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 다시보는 BEST 설교 | 기도는 대상이 중요하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태복음 6:9~13 | by CTS BEST 설교

| 다시보는 BEST 설교 | 기도는 대상이 중요하다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태복음 6:9~13 |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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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우리 신자에게 기도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우리의 삶의 중심입니다. 이 신앙의 한가운데 중심에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제껴두고 또 기도 기도를 소홀히 하고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없습니다. 기도 어 만큼 신앙이 가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세계를 우리가 경험한다는 것은 기도의 세계의 어느 단계까지 기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깊이 결정되고요. 신앙의 세계에 들어가는 그 힘은 결국은 기도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수준은 뭘로 가름할 수 있느냐? 기도의 수준으로 가름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아직 기도의 세계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면 신앙의 초입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국은 기도를 경험하는 것이고 기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이 우리의 영혼에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진리가 우리 안에 성육신화 되는 우리의 뼈속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오게 만드는 힘은 결국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신앙의 갈망을 얘기할 때 우리가 신앙의 갈망이 있어야 되죠. 영적인 갈망, 디자이어 그 갈망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기도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일어났다. 그걸 어떻게 표현합니까? 기도로 표현되는 것이죠. 기도 안에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디자이어 하는가? 갈망하는가? 그렇게 갈구하는가? 희망하는가? 이런 것들이 기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기도라고 하는 것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성경의 기도 성경은 기도로 이루어진 것이고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기도의 그 언저리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습니다. 또 2000년에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그대한 그런 역사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한 주제가 아니고 기도는 굉장히 심오하기도 하고 또 기도는 광범위하기도 하고 기도는 다양하기도 하다는 것이요. 우리 주님은 특별히 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 공동체 꼭 필요한 우리의 신앙의 기준 또 우리의 신앙의 방향 또 우리의 신앙의 건강성 영성의 핵심 주제 이런 것들을 주기도문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제대로 관통하고 꿰뚫어 이해하려고 하면 뭐 한 20번으로도 안 되고 1년 내내 다루어도 부족할 정도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짤막한 10몇 초만 해도 그냥 외워 버리고 말 수밖에 없는 그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 안에는 깊고 아주 풍성한 우리 기독교의 신앙의 풍성함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고 또 우리에게 축복이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그러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뭐냐? 기도의 대상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기도합니다.

[5:01]불신자든 무신론자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면의 깊숙한 세계를 들여다보면 모두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올 때 탄식한다. 그 탄식이 기도해요, 사실은. 또 어떤 깊은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절규할 때 그 절규도 기도해요. 또 어떤 일들을 만날 때 아 감사를 표현하는데 그 감사도 사실은 누구에게인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문제는 대상이 모호할 뿐입니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외치는 그 외마디가 신음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기도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도의 대상이 누구냐?

[6:06]여러분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주님은 오늘 이 말씀에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러분 기도의 첫 출발이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의 처음에 우리의 언어가 뭐냐? 이게 중요해요. 가장 먼저 뭐라고 얘기하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요.

[7:07]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느냐?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어떻게 기도했느냐? 기도의 순서를 어떻게 했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에요. 이게 기도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허공을 치게 돼 있어요.

[7:44]여러분 우리가 무속적 신앙이 한국인의 심성 안에 있어요. 종교성 안에. 이 한국이 그동안 이 한국인들의 깊이 베어져 있는 무속적 신앙 소위 말하면 샤머니즘적인 이 미신이 미신. 이 미신이라는 게 뭐예요? 이 한자로 보면 희미할 희자 미자에 믿을 신자 아니에요. 그 대 대상이 누구인지 모호한 거예요. 그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여튼 공을 많이 들여 지성이면 감천이라. 대상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굉장히 열심을 다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을 감복시키는 신의 실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그냥 백일 기도를 하고 그냥 찬물로 목욕을 하고 정성을 다하고 매일 아침 이렇게 하면 신이라면 이 정도 했다면 무시는 못 하겠지. 감동을 받아서라도 응답하겠지. 라고 하는 막연한 믿음. 그래서 그냥 우리 한국 민족은 열심히 옛날부터 보면 막 빌었어요. 이 중요한 것은 뭐냐면 대상이 중요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해요. 문제를 해결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신이 나도 좋다. 산신령이든지 그게 뭐 해든지 달이든지

[9:44]해를 품은 달이든지

[9:59]고목이든지 이 낀 바위든지 오래된 신발이든지 빗자루든지 뭐든지 와 왓 에버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만 있다면 괜찮다. 여러분 이 무속적 신앙의 특징이 뭔가 하면 이 종교를 하등 종교 고등 종교로 나누잖아요. 이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이 차 차이는 뭐냐면 하등 종교는 윤리성이 없어요. 윤리성이 없어요. 고등 종교는 윤리성과 또 더 나아가면 공동체성을 가지는 거예요. 내 문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 문제만 해결되면 끝이 아니고 내 문제가 해결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내 공동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나에게만 축복이 아니라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공동체성을 가져야 이게 제대로 된 기도고

[11:21]근데 우리는 뭐예요? 주변의 상황과 상관없이 이 문제가 해결돼 나만 잘 되면 된다는 거. 강복 복을 비는데 윤리성이 결여돼 있는 이 하등 종교에요. 그래서 어느 날 어느 집에 식당이 잘 되는지 잘 우리 집 우리 집에 식당이 잘 안 돼요. 그러니까 뭐 점을 쳐 보니까 저 식당 잘 되는 집에 그 마당에 흙을 파 가지고 당신 집에 뿌리면 잘 될 거라. 그 집은 어떡하라고?

[12:15]여러분 신자들의 기도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해결사로만 보는 것입니다.

[12:28]물론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하나님을 찾는 것 너무 당연하고 우리의 삶의 현실의 문제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또 그것이 우리의 기도에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만 어려움이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태도예요. 여러분 그런 기도는 자연히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가 하면 자 자기 자기의 이기심을 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돼 있어요.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도를 사용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아요. 외적으로는 기도라고 하는 형태를 띄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요. 건강한 기도라는 처음에는 나의 필요로부터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점점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되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이 그런 말을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랬어요.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러니까 내가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살에 그냥 막 끊임없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 말을 바울이 가르친 게 아니에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된다는 얘기예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시간을 늘려뜨리고 양을 많이 하라 오래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예요.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고 삶의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는 것. 만약에 여러분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깊어지게 되면 내가 구하고 있는 문제는요 아주 작아지고 미미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문제에 빠져나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어나게 될 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고 문제가 다르게 해석되고 새로운 관점이 일어나게 되고 그 문제가 문제만이 아니고 그 문제 넘어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이 문제가 축복이고 이 문제가 지금으로는 내 삶에 피해를 주지만 이 문제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문제는 싹 사라진다는 겁니다.

[16:21]여러분 하나님 하나님의 관심이 깊어지면요 얼마나 그 기도는 깊어지고 즐거워지고 건강한 기도를 들을 수 있다는 거요.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의 효능 기도의 뭐 응답 유무 기도의 능력 그보다 기도의 대상에게 집중해야 돼요. 하나님에게 그래서 여러분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를 빨리 내가 기도해도 풀어 주지 않으실 때가 있어요.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이 그냥 응답을 막 지체하시고 미루신다 말이야. 우리는 그것 때문에 안타까워하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오히려 우리에 대한 배려예요. 네가 그 문제만 지금 당장 푼다고 해서 너의 인생이 풀리는 게 아니고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이 어려움을 통하여 만나면 그 모든 앞으로 다가오는 숱한 문제 속에서도 너는 승리할 수 있을 거야. 그러므로 너는 그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이 문제를 통해서 나를 만나.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길게 끄시면서 하나님과 더 깊은 교재 안으로 이끌어 들으시면서 그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그 경험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 우리는 이제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문제에 극급한 인생이 아니라 문제에 벗어나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이 될 때 우리는 승리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자, 이 대상이신 하나님은 그렇 어떤 분이냐? 오늘 첫 번째 하늘에 계신이라고 할 때 예수님이 이 하늘에 계신다라는 이 표현은 뭐냐면 초월하신 분이라는 거예요.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공간의 표현이 아니에요. 어떤 분은 비행기 타고 가니까 하나님하고 가까이 있다 그러면 그러던데 하나님이 그런 공간적 개념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이라고 하는 표현 하늘에 계신이라는 이 표현은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과 같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요. 우리의 이성의 세계를 훨씬 더 넘어서는 우리의 상상과 오늘 모든 논리를 뛰어넘은 세계 속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거요. 그분은 창조자세요. 그분은 이름이 따로 없어요. 그분에게는 부모가 없어요. 그분은 존재 자체예요. 그래서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하나님 당신을 누구라고 말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 당신을 속하실 때 아 아엠 댓 아엠 문법에도 없는 거예요. 나는 나야. 설명의 필요 없는 거 스스로 홀로 영원히 자존하신 분이.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에요. 시제가 없는 분이에요. 영원이라는 관점도 여러분 시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영원히 영원은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영원이 되는 게 아니고 영원은 시간을 넘어선 세계예요. 점심 먹은 이후에 어려운 얘기를 또 하는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이 피해갈 수 없는 설명이에요.

[20:47]어떤 분은 하나님을 자기 이성 안에 담아서 서 이해하려고 하는 여러분 내 내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이라면요 그분 하나님 아니에요. 내 이성으로 분석이 가능하면 그분 하나님이 아니시라고요. 성경을 읽다가 이해 안 되는 이해 안 되니까 성경이지요.

[21:23]이해가 되고 다 논리에 짝짝 짝짝짝 맞아 떨어지면 그게 뭐 3단 논법으로 딱 확인되고 분별되면 그게 무슨 하나님이에요? 또 하나는 뭐냐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라고 하는 이 표현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인간은 무력하고 연약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것과 두 번째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 기초 하에 우리의 기도는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이 나와야 돼요. 우리는 연약하다라고 하는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것과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받아들이는 것.

[22:28]여러분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늘 동안 얼마나 내 의사와 상관없는 수수한 한계들이 부딪치며 절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까? 아마 나이가 드신 분일수록 훨씬 더 이 부분을 많이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내 연약함과 한계를 느끼 처절하게 느낄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중에 나는 한계도 없다. 나는 뭐 어떤 연약함을 경험해 본 적도 없다. 앉아 계실 필요 없습니다. 그토로 보기에는 강해 보이고 그토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쉬움이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나 떨고 있니예요. 떨고 있어요. 두려움이 있어요. 절망이 있어요. 허무가 있어요. 두려움이 있어요. 불안이 있다고요.

[23:58]건강을 자신하던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에 쓰러지는 걸 보았어요. 난 병원 가본 적 없다 그러다가 쓰러진 분 내 봤어요. 큰소리칠 것 없더라고요. 난 감기 걸려 본 적 없다. 그 다음날 콜콜콜콜 하더라고요.

[24:24]그렇게 총기가 넘치고 그렇게 명석하던 분이 나이가 들어 가니까 그냥 기억력이 세퇴해요. 핸드폰 들고도 예야 핸드폰 어디 갔냐? 여기 있는데. 여러분 인간이 계획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되던가요? 나와 상관없는 내 주변의 상황의 변화는 내가 어떻게 할 돌이가 없어. 여러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지극히 작아요. 결정적인 것은 내 영역의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거 아시죠, 여러분?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는지 내 생명을 하루라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인지 내가 예측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빗나갔습니까? 내 예측과 내 계획과 내 노력과 내가 아 준비한 것들로만 그대로만 다 되었다면 오늘 여러분 여기 앉아 있을 사람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에요. 우리는 뇌의 실핏줄 아주 큰 하달한 실핏줄 하나만 터져도 그냥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존재예요. 저는 호주에서도 우리 교인 중에 한 명은 자기가 그냥 피곤해 가지고 자기가 운전해서 병원으로 그냥 입원하러 들어갔어요. 아 진찰 받으러 갔어요. 막 바로 그냥 중환자실로 들어가 가지고 못 나오더라고요.

[26:24]여러분 뇌에 작은 손상만 입어도 70년 80년 살았던 세월에 그 아름다운 추억들이 다 지워져 버려요.

[26:40]여러분 나의 연약함을 진실로 인정한다면 기도는 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26:56]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인간의 편에서 구해내고 개발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제안하신 거예요. 기도해라 부르짖어라. 수도 없이 수도 없이 성경에서 기도해라 부르짖어라. 여러분 누가요? 능력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 기도하라 부르짖으라고 하신 이유는 그냥 대책 없이 구해라. 일단 이거 아니에요. 구하면 내가 응답하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러므로 기도할 때 이미 응답이 전제돼 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걸 여러분들 분명히 깨달으셨으면 좋겠어요. 기도할 때 이미 응답은 전제돼 있어요. 왜 기도의 출발이 하나님이에요. 기도는 하나님이 제안하신 거예요.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세요. 내 생각과 경험에 빠져 나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기도할 때 우리 안에는 신적인 역사들이 일어나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역사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일생 동안에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만큼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은 없어요. 가장 큰 손실은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능력을 싸우면 얼마나 쌓겠습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기도를 배우지 못한다면 모래성을 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요. 삶은 기도를 배우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기도를 배우면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를 향하여 얼굴을 드는 것은 본래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초월자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와 함께 만나기를 원하시고 하늘이 땅을 향하여 손을 펴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게 자 약속하시는 그 음성을 들으면서 무릎 꿇기로 결단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 인생에 어떤 찾아오는 문제도 그분 안에서 넉넉히 이기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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