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for [이규현 목사] 이혼해도 되는가? | 막 10:1-12 | CGNTV 말씀강해 by CGN

[이규현 목사] 이혼해도 되는가? | 막 10:1-12 | CGNTV 말씀강해

CGN

36m 52s3,715 words~19 min read
Auto-Generated

[0:55]자, 오늘 설교는 여러분들이 제목을 보셨겠지만 좀 예민한 주제입니다. 이혼해도 되나요? 이게 제목입니다. 듣다가 힘들면 나가셔도 됩니다. 어 예민한 주제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이미 이혼을 하신 분도 이 안에 있을 수도 있고요. 또 또 이혼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계실 거고 지금 함께 살고 있어도 뭐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로 살고 계신 분도 계실 거고. 어떤 분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해당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머지하나 또 결혼을 하게 되면 닥칠 또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 어 어떤 분은 뭐 개인적으로 별로 적용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또 옛날에 그 상처나 이런 것들이 다시 회상되면서 굉장히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요. 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고 이 시대 또 이 문화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싸워야 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잘 정리하고 또 원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 굉장히 유익하고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 예수님의 이제 갈릴리 사역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요.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십자가로 가야 될 지점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이때 쯤에는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공격이 또 심해져 가고요. 그래서 오늘 또 그런 연장선상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하는데 이 시험을 목적으로 한 질문입니다. 트릭을 만들어서 예수님을 좀 이렇게 모함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2절에 보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까 이혼에 관한 질문이죠. 자,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다시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물으시면 바로 답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되묻습니다. 자, 그때에 3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세가 모세의 법에 의하면 이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이렇게 바리새인들에게 다시 물은 거죠.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4절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이혼 증서를 써주고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이랬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이 모세를 언급하면서 이혼의 합법성을 주장합니다. 이 내용이 신명기 24장 1절로 4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세의 법에 이혼 증서를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의 초점은 이 이 법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들의 초점은 이혼 증서에 있었습니다. 이혼 증서만 써주면 헤어질 수 있는 겁니까? 이제 이런 것이죠. 근데 본래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의미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면 그냥 보내서 안 된다. 이혼 증서를 반드시 써주고 보내야 된다. 이 이혼 증서가 없으면 여인들은 그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혼 증서를 써 줌으로 이혼을 합리화시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건 해석을 잘못한 것입니다. 이혼을 허용한 것이 아닌데 이혼 증서를 써주면 헤어질 수 있다는 쪽으로 해석을 한 것인데 이것은 말씀의 왜곡입니다. 우리가 본래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유리한 쪽으로 이렇게 확대하고 분리하면 축소시켜 버리는 그런 경향이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이혼 증서를 왜 그때에 써주게 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5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이혼 증서를 써주고 보내라는 거죠. 근데 인간들이 악하기 때문에 이 법을 교묘하게 악용을 했습니다. 이혼을 하려면 이혼 증서에 합당한 이유를 기록하고 공증을 받아야 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이것은 전적으로 그 시대의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남자들을 편리하게 이혼을 하라고 만든 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시에는 여자를 버리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물건을 버리듯이 쉽게 버릴 수 있는 문화가 그 시대에 있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혼에 대한 정당한 사유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배우자의 음행입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이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혼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예 막고자 사실은 이혼 증서를 써서 보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근데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잘못 이해한 것이죠. 고린도전서 7장 11절을 보면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6:53]갈리더라도 혼자 지내든지 아니면 다시 합하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혼을 이기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이기적으로 사용할 위험성이 항상 있습니다. 이혼의 순간에 고상하고 신령함 이유보다 이기심이 끼어들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같이 살다 보면 분명히 힘든 때가 많습니다. 맞지 않는 게 한 둘이 아니고요. 처음에는 분명히 멋져 보여 결혼을 했는데 얼마 못 가서 아차 실수였구나. 잘못 만났구나 이런 순간이 옵니다. 근데 여러분 맞지 않는 것은 참 당연한 일입니다. 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찾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은 기적에 속합니다. 어떤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누가 결혼을 쉽다고 얘기했는가. 누가 가정을 천국 같다고 했는가. 미숙하고 연약한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여러분 요즘 시대는 예수님의 시대와 상황이 다릅니다. 요즘 미국과 같은 사회는 이혼은 위자료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세계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인 아마존의 창업자인 이 베이조스가 이혼을 하면서 아내와 자기의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베이조스의 아내는 위조를 그야말로 세계 최고 그 당시의 부자였는데 반을 나눠 받았으니 졸지에 위 자료를 받는 순간 이 아내 되시는 분은 세계 부자 랭킹 13위에 들었습니다. 졸지에 부자가 된 것이죠.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남자가 이혼 몇 번만 하면 알거지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 들들이 돈이 없어 이혼을 못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시대는 반대입니다. 이혼하는 순간 여자 쪽이 거지게 됩니다.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합니다. 최하의 계층으로 빠집니다. 평소에도 여성의 지위가 낮은데 이혼까지 하면 약자 중의 약자가 됩니다. 성경은 왜 고아와 가부에 대한 배열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자 요즘은 이혼이 흔해졌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혼의 이유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자들이 위기를 만난 가정을 심방하고 상담해 보면 답을 찾기가 쉽지가 않아요. 무너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이혼에 찾아진 원인 중 하나는 자아 실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뒤덮고 있는 것은 자아 성취, 자아 실현 그리고 자아 만족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개인주의입니다. 나 중심이에요.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 중심적입니다. 너만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자아가 강조될수록 상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신의 성공과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싫으면 끝이에요. 나의 행복에 도움이 안 되면 얼마든지 배우자를 버릴 수 있습니다. 요즘은 배우자 정도가 아니고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도 버리는 세상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강요입니다. 나를 어떤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결혼이라는 틀에 나를 집어넣지 말라는 거. 내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둬. 비틀즈가 얘기했던 불렀던 레리비예요. 그래서 우리 시대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내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집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결혼과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손익 계산스가 분명한 것이죠. 내가 손해라는 결론이 나면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결혼을 거부하는 일들이 많아졌죠. 홀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주장합니다. 미디어들도 부채질을 하죠. 요즘 보면 산에서 혼자 사는 분들의 생활을 치지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수염도 이렇게 그리고 막 산에 약초 따라 다니고 그 프로그램이 50대 이상 남성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나도 저러고 싶다. 뭐 이런.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싱글의 자유를 누리라고 자극합니다. 왜 결혼을 하는가. 여러분 결혼을 자신의 행복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깨어지는 가정을 보십시오. 부부가 서로 틀림없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피해자 의식은 불과패합니다. 여러분 언제 상처를 잘 입는지 아십니까? 이기심 때문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요구 조건이 늘어날수록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안 돌아가면 결국 상대를 비난하게 되죠. 여러분 부부들이 언제 가장 힘들어지고 있습니까? 배우자를 내 힘으로 바꾸려고 할 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상대는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점점 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죠. 아무도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행복을 주장할수록 행복은 더 멀리 날아갑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 아니에요. 문제는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반대 정신이 필요해요. 결혼한 순간부터 자기 중심적 삶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옮겨 가야 합니다. 나의 행복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은 생각보다 빨리 깨어지고 혹독한 고통을 당합니다. 어제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아픔입니다. 이혼을 한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죠. 정말 이혼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시는가를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창세기의 말씀을 가지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6절과 9절은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창세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그랬어요. 자 여러분 예수님은 이혼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보다 결혼에 대한 오리지널 결혼에 대한 원본을 가지고 나오셨어요. 우리가 붙들어야 될 절대적 기준이죠. 사회적 통념 혹은 문화 전통들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은 우리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에요. 상대적 기준이죠.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변합니다. 사람들이 만든 법도 변하고요, 문화도 변하고, 전통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붙들어야 되죠. 그래서 오늘 주님은 성경 창세기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성경은 결혼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사회적 합이나 문화적 산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준.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법을 가지고 나와 이혼의 문제를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이혼에 대한 답보다 결혼의 결혼이 무엇인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본래 결혼을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가정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원 바디가 된다는 거예요. 창세기 2장 23절에도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 최초의 노래죠. 여러분 내 뼈 중에 뼈 내 살 중에 살이라 하와를 향하여 그렇게 노래 불렀던 야담. 이 말은 뭘까요? 너와 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주신 결혼의 기준은 이혼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못을 박고 있어요. 짝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연히 오다가다 눈이 맞아 결혼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 결혼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이 작동됐다는 거. 그래서 인간 결혼을 인간 대사로만 보면 안 돼요. 결혼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신적 사건이다.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다는 거. 그러므로 사람이 억지로 나누려고 하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이혼의 과정에서 왜 고통이 그런 극심한 고통이 찾아옵니까? 하나님이 한 몸으로 디자인 하셨기 때문에요. 나눌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는데 나누니까 극심한 고통이 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유롭게 나눌 수 있도록 디자인 하셨다면 헤어져도 별 문제가 없어야 돼요. 그러나 아닙니다.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는 거. 한 몸을 떼어 내려고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한 몸을 자유적으로 끊 깬 대가가 크다는 거. 여러분 결혼을 한 순간부터 한 몸으로만 존재합니다. 마태복음 19장 9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오늘 12절에도 동일한 표현입니다. 왜 다른 데 장가 들었는데 간음이라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미 먼저 결혼한 사람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그랬어요. 이전에 배우자와 이미 한 몸이 되었다는 거죠. 헤어져도 한 몸의 개념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른 데 장가 드는 것이 간음한 것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여자와 한 몸을 이룰 수 없다는 얘기는 거죠. 나누어질 수 없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이 말씀이 와닿을 수가 있습니다. 팔과 다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떼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안 돼요. 할 수는 있어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우리가 옷감들을 이 옷들도 마찬가지죠. 많은 것들이 이 날실과 올실들이 엉켜서 이 이 모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 옷이 되어서 이렇게 입고 있는 것이죠. 이거를 어떻게 다시 분해시켜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분해 시킬 수는 있어요. 근데 그것은 이제 옷이 아닌 것이죠. 여러분. 찢어 버려야 되는 거죠.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힘들면 헤어지는 것이 쉬운 길이라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헤어지는 게 쉬운 길이 아니고 훨씬 더 어려운 길입니다. 후유증이 너무 많아. 이혼은 한 가정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녀들 양가들 그리고 사회 전체로 연결이 됩니다. 특히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아픔은 큽니다. 그리고 이혼을 허용하는 이 문화는 결국 세상 전체를 어둡게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의 원리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질서 있게 움직여 나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결혼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하고 선명합니다. 바울은 이혼을 허용한 것처럼 보이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 보니까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9:40]이 무슨 얘기입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부분은 하나로 가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 11절 상해 보면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이것은 성경은 줄곧 이혼을 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갈라 쓰지 말아야 하지만 만약 갈리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혼자 살라는 것이고 혼자 지내기 싫으면 다시 화합.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계속 가져가야 될 개념이 뭐냐면 성경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하나 됨입니다.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는 결혼의 핵심적 원리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혼을 했다고 했다면 결혼을 했다면 쥐지고 볶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해결하라는 거죠. 여차하면 갈라진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하든 함께 살려고 노력하라는 거죠. 남편이든지 아내에게든지 헤어지고 싶을 때가 있죠. 여러분.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서 찾아내려고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처음에는 하와를 바라보며 내 뼈 중에 뼈 내 살 중에 살이라 이렇게 감탄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스나가를 먹고 난 다음에는 아주 그냥 또 오리발을 내고 하나님 탓, 여자 탓을 합니다. 당신이 주어 나로 함께 살기한 그 여자 때문에 내가 이 스나가를 먹게 되었다고 얘기하죠. 여러분 이 문제를 자기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상대에서 찾으려고 하면 이미 위기인 것이죠. 여러분 이혼하는 가정의 특징이 있습니다. 문제를 상대방에게 찾습니다.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과 약점이 많아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납하고 품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길이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로 우리가 여기에 서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배우자에게 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한히 받고 끊임없는 용서를 끊임없는 이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그 은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건 모순된 삶을 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일에 힘을 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결혼에 있어서 우리가 가져야 될 매우 중요한 것은 결혼을 신중하게 여겨야 된다는 거예요. 감정이 필요하지만 감정에 들뜬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여러분 결혼을 신자들은 결혼할 때부터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시작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떠야 돼요.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자주 감아야 돼요. 그리고 프로토카의 속담이 그거잖아. 배를 타고 항해하는, 바다로 나갈 때 한 번 기도하라.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해라.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해라. 여러분 항해, 이 험난한 항해 길에 나섰을 때 얼마나 위험합니까? 근데 한번 기도하라는 거. 전쟁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두 번 기도하라는 겁니다. 결혼은 세 번 기도하라. 기도하고 기도하라.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결혼하고 나서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 결혼을 물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 바꾸듯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부부와 자녀들에게 보여줘야 될 최고의 모습은 부부의 하나 됨입니다. 부부란 여차하면 헤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자녀들에게 줘서는 안 된다는. 그것은 가정의 불행이고 사회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우리는 점점 더 결혼을 가볍게 다루는 문화 안에 살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여기 오염되어 있습니다. 신자와 비신자들의 생각을 통계로 안 킷들을 조사해 봤더니요. 다르지 않는 통계가 나왔어요. 충격적인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결혼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부부 관계는 어떤 대가를 치더라도 지켜져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신자가 무엇으로 구별될 수 있는가? 오늘 시대는 결혼의 신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빛된 삶이에요. 세상과 전혀 구별되는 빛된 삶은 가정을 신성한 가정을 지켜내는 거. 그 가정을 어떤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때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세상 속에 빛이 될 것입니다. 또 왜 가정은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쓰라도 지켜져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를 깨뜨리고 창조의 계획을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 안에 핵심적인 것 하나 중에 무엇이 있습니까? 샬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이 너무도 큽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왜?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 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열이 아니에요. 시편 133편 1절에 보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나 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마태복음 17장 21절에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의 매우 중요한 원리가 뭔지 아십니까? 통일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 이 유니티. 그게 4장으로 5장으로 넘어가면 가족 간의 하나 됨으로 이어집니다. 하나 됨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 안에는 통일이 있습니다. 통일 화해 하나 됨입니다. 오늘 우리가 통일 주간을 지납니다. 우리나라가 전후 7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분단된 상태로 있습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분 위전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노래 많이 불렀어요. 참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뭉클하는 게 있어요. 요즘은 통일마저도 정치적 논리로 해석함으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분열로 가득한 이 땅에 필요한 것은 화해, 화해. 통일이 통일의 복음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통일을 깨고 분열하게 합니다. 이 땅에 깨진 모든 곳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마귀의 역사가 있어요.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입니다. 복음은 하나 되게 하는 능력이 있어요. 가정도 우리 사회도 국가도 남북 관계에 답은 복음이에요. 그 복음은 하나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복음만이 하나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지금도 온 세계가 바라보고 있는데요. 이 한반도에 일어난 이 통일의 문제는 우리 한국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문제입니다. 독일이 통일을 경험했습니다. 독일의 통일을 보면 그들은 독일의 교회가 서독의 교회가 동독의 교회를 많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근데 그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독일의 교회가 너무도 통일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들의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어떻게 보면 눈으로 보면 여러분 독일의 통일은 갑자기 일어난 것 같은데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 백성들이 준비되지 않아도 일어나는 것이죠. 그 모든 통일은 기도의 열매예요. 교회 역할이 중요합니다. 통일 안에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비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전 세계에 한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나고 남미에서도 일어나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 통일의 열망을 가지고 한반도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이번 한 주간에도 여러분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하나됨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때로는 대립과 갈등을 가져오고 때 깨어지는 위험들이 있지만 수 없는 위기를 이겨내게 만드는 힘은 복음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가정 속에 위기가 오지만 우리의 신앙의 성숙이 결혼 관계 안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연약한 상태 그대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처음 운전 면허증을 따서 운전할 때 얼마나 위험합니까? 때로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렇다고 운전을 그만두지 않아요. 접촉 사고가 있고 사고의 유면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운전 실력이 늘어나면서 편안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운전에 익숙해지면 사고 날 일도 거의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환상적 조합에는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싸움의 요령이 생겨요. 조금씩 성숙해져 가면서 싸움도 줄어듭니다. 위기가 와도 넘기는 법을 터득합니다.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받아들일 용량이 커졌다는 겁니다. 이전 같으면 대판 싸울 일인데 어느 순간씩 웃고 넘어가는 여유가 생깁니다. 용서와 이해의 분량이 많아진 것이죠. 이전에는 사사건건 걸려 넘어졌는데 부드럽게 넘어갈 줄 안다는 거죠. 왜요?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성숙은 자아 중심에서 이타적으로 계속 이동해 가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다 돌렸습니다. 이기적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경험을 가정 안에서 부부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경험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순교할 일은 우리에게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선교지에서 죽이려고 하지 말고 가정에서 순교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부인 앞에서 자기 부인을 하고 남편 앞에서 남편들지 말고 남편의 길을 세워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엑센트를 잘 들으셔야 돼요.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돼요. 여러분 상대의 만족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걸 배워야 된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사람이 양보하고 좀 더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결혼은 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짐을 지는 거예요. 이 인간을 만나 내가 고생을 하는구나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을 만나 고생을 하는구나. 이 생각이 들어야 돼요. 여러분 이혼을 한 사람들이 이 시간을 흘러 후회를 해요. 내가 그때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그때 성숙했더라면 여러분 결혼 생활을 잘한다라고 해서 그냥 경륜으로 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깊어지는 것 아닙니다. 영적 성숙이 있어야 돼요. 신앙과 부부 생활은 따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면 부부 관계가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도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가 그동안 가정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너무 엉뚱한 곳에 많이 쏟아 부었어요. 부부 관계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자녀들에게 너무 많이 쏟아 부었어요. 여러분 배우자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은 성경적 태도가 아닙니다. 가정에 건강한 구도가 깨어져 버려요, 여러분. 부부에게 가야 할 사랑을 자녀에게 쏟아 보면 그게 건강한 구도가 깨어져요. 부부 관계에 가장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들의 가정에 많이 무너졌던 이유는 성경적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분열이 넘쳐나고 자녀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혼이 허용되는 사회는 어쩔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를 보십시오. 밤 문화가 이렇게 발달하고 성윤리 의식이 이렇게 약한 나라가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여다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정을 떠난 행복과 번성은 하나님이 보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큽니다. 기본 중의 기본은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가정이 무너진 사회는 회복될 수 없어요. 가정이 무너지면 건강한 교회도 없습니다. 건강한 국가는 정치인들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 땅에 무너진 가정을 세우는 그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만이 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가 있어요. 가정을 가정답게 살려내는 것은 복음 만의 복음만의 능력밖에는 길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됨을 지키고자 애를 쓸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믿음이 어디에 필요합니까? 결혼 관계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일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견뎌내게 하는 힘이 뭘까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반드시 아름다운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멘. 참아낼 수 있는 거예요. 참아낼 수 있는 거. 책으로도 어떤 가정 간증을 하나 들 들었는데요. 야, 그 여자분의 간증을 들어 보니까 이건 뭐 누가 들어도 헤어져야 될 남편이에요. 뭐 뭐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는 분이에요. 막 그냥 가지가지 다 하시는 분이에요. 남편이. 근데 이 아내가 견뎌낸 거예요. 뭘로? 하나님 말씀 붙잡고.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올라오는데도 그날 아침에 큐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리는 거예요. 그게 실행을 못 옮기고 끊임없이 섬기고 또 섬기고 때로는 종처럼 완전히 굴욕적인 삶을 살면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정이었어요. 근데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동안에 마침내 그 남편이 교회 나오게 되고 예수 믿게 되고 그 가정이 행복되어 가는 얘기를 들으면서 눈물 겹기도 하고 힘든 순간을 생각하니 그 여자분에 대한 동정이 가는데 믿음으로 이겨내어 승리한 얘기를 들으니까 결국 그 말씀이 답이라는 그 결론을 그 간증에서 하는 걸 들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실력과 열심만으로는 안 돼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감당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언젠가 깨는 쪽이 아니라 화해 편해서 보십시오. 갈라서는 것이 결코 답이 아닙니다. 갈라서야 할 현실적 이유들보다 갈라서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자 힘써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것입니다. 아멘. 어떤 경우에도 하나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지키고 고조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 너무도 큰 것입니다. 아멘.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는 축복을 능가하는 복은 없습니다. 아멘. 하나됨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정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부부의 관계 안에서 굳게 지켜가고 힘쓰시는 여러분들이 되셔서 우리 가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한 가정, 우리의 건강한 공동체, 이 나라와 국가를 만들어 가는 일에 그리스도인으로 사명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Need another transcript?

Paste any YouTube URL to get a clean transcript in seconds.

Get a Tran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