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어, 열정의 신앙이 쓰임 받는다 하는 제목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저는 빼앗느니라. 이제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잘 아는 말씀인데요. 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네, 그런 말씀입니다. 이 천국은 누가 소유하느냐? 어택. 그야말로 공격하는 어그레시브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천국이 소유를 당한다. 이제 그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이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우리가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태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천국처럼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것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이거나 뜨뜨미지근한 그런 태도를 가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적극적으로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것에는 너무너무 적극적인데 영적인 세계에는 소극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 탁구 같은 거 칠 때 보니까 막 눈을 부리면서 막 막 그냥 뭐 얼마나 열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그냥 뭐 누가 카운터 하나라도 잘못하면 막 싸우려고 그러고 막 뭐 그냥 눈에 불을 켜고 이기려고 막 야단이고 막 그냥 막 양 바지를 양말로 막 막 올려 가지고 그냥 막 팔 걷어 부치고 막 얼마나 적극적인지 몰라. 열정적으로 땀을 흘리면서 절대 양보 안 해요. 한 점도 안지고 막 예. 옛날에 보니까 신학교 때 보니까 전도사님들이 막 탁구치다가 카운터 누가 잘못하니까 막 낳기시 날아가고 막 그러더라고. 아이고. 그 영적인 세계에 오면 소극적인 사람들. 뭐 성경 공부를 해도 그냥 뭐 그냥 여리가 없고 사역을 해도 그냥 그저 그렇고 은혜받는 일에도 그냥 그저 그냥 미지근한 그냥 이렇게 이렇게 열정이 하나도 없어.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주면 받고 안 줘도 감사하고 이런 거예요. 여러분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스와시아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라우디기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이 뭐죠? 내가 내 행위를 아는데 내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내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예요. 뜨겁든지 미지근하든지 에, 뜨겁든지 차든지. 예. 둘 중에 하나라는 거예요. 여러분 안 졸고 계시네요? 만약에 미지근하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여러분 성경에 요 말씀처럼 주님이 심각하게 간경하게 표현한 게 또 있을까? 성경에.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치고는 아주 센 말씀이에요. 어 미지근하면 토하여 내치리라는 거. 아, 이 대단한 얘기예요. 토하여 내치리라. 여러분 이건 뭐 아주 그냥 막말이라도 보통 막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뭐냐면 그냥 버리겠다 이 정도도 아니고요. 두 번 다시 안 보겠다는 겁니다. 토하여 내친 거 안 보시죠? 그렇죠? 뭐 토하여 내친 거 미리 안 갔잖아요. 완전히 그냥 완전하게 기회가 없다는 기회가 없어. 미지근한 상태로 있는 것은 신앙생활에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토하여 내치리라. 기회가 완전히 박탈된다는 거. 버리겠다는 거 버리겠다. 여러분 미지근한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가를 라우디기아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는. 라우디기아 교회 라우디기아 그 지역이 온천이 있었다고 그러죠? 아주 뜨거운 온천이 나왔던 지역이라고 그래요. 에 처음에 라우디 교회가 뜨거웠던 교회인가 봐요. 아주 뜨거웠던 교회예요. 그런데 자기들도 모르게 식었던 거죠. 그 주님이 이제 경고하신 겁니다. 너희들이 미지근하면 토하여 내치겠다. 어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끝났다. 이제 그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랬어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기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는 이 말씀은 가슴에 불을 안고 주를 섬기라 이런 말이에요. 가슴에 불을 안고 주를 섬기라. 얼마나 뜨거운가요? 불을 안고 있으니까 불덩어리죠, 불덩어리. 이 이런 것들은 좀 다 뭐냐면 그리스도의 삶은 매우 적극적이어야 된다는 거. 적극적이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실 뭐 열심을 낼 게 별로 없었습니다. 열심이 낼 만한 내고 싶어도 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부터는 달라지죠.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태도가 달라지는데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또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지고 또 내 삶에 그 어떤 흥분하고 내 생명을 다 바칠 만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정말 모든 게 달라지죠. 삶의 의욕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진짜 예수를 만나면 제대로 은혜를 받으면 이 가슴이 막 뛰어요. 그리고 막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에 눈동자가 풀렸던 게 쫙 그냥 돌아오고 눈에 푹푹푹푹 불이 튀게 된단 말이야. 옆에 사람 보세요, 여러분. 진짜 예수 믿으면 눈이 푹푹푹푹 튀어야 돼요. 스파크가 일어나야 돼요. 동태 눈이 되면 안 돼요. 가슴이 막 뜨거워지는 게 사실이에요, 여러분. 예. 뭐 막 그냥 그냥 이게 가슴에 불이 타는 거예요. 너무 막 뜨거워 가지고 내가 내 불에 내가 탈 것 같아. 이게 이게 정상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천국의 비유를 많이 하셨는데 어느 밭에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 밭을 밭에 지나가다가 보화를 발견하고 난 순간부터 이 사람이 흥분하기 시작해요. 와, 어마어마한 걸 발견하니까 그날부터 이 사람이 이제 모든 행동이 바뀌는 겁니다. 막 휙바람을 불고 갑자기 그냥 막 사람이 방방 날아다니는 거. 그러더니 자기 집을 다 팔 자기 소유를 다 팔더니 그 밭을 사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적극적인 행위입니까, 소극적입니까? 예, 이게 보통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죠. 뭘 발견했기 때문에 발견했다는 거. 보화를 발견했다는 거.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것을 누가 차지할 것 같아. 이 이런 마음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막 그냥 갑자기 얼굴에 홍조를 띄고 막 휙바람 불고 그냥 뭐 그냥 막 심바람이 난 겁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이 보면 신기하죠. 저 사람이 왜 저러냐? 왜 저렇게 싱글벙글하냐? 뭔가 막 그냥 흥분한 상태고 뭐 잠도 안 자고 그냥 방방 날아다니는 거. 눈빛에 달라요. 이게 열정이라는 거. 열정. 이 열정이 일어나는 거.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들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 안에는 뭐가 일어나느냐면 열정이라는 게 일어난다는 거. 열정적인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뭔가를 본 사람들. 뭘 봤어요? 보화를 발견한 겁니다. 하나님을 나를 본 거예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런 바울을 보십시오. 가만히 있습니까? 얼마나 열정적입니까? 잠시도 가만히 안 있어요, 여러분.
[9:14]그는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하고 그가 옮기고 또 옮겼습니다.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겠다고 그랬습니다.
[14:24]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사역에 새로운 것들을 개척하면서 정말 바울이 지나간 자리는 교회가 생긴 거예요. 바울이 지나간 곳에는 막 기적에 나타나고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겁니다. 그 저는 그런 감시도 쉬지 않았어.
[14:44]나중에 여러분 바울의 그 옥중서신 같은 경우에는 감옥 안에 들어가 있어도 뭘 합니까? 옥중서신들을 지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힌 복음의 진수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어서도 일을 한 거예요. 가만히 이렇게 착고에 매여 가지고 세고랑을 차고 있는데도 편지를 써서 내 보내고 기가 막힌 이런 작품들을 만든 겁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의 생애 가운데 열정이 오늘 이 밤에 여러분들 가운데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이 열정을 죽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너무 깊은 생각이에요. 너무 깊은 생각을 하는 거. 생각을 많이 해야죠. 그러나 너무 오래 생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 제가 예언을 하는데요.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행동은 멀리 도망갑니다. 내가 막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별 볼 일 없어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할수록 행동은 행동하게 하는 열정이 죽는다는 겁니다. 오버씽킹이라고 하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요. 이게 심리학에 씁니다만은 부정적인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겁니다.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계속 해서 자기를 힘들게 하는데요. 결국 이런 사람들은 열정이 죽게 돼 있습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것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하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인생이 꼬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보다 생각이 더 많으면 반드시 열정이 죽게 되고 행동은 점점 더 둔화되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가 없어.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어. 근데 그 행동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자기 안에 있는 불타는 열정이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거. 그때 어떤 때는 실수도 하지만 결국은 생각을 많이 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보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요? 행동하는 사람 편에서 일어나는 거.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열정과 거리가 멀어요.
[17:13]그래서 이 우리의 지성에도 불이 붙어야 된다. 뭐 로이드 존스 그런 말도 했습니다마는 그 불이 붙는 그것이 없으면 생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정적인 태도들인데요. 부정적인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데스데, 냉소적이죠. 냉소적이란 말은 소극적이란 말입니다. 일에 대해서. 어떤 일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 굉장히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손해를 봐요. 열정적 이보다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비난하는 쪽에서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여러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비난하는 동안에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열정 에너지들이 방출돼 버려요. 비난하는 가운데. 내 안에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린. 이 비난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열정을 낼 수가 없어. 세 번째는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피로감 이 우리의 열정을 죽입니다. 여러분 너무 피곤하면 열정이 죽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욕이 상실되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디베랴 바닷가에 떠났던 베드로의 일행이 그랬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으러 가서 그 기다리고 있는 그들 안에는 뭐가 있느냐면 예수를 따르면서 십자가의 그 사건을 전후한 그 정신적 육체적인 필요감이 몰려온 겁니다. 그 모든 게 싫어지고 의욕이 상실되고 자신감 떨어지고 열정이 다 식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아무 이제 낙이 없고 소망이 없어. 난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렇게 얘기하니까 친구들이 그 옆에 있던 제자들도 몽해 나도 갈게. 그러고 따라간 거거든. 디베랴 바닷가에 다 모여 있는데 넉이 나간 겁니다.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있는 거. 일종의 감정의 고갈 상태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갈멜산 정상에서 그냥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우고 또 그 그 누구죠? 누구죠? 이세벨 남편? 아합. 아합 그 옆에 마차로 막 뛰어 가고 이런 게 뭡니까? 육체적인 에너지가 굉장히 소모된 겁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소모. 이런 것들이 나가게 되니까 나중에 이것을 영어로 번아웃이 되는 겁니다. 죽고 싶다. 죽기를 구했다는 겁니다. 그 육체적인, 정신적인 이런 부분들도 관리를 잘 하지 않고 너무 탈진되면 결국은 우리 안에 열정이 이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관리를 잘 해야 되는 것이죠. 이 체력이 안 따라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또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정신적인 부분에 에너지를 다른 곳에 많이 소모해 버리면 내 안에 열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아웃이다. 탈진이다. 때로는 영어로 디프레션 이런 그런 침체가 오는 것입니다. 예, 그래서 이런 것들 굉장히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에요. 네 번째, 영적인 권태가 또 찾아오는 것이 우리 이런 열정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권태가 오면요, 열정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언제 영적인 권태가 오는가 하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금방 영적인 권태가 찾아옵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 회복돼야 될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있어요. 모든 것은 다 갖추었는데 문제는 영적인 지루함이 찾아온 겁니다. 지루해요. 근데 이런 영적인 권태는 주로 어떤 부분에서 찾아오는가 하면 세속화. 이 세속화. 오늘날 제가 보기에는 이 세속화의 요인이 굉장히 많아요.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관계보다 세상과 더 친밀해진 겁니다. 이 세속화 열정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을 더 깊이 나아가기보다는 세상과 너무 친밀해진 거예요. 세상이 더 재밌어. 세상이 재밌는 게 많아졌어.
[21:24]예. 그러니까 하나님과 친밀함은 사라지고 교회생활 하다 보니까 영적인 권태 지루함이 온 겁니다. 영적인 갈망,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없어요. 그러면 당연히 영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자, 이런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서서히. 서서히 일어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상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면서 영적인 세계에 감격과 감동이 사라지고 흥분이 사라지고 기대감이 사라지고 지루함이 오는 영적인 권태가 오는 겁니다. 결국은 이런 상태가 되면 굉장히 영적인 상태로는 비참한 지경까지도 떨어질 수가 있어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 안에 열정이 없는 거예요. 예배를 드려도 구경꾼이에요, 구경꾼. 구경꾼으로 있고 참관자하고 있지 정말 자기가 워십, 예배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 안에 불꽃이 꺼져 버렸습니다.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형식주의인 것입니다. 형식적인 것인 것입니다. 오늘 이 한국 교회 안에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요. 여러분 사탄이 노리는 게 이거예요. 사탄이 노리는 게 뭔지 아세요? 열정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하라는 거예요. 다 해도 좋다. 뭐 교회 다니고 봉사도 하고 뭐 다 해라. 다 하는데 열정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형식만 남는 겁니다. 이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역사고 서구의 교회들에 일어나는 역사고 오늘 한국 교회 안에도 걸려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예요. 열정이 빠져 버린 신앙생활. 그건 뭐예요? 형식주의라는 거. 뭐가 옵니까? 영적인 권태라는 거, 권태. 그래서 신앙생활에 영적인 세계 속에 감동과 흥분과 기대와 열정이 사라져요. 오늘 이 밤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아닌 줄로 있습니다. 아멘.
[23:44]예. 자, 그러면 열정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첫 번째. 어,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서 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굉장히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죠. 그러니까 열심히 낼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거예요. 부정적이면. 그러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쉽게 일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큰 일을 해낸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일을 쉽게 벌려요. 아주 이게 특이해요. 시작을 쉽게 해요. 그 왜 그런가?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그래요. 생각이 단순해져요. 이 열정적인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생각이 단순해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복잡하지 않아요. 주인이 맡기고 떠나자마자 바로 가서 일을 시작합니다. 열정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왜요? 아주 긍정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일을 안 하자는 쪽이 아니라 하자는 쪽이에요. 이 여러분 부정적이고 이런 비관적인 사람들은 뭘 하는 게 어려워요. 한번 시작하는 데 10년도 걸려. 날새서요, 날새서. 이미 버스 지나가 버렸어. 다른 사람이 다 단물 다 빠졌어. 뒷 끝물에 가 가지고 뭐 좀 해 볼까요, 그러면. 여러분 열정으로 사는 사람은요, 가만히 있지 않아요. 감히 떨어지기를 기다리지를 못해요. 그래서 앉아서 그냥 가만히 뭐를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사람. 두 번째는 꿈으로부터 열정이 오는 겁니다. 꿈은 열정을 만들어 내죠. 꿈과 열정은 친구예요. 꿈을 가진 사람은 열정이 있는 사람. 열정 있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 꿈 있는 사람은 열정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큰 꿈이 있으면 더 큰 열정이 일어납니다. 너무 작은 꿈은 자기도 감동이 안 되잖아요. 그건 꿈도 아니죠. 꿈이란 건 뭐냐면 내 평생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진짜 꿈이에요. 내가 이루지 않으면 내 자녀가 이루고 다음 세대가 이룰 수 있는 거 영구한 이 역사의 이루어져야 할 꿈. 거대한 꿈. 하나님의 나라의 꿈. 내가 다 이룰 수는 없지만 내 자녀와 내 다음 세대가 또 그 꿈을 이룰 것을 바라보는 그런 꿈. 흥분할 만한 꿈. 영원한 꿈. 사라지지 않는 꿈. 성경에 말씀하는 그런 꿈 말이에요. 여러분 그런 꿈을 꾸면 여러분 얼마나 흥분이 되는지 몰라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꿈을 꾸되 흥분할 만한 꿈을 나에게 달라고 하셔야 돼요. 그 죽을 때까지 내가 마지막 숨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꿈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죽기 직전에도 내 아들에게 병상에 찾아온 사람에게도 내 그 꿈을 얘기해 줄 수 있어야 돼요. 아멘. 그러면 그는 죽을 때까지 청년인 겁니다. 그 죽을 때까지 열정이 살아 있는 사람이에요. 세 번째는 세 번째 맞습니까? 상관없어요. 세 번째든 네 번째든. 믿음이 열정을 일으키는 겁니다. 열정의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입니까? 믿음이죠. 베드로와 요한이 사도행전 초반전에 3장에 이제 성전으로 올라가잖아요. 이전 같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갔어요. 근데 왜 그날은 그 날 때부터 안전뱅이든 사람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할 마음이 생겼어요? 성령이 임하시니까 자기들 안에 뭐가 생긴 거예요? 믿음이 생긴 거예요. 전에는 지나다녔어요. 봤어요. 근데 내 안에 믿음이 작동이 안 돼. 성령이 임하시니까 믿음이 작동하는 거. 와, 한번 선포하자. 주목하여 가로되 에 믿음이 막 발동한 겁니다. 여러분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태도가 180도로 달라지는 거예요. 열정이 불이 붙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열정의 에너지 원이죠. 믿음이 있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니까 열정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고 싶어요. 시작해 보시고 싶은 거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은 거죠. 네 번째는 가치의 발견입니다. 밭에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순간부터 흥분했습니다. 모든 것을 그렇습니다. 밭에 보화를 발견하기 전과 그 이유는 완전히 달랐어요. 무엇을 발견했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여러분 밭에 보화를 발견한 이 사람이 그 이후부터 그 밭을 사는 과정은 억지로 했을까요? 아니죠. 강요해서 했을까요? 저 밭 너 재산 팔아서 밭을 사. 그래서 한 거 아니잖아요, 여러분.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강요에 의한 열심은 빨리 지칩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절대로 의무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 하고 있는 일이 의무감으로 하고 있으면 그건 날세요, 날세. 볼 것 하나도 없어요. 별 볼 일 없어요. 내가 해야 되니까 할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곳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요 평생 동안 의무감에서 일을 하다가 끝내는 사람 많아요. 불행한 인생입니다. 의무감으로 내가 뭐 그런 포지션이니까 그런 직업을 가졌으니까 돈을 받으니까 뭐 내가 해야 된다. 여러분 그건 버텨내는 거지 그게서 무슨 열정을 불태우고 내 몸을 불살라 그냥 자원하고 기쁨으로 즐겨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 이런 열정이 일어났느냐? 가치를 발견해야 된다는 가치. 그 보화를 발견했다는 말이야.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발견했단 말이야. 그러면 내 안에 뭐예요? 흥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 다섯 번째로는 뭐가 있어야 되느냐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돼요. 다윗은 시편 51편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여러분 범죄함으로 다윗에게 찾아온 것은 뭐냐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왕의 국사를 이렇게 업무를 하는데 영광스럽지도 않고 너무너무 힘들고 억지로 한 겁니다. 마지 못해 감당한 거예요. 그러니까 뭐라고 말합니까?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는 겁니다.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는 거. 이게 여러분 자원하는 심령이 뭔지 아세요? 열정입니다, 열정. 기어이 하고 싶은 우러러 나오는 마음이 하고 싶어지는 그런 막 마음이 막 불타오르는. 근데 이게 언제 오는 거예요?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실 때. 여러분 오늘 신앙 생활은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는 거예요. 요거예요. 요것만 되면 다 끝난 겁니다. 이 구원의 즐거움이 식어져 버리고 그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리면 껍데기만 남아 있는 거예요. 불탄 거예요, 불탄 거. 아무것도 없어요. 습덩어리가 된 거예요. 불이 타야 되는데 그게 뭐예요? 구원의 즐거움이 날마다 내 안에서 록록 솟아 올라야 돼요. 아멘. 이거 없으면 여러분 하고 있는 거 얼마 못 가요. 무슨 힘으로 합니까? 무슨 힘으로? 깡으로 합니까? 오늘 이 밤에 여러분들 기도하는 가운데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아, 이러면요 그냥 죽는 겁니다. 그냥 그냥 나 이대로 죽어도 좋아. 너무 좋아요. 뭐 그냥 뭐 바랄 게 없어요. 바랄 게. 더 바랄 게 없어요. 구원의 즐거움만 회복되면 그냥 끝내 주는 거예요, 여러분. 거기서 막 열정이 일어난단 말이야. 열정이 일어난단 말이야. 그래서 여러분 뭐 좀 시큰둥해지면요 딴 데서 찾지 마시고요.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세요. 그래서 막 십자가, 예수, 하나님, 보혈 막 이런 단어만 나와도 막 눈물이 확 쏟아지도록. 할렐루야. 아멘. 그래서 막 보혈이 막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하고 막 내 온몸으로 덮어치는 듯한 그런 은혜를 받으면서 그 구원의 감격이 되살아나면 이 생명 들여도 아깝지 않고. 할렐루야. 아멘. 막 흥분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좋아 죽는 거예요. 얼굴이 살아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 무엇을 위해 열정을 가져야 되는가?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열정. 이 하나님과의 관계. 이게 중요합니다, 관건. 이 열정이라는 이 단어가 헬라의 엔데오스라는 데서 나왔어요. 엔데오스. 그 이 엔데오스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라는 말이에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열정을 다해야 되느냐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이 관계 안에서 열정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확인해야 될 것은 뭐냐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예요.
[33:26]여러분 하나님은 불이세요, 불. 하나님은 불 그 자체예요. 여러분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하는 불꽃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근데 불꽃이 막 가시 떨기가 막 타는데 사그라들지 않는 불이에요. 계속. 가시 떨기는 여러분 불이 붙으면 그냥 금방 그냥 제가 돼야 되는데 이게 계속 타오르는 불이에요. 그분이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34:02]여러분 성령이 불로 비유를 해요, 비유로. 불로. 불같이 임하셨어. 그러니까 여러분 성령이 임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접속이 일어나면 불이 붙는 거예요. 뜨거워지는 거예요. 열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멘.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은 뭐냐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열정이 회복되도록.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친밀해지도록. 이게 이게 관건입니다, 관건. 예. 주일날 하루 종일 예배 하루 종일 교회에 있었다고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전심으로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느냐. 이게 중요해요. 할렐루야. 아멘.
[35:06]냉담했던 내 가슴에 하나님의 불을 지펴 주셔서. 이 불이 내 이웃에게로 열방에게로 이 민족 가운데로 붙여지는 전염되는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종류죠, 여러분. 방화자 아니면 소방수. 은혜 받는데 마다 가 가지고. 한때 그랬었거든 나도 이러면서.
[35:38]여러분 이 부산 땅에 부흥이 임해서 북진을 해야 돼, 북진. 평양까지 가야 돼요, 여러분. 아까 얘기했잖아요. 경상도 사람들. 경상도 가 되든지 경상도 가 되든지.
[35:52]뭘 일을 벌려야 돼요, 여러분. 우리 철회에도 강력한 기도가 필요해요. 기적이 일어나야 돼요. 성령이 임하시는 역사가 일어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식었던 냉랭한 메마른 가슴들이 이 철하에 나와서 불이 붙어 버리는. 아멘. 그 집을 들어가자마자 막 가족들 자든 가족들이 막 뜨거워 가지고 일어나는 역사가. 아멘.
[36:18]여러분 우리 주변의 교회들이요 너무너무 저절해요. 이 땅에 오늘 한국 교회 안에 너무 지금 패배주의가 꽉 차 있어.
[36:32]메마라 있는 이 한국 강 한국 교회 안에 불을 지르는 역사가 일어나요. 근데 언제예요? 나로부터. 여러분들 이 심령이 매느리즘에 빠지고 형식주의에 빠지고 그냥 시큰둥하고 그냥 그냥 메마른 가슴으로 그냥 신앙생활 해 온 분들이 있다는 말이야.
[36:53]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아멘. 복음의 열정이 살아나기를 바라고요. 아멘. 여러분들의 하고 있는 모든 사역에 열정이 다시 한번 일어나는 예배 안에 열정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냉담했던 내 가슴에 하나님의 불을 지피어 주셔서. 이 불이 내 이웃에게로 열방에게로 이 민족 가운데로 붙여지는 전염되는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