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최근에 영어 여러분 보셨는 것처럼 영국에 한 신문에서도 보도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국가적으로 35분의 침묵. 예. 특히 그 수능 시험을 칠 때 영어 듣기 시험을 칠 때는 하늘의 비행기도 날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되는 거예요. 이 외국인의 눈에 보면 이건 신기한 거예요. 국가적으로 전투기나 일반 항공기도 뜰 수가 없어요. 듣기 시험을 칠 때. 그게 방해를 하지 않도록. 이 시험을 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배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압력인 거죠. 이 시험이라고 하는 대입 시험의 이 사회적인 압력이라고 하는 거죠. 여기에 기준에 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런 엄청난 사회적 압력이 사실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아주 강하게 만들어 놓고 그 기준을 자꾸 몰아가는 거예요. 그 기준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그 욕구 불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욕구 불만. 만족하기 힘든 세상이죠. 그래서 감사의 부재. 감사가 점점 없어지고 불평하는 시대. 콤플레인이라고 그러죠? 불평하고 또 원망을 하는 그런 문화가 많이 차 있습니다. 자 이런 환경 속에서 나타나는 게 뭐예요? 염려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갈등하고 또 강한 스트레스에 빠지고 또 여러 가지 강박정 증세들, 공황 장애들, 우울증 이런 것들을 겪고 있습니다. 어 오늘 이 본문은 사도의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고백이에요. 11절에 특히 보면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여러분 이 바울의 고백이 듯이 특히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나는 자족한다. 어떤 사건과 환경에 따라서 우리는 만족하죠. 근데 바울은 내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나는 만족한다. 여러분 이게 내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내가 만족한다. 자족할 수 있다면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불평과 불만이 있는 이 시대 속에 오늘 이 바울의 이 얘기는 굉장히 낯설어지게 들립니다. 우리가 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있는데 그게 뭐예요, 여러분? 비교 의식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회 안에 참 많이 있는 게 비교 의식이에요.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을 바라보는 순간 불만족이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는 뭐든지 비교하는 거죠. 계속 비교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불행해지는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고 남자들도 임신을 안 해도 배가 늘 아파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아이가 5등쯤 해도 잘하는 건데 엄마들은 그 앞에 네 명이 있다는 게 굉장히 불만스러운 거예요. 올림픽에도 여러분 1등, 2등, 3등이 있지만 2등이 불만족스럽다고 그래요, 가장 많이. 그 3등은 2등하고 비교하는 게 아니고 떨어져서 못 받았을 것에 대한 생각을 하니까 떨어진 사람과 비교하니까 만족도가 있어요, 3등이래도. 근데 2등은 1등하고 비교를 하는 거예요. 이 인간만 없었으면 내가 금메달이야. 2등은 1등과 비교를 하는 거예요. 3등과 비교하면 자기는 괜찮은 거잖아요. 근데 이제 늘 이 비교에서 이렇게 불만족스러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교 의식이라는 게 사실 죄성에서 나온 거죠. 이 비교 의식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는 감사가 불가능합니다. 자 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만족할 수 있었을까?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자족하기를 배웠다 얘기합니다. 오늘 12절 1절과 2절에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 자족이라고 하는 말은 컨텐트. 이 만족이라는 것은 학습을 통해서 된다는 거. 그냥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학습이라는 건 반복적인 것이죠. 왜 학습해야 되죠? 우리는 만족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불만족이 훨씬 더 쉬운 사람들입니다. 이 만족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레슨을 했다는 거. 레슨은 반복적 의미가 있고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 어떤 자족 훈련을 해야 되죠, 여러분?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훈련이에요. 주어진 지금에 주어진 환경. 어떤 바꾸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황.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최상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에요. 바꿔서 어떤 미래에 주어질 것들을 기대하면서가 아니고 지금 현재. 여러분 지금 현재 바꿔 가지고 내가 만족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를 만족하는 훈련을 해야 돼. 이 남편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 가지고 만족을 얻을 수는 없어. 아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서 이 애를 바꿀 수가 없잖아요, 여러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돼. 여러분 잘생긴 아내와 남편을 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일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여러분. 제가 아는데 어떤 분은 너무 배우자가 잘생기니까 늘 불안하대요. 유혹이 많으니까. 전혀 유혹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적당한 외모는 감사의 조건이 될 수가 있어요. 여러분 어떤 것이든 좋은 게 있으면 안 좋은 게 있어요, 여러분. 이게 갖추어졌으면 이게 안 갖춰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불만족에 빠지는 게 아니라 내게 있는 그것을 붙잡고 그것에 감사하는 거. 그게 훈련이에요, 여러분. 지금 나의 조건, 조건. 바꿔서 내가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행복은 얻을 수 없어. 그래서 찬송가에도 보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내가 알 것이다.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거예요. 뇌성마비로 장애를 겪고 있죠, 지금도 그 송명이 시인. 뭐 유명한 시라 여러분들이 다 알고 노래로도 부르는데 그 시가 이렇죠.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8:11]참 멋있는 시에요. 멋있는 시. 여러분 누가 좋은 것을 가져도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자세히 보면 그 좋은 것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거 같아요. 이것이 있으면 저기 없어요, 사실 보면. 저것이 있으면 이게 없고요. 그게 인생이라는 거죠. 우리 공부를 못하는 아이 때문에 너무 막 힘들어하는 분이 있지만 공부는 못해도 건강한 아이 있잖아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근데 그게 행복인지 모르지만 사실 여러분 길게 보면 그게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엄마들은 아멘이 잘 안 되지만 여러분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작은 것에 만족하는 훈련이에요. 지금 주어진 이 상황. 여러분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아요. 우연이 아니에요. 오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걸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하심의 손길에 내 삶을 위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광야를 통과했어요.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막바로 진입되는 게 아니에요. 광야를 통과해야 돼요. 근데 이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죠.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셨어요. 굉장히 어 분노하셨어요. 그러니까 원망과 불평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관된 겁니다, 여러분. 왜? 오늘 내 상황을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굉장히 자아가 강한 사람들일수록 원망을 많이 해요. 왜? 내 삶을 내가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몰고 가고 싶은데 안 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까지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 방식과 내 생각대로 안 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는 거죠. 이 자아가 강하다는 거죠. 그 그런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을 하게 돼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찬가지예요.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추수감사절이지만 내가 감사가 잘 안 일어나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내 지금 상황이 너무 어려워. 내가 지금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는데 내 감사할 거리가 없어. 감사하고 싶지도 않아. 여러분 그때 중요한 거예요. 그때가 중요한 거. 뭐 감사할 게 있는데 감사하는 거 그 뭐 그냥 그냥 일반적인 거죠.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다른 거예요. 전혀 감사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려운 순간에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거.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는 거예요. 지금은 광야예요. 그러나 광야를 통과해야 가나안으로 가는 거거든. 근데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해야 되는 것은 뭐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야의 기간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손길 안에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내 삶을 주님 앞에 위탁하며 기다리는 훈련이에요. 어렵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지금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있다면 그 밑바닥을 치게 하시는 그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고 내 삶의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거예요. 요셉이 그거잖아요, 여러분, 요셉이.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죠. 그러니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시죠. 언젠가는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다는 거. 오늘 지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 삶이 돌아가고 있지 않을 때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해요. 그게 여러분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거예요. 내 삶이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 하나님이 나를 굴리실 때는 내가 구르면 되는 거예요. 힘들지만 아하 하더라도 불평을 하면 안 돼.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일하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그 길이 있기 때문에. 이 추수감사절에 여러분 내가 감사할 것들만 찾아내면 감사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나 전혀 감사할 거이 없지만 어려운 순간에 있지만 내가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이 상황을 하나님이 주신 내 인생의 최상의 순간이라고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놀랍게 바꿔 놓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자족을 그런데 배워야 하지만 이것이 쉬운 건 아니에요. 자족의 삶을 배운다는 비교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아. 그래서 바울은 오늘 143절의 말씀을 우리에게 사실 이 비결을 알려 준 거예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 자신도 자기의 힘으로 모든 환경 속에서 자족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아요. 내가 모든 환경을 이기고 어떤 형편에서도 내가 만족할 수 있었던 힘이 있었다면 13절이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게 비밀이에요, 여러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그 내게 능력 주시는 자는 어떤 분이시죠? 어떤 형편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쏟지 않게 하시고 내 삶에 찾아오는 궁핍과 결핍을 이겨내게 하신 힘이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 내게 능력 주신 자 그분 안에서 나온 것이라는 거.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욕구가 찾아오고 결핍을 느꼈을 때 우리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면 안 돼요. 그러면 지게 돼 있어요. 그러면 빠져들게 돼 있어요. 불만족이 찾아오면 그 불만족을 내가 해소하려고 몸부림을 치면 해결되는 게 아니고 그건 더 미궁에 빠지는 거예요. 요즘은 여러분 우리가 필요가 많죠. 뭐 무슨 외 삶이 이렇게 복잡한지 말이에요. 필요가 너무 많아. 애들도 뭐 옛날에는 그냥 나오면 기르는 것 같은데 요즘은 필요한 게 너무 많아. 애들이. 아침부터 필요한 게 많아. 먹는 것도 그냥 주는 대로 안 먹고 그거 먹고 싶어요. 부모가 또 먼저 뭐 먹고 싶니? 나는 주어 먹었는데. 뭐 먹고 싶니? 큰 애가 뭐 짜장면 아침부터 뭐 둘째는 돈까스. 셋째는 뭐 카레라 있어. 필요가 너무 많아. 여러분 우리 집에 여러분 가보시면요, 사실 가만 하나 집에 있는 물건들 한번 따져 보세요. 필요한 것 같은데 필요 없는 게 더 많아요. 냉장고 사실 필요 없어. 냉장고 없이 살았어요. 매일 조금씩 먹을 거 먹고 없애면 되잖아요. 근데 우리는 막 자꾸 커져. 늘게 더 많아져. 그리고 그 깊숙한 곳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냉장고가 더 커지면서 나중에는 어떻게 해요? 김치 늘을 것이 없으니까 김치 냉장고가 나오는 거. 김치 냉장고도 작은 게 아니야, 이제는. 더 커져. 사실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욕망하는 것입니다. 그 필요한 욕망에 섞여 있는 거예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필요하지 않아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무엇인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해요.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우리가 다스리기 힘들어요. TV 광고 보는 순간 여러분 내가 철학에도 갔다 와서도 TV 광고를 딱 보는 순간에 내 영혼의 그 어떤 그이 내 영혼을 확 사로잡으면서 감동과 감아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고 싶은 거예요. 욕망을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그 끊임없이 우리는 욕구 불만이 나오는 거예요. 이 만족을 하게 하는 분은 내가 아니에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형편과 처지와 상관없이 내 모든 환경을 뛰어넘게 만드시는 성령의 은혜.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육체의 소욕을 꺾을 때 우리는 불만족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있어요. 그때 우리 안에 감사가 가능한 거예요. 여러분 오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할 줄 안다고 하는 이 표현이 결국 오늘 우리의 삶에 감사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19:00]세상에 마음을 뺏기기보다는 영적인 포만감을 가지는 그래서 거룩한 무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더 가져야 어떤 상황이 바뀌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부추기는 신화에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스스로에게 외치십시오. 이미 나는 나에게 나는 충분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이미 너무도 커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잠시 사라져 버리고 많은 것들이 아니라 영원의 영원한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오늘 우리에게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셨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어. 우리의 구원을 주셨어. 죄 사함의 은총을 얻게 하셨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하셨어. 기도의 특권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신단 말이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들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이 연말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될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신 것.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리고 오늘 우리의 순간순간 주어진 이 상황이 하나님이 주신 베스트 타임. 최상의 순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될 때.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능히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