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지난 시간에 사실 로마서 12장을 다 마무리 하려고 하다가 좀 귀중한 구절들을 좀 다루고 넘어가야 되겠다. 그래서 오늘 15절을 다시 좀 살펴보려고 그럽니다. 사실 짧은 구절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소중한 내용이죠. 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아 이 구절이 짧지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또 하나님의 공동체에 없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어떤 가치를 좀 붙들 수 있는 귀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지나가려고 하다가 이 구절을 다시 붙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불어 살아가죠. 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 그래서 우리는 함께 예 함께 살아갈 때 우리에게 행복이 오죠. 때로는 홀로 있어야 될 때도 있지만 홀로 있는 이유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홀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홀로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우리의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떤 기쁨과 슬픔에 우리가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 자 이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삶은 여러분 관계죠. 관계입니다. 관계가 깊어지면서 삶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뭘까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있지만 사실 이웃과의 관계가 더 풍성해지는 것. 그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웃과 단절된 나만의 개인적 신앙으로 신앙은 결코 표현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공감이 뭔가를 가르쳐주죠. 함께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게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공감하는 것입니다. 공감. 인간 관계가 어떻게 깊어지죠? 공감함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같이 오랜 세월을 지내도 만약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깊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대단히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가 소통이라고 할 때 이 소통의 핵심이 뭐냐면 공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소통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심리 상태를 가졌다라고 얘기할 때 건강한 심리적 정서적 상태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공감의 능력이 뛰어나요.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을 빨리 알아차리고 또 그 고통과 그 기쁨을 이해하고 반응하고 같이 마음을 해 줄 때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사이코패스 때로는 소시오패스라는 우리 단어를 흔하게 습니다. 이런 이 소위 말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이런 정세를 가진 사람들이 요즘 굉장히 많이 늘어나요. 이 정세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뭡니까 여러분? 공감의 능력이 전혀 없어요. 타인의 감정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 옆에는 죽는지 사는지 고통하는지 뭐 나와 상관이 없어요. 그 어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아요. 감정이 요동이 안 돼요. 그러니까 감정이 다른 사람과 따로 노는 거죠. 어떤 사람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야 되는데 슬픔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기뻐하면 같이 기뻐해야 되는데 내 감정이 그와 따로 독립해 있다는 거 격리되어 있어요. 이 사이코패스예요. 그러니까 타인과 감정적 교류가 안 되는 거 이건 심각한 거죠. 심지어는 가족 관계 안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굉장히 고통해야 하는데 자기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외토리로 살죠.
[4:20]사이코패스는 폭력성을 드러낼 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 타인이 고통을 느낄 때도 자기 자신에게는 감정의 동료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어디까지 가죠? 엽기적이고 잔인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알 수 있느냐? 할 수 있어. 왜 감정의 동료가 없어요. 그 사람의 고통이 나에게 이입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사는 것이죠. 그러니까 가정 안에서도 굉장히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쌍한 마음이 들고 동정심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의 얘기에 감정이 이입이 되고 이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고통할 때 그 고통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거. 이 사이코패스잖아요.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것은 타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이것도 역시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이런 정세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어요. 겉으로 능력이 있고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 용이 주도하고 일을 처리를 잘 하는 사람들인데 사실은 그 내면 속에는 잔인성을 갖고 있는 거죠. 요즘 여러분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개인주의의 심화 철저히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함몰되어 서서 외토리적으로 살아가는 철저히 극단적 이기주의의 형태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공감하지 못하면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세상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모두 바쁘게 살고 일상에 지쳐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실 관심을 가질만큼 여유가 없어요. 나도 내 문제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힘든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까 자신의 감정마저도 억압하며 살아가는 거. 그리고 내 감정을 쉽게 표현했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을 때가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숨기고 보호하고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자꾸 사회화 되니까 결국 어떻게 돼요? 우울증이라는 게 자꾸 반응이 일어나는 거예요. 감정이 자기의 감정이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해야죠, 가정에서도. 너만 아프냐 막 이러고 막 공격해 버리면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겁니다. 건강한 삶을 살려고 하면 이웃과의 관계를 열어 가야 합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싫어도 사람이 싫어도 세상을 등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공감하면 공감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감정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야 되는데 이 감정이 병들기가 쉬워요. 이 감정이 병이 들면 우리가 수 없는 인간 관계 속에 상처를 입다 보면 감정이 병이 들고 병이 들면 이 감정이 만사에 대해서 반응을 자꾸 안 하기 시작하는 거. 무덤덤해지는 거죠.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은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그 상처에 민감해서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나 이대로 살겠어라고 스스로 벽을 쌓다 보면 결국은 감정이 무디어지기 시작하는 거.
[8:53]감정이 굳은 사람은 얼굴이 굳어 있어요. 인간미가 전혀 무표정해요. 표정이 없어요. 얼마나 섬짓해요, 여러분? 감정이 이 얼굴이라는 게 엄 어마어마한 이 근육이 있다고 그러잖아요. 수만 가지의 얼굴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얼굴이거든요. 근데 표현을 하기는 하지 않다 보니까 점점 이 얼굴이 굳어져요. 주변의 일들에 무관심해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위험한 것 중에 하나는 감정 표현이 줄어드는 거. 감정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슬프면 슬퍼하고 좋으면 좋아해야 되는데 자꾸 숨기는 거죠. 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특징이 뭔가 하면 이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여러분 은혜 받은 분들 보세요. 얼마나 어린아이 같아져요. 감정을 잘 표현해요.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해요. 감사한 것을 감사하다고 표현을 해요. 여러분 시편을 보면 시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표현합니다. 이 시편이 참 은혜로운데 그 특징이 뭐냐면 그 안에 있는 감정을 억압하지 않아요. 그대로 표현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우리는 자기 감정을 숨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나님 앞에 있으니까 예의를 갖춰야 된다고 생각하고 본래 자기 안에 있는 마음의 어떤 억눌림이나 분노와 씁쓸함과 원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나이스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아주 나이스하게 기도하고 끝나는데 사실은 그 안에 감정에는 응어리가 있는 거예요. 근데 시편은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시편의 시인들은 자기 있는 감정을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여과 없이 폭발해요. 어떻게 보면 욕 같은 것도 하는 거죠. 여러분 기도할 때 욕하셔도 돼요.
[10:47]아 요 부분만 딱 따 가지고 옮기면 오해가 되는 말이에요. 그 말은 뭐냐면 자기의 감정을 감추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기를 원하시잖아요. 우리와 있는 그대로 만나기. 그래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 기도 안에는 우리의 카타르시스적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통성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하거나 우리가 막 부르짖는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될 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거죠. 근데 내 감정을 숨기고 어떻게 하나님과 정직한 마주침이 일어나고 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나이스하게? 불가능한 거죠. 여러분 오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우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거죠.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야 된다. 서로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숨기지 말고 여러분 건강한 가정은 뭐냐면 감정을 드러내는 거.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정은 그 가정 안에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고 순화가 일어나고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기 때문에 건강한 가정이에요. 우리 가정은 전혀 싸우지 않아. 좋은 가정이 일 수도 있고 아주 안 좋은 가정일 수도 있어요. 왜 관계하지 않는 관심을 갖지 않는. 그래서 그 표현을 하면 오히려 무한을 주는 그런 가정은 위험한 거죠. 언제 어떻게 폭발될지 모르죠. 여러분 압력이 꽉 차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잖아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굉장히 축복된 말씀이에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는 거. 제가 오늘 본문에 는 즐거워하는 자와 즐거운 함께 즐거워하는 게 먼전데 좀 바꿨어.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는 거. 울고 있을 때 누군가 함께 해 줄 때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치료제가 뭐냐면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해 주는 거죠. 함께. 여러분 슬픔을 당하면 외롭고 외로고요 서러워요. 아무도 내 이 고통을 함께 해 주지 않을 때.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아무도 이 고통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함께 해 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야. 그런 고통보다 더 큰 거예요. 내가 당하고 있는 어떤 유치적인 고통이나 사건을 통해 얻는 고통이 있지만 누군가 함께 해 준다면 특별히 공동체가 그것을 함께 해 준다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가 있어요. 그 고통이 완화돼요. 우리가 고통하고 슬퍼할 때 누군가 함께 울어질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가 되죠. 이 공동체의 위력이 뭐냐면 어려움이 생길 때 어떤 한 가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 함께 아파해 주고 함께 기도하면서 강력한 결속력이 생겨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죠. 감정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이 그 공동체 전체의 하나의 교류가 일어나면서 그 공동체 안에 어떤 하나됨의 역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4:06]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슬픔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슬픔이 나와 상관없는 것 같아도 인생의 길에 어떤 형태든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공동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죠. 슬픔이 한 개인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때 슬픔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홀로 슬픔에 짓을 짓고 짐을 지고 갈 때입니다. 그래서 홀로 슬픔을 견디다 병이 나는 거죠. 여러분 힘들어도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불행한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에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통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슬픔을 당한 사람을 살리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 됩니다. 사실 남의 고통에 대해서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아요. 자신만을 돌아보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는 그 무관심은 도리어 자신에게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을 키우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지 못하면 결국은 잔인하고 비인간화 되는 것입니다. 인간미를 잃어 버리는 것이죠. 그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의 감정을 공동체 관계 솔직하게 드러내고 숨기려 하지 않는 게 매우 좋은 것이죠. 그래서 힘들 때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 거. 어떤 분은 막 힘들 때 도움을 전혀 안 받으려고 그래요. 받으셔야 돼요. 그리고 나도 기꺼이 받고 어려울 때 그리고 누군가 힘들 때 나도 기꺼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고통 가운데 들어가고자 하는 이 상호 교류가 필요하다는 거. 나는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 위험한 거죠. 언제든지 감정을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지금도 나와 언제든지 감정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여러분 우리가 만나도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뭐 일기 뭐 기후 날씨 얘기하거나 뭐 일어난 뭐 오다가 사고 났네. 이런 얘기는 뭐 일반적으로 하는 거죠. 그러나 감정을 나누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가족 관계 안에서도 감정을 나누지 않고 살아가는 가족이 많아요. 그 진정한 의미에서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 될 수가 없는 거죠. 언제든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건강한 것이고 축복이에요. 요런 사람들이 모두가 외로워요. 너무 외로워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111 아 114의 그 전화 어를 걸어 가지고 어떤 사람은 어떤 남자는 그런데 그 그 일하는 여자분에게 그 스텝 그 에게 나에게 지금 사랑한다 한 마디만 해라고. 에 막 그러는데요. 그 난데 없이 남자가 전화 와 가지고 114에 전화해 가지고 사랑한다고 한 마디 하라니까 기가 막힌 거죠. 외로운 거예요, 외로운 거. 그것도 막 2시 3시에 얼마나 무섭겠어요, 여러분. 여러분 왜 모두가 외로워요? 사실 보면 만나면요. 만남도 많은데 만나면 모두가 자기 얘기만 해요. 누군가의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들어 주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대체로 만나면 자기 얘기만 해. 상대의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왜 상담자를 찾죠? 상담을 받으러 온 분들의 특징은 대부분. 자신의 자신이 힘들다고만 주장해요. 자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힘들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해요. 자기의 고통에만 빠져 있는 거죠.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얘기로만 가지 자기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해. 왜? 자기의 문제에만 빠져 있는 거요. 자기 얘기만 집중하고 있는 거요. 당사자만 모르지 사실 그것이 병이에요. 병든 자기애라고 할 수 있는 거.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너무 자기 문제에만 빠져 살지 않아야 한다. 잠시 빠져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거.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치료가 시작이 되는 거.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 여러분 다른 사람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피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의 고통의 깊이를 이해한다는 거 어렵습니다. 고통은 수 없이 많은 형태를 띠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가볍게 접근하다가는 도리어 큰 상처를 입힐 수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너무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가서 위로를 하려고 찾아갔다가 마땅한 말이 생각이 잘 안 나잖아요. 너무 큰 어려움을 당한 집에 가면 할 말이 없어요, 사실은. 근데 할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왠지 침묵이 두려워요. 그래서 괜히 어설프게 한 마디 했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장례식이나 이런 데 가도요 말 하는 말 하지 않아야 돼요. 그분에 대해서 뭘 위로하려고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함께 있어 주는 거. 우는 자를 위로하려고 하면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근데 피상적인 위로예요. 너무 깊은 고통과 절망과 실패에 빠져 있는데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19:54]속을 후비 파는 거죠.
[19:58]여러분 욥기서에서 욥이 깊은 고통 속에 있을 때 누군가 진정한 위로자가 필요했죠. 근데 친구들이 가까운 친구들이 도리어 큰 상처를 준다는 거죠. 상처에 막 왕 소금을 막 뿌리는 거. 친절하게 대해 주는 친구가 욥을 더 외롭고 고통스럽게 했어요. 그래서 욥기서에서 주는 교훈은 함부로 남의 고난을 다 아는 것처럼 접근하지 말라는 거요. 그래서 대체로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을 찾아갔을 때는 말을 적게 하고 그래서 함께 조용히 머물러 있어 주는 거. 여러분 오늘 우리 주변에 울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세상은 슬픔의 바다죠. 누구나 한 곳을 건드리면 눈물샘이 펑 터지는 것을 다 갖고 있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 옆에 앉아 있는 지금 예배 자리에 나온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눈물샘이 터질 만한 어떤 그걸 갖고 있단 말이에요. 자세히 보세요. 불쌍한 분들이에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해요. 여러분 세상은 고통이 많아서 슬픈 게 아닙니다. 고통에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적어서 슬픔이 큰 것입니다. 세상이 따뜻해지려고 하면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해 주는 것. 그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 해도 위로가 된다는 거요. 여러분 위로의 위력은 대단하죠. 죽고 싶었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게 위로예요. 힘들어 죽고 싶어도 나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가슴으로 들어 줄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 많이도 아니에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21:50]힘들 때 나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 줄 단 한 사람이 없어 목숨을 끊잖아요.
[21:58]여러분 힘들 때 내가 힘들 때 홀로 부둥켜 있지 말고 그걸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이 고통할 때 그것을 무관심하게 보지 않고 다가가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관계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공동체가 중요해요. 속으로 속으로. 우리 사랑 우리 교회는 사랑방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 사랑방이야말로 외로움에 찌들고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치료제예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담을 살지 말고 서로의 아픔을 느끼고 반응하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그래서 우는 자와 함께 할 때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 우는 자와 함께 울어 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이것은 웬만한 사람들이 아주 아주 극단적 잔인한 사람이 아니 한다면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 줍니다. 근데 즐거워하는 자들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거. 이 두 번째 이 이 부분이 쉽지가 않아요.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 나에게 지금 너무너무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고 있다. 이 기가 막힌 일이죠. 어떤 분은 골프장에 갔는데 딱 쳤는데 홀인원이 됐어. 근데 그날 따라 아무도 없었어요. 미치는 거예요. 이거 미치는 거예요. 여러분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그래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는데 혼자예요. 외로움이 밀려오는 거요. 외로움. 그 아름다움에 감탄보다 외로움이 밀려오는 이 아름다운 걸 나 혼자 본다. 여러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같이 기뻐해 줄 때 그게 행복이죠, 우리에게. 나 혼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기뻐해 줄 때 그게 행복이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보다 근데 즐거워하는 자와 즐거워하는 게 더 어려워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 여러분 우리는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다 잘 되기를 원해요. 옆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서로 기도해 주고 축복하고 간절하게 잘 되기를 기도해 줘요, 우리 지체들을 위해서. 옆에 있는 분을 위해서 막 기도해 줘요. 근데 문제는 그 기도가 응답이 되 버렸어.
[24:42]너무 빨리 응답되고 너무 풍성해 응답이 된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응답해 주실 줄 몰랐어. 갑자기 나에게 서러움이 밀려오는 거요. 나 뭔가. 아니 그 사람이 잘 된 건 잘 된 건데 내 그 상대적으로 내 안에 밀려오는 뭔가 원망이 오는 거. 하나님 나 뭔가. 저 인간은 저렇게 빨리 응답해 주고 나는 뭔가. 새벽기도도 내가 더 열심히 다녔는데 막 이러면서.
[26:00]여러분 잘 되는 것을 박수 쳐 주고 기뻐하는 거 참 쉽지 않아요. 교회 안에서도 내가 전도한 사람이 은혜받고 어 나보다 더 한참 늦게 왔는데 목사님에게 막 인정받고 칭찬받고 교회에서도 막 사람들이 막 그하고 간증하고 막 직분도 나보다 더 빨리 받고 막 교회 옮기는 일이 일어나요.
[26:26]여러분 우리는 내가 잘 잘 안 된 것으로 힘든 것보다 상대가 잘 된 것으로 나에게 가슴이 서려 오는 거.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저 앞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잘 요즘 하더라. 이러면 막 갑자기 이상해지면. 그래서 막 그분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고요 막 이러면서 막 딴지를 거는 거죠. 우리 집 아이가 학교 불합격한 것보다 친구 아이가 합격한 게 문제예요.
[27:02]여러분 형제 자매끼리도 질투가 대단하잖아요. 형제 간에도 그냥 키 외모 이런 걸로 아주 눈에 보이죠.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우리 교육자들에게 심방 오기 전에 아주 중요한 당부를 해요. 절대로 동생이 예쁘다고 하지 마세요.
[27:24]절대로 뭐 예 동생이 형과 동생이 얘기에 네가 형이네 뭐 이런 말. 이 키나 이런 게 있어요. 한쪽을 칭찬하면 전쟁이 나는 거예요. 질투의 영이 막. 사람도 죽여요, 여러분. 가인과 아벨 사건 보세요.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아벨 쪽을 손들어 주니까 동생 죽여버렸어. 여러분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 형제 간이나 가족 관계 안에서도 쉽지 않아요. 질투심과 경쟁심은 무서운 감정입니다. 인간의 죄성에 이 질투심이 명확하게 드러나죠. 다른 사람의 행복에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그 인간적 죄성. 물론 노골적으로 그러게 하지는 않지만 얼굴과 행동에서 감추기 어려워요. 여러분 이런 질투심의 한 가운데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 있어요. 근데 세상은 나를 주인공으로 지켜 세워 주는 곳이 많지 않아요. 모두가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질투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칭찬이나 박수를 쳐 주지 못하고 늘 배아픈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 다른 사람이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지 못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 남을 남의 잘 됨을 박수 쳐 주지 못해요.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비로소 남의 행복에 박수를 쳐 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격이 언제 드러납니까? 우는 자와 함께 하는 것에서는 잘 몰라요. 근데 그건 대부분 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는 자에게 어떻게 반응하냐를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박수를 쳐 줄 수 있습니까?
[29:57]아멘. 나보다 더 기뻐해줘. 그 상대보다 더 기뻐해줘. 축복하고 또 축복하세. 함께 즐거워하고 즐거워하세. 나만의 행복에 혼자 빠져 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고 즐거워해 준다면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30:44]아멘.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 옆에 있는 분들에게 감정적 반응을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