 좀 안기고 막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 뭐 우리 집 안에 가장이시며 모든 가족들의 생계를 무한 책임지시는 아버지시여. 그냥 어린아이같이 진술하게 고백하는 거예요. 어색한 관계를 만들지 말라. 어떤 분은 기도를 시작하면요 갑자기 해 가지고 막 목소리를 쫙 깔고 시작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냥 하던 대로 해요, 그래요. 여러분 기도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그 별로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기도의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 그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기도의 자세를 어떻게 하느냐? 뭐 상관없어요, 사실은. 불편하면 그냥 들어 놓으서 해 줘도 돼요. 하나님 나 아시죠? 이래 가지고. 중요한 것은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자녀라고 하는 신분을 붙잡아야 돼. 신분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거지 아버지 자녀라고 하는 그 신분만 붙잡으면 되는 거예요. 무슨 복잡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고 아버지로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첫 번째 중요한 것은 이 관계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친밀함이에요, 친밀함. 여러분 구약 시대는 하나님을 제한적으로 만났어요. 항상 중보자가 필요했어요.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 제한적인 만남. 아무나 들어갔다 죽어요, 그냥. 항상 중보자가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중보자도 필요 없어. 성전의 휘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찢어져 버렸어요. 예수 믿는 우리가 곧 성전이 되었어요. 중보자가 필요 없어.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한없이 가까워졌어요. 그래서 구약을 여러분 읽으면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별로 쓰지 않아요. 거의 없어요, 거의 없어요. 그러나 신약에는 245번이나 아버지라고 하는 단어가 언급돼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거예요. 새로운 관계가 열렸다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아빠라고 부를 정도의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 아이들 보면 어릴 때 보면 아빠 곁에서 안 떨어지잖아요, 안 떨어져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의 첫 부분에서 아빠라고 부르게 하신 것은 친밀감을 강조한 것입니다. 친밀감. 영어로는 인트머시. 친밀감. 그러므로 기도란 뭐냐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농도 짙은 애정 관계를 경험하는 게 무엇이에요? 기도예요. 우리의 영과 아버지의 영이 하나 하나가 되는. 그래서 친밀함을 나눌 때 거기에서 큰 희열과 기쁨이 막 넘침.
[8:18]아버지와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온전히 하나 되는 친밀함 속에 들어갈 때 깊은 사랑을 느끼고 그 안에 기쁨이 넘쳐나는. 근데 우리는 기도를 상업적 거래 관계로 생각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도 보면 어릴 때는 너무 옆에서 너무 아빠 좋아 아빠 좋아 막 비비고 다가 조금 크면은 슬슬 떨어져요.
[8:49]그리고 이제는 좀 필요한 것만 있으면 아빠 찾고 그래요. 문 꽝 닫고 지 혼자 들어 가지고 안 나오고. 뭐 여행 저 유학 가는 가거나 이럴 때도 보통 때는 전화 안 와요. 전화 올 때는 항상 필요한 게 있을 때만. 부모들이 섭섭하죠.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불러내지 않으세요? 여러분 콜 하나님 콜. 여러분 기도란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일방통행식의 기도는 비인격적 기도로 끝납니다. 그는 무속적이고 따분이 기복주의적인 기도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하기만 하는 기도의 형태는 결국 초보 신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실 때는 이유가 있어요. 나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시는 이유는 그 피로를 채워 주시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기도 제목을 주실 때는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그래서 어떤 문제가 길어질 때는 응답이 뎌질 때는 하나님의 뜻은 명료해요. 내가 너와 좀 더 오래 함께 있기를 원한다. 너에게는 어떤 문제가 풀리는 것보다 나와 함께 시간을 가지고 나를 더 경험하는 게 너에게 더 중요해. 여러분 상업적인 거래 관계를 위해서만 만난다면 어떤 인간 관계도 발전이 안 돼요. 주고 받고 주고 받고 하다가 끝나니까 그분의 삶과 그분에게서 나오는 어떤 인격적인 교류가 나오지가 않죠. 여러분 아버지라고 하는 단어는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격적인 교재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해져 가는 아버지와 친밀함을 경험해 가는 쪽으로 기도가 발전되지 않으면 결국은 기도 생활이 지루해지고 또 깊어지지 않고 힘들어지게 되고 또 나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생기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 그냥 잊어버린 일회용 소모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11:19]우리가 다윗을 구약에서 가장 뭐 정말 신약을 통틀어 어 다윗을 여러 각도에서 참 칭송을 받는데 내 마음에 합한 자다 이런 기가 막힌 칭송을 받는 다윗의 영성에 가장 한 가운데 뭐가 있느냐면 하나님 아버지의 친밀함을 경험했던 사람이에요. 그 결과가 뭐가 나왔어요? 시편에 거의 절반이 다윗이 지었어요. 그 다윗의 시편을 읽어 보면 그 시편의 150편 가운데 거의 절반을 그가 기록했는데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친밀함을 누렸던 게 그의 인생의 큰 축복이었는가를 수없이 표현을 하고 있어요.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부요함은 더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낯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고 어색할 수 있고 어떤 때는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율법주의적 척근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길가다 넘어져도 하나님이 나를 치신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이가 감기만 들어도 어제 내가 기도를 안 했더니 하나님이 그냥 또 이러시네. 하나님 그렇게 나쁜 분 아니세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 아빠세요. 신약의 백성들에게 주신 얼마나 기가 막힌 새로운 관계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와의 친밀함이 깊어져 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친밀함을 누린다는 것은 뭘까요, 여러분? 부모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 아닙니까? 근데 부모에게 용돈만 받아 가는 것으로 부모의 용돈을 생각한다면 그는 부모로부터 가장 지극히 적은 부분만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무엇에 대한 관심이 아니에요. 그분에 대한 관심. 요구 일변도의 기도를 조금씩 탈피해 보세요.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가 주님과의 그 친밀함들을 유지해 나아가는 것들로 우리의 기도 생활이 발전되기 시작하면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황홀함과 충만함과 부요함들이 우리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친밀함이 깊어질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게 뭔가 하면 절대적 의존의 관계가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친밀한데 친밀해지긴 한데 의존하기는 어렵죠. 우리 일반적인 우리의 관계는 육신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너무 친밀하지만 의존할 수 있는는 한계가 있는 때가 많아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의존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와 친밀해질 때 그 친밀함이 깊어지면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놀라운 은총이 있는데 무한한 의존의 무한한 신뢰의 마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밀도가 곧 신뢰도입니다. 친밀함이 깊어지면 신뢰는 자연히 깊어집니다. 세상에서는 종종 신뢰했다가 실망과 배신으로 아픈 상처를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에게 그런 경험을 많이 하죠.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실망을 줄 수도 있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아버지라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입었던 사람들은 아버지라고 하는 호칭을 별로 안 좋아해요. 마틴 루터도 보면 종교 격자 마틴 루터도 어 그처럼 뭐 대단한 종교를 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상처를 많이 입었던 사람인데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호칭이 별로 안 좋아해요. 아버지 하면 그냥 열이 막 오르는.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 어머니 그렇게 기도하더래요. 그게 오히려 편안함이 오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문제를 가져요. 깊이 안 나가져요.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이 많고 하나님이 너무너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 안 다가오는 거예요. 아버지라는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내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해요. 그러나 여러분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세요. 그분은 완전하신 아버지세요. 가장 아이디어한 아 이상적인 하나님이세요. 그분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으세요. 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우리가 증명할 수 있지만 오늘 주기 도문이 기록된 마태복음 6장 안에서만 해도 우리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뒷부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다 먹이지 않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입히우신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그거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17:05]7장 11절로 가보면 이런 말씀을 해요.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7:23]여러분 하나님이 좋은 아버지하고 비교를 해도 자존심 상하신 분이에요. 근데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노라. 하나님과 악한 아버지를 대조를 이루는. 이 뭘까요, 여러분? 우리가 그냥 뭐 대충만 봐도 확실하게 구별되도록. 확연한 대조법을 쓴 거예요.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아버지라고 하는 단어에서 주는 의미는 뭘까요? 든든함이에요. 그 든든한 든든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능력이라는 능력. 아버지는 능력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팔에 큰 그 굵은 아버지의 팔에 안겨 있는 아이 걱정이 없어.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책임을 지는 존재, 책임을 지는 존재. 그 아버지는 어떤 분입니까?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에요. 이사야서에 보면 그런 분은 피곤치 않는 분이세요. 그분은 나보다 나의 행편을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아버지세요.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축복 중에 하나가 뭐냐면 그 기도 속에 그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그분을 우리가 신뢰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있는데 그게 절대 안정감이에요. 절대 안정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고 아버지에게 눈을 떼지 않는 것이고 자녀는 아버지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가 필요한 존재들이에요. 우리에게는 진짜 아버지가 계세요.
[19:32]이번에 이민아 교수님도 돌아가셨는데 이 여령 교수의 딸 재작년에 저희 교회 와서 교제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러더라고요. 이 여령 교수님도 우리 교회에 와서 그래 얘기를 하셨는데 자기도 섭섭히 많이 섭섭했어요. 딸이 도대체 전화하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막 얘기하는데 가만 보니까 그 아버지가 자기가 아니고 하나님이었어요, 하나님. 그래 가지고 이 여령 씨는 신앙이 없으니까 되게 섭섭했던 거예요. 얘는 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근데 가만히 이 여령 씨가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육신의 아버지이지만 이 딸의 고난과 이 딸의 삶에 한 번도 자기가 그 안에 들어가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진짜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실 분은 단 한 분 우리 하늘의 아버지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분의 자녀로 내가 살아간다는 것만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게런티가 없어요. 그거 없으면요 여기다 염려 써 놓고 사는 거예요. 그 아버지의 존재로부터 떠나면 염려와 근심은 사라지지 않아요. 불가능해요. 누가 우리를 사랑하고 책임지고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겠어요. 우리를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분은 오직 우리의 아버지. 나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책임지실 분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찾고 그 아버지가 내 곁에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삶에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주시네. 이번에도 대담하는데 보니까 이여령 교수님이 내 딸은 정말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멋있게 너무도 평안하게 너무도 행복한 삶을 정립하고 진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들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남 파도처럼 이 땅에 수없는 고난에 우리에게 밀려올 때가 있어. 우리의 그 주변에 그 누구도 아니 내가 싸와왔던 어떤 것도 나에게 평안을 담보해 주지 않아요.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 어떻게 보면 그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말 고아처럼 살았어야 할 사람.
[22:08]오늘 기도를 종교적 수로로 형식적 그냥 만남으로 어떤 종교적인 하나의 관습으로만 자리 매김되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내려 놓으시고 아버지에게로 아니 아빠에게로. 아무도 순수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정직하게 그 아빠에게로 무한하게 우리를 품어 주실 그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며 그분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그리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 속에 그 아버지로부터 흘러넘치는 영적인 부요함들이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이 은혜의 삶이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