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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BEST 설교 | 회개의 세례 | 수영로교회_이규현목사 | 마가복음 1장 4절 ~5절

CTS BEST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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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네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0:51]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자 오늘 마가복음 강의 두 번째를 여러분들하고 나누겠습니다. 지난주 보았던 1절이 중요한데요. 1절을 한번 띄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의 시작이라. 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목적 또 이 마가복음을 우리가 읽으면서 계속 놓치지 말아야 될 핵심적인 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이라는 단어입니다. 복음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되죠. 복음. 이 복음이라는 말은 기쁜 소식이라는 거죠. 복된 소식이다. 여기서 복음은 우리 영어로 가스풀이라고 그러는데 가스풀이 아니고 가스풀. 오직 그 복음. 어떤 복음이 아니고 그 복음. 유일한 복음. 시대와 또 문화를 뛰어넘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 어느 문화, 어떤 계층, 어떤 역사 속에서도 복음이 될 수 있는 것. 그래서 오직 복음밖에 없다. 근데 그 복음은 무슨 복음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복음을 얘기할 때 항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복음이 뭔가라고 얘기할 때 그 복음은 그리스도이시죠. 그리스도가 곧 복음이시다.

[3:40]이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 복음을 이제 마가가 전한 예수에 관련된 복음, 예수의 복음을 우리가 전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요. 아마 복음을 수도 없이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들었을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오늘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4:11]복음은 우리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요약할 정도로 가볍지 않. 전도 복발이나 또 사역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일들을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복음은 아니죠. 이 복음은 늘 왜곡되거나 축소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전혀 내리지 않고 그 복음이 왜곡되는 거죠. 유사 복음이라고 얘기합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어떤 시대와 문화 속에서 그 복음이 굴절되거나 왜곡되어서 전파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우리 한국이 뭐 일찍이 130년 전에 돌았지만 가난하고 또 힘들었던 우리의 민족사 속에 경제적으로도 공핍했던 것 이제 불과 몇 년 전에 복음이 왕성하게 일어날 때는 빵의 복음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은 한국이 가장 많이 들려졌던 복음은 어쩌면에서는 형통의 복음. 왜 현실의 삶이 너무도 절실했기 때문에. 그 형통의 복음 안에는 뭐가 들어 있어요? 빵의 복음이 들어가 있는 거죠. 그 빵의 문제도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지만 성경이 말씀하려고 하는 복음은 그 이상. 소수 소위 선수 복음이 아니라 유사 복음. 그것은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 지금 남미에 어마어마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지만 남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는 형통의 복음. 때로는 정치적인 그런 복음으로 그 시대에 해방 신학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복음이 왜곡되게 이제 전해진 것입니다. 복음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복음의 깊이는 청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평생 걸쳐 알아가도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복음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더 명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약화는 전적으로 복음의 약화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일반적인 우리의 분석입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알고 경험하기 이전에는 결코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위력적인 것이고 매우 전복적인 것입니다. 그 복음이 제대로 선명하게 순수하게 들어가면 한 개인 때로는 한 사회, 국가 오늘 인류를 다 바꿔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이에요. 복음이 전해졌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 우리는 복음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왜 이 복음을 얘기해야 되느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왜 복음이 필요한가?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망가져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오리지널한 그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죄로 인하여 이 세상은 상당히 많이 손상되어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이지 않아요. 사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늘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에요. 마치 유리자이 깨어진 것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원받은 인간이 깨어져 버린 거죠. 그 형상이 깨어져 버렸다는 말이에요. 마치 유리자이 깨지고 나면 대표로 붙이고 본드로 붙여도 물이 세요. 온전하지 않다는 거. 이 죄의 기능을 하지 못함. 우리는 종종 어떤 잘못을 하면 내가 실수를 했다고 얘기합니다. 실수 정도가 아니죠. 인생의 상태는 그렇게 경미한 수준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세상과 오늘 세상은 너무도 거리가 멀어요. 사람들은 인간이 얼마나 비참함에 처해 있고 얼마나 위험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세상에 있도록 고통이 많은 것입니까? 세상 속에 우리가 들려오는 이 고통의 소리를 우리는 듣고 있어요. 매일. 중국 우한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폐렴은 지구 전체를 지금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전염병이 아니죠.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은 죄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성공을 해도 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없는. 오늘 이 세상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보면 어둡고 우울한 것이죠. 연약한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나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나 모순이 있고 갈등이 있고 혼란이 있고 분열이 있고 전쟁이 일어납니다. 세상에는 평화가 없어요. 이 자연 재해들도 지금 뭐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 지진이 또 일어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어제 죽었습니까?

[9:47]여러분 전쟁이 늘 벌어져 죽고 죽이는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지금도 중동은 전쟁터와 같죠. 화약고입니다. 자 이 모든 것 안에 뭐가 있느냐? 죄라는 것입니다. 죄, 죄는 파괴적이에요. 이 죄가 오늘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이 저주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를 보면 어떻습니까?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습니다. 유대사회는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모든 면에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고통하고 있었고요. 예수님이 공생에 속에서도 나타나는 귀신 들린 자들이나 병든 자들의 모습은 그냥 병든 자, 귀신 들린 자가 아니라 망가진 세상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난 인간의 삶이란 절망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일 오늘 우리는 매 순간 잘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고통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싶은 거.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행복을 꿈꾸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희망에 부풀어 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근데 현실은 어때요? 마음 먹은 대로 되질 않아요.

[11:16]성도 여러분, 죄는 인간의 육체, 감정, 이성, 의지 전체를 타락시켰어. 인간은 밥 먹듯이, 숨을 쉬듯이 죄를 짓고요. 심지어는 죄를 즐기며 살아갑니다. 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집니까? 우리의 자신이 죄로 망가져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바르게 걸어갈 능력이 없어요. 그 원인은 죄라는 겁니다. 절망과 비통함이 세계 곳곳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복음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유대 사회 그 당시에 상황도 마찬가지 오늘의 2천년 지난 오늘의 상황도 마찬가지 복음이 시작해야 될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절망적인 버텀 라인, 절망의 밑바닥에서 복음이 시작이 되는 거. 총체적 난구로부터 우리를 건져 줄 기쁨의 소식이 과연 있는가? 이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진정한 복된 소식은 어디로부터 올 것인가? 우리는 종종 거짓된 복음에 속아 왔어요. 신기루 같은 것이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인데 그냥 속아 넘어갑니다. 말도 안 되는 공약인데 믿어요. 왜 믿습니까?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까 믿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이단들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주로 절박한 현실 세계에서 뭔가 돌출구를 찾고 있다가 그 이단의 달콤한 유혹의 손길에 홀딱 넘어가 버리는. 거짓된 복음은 늘려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오셨을 때도 크게 두 가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메시아였어요. 로마의 압자에 가난이 시달렸던 백성들에게 절실한 것은 빵의 문제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금이 뜯겨 로마의 정부에 상납되는 그 현실의 상황은 백성들이 너무도 힘겹게 살아갔어요. 예수님이 오병이어 사건을 행하시고 난 다음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찾아 임금 삼으로 했던 이유는 빵의 문제, 빵의 메시아를 찾았어. 그러나 주님은 몰려오는 백성들을 피하셨습니다. 주님은 빵의 문제는 절실하되 그 빵의 문제를 위하여 오신 분은 아니에요. 또 다른 하나는 백성들이 정치적 메시아를 갈망했습니다. 로마의 지배로부터 유다를 구출해 줄 메시아를 갈망했어요. 실제로 당시의 열심당원들은 정치적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시대적 상황이 그랬어요. 유대의 적은 로마였습니다. 로마의 친정부 역할을 하는 세리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로마로부터 물려 쳐줄 자유를 해 줄 메시아를 갈망했어요. 그러나 주님은 로마의 권력에 항거하기보다 도리어 불법적인 재판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기대하고 그리스도를 쫓았던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랐던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라는 거. 자, 세례 요한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복음이 되심을 증거합니다. 자,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400년에 침묵을 깨고 나타난 세례 요한의 1성. 그렇도록 기다렸던 그 메시지 그 첫 1성이 위로나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요. 그 첫 1성은 회개였습니다.

[14:55]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아라. 자, 여러분 세례 요한이 전한 이 말씀. 오늘 마태복음 3장 1절로 2절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여러분, 복음을 접할 때 기쁜 소식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복음은 처음에는 부드럽지만 입에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씁쓸하고 절망하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듣는 복음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참된 복음은 처음에는 거칠게 다가와요. 무엇이라고요? 회개하라는 거요. 여러분, 죄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죄가 있다 할지라도 수 없는 변호사를 동원해서라도 우리의 죄를 은폐하고 덮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광경이에요. 복음은 죄의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요. 단도직입적으로 겨둡니다. 복음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거부하거나 피하고 싶을 정도로 불쑥 죄의 문제를 건드립니다. 회개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아주 오래간만에 만난 성도를 만나자 말자 불쑥 회개하세요. 이랬다면 여러분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요? 목사님이나 회개하세요. 막 그냥 뭐 뭐 뭔가 시비를 걸지 않았겠어요, 여러분? 아멘이 나오겠습니까? 오래간만에 지금 반가워서 지금 너무 좋은데 갑자기 뭐 회개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400년의 침묵을 깨고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는 거. 회개하라는 거. 여러분, 이 말씀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마침내 이 회개를 선포하다가 세례 요한은 헤롯의 칼날에 목베임을 당합니다. 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회개를 선포했을까요? 하늘로부터 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말씀을 전해요. 때로는 피하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요나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했어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겁니다. 근데 그가 싫었어요. 결국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끝끝내 그를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어 제가 늘 얘기하지만 3일 3야 수중 신학교. 그래서 안수받고 니느웨로 보내는 거예요. 여러분, 놀라운 일이 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막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민족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 합니까? 정말 요나 선지자는 선지자답지 않은 선지자예요. 메신저로서는 아주 실격이에요. 억지로 할 수 없이 갔어요. 그리고 그냥 기꺼이 전한 게 아니라 그냥 할 수 없이 전했어요. 근데 수 없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 거.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얘기합니까? 메신저가 중요하지 않아요. 메시지가 중요해요. 말씀이 말씀대로 전해지니까 한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임한 하늘의 메시지는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빈들에서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선명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음성을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무시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천상의 소리, 400년의 침묵을 깨고 들려진 음성은 너무도 명료했어요.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라는 거죠. 성도 여러분, 왜 회개일까요? 다른 주제가 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피폐하고 지쳐 있고 상처 있고 혼란 속에 있는 그 백성들에게 따뜻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훌륭한 말씀을 전하라고 했으면 세례 요한이 얼마나 신이 나서 전했겠습니까? 근데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이에요. 오늘 5절을 다시 보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여러분, 세례 요한이 초점을 맞춘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초점을 맞추게 하신 건 뭡니까? 죄를 다루라는 거예요. 죄를 다루라. 죄를 정죄하라는 거. 여러분, 우리는 성경적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망가진 세상의 근본 원인은 다름 아닌 죄입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주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이 암흑기를 보냈던 민족의 그 아픔 속에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의 주범이 어디 있느냐?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회복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회복이란 뭘까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을 해서 어떤 목표에 도달해 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본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게 구원입니다. 요단강 세례를 받은 것은 죄 사함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인데 이 일을 통하여 일어난 일들이 뭘까요? 세례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됨을 가시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라는 말의 의미 안에는 담그다, 적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제 물에 담그는 그 일을 통하여 죄를 씻어낸다라고 하는 상징성이 있고요. 그리고 죄를 씻어냄으로 인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로 애굽을 할 때 홍해를 건너던 사건이 바로 그렇습니다. 물을 통과해 온 홍해를 통과해 온 그 사건 자체가 세례의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서의 삶과 가난의 삶의 경계선이 홍해예요. 그 고통스러운 애굽의 삶을 청산하는 길이 홍해를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버려야 가난이 오는 것입니다. 이게 세례예요. 옛 삶을 정리하는 게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은 다름 아닌 죄입니다. 그것을 이제 근본적으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 바로 회개요. 그 회개를 상징한 것이 세례 의식이었습니다. 자, 오늘 5절을 보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다는 거. 자, 이런 무엇을 의미합니까? 백성은 백성으로서의 죄가 있고 지도자는 지도자의 죄가 있고 여러분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특정한 사람만의 죄가 아니요. 죄처럼 모든 영역에 만연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이들 수준에 맞는 죄를 짓고요. 어른은 어른대로 짓는 죄가 따로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로 짓는 죄가 있고, 부자는 부자대로 짓는 죄가 따로 있어. 자기의 직업에 따라 짓는 죄가 따로 있어요. 종교인들은 종교인으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분명한 건 죄에 관한 예외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므로 요단 강에서 이 세례는 공개적이었는데 죄의 고백을 엄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인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인정하는 게 세례예요. 그래서 요단 강에 세례를 받고 나오는 순간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어 저 인간도 죄인이겠구나. 나도 죄인. 그래서 죄 앞에 특별한 존재가 없는 거예요. 창기나 세례나 물에 들어간 그곳에 함께 들어가 있는 그 사람들이 다 죄인이었다는 거예요. 이 죄인을 죄인됨을 고백하는 이 사건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는 충격적인 장면이고 그 소문은 급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여러분 당시에 제도권의 성전 안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습니다. 성전은 도리어 백성들이 죄를 가려주고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일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주일 예배도 그렇게 정당화될 수가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일주일 동안 지은 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시간 아닙니다. 불자가 절에 갈 때 자신의 죄에 대한 업보를 감하기 위해 시주 돈을 많이 바치듯이 죄책감이 많은 날일수록 헌금도 좀 넉넉하게 드리므로 마음의 짐을 들려고 하는 것도 착각입니다. 죄를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죄는 가려지지 않습니다. 죄는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자, 왜 세례가 그토록 중요합니까? 3절을 보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여러분, 여기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거죠. 주의 길을 준비하는 일이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주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이 될까요? 주의 길을 준비하는 길이란 딴 게 아닙니다. 죄를 회개하는 길이라는 거. 그리스도를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오시는 대어를 닦는 일은 다름 아닌 죄를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 같이 임해도 죄인은 그 은혜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주일 날도 모두가 다 은혜받는 건 아니에요. 주님이 오실 길을 그 시온의 대도를 준비하는 자예요. 그 준비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 회개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뭔가 무감각해져요. 가장 염려스러운 일이죠. 회개가 없는 삶은 갈수록 더 강팍해지면 성경 공부를 하고 온갖 훈련을 받는데도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요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죄인의 눈은 가려져 있어요. 신령한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적 무지의 상태에 빠지는 겁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어 놓습니다. 자기가 죽음의 길을 그냥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거죠. 망하는 길을 골라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 불행한 지를 모르는 불행.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가장 심각한 것은 회개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죄는 총총체적으로 고통으로 몰아가는 원인인데 그 죄의 문제로 돌이킨 이 회개가 우리 안에 점점 점점 희소해져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혼란과 역사의 고통은 딴 게 아니요. 이스라엘이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원인 분석을 외찍인 것으로 돌릴 때가 있습니다. 항상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습니다. 물론 요인 재공은 다양해요.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죄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은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가 살길이에요. 모든 것을 고치는 길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없이 회복되는 길은 없습니다. 회개 없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도 없습니다. 회개 없는 신앙생활은 가짜입니다. 아멘. 회개란 무엇입니까? 리턴이에요. 리턴.

[27:03]턴백하는 거.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게 회개요. 그래서 우리는 회개 원적 의미가 그잖아. 관역을 벗어났다는 거죠. 표준에서 미달된다는 거. 경계선을 벗어났다는 얘기.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의 삶이 바로 죄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꾸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합니다. 헛된 꿈을 쫓는 거죠. 우리 시대도 하늘의 전령이 필요합니다. 가짜들이 난무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것. 단순히 그것은 생활 개선이 아니라 전적인 돌이킴입니다. 여러분 뿌리 뽑힌 나무는 건방 죽지 않습니다. 서서히 죽어 갑니다.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인생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는 집을 떠난 순간부터 그는 고아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모든 것을 누렸던 그가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 집에 종보다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개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거. 하나님에게 반역한 인간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가는 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드려야 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 들려져 지는 것입니까?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죄의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회복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회개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고통하고 병든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어요. 세상에서 말하는 해결 방식도 다양하고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면 다양한 길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세상을 변화될 수 있을까요? 세상이 이토록 고통하는 요인이 무엇에 있습니까? 어떤 방법이 아니면 어떤 사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성경은 전혀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의 인간관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인간관은 인간은 죄인이라는 겁니다. 죄인에게서 무슨 선한 기대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죄인이라는 말은 그 역시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구원을 얻을 길이 없고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의 문화, 인간이 만들어낸 이론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요. 세례 요한 당시도 있을 것은 다 있었습니다. 왕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고 종교적인 시스템도 다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400년간의 침묵을 깨고 첫 일성을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은 죄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근본적인 회개 외에는 다른 답이 없음을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 백성들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요단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온 유대 지방,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귀한 장면.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역사적인 순간 이스라엘 회복의 전환점입니다. 암흑의 역사를 걷어내는 터닝 포인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이 부분을 우리는 무심히 지나가면 안 돼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오늘 우리의 삶에 새로운 삶을 출발하고 싶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다 나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이 사건이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에 핵심적인 이 구절은 죄를 자복하라고 하는 핵심 키워드예요. 이토록 망가지고 깨어지고 고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간단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죄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출발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2020년이 아니라 2000 몇 년이 되어도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되지 않아요. 새로운 삶은 회개요. 리턴, 돌아가는 겁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선은 죄는 선의 부재 정도가 아니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왕강한 반항, 반항을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스스로 거부하고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가 바로 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따돌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오만함이 바로 죄예요. 회개는 방향 전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돈을 돌리고 살았던 인생에서 하나님에게로 얼굴을 돌리는 것. 하나님과의 불화의 삶에서 이제 하나님과 화목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이 바로 회개입니다.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참된 회개를 통해서만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심령이 깨끗하게 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거죠.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 내 죄가 보이면 사는 길이 열려요. 왜 망하는 것입니까? 내 죄가 안 보이는 거. 다른 사람의 죄는 보이는데 기가 막히게 보이는데 내 죄가 안 보여요.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거.

[33:36]내 죄가 안 보여요. 부부 싸움을 할 때 보면 날마다 그거예요. 상대의 죄는 기가 막히게 보이는데 내 죄가 안 보여요.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거. 내 죄가 안 보여요. 여러분, 죄를 지을 때는요. 왜 죄를 짓는가 하면 그 죄가 안 보여서 죄를 짓는 겁니다. 다윗이 밧세바라는 남의 아내를 빼앗을 때 죄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게 기가 막히게 빠져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잔인하게 전쟁터에 최전선에 보여 죽였던 그 순간 그 죄가 다윗에게는 안 보여요. 그러니까 능수능란하게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는 죄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 순간에는 자신의 죄를 더 이상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러분, 죄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질 때 회개합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일어나야 그게 하나님의 은혜예요. 여러분,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 죄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죄에 대한 고백과 애통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없어요. 회개 없이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개가 없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다면 죄와 싸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35:21]죄를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 없는 구원이 없습니다. 회개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35:36]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죄와 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모든 것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나는 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나님께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음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다 통통으로 통렬하게, 의지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도 마찬가지 하나님 앞에 통렬히 회개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정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고 담을 넘어온 사람들이에요. 교회 멤버십은 있을 수 있지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지금보다 더 많이 힘을 기루려 하는 것은 더 많은 방법, 시스템, 조직, 활동, 커리큘럼이 아닙니다. 회개입니다. 그냥 회개가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다면 지금 우리의 주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회개하는 백성을 살리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회개하는 민족 교회를 살릴 줄로 믿습니다. 아멘.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축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국의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뭐라고 얘기합니까?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실 것이고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실 거라는 거예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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